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알라딘:조선의 베스트셀러-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알라딘: [전자책] 지식전람회 26 - 조선의 베스트셀러


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이민희 (지은이)프로네시스(웅진)2012-02-06

 세책(貰冊)이란 돈 받고 빌려 주는 책. 조선 후기에 소설책을 일일이 필사해 고객에게 빌려 주고 대여료를 받아 이윤을 챙기던 세책점이 있었으니, ...



































전자책정가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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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에 불기 시작한 소설 열풍과 이에 편승하여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해주던 세책업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지은이는 서울에서만도 서른 곳이 넘었을 정도로 성행한 조선의 도서대여점 세책점을 통해 당시 일상의 풍경을 담았다.

책을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며, 서적 유통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한 사람의 경영인이자 편집자인 출판업자들의 면면 역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한 수많은 사람들이 탐닉한 소설 읽기에서 우리 조상이 향유하고 살아가던 일상의 풍경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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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세책 이야기를 열며

1장 조선 후기 독서 풍경
규방 여성에게 불어 닥친 소설 열풍 | 세책을 찾는 사람들

2장 세책, 조선의 문화상품
상업 출판의 숨은 고수들 |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 | 세책 열어보기
방각본 소설과 세책본 소설의 진검승부

3장 향목동 세책 거리를 걷다
세책점과 도시의 풍광 | 지도로 본 세책 거리|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세책점

4장 세책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상업문화의 진수-중국의 출판과 세책 | 세책업의 선진국-일본의 세책업과 카시혼야
유럽의 세책이야기

세책 이야기를 마치며
미주
부록
더 읽어볼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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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많은 이들이 돌려 가며 빌려 읽다보니 자연히 세책에는 낙서 또한 적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느낀 감상을 간단히 적은 글부터, 오탈자가 있다는 불평과 값이 비싸다는 불만, 세책으로 내놓으려면 깨끗한 책을 놓으라는 항변을 적어놓았다.-p64 중에서

출판업의 발달은 청대 고증학의 발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출판된 서적들이 북경의 거대한 서점가인 '유리창'으로 모여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국제적 도시인 북경을 방문한 주변 나라의 사신들은 유리창을 방문해 필요한 책을 쉽고 신혹하게 구할 수 있었다.-p137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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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민희 (지은이)

1970년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 우신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으로 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조교수를 거쳐 2018년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고전소설, 구비문학, 비교문학, 문학사, 고전문학교육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학제 간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란·폴란드·뽈스까: 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16~19... 더보기


최근작 : <19세기 말~1950년대 근대적 시선으로 바라본 강화도>,<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박지원 읽기> … 총 3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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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음란서생의 음란소설은 정말 있었을까?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들이 어두운 밤거리를 분주히 오간다. 으슥한 골목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여자.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책 한 권을 받아들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조선시대 소설을 읽고 쓰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을 다룬 영화 <음란서생>의 첫 장면이다. 생소하지만 신선한 소재로 많은 주목은 받은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 윤서가 음란소설 작가 추월색으로 재탄생하기까지 조선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출판업자들의 고군분투를 흥미롭게 그렸다.
잘 엮어진 한 편의 팩션(faction)으로 유교문화의 엄숙주의를 뒤집는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설’이라는 소재가 주는 현재성과 소설 읽기라는 공통된 경험이 그 배면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가장 큰 흥밋거리이며 다른 시간과 세상 그리고 삶을 체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100여 년 전 조선 사람들이 소설에 빠져 밤을 꼬박 지새우고 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일이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닌 것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에 불기 시작한 소설 열풍과 이에 편승해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해 주던 세책업자들의 이야기를 엄밀한 학문적 탐구와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냈다. 사대부가의 여성이나 하층민이 주로 찾았던 소설은 조선시대 내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주류문화의 배척 속에서도 그 깊이와 폭을 넓혀 이제 당당히 우리 문학의 한 자리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하던 세책업과 세책업자, 그리고 그 독자와 소설 유통을 책임졌던 수많은 주체들을 재발견하는 장을 통해 우리 문학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조선 여인들 소설에 홀리다

