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修禎 <이 여자, 오싱この女、おしん>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反響)과 인기를 압도적(圧倒的)으로 이끌었던 드라마 중에 <오싱おしん>이 오라(オーラ)처럼 형형(炯炯)히 존재한다. 昭和 58年(1983년) 4월부터 昭和 59年 3월까지 日本内地에서만 첫 방영되었을 때, 최고 시청률이 무려 62.9%였던 작품이다. 평균 시청률도 52.6%를 찍었으니 시청자들에게 역대 最高로 선풍을 일으켰던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NHK連続드라마(朝ドラ) 장르이며, 전 279화로 구성되어 있다. 워낙에 대히트를 눈부시도록 달성해 小說로도 후일 출간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国外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신드롬(シンドローム)을 가차 없이 탔다.
예컨대 73여국이나 방송되었으며, 昭和 59年(1984년)에 싱가포르(シンガポール)부터 첫 포문(砲門)을 열었다. 시청률 80%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워 붐(ブーム)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부터 米国, 타이완(台湾), 태국, 호주 등등 심지어 反日의 온상(温床)인 지나(支那)에서도 방영되어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이란에선 자그마치 꿈의 最高 시청률 90%를 실현시켜 버렸다,
이러한즉, <おしん>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칭송을 구가(謳歌)하고도 남았다.
이를테면 米国의 40대 대통령(大統領) 레이건(ロナルド・レーガン)은 <오싱으로 인내(忍耐)・불굴(不屈)・봉사(奉仕)를 배웠다>며,
“日本에는 오싱의 정신이 있다!(日本にはおしんの精神がある!)”라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싱은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의 時代를 한 여인이 불굴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야무진 기백으로 역경을 딛고 힘차게 관통해 나가는 서사물(叙事物)인 만큼, 그의 깊은 감동은 가히 보편적(普遍的)이지 않을 수 없다.
普遍的인 감동이란 국경과 인종을 당당히 뛰어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나에선 첫 방송으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도 후난TV(湖南テレビ)에서 재방영되었으며, 베트남, 이집트, 이란 등에선 오싱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향상심이 있고 영리하다는 이미지>로 겹쳐져, 시청자(視聴者)들은 자신과 오싱을 동일시(同一視)할 정도로 격한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례로 시청자들의 용광로 같은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냐 하면, 이집트에선 <오싱>의 방영시간 도중 정전이 발생해 그 시간 분을 보지 못하게 되자, 視聴者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거나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시위를 격렬히 펼칠 정도였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おしん>을 아직 보지 못한 분이라도 그 이름만큼은 진작 들어보았음직하다. 혹은 드라마 이전에 小說로 먼저 접하신 팬들도 있을 테다. 드라마는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에선 전파를 타지 못했던 것이다.
전 세계적인 붐인데도 1980년대 당시 한국은 日本文化 봉쇄(封鎖)라는 야만(野蛮)의 조치(措置)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小說은 활자라 한국에 소개될 수 있었지만 드라마, 영화 그리고 음반은 철저히 차단당했던 것이 당시의 엄혹한 현실이었다.
지금 자유롭게 日本을 드나들거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이라면 상상조차 하긴 힘든 일이겠지만 당시는 그러했다.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19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 措置가 시행된 이후였다.)
아무튼 동토(凍土)와 같았던 그 시기를 되돌아보면 어지간한 小生도 한국의 지배계급(支配階級)에 대해선 가히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おしん>이 마침내 2023년 한국의 케이블채널 <채널W>를 통해 전편이 목하(目下) 방영 중이다. <매주 목, 금 밤 9시부터 10시까지 3화 분량씩 전파를 탄다.>
이번 주까지가 青春編(第37回〜第86回)인데 감상하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얼굴이 확 달아오를 만큼 즐거운 부분이라 小生도 곧잘 행복감(幸福感)을 느끼곤 한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伝)이다!
왜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그렇게 열광하고 있는지, 더부살이(住込み)하는 少女編부터 하나하나 보면서 연유를 뼛속 깊이 절실히 느끼고도 남는다.
작가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 1921―2021) 선생님께는 그저 깊은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물론 작품 전반에 흐르는 반전(反戦)과 사회주의(社会主義) 운동에 대한 우호적(友好的) 정서 등 시청자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호불호(好不好)가 나누어질 수 있는 시퀀스도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당대의 치열한 사회상(社会相)을 유추해 내는 데는 가히 손색없는 내러티브이다.
무엇보다 오싱을 짝사랑해 오던 타노쿠라 류조(田倉竜三)의 청혼을 수락하는 과정을 그린 77화부터 78화, 79화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 여자, 오싱을 가장 절묘하면서도 명료히 묘사(描写)해 냈기 때문이다.
