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이병철 개헌을 대선 후보자들의 마지막 합동 공약으로/

Facebook
 
-개헌을 대선 후보자들의 마지막 합동 공약으로/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큰산 자락의 호숫가에 나와 앉았다. 호숫가의 노란 금계국이 한창이다. 파란 물결과 노란 꽃이 잘 어울린다. 산색도, 호수 물빛도 모두 진초록이다. 어느새 여름빛이 짙어지고 있다. 평화롭다. 평화는 이런 자연의 어울림 속에만 있는 것인가. 나도 저 산처럼, 저 산을 그대로 품어 안아 비추는 저 호수나 호수가에 눈부시게 피어있는 저 꽃처럼 그럴 수 는 없을까. 세상사에 애달아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을까.

문득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첫 대목이 떠오른다.

“나라의 존망이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此誠危急存亡之秋).”  이 문장은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결연한 의지와 충정을 드러낸 글로,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명문장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이 문장을 기억하는 건, 청소년기에 삼국지를 많이 읽은 까닭이기도 하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 여러 판본의 삼국지를 다섯 차례 넘게 읽은 것 같다. 또,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겠다는 명분으로 나섰을 때, 이 출사표의 문장이 지닌 비장함이 젊은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라 싶기도 하다.

요즘 들어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지는 가운데, 이 문장이 자주 떠오른다. 지금 이 나라의 명운이 마치 출사표의 그 문장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느새 제 한 몸조차 추스르기 힘들어지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저 나라가 잘 되기를, 이 땅의 백성들이 모두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 불안과 걱정은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 이 나라가 처한 문제들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지금처럼 좌우 이념 또는 진영이라는 허황된 논리에 따라 나라의 절반이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더 심화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아마도 이 나라는 그대로 주저앉게 될 것이다. 내가 늙은이의 괜한 걱정이라는 지적에도 이리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때 뜨거운 가슴으로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조차, 진영의 편 가름에 따라 뿔뿔이 흩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한번 이 진영이라는 덫에 갇히게 되면 마치 빙의된 것처럼 다른 사실이나 의견은 더 이상 보지도, 듣지도 않게 된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라는 망상에서 헤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인제 와서 이념과 진영의 논리라는 허황된 망령을 굳이 다시 논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나라의 적폐 가운데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망국적 사태를 초래한 정치집단과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영이란 거짓 편 가름이라는 점이다. 비상계엄이라는 터무니없는 짓을 벌여 나라를 누란의 위기로 몰고 간 뒤에도 파렴치한 작태를 멈추지 못하는 국민의힘이라는 집단이나, 나라의 안위가 아니라 오로지 주인의 안위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사사건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가로막는 더불어민주당이란 두 집단 모두, 내가 보기엔 청산해야 할 가장 우선하는 적폐 세력들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광화문 촛불을 여의도로 옮겨, 기존의 정치집단도 함께 탄핵하자고 말했다. 그래야 정치 전환이 가능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용어 대신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집사장’, 또는 여러 부처의 집사들을 대표하는 ‘총집사장’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부름으로써, 그 이름으로 부르는 국민이나 그 이름으로 불리는 집사장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의도를 지날 때마다, 나라를 망치지 못해 안달해 하는 것같은 정치판을 볼 때마다 그 자리를 갈아엎고 겨울에는 푸른 밀밭으로, 여름에는 하얀 메밀밭으로 가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던가.
이런 내 주장을 과격하거나 양비론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양비론 맞다. 두 집단 모두 잘못했는데, 두 놈 모두 나쁜 놈인데, 어떻게 한 놈만 편들란 말인가. 잘못을 저지른 놈이나, 잘못을 저지르게 만든 놈이나 둘 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번 선거판을 보면, 이른바 노선이나 정책 차이를 내세우며 갑작스럽게 이 집단 저 집단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있다. 참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이다. 지금 저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노선, 정책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저들에게 일관된 이념이나 노선이 있었던가. 선거에 유리하고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 갓이나 마구잡이로 내세운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이런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가 정치판을 더욱 양아치와 모리배들의 무리로 가득 차게 만들고 있다.

이번 대선판이, 이들 적폐 세력이 점령한 정치판을 갈아엎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그 하나의 길은, 이번 대통령 당선자가 차기 정권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 87 체제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 제왕적 대통령제와 의회 다수당의 독재, 
  • 승자독식 선거제도, 
  • 국회의원 등 선출직의 특권 폐지를 
국민에게 약속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있다.

이것을 대선공약에만 그칠 게 아니라, 취임 선서에서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대선 후보들이 이 약속을 함께 합동 공약으로 제시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약속이 없이 이번 대선이 그냥 치러지게 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절반의 국민은 또다시 그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내전의 상황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이 국민 통합과 상생을 위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헌의 약속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 까닭이 이것이다. 
국민이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무너지고 있는 세계사적인, 전 지구적인 이 위기 앞에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본 투표가 며칠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번 대선 후보자들이 부디 구국의 충정을 담아 마지막 약속으로 이에 합의해 주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하늘이 뜻이 함께하기를 긴곡히 마음 모은다.
(25. 05. 29)
==============
Namgok Lee
새벽에 눈을 떠 여류를 만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진인사대천명.
하늘이 보우하도록 기도하고 기도합시다.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나 꿈꾸는 노인으로 함께 가는 행북을 누립시다.
신령한 짐승의 꿈.
보통 사람이 성인이 되는 꿈.
이 땅에서 문명대전환이 이루어지는 꿈.
==========
이병철
이남곡 이번 생의 고마운 인연들을 새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