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5

평화의 아이들 - 북한 어린이와 함께한 남북 의료협력 16년의 기록 김진숙



알라딘: 평화의 아이들

평화의 아이들 - 북한 어린이와 함께한 남북 의료협력 16년의 기록
김진숙 (지은이)북루덴스2018-11-05














































Sales Point : 293

9.5100자평(1)리뷰(12)

260쪽
145*210mm
502g
ISBN : 978895605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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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보건복지부 남북 보건의료협력 담당자인 저자가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한 16년 동안의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북한 어린이, 남북 보건의료 실무협상, 북한의 의료 시스템, 남북 협상 담당자로서의 고민과 아쉬움을 생생히 기록했다.
공직자로서 책무 외에도 북한을 이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의료 현실을 세세하고도 정확히 기록했고, 우리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진솔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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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art 01 마음 한 켠의 나라, 북한・7
part 02 평양에서・39
part 03 정성의 나라・73
part 04 환자를 찾아가는 작은 병원・89
part 05 개성에서・115
part 06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149
part 07 아이들은 기다린다・177
part 08 금강산에서・199
part 09 북한식 ‘단박 도약’・229

맺음말・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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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나는 왜 보통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대중적인 관심도 크지 않은 '북한'이라는 주제를 십 년 넘게 고민하고 있을까?

P. 13 “그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아이들이 배고파하며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아이 둘을 낳고 아이들이 배고프기 전에 젖 먹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남한의 엄마’였다. 같은 시간 ‘북한의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나는 하우저 씨가 의문을 가진 표정으로 계속 질문을 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우저 씨는 남이냐 북이냐 차이만 있지 같은 Korean끼리 서로의 사정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물론 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늘 깨어있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접기

P. 25 “그러나 2008년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또는 합의 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후속작업도 흐지부지되었다. 2010년 나는 북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부서로 이동했다. 그래도 북한은 계속 내 머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날, WHO 영유아 지원사업 평가회의에서 받은 4~5년 치 회의 자료와 내가 추가로 요청해서 얻은 북한 관련 자료들 위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면서 저걸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꼈다. 북한 연구자들은 언제나 북한 관련 자료들을 얻기 위해서 북한 이탈주민도만나고, 북한-중국 접경 지역을 답사하기도 하는데 나는 공직에 있으면서 편하게 얻은 자료들을 방치하고 있는 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접기

P. 186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은 한 나라의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로 가장 비용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아이들에게 백신을 지원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한 주민들을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예방접종을 한 아이들은 간염이나 홍역, 결핵 등에 이미 면역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탈북해서 남한에 입국하더라도 그만큼 남한 주민을 감염시킬 확률이 떨어진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 남북한 아이들이 섞일경우 남한 아이들의 백신접종률이 높더라도 북한 아이들이 백신접종이 되어 있지 않다면 평균 백신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져서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와 의의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현재 모든 사업은 정지 상태이다. 2015년 12월 250만 명에 대한 1차 접종이 끝난 이후우리는 2차 290만 명의 백신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2018년 5월 현재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접기

“16년 전인 2002년부터 북한을 오가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나의 글이,

북한에도 나와 같이 숨을 쉬는 내 또래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 jengin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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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8년 11월 17일자 '새로 나왔어요'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8년 11월 16일자
서울신문
- 서울신문 2018년 12월 13일자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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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진숙 (지은이)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약대를 졸업하고 10년간 구로동에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단체들과 함께 즐겁게 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했던 건강교실, 장애인 무료 진료, 결식아동 무료 급식 활동들은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로동에서의 10년은, 어떤 문제든지 현장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면 해결점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게 해주었다.

2002년부터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북한 어린이’는 삶의 화두가 되었다.
2006년에 북한 전문가로 채용되어 2018년 현재까지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북한 주민, 특히 엄마들이 건강하게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도와주는 남북 보건의료협력사업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2007년 12월 개성에서 열린 남북 보건의료협력분과위원회에 실무자로 참여하였고,
이 분과위원회에서 합의한 4개 사업은 아직도 서랍 속에 묻혀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남북 정상회담의 평양공동선언에서 다시 남북 간 보건의료협력이 합의된 만큼 새로운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시 보건의료협력이 시작되어 평양 대동강구역병원 원장님의 화통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진숙 선생, 이렇게 다시 시작하니 아프다 하면 안 되겠구만, 우리 건강 일없습네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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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평화의 아이들>
출판사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북한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 책은 보건복지부 남북 보건의료협력 담당자인 저자가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한 16년 동안의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다. 저자 김진숙은 이 책에서 북한 어린이, 남북 보건의료 실무협상, 북한의 의료 시스템, 남북 협상 담당자로서의 고민과 아쉬움을 생생히 기록했다. 무엇보다 『평화의 아이들』이 소중한 이유는 공직자로서 책무 외에도 북한을 이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의료 현실을 세세하고도 정확히 기록한 데다, 우리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진솔하게 밝혀서이다. 독자들은 『평화의 아이들』을 통해 ‘왜 북한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인지 절실히 느낄 것이다.

구로공단의 친근한 약사,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활동가

저자 김진숙은 구로동에서 노동자의 건강의료를 지원하던 약사였다. 2001년 미국을 방문한 저자는 AFSC라는 봉사단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고난의 시기’였던 당시의 북한 아이들을 사진으로 접한다. 그 이후, 북한 어린이는 김진숙의 평생 화두가 되었다. 한국으로서 돌아온 김진숙은 민간단체인 북한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자청한다. 2002년 지원본부에서의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김진숙의 16년간 긴 여정이 마침내 막을 연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찾아야 하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다!

