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9

"한국은 美·日의 신뢰 잃고, 중국은 한국민의 마음 잃었다"

"한국은 美·日의 신뢰 잃고, 중국은 한국민의 마음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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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7.12.17 오전 12:04
최종수정2017.12.17 오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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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국과 가겠다 신호 보낸 것
임기응변식 외교, 불신만 자초
굴욕 참은 한신의 심정일 수도
기자 폭행, 중국의 韓 무시 일환"
‘중국학 개척자’ 서진영 교수의 한·중 정상회담 평가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조문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결례투성이 의전과 일정, 핵심이 빠진 합의,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기자 폭행까지. 국빈 방문의 외교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일들이 잇따르면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학의 개척자’로 50년 넘게 중국을 들여다본 서진영(75)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전쟁을 막았다’는 성과를 내세우겠지만 미국·일본의 신뢰와 한국민의 자존심을 잃었다”며 “중국도 한국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전 세계에 확인시킨 동시에 한국민의 마음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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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번 회담은 성공한 회담인가, 실패한 회담인가.
A : 문재인 정부는 회담 준비 과정부터 전략적으로 중국에 접근했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다. 소위 ‘3불’(不)입장(사드 추가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의 MD체제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을 중국에 성급하게 공약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면전에서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고 얘기했다.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굳이 나서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입각한 20세기의 냉전적 동아시아 질서 대신 21세기를 중국과 함께 개척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냈다.


Q : 정부는 '4대 원칙'(한반도 전쟁불가, 비핵화 견지, 북핵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 개선 지지)합의를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데.
A : 전쟁은 안 된다며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에 반대했는데, 이는 당사자인 한국 정부와 가장 영향력 있는 이해 당사자인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옵션을 없애고 스스로 무장해제한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협상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냐’는 핵심 사항도 빠졌다. 북핵을 속수무책으로 둔 거다.
서 교수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에서 가장 큰 손실은 “미국과 일본의 신뢰를 잃은 점”이라고 했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 향후 4년 또는 그 후 한국 정부와 어디까지 안보협력을 해야 할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한국 정부가 과연 도움이 될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중국에 경사됐다고 비판해 온 아베 신조 정권도 한국이 미·일과 가치를 공유하며 협력할 나라가 아님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향후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대북 조치를 취하거나 결정적인 순간 미·일이 우리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 때가 가장 무서운 사례 아닌가. 그땐 경제적 파산이었지만 앞으로는 군사·안보적 파산이 닥칠 수 있다.”

서 교수는 문 대통령이 난징(南京) 대학살을 세 차례나 언급한 것도 문제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는 난징을 매개로 중국과 대일본 역사 동맹으로 갈 수도 있고, 이를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을 우회해 전략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일본을 포기하는 위험한 행보다. 중국의 힘이 세진다고 해도 향후 20년은 미국, 일본과 더 협력하고 살아야 한다. 일본을 그렇게 몰아붙여 뭘 얻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중국에 무엇을 얻었나.”



Q : 첫날 일정부터 논란이 일었다.
A : 난징 대학살 80주년 기념일을 모르고 잡았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 잡았다면 미·일 관계를 다 깨고 중국 품으로 들어가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날짜를 누가,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잡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Q : 한국은 연내 정상회담을 강력히 희망했다.
A : 중국은 처음부터 ‘아직 회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정부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통해 대중 관계를 복원하고 북한의 참여도 이끌어 내려 했다. ‘3불’을 중국에 내주면 사드 문제가 풀리고, 북한도 평창에 끌어오고, 그래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문재인 정부의 국제적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는 일련의 구상 속에서 연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려 한 것 같다. 평창 2년 뒤엔 도쿄 올림픽, 그 2년 뒤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 한·중·일에 몰린 올림픽 3개를 통해 동아시아를 평화와 축제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리고 중국이 이끌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을 잘못 읽었다는 데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전과 일정 등은 최악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민의 자존심도 버려졌다.
서 교수는 한국 정부가 전략적 관점의 접근을 한 것과 달리 중국은 힘에 바탕을 두고 손에 잡히는 국익을 확보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했다고 분석했다.



