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진령군’이 떠도는가
백승종 역사가·퇴직교수mindle@mindlenews.com다른 기사 보기
민들레 광장
입력 2023.11.11
키워드#천공#윤석열#김건희#김포#메가 서울
[백승종 칼럼] ‘메가 서울’ 배후에도 어른거리는 천공
백승종 역사가·퇴직교수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뜬금없이 경기도 김포를 서울에 합치겠다는 식의 폭탄 발언을 하였다. 관계부처와 충분한 사전 협의나 준비도 없이,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메가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여당 대표는 그럼 행정부와 아무런 교감도 없이 무턱대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메가 서울’ 발언은 총선에서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보아야 맞다. (‘시민언론 민들레’ <총선 5개월 앞, 번갯불에 콩 볶는 ‘메가 서울’ 포퓰리즘> 2023.11.9.)
‘메가 서울’의 배후에도 어른거리는 천공
정치권은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여당 대표의 이번 발언에는 모종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천공이다. 현 정권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필시 천공이라는 역술인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천공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좋은 기회는 자꾸 준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래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릴 돌아보게 돼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했다. 천공에게는 슬픔과 애도 같은 감정은 없고 기상천외한 국가주의적 발상만 있는 것 같다. 제정신을 가진 보통사람들의 눈에 그는 제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이상한 역술인 천공이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과 특별한 사이가 됐을까. 그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건희 씨를 통해 윤(석열) 총장을 알게 됐다. 멘토는 아니고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조언해줬다.”(‘한겨레신문’ <윤 대통령 친분 ‘천공’, IPTV 진출 노렸으나 결국 무산> 2023.1.28.)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사퇴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천공의 조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시민들은 대통령의 배후에 천공이 도사리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는 것이다.
해괴한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 늘 천공 동영상이 등장하곤 하는데 천공은 이번에도 이미 ‘메가 서울’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만들려고 하면 모든 경기도를 통합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만들어야 된다.”(‘세계일보’ <천공이 ‘김포 서울 편입’ 배후?… 해당 영상 들여다보니> 2023.11.1.)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상야릇한 주장이다. 하지만 천공은 복잡한 수도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내놓은 획기적이고 결정적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한말 진령군을 연상케 하는 천공
천공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뭐 하나 뚜렷이 내세울 것 없는 인물이 대통령 일가와 특별한 사이라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천공과 최고권력층의 교류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한말 고종 내외와 역술인 진령군(眞靈君) 이 씨가 맺었던 관계 정도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1882년 고종 19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왕후(훗날의 황후)는 장호원의 친척 집으로 피신했다. 이때 이 씨가 찾아와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왕후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왕후는 날이 갈수록 그 신통력을 확신하게 되어, 대궐로 돌아올 때 그를 데리고 왔다. 그 뒤로도 왕후는 몸이 불편할 때마다 이 씨를 궁궐 안으로 불러들였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손이 몸에 닿기만 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황현의 ‘매천야록’, 1권).
고종 20년(1883)이 되자 이 씨는 왕후 앞에서 이상야릇한 요청을 했다. 자신은 전생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 장군의 딸이라고 하면서 관우를 섬길 수 있게 관왕묘(關王廟)를 지어달라고 애원했다. 국왕 내외는 그 요청대로 북악산 아래 숭동(명륜동 1가)에다 관왕묘를 새로 짓고 북묘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고종 내외는 이 씨를 진령군으로 불렀다. (정교의 ‘대한계년사’, 1권).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 올해 초 청와대 문에 있는 노란색 봉황장식을 가리키며 일행에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23.1.22. 독자 제공
역술인이 정치판에 끼어들면 벌어지는 일들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관우는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 또는 문학적 인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관우는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관우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복을 비는 사람들이 많다. 4백 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이 명나라에 도움을 청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명나라 황제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 조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령군이 도성에 있을 때도 중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힘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진령군이 새로 관왕묘를 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청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어설픈 계산이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고종 내외가 진령군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가 있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진령군에 대한 국왕 내외의 총애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자 모리배들이 진령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뇌물도 바치고, 아부도 늘어놓았다. 벼슬을 얻기 위한 수작이었다. 충청도 영동에 살던 부자 양반 이용직은 그에게 l00만 냥을 가져다 바치고 경상도 관찰사 자리를 얻었다. 이용직은 부임하자마자 본전을 챙기기 시작해, 1년쯤 지나자 경상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김해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야심가 이유인도 진령군을 잘 사귀어 출세하였다. 나중에는 법부대신까지 지내게 되었는데, 겉으로는 진령군의 수양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라는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매천야록’, 1권)
무당 덕에 출세한 자들, 핍박받은 자들
