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 알라딘 2025

[전자책]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 알라딘

[eBook]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은이)동아시아2025-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전자책 미리 읽기




편집장의 선택
"장강명 르포, AI 이후의 세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날, 뉴스가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AI의 대국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건 조금 충격적이고 신기한 일이었으나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인에게는 잠시 놀라고 지나갈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바둑인들에게 AI의 승리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이 책의 인터뷰들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당시 대국을 본 프로 바둑 기사들은 한동안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밥을 먹지 못했고 내내 술을 마셨다. 어떤 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어떤 이는 아주 오랫동안 정처 없이 걸었다.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예술이자 스포츠라고 여겨온 바둑 경기에서 AI의 승리는 그들의 삶과 배움, 철학, 아름다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프로 바둑 기사들의 인터뷰 대사는 마치 디스토피아 SF의 도입부 같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담긴 문장들이 처절하다.

그들의 절망이 과잉 반응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빠르게 증명되었다. 기술은 한번 도입되면 막을 수 없다. 장강명의 표현에 따르면 기술이란 야수와 같아서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날 이후 AI는 바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전까지 바둑 기사들이 공부하던 방식은 모두 폐기되었다. 이제 바둑계에서 AI로 공부하지 않는 바둑 기사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마치 스마트폰 없이 2025년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번거로운 것처럼. 장강명은 AI 이후 바둑의 세계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AI는 바둑계를 어떻게 바꾸었으며, 바뀐 바둑계에서 득을 본 이는 누구인가, 잃은 것이 많은 이는 누구인가. AI는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바둑의 장르를 어떻게 바꾸었나.

그는 이 질문들을 하나씩 취재하며 답을 얻고자 한다. 문학계에도 AI라는 야수가 본격적으로 뛰쳐나온다면 그 이후의 풍경은 어찌 변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러니까 미래는 모든 분야에 같은 속도로 오지 않고, 그는 이 시간차를 이용해 문학을 비롯하여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최대한으로 예측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곧 들이닥칠 미래를 앞두고 읽는 바둑 세계의 이야기는 종종 소름이 돋고 눈물이 맺히게 한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바둑이라는 게임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의 매서운 취재, 인간의 모든 영역에 빠르게 침투 중인 AI 현실... 책의 내용과 책을 둘러싼 현실적 배경이 모두 합쳐져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AI의 습격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
- 인문 MD 김경영 (2025.07.01)





Play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다음
이전



책소개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장강명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고, 일과 경험을 변질시키고,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은 평생 알고 있던 이론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인공지능에게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바둑은 예술이자 철학이었고, 프로기사로서의 삶은 바둑의 최고 권위자라는 자부심을 의미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3년 후 이세돌 9단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가 모두 달라졌다. 장강명은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전망한다. 압도적인 실력의 인공지능이 헐값에 보급되는 것.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며,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하는 것. 예컨대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책은 바둑계의 경험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가 마주할 근미래의 풍경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목차


1. 먼저 온 미래
2. 오만과 편견, 그리고 창의성
3. 가장 중요한 문제
4. 평평함과 공평함
5. 언어라는 도구 너머에서
6. 불변의 법칙과 변질되는 개념들
7. 새로운 일자리, 혹은 ‘죽음의 집’
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9. 가치가 이끄는 기술
10. 인공지능이 아직 하지 못하는 일

