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6

제4장 혼란에 의한 피해의 확대 제1절 유언초어와 도시

 

제4장 혼란에 의한 피해의 확대 제1절 유언초어와 도시

Microsoft Word - 18_chap4-1.doc



제4장 혼란에 의한 피해의 확대

제1절 유언 蜚語과 도시

1 「유언」대상화의 어려움

대지진 하에서의 유언은, 언제 어디서 발생해,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전해져 갔는지.

사실의 기본에 속하는 질문이지만, 정확하게 누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달 프로세스와 관련된 주체를 정성껏 따라가고, 시점이나 장소 등을 확정하는 소급적이고 광범위한 조사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동대지진이라는 재해의 정보공간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유언에 대해 그 하나하나의 전달 프로세스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 중 하나

덧붙여서, 우선 「유언」이라고 하는 현상 그 자체의 파악 어려움과 기록되기 어려움이 있다.

 

(1) 유언의 눈치채기 어려움

 첫째, 유언은 자각되기 어렵고, 또한 은폐되기 쉽다. 즉, 유언인 것은, 사후적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고, 전달 프로세스에 휘말린 당사자라도, 전달한 것에 그다지 접하고 싶지 않은 경향이 있다.

 원래 현장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언'을 '유언'으로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전달'과 ​​'저지' 관념을 갖기 어렵다. 특히 대지진과 같이 원래 예측 불가능하고 지역 전체가 비상시의 비정상적인 긴장에 휩싸인 환경에서는 듣거나 전하는 현장에서 '유언'과 '정보'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마침내 사실과 다른 정보 ( "오보", "허보")가 유언의 중요한 특징이 될지라도 실제 유언은 사실로서 정보의 조각을 풍부하게 포함합니다. 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정보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확증되는 것은 많은 사실이 정리되고 대조된 후에 된다. 매우 믿기 힘든 일이라도, 부정하고 설득할 뿐의 증거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미확인의 정보로서 다음에 전해져, 어딘가 다른 장소로 흘러 갈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그 집단 에 머무를 것이다. 비정상적인 증식·전파는 유언을 성격짓는 중요한 정의 요건이지만, 광범위한 유포나 의외의 변형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는 상태 자체가 그 시점에서는 전문을 신뢰해도 좋은 증거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방향으로 기능해 버리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사실과 다른 유언이었음이 밝혀져도 당황하거나 혼란했다는 일반적인 '일화'에 머물러 왜 혼란과 잘못이 만들어져 퍼졌는지의 분석에는 발전 없이 끝나 버리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지진 재해 직후의 유언이 난무한 정보환경에 대해 사상가의 쓰다다 안무라는 "불과 2개월의 간격을 밖에 두지 않는데 5년이나 10년의 일월을 경과했을 정도의 느낌" (『유언』, p.4 )가 있으면, 그것이 너무 멀리 느껴지게 된 기이함을 되돌아보며, 잡지 삽화가의 다나카 히사라는, 그 와중에 「정신은 긴장의 정도를 지나 역 위의 영역에 도달 했지만 "우리 모두 돌박자도없는 탈선 흔들림이므로, 생각할 때마다 쓴웃음을 금할 수 없다"(주부 노유, p.218)라고 전혀 타인 사가 되어 한 상태를 남겨두고 있다. 체험자 자신이 그 정보에 휘두르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거리감을 가지고 지나간다. 

일과 봉인해 버리는 경향이 태어나기 쉽다.

 

(2) 유언의 잡기 어려움

 둘째, 유언은 억누르기 어렵고 통제하기 어렵다. 권력을 가지고 단속하는 측에도 그 파악이나 대처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뚫는다.

 원래 단순히 듣거나 전한 정보를 들었거나 전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단속하기는 어렵다. 당시 단속을 지지한 법적인 틀에는 오늘의 경범죄에 해당하는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단속하는 경찰범처벌령 제2조제 16 항 하는 사람"은 30 일 미만의 구류 또는 20 엔 미만의 과료)가 있고, 다시 9월 7일에 나온 치안 유지를 위한 긴급 칙령("인심을 혼란하는 목적으로 유언 부설을 위 하는 사람」은 10 년 이하의 징역 혹은 금고 3,000 엔 이하의 벌금)이 있었다. 나중에 새로 나온 칙령이 대지진 직후에 급격하게 증식하여 과격화해 온 유언을 효과적으로 단속할 수 있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 법문에 있는 「목적을 위해」의 한마디는 의도적인 소란의 행위나 모략을 심판하는 중요한 문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언 전파의 사실에만 구루하면 당시 도하의 주민 몇 명이 을 위협하는 것 아란야」(『다이쇼 대진 화재지』, p.580-581 )라고 말해져 버리는 압도적인 양적 사실에, 날카롭게 절단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언은, 일상적으로도 반복되고 있는 오해나 오독의, 이른바 집합적인 에스컬레이션이며, 그 의미로 의도적인 모략을 심판하는 법의 틀

보지 못한 곳에서 급격히 성장한다.

 

(3) 유언의 어려움

셋째, 유언은 추적하기 어렵고, 파악하기 어렵다.

관동대지진의 유언은 도시화된 지역에서, 즉 인구가 밀집되어 인구구성의 이질성이 높은 지역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분석하듯 단시간에 광범위하게 그 유포가 관찰되었고, 견해에 따라 불안감과 차별에 연계된 민중의식에 근거한 '동시 다발'적이라고도 포착될 수 있는 전개를 보였다.

물론, 안이하게 동시 다발이라는 해석에 빠져 버리는 것은, 고찰으로서 중도반단이다. 신문과 같은 매스미디어는 기능부전에 빠져 있었지만, 피난민들을 비롯해 구원자나 경찰이나 군대 같은 사람의 이동은 그 자체가 정보 전달 매체(미디어)였다. 그러나, 도시화된 공간에서는, 곧 「이름 미상」의 피난민이나 통행인으로부터 들었다는 형태로, 전달 프로세스를 쫓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듣는 측에 있어서, 그러한 형태로의 출처 불명은 실제 도시의 일상적인 경험과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는 또한 대지진 하에서의 유언 현상의 확실한 조사 연구를 방해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사 해명이나 원인 규명보다 검거 단속에 중점을 두기 쉽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다. 경시청의 보고서는 “유언의 출소와 함께 그 발전의 경로 및 사실의 내용을 취하여 엄밀한 조사를 이뤘다”(동 p.478)와의 노력을 했다고도 쓰지만 곧 “ 유언자 에 대한 단속은 유언의 조사보다 더욱 급무”라는 판단에 기울여 간다. 상해 행위나 살인 등과 연관된 경우에는 검찰이 고발해야 할 사건이 되고, 경찰 수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관련되었는가의 프로세스가 밝혀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러한 자료가 조서 레벨의 구체적인 기술로 공개되어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적다. 또한 이들이 유언과 깊이 관련되어 있던 경우는 종종 불특정 다수가 관련된 집합적인 사건이 되어 범죄수사로 범인이 확정할 수 없는 경우가 태어나는 등 어려운 특질을 안고 있다. 「다이쇼 대진 화재 잡지」의 기재는, 심판해야 할 범죄와 연관된 레벨에서도, 거기에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주체가 조사를 충분히는 조직할 수 없었던 증언과

그리고 읽을 수 있습니다.

 

 

2 유언 蜚語의 실태-경찰에 집약된 기록을 단서로-

 하지만, 체험자에 대한 재조사 등은 이미 불가능하며, 남겨진 자료로부터 유언의 실태에 육박하는 이외의 방법은 없다. 그 때 관료 조직으로서의 경찰이 남긴 기록은 단서로서의 일정한 유효성을 가진다. 각 지역에 배치된 경찰서라는 기구가 그 연락이나 보고의 네트워크를 통해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광범위한 정보를 집약하여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의 고찰에 있어서, 경시청편 「다이쇼 대진 화재지」( 1925 년 7월)를 주로 사용하는 것은, 그러한 판단에 근거한다.

 말할 필요도없이,이 선택은이 문서의 정보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정확성을 전제로하지 않습니다. 개개의 말하자면 관측점인 경찰서의 각각이, 유언이나 학살에 대한 태도의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차이도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본 보고서의 스즈키 논문 참조)로부터이다. 이러한 개별성이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시야에 넣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구체적인 편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반면에, 보고 의무와 같은 관점에서 관료 조직으로서 일정한 형식의 공통성을 갖고 있었다는 가정은 그다지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시청편 『다이쇼 대진 화재지』는 읽어 이용하는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1) 데이터 정리

유언의 실태를 개관하기 위해서, 그 기록을 정리해, 순서 등을 재편성해, 몇개의 자료표를 작성해 보았다.

 

표 4-1 경시청편 「다이쇼 대지진 화재지」가 기재하는 유언의 사례

 

13 시경

・후지산에 대폭발, 지금도 분화중.

・도쿄만에 맹렬한 해조 습격한다.

·또한 대지진이 내습한다.

15 시경

· 사회주의자와 조선인의 방화 많음.

10 시경

・「불신선인」의 내습 있을 것.

・어젯밤의 화재는 「불신선인」의 방화 또는 폭탄의 투척.

・조선인중의 폭도가 모신사에 잠복.

・대본교도 밀모를 기획해 수천명이 상경의 도상.

14 시경

・이치가야 감옥의 해방 죄수가 군부에 잠복, 밤에 방화의 기획.

・조선인 약 200 명 가나가와에서 살상, 약탈, 방화. 도쿄 방면에 습격한다.

・조선인 약 3000 명 다마가와를 협상해 내습, 주민과 투쟁중.

・요코하마의 큰 불은 조선인의 방화. 약탈, 부녀 폭행, 굽기. 청년단이나 재향군 인단이 경찰과 협력해 방지.

・요코하마 방면에서 조선인 수십명 내지 수백명, 상경의 도상.

・요코하마 방면에서 습격한 조선인 약 2000 명, 총포도검을 휴대해, 이미 로쿠고의 철교를 건넜다.

・군대는 로쿠고 하반에 기관총을 갖추어 조선인의 상경을 차단하지 않고, 재향 군인이나 청년단이 응원.

・로쿠고 하반에서 군대에 저지된 조선인은, 돌아서 야구치 방면으로 향했다.

15 시경

・잡지가야의 ○○○○ 는 무카하라 ○○○○ 쪽으로 방화하려고 하고, 현장에서 민중에 의해 체포되었다.

16 시경

・오츠카 화약고 습격 목적의 조선인, 그대로에 그 부근에 밀집하지 않는다.

・조선인하라마치다에 내습해, 청년단과 투쟁중.

・하라마치다 내습의 조선인 200 명은, 아이하라 카타쿠라무라를 침범해, 농가를 긁어 부녀 살해.

・조선인 2-300 명 요코하마 방면에서 홈의 입에 들어가 방화, 타마가와 후지코의 통과를 넘어, 타마가와라에 진격중.

・조선인 메구로화약고를 덮친다.

・조선인 쓰루미 방면에서 부녀를 살해.

17 시경

・조선인 110 여명사지마 서관내 요쓰기바시 부근에 모여, 해만 오면 연호하면서 흉기로 폭행, 혹은 방화하는 사람 있다.

・도쓰카 방면에서 다수 민중에게 추적된 조선인 모는, 오츠카 전철 종점 부근의 우물에 독약을 투입.

18 시경

・조선인 예전보다 폭동의 계획이 있지만, 진화재의 돌발로 예정을 변경, 준비의 폭탄 및 극약물을 유용해, 제도 전멸을 기한다. 우물물을 마시고 과자를 먹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에노 정양처전의 우물물의 변색은 독약을 위해. 우에노 공원 아래 우물물에도 이상. 박물관의 연못수도 변색해 금붕어 전멸.

・우에노히로코지 마츠자카야에 폭탄 개를 던진 조선인 명을 체포했지만, 그 소지의 장의 지폐는 사회주의자보다 얻은 것이었다.

