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2

미-래의 맑스주의 이진경 | 2006

미-래의 맑스주의 | 클리나멘 총서 3 | 이진경 | 알라딘


미-래의 맑스주의  | 클리나멘 총서 3
이진경 (지은이)그린비200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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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직-오지-않은', 보다 나은 '미-래(未-來)'를 위한 맑스주의의 변화를 사유하는 책이다. 맑스주의에 기반하여 푸코·들뢰즈·가타리 등의 탈근대 철학, 과학, 불교철학 등의 '외부에 의한 사유'를 꾸준히 접목시켜온 지은이가 맑스주의를 창조적으로 새로이 독해,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불모의 땅으로 인식되었던 맑스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보통 '공산주의'로 번역되는 'communism'을 '코뮨주의', 즉 'commune(코뮨) + ism'으로 보자는 제안을 한다. '생산수단을 공유한다'는 의미의 '공산' 대신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생과 공존의 삶을 추구하는 본질적 의미에 더 주목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코뮨주의는 코뮨(집합체) 외부의 이질적인 것들과 적극적으로 공존함으로써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질성에 대한 배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인간중심주의, 생물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제안이다. 지은이는 자동차, 컴퓨터, 쟁기나 낫 등의 기계 같은 무생물도 생명체로 정의하는 생태학적 시각의 전환을 보여주며, 인간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기존 이론 대신 기계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며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기계, 생명체와 기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 즉 '탈인간중심적 맑스주의(post-humanist Marxism)'는 화폐론, 계급론, 유물론 등 기존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진다.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지의 대항 계급이 아닌 '비-계급'이자 자본주의의 '외부'를 창조할 수 있는 대안적 집합체로 보고, 유물론에서 '물질'의 개념을 결별시켜 새롭게 정의하는 등의 시각을 제시한다.


목차


서문

1부 도래할 맑스주의?

1장 외부에 의한 사유, 혹은 맑스의 유물론
유물론이란 무엇인가?│관념론, 혹은 내부화하는 사유│외부성의 유물론│유물론과 혁명

2장 노동의 인간학과 미-래의 맑스주의
인간과 노동│노동의 인간학:인식론적 배치│노동의 인간학:욕망의 배치│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2부 가치의 생산과 화폐의 권력

3장 노동가치론과 맑스주의 : 노동가치론의 몇 가지 전제에 관하여
내재하는 외부│내재적 비판의 방법│노동가치론의 공리│노동의 공리│착취와 휴머니즘

4장 가치형태론에서 화폐와 허무주의
재현으로서 화폐 개념│가치와 표현│가치와 재현│화폐와 허무주의│화폐와 욕망

5장 노동의 기계적 포섭과 기계적 잉여가치 개념에 관하여
산업혁명과 노동│기계화의 세 가지 계기│자동화와 정보화│기계적 포섭의 결과들│기계와 잉여가치

3부 계급과 정치

6장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적 계급인가?
자본주의로의 두 가지 길?│도시와 자본주의│자본주의와 영토국가│자본주의와 절대주의│누가 부르주아지가 되었나?│ 국가와 부르주아지

7장 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 : 코뮨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신분에서 계급으로│자본주의 공리계와 계급│부르주아지 : 보편적 계급│프롤레타리아트 : 비-계급│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

8장 맑스주의에서 차이와 적대의 문제
맑스주의와 차이의 철학│대립 이전의 차이│구성적 차이│모순, 혹은 현실적 대립│프롤레타리아트와 적대의 정치학 │ 차이의 정치학을 위하여

4부 코뮨주의를 위하여

9장 맑스주의와 코뮨주의:코뮨주의자는 어떻게 사유하는가?
혁명의 꿈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사회주의의 ‘폐허’에서 사유하기│“코뮨주의란 무엇인가?”

10장 생명과 공동체:기계주의적 생태학을 위하여
‘생명’의 역사│생명의 과학, 생명의 ‘철학’│생명 개념의 정의구역│생명과 공동체│생명의 생태학과 인간