작가의 말



책속에서


P. 11 2016년 3월 10일 아침에 신문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다음 날이었다.
P. 25 나는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이 어떤 충격을 받았고 어떤 혼란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어떻게 적응했고 그 적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소설가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봤다.
P. 47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게 창의성이든 문학성이든 뭐든 간에, 그걸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알파고가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P. 69 신진서 9단에게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같은 선배 기사들과의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P. 79 작가든, 편집자든, 출판사든 문학계의 발 빠른 플레이어들이 그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그만큼 다른 경쟁자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오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한가한 고민을 할 여유는 사라진다.
P. 102~103 한 업계의 종사자와 지망생은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을 거부한다고 의견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그로 인해 수혜를 입는 그룹이 생긴다. 그 그룹 구성원은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람직한 일로 볼 것이다.
P. 107 즉,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인공지능처럼 쓸모 있고 강력한 기술은 마치 야수와 같다.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 사실상 그 야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아직 거리에 나오기 전뿐이라고 봐야 한다.
P. 113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 무언가는 사실상 우리가 살아야 하는 환경 그 자체일 것이다.
P. 138 ‘AI 활용 음원 생산 시스템’은 인간의 감성과 완성도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그 시스템 안에 인간이 있으니까. 인공지능에게 모자란 부분은 인간이 보충하면 되니까.
P. 187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장강명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75년 서울 출생.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짧은소설 『종말까지 다섯 걸음』.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 『산 자들』 등. 장편소설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호모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재수사』 등. 〈한겨레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작가상〉 등 수상.

수상 : 2021년 심훈문학대상, 2016년 오늘의작가상, 2015년 문학동네 작가상, 2015년 제주4.3평화문학상, 2015년 SF어워드 장편소설부문, 2014년 수림문학상, 2011년 한겨레문학상
최근작 :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엔딩은 있는가요>,<멋진 실리콘 세계> … 총 111종 (모두보기)
인터뷰 : 소설적 야심을 말하는 작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인터뷰 - 2015.09.03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2016년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과 경험, 가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 “이 책은 하나의 패배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_정재승(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추천
★★★ 조훈현, 유창혁, 박정상, 김지석, 신진서… 바둑계 전설들에게 직접 듣는 AI 이후의 세계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장강명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고, 일과 경험을 변질시키고,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은 평생 알고 있던 이론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인공지능에게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바둑은 예술이자 철학이었고, 프로기사로서의 삶은 바둑의 최고 권위자라는 자부심을 의미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3년 후 이세돌 9단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가 모두 달라졌다. 장강명은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전망한다. 압도적인 실력의 인공지능이 헐값에 보급되는 것.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며,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하는 것. 예컨대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책은 바둑계의 경험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가 마주할 근미래의 풍경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_26쪽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수학의 난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작품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

창의성, 문학성,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묻다
AI 시대에 ‘인간의 문학’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는 컴퓨터니까 계산력이 중요한 후반에 강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창의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초반 포석에서 오히려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은 많은 프로기사가 알파고의 바둑이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인공지능에게 창의성이 있다면, 창의적인 문학작품도 매일 수천 편씩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장강명은 문학은 바둑과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실제로 불가능한 것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그것이 알파고가 남긴 교훈이라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에도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바둑을 두겠다’라고 말한 프로기사들이 있다. 막상 이들에게 인간의 바둑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하면 착각과 실수,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과 제스처, 승부를 둘러싼 스토리 등 탁월함과는 무관한 요소들이 답변으로 돌아온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수백 편의 걸작을 쏟아낼 때, ‘인간의 문학’도 그와 비슷한 의미가 될지 모른다. 문장력은 부족해도 독특한 ‘인생 스토리’가 있는 작가가 더 주목받을 것이다. 문장력은 인공지능이 보완할 수 있으니까. 장강명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여러 업계에서 추구하던 가치가 변질되리라 전망한다.

어떤 업계에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이를 멈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수혜를 입는 그룹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기사 중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바둑에 늦게 입문해서, 초반 감각이 부족해서, 정상급 기사들과 정보 격차가 있어서 생기는 실력 차이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느 날 자신의 장기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장강명은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AI 기술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이 어떤 업계의 판도와 그 업계에 속한 이들의 삶을 좌우해도 되는가?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AI 시대에 예술가들은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잘 만드는 기술과 그 자신을 교묘하게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포츠카를 사서 인증하거나, 다른 유명 인사를 저격하는 요령도 함께.” _268쪽

“나는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
가치 있는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만 나온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거짓말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의 통제가 가능하려면…

일부 전문가는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라고 주장한다. 장강명은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사용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의 추천 경로를 따르는 것도, 대중음악 뮤지션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유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놓았다. 인공지능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가 될지 모른다.