・우에노역의 소실은 조선인 명이 맥주병에 담긴 석유를 부어 방화한 결과.

・조선인 약 200 명, 시나가와 서관 내 센다이자카에 습격하고, 흰 칼날을 들고 탈취를 실시해, 자경단과 투쟁중.

・조선인 약 200 명, 나카노 서관내 잡색 방면보다 대대로 하타에 진격중.

・요요기 우에하라 방면에서 조선인 약 60 명이 폭동.

19 시경

・조선인 수백명, 가메이도 서관내에 제대로 들어가 폭행중.

・조선인 40 명, 하치오지 관내 칠생촌에서 야마토다바시에 내습, 청년단과 투쟁중에 총성 자꾸 들린다.

01 시경

・조선인 약 200 명, 혼쇼 무코지마 방면에서 다이니혼 방적 주식회사 및 스미다역을 습격.

04 시경

・조선인 수백명, 혼고 유시마 방면에서 우에노 공원에 내습하므로, 야나카 방면으로 피난하라. 짐 등은 가지고 갈 필요없이 후일 부자보다 분배한다.

10 시경

・병사 약 30 명, 조선인 폭동 진압 때문에 츠키시마에 향했다.

15 시경

・조선인, 경찰서보다 해방되었다면, 신속하게 이것을 잡아 살육하는 것.

18 시경

・조선인, 시내의 우물에 독약을 투입.

21 시경

・청년단원이 잡아 경찰서에 동행한 조선인은 즉시 석방되었다.

・우에노 공원 및 탄 남은 지역내에는, 경찰관으로 변장한 조선인이 있으므로 주의할 것.

 주: 어구 전부의 그대로의 인용이 아니라 내용을 손상시키지 않는 정도로 약기하고 있다.

 표 4-1 은, 「개설」이 언급하고 있는 「유언의 대요」를 보기 쉽게 표로 한 것이다. 원자료는 아는 한이지만 시간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경찰서의 사안 발생 시간을 명시하는 보고 양식을 전제로 해서 처음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계엄령에 관한 연구'( 1941 )와 경시청 경비부( 1962 ) 등 많은 연구가 이 기록을 바탕으로 유언의 확대를 개관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료는 개별적인 유언의 발생이 관찰된 지역의 정보를 누락시키고 있어 그 결과 도쿄 전체를 하나의 균질한 정보공간이었던 것 같은 이해를 낳을 수 있다. 현실로는, 유언은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의 지역사회라고 하는 생활의 장소의 컨텍스트와 깊게 연결되어 나타나는다. 그러므로 위치정보를 전혀 누락시킨 원래의 '개설'을 정리하는 방법은 불충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경찰서 단위에서의 활동 보고의 「유언의 단속」의 기재로 돌아가서 다시 표 4-2를 작성한 것은 그 때문이다. 표 4-2 는 원칙적으로는 표 4-1 과 겹치는 것이지만, 관할경찰서 단위의 지역의 정보를 넣어 발생인지의 시계열로 정렬했다. 시간이 명시되어 있는 것에만 한해, 일자밖에 모르는 것이나, 「저녁」이나 「미명」혹은 「오후」라고 있는 것은, 표 4-3으로서 정리 했다 단, 개별서의 기재로 시각이 누설되어도, 표 4-1 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과 대응시킬 수 있는 유언에 대해서는, 해당 시각에 배치하고 있다. 또 하나 '재해시 하살상사범 조사표'도 에스컬레이션의 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 기록도 다시 시계열의 표로 다시 만들었다. 이것이 표 4-4 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간토 대지진 화재에서의 유언의 실태를 개관해 보자.

 

 

표 4-2 「다이쇼 대진 화재」의 각 경찰서로부터의 유언의 보고(시각 기재가 있는 것만)

표 4-3 「다이쇼 대진 화재지」의 각 경찰서로부터의 유언(시각이 불명의 것)

“동일 박생, 스스로 본서에 와서 보호를 요구하거나, 혹은 서원에 따라 검속할 수 있는 사람 등을 합쳐, 지나인 11명, 선인 4명, 내지인 5명을 담아라” 저녁 간다 간다 )・소토칸다)

「선인은 도쿄시의 전멸을 기해 폭탄을 던질 뿐만 아니라, 또 독약을 사용해 살해를 기획한다」(스가모)

「선인 방화의 유언 시작해 일어난다」미명(요도바시·도츠카)

“ 월 일 오전, 사관학교의 담에 “오후 시 강진 있어” “불신선인 다음주 미끄러짐”과의 첩지를 하는 것 있어” 오전(요츠야)

“선인 등은 도쿄 전시를 초토 타라시멘으로 하고, 장에게 오늘 밤을 기하여 소잔지인 산의 손방면의 민가에 방화 센토스”오후(우시고메·와세다)

“선인 폭행의 풀어 가장 담아내” 오후(이타바시)

「불신선인 등 요코하마 방면에서 습격하고, 혹은 폭탄으로 방화해, 혹은 독약을 우물에 던져 살해를 도모해」오후(요츠야)

「선인 폭행의 유언 시작하고 관내에 전해진다」저녁(코지마치·히비야)

“동일[ 일]의 저녁, 제대 교수 모리학 박사를 선인으로 오인하고, 메이지 신궁 오모테산도 입구 부근에 있어서, 장에게 해를 가담하게 하는 것을, 서원의 구호에 의하여, 겨우 겨우를 면해 시메타루"저녁(아카사카・아오야마)

“기타마치 초메인 모가의 압입중에 방화할 수 있는 선인 있음과의 급고에 의하여, 유키를 조사하게 해, 나사양복지 천 조각의 탄 나머지를 발견할 수 있어 뚜껑을 덮고, 동인이 화재시에 외출할 수 있다 때때로, 화기를 방암이 때문에 습득해 올 수 있는 것으로 하고, 냄새를 맡는 부근의 민중은, 유키를 출화와 속단해, 갈아 또 선인의 방화 나름으로 잘못된다”저녁(아카사카·아오야마)

"선인 등은 폭탄으로 화재를 일으키고, 독약을 우물에 던져 살해를 헤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혹은 재물을 꺾고, 혹은 부녀를 간음하는 등 폭행 심한 것 있어" 저녁(아사쿠사·미나미모토마치 )

「선인습래」저녁(본소·상생)

“선인이 변재를 태워 방화·가탈·강간 등의 폭행을 거슬러 올리다” 저녁(본소·무코지마)

「경야[일 밤]시나가와 방면에서 관내에 올 수 있는 모는 선인으로 오해되어 소위 자경단원의 포위하는 곳이 되어, 위급하게 빠지면 서원지를 보호하지 않으려고, 각단원 의 격노를 사, 중상을 부패에 이르고, 마침내 무기의 사용에 따라 점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듯이 사변을 낳고 "밤(잔디·아타고)

"밤에 들어가면서 시모야 이케노바타 나나켄마치는 이미 맹화의 습관이 되어, 지금 장에 네즈 야에가키초에 있어서 위협을 휘두르고, 관내는 도저히 전소를 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유언 (혼고・코마고메)

"선인 등은 왼쪽 소매 뒷면에 붉은 천을 두르거나 혹은 붉은 선을 그릴 수 있다. 경찰관은 군인으로 변장하라. 선인 부인은 임산부를 옷을 입고 복부에 폭탄을 숨겨라" 밤

(혼고・코마고메)

「蜚語益々盛り、방화・폭탄・독약 등의 설, 혼란으로 일어난다」(잔디・아타고)

「사회주의자가 제도의 혼란에 승차해, 전철의 차고를 훼손할 계획」(스가모)

일 이후에 이르러서는, 독약의 살포, 폭탄의 투척, 살인, 탈취 등 모든 폭행의 상태를 전하거나」(왕자)

「선인 폭행의 유언 전해진다」(미나미센주)

「선인이 방화 박탈 혹은 독약을 살포하라」낮(시모야 사카모토)

월 일 저녁, 선인에 대한 유언을 시작 하여 싸우게 할 수 있다 도상에 있어 ""관내 각처는 이미 선인 등 잠입해서 강도·살인 또는 독약을 우물에 던지는 등의 폭행중이 되어" 등"저녁(아자부·도리자카)

「선인이 폭행을 하는 것의 꼬리표가 되어 여러가지 암호를 쓰는 종이 조각을 제출, 혹은 전 히로오 부근에 게이타를 쓰는 것을 보거나 해서 사실을 입증하는 것 있어」 밤( 시부야)

「관내 자위 경계중의 1청년은, 불신선인과 오인해 통행의 동포를 살해」(코지마치·코지마치)

일에 및 게이덴 전사 사실 점차 闡明」(코지마치·히비야)

「선인이 이즈미에 독물을 살포하는 의심 있음」(간다·니시키초)

일에 이르러서는, 유언 점점 심하게, 더욱 「강진 재습하는 것」이라고의 설을 하는 것이 있는 것에 이른다」(아카사카·오모테마치)

「변소의 청소인 남편이 비망을 위해서, 각 노차내 등에 그릴 수 있는 기호도, 그 형상에 따라 폭탄의 장치, 독약의 살포, 방화, 살인 등에 관한 부징 가능한 배와의 선전」( 요츠야)

“오늘 [ 일인가], 카스미가오카의 모는, 집의 경계중, 통행자에게 총창을 부딪히는 사실 있다”(요츠야)

일에 이르러서는, 자경단의 행동 점차 과격해져, 흉흉기를 휴대로 소재를 횡행하기에 이른다」(우시고메·가구라자카)

일 오전 10 시 반경, 30 세 전후의 부인은 우에노공원 기요미즈도에 들어가 휴게중, 양장 비만의 남자보다 축복받은 팥국면을 먹는데, 몹시 토혈해 고민하라"(시모야・우에노)

「선인등 독약을 우물에 던지거나」「나카시부야 모의 우물에 독약을 던지거나」(시부야)

「선인의 일군이 키치죠지 순사 주재소를 습격한다」 「하치오지 방면에서 300 명의 선인 단체장에 관내에 습격할 수 없다」(후추다 무분서)

「선인 등 사이타마 방면에서 하코네가사무라에 습격하라」 「도쿄・요코하마・사이타마 방면에선 선인의 폭행 심해를 극한다」(오우메)

「무수용 이즈미를 마시는 가네코 에이지로 등 5명은 유키가 위해 토사할 수 있을 뿐, 대학 병원에 보내 구호하는 것과 동시에 이즈미를 검사했지만 이상을 보지 않고」(간다·니시키초)

“이치츠바시 부근을 배회하는 선인 신형 종인 사람의 거동 수상한 것을 인정하고 다루기 위해 “결의 서문”이라고 기재하게 하는 물건을 휴대할 수 있게 하여, 불교취지를 경시청에 송치하라”(간다·니시키초)

「선인 등 신주쿠 방면 순사파 출소를 습격해 관복을 탈탈 착용해 폭행을 하게 한다」(우시고메·가구라자카)

“오이마치 방면에선 선인 이미 관내에 넣어서 경종을 난타하는 것 있어”(시나가와)

“시나가와 다리 남쪽에선 선인을 살해하라는 보고에 접하고, 직접 서원을 급행하게 하기 위해, 실은 어부초의 1청년의 선인과 오해되어 빈사의 중상을 부정하게 되어”(시나가와 )

“선인을 사령하는 자는 사회주의자가 되도록 하면 이환을 제외하기 위해서는 노를 징징하는데 젊지 않아”

「선인 산겐찻집에 방화 대통령과의 보고에 접하고, 직접 노을 조사하면 범인은 선인에게 하지 않고 집 내가 주가의 방에 방화할 수 있게 된다」(세타가야)

「선인의 부녀 등 독약 등을 휴대하고 각 곳의 우물에 之을 살포」(센주)

