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당’ 김어준은 증오 · 혐오 본능에 불붙인 방화범인가
[강준만의 회색지대]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2-08-28
● 정치평론은 참 더러운 일?
● ‘음모’와 ‘유희’가 충만한 정치 담론
● ‘잡놈’ 이미지, 면책 위한 보호막
● 동맹 세력 대표 인물 유시민
●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례없는 굿판
● 공영방송 TBS 골격 무너뜨린 박원순
● 왜 김어준 앞에만 서면 과격해지는가
방송인 김어준 씨. [동아DB, Gettyimage]“내가 해온 정치평론가는 참 더러운 일이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이 최근 출간한 ‘나를 찾는 시간: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에서 한 말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그리고 감명 깊게 읽었다. 그런데 왜 ‘더러운 일’이라는 걸까. 정치평론가라는 직업이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유창선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던 ‘친박’ 평론가가 온갖 방송의 진행자 자리를 꿰차며 돈방석에 앉는 광경을 보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정부가 탄핵당해 물러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던 ‘친문’ 평론가들이 마찬가지로 온갖 방송의 진행자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도 조금도 다르지 않게 똑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역사의 코미디 같은 장면들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정치평론을 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는가. 그래서 더러운 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정치평론가는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극단적, 일방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가리켜 ‘정치군수업자’라고 했는데, 그런 정치군수업자형 정치평론가가 많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진영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평론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유창선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진영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진보적 정치평론가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회가 그렇게 독립적인 평론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권이건 일반 시민이건 편파성을 너무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독립적인 평론가를 탄압한다. 그러니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은 그런 고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면 ‘진영 스피커’ 노릇을 잘하면 돈은 물론 명예가 쏟아진다. 수많은 추종자도 거느릴 수 있다. 심지어 정권의 실력자들마저 자신이 그의 추종자임을 밝히기 위해 안달한다.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누린 정치평론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김어준을 꼽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게다. 그는 전형적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음모’와 ‘유희’가 충만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 담론을 통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평론가로 봐도 무리는 없으리라.
문재인과 김어준의 공생관계
최근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TBS ‘지원중단 조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문재인 정권의 탁월한 선전·선동 기구였지만,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이 박영선에 압승을 거둠으로써 그런 역할에 의문이 제기됐다. 서울시 정부가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서울시의 재정 지원을 받는 TBS가 문 정권의 선전·선동 기구 역할을 계속해도 괜찮으냐는 의문이었다.
교통방송은 이미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당시의 대표 선임(2018년 10월)은 독립(2019년 12월) 이전에 이뤄진 것이었다. 교통방송 경영진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밝혀야 했음에도 이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장악한 서울시의회라는 ‘든든한 빽’을 믿은 것인지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다가 1년여 후인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직은 물론 서울시의회를 76대 36의 비율로 지배하게 되자 교통방송의 그런 ‘배 째라 전략’은 파국을 맞았고, 서울시의회는 7월 4일 TBS에 대한 서울시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논하려는 건 아니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기반한 김어준의 선전·선동 활동을 주요 사건 중심으로 기록하고 논평함으로써 ‘팬덤 정치’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김어준은 누구인가. 그는 문재인의 ‘대통령 자격’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문재인 띄우기’를 실천한 사람이다. 둘의 관계는 2009년 5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서울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는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정치 보복 사죄하라”고 외쳤다. 상주 역할을 맡은 문재인은 이명박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문재인의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을 포착한 김어준은 이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고, 대통령이 된 후엔 ‘문재인 지키기’의 선봉에 섰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김어준은 그 후 2년간 문재인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10월 5일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 지승호와 같이 출간한 ‘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도 대박을 치면서, 문재인도 뜨기 시작했고다. 이는 김어준의 무게감을 키워줌으로써 문재인과 김어준 사이에 상호 공생관계가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1년 가을 나꼼수는 방송 1회당 평균 60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신드롬’을 만들어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박원순이 당선된 10·26 서울시장 보선 때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미디어는 KBS도 MBC도 아닌 나꼼수였다. 나꼼수가 박원순 당선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1월 18일 전국언론노조는 나꼼수를 제21회 민주언론상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이때 상을 준 언론노조 위원장 이강택은 훗날(2018년 10월) 교통방송 대표로 김어준과 다시 만나게 된다.