11장 공동체주의와 코뮨주의:코뮨주의의 공간성에 관하여
코뮨주의│코뮨│‘세계’의 내부성│공동체주의와 내부성│코뮨주의와 외부성│두 가지 공동체
후주│참고문헌│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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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코뮨이란 '함께', '묶음' 등을 뜻하는 'com'과 '선물'을 뜻하는 'munis'가 결합된 것이다. 즉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결합된 관계가 바로 코뮨인 것이다. 선물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배려’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러한 배려를 통해 자신의 기쁨을 얻는다. 또한 그것은 그러한 배려를 통해 자신을 배려한다. 코뮨주의란 이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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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진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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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동체 수유너머 파랑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쓴 책들이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철학의 모험』,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혁명의 꿈속에서 니체,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과타리 등과 함께 사유하며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외부, 사유의 정치학』, 『역사의 공간』,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등을 썼다.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이라는 책을 통해 존재론적 사유를 시작했는데, 예술작품과 철학 사이에서 존재의 문제를 사유하며 『파격의 고전』,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을 썼다. 과학·기술과 철학 사이에서 ‘친구’와 함께 사유하며 『지구의 철학』(최유미 공저), 『선을 넘는 인공지능』(장병탁 공저)을 썼고, 『불교를 철학하다』,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에서는 현대철학과 불교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사유의 단서들을 찾고자 했다. 『불교를 미학하다』는 존재론과 예술, 불교 사이에서 이 새로운 사유를 내재성의 미학으로 응결시키려는 시도가 되리라 믿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불교를 미학하다>,<지구의 철학>,<이진경 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 … 총 10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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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지은이)의 말
나는 이 책의 불온함이 이 책을 읽는 분들의 또 다른 불온함을 촉발하고 증식시키길 바란다. 그것이 또 다른 종류의 불온한 사유를 생산하길 바란다. 그 불온한 사유가 다시 내게 다가와 또 다른 사유의 길이 있음을, 또 다른 삶의 방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촉발하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불온한 사유가 이 불모의 땅에 새로운 삶/생명으로 퍼져나가, 우리가 발딛고 선 대지 전체를 다시금 불온하게 뒤흔들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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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에 대한 내재적 비판, 그러나 진지전과의 ‘거리두기‘



이진경의 <<미-래의 맑스주의>>는 그의 이전 저작인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읽어 그 맛을 한 번 본 이들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본 국물맛이 같다고, 이 책이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 했던 것과 다름없는 얘기를 되풀이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넘어서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책에 겨누어진 비판들에 대한 이진경의 대답들을 담고 있다.



꼭 1년 전 쯤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읽었다. 분명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의 감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래의 맑스주의>>는 결코 지식인의 자기과시적 저작이라 폄하될 수 없는 읽고 배울 게 많은 책이다.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읽었다면, 이 책은 더 쉽게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꼭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 비슷한 얘기를 이 책에서 보다 심도 깊게 한다고 해야 할지… 재미로만 따지면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 더 나았던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보고 재미있었던 이들이나, 반대로 의구심을 가졌던 이들이 본다면 좋을 듯 싶다. 이 서평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 쏟아진 의혹의 시선에 대한 이진경의 변론(1, 2)을 먼저 살펴보고, 이 책에서 하는 새로운 이야기들(3, 4)을 본 후, 마지막으로 이진경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5).





