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언어·선동재능이 만들어낸 이재명 신화, 그 끝은?
[강준만의 회색지대]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08-18
● 누런 이와 고단한 손으로 눈물 훔치던 사람들
● “이 수박 새끼야” 환청이 들릴 정도
● 업그레이드된 손가락혁명군의 후예들
● ‘이재명의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라 팬클럽
● 혐오 언어의 귀재면서 개천에서 난 용
● 명암(明暗) 중 어느 쪽이 두드러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에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2023년 1월 22~23일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에서 검찰 기소 시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가 63.8%, ‘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가 27.9%였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세 명 중 한 명(33.4%)은 이재명이 물러나야 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을 위한 방탄의 호위무사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중권은 “지금 의원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기 정치하기 위해서고 당보다는 내 공천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답을 제시했다. 그는 “강성 당원들에게 호소하면 공천을 받고, 심지어 초선이 최고위원까지 올라가는 걸 봐서 그러는 것”이라며 “선당후사를 해야 하는데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당을 저버리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놀라운 건 뭐냐 하면 민주당 사람들이 자기 당 걱정을 나보다도 안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 색출하기민주당은 2월 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진행한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정권 규탄 국민보고대회’를 앞두고 17개 시·도당 총동원령을 내렸다. 지역별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까지 당원을 동원하라고 했다. 주말까지 반납해 당대표를 지키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이미 이재명의 강성 지지자들이 활약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의원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재명이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의 1차 조사를 받은 다음 날인 1월 29일 ‘딴지일보’ 게시판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 검찰 방문 및 발언 SNS 전수조사’란 제목의 게시 글을 보자. 여기엔 민주당 의원 169명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한 명단에 서울중앙지검 출석 당시 동행 여부와 검찰 관련 비판 발언 여부를 항목별로 O 또는 X 표시한 표를 올렸다. 동행과 비판 발언, 둘 중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 85인’은 따로 표를 만들어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침묵하는 것은 “당원에 대한 배반”이고, “경선과 총선 때 평가해 위선자들이 걸러지기를 바란다”는 자상한 안내 메시지도 곁들여졌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으로 분류된 의원들의 의원실에는 전화와 팩스, 의원 개인 휴대전화엔 ‘문자 폭탄’ 등이 쏟아졌다.
2월 2일 의원총회에서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주말 집회 계획을 놓고 불만을 쏟아낸 동시에 지도부가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이재명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제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비난 문자 폭탄을 받으신 분의 말씀이 있었다”며 지지자들을 향해 “저와 함께하는 동지라면 문자 폭탄 같은 내부를 향한 공격은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지자들의 자제를 그런 식으로 요청했지만,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지지자들이 이재명의 요청을 무시했기 때문일까. 2021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나온 이재명의 그 유명한 12·7 발언에 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말이라는 건 맥락이 있다. 맥락을 무시하면 진짜 문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그런 맥락을 읽어내는 데엔 이미 달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정권 규탄 국민보고대회’엔 이재명 등 지도부를 포함해 100여 명의 현역의원과 원외지역위원장, 중앙당·지역위 당직자, 지지자들이 대거 운집했다. 민주당은 이날 행사에 경찰 추산 10만 명, 주최 측 추산 30만 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날 밤 이재명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현장에 온 의원들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참석 의원들의 이름과 ‘인증 숏’이 줄줄이 댓글로 달렸다.
한 이용자는 “국회 출석보다 더 중요하다”며 “불참자를 알려 다음에는 다 나오도록 경고해야 한다”고 했다. 팬카페에선 실시간으로 이재명·민주당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했는데, 여기엔 ‘완’이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완’은 민주당에 ‘긍정적인’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를 완료했다는 인증이었다.
이탈표 나오자 이낙연에 맹비난2월 27일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 297명이 투표해 찬성 139표·반대 138표·기권 9표·무효 11표를 받아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애초 압도적 부결을 공언했던 것과 달리 최소 31표에 달하는 이탈표가 대거 나오자, 이재명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 사이에서 비(非)이재명계를 뜻하는 ‘수박’ 색출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탈자 명단을 만들어 응징을 주장하는 인민재판식 추궁이 이어지자, 당내 일부 의원들의 양심선언까지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선 민주당 내 ‘이탈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계 의원 40여 명의 이름과 지역구가 적힌 ‘살생부’가 공유됐다.
개딸은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많이 나온 게 전 대표 이낙연의 책임이라며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에게까지 맹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홈페이지 국민응답센터엔 “이낙연 전 대표를 당에서 영구 제명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대의원제를 폐지하고 공천권을 권리당원에게 넘기라”는 요구를 내걸고 강성 친명 카페를 중심으로 ‘권리당원 가입 운동’이 시작됐다. 개딸의 공격적인 ‘증오·혐오 마케팅’ 덕분에 ‘이낙연 제명 청원’은 사흘 만인 3월 3일 공식 답변 기준인 5만 명의 동의를 얻었으며, 당원 가입자도 급증했다. 민주당 대변인 박성준은 “체포동의안 부결 후 3일간 일평균 4700명이 입당해 총 1만4000명이 넘었다. 평소의 10배”라고 했다.