“히카와 신사 방면에는, 선인 등 폭행을 되살리는 사실 있어, 상황이나, 산겐자야 부근에 있어서는, 선인과의 투쟁 이미 개시될 수 있다”(아카사카·아오야마)

「아오야마 묘지에는 야간 조밀하게, 선인 등의 잠복해 음모를 기획하는 것이 있다」(아카사카·아오야마)

「모백미점 고용인 등이 불량 청년과 기맥을 통해, 다양한 유언을 발하는 것을 발견해, 之れ을 검거할 수 있다」(나카노)

「선인수 10명 타치카와무라를 침범해, 자경단과 투쟁을 열어」 「나가누마·타마의 양촌에 있어도 폭행을 거슬리는 소리」(후추)

「수용의 선인은 의식게이타를 급여하고 두껍게 보호를 더해, 월 일에 이르고 나고시노 수용소에 인도하거나」(간다·니시칸다)

「선인 등 시모히로오 하시모토 자작 저택에 방화 세리」(시부야)

“나카시부야 모의 시모가 능욕당하거나”(시부야)

11 

“시모시부야 평야 모의 고인 타카하시 모선인을 위해 죽인다”(시부야)

 

표 4-4 2일 이후 5일까지의 「재해시 하살 상사범」 일람

소할서

일                     시간

위치

죄명                         사실 개요

검거 인원

피해 인원

처리 루말

원순번 시간순

왕자

월 2 일 09 시

니시 아라이 무라모토 기하 데가와 긴지로 방외 토도 오이 카미

살인 강도 도둑 도둑

금품 박탈급 살해 무전음식 및 절도를 한다

7

19

10 월 5 일 송치

034

001

센주

월 2 일 12 시

미나미아다치군 하나바타무라자 이치바시 다리

살인 미수

일본도 급격한 봉으로 전치 2 개월이 걸리는 중상을

2

1

월 7 일 송치

043

002

테라시마

월 2 일 17 시

고고마치

부상

통행중인 피해자를 누구하고 일본도로 상해

1

1

10 월 13일 영장 집행

054

003

오사키

월 2 일 17 시경

오사키쵸 키리타니성 제약회사 부근

살인 미수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어서 봉봉 현능 도구 등으로 타격 상처

5

4

10 월 12일 영장 집행

020

004

오사키

월 2 일 17 시경

후시타 히라츠카 무라시타 뱀 쿠보로쿠쿠이치 앞

부상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고 봉봉 등으로 타격 상해

5

1

10 월 16 일 영장 집행

022

005

오모리

월 2 일 17 시경

후시타 이케가미무라 길거리

부상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음으로 봉사로 상해

5

3

보내다

024

006

세타가야

월 2 일 17 시경

세타가야마치 타이코도 전철 궤도 내

살인

사냥총으로 사살

1

1

10 월 19 일 영장 집행

025

007

시나가와

월 2 일 17 시 30 분

시나가와쵸 미나미시나가와 산선로

상해치사

선인과 잘못 믿고 상해 사망

21

1

10 월 9 일 영장 집행

015

008

오사키

월 2 일 17 시 30 분

후시타 히라츠카 무라시타 사쿠보 산삼 육지

부상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고 목검 봉 등으로 타격 상해

6

2

10 월 16 일 영장 집행

019

009

시나가와

월 2 일 18 시

피해자 주가 뒷통

살인 미수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고, 봉봉 등으로 난타 상해

4

1

10 월 14일 불기소

017

010

오사키

월 2 일 18 시

후시타 히라츠카무라 288선 노상

살인 미수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어서 뱃머리 등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6

1

10 월 16 일 영장 집행

018

011

오사키

월 2 일 18 시경

후시타 히라츠카무라 토고시 842선로

부상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고 총검 등으로 상해를 입습니다.

2

1

10 월 22일 영장 집행

021

012

오모리

월 2 일 18 시경

후시타 이케가미무라 길거리

부상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음으로 봉사로 상해

1

8

보내다

023

013

후추

월 2 일 19 시

치토세무라 카야마

살인병상해

도쿠구치, 일본도, 대나무 창, 단봉을 타격하여 한 명을 살해한다

15

17

10 월 일부터 11 월 25 일까지 영장 집행

075

014

테라시마

월 2 일 20 시

아라카와 방수로 요기바시

살인

철봉으로 죽여라.

1

1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57

015

카메이도

월 2 일 20 시

후시타 아즈마초 카메이도 철도 가드시

부상

오크 막대기로 엉덩이를 손상시킵니다.

1

1

10 월 5 일 불기소

065

016

카메이도

월 2 일 20 시

고고마치 고무라 이이치, 157선

살인

대나무 창으로 구타 죽음에 이르기

4

2

10 월 28 일 영장 집행

073

017

시나가와

월 2 일 20 시 30 분

오이마치 이치, 285 선로

살인

불신한 사람과 잘못 믿고 일본도로 살해

1

1

10 월 13일 영장 집행

016

018

수상

월 2 일 21 시

후시타 코마쓰카와초 시모히라이 히라이 다리 카미카와스지

살인

피해자가 분뇨선에 따라 피난할 수 있다는 것을 선인과 오신해 범립봉 등을 박살

5

1

11 월 5 일 송치

013

019

카메이도

월 2 일 22 시

고고 마치 카사이 강 617

살인

부적절한 사람과 잘못 믿고 철봉에서 타격, 즉사

1

1

10 월 7 일 영장 집행

067

020

카메이도

월 2 일 22 시

고고마치 카메이도 276선

살인

살해하다

4

1

10 월 5 일 영장 집행

069

021

카메이도

월 2 일 23 시

후시타 카메이도3, 215선

살인 미수

수중에 빠진 피해자에게 사냥총을 발사하는 것도 생명

1

1

10 월 7 일 불기소

072

022

나카노

월 2 일 23 시경

후시타 다카이도 무라시타 타카이도 도로상

부상

통행 중 상해

11

1

10 월 8 일 송치

026

023

카메이도

월 2 일 24 시

고 쵸 가사이 강 885 앞

살인

선인과 오인하고 타격에 이르다

4

1

10 월 7 일 영장 집행

068

024

시나가와

월 2 일 

후시타 오이마치 1736로상

살인

선인과 잘못 믿고 일본도로 살해

1

1

월 15 일 송치

014

025

테라시마

월 3 일 00 시

미나미카츠시카군 오하타 아라카와 방수로 하천 제방

살인

참살격살 등

7

4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46

026

센주

월 3 일 01 시 20 분

센쥬 쵸 오하시 북쪽 막대기

부상

전진과 오인하여 손 주먹으로 머리를 타격하고 전치 십일을 필요로하는 상해를 추가

1

1

10 월 6 일 불기소

045

027

테라시마

월 3 일 03 시

고고마치 기노시타 방수로 측지

살인

숨어있는 일본 검에서 죽인다.

1

1

10 월 28 일 영장 집행

058

028

테라시마

월 3 일 03 시

아라카와 정류장 앞

살인

세이버에서 죽인다.

1

1

10 월 28 일 영장 집행

059

029

테라시마

월 3 일 03 시

고고마치 기노시타 방수로 측지

살인

일본도로 참살하다

1

1

10 월 28 일 영장 집행

060

030

테라시마

월 3 일 미명

고고마치 기노시타 방수로 제방

살인

목을 잡고 도망 오는 것을 일본도로 참살한다

1

1

10 월 17 일 영장 집행

055

031

카메이도

월 3 일 05 시

고고마치 카메이도 239선

상해 도끼로 머리에 절창            

1

1

10 월 5 일 불기소

066

032

 

 

테라시마

월 3 일 06 시

고고 마치 카미 오하타 연안

살인 족부를 권총으로 저격하는 것을 다수의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1

1

10 월 29 일 영장 집행

061

033

 

테라시마

월 3 일 07-12 시

후시타 고교마치 키시타 히데후나도리

살인 군중에게 타도당하고 있는 것을 일본도로 참살한다            

1

2

10 월 19 일 영장 집행

050

034

 

카메이도

월 3 일 07 시

고고마치 고무라 이이치, 157선

살인 각재 대나무 창 기와를 타고 타격 죽음에 이르다            

6

3

10 월 29 일 영장 집행

074

035

 

테라시마

월 3 일 08 시

아라카와 방수로 제방

살인              박살

1

1

불기소

053

036

 

테라시마

월 3 일 09 시

테라지마초 타마노이

살인              참살 또는 죽임

4

6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52

037

 

테라시마

월 3 일 10 시

시라바시 다리에

살인 때리기 다른 군중이 참가하고 치고 베고 후 강에 투사 죽음에 이르다            

1

1

불기소

048

038

 

테라시마

월 3 일 11 시경

테라지마초 타마노이

살인병상해

1

2

10 월 19 일 영장 집행

051

039

 

시부야

월 3 일 12 시

후시타 시부야 1782선 도로

살인 미수 살의로 상해를 가한다   

2

2

11 월 9 일 송치

027

040

 

테라시마

월 3 일 12 시

테라지마초 타마노이

살인 군중에게 난타되어 타도되어 벌레의 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인후급복을 목목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다            

1

2

10 월 19 일 영장 집행

049

041

 

테라시마

월 3 일 12 시

후시데라지마초 다마노이

살인 삼나무 통나무에서 박살            

1

1

10 월 29 일 영장 집행

062

042

 

테라시마

월 3 일 13 시

후시데라지마초 다마노이

살인 창으로 자살할 수 있지만 피고유를 부인한다.            

1

1

불기소

047

043

 

고지마치

월 3 일 14 시 30 분

고지마치구 나가타마치 니노이치로쿠선의 길

살인 불신인과 잘못 믿고 일본도로 살해        

1

2

월 5 일 영장 집행

002

044

 

카메이도

월 3 일 15 시

카메이도초 유원지

살인급 살인 돌·동봉, 일본도로 살미수상한다    

6

3

10 월 14일 영장 집행

064

045

 

카메이도

월 3 일 15 시

가메이도쵸 사카하시 다케 부근

살인 병상해 순찰이 동행중인 3명을 살해하고 순찰에 상해를

1

4

보내다

071

046

 

센주

월 3 일 17 시

센쥬쵸 니노하치하치치선 도로

살인 미수

피해자가 선인을 경찰서에 동행 중유를 살해하지 않게 도끼로 전치 2개월 이상을 필요로 하는 중상을 가한다

3

2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36

047

 

테라시마

월 3 일 18 시

후시타 스미다초 오쿠라 우유점측

부상

일본도로 상해

1

1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56

048

 

일본 제방

월 3 일 19 시

아사쿠사구 이마도초 산고 앞

부상

일본도급동봉으로 중상을 가한다

1

1

12 월 14일 송부

012

049

 

카메이도

월 3 일 19 시

고고마치 오하타 고이치  앞

살인

동봉에서 타격 살해

1

1

10 월 5 일 영장 집행

070

050

 

미타

월 3 일 21 시

시바구 히노데마치 나나사

살인

선인을 숨기거나 분노한 일본도로 살해한다

1

1

월 12일 영장 집행

003

051

 

요츠야

월 3 일 21 시

요 츠야 구 시오 쵸 삼칠 앞

부상

선인과 잘못 믿고 일본도로 상해

1

1

10 월 23 일 영장 집행

008

052

 

상가

월 3 일 21 시

아사쿠사구 신타니쵸 이치사라쿠텐지 비행관 앞

살인

선인과 잘못 믿고 살해

2

1

10 월 27 일 영장 집행

011

053

 

미타

월 3 일 21 시경

도쿄시 하항과 시바우라 출장소 쿠라

살인

잠복하고 있는 것을 일본도로 살해한다

2

1

10 월 20 일 송치

005

054

 

스가모

월 3 일 21 시경

스가모초 스가모바시

훼손

지휘도기검 대나무 창동봉 등으로 상해를 가해 자동차를 파괴한다

21

2

10 월 14일 영장 집행

028

055

 