시간이 흐르자 조정 대신들도 몰래 진령군을 찾아와 뇌물을 바쳤다. 어떤 자는 아내를 보내어 진령군과 언니, 동생 사이가 되게 하였다. 염치도 체면도 없었던 조병식과 윤영신, 정태호는 진령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매천야록’, 1권)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병식은 고종 27년(1891)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동학교도들이 찾아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자 그들을 탄압하였다. 그는 교도들과 조정의 관계를 악화시켜 나중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됐다. 또, 조병식은 독립협회가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려고 한다며 무고했다. 도대체가 나랏일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대신이란 사람들 다수가 조병식 못지 않았다. “진령군이 돈을 던져주면 그 발아래 조아리며 부디 저희의 자리를 지켜 달라며 매달렸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26일)
거꾸로 진령군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출세가 막힌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진령군은 고종에게 이런 식으로 경고하였다. “관운장(관우)께서는 여포에게 살해되었다. 지금 관리 중에 여규형 같은 사람은 여씨이니, 멀리 하시라.”(매천야록, 1권). 알고 보면 여포가 관우를 살해한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19세기 조선에서 문신 여규형이 관우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고종 내외는 미신에 빠진 나머지 진령군의 무책임하고 쓸데없는 말을 믿었다. 여규형은 본래 재주가 탁월하였으나, 평생 세 번씩이나 귀양살이에 시달렸다. 만년에는 일제에 동조해 겨우 관립한성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이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명성왕후와 가까웠던 진령군은 여지없이 쫓겨났다. 그래도 진령군의 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의 손녀사위 이한영은 법부의 협판을 지냈다. 요즘으로 말하면 법무부 차관이었다. 그는 비리를 많이 저지른 악당이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2월 3일 발간한 저서 '권력과 안보 - 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 표지. 2023.3.9. 김성진 기자
손바닥 임금 왕(王)자와 천공은 아무 관계 없는가
지난 대선 때 시민들은 윤석열 후보의 뜬금없는 행동에 경악하였다. 그는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대선 후보토론회에 나왔다.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였다. (‘나무위키’, <윤석열 토론회 손바닥 왕자 논란>) 웬만큼 역술에 현혹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상천외한 행동아니었던가.
천공이란 존재는 대통령 일가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내 주변 양식있는 시민들은 천공이란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라스푸틴이란 역술인이 국정을 농단한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혀 현실인식에 기반하지 않은 ‘메가 서울’ 문제가 그런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든다. 서울에 편입한다고 해서 교통문제, 과밀학급문제, 의료시설문제 등 김포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김포에서는 비무장지대가 지척이다. 북한과 최단 거리에서 대치 중인 해병사단도 있다. 서울로 김포를 편입하기 전에 남북관계부터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과연 여당 대표는 이런 실정을 모르고 ‘메가 서울’이란 화두를 꺼낸 것일까? 아니면 천공의 얄팍하고 기이한 주문에 홀린 대통령이 시켜서 한 말인가?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미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집권 국힘당이 띄운 김포시의 서울 편입안이 과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5일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내걸린 서울 편입을 환영하는 현수막. 2023.11.5. 연합뉴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뜬금없이 경기도 김포를 서울에 합치겠다는 식의 폭탄 발언을 하였다. 관계부처와 충분한 사전 협의나 준비도 없이,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메가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여당 대표는 그럼 행정부와 아무런 교감도 없이 무턱대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메가 서울’ 발언은 총선에서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보아야 맞다. (‘시민언론 민들레’ <총선 5개월 앞, 번갯불에 콩 볶는 ‘메가 서울’ 포퓰리즘> 2023.11.9.)
‘메가 서울’의 배후에도 어른거리는 천공
정치권은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여당 대표의 이번 발언에는 모종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천공이다. 현 정권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필시 천공이라는 역술인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천공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좋은 기회는 자꾸 준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래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릴 돌아보게 돼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했다. 천공에게는 슬픔과 애도 같은 감정은 없고 기상천외한 국가주의적 발상만 있는 것 같다. 제정신을 가진 보통사람들의 눈에 그는 제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이상한 역술인 천공이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과 특별한 사이가 됐을까. 그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건희 씨를 통해 윤(석열) 총장을 알게 됐다. 멘토는 아니고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조언해줬다.”(‘한겨레신문’ <윤 대통령 친분 ‘천공’, IPTV 진출 노렸으나 결국 무산> 2023.1.28.)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사퇴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천공의 조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시민들은 대통령의 배후에 천공이 도사리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는 것이다.
해괴한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 늘 천공 동영상이 등장하곤 하는데 천공은 이번에도 이미 ‘메가 서울’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만들려고 하면 모든 경기도를 통합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만들어야 된다.”(‘세계일보’ <천공이 ‘김포 서울 편입’ 배후?… 해당 영상 들여다보니> 2023.11.1.)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상야릇한 주장이다. 하지만 천공은 복잡한 수도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내놓은 획기적이고 결정적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한말 진령군을 연상케 하는 천공
천공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뭐 하나 뚜렷이 내세울 것 없는 인물이 대통령 일가와 특별한 사이라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천공과 최고권력층의 교류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한말 고종 내외와 역술인 진령군(眞靈君) 이 씨가 맺었던 관계 정도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1882년 고종 19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왕후(훗날의 황후)는 장호원의 친척 집으로 피신했다. 이때 이 씨가 찾아와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왕후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왕후는 날이 갈수록 그 신통력을 확신하게 되어, 대궐로 돌아올 때 그를 데리고 왔다. 그 뒤로도 왕후는 몸이 불편할 때마다 이 씨를 궁궐 안으로 불러들였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손이 몸에 닿기만 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황현의 ‘매천야록’, 1권).