개딸들은 민주당사 앞에서 이른바 ‘수박 깨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는 ‘수박 깨기’ ‘수박 격파’ ‘수박 썰기’ ‘시민 발언’ ‘이재명 대표 응원’ 등으로 진행됐다. 이즈음 온라인에서는 문재인과 이낙연, 친문·비명계 의원 등 7명을 ‘수박 7적’으로 칭하며 처단하자는 포스터가 돌고 있었다. 포스터에는 해당 인사들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로 구성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월 3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3월 4일 오전 이재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명단 제작, 문자폭탄, 제명 요청… 누가 이득 볼까요?’라는 글에서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것은 상대 진영이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민주당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공유한 뒤 “이제 와서 말리는 척 해봐야…”라며 “이게 다 이재명이 부추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중은 자기 동력을 갖고 있다.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며 “그들을 세뇌시켜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고 했다.
나중에 잡아먹히게 될망정 이재명은 아직까진 어느 모로 보건 잡아먹힐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재명은 “시중에 나와 있는 명단은 틀린 것이 많다”며 “5명 중 4명이 그랬다고 해도 5명을 비난하면 1명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누명을 당하는 심정 (…)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는 명단이 정확하기만 하다면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한 ‘망언’ 또는 ‘실언’이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이 홍위병에게 ‘당신들 분노가 정당하다’는 뜻의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추겨서 중국을 20년 암흑기로 끌고 갔다”며 “잘못된 팬덤 문화는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내 억제해 줘야 하는데 이 대표는 그걸 전혀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자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성 지지층의 행태는 이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실제로 ‘재명이네 마을’에는 ‘수박 색출’을 멈춰달라는 이 대표의 메시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딸과 결별 촉구, 이재명이 응할 리가…KBS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3월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이 53.9%,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이 40.7%로 나타났다. 앞서 KBS의 새해 여론조사(1월 18~20일 조사)에선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은 47.7%였고,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은 44.1%였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52.1%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고, 39.3%는 ‘잘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느냐는 질문엔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53.8%였고,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40.7%였다.
이런 여론마저 뒤엎어보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좌절감의 표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른바 ‘개토커(개딸 스토커)’ ‘개파라치(개딸 파파라치)’로 불리는 노골적인 폭력 수법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은 개딸들의 육탄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항의도 못 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다. 이재명의 극렬 지지자들은 개딸로 통칭하지만 현장에는 2030 여성보다는 중년 여성이나 남성이 더 많았다. 이들은 체포 동의안 사태 이후 문자 폭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카메라를 들고 지역구 행사나 개인 일정까지 따라다니며 막말을 퍼부었다. 한 의원은 “‘이 수박 새끼야’란 환청이 들릴 정도”라고 했다.
3월 14일 비명계 의원 조응천은 개딸과 이재명의 결별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이재명을 향해 “좀 더 세게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며 “경고하고 절대 하면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당신들하고는 결별하겠다 정도의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셔야(한다)”라고 했다. 조응천이 핵심을 찌른 정답을 제시한 셈이지만, 문제는 이재명이 지지자들에게 자제하라는 시늉만 낼 뿐 그들과의 결별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강성 팬덤과의 결별은 사실상 자신의 오늘을 만든 팬덤 정치를 그만두라는 주문이었기에 그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재명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는 3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수박 7적 처단하자’ 이미지가 널리 공유된 것 등을 가리키며 “상대를 가장 쉽고 빠르게 제압하는 방법이 이간질이다”라고 했다. 일견 비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에 덧붙인 “우리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변복해서 공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구? “저쪽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한 게 아닐까”라는 게 이재명이 내놓은 답이었다.
이재명은 “요즘 나도 당한다”는 엄살 전략도 들고 나왔다. 이전에도 써먹은 오래된 방법이었다. 그는 3월 21일 당내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간담회에서 “요즘은 나에게도 여러분들이 받는 항의 전화가 온다. 나보고 ‘원래 이재명은 사이다였는데 이젠 변했다’며 손절하겠다 하더라”라고 말했다. 똑같이 당하는 처지에 자신에게 뭘 요구하지 말라는 ‘쇼’인 셈이었다.
이재명의 반성 없는 ‘온정주의’4월 4일 중앙일보가 제21대 국회 현역의원의 유튜브 채널 운영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299명 가운데 275명(92%)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유튜브 채널의 평균 구독자는 약 1만5400명, 평균 조회수는 약 227만 회였다. 구독자 수와 동영상 조회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이재명이 운영하는 ‘이재명’ 채널이 구독자 77만 명(조회수 1억5854만 회)으로 20만 명대에 머무른 2·3위를 압도적으로 누른 1위였다.