나꼼수를 위해 4·11 총선을 망친 문재인
4·11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이틀 남겨둔 2012년 4월 9일 부산대 앞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왼쪽 세 번째)이 주진우 ‘시사IN’ 기자(왼쪽 첫 번째),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왼쪽 두 번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오른쪽 첫 번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2012년 1월 말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코피 사건’이 터졌을 때 나꼼수를 공격적으로 옹호했던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자신의 옹호 논거 중 하나로 “그들은 우리 사회 비주류들이다. 그들 표현대로 나꼼수는 ‘떨거지’ ‘잡놈’들의 놀이터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미지는 김어준에게 면책의 기회를 제공하는 보호막이 됐다.
김어준은 심각하고 진지한 정치평론가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할 정도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문제가 있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면 ‘잡놈’ 이미지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는 엉터리 주장을 했다는 게 밝혀진 후에도 끝까지 사과나 해명을 하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은데, 그래도 이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잡놈이니까! 그런데 또 묘한 건 이게 또 김어준이 지지자들로부터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교주’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강점이 됐다.
김어준은 ‘진보적 비주류’나 ‘진보적 잡놈’으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진보적 인사가 나꼼수를 긍정한 건 아니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선 나꼼수의 담론화 방식을 문제 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2011년 10월 27일 진보적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시사IN’에 기고한 ‘내가 김어준을 비판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나꼼수의 종교화’를 문제 삼았다.
그는 “김어준의 문장은 선과 악이 대립하다가 결국 대체 왜 믿지 못하느냐라는 타박으로 끝을 맺는다”며 “여기에는 명백히 종교적인 선동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저항할 최소한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민의 힘 운운하는 건 당신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그러니까 ‘빠’가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진보논객 진중권도 2011년 10월 나꼼수 콘서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불륜과 사생아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껏 들떠서 정신줄 놓고 막장까지 간 거다. 포르노라는 게 원래 노출 수위를 계속 높여야 한다”면서 “제발 경쾌하고 유쾌하게 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목숨 걸지 않으면 나꼼수 못 까요” “꼼진리교 신자들은 워낙 닥치고 찬양이 아니면 다 나꼼수에 대한 질투로 읽더라고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허지웅도 다음번 칼럼에서 “지난번 칼럼에서 김어준을 둘러싼 신앙 간증 친위부대를 비판한 이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언급하면 ‘너 한나라당 편이냐’며 싸움이 난단다”며 어이없어했다. 돌이켜 보건대, 이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놀랍지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민주당 진영엔 김어준의 헤게모니가 여전히 살아 있어 이런 생각을 발설하는 건 여전히 위험한 일이다.
문재인의 ‘김어준·나꼼수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으며, 이는 2012년 4·11 총선에서 잘 드러났다.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은 민주통합당 서울 노원갑 후보로 공천을 받았는데, 그가 과거에 인터넷방송에서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고, 노인 비하 발언까지 터져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4월 7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의 사퇴를 권고했지만, 4·11 총선 직전의 주말 문재인은 한명숙에게 전화를 걸어 “김용민 씨에게 사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뉴스를 전한 ‘동아일보’는 이렇게 썼다.
“실제로 문재인 고문은 김씨의 막말 파문에도 그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선거 이틀 전인 9일 방송된 ‘나꼼수’에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노회찬 대변인 등과 함께 출연했다. (…) 같은 날엔 부산대 앞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 나꼼수 멤버들과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를 벌였다.”
그래서 김용민은 사퇴하지 않았고,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을 깨고 과반인 152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통합당 패배의 결정적 이유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명숙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반면, 당시 문재인의 책임론은 거의 불거지지 않았다. 이는 문재인의 리더십과 관련해 ‘공사(公私) 구분 의식’의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 사건이다.