2005년 말 복지부 대북 지원 전문가로 특채된 김진숙은 정부 차원에서 북한 보건의료 협력 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통일부와 민간단체들과 협의하여 가능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 영유아 지원사업’은 그녀의 평생 화두인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그녀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보건성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단순히 북한을 지원하는 사업이 아닌 남북이 함께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하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저자는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을 지켜보았고, 그해 12월 개성에서 열린 ‘제1차 남북 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에 참여해 의제 준비부터 시작해 합의서 체결, 합의서에 따른 후속 작업까지 그녀의 말대로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상황이 급변해 남북 간의 모든 합의 사항은 금기어가 된다. 김진숙은 허기진 북한 소식을 채우기 위해 북한대학원에 진학해「북한 약학부문사업과 보건의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게 될 북한 보건의료 사업, 그것을 위한 준비였다. 2015년부터 다시 북한 업무로 돌아온 김진숙은 백신 지원 사업을 추진했고, 더불어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모든 사업이 정지되고 만다.

마음 한 켠의 나라, 북한

『평화의 아이들』은 약사, 민간단체 활동가, 그리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된 저자가 북한 어린이에 대한 소명의식, 자연인으로서 공직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려 한 분투기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북한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마음 한 켠에 있는 나라’였다. 저자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활동가로 평양을 방문해 원료의약품과 제약장비 지원사업을 벌여 비타민 10만 정이 쏟아지는 현장을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기도 했고, 왜 북한이 의료분야에서 스스로를 ‘정성의 나라’로 부르는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그녀는 여러 차례 개성을 방문하면서 개성공단 남북한 진료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나갔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이념적 경계에 의해 그어진 사람들의 장벽이 어떻게 허물어져야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는지를 기쁘게 느꼈고,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지닌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화의 아이들』은 저자 김진숙이 북한을 보고 만지고 느낀 스스로의 성장기이기도 하면서, 아직 전달되지 못한 어린이 290만 명의 백신, 그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작은 길은 북한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접기


9.5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한 유니세프 기금은 유명 연예인이 나와 구호모금을 해도 우리 북녁땅의 아이들을 위한 노력은 정치적으로 색깔논쟁으로 쉽지 않았던 시절을 지내온 우리에게 이 책의 저자의 일련의 행보가 같은 세대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hellen0923 2018-11-1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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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린이와 함께한 의료인 이야기

본인의 아이들도 물론 잘 돌보셨겠지만(그럼에도 아이들은 부족하다 느꼈겠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꺼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북한의 아이들을 남보다 더 먼저, 그리고 내 아이처럼 바라보고 보듬으려 노력한거 같다.

사실 북한 어린이의 실상은 의외로 많이 노출되어 있음에 이렇게 선듯 나서기 어려운건 아마 북한의 윗선의 그간의 행동에 문제가 아닐런지 싶다.
나처럼 아마 북한의 어린이들을 돕고 싶어도 정작 내 자식의 안전과 안위가 걸려 혹시나 내가 선의로 한 행동이 되려 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일꺼다.

물론...
저자의 글을 보면서 "그래, 엄하게 저 먼나라의 아이들을 도울일이 아니라 언젠간 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같이 살아가고, 또 어쩌다가 한가족이 될지도 모를 이 아이들을 도와야지."라고 생각이 들었으나...
정작 책을 덮고서는 "근데... 진짜 내가 할 행동이 그 아이들만 돕는걸까? 아니면... 되려 내 아이들에게...!!!"라며 머뭇거리게 된다.

그런 면에선 정말이지...
저자의 용기와 행동엔 박수를 안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래서 당장 뭘 하라고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면서 살살 사람을 자극한다.
다만...
용기를 내도록 꼬득이는 뭔가가 필요한데...
그건 좀 부족한듯 싶다.(나도 이리 고민을 하니 말이다.)

공감은 하지만...
그 아이들이 안스럽긴 하지만...
내겐 아직 용기가 선뜻 생기진 않는다.
- 접기
공블리 2018-12-18 공감(2) 댓글(0)




평화의 아이들

북한 어린이와 함꼐한 남북 의료협력 16년의 기록

북한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남북관계가 얼어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에도 꾸준히 북한에서 봉사를 했던 분이 계셨나? 였다. 이 책은 보건복지부 남북 보건의료협력 담당자인 저자 김진숙가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한 16년 동안의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다. 문든 슈베르트, 테레사수녀가 연상될 정도의 실제 있었던 팩트, 실화,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김진숙은 이 책에서 북한 어린이, 남북 보건의료 실무협상, 북한의 의료 시스템, 남북 협상 담당자로서의 고민과 아쉬움을 생생히 기록하고 공직자로서 책무 외에도 북한을 이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의료 현실을 세세하고도 정확히 기록한 데다, 우리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진솔하게 밝혔다.

독자에게 이 책은 그저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준 따뜻한 감성스토리가 아닌 왜 북한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인지 절실히 느끼고 북한의 현실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우선은 저자 김진숙에 대한 이야기부터 빠트릴 수 없다. 구로동에서 노동자의 건강의료를 지원하던 약사였다. 2001년 미국을 방문한 저자는 AFSC라는 봉사단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고난의 시기’였던 당시의 북한 아이들을 사진으로 접한다. 그 이후, 북한 어린이는 김진숙의 평생 화두가 되었다. 한국으로서 돌아온 김진숙은 민간단체인 북한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자청한다. 2002년 지원본부에서의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김진숙의 16년간 긴 여정이 마침내 막을 연다.