고종 20년(1883)이 되자 이 씨는 왕후 앞에서 이상야릇한 요청을 했다. 자신은 전생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 장군의 딸이라고 하면서 관우를 섬길 수 있게 관왕묘(關王廟)를 지어달라고 애원했다. 국왕 내외는 그 요청대로 북악산 아래 숭동(명륜동 1가)에다 관왕묘를 새로 짓고 북묘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고종 내외는 이 씨를 진령군으로 불렀다. (정교의 ‘대한계년사’, 1권).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 올해 초 청와대 문에 있는 노란색 봉황장식을 가리키며 일행에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23.1.22. 독자 제공
역술인이 정치판에 끼어들면 벌어지는 일들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관우는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 또는 문학적 인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관우는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관우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복을 비는 사람들이 많다. 4백 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이 명나라에 도움을 청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명나라 황제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 조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령군이 도성에 있을 때도 중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힘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진령군이 새로 관왕묘를 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청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어설픈 계산이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고종 내외가 진령군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가 있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진령군에 대한 국왕 내외의 총애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자 모리배들이 진령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뇌물도 바치고, 아부도 늘어놓았다. 벼슬을 얻기 위한 수작이었다. 충청도 영동에 살던 부자 양반 이용직은 그에게 l00만 냥을 가져다 바치고 경상도 관찰사 자리를 얻었다. 이용직은 부임하자마자 본전을 챙기기 시작해, 1년쯤 지나자 경상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김해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야심가 이유인도 진령군을 잘 사귀어 출세하였다. 나중에는 법부대신까지 지내게 되었는데, 겉으로는 진령군의 수양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라는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매천야록’, 1권)
무당 덕에 출세한 자들, 핍박받은 자들
시간이 흐르자 조정 대신들도 몰래 진령군을 찾아와 뇌물을 바쳤다. 어떤 자는 아내를 보내어 진령군과 언니, 동생 사이가 되게 하였다. 염치도 체면도 없었던 조병식과 윤영신, 정태호는 진령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매천야록’, 1권)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병식은 고종 27년(1891)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동학교도들이 찾아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자 그들을 탄압하였다. 그는 교도들과 조정의 관계를 악화시켜 나중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됐다. 또, 조병식은 독립협회가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려고 한다며 무고했다. 도대체가 나랏일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대신이란 사람들 다수가 조병식 못지 않았다. “진령군이 돈을 던져주면 그 발아래 조아리며 부디 저희의 자리를 지켜 달라며 매달렸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26일)
거꾸로 진령군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출세가 막힌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진령군은 고종에게 이런 식으로 경고하였다. “관운장(관우)께서는 여포에게 살해되었다. 지금 관리 중에 여규형 같은 사람은 여씨이니, 멀리 하시라.”(매천야록, 1권). 알고 보면 여포가 관우를 살해한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19세기 조선에서 문신 여규형이 관우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고종 내외는 미신에 빠진 나머지 진령군의 무책임하고 쓸데없는 말을 믿었다. 여규형은 본래 재주가 탁월하였으나, 평생 세 번씩이나 귀양살이에 시달렸다. 만년에는 일제에 동조해 겨우 관립한성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이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명성왕후와 가까웠던 진령군은 여지없이 쫓겨났다. 그래도 진령군의 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의 손녀사위 이한영은 법부의 협판을 지냈다. 요즘으로 말하면 법무부 차관이었다. 그는 비리를 많이 저지른 악당이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2월 3일 발간한 저서 '권력과 안보 - 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 표지. 2023.3.9. 김성진 기자
손바닥 임금 왕(王)자와 천공은 아무 관계 없는가
지난 대선 때 시민들은 윤석열 후보의 뜬금없는 행동에 경악하였다. 그는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대선 후보토론회에 나왔다.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였다. (‘나무위키’, <윤석열 토론회 손바닥 왕자 논란>) 웬만큼 역술에 현혹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상천외한 행동아니었던가.
천공이란 존재는 대통령 일가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내 주변 양식있는 시민들은 천공이란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라스푸틴이란 역술인이 국정을 농단한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혀 현실인식에 기반하지 않은 ‘메가 서울’ 문제가 그런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든다. 서울에 편입한다고 해서 교통문제, 과밀학급문제, 의료시설문제 등 김포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김포에서는 비무장지대가 지척이다. 북한과 최단 거리에서 대치 중인 해병사단도 있다. 서울로 김포를 편입하기 전에 남북관계부터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과연 여당 대표는 이런 실정을 모르고 ‘메가 서울’이란 화두를 꺼낸 것일까? 아니면 천공의 얄팍하고 기이한 주문에 홀린 대통령이 시켜서 한 말인가?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미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집권 국힘당이 띄운 김포시의 서울 편입안이 과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5일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내걸린 서울 편입을 환영하는 현수막. 2023.11.5. 연합뉴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