김어준은 정치평론가이자 플랫폼 사업자
2019년 5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오른쪽)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가운데) 민주연구원장이 방송인 김어준 씨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스1]김어준이 나중에 ‘포스트 문재인’으로 지명한 이재명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서 본격적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정치’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재명은 그런 지명도를 업고 2015년 3월 27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43화에 출연해 성남 의료원 설치, 무상 산후조리 사업 등의 복지사업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해 나갔다. 이에 나꼼수 김용민은 이재명에게 “대통령이 되면 전국적인 무상 산후조리원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이재명은 “산후조리원뿐만이 아니라요. (…) 그전에 작살을 좀 내야죠”라고 말해 녹화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재명의 발언에 김용민·김어준은 한동안 멍하니 이재명만을 바라보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수가 쏟아졌다. 이는 이재명의 여러 별명 중 하나인 ‘작살’이 생겨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열성적 팬덤을 구축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며 환호했는데, 이렇게 전율한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김어준은 그 자신이 정치평론가인 동시에 자신이 주도하는 무대의 ‘분위기’와 ‘맥락’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의 발언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플랫폼 사업자이기도 했다. 민주당 진영의 팬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의 강성·과격 발언이 주로 김어준과의 대담 형식을 통해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메커니즘 때문일 게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김어준은 ‘팬덤 정치’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무언의 동맹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런 동맹 세력의 대표적 인물은 단연 유시민이다.
2017년 5월 5일 유시민은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지식인이거나 언론인이면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건 옳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대통령만 바뀌는 거지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이 사방에 포진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의당 평당원이지만 범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의 이 발언은 그해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됐다. 유시민이 깃발을 든 어용 지식인이 양산됐으며, 이들을 따르거나 보호하려는 ‘어용 시민’도 폭증세를 보였다. ‘팬덤 정치’를 신봉하는 문재인이 우두머리가 된 가운데 한국에선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팬덤 정치’의 향연(또는 굿판)이 이후 5년간 공격적으로 전개됐다.
교통방송은 박원순·김어준에게 전리품이었나‘팬덤 정치’의 선두엔 2016년 9월 26일부터 시작된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있었다. 교통방송은 공영방송이었지만, 그 골격을 무너뜨린 건 2011년 10월 27일부터 2020년 7월 9일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박원순 체제였다. 2011년 11월 박원순의 서울시장 취임 직후 ‘나꼼수’ 출신 김용민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에서 “김어준이 안철수·박원순 두 후보 모두에게 ‘시장 되면 저에게 교통방송을 달라’고 했다”고 썼다. 그는 “물론 농담이었고 박 시장 당선 후 ‘그 욕망을 포기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며 “박 시장이 (교통방송을) 전리품으로 인식할 것인지 시민에게 돌려줄지 관심거리다”라고 했다.
“교통방송을 달라”는 게 과연 농담이었을까. 박원순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나꼼수에 대한 지분을 요구한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박원순은 그 요구에 흔쾌히 응했으니, 박원순과 김어준 모두 교통방송을 전리품으로 여겼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평가는 교통방송을 공영방송답게 운영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걸로 봐야 할 것이다.