“그러나 2008년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또는 합의 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후속작업도 흐지부지되었다. 2010년 나는 북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부서로 이동했다. 그래도 북한은 계속 내 머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날, WHO 영유아 지원사업 평가회의에서 받은 4~5년 치 회의 자료와 내가 추가로 요청해서 얻은 북한 관련 자료들 위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면서 저걸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꼈다. 북한 연구자들은 언제나 북한 관련 자료들을 얻기 위해서 북한 이탈주민도만나고, 북한-중국 접경 지역을 답사하기도 하는데 나는 공직에 있으면서 편하게 얻은 자료들을 방치하고 있는 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은 한 나라의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로 가장 비용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아이들에게 백신을 지원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한 주민들을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예방접종을 한 아이들은 간염이나 홍역, 결핵 등에 이미 면역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탈북해서 남한에 입국하더라도 그만큼 남한 주민을 감염시킬 확률이 떨어진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 남북한 아이들이 섞일경우 남한 아이들의 백신접종률이 높더라도 북한 아이들이 백신접종이 되어 있지 않다면 평균 백신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져서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와 의의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현재 모든 사업은 정지 상태이다. 2015년 12월 250만 명에 대한 1차 접종이 끝난 이후우리는 2차 290만 명의 백신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2018년 5월 현재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평화의 아이들』은 약사, 민간단체 활동가, 그리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된 저자가 북한 어린이에 대한 소명의식, 자연인으로서 공직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려 한 분투기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북한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마음 한 켠에 있는 나라’였다. 저자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활동가로 평양을 방문해 원료의약품과 제약장비 지원사업을 벌여 비타민 10만 정이 쏟아지는 현장을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기도 했고, 왜 북한이 의료분야에서 스스로를 ‘정성의 나라’로 부르는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그녀는 여러 차례 개성을 방문하면서 개성공단 남북한 진료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나갔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이념적 경계에 의해 그어진 사람들의 장벽이 어떻게 허물어져야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는지를 기쁘게 느꼈고,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지닌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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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ussy 2018-11-28 공감(2) 댓글(0)



16년의 기록에서 뭍어나는 저자의 마음이 감동적이네요

북한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치범 수용소, 탈북자, 고난의 행군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팔과 다리의 가격>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으면서 더욱 끔찍한 북한 현실에 대한
이미지만 가득하던 차에 <평화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16년간 북한을 오가며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의료지원에 대한 기록이에요~
북한에 대한 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예전에 본 영상 때문이에요.
북한 주민들을 찍은 건데 몰카 같았어요. 많이 화면이 흔들리면서 꽃제비 아이들도 보였어요.
한 여성이 팔 다리를 침대(그냥 판자) 같은데 묶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촬영하던 사람이 물어봤어요. 어디 가 아프냐고. 그랬더니 맹장 수술을 받는다고 해요.
문제는 마취약이 없어서 마취를 안 하고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은 몇 년이 흘렀어도 계속 떠올랐어요.

사진도 많이 들어 있는데, 아쉬웠던 건 평양같이 북한 쪽에서 보여주고 싶은 곳만 한정적으로
다닐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중심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도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궂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이 어떨지는 상상도 안됐습니다.
김진숙 저자도 이 부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ᅲ

홍 선생님은 대북 지원에서 유념할 사항으로 남루한 병원이라는 겉모습만 보고
미개한 나라처럼 인식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봉착한 경제난으로 장비를 교체하지 못했을 뿐 나름대로 신식 의료장비를 사용해왔고,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인력도 충분하다. 그들의 요구 수준 또한 매우 높기 때문에 반드시
수준급의 장비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기대치와 열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아끼고 소중하게 정성을 다하여 진료에 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지원하기로 결정한 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저 외형만 크게 벌여놓고 뒷감당을 외면하는 형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작지만 충실하고 신뢰받는 협력 사업이 되어야 한다."


북한 어린이의 바싹 마른 모습의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서
직접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항상 아쉽고 매번 부족함을 생각하며 다음 지원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저자는 북한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16년 동안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북한의 의료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어서 이러한 기록의 소중함도 느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물감 사건'이에요.
북한의 한 병원 원장이, 병원 복도에 보건 교육 자료를 붙여놓고
환자들이 대기할 때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어요.
그런데 교육 내용 문구랑 그릴 사람까지도 모두 구했는데
제일 중요한 아크릴 물감이 없다는 거예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어서라도 도와드리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저도 울컥하더라구요. 책을 읽다 보니 내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모든 것이
그곳에서는 한 번 보기도 힘들고, 갖기도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습니다.

