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7

박찬승 [국가정체성과 국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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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22h  · 

<국가정체성과 국적 문제>

어제 뉴스를 보니, 민주당에서 국가정체성위원회라는 것을 만든다고 한다. 아마도 국적논쟁을 의식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가정체성과 국적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국가정체성’은 ‘national identity’를 번역한 말로서 국민정체성, 민족정체성이라고도 하는데, “한 국가의 국민들이 스스로를 어떤 국가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그 국가에 대한 소속감, 일체감, 연대 등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즉 국가정체성 문제는 의식, 인식, 감정 차원의 문제이다. 

반면에 ‘국적(nationality)’이란 ‘한 개인이 어떤 국가에 속하여 국민이 될 수 있는 법률적 자격’을 말한다. 즉 국적은 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법률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정체성과 국적은 전혀 차원이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의 국적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이 작년 여름부터 국회에서 자주 등장하였다. 주로 국회의원들이 장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부적절한 것이었다.

일제하의 국적 문제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1910년 일본은 한국을 병합한 뒤 일본 정부나 일본인 학자들은 병합에 의해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이 자동으로 부여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일본의 국적법을 한국인(조선인)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로 귀화하여 일본 국적을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특히 만주에 이주한 수십만의 한국인이 중국으로 귀화하여 일본국적을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만주의 한인들을 이용하여, 만주에 수많은 영사관을 설치하고 또 이를 구실로 영사관 경찰을 배치하였다. 이를 통해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통제하고, 또 만주에서 재만 일본인들의 세력을 넓혀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인들이 중국으로 귀화해버리면, 이런 다수의 영사관을 운영할 명분이 없어진다.

당시 만주에 이주하여 살던 한국인들은 토지소유권을 갖기 위해 중국으로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측은 한국인들의 중국 귀화와 일본 국적 상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으로 귀화해도 이중국적자가 되는데, 중국 국적법에서는 1929년까지는 이중국적이 되는 귀화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만주의 한국인들은 국적 문제 때문에 중국으로 귀화도 하지 못하고 사실상 일본의 포로가 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한 것이 확인되는 경우는 한국인이 외국에 나갈 때 일본정부가 발급하는 ‘여권’을 통해서였다. 현재 일본 외교사료관에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들에게 여권을 발급한 사실을 기록한 대장이 남아 있다. ‘일본제국해외여권’(뒤에는 ‘대일본제국외국여권’)이라고 쓰인 여권을 들고 나간 한국인은 외국에서는 ‘일본국민’으로 간주되었다. 1920년 파리에서의 여권과 관련된 국제회의 이후 여권은 국적을 가진 국민에게만 발급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여권을 가진 한국인은 일본 국적을 가진 이로 간주되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한국인을 ‘조선인’이라고 부르면서, 참정권도 주지 않았고(조선 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도 주지 않았다. 또 군대에 갈 수 있는 의무 내지는 권리도 주지 않았다. 즉 요즘 말로 말하면 ‘시민권’(citizenship)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내지인’(일본인)과 구분하여 ‘외지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식민지인’이라는 뜻이었다. 조선인은 국내에서는 ‘내지인’과 구분되는 ‘조선인’이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조선인은 스스로를 일본인이라고 거의 의식하지 않았고,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훨씬 강하였다. 한국인은 대외적으로는(국제관계에서는) 일본국적을 가진 일본인으로 간주되었지만, 대내적으로는 법적, 사회적으로 ‘일본인’과 구분되는 ‘조선인’이었다. 