이런 미디어 혁명이 정치마저 근본적으로 바꾼 걸까.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4월 18일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강연에서 “이른바 ‘빠’ 현상 등 ‘팬덤’ 현상이 중심에 자리 잡은 온라인 행동주의가 전통적인 당의 역할과 구조를 송두리째 변화시켜 본래 정당 기능을 대체했다”며 “여야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중심으로 수준 낮은 적대와 혐오를 이어간다. ‘팬덤 리더’는 있어도 ‘정당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즈음 민주당에서 터진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사건은 세월을 역행하는 그 시대착오성에 비추어 볼 때 ‘정당의 팬덤화’와 무관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 사건에 실망한 권리당원들은 ‘이재명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하며 강도 높은 분노를 표출했다. 반면, 개딸 등 이재명의 강성 지지층은 이 사건의 원흉을 ‘대의원제’로 규정하고 폐지 촉구 운동에 돌입해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는 극심한 혼란을 보였다. 이게 그런 식으로 싸울 일이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대의원제는 권리당원이 수도권·충청·호남, 특히 호남에 집중돼 있어, 권리당원만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영남은 완전히 소외되는 걸 보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지키기 위한 다른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차분하게 논의하면 될 일이었다. 이재명이 자신의 생각을 정정당당하게 역설하면서 그런 합리적 논의를 유도하면 좋았을 텐데, 그는 대의원제 폐지 지지 의사만 밝히면서 비방 위주의 세 싸움으로 흐르는 걸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5월 2일 새로운 민주당 원내대표 박광온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확장하고 통합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며 “지지자들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하게 들리는, 아니 그렇게 들어야 할 말이었지만, 강성 지지층에선 박광온의 행보가 ‘이재명 제거’ 작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재명이네 마을’엔 박광온 등 신임 원내대표단을 ‘수박’이라고 칭하며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지자들만으로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한 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이런 이익공동체적 행태는 5월 5일 ‘코인 게이트’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친명 호위무사인 김남국 논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주당이 당 차원의 진상 조사를 실시하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개딸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재명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강성 지지층은 김남국에 대한 ‘응원 릴레이’도 이어갔다.
김남국이 5월 14일 탈당 선언을 하면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김남국 구하기에 나섰다. 경쟁적으로 옹호의 발언을 일삼는 과정에서 급기야 양이원영은 “민주당은 도덕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무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은 “중요한 상임위를 하면서도 코인 거래를 한 김남국 의원을 실드 치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에 오만정이 떨어졌다”며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비웃을 일을 버젓이 하면서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라니…”라고 질타했다.
이 모든 게 이재명의 리더십 위기로 비화됐다. 5월 16일 한겨레는 “거듭되는 악재로 당이 누란의 위기에 놓였는데도, 온정주의로 일관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했다. 이렇듯 여러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가 이재명의 ‘온정주의’였는데, 실은 그게 바로 이재명 리더십의 비결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친명 및 강경파의 ‘반성 없는 온정주의’가 반복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당내에선 86그룹과 친명이 각각 이익집단화해 서로 지켜주는 ‘이익공동체’ 같은 구도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한 중립 성향 의원은 “86그룹이 그랬듯 신진 친명 그룹도 똑같이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식구 감싸기에 들어간다”며 “양쪽이 함께 이익을 서로 보전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런 행태는 무슨 큰 문제가 터지면 호된 비판을 받지만, 실은 86그룹의 장기집권이 말해 주듯이 가장 강한 응집력과 비교우위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이재명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도 최측근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목숨 걸고 충성할 수 있게끔 하는 용인술이었다. 그런데 이런 용인술에 반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하라는 건 이재명의 호위무사단 체제를 스스로 해체하라는 요구나 다름 없다. 그렇게 되면 지금도 감옥에서 이재명 방탄을 위해 헌신하는 최측근 인사들마저 무너지는 아마겟돈이 열릴 수도 있는데 이재명이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재명에겐 “이재명의 이름을 팔아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정치인들은 좀 끊어내야 된다”는 요청도 있었지만, 호가호위하는 재미도 없이 충성할 측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온정주의는 이재명의 마음이 약하거나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만독불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방탄 장치’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당의 주인이 누구인가. 이걸 우리가 잊으면 안 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도 잘해야 한다. 꼬투리를 잡히지 말아야 한다.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행동할 건 하고, 다만 거기서 혹시라도 반격의 빌미가 되지 않게 하자.” 5월 24일 이재명이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생중계에서 한 말이다. 당내에서 김남국의 ‘가상자산 투기’ 문제를 두고 지도부의 대응을 비판한 청년들이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도 넘은 공격을 받자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엉겹결에 ‘꼬투리’니 ‘반격의 빌미’니 하는 말을 씀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게 아닌가. 비명계 의원 이원욱이 SNS를 통해 공개한 ‘문자 테러’ 발신자가 당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서도 이재명의 속내가 또 한 번 드러나고 말았다.