최근 북한 철도 기사를 보면서 통일에 대한 생각도 해봤어요.
현실적으로 아직은 힘들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북한의 많은 어린이들도 하루빨리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처럼
행복하게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저자의 꿈은, 북미 정상 회담이 잘 성사되어 한반도의 봄이 오면
남편과 평양 찍고 베를린까지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가보고 싶네요 ㅎㅎ

북한에 대한 민간단체의 자원봉사가 궁금하거나
의료 시설에 대한 현실을 알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저자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느끼실 수 있으실꺼에요~

- 접기
책이좋아서 2018-12-02 공감(1) 댓글(0)




북한

언론에서 연일 북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정치적인 이해관계, 남북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반응을 전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일부분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미래라고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왜 평화를 지향하며, 이를 바탕으로 민간 차원의 협력, 교류를 통해 통일을 말하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판단적 접근이 아닌,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경제규모나 인프라, 다양한 분야를 비교하면, 북한은 여전히 못 사는 국가입니다.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초월해, 그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한민족이라는 느낌으로 도와야 하는지, 무조건 퍼주기나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닌, 통일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알고 제대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며, 효율적인 도움이나 다양한 활동이나 봉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이나 성향에 따라서 듣기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오늘을 통해, 그들을 알고 도울 수 있는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일상적인 삶, 보편적인 과정이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힘든 현실, 열악한 환경으로 절망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도움은 절대적인 것이며, 미래를 도모하는 관점에서도 매우 유의미한 가치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제재를 하더라도, 인도적인 지원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까지 막는다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로 보이며,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무조건 지원하자, 돕자는 취지도 아니며, 차라리 국내에 불우한 사람들을 돕자는 일각의 반응도 일리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크게 생각하며, 북한 정권의 수뇌부나 상류층을 돕자는 것도 아니며,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약간의 마음을 베풀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의 아이들이 말하는 북한의 현실, 남북관계와 통일 고려할 때, 어떻게 도울 수 있고, 그들을 바꿀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일상적인 느낌으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의료봉사와 민간 차원의 협력과 지원의 의미, 다소 뻔하게 보일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볍게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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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kidol 2018-11-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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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저의 『평화의 아이들』 을 읽고

참으로 좋은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로 남북 극한 대립의 상황이 점차 하나의 한반도 평화로운 하나의 모습으로 향하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제대로 빨리 진척되어 자유롭게 오가면서 옛 우리 한민족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최근 내가 군대 때 직접 근무했던 강원도 철원 부근 철책선 GP가 철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체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총칼을 맞대면서 날카롭게 경비를 서야 했던 그 순간들이 점차 없어지는 모습들이 너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 [평화의 아이들]을 보면서 "북한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라는 표현이 마음으로 영 씁쓸하였다.

나 자신이야 매스컴이나 간접적으로 듣고 느낀 것이기 때문에 그저 그렇다 치더라도 저자는 직접 실무자로서 북한을 드나들면서 보고 듣고 실제 겪으면서 느낀 표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할뿐더러 새롭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같은 한반도라는 땅에서 사는 하나의 민족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기도 하였다.

그런 아픔이 크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북한의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원래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이후 구로동에서 노동자의 건강의료를 지원하던 약사였다.

2001년 미국을 방문하여 우연히AFSC라는 봉사단체를 방문하였는데 '고난의 시기'였던 당시의 북한 아이들을 사진으로 접한다.

그 이후, 북한 어린이는 김진숙의 평생 화두가 되었다.

한국으로서 돌아온 김진숙은 민간단체인 북한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를 찾아가, 북한의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자청한다.

2002년 지원본부에서의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김진숙의 16년간 긴 여정이 마침내 막을 연다. 따라서 이 책은 보건복지부 남북 보건의료협력 담당자인 저자가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한 16년 동안의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다.

저자 김진숙은 이 책에서 북한 어린이, 남북 보건의료 실무협상, 북한의 의료 시스템, 남북 협상 담당자로서의 고민과 아쉬움을 생생히 기록했다.

무엇보다 『평화의 아이들』이 소중한 이유는 공직자로서 책무 외에도 북한을 이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의료 현실을 세세하고도 정확히 기록한 데다, 우리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진솔하게 밝혀서이다. 독자들은 『평화의 아이들』을 통해 '왜 북한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인지 절실히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진정한 마음으로 열심히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정책적인 이유로 중단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전달되지 못한 어린이 290만 명의 백신', 그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너무나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는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작은 길은 북한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작은 길이 머지않아 가장 큰 길은 한반도 평화의 길로 이어지리라 확신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내 자신도 군대 때 근무했던 강원도 철원의 철책선의 GP를 방문하여 회상해보리라는 생각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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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사 2018-11-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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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북한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책 ‘평화의 아이들’…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한 16년 동안의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8-11-14 
책 ‘평화의 아이들’ⓒ북루덴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남쪽에도 어려운 이들이 있는 데 북한부터 챙긴다고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다. 때론 인도적 지원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북한이 보내준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로 북한에 제주산 귤을 보내는 것조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귤 상자에 귤만 들어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이들에겐 북한의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등 사업을 펼치는 것조차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엔 북과 남을 구별하고, 그들은 우리와 다른 무엇으로 여기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남북이 서로 다른 무엇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보건복지부 남북 보건의료협력 담당자로서 북한 어린이와 함께 남북의료협력 사업을 16년 동안 진행해온 김진숙 씨는 “북한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쓴 남북 의료협력 이야기를 담은 책 ‘평화의 아이들’이 출간됐다.