조선 후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국내 고소설 작품만 해도 약 858종에 이르며 다양한 형태의 이본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수는 수만 종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중국의 1164종, 이본을 모두 합친 일본의 1만 40편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양이다. 짧은 한문단편소설부터 180책이나 되는 대하장편소설까지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소설은 국문으로 번역되는 등 그 인기가 날로 높아갔다. 당시 국내에 들어온 중국소설은 『삼국지』『수호지』『서유기』등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작품들로,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영웅들의 활약과 충성, 음모, 술수,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한 편을 읽으면 중국의 역사를 헤아리고 세상과 집안을 경영하는 법과 처세술, 그리고 세계관까지 가질 수 있어 초기 소설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많은 소설이 음란하고 무익하다는 이유로 “패관잡서는 인재 가운데 가장 큰 재앙”이라 일갈한 정약용의 비판도 소설의 인기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학규가 “비단옷을 입은 부녀자들이 언문 번역 소설 읽기를 좋아해 기름불을 밝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새겨가며 몰래 읽는다”고 당시의 세태를 묘사했듯, 중국에서 들어온 통속소설은 유행처럼 번져 소설 발달을 자극하는 동인이 되었다.
한문으로 쓰인 초기 소설의 주 독자층은 사대부 남성이나 외교 분야에 종사하던 아전, 역관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국문으로 번역된 이후에는 그 폭이 더욱 넓어졌다. 특히 학식을 갖춘 사대부가 여성들이 책을 번역하여 읽는 일이 빈번해졌다. 오희문은 딸의 청을 들어 『초한연의』를 번역했고 숙종조의 학자 조성기는 그의 어머니를 위해 종종 소설책을 구해드리는가 하면 직접 『창선감의록』이라는 소설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한평생을 좁은 집안에서 갇혀 지내야했던 여성들에게 소설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심사를 풀어내는 데 그만이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소설 탐독은 대단해서 구중궁궐 안까지 그 열기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왕실 도서관이었던 낙선재에서는 ‘장편가문소설’이라 불리는 소설들이 다량 발견되었는데, 이 소설들은 가난한 선비들이 창작한 것으로 세책점을 통해 유통되다 궁중에까지 흘러들어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한 국문소설은 결코 화려하다거나 공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 사대부 주도의 유교사회에서 멸시되고 배척당하던 국문소설은 규방의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문학 창작 및 독서 문화의 고양을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국문으로 필사되어 유통되던 세책본 고소설에 대한 여성들의 사랑은 각별했다.


조선의 도서대여점을 가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매매하는 상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서적 간행은 국가의 통제 하에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책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 서적을 구하기 위한 서적 사무역이 활발해지고 책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나타나 책을 판매하는 일이 성행하자 책의 상거래에 대한 인식 또한 점차 개방적으로 바뀌어 갔다. 지식의 독점이 이루어지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책을 공급하는 곳이 다변화되고 공급량이 늘었다고는 해서 모든 사람들이 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값은 일반 서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비쌌기 때문이다. 세책점은 이런 잠재적인 독자들을 노리고 17세기 후반 경부터 등장했다. 돈을 받고 필사한 책을 빌려주던 세책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쾌가는 이것(=패설)을 깨끗이 베껴 쓰고 무릇 빌려 주는 일을 했는데, 번번이 그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는 18세기 채제공의 기록은 그 당시 세책점 풍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원래 가가호호 방문하여 책을 팔던 쾌가가 겸하던 세책업은 점차 전문 세책업자들에게 넘어갔는데, 세책업자들은 한 군데 가게를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영업 형태를 선택했다.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서울에만도 서른 곳이 넘는 세책점이 성행했다고 한다.
세책점에서 빌려주던 세책은 필사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글씨가 단정치 못한 것이나 탈자, 오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책을 읽은 독자의 불만은 그대로 세책에 ‘댓글’의 형태로 남아있다. 특히 여러 책으로 분철 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빌리는 책값도 만만치 않았던 서민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예로 『김홍전』에는 “책 주인 들어보소.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또 어디 있느냐?”고 쓴 글이 남아있다. 또 오늘날 대학가나 화장실 낙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음담패설과 음화도 종종 그려져 있다.
이런 독자들의 불만에 대응하는 세책업자의 반응은 자못 점잖으나 책을 더럽히는 독자들에 대한 경고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말이 비록 허무맹랑하나 또한 장난으로 보기에는 우스운 말이 많으니 착실히 보시고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라든지 “이 책에다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오니 이후로 깨끗이 보시고 보내주시옵소서”라는 글로 대응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책의 낙서들을 보면 <음란서생>에서처럼 작가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책을 필사하는 일은 빈한한 선비의 호구지책이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인 작가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황가’와 같은 출판업자들의 면면은 세책에 관련되어 남아있는 기록들을 통해 자세히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서적 유통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한 사람의 경영인이자, 문화기획자 그리고 편집자로서 조선 후기 소설 문화를 이끌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의 힘