선동 재능으로 쓴 ‘이재명 신화’이재명은 “허위 사실에 기초하는 건 음해다. 허위 사실에 기초해 비난, 비판하면 되겠어요”라며 이원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돈 안 들고 제일 효과적인 전략이 이간질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문자 테러로 당을 이간질한다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조응천은 “적반하장”이라고 평가하며 “그분이 당원인지가 이 사태 본질이냐고 되묻고 싶다. 본질은 개딸이 어느새 강성 지지자나 정치 훌리건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돼버렸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6월 27일 이재명은 국회 당대표실에서 15명의 민주당 고문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당 원로들의 조언을 듣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당내 원로들은 이재명을 향해 ‘강성 지지층’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개딸 손절’을 요청한 셈이었지만, 팬덤 정치는 이재명의 정치적 정체성이었기에 사실상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민주당이 새로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 ‘블루웨이브’가 개설 하루 만인 7월 11일 개딸과 이낙연의 지지자 그룹 간 전쟁터로 변한 것도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팬덤 정치의 한 풍경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그럴 것이다. 민주당이 이런 분열의 수렁으로 휘말려 들어간 건 SNS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디지털혁명이 만개한 시점에 이재명이 전국적 지도자로 등장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이재명은 ‘SNS 대통령’ ‘유튜브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정치에 활용하는 데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밝힌 ‘SNS 활용 비법’ 중 하나는 열정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SNS를 보다가 굴러떨어지기도 할 정도로 많이 본다.” SNS가 ‘증오·혐오의 상품화’에 매우 유리한 미디어라는 건 이재명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이재명을 이름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에서 전국적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만들어준 2016년 11~12월의 촛불집회 정국에서 박근혜에 대한 증오·혐오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도 이재명이 만든 상황은 아니었다. 이재명은 그런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선동의 재능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2017년 3월 1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오른쪽),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이재명은 사상 최다 참가 인원을 기록한 2016년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서 “여러분의 손으로 박근혜의 무덤을 파, 우리 손으로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줍시다”라고 외침으로써 청중을 열광시켰다. 청중을 열광시킨 이재명의 레전드 동영상은 모두 그런 과격 강성 발언이었다. 이재명의 첫 번째 대선 도전은 당내 경선에서 3위로 마감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를 따르고 숭배하던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의 업그레이드 된 후예는 지금도 건재하다.
정치평론가 유재일은 당시 경선 직후 손가혁의 좌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재명은 억울함이 쌓인 극단주의자들의 구심점이었다. 손가혁은 울분에 쌓인 사람들이고 삶과 정치에서 좌절이 누적된 사람들이었다. 고척돔 마지막 경선장을 떠나올 때 지하철에서 세상을 잃은 듯 서글피 우는 손가혁, 지나치게 누런 이와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을 봤다. 나를 흘깃 보고 모든 걸 체념한 듯 계속 우는 사람은 손가혁 이전에 사람이었다. 나도 울컥했다. 정치가 뭐길래, 패자의 진영에서 저리 슬피 우는가.”
승자가 된 포퓰리스트이재명은 ‘증오·혐오 언어의 귀재’일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솟구쳐 일어난 ‘개천에서 난 용’ 또는 ‘코리안 드림’의 산증인이었다. 스스로 진보임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이 그의 그런 출신 배경에 진보적 가치를 헌사했다. 그의 만독불침도 그런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됐다. 이재명의 국회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정적(政敵)인 대구시장 홍준표가 인정했듯이, 이재명은 “잡초의 생명력으로 살아온 인생이라서 그런지 참으로 대단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또한 그의 팬덤을 매료한 ‘이재명 신화’의 주요 구성 요소다.
5월 국회미래연구원이 공개한 ‘만들어진 당원: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란 제목의 보고서가 잘 지적했듯이, 대중정당의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는 영국·독일 등은 당원이 100만 명이 안 되고 감소 추세인데 한국은 1000만 당원으로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당원인 나라가 됐다. 양적 규모로만 보면 한국은 정당 민주주의의 선진국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이 보고서는 1000만 당원의 비밀 중 하나로 특정 팬덤 리더를 위해 당을 ‘지배하려는 당원’을 꼽았다.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거버넌스그룹 연구위원 박상훈은 “여야가 참여를 명분으로 온라인 투표 등 개방형 경선을 도입한 뒤 10만~20만 명 상당의 팬덤 당원만 있으면 당권은 물론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게 됐다”며 “포퓰리스트만 승자가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게 바로 ‘정당’을 사실상 ‘팬클럽’으로 만든 ‘이재명의 민주당’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또한 이재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의 독보적인 감정 발산 기질이 오늘의 한류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듯이, 그런 기질은 오늘의 이재명을 만드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재명의 명암(明暗) 중 어느 쪽이 두드러질 것인지에 대해선 남은 세월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하자.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9월호 표지.