더부살이를 끝내고 入京한 오싱은 염원하던 가미유이(髪結い)가 되어 출장 미용에 전념하면서 만난 타노쿠라 류조의 열렬한 구애를 받지만, 일단 신분부터 달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류조는 지방 사가(佐賀) 武家의 삼남. 東京로 올라와 직물점(織物店)을 운영하는 상인(町人)으로 변신했지만, 維新 이전이라면 가난한 소작농(小作農)의 딸인 오싱이 감히 우러러 볼 수도 없는 존재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기에 오싱은 야마가타(山形)의 본가로 매달 생활비와 새 집을 짓는 건축비까지 꼬박꼬박 보내야 하는 형편.
그러나 오싱은 결코 수동적(受動的)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더부살이할 때에도 당차고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녀이다. 신분에 따른 제약과 여러 격차(格差)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류조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와는 어디까지나 <대등한 관계対等な関係>로서 ‘친구’처럼 지내려 한다.
예컨대 오싱이 각기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가 퇴원하려 할 때, 류조가 입원비를 대신 내주려 하자, 그녀가 그 정도의 돈은 수중에 있다며 “류조씨와 대등한 관계”로 이어지고 싶다며 간곡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그의 호의를 사양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실로 <의존적(依存的)이지 않고 진취적(進取的)인 여성의 각별한 자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류조도 그래서 오싱을 더욱더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오싱의 결혼을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반대하면 타노쿠라 가문과 연을 끊고 직물점의 경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엄격한 각오를 굳히고 결연히 천명할 정도이다.
류조의 그 태풍처럼 거센 열정(熱情)에 비로소 마음을 여는 오싱은 자신도 돈을 벌 수 있다며 그가 가게에서 쫓겨날 이후의 생활을 오히려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기대(期待)마저 곱게 품기>도 한다.
그러한즉, 두 사람만의 혼례를 올리고, 오싱이 타노쿠라 상회(田倉商会)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면서도 출장 미용 일을 포기하지 않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앞으로는 두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앞날을 당당히 헤쳐 나간다.>
이러한 오싱의 인품(人品)이기에 류조의 부친이 드디어 결혼을 승낙하며, 옛 속담을 경구(警句) 삼아 류조를 치하하고 오싱을 칭송하기에 이른다. “악처는 평생의 흉작이다!悪妻は百年の不作.”
매한가지이다. 여성도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理致가 그러하니, 小生으로선 77화부터 79화를 감상하는 동안 선연하도록 간절한 하나의 소망(所望)도 못내 떨치지 못했다. <이 여자, 오싱この女、おしん>! 이런 여성상(女性像)을 구비한 女性이 아들 녀석의 배우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가슴 벅차고 사뭇 설레는 바람.
<의존적(依存的)이지 않고 진취적(進取的)인 여성의 모습.>
의당 남 탓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핑계로 대지 않으며 이웃을 배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대등한 관계>로서 함께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전형(典型).
오싱은 바로 그 찬연한 귀감(亀鑑)인 것이다. 가히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끄럽지만, 아비로서 아들이 이런 여성과 교제하기를 지극히 원하는 바이다. 아니, 아들 녀석에게도 성별을 떠나 미래의 배우자에게 <오싱 같은 男子>가 되라고 권유할 요량이다.
덧붙여, 타노쿠라 상회의 영국인 고객에게 차를 대접하는 시퀀스에서, 오싱역으로 분한 다나카 유코(田中裕子)님이 선보인 다도(茶道)의 단아(端雅)한 정취(情趣)는 그야말로 경탄만 쏟아내게 한다. 화경청적(和敬清寂)이 오롯이 구현(具現)된 그녀의 유현미(幽玄美)는 깊은 감동 또한 속절없이 우러나오도록 하고도 남는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茶道의 와비(わび)가 <그녀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京都의 벚꽃처럼 선연히 발현(発現)되니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율이 일 만큼.
새삼 <품격과 격식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인간의 품위를 높일 수 있는지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40년이다, <おしん>이 日本에서 청 방송 탄 지.
그동안 <오싱>을 드문드문 접했다가, 마침내 전편이 방영되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쁘다. 생각해 보면 40년을 기다린 끝이다. 이제라도 전파를 타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응당 단 한 화라도 전혀 놓치고 싶지 않다.
하여 매주 목, 금의 밤 9시는 열 일 제쳐놓고 그 시간을 ‘예약’해 놓도록 마음먹는다. 오싱을 매개자(媒介者)로 정해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의 時代를 두루 여행할 수 있으니 깊디깊게 감격한다고 해서 지나친 표현도 아니겠다. 행복(幸福)이다.
오싱은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도 단 일 초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엄청난 감동을 몰고 오는 女子>이기 때문이다.
<이 여자, 오싱この女、おしん>이다.
덧, 현재 <채녈W>에서 방영 중입니다. 매주 목요일, 금요일 밤 9시. 소름이 돋을 만큼 깊은 감동의 시간을 더불어 만끽하지 않겠습니까? 小生은 이미 그녀에게 마음 깊이 반해 있습니다. 百人一首 와카(和歌) 중의 한 편이 입 밖으로 절로 물결처럼 흘러나올 정도로 말이지요.
<님 향한 마음 조릿대 숲 들판에 숨겨보아도
어찌하여 이토록 그대가 그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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