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10 / 유종근, 월간조선, DJ의 공과
― DJ의 가장 큰 공(功)은 뭘까요.
“두 가지입니다. IMF 위기 극복, 그리고 IT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게 판을 깔아준 겁니다. IMF의 권고이기도 했지만 기업들이 개혁을 했잖아요. 선단(船團)식 경영을 지양하고 세계 경쟁 체제로 들어갔지요. 그때까진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에선 이름 없는 기업들이었거든요. 이제는 삼성, LG, 포스코, 현대차 같은 기업들이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됐어요. 기업도 개혁했지만 규제도 많이 줄였어요.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건 그때의 개혁 덕분이라 봅니다.”
― 그 시기 한국은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빨리 IT 인프라를 확충하기도 했지요.
“DJ가 수감 생활과 집에서 연금되어 있는 동안 공부를 많이 했어요. 앨빈 토플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앞으로는 정보화 시대다’라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IT 인프라를 깔고 IT 산업 투자를 장려했어요. 그 덕에 요새 한국이 10대 경제 강국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 DJ의 과(過)는 뭘까요.
“결국 햇볕 정책입니다. 1994년에 맺은 미북(美北) 제네바 합의 결렬에 대해서는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양비론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어요. 6·15선언은 다릅니다. 김정일이 답방을 안 했잖아요. 정치 9단 김대중이 김정일한테 답방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자꾸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국제적 합의를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파기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처음 햇볕 정책에서 제안한 대로, 믿을 수 없는 인물로 판명 났으면, 정책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유 전 지사는 “결국 DJ의 가장 큰 과(過)는 노무현을 후계자로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자체로는 공도 있고, 과도 있어요.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두고두고 해악을 끼쳤어요.”
Kim Dal-jin
사회주도 세력의 교체가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친듯. 호남×비실력자×비도덕적 인사로 한국사회는 구조적으로 갈등이 심화된듯 합니다. 목소리크고 소외받은 계층이면 곧 정의이고 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건 큰 과오입니다.
민경우
공부9 / 김대중-유종근, 월간조선
“DJ가 머리가 좋은 데다 사업을 했잖아요. 해운업을 해서 돈도 벌었고 신문사도 운영했어요. 시장을 아니까 금방 통해요. 그런데 연설만 하면 자꾸 ‘제3세계 연대(連帶)’니 하는 얘기를 해요. 왜 그런가 했더니, 당시 DJ 곁에 반미(反美) 성향 인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조언한 겁니다.”
유 전 지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국 정치인들을 만나서도 맨날 반미 얘기를 해요. 한번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한국 학자와 DJ, 제가 미국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위원장과 오찬을 했어요. 외교위원장은 미국 외교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잖아요. 그 자리에서 그 학자가 ‘미 제국주의’ 운운하며 욕을 하는 겁니다. 한참 듣다 듣다 못해 제가 한마디 했어요.”
― 뭐라고 했나요.
“‘박사님,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러자 남미(南美) 학자가 그렇게 얘기한대요. ‘아니, 남미 사람들이 반미주의자들이니까 하는 얘기지, 그 사람들의 말이 진리는 아니잖습니까. 사실적 근거를 갖고 얘길 해야지요’ 제가 그렇게 나서니 외교위원장이 반색을 해요.”
....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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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DJ가 미국에 망명했을 때 DJ와 유종근 전 전북지사가 나눈 대화, 80년대 초반 DJ를 감싸고 있던 배경 지식은 반미.제3세계.남미 등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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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문
한때 광풍이었죠.
20살때 멋도 모르고 송두율씨 책도
많이 읽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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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공부8 / 학생들의 통일관, 여론조사 / 책, 학생운동의시대 77쪽
- 61년 4월 연세대 4학년 3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22.4% / UN감시하 남북총선...43.7% / 대한민국 주권하 통일...18.8%
* 선건설 후통일 52.0%, 선통일후건설 34.4%
‘
- 위 여론조사에 따르면 4.19 이후 학생운동 일부와 혁신계가 주도한 통일운동은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태문
이 자료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
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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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공부7 / 50년대말 학생운동의 이념 동향 / “학생운동의시대” / 66쪽
- 50년대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심으로 한 신진회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서유럽의 비공산주의적인 민주사회주의 이념에 막연한 호기심을 느꼈다. 민주사회주의는 극우반공체제하에서 용인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 그들은 라스키, G.H.D 콜, 시드니 웹, 베른슈타인, 네루 등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저서를 함께 읽고...
- 학생운동의 이념은 50년대말 민주사회주의에서 60년대 한일회담을 계기로 한 반외세민족주의, 70년대 민중성 강화와 마르크스주의로 발전하는 것 같다. 80년대가 되면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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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al-jin
수긍이 가네요. 80-90년대에도 한국사회에서 지금 처럼자유민주주의체제를 당당하게 말하기가 힘든 분위기였던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회주의는 아니고 그 절충점으로 막연하게 유럽의 독일의 사민당을 많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9w
민경우
공부6 / 이영일 / “4.19 혁명의 회고와 반성” / 23년 트루스포럼 강연에서
- 4.19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 3.15 부정선거를 무효화하고 본인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하야했기 때문이다”
- “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학생들은 이미 지식과 정보를 선점한 사회적 신분집단이 아니었고 신진 관료집단에 지적으로나 능력 면에서 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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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Dal-jin
그래서 역사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해당사건의 여진이 가라앉은 후에 다면적.다층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듯 합니다.
민경우
김달진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민경우
공부5 / 안병직 / 25.130 / “대한민국 정통성과 국민통합” / 펜앤마이크 기고문
-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은 세계사적 이성인 UN의 결의에 의하여 건국되고, 역설적으로 6.25 사변 중에 형성된 60만 대군을 배경으로 산업화에 성공했으며 민주화운동과 산업화를 기반으로 민주화를 달성함으로써”라 정리하고 있다.
- 건국에 대해 / 좌파라면 UN이 아니라 상해임정과 독립운동에서 건국의 근거를 찾았을 것이다. / 당시 UN은 진보적 성향과 사조의 산물로 안병직에 따르면 “세계사적인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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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공부2 / 반공이데올로기 분쇄 투쟁선언문/ 애학투련 / 밑줄 주의
- 86년 10월 이른바 건대사태 과정에서 배포된 애학투련의 선언문이다.
- 배경은 서울대 대자본 사건, 상지대 유인물 사건, 유성환 의원의 국회 발언 등
-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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