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1

오늘보다: 역사의 사기극, 연출자는 문재인 정부?

오늘보다: 역사의 사기극, 연출자는 문재인 정부?

역사의 사기극, 연출자는 문재인 정부?
윤소영,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 서평 ① 문재인정부 정책 비판
김태훈

올해 10월, 윤소영 교수는 《재론 위기와 비판》을 출간했다. 《위기와 비판》(2017, 윤소영)의 주장을 다시 거론하겠다는 의미다. 윤소영 교수는 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PD(민중민주) 이론을 정초한 바 있다. 이후 과천연구실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두 권의 책에서 위기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30주년, 1997~1998년 경제위기 20주년, 2007~2009년 금융위기 10주년을 지나 문재인 정부의 집권이라는 현상을 말한다. 비판이란 문재인 정부가 ‘역사의 사기극’을 만들고 있는 ‘사기꾼’이라는 것이고, 386세대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 지식인의 결함이 위기를 초래했다는 의미다. 왜 역사의 사기극인가?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의 주류가 되고 있는 386세대를 포함해 한국 지식인의 결함은 무엇인가?




역사의 사기극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마크르스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헤겔의 경구에 대해 첫 번째는 영웅이 주인공인 비극(tragedy)이고 두 번째는 광대가 주인공인 소극(farce)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사기꾼이 주인공인 ‘사기극’으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학식이 없는 자가 역사의 주체를 자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를 서술하여 그 뜻을 밝히면서 미래를 기대한다’는 태도가 사라진 것이다. 역사에 대한 판단(사론)이 역사에 대한 지식(사학)을 대체하면서 근거 없는 판단(격단)이 된다. 중국 문화 혁명기의 영사사학(현재의 정치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빗대어 말한다는 의미)이 결국 현재의 정치에 복무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날조하는 사이비 과학으로 타락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외교·안보정책, 개헌시도를 분석하면서 사기꾼 행태를 비판한다.

한국 경제의 침몰과 소득주도성장

한국 경제는 1979~1980년과 1997~1998년의 구조적 위기를 두 번 겪으면서도 개혁에 실패했고, 결국 침몰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타결은 한국 경제를 노동자민족으로 변모시켰다. 한국 경제의 침몰이란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것, 즉 자본주의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경제를 추격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는 수익성과 생산성을 무시하는 한국 자본주의에 고유한 제도인 재벌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반도체 호황은 매출액은 인텔을 추월했으나 수익성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 호황은 더욱 심각한데, 삼성전자는 원천기술이 없다.

현대 경제학의 경제 성장론은 금융이 세계화된 결과로 발생하는 금리생활자민족과 노동자민족의 차이를 분석했고, 노동자민족의 성장궤도는 국가 부도를 동반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에 가깝다. 또 올해 국감 자료에 의하면 시중 6대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73.3퍼센트고 그 중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은 100퍼센트 외국인 소유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윤소영, 2014); 《현대경제학 비판》(윤소영, 2011))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경제학적 사기를 상징한다. 즉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역사에 대한 학식이 없는 것이다. 우선 소득주도성장론이 경제학적으로 케인스주의에 근거하는지, 포스트케인스주의의 임금주도성장론에 근거하는지 모호하다. 리카도-마르크스-솔로우의 성장론은 자본축적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임금주도성장론은 노동자 임금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를 중요시하지 않는 일종의 ‘반(反)경제학’이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임금’주도성장론이라는 말 대신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비율이 인구 대비 8퍼센트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론도 재벌로부터 외국인 투자자를 지키려는 소액주주운동이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 국내 자영업자를 보호하려는 공정거래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파견 노동 규제·감독이 자영업자 보호와 갈등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론 위기와 비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이제 공개적 논란의 대상이 됐고, 삼성에 대한 ‘투자 구걸’은 정부 스스로 그 실패를 자인했다고 평가한다. 7월 문재인 대통령을 인도에서 만나고 8월엔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난 이재용 부회장은 3년간 180조 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김상조가 이재용을 두둔한 것처럼, 《재론 위기와 비판》은 친노·친문이 박근혜의 세습은 악마화하고 적폐로 규정하면서도 유독 김정은과 이재용의 3대 세습에는 관대하다고 꼬집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일본 민주당 실패의 전철을 밟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민주당은 집권 이후 ‘증세 없는 복지’로 임금분배율을 높였으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한반도 정세와 대북정책 비판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보다도 외교·안보 정책에 훨씬 집중했다. 그 핵심은 북한 비핵화인데, 국가안보실장·국가정보원장을 중심으로 북미협상의 중재에 진력해왔다.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 무력을 완성했고, 병진 노선에 따라 경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이러한 태도 급변의 배경에는 경제위기가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2017년 국내총생산은 3.5퍼센트 감소했고, 올해는 5.0퍼센트 하락하리라 예상된다.