“그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아이들이 배고파하며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아이 둘을 낳고 아이들이 배고프기 전에 젖 먹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남한의 엄마’였다. 같은 시간 ‘북한의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나는 하우저 씨가 의문을 가진 표정으로 계속 질문을 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우저 씨는 남이냐 북이냐 차이만 있지 같은 Korean끼리 서로의 사정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물론 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늘 깨어있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2005년 말 복지부 대북 지원 전문가로 특채된 김진숙은 정부 차원에서 북한 보건의료 협력 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통일부와 민간단체들과 협의하여 가능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 영유아 지원사업’은 그녀의 평생 화두인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그녀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보건성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단순히 북한을 지원하는 사업이 아닌 남북이 함께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하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저자는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을 지켜보았고, 그해 12월 개성에서 열린 ‘제1차 남북 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에 참여해 의제 준비부터 시작해 합의서 체결, 합의서에 따른 후속 작업까지 그녀의 말대로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저자에게 북한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마음 한 켠에 있는 나라’였다. 저자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활동가로 평양을 방문해 원료의약품과 제약장비 지원사업을 벌여 비타민 10만 정이 쏟아지는 현장을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기도 했고, 왜 북한이 의료분야에서 스스로를 ‘정성의 나라’로 부르는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그녀는 여러 차례 개성을 방문하면서 개성공단 남북한 진료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나갔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이념적 경계에 의해 그어진 사람들의 장벽이 어떻게 허물어져야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는지를 기쁘게 느꼈고,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지닌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상황이 급변해 남북 간의 모든 합의 사항은 금기어가 되면서 사업은 시련을 맞는다. 저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또는 합의 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후속작업도 흐지부지되었다. 2010년 나는 북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를 하는 부서로 이동했다. 그래도 북한은 계속 내 머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날, WHO 영유아 지원사업 평가회의에서 받은 4~5년 치 회의 자료와 내가 추가로 요청해서 얻은 북한 관련 자료들 위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면서 저걸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꼈다. 북한 연구자들은 언제나 북한 관련 자료들을 얻기 위해서 북한 이탈주민도만나고, 북한-중국 접경 지역을 답사하기도 하는데 나는 공직에 있으면서 편하게 얻은 자료들을 방치하고 있는 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끈을 놓지 않은 김진숙은 북한대학원에 진학해‘북한 약학부문사업과 보건의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게 될 북한 보건의료 사업, 그것을 위한 준비였다. 2015년부터 다시 북한 업무로 돌아온 김진숙은 백신 지원 사업을 추진했고, 더불어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했다.

이 책은 저자가 북한을 보고 만지고 느낀 스스로의 성장기이면서, 아직 전달되지 못한 어린이 290만 명의 백신, 그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작은 길은 북한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은 한 나라의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로 가장 비용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아이들에게 백신을 지원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한 주민들을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예방접종을 한 아이들은 간염이나 홍역, 결핵 등에 이미 면역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탈북해서 남한에 입국하더라도 그만큼 남한 주민을 감염시킬 확률이 떨어진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 남북한 아이들이 섞일경우 남한 아이들의 백신접종률이 높더라도 북한 아이들이 백신접종이 되어 있지 않다면 평균 백신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져서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와 의의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현재 모든 사업은 정지 상태이다. 2015년 12월 250만 명에 대한 1차 접종이 끝난 이후우리는 2차 290만 명의 백신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2018년 5월 현재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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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칠 수 없는 금강산 온정리병원 원장의 요청
<화제의 책> 김진숙의 남북의료협력 기록 『평화의 아이들』
기자명 김치관 기자   입력 2019.02.23 22:37  수정 2019.02.24 01: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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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주목받는 이유는 북미관계의 진전뿐만 아니라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숨통이 트일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또는 합의 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후속작업도 흐지부지되었다.”

한때는 민간단체 실무자로 이후는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 북한 어린이 의료협력을 진행해온 귀중한 경험을 가졌지만 10년을 허송세월한 뒤 지난해 5월 다시 세 번째 북한 업무를 맡게 된 김진숙 과장 역시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지난해 떠들썩한 정상회담들이 많았지만 정작 남북 교류협력사업은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상태로 모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 김진숙, 『평화의 아이들』, 북루덴스, 2018.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같은 상황에서 김진숙 과장은 지난 16년 간 자신이 경험한 북한 어린이 의료협력 내용을 기록한 『평화의 아이들』(북루덴스, 2018.11.)을 내놓았다.

“16년 전인 2002년부터 북한을 오가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나의 글이, 북한에도 나와 같이 숨을 쉬는 내 또래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책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보다는 남북 교류협력, 그 중에서도 의료협력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보다 유용한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라는 민간단체 상근자로 2002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그곳 시설을 둘러보고 북측 관계자들을 만난 경험은 불안정한 전기공급 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추진하는 북측 관계자들의 열의를 동시에 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북측과의 교류를 통해 저자가 파악한 ‘보건성→도 보건국→시(구역) 보건과’로 이어지는 북한의 의약품 공급체계나 북한 약품들의 품질 검사 결과, 북한과 스위스 합작회사인 ‘펑스제약합영회사’의 ‘펑스약국’의 존재 확인 등은 이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대동강구역병원 지원 경험과 북한만의 독특한 의료제도인 호담당의사들에게 왕진가방을 지원한 사례는 보건분야 지원사업에서 각별한 사례다.

“왕진가방이 입소문이 나면서 북한은 대동강구역병원을 포함해서 평안도, 함경도, 량강도, 강원도 등에 분배할 1,600개의 왕진가방을 추가로 요청했다.” 결국 ‘사랑의 왕진가방 보내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남이나 북이나 왕진가방은 인기 폭발”이었다. 6개월 만에 1,600개 왕진가방이 전달됐고, 이 운동은 국제적 운동으로 번졌고, 북한의 산악지대를 감안한 왕진백팩과 자전거 지원으로까지 발전됐다.