한편 ‘AI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에서 말하는 일자리는 사회적 가치와 자부심의 원천일까, 아니면 급여를 받는 이유에 불과할까? 책은 그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알파고 이후에도 프로기사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권위와 자부심은 추락했다. 실력이 급상승한 프로기사는 ‘AI 치팅’을 의심받는다. 바둑 팬들이 해설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의 견해가 아니라, ‘AI 추천수’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진보라는 대의 앞에서 전문가의 자부심은 사소한 가치일까? 인공지능의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더라도 급여만 주어지면 괜찮을까?

장강명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제약회사가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을 예로 들며,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통제를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끼칠 파급력에 비해 이를 견제할 장치는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한 핵무기·원자력 통제, 국가 간 조약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대응도 주문한다. 장강명은 더 나아가 빅테크 기업들이 말하는, 과격하고 납작한 의미의 ‘좋은 삶’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믿고 상상하는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 상상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사상가를 기다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가지 말고 이 문제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_338~339쪽 접기




구매자 (18)
전체 (29)
공감순






장강명 논픽션 = 필독
까레이 2025-07-02 공감 (19) 댓글 (0)
Thanks to
공감




장강명, 은유, 한승태, 귀한 르포 작가들. 세밀한 현장 스케치와 날카로운 논평을 통해 이세돌과 알파고에서 바둑계와 인공지능으로, 나아가 현실의 노동과 미래의 AI로 확장되는 시야가 대단한 몰입감을 자아낸다. 내 밥그릇의 문제와 공동체의 가치를 설정하는 정치를 연결하는 문장의 힘.
rendevous 2025-09-20 공감 (12) 댓글 (0)
Thanks to
공감




알파고와 이세돌의 역사적 대국 10년만에 이런 깊이 있는 글을 읽게되어 설레었다. 앞다투어 내어 놓는 AI 이후를 그리는 불확실한 예측 속에서 인간의 일(적어도 10년간 바둑계에서)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당사자들의 진지한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이것은 K-르포다.
groove4312 2025-07-06 공감 (7) 댓글 (0)
Thanks to
공감




표지 예뻐서 샀는데 ㅈㄴ 재밌음. 바둑 얘기지만 바둑 얘기만은 아님.
구루룩구룩 2025-07-07 공감 (7) 댓글 (0)
Thanks to
공감




바둑을 과하게 미화하면서도, 은연중에 스포츠나 케이팝을 깔보는 부분에서 편협한 가치관이 느껴진다. 전반부는 직접 취재한 바둑계의 이야기라 그런지 흡사 코즈믹 호러처럼 매력적이지만, 후반부의 내용은 작가의 추상적인 견해에만 머물러서 신선함이 떨어짐. #밀리의서재
박칼럼 2025-07-30 공감 (5) 댓글 (0)
Thanks to
공감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책의 질문에 과연 몇 명이나 귀를 기울일까 싶다. AI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개인이든 국가든 뒤처질까 봐 일단 따라가기 바쁘다. 가치를 따질 여유가 없다. 이젠 바둑계처럼 그저 AI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꽃보다금동 2026-01-24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작가의 말 최종 문장까지 읽으면 10장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기술과 진보. 그리고 기도.
자도 2025-12-21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생각지도 못한곳으로 확장이라니 역시 믿고보는 작가님
2025-08-01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초반부의 신선함과 호기심이 후반부로 유지되기까지에는 내게는 부족. 전반부에는 취재를 중심으로, 후반부는 취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어우러지는데, 문학과의 결부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고, 취재는 바둑, 생각의 확장은 문학이라니. 2부 문학편이 나와야 할 듯.
elvice 2025-07-13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이 책의 정가가 2만원인데, 20... 200... 2000만원을 줘도 아깝지 않다. 아니,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이미 시작된 AI시대에 <과학기술을 통제해야 한다>는 작가님의 통찰력 깊은 방향 제시가 꼭 실행되기를. 더 이상 늦으면 안 된다!! (김새섬 대표가 다시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함초롬 2025-10-19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더보기