문제는 비핵화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복구 불가능한 핵 폐기(CVID)’에 북한은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무장을 전제한 핵 동결, 기껏해야 핵 군축을 의미한다. CVID에 미달한다는 근거로 이란과의 핵협정을 폐기한 트럼프가 존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기각하고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수용한 것인데, 이런 변덕은 올해 치러진 중간선거, 차기 대선에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지만, 사실상 대리운전에 불과하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경제 제제 완화를 위한 행보를 취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산총액 286조엔 수준의 세계 6위, 일본 최대의 미쓰비시 은행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검토하면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나 김정은이 문재인에게 운전을 양보할 리가 없다. 게다가 미국 의회가 트럼프를 견제하고 있다. 공화·민주 양당이 ‘대북정책감독법’을 공동으로 발의한 상태인데, 비핵화 협상을 매월 의회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윤소영 교수는 《역사학 비판》에서 수령론을 핵심으로 하는 김일성주의는 극단화된 스탈린주의, ‘신화화된’ 개인숭배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여기에 국민대 란코프 교수의 분석을 보충한다. 북한 인구 2500만 명 중 4~8퍼센트 정도인 100~200만 명을 북한의 지배층이라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세계관은 ‘극단적 현실주의’다. 체제경쟁은 포기하고 체제생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정치이념의 우위를 다퉜던 냉전기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자인하고 탈냉전의 상황에서 체제생존, 나아가 자신의 생존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단지 비핵화 시간표의 문제가 아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중에 카다피와 그 가족이 살해된 것은 결국 핵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핵 보복을 걱정하지 않고 반체제운동을 지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체제보장을 위해 평화협정으로 충분치 않고 핵무기라는 군사적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대변하는 문정인 교수처럼 핵무장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부당전제일 따름이다.



인민주의의 부활

문재인 정부의 경제학적 사기인 소득주도성장론과 북한의 3대 세습과 핵무장을 용인하는 친북 노선에 대한 비판은 제왕적 대통령과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진보적 요구를 인기영합적 인민주의(populism, 포퓰리즘)와 동일시하는 보수언론의 통속적 비난과 달리, 과천연구실은 현대 정치 이념인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와 구분되는 역사적인 현상으로서 인민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해왔다. 《인민주의 비판》(정인경·박정미 외, 2005,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윤소영, 2015)

이번 저작들에서는 전 세계적 인민주의의 부활이라는 정세를 분석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가 신자유주의 근거지인 미국에서 나타난 트럼프 당선과 영국에서 나타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이다. 신자유주의자 오바마가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 연설에서 인민주의를 비판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오바마는 전후 세계질서의 형성에서 미국이 제시한 세계표준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함과 모순’, 특히 ‘경제적 불평등의 폭발’ 때문에 중국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의 권위주의와 같은 ‘반동’이 출현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처음에는 왼쪽에서 제기되었던 세계화에 대한 도전이, 그 뒤에는 오른쪽에서 인민주의 운동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 오바마는 ‘스트롱맨의 정치(Strongman politics)’라는 표현을 통해 프로토파시즘(파시즘 형성의 기반이 되거나 영향을 주는 문화 운동이나 이념)으로서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타협과 협상으로써 자유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야기를 지어내는(날조하는)’ 풍조임을 지적한다.

오바마는 현 정세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두 개의 아주 다른 전망이 세계시민의 감정과 이성을 두고 경쟁하는 순간’으로 분석한다. 즉 신자유주의의 결함과 모순을 해결해 자유주의를 재건함으로써 인민주의 내지 권위주의가 파시즘 내지 군국주의로 악화하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오바마의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유사해 보이지만, 경제학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는 다르다.

제왕적 대통령과 인민주의

비록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구상은 국회의 반대로 실패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4년 중임제 개헌 추진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악하려는 구상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게 바로 대통령 인사권이다. 대통령은 3천 명의 장·차관, 기관장을 직접 임명하고,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은 3만 개에 이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 직책의 수가 1만 개에서 3만 개로 증가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비교하며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석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선거 정치는 양립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자) 군주권이 취약한 서양에서 군주의 선거가 선거제도의 기원이다. 반면 아테네 민주정에서는 시민의 동질성을 전제로 추첨제도를 통해 관리를 선발했다. 선거제도는 인민주의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민주의의 ‘인민’은 엘리트와 대립하는 대중이라는 의미다. 민주주의가 타락한 형태가 바로 인민주의다. 타락하는 원인은 바로 대중선동가의 대중선동이다. 그래서 인민주의를 ‘대중선동가의 지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영국에서 현대적 선거제도가 출현했고, 영국의 선거정치가 채택한 의원내각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표본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제라는 배경이 대통령제를 채택하게 했으나,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에 따라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이 도입된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의 권위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의원내각제를 선호한 김성수의 한국민주당과 대립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식물국회’, ‘기생정당’이라는 표현처럼 대통령제에서는 유능한 정치인이 성장할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을 용인하는 한국의 정치제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미달하고, 권위주의적 인민주의에 취약하다. 그리고 그 귀결이 현재의 문재인 정부다. 노무현 정부 이래 386 세대는 ‘주류교체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독재의 보수주의를 재야의 인민주의로 대체하겠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문민화의 실패를 상징한다. 정치이념을 좌·우파로 구분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취약한 유럽의 관행인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에 미달하는 보수주의와 인민주의가 우파와 좌파를 대변하는 실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남한에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왜 취약한 지를 한국 지식인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이 사회운동에 주는 함의를 정리해보려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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