KBS 기자 출신으로 2006년부터 5년간 교통방송 대표를 지낸 이준호는 취임 직후 중앙 정치 이슈를 다루지 말고 서울시의회 뉴스만 다루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영방송은 정권이 주인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KBS·MBC 사장이 바뀌고 대규모 인사가 납니다. 한직으로 밀려난 직원들은 5년 뒤를 기다리죠. 정권이 또 바뀌면 직원들도 다시 자리를 바꿉니다. 그런데 TBS는 기자와 시사 PD가 50명도 안 돼요. 한직으로 밀려날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 뉴스를 다루면 정권 홍보 방송밖에 못 해요. 그래서 아예 여의도 쪽은 선을 끊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 겁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두 달 후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준호는 “내가 퇴임한 뒤부터 교통방송이 정치 방송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7년 한 언론인 연말 모임에서 박원순을 만나 “딴지일보 하던 사람(김어준)이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잘못이다. 공영성을 망가뜨리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걸 회복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10분 동안 얘기하는데 박 시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내가 경기고 선배여서 듣지 않을 순 없었을 겁니다.”(조선일보 2020년 11월 6일 인터뷰)
‘한겨레 절독’ 부르짖던 김어준 팬덤이 글 첫머리에 인용한 “내가 해온 정치평론가는 참 더러운 일이다”는 유창선의 명언을 상기해 보시라. 때는 바야흐로 나꼼수의 전성시대였다. 김어준과 주진우는 텔레비전으로까지 진출했다. 문재인 정권이 국정농단으로 인한 보수의 폐허 위에서 집권한 탓인지 방송이 정파성으로 인해 불공정 방송을 하는 일이 벌어져도 언론계와 학계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국민의당 최고위원이자 변호사인 장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2018년 2월 9일 김어준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과 주진우의 MBC ‘스트레이트’ 진행을 두고 “김어준, 주진우 등 노골적으로 친문 성향을 보여온 인사들이 속속 (지상파) 진행자로 등용되고 있다”며 “대놓고 어용 방송 한다는 인사가 공정성이 생명인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자도 아니고 중립성을 지켜야 할 진행자로 등용된 예는 박근혜·이명박 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김용민은 2018년 5월부터 퇴근시간대에 KBS1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를 진행했다.)
김어준에겐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라는 제3의 무기도 있었다. 그는 2월 23일 당시 핵심 이슈였던 성범죄 미투 폭로를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보는 충격적 발언을 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3월 9일엔 “안희정에 봉도사(성추행 의혹을 받던 전 의원 정봉주의 별명)까지. 이명박 가카(각하)가 막 사라지고 있다”며 “제가 (미투) 공작을 경고했지 않았나. 그 이유는 이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건 명백한 건데”라고 주장했다.
김어준은 3월 22일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까지 동원해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정봉주 쪽에서 제공한 사진을 가지고 정봉주 쪽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그로부터 6일 후 그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정봉주 사건이 결정적 반전을 맞았다. 정봉주는 그간 문제의 렉싱턴호텔에 간 적이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왔는데, 그곳에서 쓴 신용카드 결제 내역이 드러난 것이다. 블랙하우스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어준 씨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지상파방송을 이용했다”며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4월 2일 정봉주가 “죄송하다”며 모든 공적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과 관련, 한겨레 기자 김지훈은 정봉주와 김어준의 사과를 요구하는 칼럼을 쓰면서 “두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데, 나도 그의 지지자들에게 어떤 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칼럼에 쏟아진 악플은 ‘한겨레 절독’을 들고나왔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저는 30년 구독 방금 끊었습니다. 제 구독료가 이런 기자 봉급 나간다는 게 참을 수 없네요.” “이런 기사를 보려고 내가 한겨레를 10년 만에 다시 구독했나. 자괴감이 드네. 그냥 끝내리. 내가 뭐 머리 아프게 이런 기레기 같은 글을 보고 있나.” “그동안 혹시나 했지만 한겨레에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 구독료는 안 들어가니까 광고주 돈 받아서 쓰레기 기사를 쓰던 말던 혈압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
이는 어떤 과오를 저질러도 지지자들로부터는 오히려 뜨거운 지지를 받는 김어준의 왕국이 완성됐음을 말해 주는 작은 사건이다. 김어준의 왕국은 김어준이 계속 ‘킹메이커’ 역할을 해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가 이른 시점부터 ‘차기 대통령’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월 4일 김어준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당시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던 경기지사 이재명을 ‘포스트 문재인’이라고 칭하면서 이재명을 절대악으로 만드는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음모론은 그가 가장 애용하는 선전·선동의 최대 무기다.
2019년 8월 27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민주당은 이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했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쿠데타의 ‘수괴’로 몰아가는 폭격을 퍼붓게 되며, 그 선두 그룹엔 김어준이 있었다.