1. 노동가치론 비판 / 착취의 재정의 / 화폐 허무주의



저자에 따르면, 맑스의 ‘비판’은 ‘해체’ (82)이며, 비판대상의 장점을 최대화하여 대결하는 ‘최대주의적’ 방법 (83)이며, ‘몰입’과 ‘비판’, ‘변환’을 반복하여 통과하는 과정(84)이며, 비판대상의 내부에서 외부를 창출해내는 것(85)이다. 그리고 ‘맑스를 통해 비판한다’는 것은 맑스의 문제설정을 (1) 오늘의 조건 위에서 다시 작동시키며, (2) 맑스 자신도 그 비판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뜻한다. 노동가치론에 대한 이진경의 비판은, 바로 이처럼 한편으로는 맑스를 노동가치론의 완성자가 아니라 해체자로 독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맑스의 잉여가치론을 오늘의 조건과 대질시킴으로써 해체시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맑스주의와 근대성>>, <<자본을 넘어선 자본>>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맑스의 잉여가치론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맑스주의로 간주하려는 모든 시도들(리카르디안 맑시스트, 분석 맑시스트, etc.)은 하나의 동일한 절차를 반복한다. 곧 자본주의 하에서의 착취를 가치론에 의존하지 않고 구성,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진경도 이 점에서 동일하다. 또 이 부분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비롯한 이전 저작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진경은 생산과정 외부에서 발생하는 착취에 주목한다 (97). 첫째, 그는 “계급투쟁은 생산의 결과물 분배를 둘러싼 투쟁이 아니라, 활동능력과 활동 자체의 가치화를 둘러싼 투쟁”이며, 따라서 “생산과정 이전에 시작된다”는 오래된 발리바르의 테제를 끌어들인다. 둘째, 화폐 형태를 취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자본으로서의 화폐가 지속적으로 감가됨에 따라 함께 감가된다. 셋째, 자본으로부터 가치화가 배제된 활동들 - 예컨대, “가사나 공부, 자연-환경적 조건” 등 - 은 가치화의 조건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지불 없이 착취된다” (98). 따라서 이제 착취는 생산과정 내부의 노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 외부에서도 활동 일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그리고 이 착취 메커니즘의 근원에는 소위 “화폐 허무주의”(128-149)가 놓여 있다. 맑스는 <<자본>> 1권에서 상품 일반의 관계로부터 화폐의 특수성을 도출하고, 또 그 상품 일반의 관계로부터 인간의 노동이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으로 교환되는 자본 – 임노동 형식을 도출한다. 그러나 이진경에게 논리 전개의 출발점은 상품이 아니라 화폐이다. “화폐는 생산물에 상품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상품으로서 상품세계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외적인 초월자이다. … 화폐는 상품세계의 신이다” (129). 따라서 상품의 본질은 화폐(128)이며 (맑스라면 거꾸로 화폐의 본질은 상품이라고 했겠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은 “화폐를 매개로 해서만 가능”(133)하고, 시장은 “화폐에 의해 자동화된 권력의 메커니즘”(142)이다. 화폐 허무주의란, 모든 상품의 가치가 초월적 지위를 지닌 화폐라는 척도를 통해 측정되며, 화폐화될 수 없는 모든 가치들은 부정되는 것을 뜻한다.







2. 노동의 기계적 포섭과 기계적 잉여가치 / 활동의 기계적 포섭과 사회적 잉여가치



그런데 사실, 이진경의 입장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 맑스의 잉여가치론은 (변증법적으로?) 부정되지만, 그렇다고 잉여가치라는 개념 자체를 팽개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맑스의 관계적 개념화가 무시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맑스의 개념들 위에서 새로운 잉여가치 범주들을 추가한다. 간단히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에 의한 포섭 역사적 계기 기계화의 계기 잉여가치

(1) 자본에 의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 자본주의 성립 (16세기) 절대적 잉여가치

(2)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 산업혁명 (19세기 이후) 육체노동의 기계화 상대적 잉여가치

(3) 자본에 의한 노동의 기계적 포섭 자동화 (1970년대 이후) 정신노동의 기계화 기계적 잉여가치

(4) 자본에 의한 활동의 기계적 포섭 정보화 (1970년대 이후) 결합노동의 기계화 사회적 잉여가치



(1), (2)는 맑스의 개념화이고, (3), (4)는 이진경의 추가적 개념화이다. 특히, (4)는 이 책에서 새로 추가된 내용이다. 이진경은 위에서 착취를 잉여가치론에 기반하지 않은 채 설명하지만, 동시에 여기서는 그 자신의 잉여가치론에 기반하여 착취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 자신의 이러한 잉여가치론에 대한 비판들에 대한 반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178-184).





3. 계급과 비계급 / 프롤레타리아트와 임노동자



자본주의는 국가 없이 사고될 수 없다. 본원적 축적이나, 화폐, 전국시장의 창출, 절대군주의 영토 국가의 출현 등은 “자본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에는 국경이 있다”(206)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자본주의 형성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고려는 부르주아지가 귀족과의 계급투쟁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성립되었다는 식의 신화와 결별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가들의 연구는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서로 다른 계급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동질화되며,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계급, 자본주의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계급이다. 이에 반해 프롤레타리아트는 비-계급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자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은 아주 약간의 예외를 무시하면, “‘인구법칙’에 관한 장과 ‘본원적 축적’에 관한 장에서만 출현할 뿐”인데, 이는 “자본에 의해 축출되어 계급적 규정성을 상실한” 비-계급을 뜻한다 (239) [Cf. <맑스의 계급정치 사상>, 서관모 엮음 <<역사유물론의 전화>>(민맥), 특히 216-230쪽을 보라]. 따라서, “부르주아지가 주어진 규정의 획득에 의해 정의된다는 점에서 다수적/주류적 (major) 집단이요 다수자 (majority)라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규정의 부재, 척도의 부재, 혹은 수많은 이질적 규정의 혼합으로 특징지어지는 존재란 점에서 소수적(minor) 집단이요 소수자 (minority)다” (240-1).





