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남파공작원 출신 故 김용규 씨의 '對南공작' 관련 증언 金日成の秘密教示/Kim Il-Sung's Secret Order 동영상 오른쪽 하단의 [구독] 버튼을 눌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uring times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becomes a revolutionary act.” (George Orwell) 구독: https://www.youtube.com/channel/UCha7BwcF4itfzFr9DAUqdNw 전향한 거물간첩 金用珪(김용규)씨는 자신의 저서인《소리없는 전쟁》과 《時效人間》을 통해 통혁당(통일혁명당, 1968년 조직검거) 조직이 북한 노동당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밝힌 바 있다. 통혁당 사건은 북한의 전형적인 對南 공작사업에 의해 결성된 남한 내 지하당이다. 金씨는 두 책에서 “통일혁명당은 1961년 12월, 전남 무안군 임자도에서 면장을 지냈던 지방유지 최영도가 甥姪(생질)인 남파 공작원 김수영에게 포섭되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최영도는 세 차례에 걸쳐 평양을 다녀오면서 노동당에도 입당을 한다. 전남도당 책임자가 된 최영도는 지하당 조직망을 확산하는 한편 과거 남로당에서 전남도당위원장직을 맡았다가 수사기관에 체포돼 10년형을 살고 나온 정태묵을 다시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북한은 최영도의 조직을 전라남도 지도부의 正(정)조직으로, 정태묵의 조직은 후보조직으로 이원화시켜 관리하며 조직을 확산해나갔다. 노동당 연락부로부터 서울의 유력 인사를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은 최영도는 생질인 김수상을 내세워 金鍾泰(김종태, 前 통혁당 서울시당 위원장, 1969년 死刑)를 포섭하기로 한다. 당시 反정부 감정을 갖고 있던 金鍾泰는 오히려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북쪽과 선을 닿게 해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포섭은 쉽게 이루어졌다. 평양으로 밀입북한 金鍾泰는 간첩교육을 받는 한편 金日成과 만나기도 했다. 간첩 교육을 받은 후 다시 남한으로 돌아온 金鍾泰는 김질락, 이문규, 이진영, 임진영 등 친척, 친우 등 측근들을 손쉽게 규합해 통혁당 서울시 지도부를 구성했다. 통혁당은 게릴라식 무장투쟁으로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모택동 전법과 베트콩 게릴라 전법 및 동학혁명식 민중봉기 전법을 모방해 무장투쟁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 통혁당은 북한과의 합의하에 농촌에서는 테러투쟁으로, 도시에서는 폭발물을 이용해 주요시설과 청와대를 폭파하는 등 무력투쟁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기로 했다. 조직원 이진영, 오병현을 특수전술교관 후보로 선발, 1968년 4월 월북시켜 무력투쟁을 위한 고성능 무기 및 폭발물 취급 등 특수교육을 받게 했으며, 유사시에 대비해 각 지역에 무기고 획득과 무기 비축방법 등을 연구하고 지형 정찰을 실시했다. 또한 유격전에 대비한 신체훈련과 더불어 사상토대 강화훈련을 병행했으며, PS작전(from paper to steel) 등 실제 무력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金用珪씨는 또 자신의 책에서 북한이 통혁당 재건을 위해 지속적인 공작을 했음을 지적했다. 1973년 7월에는 자신이 직접 통혁당 재건 공작계획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함께 적고 있다. 포섭대상은 과거 金鍾泰와 연계됐던 인물들이었다. 통혁당 재건 계획과 관련해 金用珪씨는《소리없는 전쟁》에서 매우 우려스런 점을 폭로했다. 그는 북한의 공작망이 우리 사회 어느 곳까지 깊게 뻗쳐 있는지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이렇게 두 사람이 낮과 밤을 이어 지시문을 모두 해독하고 보니 그것은 그동안 평양의 공작팀들이 각각 관리하고 있던 일부 현지조들과의 접선암호와 특정 조직원들의 기록 대장이었다. 기록대장에는 발전소, 전신전화국 등 요충부문에 점 형태로 특별 관리하던 개별적 대상도 있었고, 2∼3명 또는 4∼5명으로 구성된 조직도 있었다. 그 중에는 최근에 구성된 조직도 있고, 1960년대 초·중반에 布置(포치)된 교수와 박사들로 구성된 조직, 언론계·종교계·公共기관, 그리고 각 단체에 뿌리박은 조직들도 있었다.” |
[ 2018-01-03, 1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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