센주

월 3 일 21 시 20 분

미나미 아다치 군 니시 아라이 무라 요노에 52 선 도로

살인 동봉 사냥총으로 살해          

2

1

월 7 일 영장 집행

041

056

 

미타

월 3 일 22 시

도쿄시 하항과 시바우라 출장소 창고 내

살인 및 옆 피해자가 취침해 있는 동령 강도 창고 내에 선인 한 명 잠복하고 있는 것을 해서, 선인을 은닉하거나라고 칭해, 미나하마바시의 난간에 묶고, 단도동봉 등을 해서 살해해 및 회중보다 금 삼십오엔을 탈취              

6

1

10 월 20 일 송치

006

057

 

센주

월 3 일 22 시

센쥬쵸 니쵸메 도로에서

살인 미수 일본도급 극봉으로   

2 개월이 걸리는 중상

4

1

월 7 일 영장 집행

042

058

 

센주

월 3 일 22 시경

후시미나미 아야세무라 야나기하라 161선 도로

살인 일본도동봉으로 살해            

11

7

월 12 일부터 18 일까지 영장집

037

059

 

카메이도

월 3 일 24 시

아즈마초 청지 철도 선로 부근

살인 봉급 스틱으로 박살        

6

2

10 월 31 일 영장 집행

063

060

토리이자카

월 4 일 01 시

시바구 미타 코야마초 고야마바시 가와나카

살인

피해자가 발작적으로 정신에 이상을 와 하중에 투신 자살을 도모하는 것도 죽지 못하고 하류에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선인과 오신해 하중에 뛰어들어 일본도를 통해 살해한다

1

1

10 월 25 일 영장 집행

007

061

스가모

월 4 일 01 시경

피해자 집

살인

부적절한 사람이 잠복하고 친근한 사람이 시끄 럽거나 피해자 불신인과 잘못보고

1

1

월 7 일 영장 집행

029

062

센주

월 4 일 02 시

미나미아다치군 강북촌 가하마구조 

살인

선인과 오인하고 봉으로 살해

7

1

10 월 8 일 영장 집행

044

063

센주

월 4 일 08 시경

후시미나미 아야세무라 야나기하라 이치시나다

살인

일본도 극봉으로 살해

2

1

10 월 12일 영장 집행

038

064

센주

월 4 일 09 시 30 분

미나미아다치군 아야세

살인

일본도동봉으로 살해

2

1

039

065

왕자

월 4 일 11 시

미나미 센주 아도리 신마치 순사 파출소

살인

순찰을 보호하는 피해자를 일본도로 살해한다.

18

1

10 월 21 일 송치

035

066

고지마치

월 4 일 12 시

고지마치구 나카로쿠반쵸 시로쿠오본교 본부 부근로 위

부상 및 폭행

상해와 폭행을 가하다

3

1

10 월 16 일 송치

001

067

미타

월 4 일 12 시

시바구 히노데마치 나나사

살인

선인을 숨기거나 분노한 일본도로 살해한다

1

4

월 12일 영장 집행

004

068

센주

월 4 일 13 시 30 분

미나미아다치군 하나바타무라 이치근교

살인

일본도 극봉으로 살해

10

5

10 월 10 일,

11 일 영장 집행

040

069

스가모

월 4 일 15 시경

스가모 중학교 앞 부근

부상

피해자를 선인이라 칭하여 일본도에서 상지에 베어

2

1

10 월 10 일 영장 집행

030

070

고마고메

월 4 일 21 시

혼고구 고마고메 에치마치 도로상

살인 미수

선인과 잘못 믿고 살해하지 않고 중상을 입으십시오.

13

4

월 17 일 영장 집행

009

071

사카모토

월 4 일 23 시

시모야구 산와초 115선로상

살인

선인과 잘못 믿고 일본도 및 봉봉 등으로 살해한다.

6

1

11 월 4 일 송치

010

072

스가모

월 4 일 24 시경

니시스가모마치 아코노하라 3426선

부상

피해자를 위군인이거나 사회주의자가 되 며 순사유사를 위군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에 鳶口其他를 통해 군인급 순사에 중경상을 입는다

4

2

헌병대에 이송 영장 집행

031

073

왕자

월 5 일 08-12 시

피해자 집

도둑질 공갈 동봉을 협박하고 미나미 타 가격 166 엔의 물건을

1

3

10 월 24일 송치

033

074

스가모

월 5 일 19 시경

니시스가모마치 이케부쿠로 일선 도로

상해 취기에 승부 부근에 경계중인 피해자를 때리는 부상            

2

2

월 21 일 송치

032

075

출처:원자료는 『다이쇼 대진 화재지』(경시청 , 1925 )의 「재해시 하살상사범 조사표」p.591-602 로, 발생의 시간순으로 정렬했다.

 

 

(2) 유언의 발생과 종묘

 유언의 발생으로부터 종묘에 관해서,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가, 1일 오후 1시경에 이미 유언이 일어났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표 4-1 과 함께, 개설의 「유언초어의 처음으로 관내에 유포되는 것은, 9월 1일 오후 1시경이 된 것처럼」(p.445)라고의 기술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합시다. 다만 개별경찰서 보고에서 보면 이 오후 1시에 대응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고, 어디에서 최초 발생이 인지되었는지 모른다. 개별서의 보고에서는, 니혼바시구의 쿠마츠 경찰서의 14 시경에 관내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보고도 이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는 약간의 부정합이 존재하고 있지만, 어쨌든 오전 11시 58분의 첫 직격 후 1시간에서 2시간 부족한 사이에 유언이 발생 하고 있다 .

 그러나 하루의 단계는 상황으로 그다지 절박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하루 16시 의 사례에 관해서 시부야서는 "서원을 하고 정찰하게 하고 전혀 경악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 민중에게 사서 점차 경의를 저렴하게 할 수 있다"(p . 1284 )라고 써, 18 시의 아타고서의 경우도, 경시청의 생명도 있어 “제·사복의 경계 대원을 들고, 시바엔 다리·시바 공원 그 외의 요소를 경계”했지만, “드디어 일 없음 그러므로 동 칠시유키를 해제하라”( p.1000 )와 맺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루의 황혼 전 단계에서 경찰은 유언의 발생을 인지하면서 경비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 위험으로는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각 경찰서가 몇시 그 관내에서 유언의 발생을 인지했는지를 일람표로 한 것이 표 4-5 이다 여기에서는 하루 중 8개의 경찰서관 내에서 유언의 발생이 인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일 오전 중에 7개의 경찰서관 내가 참가해 오후가 되면 28 개의 경찰서관 내로 퍼졌다. 그러나, 유언의 발생이나 단속에 대해 개별서의 기술로는 언급하지 않은 12개의 경찰서관 내에서도, 표 4-4와 함께 보면, 아사쿠사구의 일본 제방 경찰서나 도쿄 수상 경찰서 와 같이 살상 사범이 검거되어 그 「사실 개요」에서는 유언의 존재가 상정되는 것도 있다. 또, 야나카 경찰서로부터의 보고도 없지만, 「관동 대지진의 치안 회고」에는, 치안 유지령 위반자 1명의 유언의 야나카 경찰 서장에 의한 보고가 실려 있어, 12의 경찰 서관내 에서는 유언 가 없었다고 해도 인지되지 않았다고 해도 대개 말하기 어려운 자료간의 모순이 있다.

 

표 4-5 각 경찰서 내에서의 유언 발생의 인지

 

14 

니혼바시・쿠마츠 경찰서

1

 

 

16 

시부야 경찰서, 왕자 경찰서

2

 

18 

18 시 40 분경

20 

시바·아타고 경찰서

요도바시 경찰서 도쓰카 분서 고마쓰카와 경찰서

1 1

1

6

기타

간다・소칸다 경찰서, 스가모 경찰서

2

 

05 시 10 시 12 시 오전

고이시카와·도미사카 경찰서

우시고메·가구라자카 경찰서, 우시고메·와세다 경찰서, 요도바시 경찰서, 나카노 경찰서 코이시카와·오츠카 경찰서, 본소·상생 경찰서 요츠야 경찰서

1

3

2

4

1

4

2 3 5

1

5

7

오후

14 

14 시 25 분

16 시 16 시 30 분경

저녁

17 

18 

19 

20 

이타바시 경찰서

혼고·혼 후지 경찰서, 혼고·코마고메 경찰서, 시나가와 경찰서 오사키 분서, 후추 경찰서 시나가와 경찰서

아카사카・아오야마 경찰서, 아사쿠사・상가 경찰서, 오모리 경찰서, 하치오지 경찰서 시바・타카나와 경찰서, 세타가야 경찰서

아사쿠사・미나미모토마치 경찰서, 본고장・무카이지마 경찰서, 고지마치・히비야 경찰서

간다·니시칸다 경찰서, 아카사카·오모테마치 경찰서, 가메이도 경찰서, 후추 경찰서다 무분서, 센쥬 경 후카가와·니시히라노 경찰서, 미나미센주 경찰서 닛포리 분서

28

기타

시모야·우에노 경찰서, 미나미센주 경찰서

 

10 시 30 분경 저녁 18 시

기타

쿄바시・츠키시마 경찰서

아자부·도리자카 경찰서 니혼바시·굴류 경찰서 코지마치·코지마치 경찰서, 시모야·사카모토 경찰서

1 1 1

2

5

 

유언의 기재 없음

니혼바시・신바바시 경찰서, 쿄바시・츠키지 경찰서, 쿄바시・키타노야 경찰서, 시모야・다니나카 경찰서, 아사쿠사・일본 제방 경찰서, 아사쿠사・나나켄마치 경찰서, 본고장・태평 경찰서, 책 곳 · 원정 경찰서, 후카가와 · 오바시 경찰서, 후카가와 · 스자키 경찰서, 도쿄 수상 경찰서, 하치오지 경찰서 마치다 분서

12

 

합계

 

 

62

 

 

 

유언의 종묘에 대해 보고서는 "젓는 평화로 돌아가는 것을 얻거나", "며칠로 진무의 공을 연주하거나", "인심 점차 안정을 얻거나", "그의 목소리를 숨긴다 에 이르러”, “경적을 끊거나”, “날 없이 진정해” 등등의 말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경찰이라는 조직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시기에 대해 명기하지 않았지만, 5일 전후부터 잠시 동안 평온하게 돌아왔다고 쓰는 것이 눈에 띈다(오모리, 간다 니시키초, 나카노, 닛포리, 하치오지, 아타고, 미타, 츠키시마, 아카사카 아오야마, 후추, 스가모 등). 한편, 「9월 중순」(무코지마, 토츠카, 시부야) 「10월」(세타가야)

「10월 초순」(코지마치) 등의 형태로 쓰고 있는 케이스도 있어, 1개월 이상의 사이, 사라져서는 태어났을 가능성은 높다.

 표 4-1 은 4일의 단계로 끝나고 있으며, 3일이나 4일의 사례로 꼽히고 있는 것은 소수로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5일 이후에는 유언이 종묘한 것일까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표 4-2 표 4-3 의 개별서의 기술로부터만으로도, 3일 4일에 들어가고 나서 상당한 유언이 기록되어 있고, 또, 5일 이후도 11일당 까지는 경찰서 라고 해도 유언을 인지해, 그것에 대응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관동대지진의 치안 회고』에는 9월 15일 에 이르러 유언을 위해 치안 유지령 위반으로 야나카서에 검거된 자의 보고 요지가 실려 있으며, 또한 지방 신문의 기사 등 를 보아도 9월 5일 단계에서 유언의 종묘가 논의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경시청의 개설 부분이, 4일에 기재를 마치고 있는 것은, 「3일 이래, 자경단의 단속을 격려해」(와세다, 츠키시마, 오츠카)라고 하는 기재에 대응하는 경시청의 개별서 수신 명령 이 2일에 나온 것, 또 내각고사가 5일에, 한층 더 유언 단속의 법령이 7일에 나왔다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현실에는 10 월경에 드디어 "잠복기"(에드가

르 모란 '오를레앙의 소문')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3) 유언은 어떻게 흘러 왔는가

 유언증식의 피크는 2일 오후부터 밤을 넘어 3일 새벽에 걸쳐 있었다. 표 4-1 표 4-2 모두, 그 사이에 장소나 인원수, 습격 방법 등의 항목을 바꾼 동공 이곡의 유언이 날아오르고, 꽤 넓은 범위에서 혼란이 퍼져 있던 여러분이 엿볼 수 있다. 이 점은, 지진 재해 후의 잡지 등등에 실린, 다양한 체험담의 기술 등과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유언 전파의 경로로서 어떤 견해가 나오고 있는가.