그러나 역시 본격 무대는 2006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뒤다. 복지부에서 북한 업무를 맡아 ‘영유아 지원사업’을 담당한 것.

“내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스케일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법과 예산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며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영유아 지원사업은 사업기간도 5년(2006~2010년)이고, 단순한 영양지원 사업을 넘어 아동사망률과 모성사망률 감소 목표를 위한 ‘종합선물 세트’ 식의 사업을 추진한다.

실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 보건성 관계자가 직접 참가하고 WHO(세계보건기구)와 우리 복지부 3자가 체계적인 회의를 거쳐 매년 리진료소 600개, 군병원 30곳씩 5년간 단계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의약품지원과 북한 의사와 간호사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종합적인 사업이 진행됐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3자협력체에서 철수하게 될 때까지 저자는 이 프로젝트에 복지부 공무원으로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 프로젝트의 진행 자료들을 확보함으로써 북한의 보건의료에 대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데이터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공무원으로서 2006년 민간단체들의 영유아 지원사업을 도왔지만 “민간단체 사업이 훨씬 노력이 많이 드는 지난한 작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했다. 민간단체의 협력창구인 민화협을 상대로 보건사업을 설명해야 하고, 북측의 실제적 관심사항과 평양 이외 지역에 대한 부담감 등이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된 것.

이 외에도 개성공단 내에 민간단체 그린닥터스가 남북 근로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부터 보수정권 하에서 예외적으로 2009년말 북한지역에 발생한 신종플루를 치료하기 위한 타미플루 지원 등의 경험도 기록으로 남겼다.

무엇보다 가슴아픈 경험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후속으로 역사상 처음 열린 남북 보건회담에 참석해 사리원인민병원 현대화 등 5개항의 합의문을 도출을 지켜봤지만 결국 2008년 정권이 교체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반짝 각광받던 2015년 풍진 백신 지원 경험과 금강산 온정리인민병원 지원 경험도 소중하다. 특히 온정리병원 산부인과에 초음파를 지원하고 백내장 수술을 실시한 장면은 남북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마음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그 과정에 만난 온정리병원 원장의 재능과 열정까지.

“나는 이럴 땐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다 털어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마련해놓고 그래도 부족한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뿌리칠 수 있을까.”

약사로서 구로동에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헌신해온 저자는 북녘 어린이 건강을 위해 박사 학위를 얻게 되고, 공무원으로 변신까지 마다 않았다. “당국자가 되더니 더 뻣뻣해졌구만요” 같은 핀잔도 들어가며...

이제는 ‘대북 지원에 새로운 패러다임’도 고민한다. 남북간 정치상황에 영향받지 않도록 “대북 지원도 국제사회의 ODA(공적개발원조) 절차를 따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원조를 받는 수원국 스스로 중장기적 개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국제동향에 발맞추자는 것.

나아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DNA는 북한에도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지는 않을까”라며 “같은 말을 쓰는 남한의 전문가들이 자주 북한을 찾아가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면 북한식 ‘단박 도약’이 아주 어려운 일일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공’도 10년이 넘어 사실상 ‘늘공’(늘 공무원) 과장으로 승진한 저자도 다시 가슴이 설레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 성사되어 그야말로 한반도의 봄이 오면 남편과 평양 찍고 베를린까지 가보고 싶다”는 봄바람이다.

 

(수정, 24일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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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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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의료협력 산증인 김진숙 “북은 ‘지원’ 아닌 협력관계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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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2

김진숙 남북 보건의료협력추진단 팀장이 16년간 추진된 남북 보건의료협력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인도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전쟁 중에도 마찬가지다. 이미 150년 전 세계는 전쟁 중이라도 부상당한 포로를 치료하고 보호하도록 ‘인도적’ 협정을 맺었다. 40년 가까이 대북 의료지원사업을 하는 유진벨재단 스티븐 린튼 회장은 최근 북을 방문하고 돌아와 지난 11월 16일 기자회견을 했다. 린튼 회장은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북 결핵환자를 돕던 ‘글로벌 펀드’가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면서 “결핵 격리병동 20개를 제작했지만 대북제재로 북한에 보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결핵 격리병동을 보낼 수 없는 이유는 바닥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보일러관이 반입금지 품목이기 때문이란다. 남북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했지만 가장 인도적인 보건·의료분야 지원마저 매우 까다로운 게 현실이다.


■남북 보건협력의 기록 <평화의 아이들>

남북 보건의료협력의 산증인이자 실무자인 김진숙씨(52)를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16년 동안 자신이 했던 남북 보건의료협력 내용을 정리·기록한 <평화의 아이들>(북루덴스)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여기에는 민간·정부 차원의 남북 보건의료협력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김씨의 공식직함은 보건복지부 남북보건의료협력추진단 대외협력팀장이다. 김 팀장은 현직 공무원이라 인터뷰를 주저했지만 남북 교류협력에서 가장 기초인 보건의료분야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얼마 전 유진벨재단 린튼 회장이 결핵환자 격리동 대북 반입이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그런 인도적 지원까지 유엔이 제동을 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유엔이 병동 바닥 알루미늄 보일러관까지 알 수 있나.

“우리가 유엔 안보리에 지원물자 리스트와 제조회사, 제품 코드번호 등을 보내면 유엔이 파악할 수 있다. 유엔은 대북 물자가 전용될 수 있는지를 검사한다.”

-현재 보건의료부문에서 대북지원이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민간단체에서 의약품과 밀가루 정도를 보낼 수 있다.”