최남선은 「조선의 가정문학」이란 글에서 세책점에서 필사해 대여하던 소설책들에 대해 “이런 소설들 대개가 가정을 중심으로 인생 여정의 파란을 그리고 또 거기 임하는 태도를 가르쳐준다고 할 만한 것으로 사막 같은 가정에 이것이 샘 자리가 되고 골방 속에 갇혀 지내던 부인네에게 달 밝고 별 깜박거리는 시원한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외, 수많은 소설들이 규방 여성들과 서민들의 무료한 밤을 달래주었다. 대중의 취향이 바뀌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세책본 고소설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홍길동의 신출귀몰과 춘향의 일편단심에 매료된다. 이야기의 힘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당시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한 수많은 사람들이 탐닉한 소설 읽기에서 우리 조상이 향유하고 살아가던 일상의 풍경과 진면목을 재발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접기


북플 bookple

평점분포

8.9



모르고 지냈던 우리조상들의 책문화를 흥미롭게 이야기해주는 책
도로시 2010-11-12 공감 (1) 댓글 (0)


세책업 발달과 책이 유행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 책.
개암나무 2014-03-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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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화를 이끈건 소설이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냅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명이었던 정약용이 묘사한 이것은 바로 패관잡서, 요즘말로 하면 소설책이었습니다. 정약용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앙으로 소설책을 으뜸으로 지목하는데, 한번 소설책을 들면 공부하는 학생이나 종묘사직을 책임져야 하는 고위 관료, 집안 살림을 맡은 부녀자들 모두 책읽기를 마칠 때까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설에 빠져 든 이들은 모두 패가망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책을 모두 모아 불태우고 중국으로부터의 소설 수입을 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안은 마치 과거 우리나라에서 만화책을 모아 불태운 일이나 현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를 외치며 게임, 만화 등의 문화를 탄압하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근세에 안방의 부녀자들이 경쟁하는 것 중에 능히 기록할 만한 것으로 오직 패설이 있는데, 이를 좋아함이 나날이 늘고 달마다 증가하여 그 수가 천백 종에 이르렀다. - p.22 
조선의 유명한 학자 중 한명이었던 정약용이 심각한 어조로 언급할 정도로 조선시대에 소설책은 막강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통속소설이 대량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소설의 맛을 알아버렸고, 중국의 소설을 번역한 국문소설, 국문창작소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책《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이러한 조선의 시대상,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출판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출판문화를 이끈 것은 기득권층이 장악하던 점잖고 품격있는 것들이 아니라, 정약용의 표현대로 음탕하고 사특하고 황당하고 괴이한, 상류사회가 멸시하던 천한 문화였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C01) [笑笑生] 금병매(金甁梅) (번역).zip

조선시대에 소설책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한문소설이 아닌, 국문소설이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소설책이 높은 인기를 얻게 되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17세기 후반부터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소설을 필사해 대여하는 세책업이 성행했습니다. 세책점에서 사용하는 세책본 고소설은 요즘말로 하면 대여점용 소설 혹은 만화책인데, 이 대여점용 책과 대여점이 조선중기부터 조선말기까지 출판문화의 핵심에 서게 됩니다. 세책본에 대한 고위관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책점은 판서, 참판 등 고위층 인사부터 진사, 생원 등 일반인은 물론이고 노비들마저도 애용했습니다.

조선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되던 책들은 대여용인 세책본과 개인용인 방각본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여점과 비교했을때 독특한 점은 현재는 똑같은 책을 대여용으로도 사용하고 개인판매용으로도 사용하는 반면, 조선시대에는 세책본과 방각본의 생김새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세책본과 방각본의 차이라면, 현대의 책으로 비유하면 세책본은 양장본이고, 방각본은 페이퍼백이었습니다. 대여점 책인 세책본이 더 고급 책이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써야 하기 때문에 튼튼해야 했고, 현재의 대여점용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빌려간 사람이 낙서하기 등의 행태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세책본《금령전》에서는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지 않으면 세책점 주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하겠다는 패드립을 낙서해놓는가 하면, 세책본《김홍전》에서는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어 대여했다며 세책점 주인을 잡놈이라 부르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세책의 특성상 필사해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표지를 삼베 같은 것으로 싸서 일반 책에 비해 훨씬 두껍게 만들고, 손이 자주 가는 본문의 경우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배접을 하거나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또한 책장마다 들기름을 칠해 책장이 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조건을 갖추다보면 다른 것보다 세책본의 단가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세책본은 사대부가 여성을 비롯한 중산 계층 사람들이 즐겨 찾았고, 하층민들은 세책본보다 비교적 값이 저렴한 방각본을 즐겨 찾았다. - p.61 
문화의 발달, 전파과정에서 대여점 문화, 세책업의 등장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세책업이 등장했고, 중국의 경우는 한 세기 뒤에 세책업이 융성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 등 인쇄술 자체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인쇄술로 인정받는 것은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기득권층이 소설과 같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서브컬처를 무시하고 배척한데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설책을 보고자 하는 열정, 열의는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다른나라 부럽지 않는 소설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남성 사대부 주도의 유교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멸시하거나 배척하던 국문소설과 세책 문화는 규방의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문학 창작 및 독서 문화의 고양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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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선 2014-01-13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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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베스트셀러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 보시는 양반은 남자는 X이 꼴리거든 용두질하고 여자는 X이 꼴리거든 서방질하거나 X에다 손을 넣고

용두질을 치오'

조선시대 세책 '옥단춘전'에 쓰여진 낙서란다.