 경시청의 '다이쇼 대진 화재지'는 그다지 전파 경로를 명확하게 논하지 않았다. 조금 밟고 있는 것은, 「계엄 사령부 상세보 제3권」(『관동 대지진 정부 육해군 관계 사료 II 권 육군 관계 사료』, 1997 소수)의 「부록(변재 당초에 발생한 유언 蜚語)에 취 ))이다.

여기에서 유언을

A.         고토 방면에 속하는 것

로.         동경 서부에 속하는 것 하 일을 얻기 위해, 도쿄 서부의 것은 요코하마 방면에서 유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하는 것을 얻.이미해 시내 일반에 속하는 것은 양자의 침입과, 일부 경찰관의 독단적인 호의적 선전과 에 원인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p.159 )라고 논하고 있다. 요시카와 미츠요시는 「관동 대지진의 치안 회고」에서 이러한 선행하는 고찰을 근거로 도쿄 시내에서의 유언 전파의 경로를

(1)   고토 방면에 속하는 것

(2)   고이시카와, 우시고메 방면에 속하는 것

(3)   시내 서부에 속하는 것

(4)   시내 일반에 속하는 것의 4개의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 다음, “지진 재해 발발의 당야 요코하마 시내의 일각으로부터 발생한 유언이, 주류가 되어 전파해, 바쁘게 도쿄 시내 에 파급해 동 시내 각지에 있어서의 유언의 지류를 통합해, 분노와 같은 분류가 되어 지바, 사이타마, 군마, 도치기, 이바라키 각 현 아래로 확대에 이르렀던 것이다. , 요코하마 시내는 유언 발생의 근원지가 되고 우수할 수 있다”( p.25 )라고 정리하고 있다. 다시 「코이시카와, 우시고메 방면에 속하는 것」을 세운 이유는, 요코하마에서의 유언의 씨가 된 입헌 노동당(야마구치 정헌)의 본부가 여기에 있어, 거기에 사자가 가져온 정보를 중시했기 때문에 있다. 그 점에서도 요코하마로부터의 전파를 중시한 해석이다.

 저자는 전파론적인 파악만으로 이 유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북동' 즉 '강동 방면'과 '남서' 즉 '도쿄 서부 방면'에서 유언 하지만 확대하고 있던 사실은, 자료의 재정리로부터도 관찰할 수 있다.

표 4-4 에 열거 된 사례는 살상 사건으로까지 격화했다는 점에서 표 4-1 과 표 4-2 표 4-3 이 비추고있는 유언 공간 중에서도 고통스러운 결과에 연결되어 버린 예이다. 반면에이 기록은 다른 정보보다 위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파와 증식에 대한 다소 밟은 해석을 가능하게합니다. 거기에서 추측하면, 유언의 증식과 그 에스컬레이션(격화)이, 도쿄시의 중심부에 퍼지는 재해 소실지로부터 보아, 도 4-1에 나타내는 바와 같이 「북동」과 「남서」의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이 떠오른다. 북동이란, 센쥬에서 테라시마쵸, 고교쵸 근처를 가리킨다. 표 4-4의 처음에 열거된 9월 2일 오전 9시의 '살인강도 절도 사기'는 왕자경찰서의 보고 사건과 대응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쿠 쵸 방면에있는 토공 친분 20 명과 같은 이틀 이후 미나미 아다치 군 에키 쿠무라 니시 아라이 무라의 농가 14 호에서 식료품을 강탈 할 수 있기 시작하거나 탈출 위하여, 혹은 물자배급소를 습격하거나, 혹은 살인을 하는 등, 순연한 폭도가 됨으로써, 다음 3일 직후에 之를 검거」(p.1300)라고 한다 이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범죄 행동의 풍문과 단편적인 지식이, 도쿄의 북동부에서 2일 저녁부터 밤에 걸쳐, 많이 일어난 「불신선 습래」의 유언의 밑받침의 하나로서 작용 한 가능성은 생각된다. 남서란, 표 4-4 에서 보면, 9월 2일 17 시경부터의 오사키마치나 히라츠카무라에서의 폭행 사건에 나타나는 것으로, 이케가미무라나 미나미시나가와나 오이마치의 「노상」에서 의 상해나 살인사건도 같은 방향으로 태어난 유언공간에 속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북동부와는 달리 피해가 컸던 요코하마로부터의 피난민 등의 현실적인 매체가 생각된다. 표 4-2 표 4-3을 함께 보면, 이미 14 시부터 14 시 30 분경에는, 시나가와 서관 내에서 요코하마의 「방화」 나 도쿄로 향하는 「습격」의 다양한 버젼이 말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가 풍기는 가운데 날이 살아가서 밤이 되어 주변 지역에서의 불안이 더욱 높아졌다는 해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4-1 북동과 남서의 에스컬레이션

 

(4) 유언의 시간

 표 4-4 의 살상 사건에 이르는 케이스의 기록을 조금 가공하여, 낮(5시부터 17시 전까지)과 야간(17시부터 5시 전까지)으로 나누어 수 를 세어 본 표 4-6 이다. 그러면 역시 야간에 있어서의 살상 사건의 발생이, 일중의 시간의 거의 2배가 되고 있다.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밤은 불안이 증폭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표 4-6 살상사범의 범행 시각

주 : 건수 총계가 표 4-4 와 다른 이유는 범행 시간의 기재가 없는 건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먼저 표 4-4 의 9월 2일 저녁 가까이에 오사키 서관 내에서 몇 가지 사건이 인지되어 장소로서 히라츠카무라의 거리에서의 상해·살인 미수 사건이 4건 정도 들여져 있는 것에 만졌다. 이미 소개한 다나카 히사라는 이 히라츠카무라의 거주자이며, 「다케창 사와기」 「주부노유」(p.218-219)는, 그 근처를 채웠던 분위기의 증언으로서 읽을 수 있다 조금 소개해 두자. 「그것은 9월 2일의 닛포전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요정 그 날은 형이 부재하고, 나는 마을에 나와, 쌀 된장 간장 통조림 그 외 당분 곤란하지 않을 만큼의 병량을 매입해 와, 인연측에 그것을 내려, 안심 한숨 쉬었을 때이다 화원에 경종이 난타당했다.” 다들 당황하고, 노지에 달려 와서, 입에 폭도가 거기까지 와 있는, 모두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도 노지의 모퉁이에 혈도 하나 제시한 폭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울러 아직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하면, 이번에는 파치파치 총성이 들렸다. 한 여지가 없어졌다.”

 거기서 다나카는, 여자들에게 지금 샀던지 얼마 안된 식량을 갖게 해, 시나가와 방면에 놓쳐 놓고, 자신은 우선 머물고 있다고, 남자는 도망치지 말라고 분들에게 연호하고 있다. 내심 도망치고 싶었지만,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도 키마리도 나쁘다는 남자의 허영심도 섞여, 다나카는 의를 결코 밟아 머물며, 부근의 초원에 집합했다.

 "앞으로 엉덩이를 엎드렸다 . 일원이기 때문에 심하다고 의지 적다.병합 지휘자만은 본직으로 부근에 사는 휴직 육군 소령의 늙은 사마귀씨이지만 옛날 찍은 기안 무늬로 매 양박하지 않는 태도로, 사람들에게 사혼을 쏟아 놓은 곳은 한 치수 감복했다.병합 총세 삼십 기족 없는.부근의 호수에 비해 이런 굳은 없으면 잘 자주(잘) 조사해 보면 독신의 사람인가, 아니면 소위 조화자가 많았다.어쨌든 우리의 일대는 이 부락의 전선에 해당하기 때문에 솔직히 몸 속이 희미했다. 결국 척후의 다양한 보고에 긴장하거나 안심하거나 경찰자의 자동차나 군대의 출동에 건강을 내어 입수가 늘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황혼의 유언 소문으로 시작된 이틀 밤의 소름 끼치는 심상 풍경이다. "날은 살았다. 전등이없는 어둠이다. 단지 동쪽의 하늘 만이 지금은 불길하게 타고 있기 때문에, 그 붉은 빛이 사람들의 뺨과 대나무 창을 비추고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공기 는 음참을 늘려 간다”라는 소감이다. 단지 어두운 밤이 아니라 도쿄가 아직도 불타고 그 불꽃의 밝기가 멀리 보이던 불안한 밤이었던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같은 밤에 대해 더 도심에 가깝지만 교외의 센다가야에 살던 와쓰지 테츠로는 다음과 같이 쓴다. “동방의 화재는 점차 진정하기 시작했고, 12시경에는 하늘의 붉음이 가볍게 굳어 갔다. 아직도 서 있는 것 같다. 전혀 안심한 것은, 불의 색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된 아카타카타의 4시경이다.」( p.201-202 )

 신내에 시나가와로 도망가라고 지시한 다나카가, 맞이하러 간 것은 일시가 명기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날의 밤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7일의 치안 유지령이 나오고 나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밤 나는 히타치를 맞이해 시나가와에 갔지만, 도중에 도착하는 곳 다케창당에 누구 무엇되어 목숨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시나가와는 또 히라츠카무라 이상의 소란”이었다고 쓰고 있다 . 나중에 접하듯이, 이 어두운 가운데에서의 「누구 무엇」(불러내어 이름이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실천이, 또 불러내는 쪽, 불러오는 쪽을 불문하고, 불안을 폭주시켜 오해를 증폭시켜 갔다 이다.

 

3 증식과 혼진의 메카니즘

 유언이 증식하여 호진한 메카니즘에 대해, 표에 정리한 것을 포함해, 이상의 사례에 준거해 다시 검토해 보고 싶다.

 이 유언 현상의 전체적인 특징은, 특정 주체가 발한 하나의 정보가, 특정할 수 있는 전달 경로를 통해 파와 같이 전파해 가기보다는, 복수 혹은 다수의 주체가 얽혀, 정보가 난반사하면서 확대해 일부에서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과격화했다고 파악하는 것이 정확하다.

 자료로 한 경시청의 보고서 「다이쇼 대진 화재지」는, 20세기 초에 일본 에 수입된 군중론의 패러다임을 밑받침으로, 유언을 비합리한 이상 사태에 있어서, 이른바 「심리적 군중」의 「충동 성」, 「피유성」, 「경신성」등의 관점에서 파악했지만, 오늘의 유언 연구로부터 생각하면 불충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후의 연구의 전개는, 정보의 특질로서의 「모호함」이 완수하는 역할을 파헤쳐, 「단순화」, 「평균화」, 「강조」등의 연쇄적 변형에 있어서의 룰을 찾아내(오포트 등), 혹은 「집합적인 문제 해결」의 주체적인 노력에서 태어난, 의미 짓기의 폭주라고도 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있어서, 유언의 생성과 전개의 프로세스를 포착하고 있다

(시부타니 등).

