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연구 209호 (한국사연구회, 2025.)
Dog君 2025. 9. 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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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여러 편의 논문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이민우 선생님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질문과 모색 - 보편성, 이행, 인과성」입니다. 포스트 머시깽이니 탈 어쩌구저쩌구도 이미 한참 지나간 일이 된 2025년에 '내재적 발전론'을 전면에 내건 논문이라니요.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관심이 갑니다. ㅎㅎㅎ 개별 연구자들이 양적인 실적압박에 시달린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보니 요즘은 이런 식의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논문을 찾기 어렵거든요.
이 논문은 상당히 추상적인 쟁점을 다루는 데다가 서술도 아주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어려우시네. 차크라바르티, 알튀세르, 발리바르 님들아.) 일단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 논문의 목표는 내재적 발전론의 문제의식과 질문을 다시금 환기하고 이를 통해 역사학의 새로운 (철학적) 활로를 찾아보겠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자에 관해서는, 내재적 발전론을 단지 서구가 구축한 '보편성'을 단순히 추종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보편성의 재구축, 즉 보편성을 정의하는 과정에 한국사의 특수성을 포함시켜 보편성을 새로이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본 것은 두고두고 밑줄그어둘 부분입니다. ('보편성'을 단순히 추종했다
고 본 게 딱 저라서;;)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저도 이쪽 공부 안 한지 너무 오래됐나 봅니다. 감이 예전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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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 내부에는 개별 요소에 본질적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역사 변화의 결정적 단서로 삼으려
는 요소론적 경향이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비판자들은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에 대해 날카
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재적 발전론이 역사 변화의 원인을 요소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는 입장들이 요소론적 접근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안병직과 이영
훈이 제기한 비판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내재적 발전론과 유사한 방식의 요소주의로 회
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의 비판은 대개 "조선 사회에는 근대 이행에 필요한 요소가 부족하거나 불충
분했다"는 식으로, 내재적 발전론이 내세운 '요소'의 결핍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앞서 살펴
본 미국의 한국사 연구자 카터 에커트가 제기한 "오렌지밭에서 사과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이라는 평가
는 내재적 발전론의 요소론적 접근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다른 한편으
로 그 역시 오렌지밭과 오렌지, 사과밭과 사과라는 요소들을 불변적이고 정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오
렌지밭에서 오렌지가 난다"는 선형적인 인과관계로 역사의 변화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요소론적 사고의
구조에 갇혀있음을 보여준다. (이민우,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질문과 모색 - 보편성, 이행, 인과성」,
183~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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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적 보편성은 내재적 발전론에서 일관되게 견지된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이는 단지 연구의 방향
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전제인 '역사 없음'을 극복하고 한국사 자체를 성립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출발점
이었다. 그럼에도 내재적 발전론이 전제한 세계사의 보편성이 유럽중심주의를 반복하고 강화했다는 비
판은 식민사학을 극복하는데 결국 실패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보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
부하거나 무효화하는 대신,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과 그 안에 내재된 긴장을 재검토하기 위해 세계사적
보편성과 한국사의 특수성이라는 내재적 발전론의 문제설정에 대해 우선 다음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
다.
첫째는 내재적 발전론이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도가 이미 세
계사의 보편성이라는 관념에 대해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역사 없는 민족"으로서 한국이
역사를 갖고 거기에 세계사가 한국사를 어떤 식으로든 포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내재적 발전론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하여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 봉건제 논쟁, 근대성 연구, 세계체제론,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의 문제의식과 성과들은 실제로 세계사의 내용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보편성을 변하지 않는 고정
적인 것으로 가두지 않고 그 자체를 역사적 구성의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정을 잘 보여준
다. (...)
둘째, 내재적 발전론이 추구한 세계사와 한국사의 관계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국가와 세계 혹은 유럽이
라는 지역 사이의 관계로 파악되지 않았다. (...)
백남운은 유럽 혹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형태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생산수단인 토지와 직접생산자인 농민의 사회적 구성관계"라는 개념에서 "봉건제사회로 하여금 봉건
제이도록 하는 기초조건"을 구한다. 이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조선 역사의 총발전 단계를 표시하는 보
편사의 특징(!)"은 단순히 조선과 세계 혹은 유럽의 관계가 아니라 역사유물론의 보편적 개념들을 매개
로 생산양식과 사회구성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전화한다.
이 두 가지 지점은 내재적 발전론이 "보편성을 따르고 이를 따라 잡으려 했던" 것만이 아니라 "보편성
의 구성 과정에 한국사를 참여시키려는 전략"이었음을 보여준다. 유럽중심주의적 보편성은 근대라
는 단일 기준을 배제와 인정의 문턱으로 제시하지만, 내재적 발전론은 단순히 이 문턱을 넘어 세계사
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그 경계와 내용을 재조정하려는 시도를 포함했다. 이
미 식민지 시기의 연구에서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은대립적이거나 그 자체로 자명한 것으로 제시되지 않
았다.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매개하는 개념의 적합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토
론과 다름없었다. (이민우,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질문과 모색 - 보편성, 이행, 인과성」, 185~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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