이런 사정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의 국적은 무엇이었느냐’만을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자의식’이었고, 한국인들은 당연히 스스로를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 내지 ‘조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국가정체성은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의 국적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어서 일제강점기의 국적 문제를 자꾸만 캐고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하고 또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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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아래 댓글에 쓴 것입니다만, 여기에 보충하여 썼습니다)

한일병합조약에는 국적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1910년 7월 8일 당시 데라우치 통감(뒤에 초대 총독)은 일본 각의에 제출하여 통과시킨 <한국병합에 제한 처리법안>이라는 문건 중 <조선인의 국법상의 지위>라는 항목을 보면, 
"조선인은 특히 법령 또는 조약으로써 별단의 취급을 한다고 정한 이외에는 
전연 내지인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고 하였고,
 "외국에 귀화하여 현재 이중국적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국적법을 조선에 시행하기까지 아국의 이해관계에서 일본신민으로 간주한다"고 쓰고 있습니다(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문서). 

그런데 遠藤正敬이 쓴 <호적과 국적의 근현대사>라는 책(2013년 발간)을 보면,  7월 15일 데라우치에게 <병합후의 한국인의 국적문제>라는 문서를 제출한 일본의 국제사법학자 山田三郞은 

"종래 한국신민이었던 자는 병합에 의하여 당연히 일본국적을 취득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인은 전연 일본인과 동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에 대하여 일본국적을 취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즉 병합에 의해 한국인이 일본국적을 취득하게 되지만 이는 외국에 대해서 즉 대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일본인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山田은 일본의 국적정책 및 식민지법 정책에 참여하고 있던 중요한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의 이와 같은 해석과 의견은 일본정부나 조선총독부의 입장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遠藤 책 164-1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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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rye Han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일병합으로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적이 자동적으로 부여되었다고 간주된다 라고 하셨는데, 한일병합 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도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신 자격있는 한국인을 보호하고 관리로도 쓸 수 있다, 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과 같은 위치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메이지 헌법을 적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조선 총독이 발령을 내는, 제령이 헌법을 대신했습니다.
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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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Sungrye Han 말씀하신대로 병합조약에는 국적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遠藤正敬이 쓴 <호적과 국적의 근현대사>라는 책(2013년 발간)을 보면, 1910년 7월 8일 당시 데라우치 통감(뒤에 초대 총독)은 일본 각의에 제출한 <한국병합방침>이라는 문건에서 
    "외국에 귀화하여 현재 이중국적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국적법을 조선에 시행하기까지 아국의 이해관계에서 일본신민으로 간주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 7월 15일 데라우치에게 <병합후의 한국인의 국적문제>라는 문서를 제출한 일본의 국제사법학자 山田三郞은 "종래 한국신민이었던 자는 병합에 의하여 당연히 일본국적을 취득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인은 전연 일본인과 동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에 대하여 일본국적을 취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즉 병합에 의해 한국인이 일본국적을 취득하게 되지만 이는 외국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일본인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山田은 일본의 국적정책 및 식민지법 정책에 참여하고 있던 중요한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의 이와 같은 해석과 의견은 일본정부나 조선총독부의 입장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遠藤 책 164-168쪽 참조)
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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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rye Han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인을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국적의 근거가 되는 일본 호적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호적은 1909년까지는 조선시대의 호적장이었고 1909년부터 1922년까지는 민적법에 의한 한국 호적이었습니다. 1922년 이후는 조선 호적령이 발령되어 한국 또는 조선 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체성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일제는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이 일본 국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징병제와 징용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1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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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박찬승
Sungrye Han 말씀하신대로 일본은 일본과 조선, 대만의 호적을 모두 달리하였고, 호적을 일본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옮기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을 호적을 기준으로 '일본인' 내에서 내지인, 조선인, 대만인을 구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호적의 차별 문제는 국적 문제라기보다는 '일본국적자' 내에서 내지인, 조선인, 대만인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대만에서는 이미 1899년부터 '국적법'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끝내 국적법을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조선인들의 국적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죠.
