손민석
'조갑제 사학'의 정수이다.
조갑제가 보는 한국 현대사의 전개라는 건
조선의 문치주의가 일본제국주의의 확장 속에서 군사주의로 극복되는 와중에 형성된
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이용문, 박정희 등의 일군의 만주군 중심의 군인집단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자유진영의 첨병이자 전위집단으로서
북조선, 중국공산당 등에 맞서
한국의 근대화와 이념전쟁을 이끌어 왔으며 결국에는 승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군인집단의 성공과 그 조건들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숭무정신으로 조선식 문치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혁명가' 박정희의 정신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무분별하게 숭상하는 '새로운 사대부' 지식인들의 등장과
그것을 적극 활용해 남한 공산화를 시도한 김대중, 노무현 등의 민주당 계열 정치인들로 인해
점차 사라지면서 한국이 다시 '조선화' 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조선식 문치주의 대 박정희식 군사주의 간의
민족과 세계 이념전쟁의 운명을 건 투쟁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그의 관점은
소설적 세계관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비웃고 넘어갈 건 또 아니다.
확실히 조갑제는 박정희를 깊이 공부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일본제국주의의 확장 속에서 형성된 조선인 군인집단이 한국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강렬하게 인식하면서도
어떻게 제국을 향해 충성하던 군인집단이,
더군다나 귀축영미를 증오하여 미국과의 전쟁에 적극 동조하던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충성하던 집단으로 변모하게 되었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에 도달하게 됐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용문 평전에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식이 조갑제만의 것이라고 하는 건 그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미 조이제, 카터 에커트 등이 제시한 사관을 그 나름대로의 기자적 감각으로 파고 들어서 이용문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데에 이르렀다 봐야 할 것이다.
식민지기에 형성된 군인집단이 어떻게 사상적으로 전후의 군인집단과 연결되는지를 조갑제는 이용문과 그의 후계자인 박정희로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절판되어 아쉽지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읽어보기를 바란다.

24YoonSeok Heo and 2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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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文, 젊은 巨人의 초상 - 탄생 100주년 기념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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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文, 젊은 巨人의 초상 - 탄생 100주년 기념 평전
조갑제 (지은이)
조갑제닷컴2016-06-10

정가20,000원
판매가18,000원 (10%, 2,0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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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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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쪽
책소개
저자 조갑제가 월간조선 기자 시절 이 장군의 생애를 취재해 썼던 내용을 보완, 재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비밀등급이 해제된 미국정부 외교.국방문서 속에서 1952년 임시수도 부산 정치파동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웠고, 미국 정부 최고위층이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좌절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합동작전에 당시 육군 참모총장 이종찬 중장, 작전국장 이용문 준장,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이 직간접으로 관계했다는 기사를 쓴 것이 평전으로 발전했다.
이용문 장군은 전란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시산혈해로 변하는 시대를 산 사람이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군 장교로 남방전선에서, 전후의 반식민 민족독립운동 시기엔 월남에서, 해방 후의 창군시기엔 기병부대에서, 북한군 남침 때는 적화된 서울 남산에서, 그리고 수도고지와 지리산에서 늘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저자는 억울한 사람, 고통 받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념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약자에 대한 인간애를 일관되게 보여준 군인은 흔치 않고, 이용문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평했다.
목차
저자(著者) 머리글/ 전란(戰亂) 속에서 꽃핀 人間愛: 멋지고 너그러운 남자의 너무 짧은 생애
화보
李龍文 연보
1부 젊은 巨人의 초상
군인의 길
사이공의 이용문 소좌
육군 정보국장 시절
여순사건과 박정희의 수난
두 거인의 운명적 만남
현리 대패(大敗)의 소용돌이
장군들의 밤: 육본 심야회의
수도고지 전투지휘관
운봉에 떨어지다
끝내 ‘이용문 형’을 못 잊어…
2부 아들 李建介의 추억
총성이 울리는 사선(死線)을 넘고
다시 군복을 입은 아버지
총살 직전의 아버지
9·28 서울수복
고시(考試)공부 중 4·19 참여
하우스만의 증언
큰아버지 이용운(李龍雲) 제독
이장(移葬) 위원장 맡은 박정희
사법고시 합격과 군 법무관 시절
청와대 파견 근무
직분사명주의
대통령이 싫어해도 보고
김대중 연설의 충격
수도경찰총수로 발령
전두환(全斗煥) 합수본부장, “10·26 수사 도와달라”
수도검찰 책임자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의식
국회의원 시절
횃불개혁사명주의
부록
대한민국의 살 길_이건개(李建介) 前국회의원·변호사