몇백년전의 우리 조상들의 낙서에서 시대만 다를뿐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낙서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우리의 조상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질 줄이야.

옥당춘전을 사 읽어봐야겠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우리 조상들의 세책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교주의가 조선을 지배하던 당시에 천시받던 소설은 세책을 통하여 민중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였다.

조선시대의 책은 양반들이 읽는 한문서적이 필사본으로 읽힐줄만 알았는데

아녀자와 일반 서민들도 한글로된 제책 서적들을 접하고

이를 이용하여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비록 그 책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사회의 물의를 일으킬까봐 양반들이 걱정을 하였다지만

조선인들이 독서를 즐기는 문화인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견이다.

하지만 낙서는 좀... 

 

독서를 하는 민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들이야말고 조상들보다 더 적은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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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2011-01-07 공감(0) 댓글(0)

조선의 베스트셀러 새창으로 보기 구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에 대하여 쓴 책이다.

 도입부에서는 2006년에 개봉한 '음란서생'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윤서는 우연히 저잣거리 유기전에서 생전 처음보는 '난잡한 소설책'을 접하게 된다.

여성 독자들은 몸이 달아올라 너 나 할 것 없이 이 책을 빌려다 읽으려 아우성쳤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을 되새겨보면 조선 후기 소설의 주된 독자들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고 한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유기그릇 가게 한구석에서 몰래 소설책을 베껴 적은 전문적인 필사자들도 있었고, 이렇게 필사한 소설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던 황가같은 세책업자들도 존재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소설 독서를 대중화하고 새로운 독서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세책 고소설과 세책업자, 그리고 세책점에 관 산 스케치이다.

먼저 세책에 대해 말해보면 세책이란 전문 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 주는 상업적 도서 유통 방식을 말한다.

대개 이들 세책은 고소설이 주였으며, 세책본 고소설이라 부른다.

여기서 책괘라 불리던 서적중개상은 오늘날 서적 외판원에 해당하는 책 거간꾼이었다.
책괘는 단순한 서적 거간꾼이 아닌 서적 유통에 관한 영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책일 필사하거나 다른 ㅅ ㅏ람에게 필사하게 하면서 세책업을 뛰어들었던 선구자였다.

세책본은 주로 유식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여성 독자가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화기 이후로는 모든 독자가 서점의 고객이 되었고 세책업이 퇴락해가는 상황에서도 독자층은 더욱 넓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인쇄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 사람들이 책을 더 읽지않는 것 같다. 조금 부끄럽긴 하다.
18세기 후반, 세책점이 활기를 띤 시기에 여성들이 즐겨 빌려 보던 소설은 주로 한글로 번역 또는 번안된 중국소설이었다.
하지만 현재 세책본 고소설은 대부분 외국에 있고 전성기였던 18~19세기의 세책본 고소설이 유통되었는지 확인은 쉽지 않다.
세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돌려보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 견고하게 만들었고 일반 책에 비해 두껍게 만들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묻혀 손가락으로 넘기는 부분은 1~3자 정도의 글자를 덜 썼다는 것이다.

지워질까봐 그랬나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사람들도 낙서를 했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조선시대에도 이런 낙서를 했다는것이.
인기가 많은 세책일수록 그만큼 낙서도 많고 책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이런 낙서나 음화는 상당수 일반 서민 남성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세책점 주인 왈
"말이 비록 허무맹랑하나 또한 장난으로 보기에는 우스운 말이 많으니 착실히 보시고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

"이 세책 보는 사람은 곱게 보고 책에다 칙칙하게 글씨를 쓰지 마시고 그 무식하게 욕설을 기록하지 마시기를 천만 번 바랍니다."

이런 식의 당부의 말을 가필하거나
"이 책에다가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니 이후로 깨끗이 보시고 보내주소서" 라는 경고성 문구도 넣었다고 한다.

옛날이나 현재나 낙서하는 자와 낙서를 막는 자는 여전한 것 같다.
더 자세한 부연설명은 하지 않겠다.

혹시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조선의 세책업에 대하여 알고 싶은 분은 한번쯤 빌려보거나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역사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그닥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미 책을 펼쳤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도 조선시대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떻게 유통되었고 누가 유통했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조선에는 어렵게 책을 읽었는데 현대는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읽지 않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조선보다 더 나은 시대에 사는데 열심히 독서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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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 2014-02-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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