김어준은 ‘조국 수호 운동’ 총사령탑
교통방송은 이미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당시의 대표 선임(2018년 10월)은 독립(2019년 12월) 이전에 이뤄진 것이었다. 교통방송 경영진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밝혀야 했음에도 이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장악한 서울시의회라는 ‘든든한 빽’을 믿은 것인지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다가 1년여 후인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직은 물론 서울시의회를 76대 36의 비율로 지배하게 되자 교통방송의 그런 ‘배 째라 전략’은 파국을 맞았고, 서울시의회는 7월 4일 TBS에 대한 서울시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논하려는 건 아니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기반한 김어준의 선전·선동 활동을 주요 사건 중심으로 기록하고 논평함으로써 ‘팬덤 정치’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김어준은 누구인가. 그는 문재인의 ‘대통령 자격’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문재인 띄우기’를 실천한 사람이다. 둘의 관계는 2009년 5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서울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는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정치 보복 사죄하라”고 외쳤다. 상주 역할을 맡은 문재인은 이명박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문재인의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을 포착한 김어준은 이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고, 대통령이 된 후엔 ‘문재인 지키기’의 선봉에 섰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김어준은 그 후 2년간 문재인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4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10월 5일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 지승호와 같이 출간한 ‘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도 대박을 치면서, 문재인도 뜨기 시작했고다. 이는 김어준의 무게감을 키워줌으로써 문재인과 김어준 사이에 상호 공생관계가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1년 가을 나꼼수는 방송 1회당 평균 60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신드롬’을 만들어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박원순이 당선된 10·26 서울시장 보선 때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미디어는 KBS도 MBC도 아닌 나꼼수였다. 나꼼수가 박원순 당선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1월 18일 전국언론노조는 나꼼수를 제21회 민주언론상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이때 상을 준 언론노조 위원장 이강택은 훗날(2018년 10월) 교통방송 대표로 김어준과 다시 만나게 된다.
나꼼수를 위해 4·11 총선을 망친 문재인
4·11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이틀 남겨둔 2012년 4월 9일 부산대 앞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왼쪽 세 번째)이 주진우 ‘시사IN’ 기자(왼쪽 첫 번째),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왼쪽 두 번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오른쪽 첫 번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2012년 1월 말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코피 사건’이 터졌을 때 나꼼수를 공격적으로 옹호했던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자신의 옹호 논거 중 하나로 “그들은 우리 사회 비주류들이다. 그들 표현대로 나꼼수는 ‘떨거지’ ‘잡놈’들의 놀이터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미지는 김어준에게 면책의 기회를 제공하는 보호막이 됐다.
김어준은 심각하고 진지한 정치평론가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할 정도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문제가 있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면 ‘잡놈’ 이미지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는 엉터리 주장을 했다는 게 밝혀진 후에도 끝까지 사과나 해명을 하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은데, 그래도 이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잡놈이니까! 그런데 또 묘한 건 이게 또 김어준이 지지자들로부터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교주’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강점이 됐다.
김어준은 ‘진보적 비주류’나 ‘진보적 잡놈’으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진보적 인사가 나꼼수를 긍정한 건 아니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선 나꼼수의 담론화 방식을 문제 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2011년 10월 27일 진보적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시사IN’에 기고한 ‘내가 김어준을 비판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나꼼수의 종교화’를 문제 삼았다.
그는 “김어준의 문장은 선과 악이 대립하다가 결국 대체 왜 믿지 못하느냐라는 타박으로 끝을 맺는다”며 “여기에는 명백히 종교적인 선동이 존재하고 있다. 이에 저항할 최소한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민의 힘 운운하는 건 당신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그러니까 ‘빠’가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진보논객 진중권도 2011년 10월 나꼼수 콘서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불륜과 사생아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껏 들떠서 정신줄 놓고 막장까지 간 거다. 포르노라는 게 원래 노출 수위를 계속 높여야 한다”면서 “제발 경쾌하고 유쾌하게 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목숨 걸지 않으면 나꼼수 못 까요” “꼼진리교 신자들은 워낙 닥치고 찬양이 아니면 다 나꼼수에 대한 질투로 읽더라고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허지웅도 다음번 칼럼에서 “지난번 칼럼에서 김어준을 둘러싼 신앙 간증 친위부대를 비판한 이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언급하면 ‘너 한나라당 편이냐’며 싸움이 난단다”며 어이없어했다. 돌이켜 보건대, 이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놀랍지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민주당 진영엔 김어준의 헤게모니가 여전히 살아 있어 이런 생각을 발설하는 건 여전히 위험한 일이다.