입력2023-08-18
● 누런 이와 고단한 손으로 눈물 훔치던 사람들
● “이 수박 새끼야” 환청이 들릴 정도
● 업그레이드된 손가락혁명군의 후예들
● ‘이재명의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라 팬클럽
● 혐오 언어의 귀재면서 개천에서 난 용
● 명암(明暗) 중 어느 쪽이 두드러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에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2023년 1월 22~23일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에서 검찰 기소 시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가 63.8%, ‘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가 27.9%였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세 명 중 한 명(33.4%)은 이재명이 물러나야 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을 위한 방탄의 호위무사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중권은 “지금 의원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기 정치하기 위해서고 당보다는 내 공천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답을 제시했다. 그는 “강성 당원들에게 호소하면 공천을 받고, 심지어 초선이 최고위원까지 올라가는 걸 봐서 그러는 것”이라며 “선당후사를 해야 하는데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당을 저버리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놀라운 건 뭐냐 하면 민주당 사람들이 자기 당 걱정을 나보다도 안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 색출하기민주당은 2월 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진행한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정권 규탄 국민보고대회’를 앞두고 17개 시·도당 총동원령을 내렸다. 지역별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까지 당원을 동원하라고 했다. 주말까지 반납해 당대표를 지키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이미 이재명의 강성 지지자들이 활약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의원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재명이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의 1차 조사를 받은 다음 날인 1월 29일 ‘딴지일보’ 게시판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 검찰 방문 및 발언 SNS 전수조사’란 제목의 게시 글을 보자. 여기엔 민주당 의원 169명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한 명단에 서울중앙지검 출석 당시 동행 여부와 검찰 관련 비판 발언 여부를 항목별로 O 또는 X 표시한 표를 올렸다. 동행과 비판 발언, 둘 중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 85인’은 따로 표를 만들어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침묵하는 것은 “당원에 대한 배반”이고, “경선과 총선 때 평가해 위선자들이 걸러지기를 바란다”는 자상한 안내 메시지도 곁들여졌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원’으로 분류된 의원들의 의원실에는 전화와 팩스, 의원 개인 휴대전화엔 ‘문자 폭탄’ 등이 쏟아졌다.
2월 2일 의원총회에서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주말 집회 계획을 놓고 불만을 쏟아낸 동시에 지도부가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이재명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제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비난 문자 폭탄을 받으신 분의 말씀이 있었다”며 지지자들을 향해 “저와 함께하는 동지라면 문자 폭탄 같은 내부를 향한 공격은 중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지자들의 자제를 그런 식으로 요청했지만,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지지자들이 이재명의 요청을 무시했기 때문일까. 2021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나온 이재명의 그 유명한 12·7 발언에 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말이라는 건 맥락이 있다. 맥락을 무시하면 진짜 문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그런 맥락을 읽어내는 데엔 이미 달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정권 규탄 국민보고대회’엔 이재명 등 지도부를 포함해 100여 명의 현역의원과 원외지역위원장, 중앙당·지역위 당직자, 지지자들이 대거 운집했다. 민주당은 이날 행사에 경찰 추산 10만 명, 주최 측 추산 30만 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날 밤 이재명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현장에 온 의원들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참석 의원들의 이름과 ‘인증 숏’이 줄줄이 댓글로 달렸다.
한 이용자는 “국회 출석보다 더 중요하다”며 “불참자를 알려 다음에는 다 나오도록 경고해야 한다”고 했다. 팬카페에선 실시간으로 이재명·민주당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했는데, 여기엔 ‘완’이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완’은 민주당에 ‘긍정적인’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를 완료했다는 인증이었다.
이탈표 나오자 이낙연에 맹비난2월 27일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 297명이 투표해 찬성 139표·반대 138표·기권 9표·무효 11표를 받아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애초 압도적 부결을 공언했던 것과 달리 최소 31표에 달하는 이탈표가 대거 나오자, 이재명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 사이에서 비(非)이재명계를 뜻하는 ‘수박’ 색출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탈자 명단을 만들어 응징을 주장하는 인민재판식 추궁이 이어지자, 당내 일부 의원들의 양심선언까지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선 민주당 내 ‘이탈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계 의원 40여 명의 이름과 지역구가 적힌 ‘살생부’가 공유됐다.
개딸은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많이 나온 게 전 대표 이낙연의 책임이라며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에게까지 맹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홈페이지 국민응답센터엔 “이낙연 전 대표를 당에서 영구 제명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대의원제를 폐지하고 공천권을 권리당원에게 넘기라”는 요구를 내걸고 강성 친명 카페를 중심으로 ‘권리당원 가입 운동’이 시작됐다. 개딸의 공격적인 ‘증오·혐오 마케팅’ 덕분에 ‘이낙연 제명 청원’은 사흘 만인 3월 3일 공식 답변 기준인 5만 명의 동의를 얻었으며, 당원 가입자도 급증했다. 민주당 대변인 박성준은 “체포동의안 부결 후 3일간 일평균 4700명이 입당해 총 1만4000명이 넘었다. 평소의 10배”라고 했다.