마이리뷰
구매자 (9)
전체 (31)
리뷰쓰기
공감순




어쨌든 인공지능이 대세다

언젠가 네이버에 ‘일론 머스크’가 한 말이 올라와 읽은 적이 있다. 머스크의 말이 약간 생뚱맞았는데,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강렬해 잊혀지지 않는다. ‘저 미친X이 하는 말이 나중엔 다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머스크가 한 말처럼 설마 했던 일이, 인간의 상상이라고만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버젓이 실현되고 있다. 단숨에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바둑의 원리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완패(물론 5국 중 이 9단이 1승은 챙겼지만)했을 때 나 또한 충격이 컸다. 바둑은 결코 단순한 게임... + 더보기
페넬로페 2026-01-28 공감(35) 댓글(4)
Thanks to
공감



인공지능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 초입에 진입했다. 향후 전면적 인공지능 시대에 살게 될 것은 분명하다. 현재 인공지능은 아직 분야별로 기능하고 있어 모든 분야에서 인간이상으로 기능하는 범인공지능의 시대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현재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과 상황에 따라 인공지능이 자신의 직장을 위협하는 정도가 각각 다른 상황이다. 코딩을 하는 사람이나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 예술가, 음악가들은 이미 심대한 위협에 직면했지만 건설노동자나 간호사 등은 아직 이렇다할 인공지능의 그림자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인공지능이 침탈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바둑'이다. 우리 모두는 10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기억한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최초의 상징적 사건으로 사람들을 모두 강제로 인공지능의 시대로 이끌었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 바둑은 그 특유의 심오함으로 예술에 가까운 분야로 여겨졌고 변수가 너무 많아 비교적 단순한 체스와 달리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참패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중계를 바라보며 인공지능이 두는 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직접 대결하며 감을 잡은 이세돌이 마지막 대국에서 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이긴 사실상 마지막 경기였다. 이후 여럿이 도전했지만 전혀 이길 수 없었고 인공지능의 실력은 당시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강해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이 사건은 바둑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먼저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둑계의 민주화(?)란게 이뤄졌다. 이전 바둑은 한중일 중심의 게임이었고, 조기 영재의 게임이었고 남자의 게임이었다. 서구는 바둑에 관심이 있어도 실력을 거의 늘릴 수 없었는데, 서구에 고수가 거의 없어 실력자와 대국을 두며 자신의 실력을 양성할 기회가 지리적으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바둑의 입문 시기는 5-6세다. 부모가 바둑에 취미나 교양이 있는 경우 이것을 어린 나이에 배우다고 소질이 발견되면 입문하는 형태였는데, 이런 요소 때문에 부모가 바둑을 모른다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입문 시기 자체가 늦어 따라가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또한 바둑은 전반적으로 남기사의 실력이 월등했는데 이는 남기사들이 초반 대국의 실력이 앞섰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이런 모든 면이 해소되었다. 서구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바둑이 최고로 평가받으며 인터넷을 이용해 이런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인들 역시 부모가 바둑에 관심이 없어도 조기에 바둑에 입문하는게 가능해졌고, 인공지능을 통한 교육으로 인해 조기 영재들을 따라잡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성기사들은 대국 초반에 약점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을 통한 수 배우기는 초반 대국에 매우 유리했다. 많은 기사들이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초반 대국을 암기하여 게임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므로 이는 여성기사들의 실력 양성에 도움이 되었다.

이제부터 나올 것은 모두 문제점이다. 인공지능은 우선 바둑 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과거 바둑에서 실력을 양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 보다 고수를 만나 직접 대국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하수는 고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일종의 대국료를 지불하였고, 고수들에게 기원 등에서 수강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통해 수를 배우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대회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등장하였어도 대회 자체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상금 자체가 적어젔다. 특히, 하위 영역에 입상하는 기사들에게 지불하던 상금의 액수가 사라지거나 크게 줄었다.