 정보라는 말은, 오늘은 모든 일에 대한 지식 내용을 포괄하는 실로 일반적인 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그 원의는, 판단을 내리거나 행동을 일으킬 때에, 그 결정을 좌우하도록(듯이) 한 상황에 관한 중요한 지식을 가리켰다. 지진 재해에서는, 재해 상황하에서 피난이라고 하는 임박한 절실한 문제 상황에 놓인 주체에 있어서, 생존·생활의 유지에 있어서 중요한 편의나 상황에 관한 지식이, 후자의 의미에서의 의지 결정을 좌우하는 「정보 '라고 요구된 것이다. 유언 현상은 단순한 오보와 오등의 충동적이고 수동적인 만연이 아니라 일면에서 다가온다

상황에 긍정적으로 임하는 그러한 적극적인 주체성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1) 정보의 「공백」

 유언 증식의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첫째에 근거해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 정보의 부족 또는 결핍으로 느껴지는 사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간의 대신문사 17 사 중 도괴를 면한 것은 도쿄 날마다 신문·보지 신문·도신문의 3사만이었지만, 남은 회사로 해도 다음날에 등사판 등으로 형식적인 호외를 조금 낼 수 있었을 뿐, 4일에 배포가 재개될 때까지 거의 3일간은 신문의 공백 상태였다. 전화도 업무를 중심이었지만 보급되었던 것이 갑자기 통하지 않는다. 정보의 부족이 불안에 연결되어 가면서 일상적인 정보 향수를 지지하고 있던 틀이 갑자기 파괴된 점은 크다. 그리고 그 틀은 반드시 의식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즉, 매일의 습관이 되고 있던 신문을 읽을 수 없게 되어,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태는, 그 자체가 「이상」을 인상해, 「비상시」의 의식을 두드러지게 하는 메시지였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이 점에서, 예를 들면, 메가폰이나 붙여넣기 등 다른 수단으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주어도 충분하다고 단순히 치환할 수 없다. 유언의 기저에 있는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면, 일상적인 틀 그 사태가 흔들리고 잃어버렸다는 것 그 자체가 만들어 버린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구정내의 교제나 정보의 공유를 유지하는 지역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도 도쿄는 일반적으로 유입자를 많이 안고, 다양한 장소에 통근 계급의 이른바 주택지를 넓히고 있었다. 대도시의 많은 장소에서, 인근의 교차가 희박한 것이 되어 있던 경향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이웃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전달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의지되지 않은 일상을 의미합니다. 지진 재해로 인한 정보 중단으로이 쇠약한 전송 회로가 다시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격은 이미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시고메구 미나미마치에 살고 있던 호적 중원은, 지진 재해 전의 지역에서 인간 관계가 얼마나 희박한 것이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85 호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은 비율에 변동이 적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분명 동정내의 교제와 다양한 것은 거의 절대로 없었기 때문에 있다.상가가 많은 마을에서는 이런 일은 뭐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의 마을에는 상가와 언제라도 쌀가게와 세탁가씨가 한 채씩 있는 것만으로, 그 외는 소위 근무인이 많기 때문에, 각 집의 주인은 조출 만귀, 집은 궁금하면 각 사람의 침실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몫이었다.그러므로 「무카 삼채 양옆」의 협상이 없는 것은 물론,에 의하면 이웃의 이름 아무래도 모르는 모습, 아침 저녁에 가두에서 만나도 어사의 하나 하는 것은 아니고, 다이이치쵸내의 사람인지 아닌지의 분별이 어리석은 일이었다.」(『개판마을 회 규약 요령』도쿄시청 , 1925 년 10 월 , p.4 )

 유언과 함께 치안 문제화한 '자경단'이 단순한 집단주의의 나타나나 공동체적 결합 등이 아니라 호적이 지적하고 있는 낯선 자들의 집합이라는 군중론적인 구조를 그 기저로 가지고 있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중심재해지인 '북동'(센주, 고토 방면)과 '남서'(시나가와, 오사키 방면)에 나타난 두 개의 유언공간으로 해도 도시 확대로 인한 이질성을 안고 있는 지역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말하자면 「군중」화하기 쉬운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북동」에 관해서는, 중국인·조선인 노동자의 증가를 받아들인 지역이며, 또, 「남서」의 오사키쵸나 히라츠카쵸는 제1차 대전중에 공장이 많이 설립되어, 인구가 급증했다 지역이기도 했다.

 

(2) 정보의 분단 또는 단편화

둘째, 위에서 언급 한 정보의 "부족", "부족", "공백"상태는 아무 지식도 쓰지 않은 "백지"상태가 아니었다. 모순되는 지식이 흩어져 있는 정보공간이며, 생각이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까지도 이미 쓰여져 있고, 이른바 백지와는 멀다. 오히려 무질서라고 해도 좋은 특질을 가진다.

 그림 4-2 및 4-3 (「다이쇼 대진 화재지」의 그림 19 「각종의 선전찰」)에 내걸려있는 것과 같은, 경시청이나 계엄 사령부로부터 몇번이나 나온 빌라 등도 또한 이 단편적이고 통합되지 않은 정보 공간의 활성화에 힘을 빌려. 유언의 통제에 관련된 지시나 게시되어 뿌려진 경시청 그 외의 메시지를 정리한 것이 표 4-7이지만, 이들도 또한 나중에 접하도록 유언의 통제에 일정한 힘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그 자체가 유언을 낳는, 이른바 「종화」라고도 되었다. 좀 더 후의 단계이지만, 외지를 포함한 각지에서 발행된 여러 신문의 호외도 마찬가지로 유언을 낳는 종화가 된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림 4-2 지진 재해 당시의 선전찰 그림 4-3 지진 재해 당시의 선전찰    

(「다이쇼 대진 화재지」구화 19(「다이쇼 대진 화재지」구화 19)       

 

표 4-7 경찰·계엄 사령부 등으로부터 지시·게시·붙여·산포(유언 풀어 관계만)

 

홍보문 내용

발신자

비고

월 1 일

 

 

중앙 기상대의 보고에 의하면 향후 대지진 없음, 화재는 점차 진정하고 있다.

중앙 기상대의 보고에 의하면 도쿄만 내에 해해의 우울한 전망

경시청

등 사판 빌라 각

5000 장, 17 

30 

신문 기사에 가서는 인심의 불안을 증대하는 풍설은 노력해 피할 수 있어, 시를 안정시켜야 할 각종의 사정은 노력해 속보를 기울여 후양, 철저하게 어려움을 상원도

내무성 경보국

  간담서

 

불만자 단속에 관한 건 

 

 월 2 일

재해시에 승차 방화 경타 타 광폭하는 행동에 나오는 것 없는 것을 유지하지 않고, 현재 요도바시, 오츠카 등에 있어서 검거하는 방향이 있다. 취해서는 이토유키 등 불명자에 대한 단속을 엄격히 하고 경계상 위산 없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경시청 각서 앞으로

17 시경 명령

젊은 불안의 학생이라면 서원을 길가에 배치해 격멸 해야 한다 . 

경시청

18 시 이후 개별서로 향하는 명령

월 3 일

급고

불신스러운 사람의 망동의 소문이지만, 오른쪽은 대부분 사실상 다르고, 혼전에 불과하고, 선인의 대부분은 순수한 것에 부담없이 노를 박해하고 폭행을 가하는 등 무지 주의할 정도

홍보문의 , 등

경시청 선전대 사판 빌라, 06 시경           

급고

어제 내일 일부 불신한 사람도 있어도, 이제는 엄중한 경계에 의하여 그 흔적을 끊어 선인의 대부분은 순량하게 해서 몇등 흉행을 하는 사람 무지에게 부침에 너를 박해하고 폭행을 가후루 등 무지님 주의할 정도. 또 불온의 점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빨리 군대 경찰관에게 통보받을 수 있다.

선전 빌라 경시청

30000 

조선인의 망동에 관한 풍설은 허전에 걸리는 극히 많아, 매우 재난에 따라 인심감분 때 여사허설의 전파는 학생에게 사회불안을 증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선인에 관한 기사는 특히 신중 에 고려하신 후, 일절 게재하지 않는 님 주의 상상도, 향후 여상의 기사 있음에 있어서는 발매 배포를 금지할 수 있는 취향에 후조 주의 상성도

경시청 경고서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여, 특히 왼쪽의 제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불경단체 봉기의 사실을 과대 유언하고, 거기서 분란을 증가시키는 불리를 초래해야 한다 제도의 경비는 군대 및 각 자위단에 따라 이미 안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관동계엄사령

 관고사사

 

 

월 4 일

이번 재해에 의거 가장 필요한 물자에 대해서는 계획 원만에 진행해, 이미 시민 각위에 대한 배급을 꾸준히 실행하고 있어, 이번 가장 중대한 것은 인심의 평정을 얻는 데 있는 것을 불신한 폭동 , 강진의 재래 등의 풍설에 당황하지 않고, 군대 경찰에게 일의 진부를 질하고, 평정단에 행동할 수 없는 것을 바란다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의 7        

 

월 일 밤부터 사타구니의 잠입을 막기 위해, 경찰과 군대와 협력해 시내외의 각 요소에 검문소를 마련해, 일일 통행인을 사문해, 엄중한 경계를 가담하게 되는 것을 하여, 일반 민중은 가성 야간은 옥외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의 15      

관동계엄사령관령 제2호 군대의 증가에 따라 경비완비에 이르러 좌의 일을 명령한다.  

1. 자경을 위해 단체 혹은 개인마다 소요의 경계 방법을 갖고 있는 것은 미리 가까운 경비대 헌

 

월 5 일

병 또는 경찰관에게 신고 그 지시를 받는다.

2                계엄지역 내에 있는 통행인에 대한 누구 무엇, 검문은 군대 헌병급 경찰관에 한하여 지를 행하려 한다.

                군대 헌병 또는 경찰관헌보다 허가 있는 것에 몰두하면 지방자경단급 일반인민은 무기 또는 흉기의 휴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의 16      

지금 다음의 지진 재해에 곱해 일부 불신인의 망동 있어로서 선인에 대해 늘리는 불쾌한 감을 안는 자 있다고 들었다. 선인의 소위 젊고 불안하게 말할 때는 신속하게 단속의 군대 또는 경찰관에게 통고하여 그 처치에 몰두해야 하는 것에 민중 스스로 혼잡하게 선인에게 박해를 가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일선

동화의 근본주의에 등을 돌릴 뿐만 아니라 외국에 보도되어 결코 좋아하는 것에 아니다.

내각고사 제 2 호               

 

문주, 판담 등에 적힌 부호에 따름

12a 2ⓟ 1B ⓚ 1m ○ W 3  개 ru ◎ m ⓟ 

요 전날 각 곳의 문주 판담 등에 오른쪽과 같은 부합을 적고 있기 때문에 선인의 부정 행위의 암호라면, 일반적인 것 매우 불안의 염려를 안고 있는 곳, 당청에 있어서 조사의 결과 오른쪽은 중앙 청결회사의 남편 등이 고객의 심각에 대한 변소 소재지의 방향, 개수 등의 부합에 사용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 판명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 17      

청년단 제군 미증유의 대재해에 즈음해 각위가 연일 연야 노는 경비의 임무에 옷을 입고 분투 노력할 수 있다는 느낌

 

월 6 일

사과에 참을 수 없는 처해. 유키히 군대의 출동과 경찰력의 충실함에 따라 점차 질서 치유의 오리를 잡는다. 또한 선인의 습격 혹은 대지진의 재래 등 여러가지 풍평 있어도 조사의 결과 대부분은 전혀 근거가 없는 유언 蜚語이 되는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각위는 스라쿠의 뜻을 싸고 냉정하게 질서의 유지에 조력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갈망하고 망설이지 않는다.

경시총감고사사 30000 장           

이의 확장은 별로 새롭게 무서운 일이 일어난 때문이 아니다. 이재자가 점차 이치 지방에 들어가는 것에 따라 여러가지 허보 유언이 행해져, 인심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을 단속하는 것과, 

지방민은 결코 유언에 헤매지 않고, 피난민은 지방민에 대해 불편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아무도 지방관 공감, 경찰관에 신뢰해 평시와 같이 침착해, 군대의 어색하게 되는 일을 하지 말라.