개딸들은 민주당사 앞에서 이른바 ‘수박 깨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는 ‘수박 깨기’ ‘수박 격파’ ‘수박 썰기’ ‘시민 발언’ ‘이재명 대표 응원’ 등으로 진행됐다. 이즈음 온라인에서는 문재인과 이낙연, 친문·비명계 의원 등 7명을 ‘수박 7적’으로 칭하며 처단하자는 포스터가 돌고 있었다. 포스터에는 해당 인사들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로 구성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월 3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3월 4일 오전 이재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명단 제작, 문자폭탄, 제명 요청… 누가 이득 볼까요?’라는 글에서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것은 상대 진영이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민주당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공유한 뒤 “이제 와서 말리는 척 해봐야…”라며 “이게 다 이재명이 부추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중은 자기 동력을 갖고 있다.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며 “그들을 세뇌시켜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고 했다.
나중에 잡아먹히게 될망정 이재명은 아직까진 어느 모로 보건 잡아먹힐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재명은 “시중에 나와 있는 명단은 틀린 것이 많다”며 “5명 중 4명이 그랬다고 해도 5명을 비난하면 1명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누명을 당하는 심정 (…)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는 명단이 정확하기만 하다면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한 ‘망언’ 또는 ‘실언’이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이 홍위병에게 ‘당신들 분노가 정당하다’는 뜻의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추겨서 중국을 20년 암흑기로 끌고 갔다”며 “잘못된 팬덤 문화는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내 억제해 줘야 하는데 이 대표는 그걸 전혀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자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성 지지층의 행태는 이 대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실제로 ‘재명이네 마을’에는 ‘수박 색출’을 멈춰달라는 이 대표의 메시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딸과 결별 촉구, 이재명이 응할 리가…KBS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3월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이 53.9%,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이 40.7%로 나타났다. 앞서 KBS의 새해 여론조사(1월 18~20일 조사)에선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은 47.7%였고,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은 44.1%였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52.1%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고, 39.3%는 ‘잘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느냐는 질문엔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53.8%였고,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40.7%였다.
이런 여론마저 뒤엎어보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좌절감의 표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른바 ‘개토커(개딸 스토커)’ ‘개파라치(개딸 파파라치)’로 불리는 노골적인 폭력 수법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은 개딸들의 육탄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항의도 못 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다. 이재명의 극렬 지지자들은 개딸로 통칭하지만 현장에는 2030 여성보다는 중년 여성이나 남성이 더 많았다. 이들은 체포 동의안 사태 이후 문자 폭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카메라를 들고 지역구 행사나 개인 일정까지 따라다니며 막말을 퍼부었다. 한 의원은 “‘이 수박 새끼야’란 환청이 들릴 정도”라고 했다.
3월 14일 비명계 의원 조응천은 개딸과 이재명의 결별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이재명을 향해 “좀 더 세게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며 “경고하고 절대 하면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당신들하고는 결별하겠다 정도의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셔야(한다)”라고 했다. 조응천이 핵심을 찌른 정답을 제시한 셈이지만, 문제는 이재명이 지지자들에게 자제하라는 시늉만 낼 뿐 그들과의 결별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강성 팬덤과의 결별은 사실상 자신의 오늘을 만든 팬덤 정치를 그만두라는 주문이었기에 그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재명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는 3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수박 7적 처단하자’ 이미지가 널리 공유된 것 등을 가리키며 “상대를 가장 쉽고 빠르게 제압하는 방법이 이간질이다”라고 했다. 일견 비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에 덧붙인 “우리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변복해서 공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구? “저쪽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한 게 아닐까”라는 게 이재명이 내놓은 답이었다.
이재명은 “요즘 나도 당한다”는 엄살 전략도 들고 나왔다. 이전에도 써먹은 오래된 방법이었다. 그는 3월 21일 당내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간담회에서 “요즘은 나에게도 여러분들이 받는 항의 전화가 온다. 나보고 ‘원래 이재명은 사이다였는데 이젠 변했다’며 손절하겠다 하더라”라고 말했다. 똑같이 당하는 처지에 자신에게 뭘 요구하지 말라는 ‘쇼’인 셈이었다.
이재명의 반성 없는 ‘온정주의’4월 4일 중앙일보가 제21대 국회 현역의원의 유튜브 채널 운영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299명 가운데 275명(92%)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유튜브 채널의 평균 구독자는 약 1만5400명, 평균 조회수는 약 227만 회였다. 구독자 수와 동영상 조회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이재명이 운영하는 ‘이재명’ 채널이 구독자 77만 명(조회수 1억5854만 회)으로 20만 명대에 머무른 2·3위를 압도적으로 누른 1위였다.