다음은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과거 바둑은 일종의 예술로 여겨졌다.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보니 인간의 머리로는 이에 완전히 통달할 수 없었고 이런 요소 때문에 규칙과 승패가 분명한 게임이자 스포츠적 요소가 강함에도 예술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각 기사들은 자신만의 대국 방법이 있었으며 사람과 직접 대결하다보니 대국을 하면서 풍기는 기세도 이러한 예술적 부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며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과거 고수의 수 하나하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하나하나의 수를 모두 이길 확률로 평가한다. 과거 멋지게 두던 기사의 수들도 인공지능이 평가해보면 형편없는 수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모든 요소는 바둑에서 예술성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습 방법도 변화했다. 인공 지능 이전 바둑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고수와 대국하거나 , 과거 훌륭한 기사들의 기보를 분석하거나, 고수에게 입문하여 꾸준히 사사하거나, 기원에서 동료들과 모여 여러 수들에 대해 토론하거 새로운 수에 대한 효과들에 대한 갑론을박을 주고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거의 사라졌다. 최고의 기사들도 인공지능의 수를 공부한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려고 하고 인공지능이 두는 수에 기반하여 바둑 게임이 이뤄진다. 특히 초반부가 그러하다. 게임이 상당히 진행된 중반 이후부터는 인간이 두는 영역이 많이 남아있지만 향후 이조차도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은 바둑 기사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허함이다. 인간에게 자신이 종사하는 영역은 하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사람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인정받고 또한 인정하며 성장해나간다. 이는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긍정적 정체성과 자아존중감을 쌓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일순 등장해 이 모든 것을 부정해버렸다. 우러러 보던 고수의 대국이 알고보니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아우라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무엇보다 사람이 기계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진행해야 하거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큰 듯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둑을 전혀 모른다. 작가 장강명은 바둑에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해 수 많은 바둑계의 사람들과 직접 인터뷰하며 책을 구성했다. 인공지능이 최초로 침탈한 분야로 다른 분야에서도 도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는 논의를 진행하며 자신의 분야인 문학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의 소설을 양성할 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꾸준히 상상하며 우려했다.

우린 이런 걸 고려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개발에만 몰두한다. 그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제공조보다는 대결의 시대로 들어섰고 기업들 역시 빅테크를 중심으로 패권을 잡기 위해 고삐를 늦추기 보다는 무한 경쟁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인간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인공지능도 그러할 것이다. 더욱 강하게. 이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담긴 책이었다. 책 말미를 통해 작가님의 아내분이 아픈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디 쾌차하시길 바란다.


- 접기
닷슈 2025-09-23 공감(25) 댓글(0)
Thanks to
공감



먼저 온 미래, 진부 한 과거



이 책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의 매치 이후 바둑계의 변화에 대한 르포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 혹은 에세이를 덧붙인 르포타주라고 할 수 있다. 용어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건 llm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기도 하고.




목차를 펼쳐보면 장은 10장이지만 그 중 1-7장은 알파고-이세돌 매치 이후 바둑계의 변화에 대한 취재 및 저자의 코멘트이고 8-9장은 빅테크 및 과학기술의 현황에 대한 비판이며 마지막 장은 과학기술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에필로그 정도로 보면 되겠다.




제목, 띠지, 홍보문구까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승리를 거둔 것도 이제 10년이 다되어간다. 한국어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영어로는 one decade. 그리고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혹은 AI라는 기술과 개념이 사람들의 인식을 독차지하는 화두가 되었다. 그 후 AI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대형 언어 모델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었다.




그런데 사실 99%까지는 아니지만 지구상의 인구 대다수 입장에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보다는 AI가 일상에 가져올 변화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AI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풍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귀찮은 일들을 박멸해줄 수 있는가? 우리에게 물질적 부를 쥐여주거나 아니면 물질적 부 자체를 의미없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책의 1-7장은 알파고라는 AI가 바둑업계에 미친 영향을 추적,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아마 독자들에게 제일 유용한 지점이 1-7장일 것이다. AI가 일상을 변화시킬 때, 누가 타격을 입는가? 어떤 타격을 입는가? 누가 수혜자가 되는가? 알파고 이후 바둑 기사들이 전해주는 경험담들을 작가는 소설가의 상황으로 상상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바둑기사/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직업이나 업무에서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5장에서 저자는 바둑에서 쓰이는 '기세' 같은 용어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분별없이 쓰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기세'가 적어도 3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AI의 등장이 가져온 후폭풍 속에서 '기세'라는 단어가 혼용되고 바둑기사들조차도 '기세'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이자 인간의 직관이 맞물리는 지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7장에서 저자는 암묵지라는 개념을 끌어와 직업마다 통용되는 암묵적인 지식이 있으며 인간 사회의 각종 직무들은 바로 이 암묵지를 전수하는 지식경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암묵지는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서, 소위 '신입'들은 '선배'나 '사수'로부터 이런 암묵지를 전수받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어느 직업이든! 이 암묵지라는 개념은 바둑 기사들을 덮친 AI의 파동이 다른 직업들에게 어떻게 전이될까를 추측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다.