둘째, 계엄을 맡겨도 직접 단속은 경찰관이 지에 맡기는 것임을 잊지 말라.

관동계엄사령

비행기 살포관 고사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말하면 처벌됩니다 조선인의 흉포나, 대지진이 재래하는, 죄수가 탈감한 수수께끼라고 언전으로 처벌된 것은 다수 있습니다 시절 무늬 여러분 주의해 주세요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 18      

책 칠일 왼쪽 긴급 칙령이 나왔습니다.

 

월 7 일

출판, 통신거 등 무엇 등의 방법을 내려야 하는지를 불문하고, 폭행, 소요계 타생명, 재산, 신체에 해를 끼쳐야 할 범죄를 선동하고, 안녕질서를 혼란하는 목적으로 치안을 해치는 사항을 유포하거나, 인심 을 혼란의 목적으로 유언부설을 하는 것은 십년 이하의 징역, 혹은 금고, 또는 3천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칙 본령은 공포의 날부터 유를 시행한다.

경시청 선전대 선전문의 19      

◎ 야간 교통 금지는 허보

관동계엄사령 계엄사령부정부정보부 제 

출처:『다이쇼 대진 화재지』경시청 , 1923 ; 『관동 대지진의 치안 회고』법무부 특별 심사국 , 1949 』『관동 대지진 정부 육해군 관계 사료 Ⅰ 권 정부·계엄령 관계 사료』일본 경제 비평사 , 1997 에서 작성

 

 

 3 일이 된 후 도쿄에 친척과 친구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나갔던 와쓰지 테츠로의 「지이 인상기」에, 「츠지의 하리 지폐로 군함 사십척이 오사카에서 오십만석의 쌀 을 쌓아 급항하는, 풍부한 통지를 받으면(자) 동포의 불행을 목표로 하는 방화자의 소문이었다”( p.202-203 )라고 있다. 전반의 '하리 지폐'는 다소 내용의 어긋남은 있지만, 경시청 선전대가 나눈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쁨의 몸부림'과 후단의 소문에 대한 격렬하게 끓인 생각이 다른 많은 재해 주민들에게도 인접하고 있었을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불법 행위나 무법한 행동에 대한 의분은, 표 4-7 의 9월 2일의 경시청 각서 앞으로 명령의 「현재 요도바시, 오오츠카 등에 있어서 검거하는 방향 있음」이라고 하는 언명이나, 9월 3 날의 민중에게 배부된 선전문의 「많은 것은 사실 다름」의 애매한 일절 등을, 전부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도 있다고 읽는 불안과 융합해 갔다.

 이 정보공간에는,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지식이 끊임없이 기입되고 있다고 하는 일례로서 또 하나, 같은 와쓰지의 에세이에 있어서, 지진 재해시에 나타난 「구름」을 둘러싼 해석의 변화를 꼽아 둡니다 싶다. 그 해석이 낯선 타인으로부터 주어지고, 일시적으로 믿어지고, 또한 다음의 해석이 다른 낯선 인물로부터 가져오고, 흔들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쉽게 따라 가자.

 일본 츠지는 첫 큰 흔들림 뒤, 어쨌든 가족과 정원에 나와 피난해, 노숙을 각오하기 시작한 세번째 정도의 여진 후, 「인조정의 장인풍의 남자」로부터 「오오시마 폭발의 소문」 들어요. “그 남자에게 주의를 받고 보면 남쪽으로 새하얀 입도구름이 한꺼번에 묵묵하게 들려오고, 그것이 북동쪽으로 흐르고, 이제 진동쪽까지 다만 산맥처럼 이어진다. 진창한 하늘에 대조해 이 하얗게 빛나는 구름의 봉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웠다 도쿄에 오는 것은 신기하다고도 생각했지만, 「그 때에는 그 밖에 이 구름에 대한 설명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도 있어, 과연 방금전의 폭발음도 오시마의 분화였던 것이라고 생각해, 일단 의 납득을 한다.

 그런데, 「아마 2시과에 따뜻할까 생각해, 센다가야에서 동북방에 닿아 한층 더 큰 입도 구름이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소문을 냈다. 이윽고 그 구름 속에서 뇌명이라고 생각되는 굉음이 들린다. 보고 있으면, 일방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도 뇌명으로는 부풀음이 작아, 오시마의 분연이라고 말해진 것과 같게 보인다. "나는 또 모습을 탐험하기 위해 거리쪽으로 나왔다. 거기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잊었다. 나는 연기라고 설명했다. 나중에이 두 폭발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에 생각했다.” 구름을 깨닫은 뒤부터 폭음을 들은 것 같아서 다소 힘들게 떨어지지 않는 곳도 있었지만, “1시간 정도는 이 설명에 만족했다”고 한다.

 3시나 4시 반쯤이 되어, 「자신은 철도의 건널목에 나가서, 도쿄의 분으로부터 쯤 돌아와 오는 사람에게 화재의 모습을 (들)물으려고 했다.」 거기서, 건널목의 노인으로부터, 간다나 히비야의 대불, 니혼바시와 아사쿠사, 혼고, 고지마치가 ​​불타고 있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그 구름은 화재의 연기라고. 자신이 큰 불에 유연한 것은 이때이다. 아직도, 이 화사가 해자를 뛰어넘어, 불연성의 건물도 굽는 맹렬한 것인 것까지는, 상상하고 있지 않았다고 쓴다.

 “저녁에는 남방의 큰 입도구름이 몇시 사이에 사라지고, 북동쪽의 높은 입도구름이 약간 동방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커지고 있다. 까지 하늘에 우뚝 솟아, 어디에서도 보인 구름은, 와쓰지 개인 중에서도 시시각각 해석을 바꾸었지만, 그것을 올려다 보았던 많은 사람들 중(안)에서도 「분화」, 「폭발」, 「방화」등의 설명을 근거 짓는 것으로 계속 언급되었을 것이다. 와즈지 자신도 “남쪽에 높게 나타난 입도 구름이 무엇으로 뭘 했는지는, 그 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서 보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저것은 요코하마의 연기다츠타라고 하지만 혹은 어쩌면 어쩌면 모르겠다”며 사실에는 따라가지 않고 동시대의 에세이를 끝내고 있다. 관동 대지진은 호적의 표현을 빌리면 '침실 거리'에 살고 있던 주민을 '거리로 흘리며' 옆과 맞은 편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추어 '힘들군요, 부상은 없습니까? '로 시작하는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열었다. 긴장이 가득한 불안감을 설레게 하고, 평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하의 일기 등에서도 공습경보가 울리면 낯선 사람끼리 누구에게나 말하기 시작한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그것은 와쓰지가 밖의 길에 나오거나 건널목에 하기도 했던 행동 주변에도 볼 수 있다. 정보를 요구했다고 하는 이상으로, 실은 스스로 말하는 것으로 불안을 혼동하고 있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사실 매우 단편화되어 서로 모순되는 정보를 만들어 내고 유언을 활성화 

하는 소재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3) 해석의 생산자들

 셋째, 생활 거점을 잃은 피난자들이 많이 만들어져 그러한 사람들의 불안에 뒷받침된 이해와 지식의 부족이 유언전달의 과정으로 환류했다. 그 환류라든지 난반사도, 재해하의 유언을 생각할 경우, 무시할 수 없는 논점이다. 위에서 언급 한 일본 쓰지의 경우에는 그렇게 과격한 것에 연결할 수 없었지만 조건에 따라 집합적이고 폭력적 일 수 있습니다.

 가옥의 붕괴에 의해, 혹은 화재에 의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불안이, 유언의 수용에 있어서 완수한 역할은 크다. 스즈키 준 「칸토 대지진」(치쿠마 신서 , 2004 )은, 당시 44 세에 은행원이었던 염천 하루히코(아이센)의 「지진 재일지」로부터, 책상 앞에 있을 때의 냉정한 판단과 노천 에 앉아서 선로 옆으로 피난한 가두생활을 거쳐 감정에 휩쓸린 판단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p.191-192 .

 지진 그 자체가 예기치 못한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지만, 화재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유언의 주제 중 하나가 된 '방화'와 '폭탄'에 대해서는 대규모 화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태어났다는 요소도 있다. 앞서 언급한 와쓰지 테츠로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화재는 겨우 2시간 정도로 진화할 수 있었고, 늦게까지 지울 수 없는 화재가 있다는 것 등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썼다 ( p.191 ). 거기에 쓰여 있는 이하에 말하는 후카가와 모리시타쵸의 여성의 이야기도, 아마 여기 카시코에 있던 보통의 경험일 것이다. 그 여성은 하루의 첫 지진으로는 화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해, 출입의 장인이 걸어 왔을 때 등 「내일에도 지붕 가게를 맡아 받고 싶다」등과 삼키한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안에 전철거리의 건너편에서 불이 나왔다. 일단 진화하거나 타고 남아 안심하고 있던 곳에, 또 다른 곳에서 불이 다가오고 타버린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 의한 「방화」라고 하는 설명이 이루어져, 그것이 원인으로서 상황 이해에 끼워져 가는 위험성은 이해할 수 있다.

 '폭탄'이라는 화제도 비슷한 큰 불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소 속에 많은 폭발음 등이 하는 등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앞서 언급한 와쓰지 테츠로는 “대포와 같은 큰 폭음이 세 번 정도 처음으로 남쪽에서 들렸다” 때, 아마도 어딘가의 약품의 폭발이었던 그것을, 그 때는 그런 이유 등 전혀 상상 불가능하고 오히려 "자신에게는 그것이 무언가의 신호처럼 생각했다"( p.191 )라고 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만약 누군가가 입으로 하고, 들은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공명하면, 도대체 누구의 신호인지 범인 찾기를 둘러싸고, 유언이 일어난다. 전문가는 “필자(오오시마 요시요시 공학 박사)의 목격한 것으로 그 근처의 사람은 폭탄과 시끄럽지만, 실은 지하의 기와관의 폭발로 온 것이 많이 있다”

(「다이쇼 지진지」상 , p.324 )라고 증언하고 있다.

 

(4) 해석의 폭주와 증식

 넷째, 즉 청취자의 상상력의 과격화, 독자의 해석의 폭주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유언에는 붙어간다. 그 근처가 문제의 나타나는 방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두 번째로 접한 논점, 즉이 정보 공간이 단편의 모음임과 때로는 모순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부족한 부분이나 누락된 정보를 보충하는 것처럼, 혹은 「인지적 불협화」(피스팅거)를 경감해 근도였던 해석을 낳기 위해서, 새로운 화제가 그 「공백」에 쓰여져 가는 것이다.