이런 미디어 혁명이 정치마저 근본적으로 바꾼 걸까.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4월 18일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강연에서 “이른바 ‘빠’ 현상 등 ‘팬덤’ 현상이 중심에 자리 잡은 온라인 행동주의가 전통적인 당의 역할과 구조를 송두리째 변화시켜 본래 정당 기능을 대체했다”며 “여야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중심으로 수준 낮은 적대와 혐오를 이어간다. ‘팬덤 리더’는 있어도 ‘정당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즈음 민주당에서 터진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사건은 세월을 역행하는 그 시대착오성에 비추어 볼 때 ‘정당의 팬덤화’와 무관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 사건에 실망한 권리당원들은 ‘이재명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하며 강도 높은 분노를 표출했다. 반면, 개딸 등 이재명의 강성 지지층은 이 사건의 원흉을 ‘대의원제’로 규정하고 폐지 촉구 운동에 돌입해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는 극심한 혼란을 보였다. 이게 그런 식으로 싸울 일이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대의원제는 권리당원이 수도권·충청·호남, 특히 호남에 집중돼 있어, 권리당원만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영남은 완전히 소외되는 걸 보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지키기 위한 다른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차분하게 논의하면 될 일이었다. 이재명이 자신의 생각을 정정당당하게 역설하면서 그런 합리적 논의를 유도하면 좋았을 텐데, 그는 대의원제 폐지 지지 의사만 밝히면서 비방 위주의 세 싸움으로 흐르는 걸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5월 2일 새로운 민주당 원내대표 박광온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확장하고 통합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며 “지지자들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하게 들리는, 아니 그렇게 들어야 할 말이었지만, 강성 지지층에선 박광온의 행보가 ‘이재명 제거’ 작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재명이네 마을’엔 박광온 등 신임 원내대표단을 ‘수박’이라고 칭하며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지자들만으로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한 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이런 이익공동체적 행태는 5월 5일 ‘코인 게이트’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친명 호위무사인 김남국 논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주당이 당 차원의 진상 조사를 실시하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개딸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재명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강성 지지층은 김남국에 대한 ‘응원 릴레이’도 이어갔다.
김남국이 5월 14일 탈당 선언을 하면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김남국 구하기에 나섰다. 경쟁적으로 옹호의 발언을 일삼는 과정에서 급기야 양이원영은 “민주당은 도덕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무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은 “중요한 상임위를 하면서도 코인 거래를 한 김남국 의원을 실드 치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에 오만정이 떨어졌다”며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비웃을 일을 버젓이 하면서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라니…”라고 질타했다.
이 모든 게 이재명의 리더십 위기로 비화됐다. 5월 16일 한겨레는 “거듭되는 악재로 당이 누란의 위기에 놓였는데도, 온정주의로 일관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했다. 이렇듯 여러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가 이재명의 ‘온정주의’였는데, 실은 그게 바로 이재명 리더십의 비결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친명 및 강경파의 ‘반성 없는 온정주의’가 반복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당내에선 86그룹과 친명이 각각 이익집단화해 서로 지켜주는 ‘이익공동체’ 같은 구도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한 중립 성향 의원은 “86그룹이 그랬듯 신진 친명 그룹도 똑같이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식구 감싸기에 들어간다”며 “양쪽이 함께 이익을 서로 보전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런 행태는 무슨 큰 문제가 터지면 호된 비판을 받지만, 실은 86그룹의 장기집권이 말해 주듯이 가장 강한 응집력과 비교우위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이재명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도 최측근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목숨 걸고 충성할 수 있게끔 하는 용인술이었다. 그런데 이런 용인술에 반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하라는 건 이재명의 호위무사단 체제를 스스로 해체하라는 요구나 다름 없다. 그렇게 되면 지금도 감옥에서 이재명 방탄을 위해 헌신하는 최측근 인사들마저 무너지는 아마겟돈이 열릴 수도 있는데 이재명이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재명에겐 “이재명의 이름을 팔아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정치인들은 좀 끊어내야 된다”는 요청도 있었지만, 호가호위하는 재미도 없이 충성할 측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온정주의는 이재명의 마음이 약하거나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만독불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방탄 장치’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당의 주인이 누구인가. 이걸 우리가 잊으면 안 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도 잘해야 한다. 꼬투리를 잡히지 말아야 한다.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행동할 건 하고, 다만 거기서 혹시라도 반격의 빌미가 되지 않게 하자.” 5월 24일 이재명이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생중계에서 한 말이다. 당내에서 김남국의 ‘가상자산 투기’ 문제를 두고 지도부의 대응을 비판한 청년들이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도 넘은 공격을 받자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엉겹결에 ‘꼬투리’니 ‘반격의 빌미’니 하는 말을 씀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게 아닌가. 비명계 의원 이원욱이 SNS를 통해 공개한 ‘문자 테러’ 발신자가 당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서도 이재명의 속내가 또 한 번 드러나고 말았다.