-린튼 회장은 “결핵은 사람을 3~5년에 걸쳐 죽인다” “북에 다제내성결핵환자가 8000명 있어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제내성결핵이란 어떤 병인가.

“보통 결핵환자를 치료할 때 서너 개 약을 6개월 동안 먹여야 완치된다. 그러나 약 사정이 원활치 못한 경우 6개월을 먹이지 못하거나 일부 약을 빼고 먹인다. 그러면 결핵은 완치되지 않고 오히려 사용했던 약에 대한 내성만 생긴다. 그래서 1차 약보다 수백 배 비싼 약을 1년 넘게 장기간 먹여야 한다. 결핵은 1차 때 완치해야 환자에 대한 부담도, 비용도 적게 든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북에 지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날 유엔이 경의선 철도 조사를 위한 장비 반입을 승인했다.)

“아직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공동성명에서 보건의료협력을 확인했고, 11월 7일 개성에서 남북 보건의료회담을 했다. 회담에서 감염병(전염병)분야에서 남북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합의했다. 병원 현대화 등은 대북제재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북에 의약품은 물론 의료장비 지원과 병원 현대화 사업까지 이뤄왔다. 정보 교환은 아주 기초적인 사안 아닌가.

“사실 감염병 정보 교환은 남북이 진작 했어야 하는데 북이 꺼려 못했다. 우리는 감염병이 80종류이고 이를 모두 공개하는데, 북은 그동안 감염병이 몇 종이고 어떻게 발병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서로 어떤 감염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인적교류를 하는 것은 문제다. 이것은 민간단체에서 할 수 없고,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사안이다.”

가슴이 턱 막힌다. 가장 인도적인 보건의료 지원사업도 이렇게 꽉 막혀 있을 줄이야.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로 김 팀장이 활동했던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지원본부)가 평양을 다녀온 결과가 SBS를 통해 방영됐다. 화면에는 의약품과 장비가 없어 애태우는 북한 의료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림용철 북 민화협 부회장의 “지금은 인도주의적 협력사업까지도 미국 사람들이 막고 있는 치졸한 상황”이라는 발언이 그대로 방영됐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남북 의료협력 산증인 김진숙 “북은 ‘지원’ 아닌 협력관계다”
■의약품, 장비 없어 애태우는 북한 현실

이명박·박근혜 9년 동안 대북 보건의료 지원사업이 없었고, 지금은 유엔 안보리 제재국면이기 때문이다. 대북 보건의료지원이 전공인 김 팀장은 그동안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4·27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 10월 남북 보건의료협력추진단이 생기면서 그는 다시 ‘전공’ 업무에 복귀했다. 그가 하는 일은 대북지원 단체와 협회·학회 관계자를 만나 사업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가장 시급히 재개해야 할 사업으로 ‘어린이와 산모 의료지원’을 꼽았다. 그는 “남에서 모자보건사업이라 부르는 이 분야가 가장 시급하다”면서 “영유아 보건사업도 새로운 버전으로 시작할지 북측과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하던 북 영유아 지원사업을 추진했던 경험이 있다. “5년의 한 주기 사업은 마무리했지만 이 사업은 반복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북의 의료수준은 어떤가. 최근 발전된 평양 모습 등을 보면 의료부문도 많이 개선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력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 이는 최근까지 북에 가본 우리측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남북 의사들이 같이 토론해보면 북측 의사들은 이론적으로 막힘이 없다. 다만 의약품과 의료장비가 없어서 문제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의료장비가 개발·도입되지만 북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가 의료장비를 가져다주면 그들은 밤새워 매뉴얼을 보고 익혀 금방 사용한다.”

-지난 16년 동안 북 병원 현대화 사업을 많이 했다. 그 중 금강산 온정리 인민병원사업을 가장 모범적인 사업으로 꼽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온정리 인민병원은 좀 특수한 케이스다. 온정리 인민병원은 금강산에 있어 현대아산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줬다. 게다가 온정리 인민병원은 남측 의사들이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우리가 제공한 새로운 의료장비를 익힐 때까지 같이 실습하는 게 가능했다.”

-우리 의사들이 별도 허가 없이 금강산에 가서 북측 주민 진료를 하던 시절이 있었나?

“2008년까지 우리 의사들이 주말에 자신의 승용차로 북 금강산을 자유롭게 왕래했다. 의료기술을 전수하려면 환자를 같이 치료하는 협력진료가 필요하다. 북에서 처음 보는 내시경도 염증과 종양을 판독하는 것을 가르치려면 환자를 같이 볼 수밖에 없다. 산부인과의 경우 북측 여성들이 남측 남자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꺼리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의외로 ‘예약’이 폭주했다. 북 임산부에게 임신 초음파 사진을 뽑아주니 놀라면서 여성들이 밀려들었다.”