4. 탈주 / 진지전: 아나코-코뮤니즘 (Anarcho-Communism)



이러한 비-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학으로서 코뮨주의는 대항-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당) 정치학으로서의 사회주의와 대비된다.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를 대체하는 ‘보편적 계급’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코뮨주의는 전 사회적 차원에서 노동자나 인민을 하나의 계급으로 구성하고 통합하려는 게 아니라 계급 자체의 해소를 추구한다” (253). 이러한 의미에서 이진경이 말하는 코뮨주의는 “아나코-코뮤니즘” 정도로 생각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의문은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두 전략 - 곧 진지전과 탈주 – 양자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차이의 정치학을 통해서 이진경이 말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구체적 연대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 이진경은 그가 그토록 예찬했던 “몰입, 비판, 변환”으로서의 맑스의 비판을 따르지 않고, 어설픈 “거리두기” (84)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옛날에 했고,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 몰입은 할만큼 했다는 것인가? 나는 여전히 탈주보다는 진지전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본다.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뜻한 바만큼 탈주전략이 불온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진경의 탈주가 더욱더 불온해지기를, 하지만 또 동시에 진지전에 대해 다시 사고해주기를 감히 바란다. 이진경은 기동전의 시대에서 탈주의 시대로 점프하면서, 현재 진지전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과거 “노동계급(LC)” 시절 자신의 실천의 구태와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가 마지막 장에서 펼치고 있는 토니 모리슨의 소설에 나오는 두 가지 종류의 콤뮨, 곧 루비와 수녀원 공동체의 대비는 약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계-내-존재’는 공동체 내의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동체들과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공동체 하나하나, 다른 국가들과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국가들 하나하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나는 ‘타자의 타자’로서, 곧 나라는 ‘세계-내-존재’는 또 다른 ‘세계-내-존재’인 타자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루비와 수녀원은, 진지전을 펼치는 참호 속의 병사와 포탄 속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마타하리는, 민주노동당과 수유+너머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5. 외부의 중의성



이 책을 읽다가 흥미로웠던 점 하나는, 이전의 저작들에서부터 무수하게 반복되는 “외부”라는 말이 [따라서 그것과 대칭되는 내부의 함의도] 단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외부는 (1) “연기적 조건” [<-> 하나의 원리로 환원 가능한 내부의 영역](40)이기도 하며, (2) “초험적 조건” [<-> 합목적적으로 조작가능한 대상](47)이기도 하고, (3) “클리나멘” [<-> 정해진 궤도를 운동하게 하는 관성] (49)이고, 또 때로는 (4) “단절의 지점, 변환의 문턱” [<-> 동일성의 관념체계]이다. (또 다른 의미들도 있을테지만, 지금 더 찾기 귀찮다.) 어떨 때는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선험적으로 주어지고, 또 어떨 때는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실천에 의해 구성되기도 한다. 나는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하나의 유비(analogy)로 이해했다. 곧 불완전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비교적 명확한 연상을 통해 설명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 정도로 이해했는데, 이렇게 다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또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와 같은 식으로 애초의 명확한 연상을 비틀게 된다면, 과연 이 내부와 외부라는 “유비”가 고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 지 다소 의심스러웠다. 하긴 내부와 외부를 대체할만한 말이 뾰족히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게 무책임하기도 하다.





딱히 결론이 없는 서평이 되어버렸다. 기대 이상까지는 아니었어도, 기대한 만큼은 읽고 배웠다. 그래도 <<자본을 넘어선 자본>>만큼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는 힘들 것 같다. 책 어디에선가 맑스의 지대론을 더 다루었어야 했는데, 여기서 못 다루었다는 아쉬움을 표하던데, 다음 저작에서 다룰 수 있으면 한다. 이 책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 그랬듯, 겉멋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자본을 넘어선 자본>>보다 어렵다. 이 책은 일반독자들보다는 맑스주의자를 자처하거나, 자기가 맑스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의구심을 지닌 전문 학자들이 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의 이 곳 저 곳에 논쟁거리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생산적 논쟁이 가능할 듯 싶고, 또 좋은 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6. 8. 16. 추기]

이재영은 레디앙에서 박원순을 비판하며, '이탈 공동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 바로 이 책에서 이진경 선생이 펼치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 싶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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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6-24 공감(3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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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교수의 다른 세상 사유하기

따끈따끈한 신간이네요.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좋아하기에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 내공이 부족한 관계로 아직 이진경 교수님의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본 것이 없어서리..어쨌든 살 생각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무엇을 말할까요.
네오 2006-04-08 공감(2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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