대학원생이 수 년에 걸쳐 논문 쓰는 법이라는 암묵지를 터득했는데 AI 연구원은 인풋을 입력하면 논문을 출력하는 상황이라면 대학원이라는 제도가 필요할까? 대학 교수가 수 년에 걸쳐 연구한 내용이 전문 AI에게 즉시 반박당하면? 기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이 AI 작문 도우미에게 틀렸다고 판정받으면? 의사의 처방전이 의학 AI에게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 메세지가 뜨면? 진짜 문제는 옆에 AI와 인간 전문가가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전문가의 지식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누구의 지식을 소비할 것를 생각해보면 전문가는 AI에게 의견을 굽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내비게이션으로 비유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은 자유지만,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지 않을 때 발생하는 비용, 그리고 동승자들이 '왜 내비대로 안따라가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라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1-7장은 AI가 수년 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침투할 것인지 보여주는,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에 어울리기 그지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8-10장은 그러지 못한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가치'를 바꾼다는 점을 지적하며 AI를 개발하는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들 역시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이런 빅테크의 약탈 행각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바둑계는 알파고 이후 프로 기사들의 권위가 사라지고 최상위권이 아닌 프로 기사들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구글은 알파고는 내버려두고 이후 신약 개발에 핵심이 되는 알파폴드로 관심을 돌렸다.




저자는 구글 뿐만 아니라 메타, 애플,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들이 기술을 개발하면서 일상의 '가치'들을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바둑 AI 프로그램을 금지시킨다하더라도 바둑기사들의 가치는 복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기술을 개발하는 빅테크들이 우리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 정당한가, '옳은 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저자는 진부한 과거로 되돌아가버린다. 앞서서는 바둑계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얼마나 추상적인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이 전가의 보도로 쓰인다는 점을 포착한 저자가, 정작 나중가서는 '가치'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빅테크와 기술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불러와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동시에 저자의 이전 작품들에 대한 인용도 이어진다. 홍보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가 내놓은 대안, 혹은 앞으로의 방향은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국제기구 단위의 기술 규제(실제로 루소와 칸트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런데 루소를 온전한 민주주의자라고 보기에는?), 기술보다 우선되는 가치, 이를 뒷받침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인문학 연구자들의 각성, 기술낙관론에 대한 저항 등등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저자 본인도 가치를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듯이 쓴다는 점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기술이라는 용어 속에 기술과 기술을 개발하는 빅테크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째서 저자는 바둑의 '기세'라는 용어에는 그토록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면서, 정작 '기술' 같은 정말 애매하기 그지 없는 개념에는 똑같은 매스를 들이대지 않는지?




아울러 저자는 현대인이 과거 중세인보다 더 좋은 삶을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현대인의 감정과 중세인의 감정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중세인들의 삶의 근거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중세사가 요한 호위징하의 "중세의 가을"(1919)을 들고와 중세인들이 어린아이 같은 심리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 말한다. 2025년 기준으로 106년 전의 근거를 들고온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를 자아낼 수 밖에 없다.