문재인의 ‘김어준·나꼼수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으며, 이는 2012년 4·11 총선에서 잘 드러났다.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은 민주통합당 서울 노원갑 후보로 공천을 받았는데, 그가 과거에 인터넷방송에서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고, 노인 비하 발언까지 터져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4월 7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의 사퇴를 권고했지만, 4·11 총선 직전의 주말 문재인은 한명숙에게 전화를 걸어 “김용민 씨에게 사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뉴스를 전한 ‘동아일보’는 이렇게 썼다.
“실제로 문재인 고문은 김씨의 막말 파문에도 그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선거 이틀 전인 9일 방송된 ‘나꼼수’에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노회찬 대변인 등과 함께 출연했다. (…) 같은 날엔 부산대 앞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 나꼼수 멤버들과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를 벌였다.”
그래서 김용민은 사퇴하지 않았고,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을 깨고 과반인 152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통합당 패배의 결정적 이유는 김용민의 ‘막말 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명숙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반면, 당시 문재인의 책임론은 거의 불거지지 않았다. 이는 문재인의 리더십과 관련해 ‘공사(公私) 구분 의식’의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 사건이다.
김어준은 정치평론가이자 플랫폼 사업자
2019년 5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오른쪽)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가운데) 민주연구원장이 방송인 김어준 씨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스1]김어준이 나중에 ‘포스트 문재인’으로 지명한 이재명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서 본격적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정치’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재명은 그런 지명도를 업고 2015년 3월 27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43화에 출연해 성남 의료원 설치, 무상 산후조리 사업 등의 복지사업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해 나갔다. 이에 나꼼수 김용민은 이재명에게 “대통령이 되면 전국적인 무상 산후조리원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이재명은 “산후조리원뿐만이 아니라요. (…) 그전에 작살을 좀 내야죠”라고 말해 녹화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재명의 발언에 김용민·김어준은 한동안 멍하니 이재명만을 바라보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수가 쏟아졌다. 이는 이재명의 여러 별명 중 하나인 ‘작살’이 생겨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열성적 팬덤을 구축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며 환호했는데, 이렇게 전율한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김어준은 그 자신이 정치평론가인 동시에 자신이 주도하는 무대의 ‘분위기’와 ‘맥락’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의 발언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플랫폼 사업자이기도 했다. 민주당 진영의 팬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의 강성·과격 발언이 주로 김어준과의 대담 형식을 통해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메커니즘 때문일 게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김어준은 ‘팬덤 정치’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무언의 동맹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런 동맹 세력의 대표적 인물은 단연 유시민이다.
2017년 5월 5일 유시민은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지식인이거나 언론인이면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건 옳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대통령만 바뀌는 거지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이 사방에 포진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의당 평당원이지만 범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의 이 발언은 그해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됐다. 유시민이 깃발을 든 어용 지식인이 양산됐으며, 이들을 따르거나 보호하려는 ‘어용 시민’도 폭증세를 보였다. ‘팬덤 정치’를 신봉하는 문재인이 우두머리가 된 가운데 한국에선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팬덤 정치’의 향연(또는 굿판)이 이후 5년간 공격적으로 전개됐다.
교통방송은 박원순·김어준에게 전리품이었나‘팬덤 정치’의 선두엔 2016년 9월 26일부터 시작된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있었다. 교통방송은 공영방송이었지만, 그 골격을 무너뜨린 건 2011년 10월 27일부터 2020년 7월 9일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박원순 체제였다. 2011년 11월 박원순의 서울시장 취임 직후 ‘나꼼수’ 출신 김용민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에서 “김어준이 안철수·박원순 두 후보 모두에게 ‘시장 되면 저에게 교통방송을 달라’고 했다”고 썼다. 그는 “물론 농담이었고 박 시장 당선 후 ‘그 욕망을 포기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며 “박 시장이 (교통방송을) 전리품으로 인식할 것인지 시민에게 돌려줄지 관심거리다”라고 했다.
