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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비난이 위안부 문제로 인한 것이니 비판자들이 몰랐을 얘기를 좀 해 두겠다. 이 30년 동안의 연구와 운동사를 살펴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1)”20만명”이라는 숫자는 북한 쪽 자료에서 나온 듯 하다.
2) 90년대 초기에 정대협은 이미 위안부가 “군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한 사람에 의하면 “군속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정대협은 주장했고, 유엔에 호소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논의하던 관계자들은 “피해자감정을 존중”하기 위해 그에 찬성했고 “성노예”로 기록해 제출했다. 1993년일이다.
이에 근거해 유엔 보고관들이 조사에 나서게 되고, 이후 후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세계 인식을 만들게 되는 유엔보고서들이 나오게 된다. 
31You, Okjin Park and 2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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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물론 군속과 성노예는 꼭 대립적인 존재는 아니다. 군인이 국가 혹은 상관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다 하더라도 한쪽면 만을 기술하는 정황이야말로 박노자가 말하는 “정밀고찰”과 한참 먼 것이고, 이를 주도한 정대협사람들은 학자들이었다. “학문이 아니라 정치”활동을
한 건 내가 아닐 듯 하다.
결국 이 모든 비난이 위안부 문제로 인한 것이니 비판자들이 몰랐을 얘기를 좀 해 두겠다. 이 30년 동안의 연구와 운동사를 살펴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1)”20만명”이라는 숫자는 북한 쪽 자료에서 나온 듯 하다.
2) 90년대 초기에 정대협은 이미 위안부가 “군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한 사람에 의하면 “군속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정대협은 주장했고, 유엔에 호소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논의하던 관계자들은 “피해자감정을 존중”하기 위해 그에 찬성했고 “성노예”로 기록해 제출했다. 1993년일이다.
이에 근거해 유엔 보고관들이 조사에 나서게 되고, 이후 후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세계 인식을 만들게 되는 유엔보고서들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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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물론 군속과 성노예는 꼭 대립적인 존재는 아니다. 군인이 국가 혹은 상관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다 하더라도 한쪽면 만을 기술하는 정황이야말로 박노자가 말하는 “정밀고찰”과 한참 먼 것이고, 이를 주도한 정대협사람들은 학자들이었다. “학문이 아니라 정치”활동을
한 건 내가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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