'미술은 화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잣대로 21세기 현대 미술을 비난하는 행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덧붙여 예술과 스포츠 사이를 오가는 바둑의 가치를 논하면서 정작 그 호위징하가 쓴 "호모 루덴스"가 단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AI가 일상생활에 스며들면서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이 책은 그런 일이 먼저 일어난 바둑업계를 살펴보면서 AI가 침투하면 일어나는 일에 대한 르포라는 측면에서는 충실하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결국 답을 주지 못한다.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 접기
Heath 2025-12-25 공감(23) 댓글(0)
Thanks to
공감



바둑계를 통해 미리 경험한 인공지능의 시대



'알파고' 이후 우리의 삶은 확 달라졌다. 인간을 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분야에서 인간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것. 이제는 챗지피티 시대다. 많은 대학에서 시험 답안에 챗지피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의 학습 성과를 검토한다는 시험에서도 챗지피티라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인간. 이제 인간은 이러한 기계(기계라고 하면 지능이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로봇이라는 말에는 기계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차페크의 '로섬의 유니버셜 로봇'에서 로봇들은 이미 지능이 있다. 인간에게 저항하고 인간을 쫓아내고 있으니...)의 도움 없이는 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생겼다.




단순한 일에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이제 인간이 기계의 보조 역할을 하게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불안감. 위기의식.




알파고는 그 점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만큼은 안 되리라는 예측이 무색해지고, 지금은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래서 이제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으로 학습을 한다고 한다.




바둑 해설도 마찬가지고... 바둑 방송을 거의 보지 않지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인데, 기사라 한 수를 놀 때마다 승리 확률이 화면에 나왔다. 이것이 바로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생긴 변화다.




그 돌이 지닌 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다. 오직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이기기에 최적화된 알파고와 같은 바둑 인공지능들을 인간은 이길 수가 없다. 이기기 위한 확률을 너무도 빠른 시간에 계산해내고, 이길 확률이 높은 (가장 확률이 높은 수를 꼭 두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질 확률이 있는 수를 놓는 경우는 없을 테니) 수를 놓는 인공지능을 인간이 이길 수는 없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존재,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바둑계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그리고 바둑계는 엄청나게 변했다고 한다.




이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변한 것만은 사실이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이 책에 나와 있는데,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음은 확실하니, 바둑이 무엇인지, 바둑이 인간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바둑은 예술인가, 스포츠인가 그냥 게임(놀이)인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또 우리나라에서도 때에 따라 바둑이 자리한 분야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바둑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립해야 한다.




이렇게 바둑계는 미래를 먼저 경험했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는? 우리 분야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아니다. 바둑계에 먼저 일어났을 뿐이다. 곧 다른 분야에서 이런 일은 생겨난다.




단적으로 미술에서도 음악에서도 또 문학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쓴 작품과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올랐다고도 한다. 또한 챗지피티는 학생들의 공부에 필수가 되고 있으니... 자신의 학업까지도 챗지피티에 의지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런 현실에서 바둑계가 겪은 경험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어떻게 느꼈고, 어떻게 대응했으며,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 작가 장강명이 많은 바둑 관계자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 그들이 경험한 세계가 이 책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먼저 온 미래를 겪은 사람들, 분야 이야기다.,




그리고 바둑계가 겪은 일은 이제 예술계에서도 겪고 있다. 예술,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분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던 예술도 인공지능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예술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인공지능보다 못한(이러한 우열의 개념을 예술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지만, 예술 분야만큼 우열을 나누고 평가하는 곳이 있었던가 하면,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그것을 인공지능처럼 명확하게 수치로 밝힐 수 없었을 뿐. 직관으로 또는 권위로 우열을 나누지 않았던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과연 그때도 예술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까?




무서워졌다. 그렇다고 이러한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는데... 분명 기술은 퇴보하지 않는다. 한번 나온 기술은 더 발전된 쪽으로 나아가지 사라지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 마치 엔트로피 법칙처럼.




이렇게 바둑계가 경험한 인공지능 이야기를 인간의 다른 여러 분야를 끌어와 이야기를 하다가 책의 뒷부분에 가면 인공지능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지 오웰을 중심으로 삼아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할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고. 무조건 기술발전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판단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평가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그래서 장강명은 오웰의 [1984]를 좋은 소설,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 속 세계가 너무나 끔찍해서 사람들은 그런 세계가 오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으니까. 이 말을 이 작품에 적용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조로 격하시킬 세상은 너무도 암담하기에 그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작가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인공지능이 이것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상상할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340쪽)




이 책이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인공지능이 펼칠 미래를 한번 상상해보고,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 접기
kinye91 2025-12-11 공감(20) 댓글(0)
Thanks to
공감



모호함의 소멸과 인간의 선택: 《먼저 온 미래》

올해 읽은 책 중 손꼽히게 좋았다. 논픽션이라기보다는 인문학, 혹은 철학서에 가깝다. 중국어나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다.