“교통방송을 달라”는 게 과연 농담이었을까. 박원순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나꼼수에 대한 지분을 요구한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박원순은 그 요구에 흔쾌히 응했으니, 박원순과 김어준 모두 교통방송을 전리품으로 여겼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평가는 교통방송을 공영방송답게 운영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걸로 봐야 할 것이다.
KBS 기자 출신으로 2006년부터 5년간 교통방송 대표를 지낸 이준호는 취임 직후 중앙 정치 이슈를 다루지 말고 서울시의회 뉴스만 다루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영방송은 정권이 주인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KBS·MBC 사장이 바뀌고 대규모 인사가 납니다. 한직으로 밀려난 직원들은 5년 뒤를 기다리죠. 정권이 또 바뀌면 직원들도 다시 자리를 바꿉니다. 그런데 TBS는 기자와 시사 PD가 50명도 안 돼요. 한직으로 밀려날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 뉴스를 다루면 정권 홍보 방송밖에 못 해요. 그래서 아예 여의도 쪽은 선을 끊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 겁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두 달 후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준호는 “내가 퇴임한 뒤부터 교통방송이 정치 방송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7년 한 언론인 연말 모임에서 박원순을 만나 “딴지일보 하던 사람(김어준)이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잘못이다. 공영성을 망가뜨리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걸 회복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10분 동안 얘기하는데 박 시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내가 경기고 선배여서 듣지 않을 순 없었을 겁니다.”(조선일보 2020년 11월 6일 인터뷰)
‘한겨레 절독’ 부르짖던 김어준 팬덤이 글 첫머리에 인용한 “내가 해온 정치평론가는 참 더러운 일이다”는 유창선의 명언을 상기해 보시라. 때는 바야흐로 나꼼수의 전성시대였다. 김어준과 주진우는 텔레비전으로까지 진출했다. 문재인 정권이 국정농단으로 인한 보수의 폐허 위에서 집권한 탓인지 방송이 정파성으로 인해 불공정 방송을 하는 일이 벌어져도 언론계와 학계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국민의당 최고위원이자 변호사인 장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2018년 2월 9일 김어준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과 주진우의 MBC ‘스트레이트’ 진행을 두고 “김어준, 주진우 등 노골적으로 친문 성향을 보여온 인사들이 속속 (지상파) 진행자로 등용되고 있다”며 “대놓고 어용 방송 한다는 인사가 공정성이 생명인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자도 아니고 중립성을 지켜야 할 진행자로 등용된 예는 박근혜·이명박 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김용민은 2018년 5월부터 퇴근시간대에 KBS1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를 진행했다.)
김어준에겐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라는 제3의 무기도 있었다. 그는 2월 23일 당시 핵심 이슈였던 성범죄 미투 폭로를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보는 충격적 발언을 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3월 9일엔 “안희정에 봉도사(성추행 의혹을 받던 전 의원 정봉주의 별명)까지. 이명박 가카(각하)가 막 사라지고 있다”며 “제가 (미투) 공작을 경고했지 않았나. 그 이유는 이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건 명백한 건데”라고 주장했다.