-책 <평화의 아이들>은 남북 의료협력 16년의 기록이라고 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썼다. 복지부에서 북한분야는 일반적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다. 게다가 이 분야가 9년간 공백이다 보니 경험자도 거의 없다. 만약 내가 다른 업무를 하게 되면 새로 온 사람은 ‘맨땅’에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후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김진숙 남북 보건의료협력추진단 팀장이 16년간 추진된 남북 보건의료협력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숙 남북 보건의료협력추진단 팀장이 16년간 추진된 남북 보건의료협력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 보건의료 관련해 이론과 실제 겸비

김 팀장은 1966년 경기 이천 출신으로 서울대 약대 86학번이다. 그는 대학시절 의대·약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구로동과 성수동에서 무료진료를 했다. 대학시절 약대 소식지 편집장을 했지만 ‘운동권’이지는 않았다. 그는 “나는 ‘간이 작아’ 운동권 주변만 맴돌았다”고 말했다. 당시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1990년 그는 노조에서 모아준 3300만원으로 구로공단에 약국(우리네 약국)을 차렸다. 그는 약국 한편에 어린이 공부방을 만들어 자신의 월급을 털어 아이들 식사까지 제공했다. 그는 “당시 IMF사태 직후라 밥을 굶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약국에서 꼬박 10년을 일했고, 이 약국은 지금도 후배들에 의해 똑같은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때 구로공단에서 노동·청년운동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2000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다가 자선단체 ‘퀘이커봉사위원회’에서 하는 대북지원사업을 봤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견디는 비쩍 마른 북 어린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동안 잊고 있던 북의 실상을 깨달았다. 2001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대북 자원봉사 단체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 가입했다. 지원본부는 의사·약사·간호사·한의사 등 의료인이 만든 민간단체로 1997년부터 비타민과 이유식을 시작으로 북에 의약품과 제약장비, 의료장비를 지원했다. 이 단체는 최근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방북해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과 옥류아동병원 등을 둘러봤고, 이 모습은 앞서 언급한 대로 SBS를 통해 방영됐다.

그는 지원본부에서 제약회사로부터 의약품을 기부받고, 기증받은 중고 제약장비를 수리해 북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2001년에는 처음으로 북을 방문해 병원 현대화 사업, 왕진가방 지원사업 등을 했다. 그는 아예 경남대 북한대학원 대학교에서 북한 의학품 지원 관련 논문으로 석사, ‘북한 의학품 정책’으로 북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북한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 이론과 실제를 모두 갖춘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2006년 3월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업무는 평소 하던 북과 보건의료협력계획을 마련하고 통일부, 민간단체와 협의하는 일이었다. 김 팀장은 북 외교부, 보건부, 각종 단체 관계자를 만나면서 북의 보건의료정책 결정과정을 체득했다. 하지만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대북지원사업이 모두 중단됐다. 그리고 4·27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보건의료협력의 길이 열리자 그는 다시 본업에 복귀했다.

김 팀장이 높이 평가받을 점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이는 단행본 <평화의 아이들>을 낸 이유와 마찬가지로 후임자를 위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그는 20여 차례 북을 방문하면서 <북한 보건의료 가이드북>, <북한 구역병원 현대화사업 매뉴얼>, <왕진가방 지원사업 매뉴얼> 등의 자료집을 냈다. 또 <북한 보건의료 연차보고서>, <북한 어린이 건강실태 보고서> 등을 만들어 대북 보건의료 지원단체가 공유토록 했다.

이제 본업에 복귀한 그는 대북 보건의료지원사업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대 의사와 상관없이 마구 지원하고 지시하는 것은 올드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제 북에 ‘지원’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지원이라는 단어에는 남한이 주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국제개발협력(ODA)에서 원조국의 오너십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보건의료상황을 개선하는 주체는 북이다. 북측이 자체 계획을 세워 우리에게 요청을 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 이제 북은 수혜자가 아니라 동등한 협력관계의 파트너다. 그것이 국제개발협력 원칙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2021119001#csidx0ba51a8f4b9d1b28dc6b8e35f109d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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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등록 :2018-11-16 

평화의 아이들
김진숙 지음/북루덴스·1만6000원
2007년 여름, 남과 북은 “어린이 및 임산부의 영양증진과 건강이 민족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하며 ‘어린이 및 임산부 지원사업 합의서’에 서명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북한 업무를 맡았던 김진숙도 평양을 방문하고, 앞으로 지원할 남포산원, 남포소아병원, 대안군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으로 기능할 기본 설비도 없었고, 건물이 낡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기로 했다. 남포시와 대안군의 6개월~6살 어린이와 임산부 등 4만7100명을 대상으로 영양식 보급계획도 수립했다. 그러나 2009년 북한의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쪽의 지원은 완전 중단됐다.
김진숙은 “다 지난 북한 얘기를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동기의 반 이상은 이 사업(영유아 지원)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화의 아이들>은 남북 의료협력 16년의 기록이다. 지은이는 보건의료 협상, 북한 의료체계 등을 얘기하며 자신의 고민과 아쉬움, 앞으로의 다짐까지 내놓는다.
서울 구로동에서 노동자의 건강의료를 지원했던 약사 출신 지은이는 2001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아이들이 배고파하며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아이 둘을 낳고 아이들이 배고프기 전에 젖 먹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남한의 엄마’였다.”

 한국에 돌아와 민간단체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일하고 2002년 북한을 첫 방문했다. 이후 북한대학원을 다니고 2006년 복지부에 채용돼 북한 의료지원 업무를 맡았다. “공직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이었지만, 정권이 바뀐 2008년부터 정상회담 합의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올해 남북정상회담으로 “예전의 합의사항들이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고” 있다.
2004년 왕진가방을 내밀었을 때 북쪽 의사들의 표정이 기억에 생생하다.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알고 꼭 필요한 것들만 갖췄습네까?” “이 가방, 간편하게 메고 다닐 수 있고 아주 좋구나야!” “당장 가방 메고 우리 담당 가보고 싶구나!”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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