이용문과 그의 시대: 한국전의 세계사적 재인식_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접기
책속에서
P. 54 “이용문 형은 키가 175~176cm쯤 되었고 하얀 피부에, 수염을 면도한 자국이 파랗게 난, 호남자였습니다. 어디서건 무리 속에 끼여 있으면 눈에 확 띄는 용모를 가진 이가 이용문 형이었습니다.” (일본 육사 후배 김창규 前공군참모총장)
P. 84 “파격적이고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는 분이었죠. 그러면서 사물을 넓게, 먼 데까지 내다볼 수 있는 특출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우리 군의 선배로서 오래 살아 계셨다면 그 뒤의 일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군대의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이때 이 장군이 살아 계셨다면’하고 아쉬워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유양수 前동력자원부 장관) 접기
P. 87 “남을 잘 도와주는 분이었어요. 그게 즐거운가 봐요. 풍채는 또 얼마나 멋진 분이었습니까. 얼굴은 늘 벌겋게 홍조를 띠고 온화하면서 근엄하고요. 그분이 찡그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천적이고, 돈에는 무관심할 만큼 청렴결백하시고.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에는 그렇게 치밀할 수가 없었어요.” (후배 白行傑)
P. 187 “우리는 그때 경비행기를 자주 탔습니다. 팔랑개비 같은 기체 속에 몸을 싣고 있으니 불안·초조해요. 내릴 때까지 오금을 못 펴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용문 장군은 경비행기만 탔다 하면 그냥 쿨쿨 자버리는 거예요.” (정래혁 前국방부 장관)
P. 350 “이번 일을 주도한 젊은 장교들은 이용문 장군을 가장 존경하고 있습니다. 장군이 살아계실 때 여러 번 구국(救國)의 방법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5·16 직후 박정희 장군이 이용문 부인에게 한 말)
저자 및 역자소개
조갑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공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사태 현장 취재를 했다. 그해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 더보기
최근작 : <한국을 뒤흔든 11일간>,<40년 동안 다섯 가지 루머와 싸워 이긴 이야기>,<대한민국 最後의 날> … 총 82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chogabje1
출판사 제공 책소개
멋지고 너그러운 남자의
너무 짧은 생애
이용문(李龍文) 장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갑제(趙甲濟) 기자가 평전(評傳) 《李龍文, 젊은 거인의 초상》(468페이지, 2만 원)을 냈다. 월간조선 기자 시절 李 장군의 생애를 취재해 썼던 책을 보완, 재출간했다.
趙 기자는 비밀등급이 해제된 미국정부 외교·국방문서 속에서 1952년 임시수도 부산 정치파동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웠고, 미국 정부 최고위층이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좌절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합동작전에 당시 육군 참모총장 이종찬 중장, 작전국장 이용문 준장,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이 직간접으로 관계했다는 기사를 쓴 것이 평전으로 발전했다.
부산 정치파동 9년 뒤 박정희 소장은 장면 정부를 타도하는 군사혁명을 일으킨다. 만약 이용문 장군이 만 37세에 비행기 추락으로 별세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혁명의 지도자가 되고 박정희가 참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가상(假想)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용문 장군은 전란(戰亂)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변하는 시대를 산 사람이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군(日軍) 장교로 남방전선에서, 전후(戰後)의 反식민 민족독립운동 시기엔 월남에서, 해방 후의 창군(創軍)시기엔 기병부대에서, 북한군 남침 때는 적화된 서울 남산에서, 그리고 수도고지와 지리산에서 늘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저자는 “억울한 사람, 고통 받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념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약자에 대한 인간애를 일관되게 보여준 군인은 흔치 않고, 이용문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평했다.
조갑제 기자는 부제(副題)인 ‘젊은 거인(巨人)의 초상’에서 ‘거인’이 업적이 크다는 뜻이 아니라 속이 깊고 통이 큰 너그러운 성품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가 오래 기억되는 것은 그의 업적보다는 성품과 인격(人格) 덕분이란 점에서 특이한 경우이다. 이용문 장군은 그의 크나큰 인덕에도 불구하고 일복이 적었던 사람이었다. 반면, 그를 따랐던 박정희는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용문은 죽을 때까지 만족스럽게 자신의 웅지(雄志)를 펼 수 있는 직위도, 몰두할 만한 일도 거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명(短命)과 함께 이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이용문은 자신의 크기에 못 미치는 임무와 직위를 부여받았기에 언제나 좀 허전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바깥으로는 활달, 명랑한 것 같으나 포부가 워낙 큰 사람의 특유한 허무주의적 쓸쓸함을 지니고 다녔다.”
이번 평전에는 이용문 장군의 장남 이건개(李建介) 변호사의 글이 추가됐다.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 박정희가 5·16 전후 긴장된 시국(時局)에서도 이용문의 유족을 성심껏 보살펴 준 이야기, 李 변호사가 박정희·육영수 부부와 이어간 인연, 수사 지휘자로서 1974년 문세광의 총탄으로 사망한 육영수, 1979년 김재규에 시해된 박정희의 죽음을 조사해야 했던 사연 등이 수록됐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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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近代化, 기적의 과정
조이제, 카터 에커트 (지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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