김어준은 3월 22일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까지 동원해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정봉주 쪽에서 제공한 사진을 가지고 정봉주 쪽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그로부터 6일 후 그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정봉주 사건이 결정적 반전을 맞았다. 정봉주는 그간 문제의 렉싱턴호텔에 간 적이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왔는데, 그곳에서 쓴 신용카드 결제 내역이 드러난 것이다. 블랙하우스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어준 씨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지상파방송을 이용했다”며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4월 2일 정봉주가 “죄송하다”며 모든 공적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과 관련, 한겨레 기자 김지훈은 정봉주와 김어준의 사과를 요구하는 칼럼을 쓰면서 “두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데, 나도 그의 지지자들에게 어떤 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칼럼에 쏟아진 악플은 ‘한겨레 절독’을 들고나왔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저는 30년 구독 방금 끊었습니다. 제 구독료가 이런 기자 봉급 나간다는 게 참을 수 없네요.” “이런 기사를 보려고 내가 한겨레를 10년 만에 다시 구독했나. 자괴감이 드네. 그냥 끝내리. 내가 뭐 머리 아프게 이런 기레기 같은 글을 보고 있나.” “그동안 혹시나 했지만 한겨레에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 구독료는 안 들어가니까 광고주 돈 받아서 쓰레기 기사를 쓰던 말던 혈압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
이는 어떤 과오를 저질러도 지지자들로부터는 오히려 뜨거운 지지를 받는 김어준의 왕국이 완성됐음을 말해 주는 작은 사건이다. 김어준의 왕국은 김어준이 계속 ‘킹메이커’ 역할을 해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가 이른 시점부터 ‘차기 대통령’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월 4일 김어준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당시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던 경기지사 이재명을 ‘포스트 문재인’이라고 칭하면서 이재명을 절대악으로 만드는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음모론은 그가 가장 애용하는 선전·선동의 최대 무기다.
2019년 8월 27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민주당은 이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했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쿠데타의 ‘수괴’로 몰아가는 폭격을 퍼붓게 되며, 그 선두 그룹엔 김어준이 있었다.
김어준은 ‘조국 수호 운동’ 총사령탑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일대에서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동아DB]9월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친문 네티즌들은 MBC가 드론으로 집회 현장 상공에서 사전 허가 없이 불법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퍼 나르며 “MBC가 돌아왔다”고 찬양했다. 9월 30일 박성제 MBC 보도국장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100만 명 정도 되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느낌이 있다. (집회를 드론으로) 딱 보니까 ‘이건 그 정도 된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정치인이건 언론인이건 김어준의 앞에 서기만 하면 자신의 본분을 잊고 과격해지는가.
국회 국정감사에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9월 전체 아이템 75개 중 50개를 ‘조국 방탄’에 동원하는 식의 편파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눈 하나 깜짝할 김어준과 교통방송이 아니었다. 김어준은 ‘조국 수호 운동’의 총사령탑 역할을 하길 원했던 것 같다. 그는 11월 초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통해 ‘조국 보도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11월 1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정경심 씨에 대한 검찰 공소장은 허위 공문서”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허위 공문서”라고 주장한 근거는 ‘검찰이 정씨에 대한 공소장 내용 일부를 변경했다는 것’이었는데, “공소장 변경은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김어준은 부정확한 사실과 무리한 해석 등으로 사실상 친문 지지자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선동에 충실했다. 그의 방송은 친문 세력 결집의 구심점이 됐다.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검찰의 소설을 뉴스공장이 까발렸다. 이분들이 이 시대를 바꾸고 있다” “30일 500만 촛불로 여의도를 점령하자”는 글이 쏟아졌다. 김어준이 이런 선동을 밥 먹듯이 하지만 않았어도 조국 사태의 전개 양상과 문재인 정권의 운명은 달라졌으련만, 문 정권과 지지자들은 마치 김어준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김어준을 ‘무당’으로 부른 진중권은 나중엔 ‘대무당’으로 승격시켜 주었는데, 사실 김어준은 정치판에서 먹고사는 ‘정치 무당’으로선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다. ‘딴지일보’ 시절 김어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나로선 그의 무당 행위가 엔터테인먼트나 개인의 사적 영역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한국인의 삶에 명랑의 요소를 재발견하고 확산시킨 선구자로서 길이 추앙받아 마땅할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어준이 제발 정치 영역으로 뛰어들지 않기를 원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그는 탁월한 재능으로 잠재돼 있는 것으로만 알고 넘어가도 좋을 한국인의 증오와 혐오 본능에 불을 지름으로써 정치를 선악(善惡)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 방화범(放火犯)은 아니었을까.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호의 속편에서 하기로 하자.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9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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