 그 점에서는 경찰이나 군 등의 통제 주체만이 유언의 기초가 되는 정보의 생산자가 아니다. 오히려 비상사태의 생활자나, 혹은 피난을 강요당한 민중도, 또 유언의 기초가 되는 지식을 생산해 나간다. 일부 기록이 증언하는 "불온 기호"의 유언은이 좋은 예입니다. 즉, 마을의 노차의 담이나, 집의 문기둥 등에 백묵 등으로 써 있는 기호가, 습격을 위한 암호라고 하는 소문이 일어나, 경찰에 통보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유나 신문의 배달인 혹은 펌핑업자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한 기호였다. 이미 존재했던 거리의 낙서 가마의 표시가, 특별한 의미를 담당하는 「암호」로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거기에 있어 불안을 안는 사람들이, 보통의 일상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새롭게 주목해 버려 새로운 해석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 화제에 대해 접하고 있는 것은 시나가와서의 “불안에 습격당한 민중은, 의심 스스로 암귀를 생기고, 우유·신문의 배달인, 비료 권취인등이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노차에 적어 둔다 는 부호도, 선인이 방화·살인 또는 독약의 살포 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의 목표가 된다고 믿고 혹은 혹은 「선인이 폭행을 하는 것의 꼬리표가 된다」라고 여러가지 암호를 기록한 종이 조각을 제출, 혹은 전 히로오 부근에 게이타를 적게 하는 것을 보거나와 사실을 입증한다 것 있어", 이것도 3일의 것이지만 요츠야서의 "변소의 청소인 남편이 비망을 위해서, 각 노차내 등에 그릴 수 있는 기호도, 그 형상에 따라 폭탄의 장치, 독약의 살포, 방화, 살인 등에 관한 부징 가능한 배와의 선전에 접한 등의 보고에 나타난다. 그 외, 해군법무국이 기록하고 있는 예(「조선인 관련 정보」「관동대지진 정부 육해군 관계 사료 III 권 해군 관계 사료」, 1997 년 2월 , p.103-104 )나, 아카바네 화약창폭약 부로부터 해군성 부관에의 보고로, 아마 동내회로부터의 통보를 기초로 한 것(『기타구사 자료편 현대 1』, 1995년 12월, p.650 동상 해군 관계 사료 p .110 ), 우치다 료헤이의 견문 등에 이 말하자면 불온한 기호가 언급되어 있다. 

9월 6일이 되어 경시청 선전대가 '문기둥, 판담 등에 적힌 부호를 따서'라는 선전문을 배포한 이유는 이런 종류의 유언에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현대적이지 않은 바보 같은 에피소드로 걷어차지 않을 것입니다. 도 4-4 에 열거 된 바와 같이 , 사실은 현대에서도

그림 4-4 현대의 「마킹」의 예종의 화제가 조용한 일상의 안쪽에서 반복되고 있다

문패에 붙인 물개의 의미를 둘러싸고, 어떤 아파트가 관통하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조합으로부터 배포된 「소식」에 게재되고 있던 것. 잡다   

잡지 등으로부터의 인용이라고 생각되지만, 출전 불명이다.

 

(5) 역사를 둘러싼

 제5의 논점으로서, 유언은 사람들의 잠재 의식이나 무의식의 층에 억누르고 있는 것을 부상시켜, 평상시는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은 역사의 넘어진다. 어떤 의미에서 '정신분석'적이라는 의미에서는 '신화'론적이기도 한 이러한 확산도 단순한 오보론에서 간과되기 쉬운 논점이다.

 예를 들어 '우물'에 독약을 투입하는 화제는 물론 라이프라인으로서 물 확보라는 절실한 실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콜레라'를 둘러싼 기억이 동원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우물물 소독을 위해 석회가 투입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메이지 10년대에는 “콜레라 유행은 의사나 경관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또 환자의 생명을 투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유언 에 의해, 지바현의 가모가와에서는 의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물이 수도가 보급되고 있는 도시 공간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검증을 요하는 논점이지만, 우물의 중요성이 갑자기 주목된 것은 틀림없다. 우물과 독약이라는 화제의 결합은 혹은 소독의 필요라는 지식의 뒤집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표 4-2 의 2일 18 시경에 들려진 「박물관의 연못의 물의 변색」, 「어류의 죽음」, 「우물의 변색」 등, 관찰된 구체적인 이변을 설명한다 것으로 불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재해시의 피난소 등에 있어서의 위생 소독의 필요는, 실제로 경비 당국에서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크롤 석회에 의한 소독을 계획할 때, “이즈미 소독은 시절 무늬 선인 문제와 관련해 민중의 오해 있어야 한다 우연히, 선전 빌라를 응용해, 마을회 청년단 등의 응원에 의하여 가능한 한 이해에 노력하거나」(자경, 1923년 11 월호 p.60 라고 쓰고 있다. 

 표 4-1 및 표 4-2 의 사례 속에 나타나는 「대본교」의 유언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의 지식의 투입이다. 「대본교는 23년 전 대지진을 예언해 어느 정도 우리를 불안에 빠졌지만」(p.183)와 전출의 에세이에 있어서 와쓰지 테츠로가 쓰고 있듯이, 교조 의 필처 의 해석으로부터 다이쇼 11년 에 해당하는 해의 「재건축」, 즉 일종의 파국과 구제를 예언한 출구왕 닌자부로의 화제는, 보도 등을 통해 사회에 퍼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 해 그 날이 지나면, 이런 종류의 예언은 잊혀져 버리지만, 공통의 지식으로서는 남아, 대지진 후의 대화 속에서 언급되어, 유언에 내용으로서 흘러 들어갔다.

 게다가 보다 가까운 과거의 지식의 인용이 되지만, 저자는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의 9월 1일 아사히 신문 조간 등도 또한 이 유언 공간의 확대에 있어서 소재가 되는 것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은 없을까 생각한다. 그림 4-5 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는 '괴선인', '음모단', '수평사원', '소란',

'순사부장', '여자를 습격'이라는 문자가 춤추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괴선인 3 명 포하루 음모단의 한 맛인가"라는 후에 폭주하게 된 유언과의 관련을 의심하게하는 자면이며, "전 순찰 부장녀를 습격 피해자 십수명의 기사 속에서 '위형사가 빈번히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위형사의 화제가 다음에 말하는 경찰관으로 변장했다는 논점과 겹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1970 년대에 프랑스의 지방도시에서 일어난 여성유괴의 이야기 속에 동원된 반유대인주의의 테마(에드가르 모란, '오를레안의 소문' 참조)와 마찬가지로, '불신선인', 선인 "습습"이라는 화제 속의 민족차별과 대립이 식민지 체제나 지배에 뿌리내리는 역사적인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잡지 기사가 있는 신화적인 원형을 제시하는 것으로 전개한 여성 유괴의 소문이, 여고생의 수다에서 증식해 발전해 갔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괴선인」의 문자가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계기"를 제공해 버린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림 4-5 지진 재해 전의 마지막 신문지면으로부터 (『도쿄 아사히 신문』9월 1일 조간)

(6) 도시의 불안

 여섯째, 유언증식의 메카니즘 속에서, 도시에 있어서의 상호의 이질성이 폭주해 버린 국면에 다시 주목해 두자. 그것은 '변장'이라는 주제의 유언에의 도입에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표 4-1 에 따르면 4일에 이르러 경찰관으로의 변장이라는 화제가 유언에 나타난다. 표 4-2 와 대응시켜 보면, 그것은 21 시경에 시모야 우에노 경찰서에 가져온 것으로, 「우에노 공원내 및 소잔지인, 나나켄초·가치마치에는, 선인으로 해 경찰관으로 변장해 피난민을 괴롭히는 걸로 경찰관이라니 방심할 수 없어”라는 유언이었다. 시각 불명이지만, 실은 이미 2일의 단계에서 혼고 고마고메서가 “선인 등은 왼쪽 소매 뒤에 붉은 천을 두른 혹은 붉은 선을 그릴 수 있다. 경찰관은(?) 라는 유언을 인지하고 있다. 「붉은 천」, 「적선」이라고 하는 표상에는, 사회주의의 이미지도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조선인의 모략이나 음모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주민이나 피난민들과 경찰 및 군대와의 현격이라든가, 어떤 종류의 불신의 관계를 암시한다 유언이라는 점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어딘가에서 주민과 피난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경찰이나 군대 등 당국이 대응해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이 유언에는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다. 경찰이나 군대에 대한 반감의 표출로 보면, 제2차 대전 중의 유언 등에도 같은 타입을 찾아낼 수 있다.  

 실제로 경찰관 자신이 자경단으로부터 '누구 무엇'을 받아 신체검사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우시고메의 가구라자카 경찰서의 보고에는, 「경일(4일) 더욱 「선인 등 신주쿠 방면 순사 파출소를 습격해 관복을 탈탈 착용해 폭행을 하게 한다」라고의 유언행 하루루야, 더욱 경찰 관에 대해서도 의심의 정을 그리며, 제복 순찰을 길에 요하고 신체 검색을 하는 것 있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변장'이라는 화제의 도입이 더욱 비극적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이것이 낯선 타자에 대해 무한히 회의적이 될 수 있는 회로를 열어 버린 것이다. 군인이나 경찰관 뿐만이 아니라, 피난민을 가장하거나, 혹은 일본인의 흔들림을 한 등의 변형은 매우 용이하다. 결국, 도시공간 곳곳에 태어난 자경단의 '검문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수상한 것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닌지를 쉽게 증명할 수 없도록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작가의 생방 토시로는, 4일 아침에 집의 모습을 보기 위해, 피난처의 교외로부터 시내에 돌아왔을 때, 여기저기서 자경단의 검문에 잡혔다. “지름길을 가고 싶은 소도로 들어가자 곧 길을 가로질러 줄다리기를 걸어 오, 육인목도나 창, 일본도 등 물건 들고, 자경하고 있는데 걸렸습니다. 나는 묻는다 그대로 자신의 주소 성명을 붙이고, 거기는 어려움없이 통과했습니다만, 또 그 앞에 관소가 있습니다.마침내 자신의 집에 가서 이웃의 사람들과도 이야기해, 용을 하고, 다시 교외에 돌아가려고 했더니 바로 자경에 붙잡혔습니다. 아직도 내 집을 떠났습니다.``당신은 어디로 가겠습니까?''당신은 누구입니다.' 내가 다시 돌아와 마침내 대답하고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잘 보면 모두 마을 내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니, 너희였습니까. "라고 말하면, 그 중 한 명, 아라미야가 진지한 얼굴로 "아무리 아는 사람 중에서도, 오늘은 별입니다""("일본의 백년 5 지진 재해에 흔들린다", p.71 ) . 이 경우는 ‘아는’ 웃음말로 끝났지만 경찰서 기록에서도 추찰되는 대로 말이 잘 어울리지 않거나 방언이 강한 사람들이 심문되거나 폭행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흉포화하고 무법화한 자경단과 그러한 에스컬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은 자경단과의 조건의 차이는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과제이다. 그 중에서도 도시가 가진 이질적인 인구 집단이라는 특성이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또 극복되지 않았는지 질문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7) 피해자의 주체성

 나중에 심각한 피해나 범죄의 문제에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시청 등의 치안부국의 보고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유언을 접해 두고 싶다. 매스 미디어의 보도가 발달한 오늘날이야말로 논의될 수 있는 논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미야케 카츠미는 「천재 발발」(「카메라」, 1923 년 10 월호)라는 에세이에서, 「마루노우치에서 피난자의 사진을 찍은 자가, 많은 가방 척을 만났다. 」라고 말하는 친구로부터의 소문을 접하고 있다. 또한 다나카 준이치로는 '일본 교육 영화 발달사'에서 니이 활의 '관동 대지진 실황'이라는 동영상을 촬영할 때 '살기였던 괴재자 중에는 사람의 어려움을 견해물로 할 생각인가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p.51 )라고 쓴다. 미야케 카츠미 자신도 각 지방에서 “이름을 구호에 빌려, 현실 사변의 구경에 온 야한 마음가짐의” 청년들이, 펄 카메라 등을 휴대해 만원의 승합 자동차 등에 인터럽트 “차창보다 목을 뻗어, 시중을 바라보고 「아 멋진 사랑」이라든지 「유쾌 유쾌 이것은 의외」라든지, 듣기에도 참을 수 없는 무원한 방언을 감히 한다」광경에 분노해, 이러한 배야말로 「폭리 상인 불 장 도둑에도 늘어난 불교한으로서 ​​크게 징계할 수 있는 자”라고 단절하고 있다(p.514-515 같은 감정은 와쓰지 테츠로도 수통과 사진기를 어깨에 걸어 구경 기분이 있는 신사에게 "심각하게 뿌려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p.202)라고 썼다 .

 여기에는 재해 당사자로서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생활 감각으로부터의 「야지마」비판이 있는 것인데, 또, 오늘날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다양한 매스 미디어의 보도 자세의 비판에도 통

논란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