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7

Vladimir Tikhonov [중국은 미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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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4h ·

[중국은 미국의 미래?]

미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자주 하는 소리긴 하지만,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많은 면에서는 미국은 상당히 예외적인 사회입니다. 대체로는 근대 국가의 기원이란 근세의 절대왕권 국가입니다. 근대와 근세 사이의 연결은, 예컨대 왕정의 형식적 존속 등을 통해서 종종 가시화됩니다. 예컨대,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날에는 입헌군주국인 노르웨이에서는 국헌절입니다. 국헌절에는 국왕과 여타의 왕족은 왕궁의 베란다에 서서 국기를 흔드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물론 국왕에게는 '권력'은 이미 없지만, 국왕이 상징하는 근세 절대왕권 시대와의 지속성이란 전혀 의미 없는 건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의 노르웨이 관료제는 대체로 덴마크의 속국이었던 17-18세기에 태동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공무원이란 국교인 루터교 신부와 공의 (공공의사)들이었는데, 그들은 각 1675년과 1672년부터 일종의 국가 고시를 통과하여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무원들에게 "시험 통과"가 의무화된 것은 1814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자격 부여의 역할을 대학들이 맡고 있지만, 과거처럼 종합대학이란 전부 국공립입니다. 근세의 절대왕권 시대처럼 스칸디나비아 대학은 교육부의 "부서"에 해당됩니다. 즉, 국가의 교육, 연구 기관으로 기능하는 것인데, 이게 예컨대 영미권의 대학과 아주 다른 것이죠.
근대 국가가 형성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두 가지의 경로는, '혁명'과 '식민화'였습니다. '혁명'의 경우 혁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혁명 전쟁' 등을 통해서 국가 기능은 엄청나게 강화되고 근대 국가의 시민집단 통합 과정은 아주아주 빨라집니다. 형식은 다를 수도 있지만, '혁명'을 통과해 강성 국가로 나아간 사회에서는 국가란 - 예컨대 혁명 이후의 프랑스처럼 - 매우 중앙집권적입니다. 지역에는 약간의 자치가 허용될 수 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사회주의적 구호를 내걸고, 반제 운동과 결합된 20세기의 혁명의 경우에는, 중국이나 북한, 베트남의 경우처럼 지배층의 거의 완전한 교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근세 절대 왕권을 이은 근대 국가들과는 상당히 큰 차이점이죠. 예컨대 제가 살고 있는 베룸 (Baerum)시의 가장 큰 지주는 Løvenskiold 가문인데, 그 가문의 시조인 독일 (류베크시) 상인 Herman Leopoldus은 17세기의 자본가입니다. 그러니까 17세기에 흥한 자본가 가문은, 여전히 노르웨이 지배층의 핵심에 속해 있는 것이죠. 반대로 중국에서는 사회 귀족의 속칭은 "홍2대" (红二代)입니다. 즉 1949년 혁명에 성공하여 혁명후 고관이 된 고참 혁명가들의 1960년대쯤 태어난 2대의 자녀란 이야기인데, 현 주석 습근평 역시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이 명칭이 보여주는 것처럼, 전형적인 혁명 이후 사회인 중국에서는 지배층은 기껏해야 2대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한의 경우 최룡해 같은 2대들은 지금 원로급이고, 실제 권력은 3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좌우간, 이런 '신흥' 엘리트는, 구미권의 근세 이후 지속적으로 그 자리를 유지해온 '정통' 엘리트와 구분됩니다.
​한국은 북한과 달리 혁명을 거치지 않고, 결국 근세 왕권과 식민화만 거쳐 현대 국가를 형성한 경우입니다. 혁명을 거치지 않았기에 근세에 이미 토지 자본 축적의 과정이 시작되고, 식민지 치하에 식민 당국과 협력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산업 자본을 축적한 삼성이나 동아일보/경방 같은 유서 깊은 족벌들이 그 지배층의 핵심을 이룹니다. 또한, 식민지 국가에는 중앙집권성이 아주 강하고 중앙관료들의 파워가 전 사회를 압도했기에, 지금도 "서울공화국", "관료공화국"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조선총독부 검사국의 후계 기관인 한국 검찰은 여전히 그 권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죠. 또한, 한국은 예컨대 식민화 이전에 복수의 토착 정권이 존재했던 인도나 인도네시아와 달리 근세에도 이미 중앙집권적인 국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은 "중앙집권"의 정도는,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아주 높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절대왕권, 혁명, 내지 식민 국가 후속 정권과의 미국의 "차이"란 무엇입니까? 