선동 재능으로 쓴 ‘이재명 신화’이재명은 “허위 사실에 기초하는 건 음해다. 허위 사실에 기초해 비난, 비판하면 되겠어요”라며 이원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돈 안 들고 제일 효과적인 전략이 이간질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문자 테러로 당을 이간질한다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조응천은 “적반하장”이라고 평가하며 “그분이 당원인지가 이 사태 본질이냐고 되묻고 싶다. 본질은 개딸이 어느새 강성 지지자나 정치 훌리건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돼버렸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6월 27일 이재명은 국회 당대표실에서 15명의 민주당 고문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당 원로들의 조언을 듣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당내 원로들은 이재명을 향해 ‘강성 지지층’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개딸 손절’을 요청한 셈이었지만, 팬덤 정치는 이재명의 정치적 정체성이었기에 사실상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민주당이 새로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 ‘블루웨이브’가 개설 하루 만인 7월 11일 개딸과 이낙연의 지지자 그룹 간 전쟁터로 변한 것도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팬덤 정치의 한 풍경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그럴 것이다. 민주당이 이런 분열의 수렁으로 휘말려 들어간 건 SNS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디지털혁명이 만개한 시점에 이재명이 전국적 지도자로 등장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이재명은 ‘SNS 대통령’ ‘유튜브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정치에 활용하는 데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밝힌 ‘SNS 활용 비법’ 중 하나는 열정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SNS를 보다가 굴러떨어지기도 할 정도로 많이 본다.” SNS가 ‘증오·혐오의 상품화’에 매우 유리한 미디어라는 건 이재명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이재명을 이름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에서 전국적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만들어준 2016년 11~12월의 촛불집회 정국에서 박근혜에 대한 증오·혐오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도 이재명이 만든 상황은 아니었다. 이재명은 그런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선동의 재능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2017년 3월 1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오른쪽),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이재명은 사상 최다 참가 인원을 기록한 2016년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서 “여러분의 손으로 박근혜의 무덤을 파, 우리 손으로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줍시다”라고 외침으로써 청중을 열광시켰다. 청중을 열광시킨 이재명의 레전드 동영상은 모두 그런 과격 강성 발언이었다. 이재명의 첫 번째 대선 도전은 당내 경선에서 3위로 마감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를 따르고 숭배하던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의 업그레이드 된 후예는 지금도 건재하다.
정치평론가 유재일은 당시 경선 직후 손가혁의 좌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재명은 억울함이 쌓인 극단주의자들의 구심점이었다. 손가혁은 울분에 쌓인 사람들이고 삶과 정치에서 좌절이 누적된 사람들이었다. 고척돔 마지막 경선장을 떠나올 때 지하철에서 세상을 잃은 듯 서글피 우는 손가혁, 지나치게 누런 이와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을 봤다. 나를 흘깃 보고 모든 걸 체념한 듯 계속 우는 사람은 손가혁 이전에 사람이었다. 나도 울컥했다. 정치가 뭐길래, 패자의 진영에서 저리 슬피 우는가.”
승자가 된 포퓰리스트이재명은 ‘증오·혐오 언어의 귀재’일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솟구쳐 일어난 ‘개천에서 난 용’ 또는 ‘코리안 드림’의 산증인이었다. 스스로 진보임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이 그의 그런 출신 배경에 진보적 가치를 헌사했다. 그의 만독불침도 그런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됐다. 이재명의 국회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정적(政敵)인 대구시장 홍준표가 인정했듯이, 이재명은 “잡초의 생명력으로 살아온 인생이라서 그런지 참으로 대단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또한 그의 팬덤을 매료한 ‘이재명 신화’의 주요 구성 요소다.
5월 국회미래연구원이 공개한 ‘만들어진 당원: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란 제목의 보고서가 잘 지적했듯이, 대중정당의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는 영국·독일 등은 당원이 100만 명이 안 되고 감소 추세인데 한국은 1000만 당원으로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당원인 나라가 됐다. 양적 규모로만 보면 한국은 정당 민주주의의 선진국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이 보고서는 1000만 당원의 비밀 중 하나로 특정 팬덤 리더를 위해 당을 ‘지배하려는 당원’을 꼽았다.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거버넌스그룹 연구위원 박상훈은 “여야가 참여를 명분으로 온라인 투표 등 개방형 경선을 도입한 뒤 10만~20만 명 상당의 팬덤 당원만 있으면 당권은 물론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게 됐다”며 “포퓰리스트만 승자가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게 바로 ‘정당’을 사실상 ‘팬클럽’으로 만든 ‘이재명의 민주당’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또한 이재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의 독보적인 감정 발산 기질이 오늘의 한류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듯이, 그런 기질은 오늘의 이재명을 만드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재명의 명암(明暗) 중 어느 쪽이 두드러질 것인지에 대해선 남은 세월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하자.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9월호 표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