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조롱, 희롱 그리고 풍자 -- 한인섭 교수의 페북 활동에 대한 동아일보사 최모 씨의 비판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는다.
1.
페친 한인섭 교수의 SNS 활동이 아무래도 권력자의 심사를 어지럽히는가 보다. 동아일보의 고위층에 해당하는 인사가, 언론의 자유를 누구보다 옹호해야할 위치에 있는 그 사람이 한교수의 ‘페북 질’을 심하게 문제 삼았으니 말이다.
2.
만약에 말이다, 그 최모씨가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활동하던 시기에 언론의 직책을 담당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벼슬자리는 단숨에 날라 갔을 것이다. 청년 조광조는 언관직에 임명되기가 무섭게 본업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여러 동료와 상관들을 파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일에 앞서 김정과 박상이란 두 사람의 선비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폐위되고 만 중종의 배우자, 즉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했다. 이 상소는 권력자들의 비위에 거슬렸고, 그래서 귀양을 가고 말았다.
그 당시 언관들은 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그 두 선비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앞장서 김정과 박상을 탄핵하였다. 조광조는 바로 그 점을 문제 삼았다.
언관이라면 당연히 ‘언로의 확대’, 요샛말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힘써야 한다. 설사 권력자의 구미에 맞지 않는 말이라도 선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그들의 마땅한 임무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이런 점을 누차 강조하며, 김정과 박상을 죄주자고 요청한 현직 대사헌 이하 간관들의 파직을 요청했다. 중종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언관의 물갈이를 하였으니, 16세기 초반의 일이었다.
400년 전에도 이 나라에는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언로부터 개방해야 된다는, 다시 말해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그랬건마는 명색이 민주공화국인데도 21세기의 이 나라 사정은 과연 어떠한가? 현직의 고위급 언론인이 소매를 걷고 나서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드는 것만 같은 이 사태를 보고, 우리는 과연 무슨 발전을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인가?
3.
동아일보의 최모씨는 언론계에 발을 디딘지 이미 오래다. 언론의 자유가 무엇이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분이다. 그런 그가 왜,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교수의 입막음을 하려드는가? 그의 행동은 과연 자발적인 것이었는가? 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4.
최씨는 지면을 통해 한교수의 ‘페북질’을 작심한 듯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몰라도 희롱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였다. 최씨는 과연 무슨 권리와 자격이 있어, 한교수의 언론활동을 제한하려드는가? 그가 말한 이른바 ‘비판’은 무엇이고, ‘희롱’은 또 무엇인가?
5.
문맥상으로 볼 때 최씨는, 한교수가 정치적 사안에 관해 풍자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 같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세상에는 엄숙 경건하게 직설적으로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그럴 때 자연스레 등장하는 것이 풍자다.
풍자는 때로 직유나 은유의 화법을 빌려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만평이나 만담도 되고 풍자극으로 구성되는 등 풍자의 형태는 다양하기 짝이 없다.
우리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과 내용을 누구도 함부로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있어, 직설법은 허용되나 풍자와 은유는 안 된다든가, 논설문은 좋아도 다른 글투로 표현하는 것은 금한다는 식의 제한은 성립될 수가 없다.
비판과 풍자의 다양한 형태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직설이냐, 은유냐, 빗댐이냐, 하는 것 가운데서 무엇은 되고, 또 무엇은 안 되고 하는 문제는 제3자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6.
직설적 비판이든 은유적 풍자든 문제는 표현의 강도에 있다. 그 강도가 약할 때는 상대방에게 약간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칠 수 있다. 하지만 표현의 강도가 거세지면 상대방은 자신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든가, 또는 희롱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느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 개인을 사적으로 비방하거나, 조롱 또는 희롱하
는 것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된 일이다.
그런데 공적인 영역은 결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비판적인 표현의 내용과 강도에 어떠한 제한도 존재할 수 없다. 동서로 양분된 독일에 통일을 선사한 헬무트 콜 수상을 당대의 독일 언론과 지식인들은 ‘멍텅구리 콜’이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든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든, 서구사회의 정상급 정치인은 누구나 호된 비판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권력자 또는 지도층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혹독한 감시와 비판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남용이 방지되고, 시민들의 권리가 신장된다.
동아일보의 최씨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최씨가 한교수에게, ‘비판은 몰라도 권력자를 희롱하지는 말라’고 주문하였다. 이쯤에서 최씨가 한 말의 본의를 다시 정리해 보자.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다름 아니라 비판의 강도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교수는 권력자의 언행을 지나치게 비판하지 말라는 것, 이것이 최씨의 요구사항인 것이다.
7.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류 언론매체다. 바로 그런 언론기관의 중진급 인사인 최씨가 독재국가의 사직당국에서 했을 법한 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실로 중대한 문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인가? 이 나라 시민사회의 역량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새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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