이 모든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본래 복수의 주들이 연합해서 만든, 애당초부터 연방제로 태어난 국가입니다. 미국에는 통합된 연방 (즉, 중앙) 공무원제는 1871년에 이르러서야 최종 정비됐습니다. 현재와 같은 규모 (약 2백70만 명의 연방제 공무원)의 중앙 공무원제는 2차대전 이후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혁명을 거친 많은 사회들과 달리 법원들은 중앙집권적 공무원제와 별도로 성립돼 매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리고, 또 식민화를 거친 사회나 근세 절대 왕권을 이은 사회들과 달리 미국 대학의 대부분은 사립이고 역시 중앙집권적 국가로부터 독립돼 있습니다. 또 프랑스의 파리나 러시아의 모스크바, 북한의 평양, 한국의 서울처럼, 미국에는 뚜렷한 일원적 "중심" 자체가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면 LA가 중심이고 동북부에서 보면 뉴욕이 중심입니다. 그야말로 극도로 다원화된 사회인데, 이게 근대 세계로 치면 아주아주 예외적입니다. 또 혁명을 거친 현대 중국 등과 달리 미국은 각 주의 엘리트들은 대체로 19세기쯤에 부를 축적한 "옛 엘리트"들입니다. 중앙에 쉽게 복종하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
이런, 근현대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대단히 다원적인 사회로서는 트럼프의 정책은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뒤쳐지고 있는 미국은, 트럼프 치하에 거의 중국과 같은 통치 모델의 일부 방식들을 취하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입니다. 예컨대 머스크가 중앙 공무원들에게 실시한 것은 바로 전형적인 중국식 "숙청"입니다. 중국 거버넌스 시스템에서 중앙집권의 강화를 추구하는 통치자가 전형적으로 취하는 방식이죠. 실질적, 잠재적인 반대자들이 잘리고, 나머지들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통치자에게 충성의 서약을 하고 이견 표출시에 서로서로에 대해 밀고하게 돼 있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혁명이나 식민화를 거친 사회들에서는 "공무원 숙청"은 종종 일어나지만, 미국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통치 방식이죠. 더 이례적인 것은 Abrego Garcia라는, 조작된 혐의로 강제 퇴거를 잘못 당한 재미 살바도르 시민처럼, 연방 대법원이 강제 퇴거 취소의 처분을 내려도 행정부가 법원의 결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다원화된 정치체의 기본 중의 기본인 "사법부의 독립적 권력"을 행정부가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명을 거친 국가나 식민화를 거친 국가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대개 상대적이지만, 미국은 여태까지는 예외적으로 사법부가 정말로 상당히 독립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정부가 사법부를 무시해도 된다면, 이 사법부의 독립성은 사실 의미가 없어집니다. "말을 잘 안듣는" 하버드 같은 사립대에 연방 보조금 지급을 거부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 역시 다원적인 사회의 여태까지 독립적이었던 부문들을 중앙에 복종케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아마도 트럼프와 트럼프주의자들은 중국과 같은, 미국을 거의 모든 산업, 기술 부문에서 이미 능가하고 있는 거대한 중앙집권적 국가의 "효율성"에 매료돼 미국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법을 무시하고 공무원이나 교수 등에게 공포를 주면서 군림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데 체질적으로 다른 사회에서 공무원 숙청을 하고 대학가에서 사상 탄압 등을 자행하는 것은 "사회적 효율성의 제고"로 이어질 리가 없습니다. 숙청으로 공무원 체계의 작동이 오히려 혼란에 빠지고 대학가에서의 반대자 탄압은 외국인 학생 유입의 감소, 즉 대학의 재정적 위기 심화 등으로 이어지면 이어지지 "효율성"이 높아지고 중국을 다시 추월할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중국을 겉으로 방불케 하는 수법들을 통원하고 있는 트럼프 정권은, 결국 이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그 정책은 사회적 고통을 더 초래할지 몰라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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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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