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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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rye Han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일본 여권을 썼다, 라는 것은 일본 국적자가 아니더라도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도 일본 내의 북한계 주민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무국적자가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해외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도 일본 정부의 허가 하에 일본 여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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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ee Kim
Sungrye Han 그런가요? 제가 아는 것과 달라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일단 여권은 허가가 아닙니다. 
1. 현재 일본정부가 재일조선인에게 발급하는 것은 재입국허가서입니다. 일본 정부입장에서 자국민이 아닌 이상 외국에서 그들을 보장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적이나 한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쪽의 여권을 가지고 출국합니다.
2. 그리고 꼭 국민에게만 여권을 발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난민에게도 여권이 발급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급되는
여권은 협약에 따른 것이지 정부에서 만든 여권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3. 조선인에게 여권이 발급되는
것은 조선총독부의 여권규칙에 따른 것입니다. 물론 세부 규정에서 일본의 여권규칙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여권의 발급과정, 형태, 등등은 동일하여 여권제도는 본국인, 식민지인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1878년 여권규칙을 만들 때 “여권은 해외에서 국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일본 여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 조선인이든, 대만인이든, 사할린 사람이든, 국적은 일본입니다.
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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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Sungrye Han
더 심각한 사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제는 당시 한국도 일본의 규슈와 같이 일본의 지방 중 하나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나 1919년 이후는 한국에서 일본에 도항할 때 한국인 만의 여권이 필요했고 1922년 이후는 도항증명서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데도 한국인이 법적으로 일본 국적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의 결론으로 볼 때, 일제는 한국인은 일본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절대 일본 국적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밖에도 한국인이 일본 국적자가 아니었다는 증거와 자료는 차고 넘치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1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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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Sungrye Han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1919-1922년에 총독부가 일본이나 중국 여행시 경찰을 통해 발급한 것은 여권이 아니라 '여행증명서'였습니다. 외국에 나갈 때 필요했던 여권과는 다른 것이죠. 여행증명서는 이에 대한 조선인들의 불만이 빗발쳐서 3년 만에 취소한 것이구요.
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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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lwoo Lee
민주당의 의도는 그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일제 강점 불법 무효” “대한제국-대한민국의 동일성과 계속성” 을 확실히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적 문제는 그로부터 파생한 것이지만 그 문제가 본질을 가리는 면이 있기 때문에 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당이 말하는 국가정체성은 포괄적인 의미로 생각되지만 정치적으로는 답이 분명한 “법적 정체성”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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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woo Lee
공부가 많이 됩니다. 공유하겠습니다.
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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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Roh
박찬승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일제 시대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조선의 법정에서 판사로 일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본국적을 취득한 것일까요? 아니면, 조선국적을 가지고도 일본사법의 일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1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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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준
나라가 망해 있지도 않았던 시기의 국적 논란, 특히 '국적은 한국'이라는 애국적 발언 자체가 꼴사나운 것이지요.
더민주 최민희들의 일제시대 국적 시비는 국짐 또는 보수 인사들을 '친일 매국노'로 몰아세우려는 얄팍한 함정에 불과합니다. 마치 옛 보수정권에서 진보 인사들에게 "김정은 개새끼 해봐!"라며 색깔 공세를 편 것과 하등 다를 것 없는 유치한 짓입니다.
더민주가 준비한다는 국가정체성 관련 기구 또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물며 호사카 유지를 수장으로 위촉한다니 그 성격을 알 만합니다.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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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ung Park
그니까, 옛 일제 치하(1910 ~ 1945)의 조선의 조선 사람들은
현재 Puerto Rico 가 미국의 일부 지방(a part of USA) 같은 관계였군요.
많이 배웁니다. 펌 해갑니다.꾸벅~^^
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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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So-Young Park 사모아 섬도 미국령이어서 사모아사람들은 국적은 미국이지만 시민권(참정권)은 없다고 합니다.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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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ung Park
선생님!
전 이글의 뜻이 와 닿지 않습니다.
"전연 내지인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고 하였고, " 무슨 말일까요?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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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So-Young Park 내지인, 즉 일본인과 완전히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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