Q : 중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A : 한국이 수모를 감수하면서 ‘강대국 중국’에 매달리는 모습을 전세계에. 특히 미국에게 보여줬다. ‘봐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이 나한테 오고 있다’ 이렇게. 강대국 정치에서 상대방의 귀중한 패 하나를, 그것도 끌어서 뺏어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Q : 중국은 왜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A : 국내정치측면이 있다고 본다. 시진핑이 절대 권력을 잡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대외정책 면에선 확실한 업적이 없다. 일대일로(육·해상실크로드) 정책 등을 추진은 하고 있지만 미국·일본은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도 껄끄럽다. 특히 중국은 북한에게 잇따라 굴욕을 당했다. 자국민들에게 강대국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세우는데 한국이란 이슈를 활용하는 것 아닌가 한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향후 20년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읽고 대응하려는 것은 맞지만 현실주의적 역량과 단계별 치밀함 없이 속내를 국제사회에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략적 목표와 현실적 외교정책이 제각각이다. 한 발 한 발 건너지 않으면 격류에 휩쓸려 가기 십상”이라며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 외교는 ‘브리징 디플로머시(Bridging Diplomacy)’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량외교·중개외교란 말을 쓰는데 나는 ‘복덕방외교’라고도 한다. 집을 팔고 사는 양쪽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은 신중하게 하며 정직해야 한다.”

서 교수는 “현 정부의 임기응변식 외교와 언행 불일치가 국내외에 너무 많이 알려졌다”며 “중국이 이번에 한국 정부의 전략적 접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불신의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미국 입장에선 배신자, 중국 입장에선 기회주의자로 비친다. 이런 식이면 결정적 순간에 강대국 몇 나라가 한국을 배제하고 한반도를 요리할 수도 있다.”



Q : 북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A : 이대로 가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하거나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핵도 갖고 강력한 재래식 무기도 가질 것이다. ‘동북아의 이스라엘’이 된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하듯, 그들이 무슨 일을 해도 어떤 나라도 건드릴 수 없다.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입장에선 자체 핵무장을 얘기할 수 밖에 없다. 미국도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무장 허용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는, 그 게임으로 갈 것이다.



Q : 이 옵션마저 통하지 않으면.
A : 한·일의 핵무장과 대북 군사적 옵션을 제외하면 김정은 레짐 체인지를 테이블에 올릴 텐데. 어느 날, 어떤 식으로 교체된 북한의 새 지도자가 핵을 포기하거나 관리권을 미·중이나 국제사회에 위탁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게 하려면 강력한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 미·중이 협력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중국과 급변 사태를 논의했다고 밝힌 점에 주목해야 한다.



Q : 한국 기자 폭행사건은 어떻게 보나.
A : 중국에서 외국인 기자 폭행은 많이 있었다. 영국 BBC는 물론 미국과 독일 기자들도 얻어 맞았다. 다만 국빈방문 중 이런 사건이 일어난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번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집 주인이 바쁜 일로 외출해야 한다는데 찾아와서 ‘괜찮아. 기다릴게’하는 식으로 일정이 진행됐다. 중국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이 한국을 무시하는 전반적인 정서가 폭행사건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시진핑이 대우하는 손님이었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서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시정잡배의 가랑이를 기어가며 굴욕을 참았던 한신과 병자호란 때 최명길의 심정, 즉 굴욕은 좀 당하더라도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회담에 임했을 수 있다”며 “이같은 정서를 바탕으로 잘못된 외교를 계속해 나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는 이길로 가다가 아니면 ‘이길이 아닌가’하고 다른 길로 가면 되지만 외교는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늘 진검승부로 임해야 하는 게 외교다.”


서진영 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겸 사회과학원장. 워싱턴주립대 박사, 한·중 전문가 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 저서 『중국혁명사』 『 21세기 중국외교정책: 부강한 중국과 한반도』 등.

김수정 외교안보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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