난 장강명 작가님(이하 존칭 생략)의 책에서 작가가 그리 강조하지 않은 대목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그가 정말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슬쩍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장강명의 책을 살짝 꼬아서 읽는 것도 같다.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내가 그의 책에서 읽어낸 중요한 이야기가《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피드백 공동체'였다면, 《먼저 온 미래》에서는 '모호함의 소멸'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이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 문명을 떠받친 건 모호함이었다. 바둑이든, 소설 창착이든 인간 활동은 탁월함이나 기세, 가치, 낭만, 인간다움 등 우리가 똑부러지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개념에 기대 이루어졌다. 그게 뭔지 잘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떤 뜻이라는 것 정도는 공유했고, 오히려 이런 모호함 덕에 끝없는 창조나 변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단 언어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암묵지 역시 근본적으로는 매뉴얼화할 수 없는, 몸으로 굴러야 체득할 수 있는, 하지만 모두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았던 지식이었으니까.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모호함의 영역을 크게 줄였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바둑기사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죽이고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바둑을 두게 만들었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알파고 이전에도 다들 몇몇 거장의 기보를 따라해 저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왔다. 오히려 알파고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는 모든 게 수치화되었다는 데 있다. 기사가 두는 한 수 한 수마다 이길 확률이 몇 프로로 딱 찍혀 나오니 바둑은 수치 게임이 되었고, 바둑 중계는 심하게 말해 경마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게 인간의 것이 아닐 뿐. 그렇기에 기사들은 AI와 바둑을 두며 초반 포석을 외우다시피 한다. AI가 신의 자리에 오르며 역설적으로 기사들 사이의 격차는 줄었고, 바둑은 민주화되었다. 이는 바둑이라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뛰어난 천재들의 예술이 아니라, 지독한 공부벌레들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 것이다. 이는 AI에 의해 바둑이 기대고 있던 모호함의 영역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크게 줄어들었기에 발생한 결과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AI가 바둑을 '해킹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AI는 모호함을 잠식한다. 문제는 인간 문명이 지금껏 모호함에 너무나 많이 의존해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AI의 발전은 인간의 존립 기반을 흔든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텅 비어있다는, 모두가 알지만 쉬쉬해온 진실을 폭로한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올린 엄청나게 높은 젠가블럭이 있는데, 그 첫 단에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모호함의 실체가 드러났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그것이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말해 인간 문명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함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보다 정교한 형태로 계속해서 보존하거나. 장강명의 선택은 후자다.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거나 아쉬움을 드러낸, 인간만의 가치를 강조한 책의 9장과 10장은 그 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런 결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AI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가 모호하게 퉁치고 넘어갔던 가치들, 가령 탁월함이나 예술, 인간다움 등을 보다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애써 덮어온 구멍을 강제로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이젠 어떻게 이를 완전히 메우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

기실 장강명은 이런 모호함을 아주 오래 전부터 붙들고 고민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먼저 온 미래》 말미에 나오는 《재수사》가 그랬고, 그에게 한겨레문학상을 안겨준 《표백》이 그랬고,《뤼미에르 피플》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인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그랬다. 장강명이 《재수사》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도 더 늦기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탁월함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였으니. 그는 이과 출신의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는 선입견과 반대로,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나 열정, 영성에 주목해온 작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지독한 올드스쿨이다.

그런 만큼 나는 9장과 10장이 다소 성길지언정, 지극히 장강명다운 결말이라 생각한다. 특히 바둑을 주제로 삼는다면 더더욱. 그의 책에 등장하는 바둑기사들의 인터뷰 역시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책도 그렇게 모호함을 부여잡고 탁월함에 이르고자 분투한 결과로 읽힌다. 갑작스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언가를 해내는 것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접기
유찬근 2025-07-12 공감(14) 댓글(0)
Thanks to
공감


더보기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