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회적 표백’ 통해 ‘무해한 시민’으로 개조되는 사회” 일본 정신과 전문의의 일침
입력 2026.02.11 18:00김찬호 기자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저자 구마시로 도루 인터뷰
키오스크(무인 단말기) 앞에서 뒷사람을 기다리게 할까 봐 손을 떨고, 카페에선 옆 테이블에 목소리가 들릴까 숨을 죽인다. 도시의 효율성을 만드는 완벽한 질서를 따라가기 위해 사람들은 매 순간 필사적으로 스스로 검열해야만 한다. 사회가 ‘쾌적’해질수록 정작 그 안의 개인은 ‘불쾌함’에 시달리는 현대 도시의 역설이다.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쾌적한 도시를 위해 인간이 개조되는 현상을 ‘사회적 표백’이라고 설명한다. 소음과 느림, 서툼 같은 이질성을 지워버리고, 오직 도시에 어울리는 ‘무해한 시민’만을 남긴다는 의미다. 특히, 그는 서울과 도쿄는 쾌적함을 미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정작 그 안의 인간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연소해 버리는 ‘거대한 블랙홀’이라고 경고한다.
도시의 화려한 ‘번영’ 뒤에 숨겨진 ‘소멸’을 묻기 위해, 지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저서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한국어판을 출간한 그는 “처음부터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며 입을 열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저자 구마시로 도루가 자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서울과 도쿄를 거대한 ‘블랙홀’에 비유했다. 무슨 뜻인가.
“지방에서 서울이나 도쿄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본주의·개인주의 관점에서 보면 반짝이는 도시의 삶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이라는 좁은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옥죌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라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질식해버린다.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압박을 받는다는 것인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고도의 규칙’, 즉 예측 가능한 질서가 필요하다. 만원 지하철이나 좁은 아파트 단지에서 냄새나 소음, 돌발 행동은 없어야 한다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강화되다 보면, 사람들은 질서를 단지 ‘지켜야 하는 규칙’ 정도가 아닌 ‘침범당해서는 안 되는 성역’처럼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에밀 뒤르켐이 ‘질서가 완벽히 유지된 수도원에서는 작은 일탈도 큰 죄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듯, 지금 사회가 딱 그렇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길 실수나 소음이 이제는 용서받지 못할 ‘민폐’가 되고, 척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사회가 쾌적해질수록 ‘죄인’의 범위도 더 넓어진다.”
인구 밀도 높은 도시를 원할하게 돌아가려면
질서가 ‘규칙’이 아닌 ‘불가침의 성역’이 되고
표백된 사회서 아이들을 ‘폐 끼치는 존재’ 인식
소음과 실수가 용서못할 ‘민폐’ ‘악’이된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행복)나 효율성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존재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고 뛰어다닌다. 즉,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도시의 제1원칙을 태생적으로 위반하는 존재인 셈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 아이가 성장하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감내했지만, 표백된 사회에서는 아이의 소음은 ‘잡음’으로 규정된다. 한국의 ‘노키즈존’ 논란, ‘운동회 소음’ 사과 사건 등은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우리 곁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과 같다. 도시가 쾌적해질수록,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가장 먼저 배제된다.”
-돈을 내고 간 곳에선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도 있다.
“돈을 지불했으니 불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감각이 강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깊게 침투하기 전인 1970년대에는 이런 태도가 지금만큼 당연시되지 않았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빠르게 내면화됐다. ‘당연함’이라는 것은 시대적 맥락에서 용인되는 것이지, 이게 반드시 옳다는 의미는 아니란 점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이 급증하는 등 정신의학적 진단이 늘어나는 현상도 유사한 맥락인가.
“과도한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예전 같으면 조금 특이하거나 산만한 사람으로 넘겼을 이들을 이제는 ‘교정해야 할 환자’로 분류하는 식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의 범위가 극도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도시는 노동자에게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 기준에 미달하면 ‘빌런’으로 낙인찍히거나 병원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의학이 발전해서 환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사회의 허용 폭이 좁아져서 ‘환자’가 양산되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향해 ‘너는 정상인가’를 묻는 거대한 검문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눈치가 없는 사람을 ‘빌런’이라 부르며 죄악시하는 것은 어떤가.
“‘능력 부족(무능)’과 ‘도덕적 타락(악)’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과거에는 일을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효율이 지상 과제가 된 사회에서는 이 둘을 동일시한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로 간주하고, 곧바로 ‘악인’의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식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사회는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개인을 우대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조직적으로 배제하고 있지 않나. 겉으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현실은 차가운 선별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지독한 괴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일본보다 더 ‘상향 평준화’ 압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가치를 오직 ‘기능’으로만 평가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저자 구마시로 도루가 자난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한국·일본처럼 효율이 지상 과제가 된 사회
‘능력 부족’ 무능과 ‘도덕적 타락’ 악이 동일시
일 못하면 ‘민폐’ …‘악인의 프레임’으로 강화
작은 일탈도 용납 않는 ‘검문소’ 논리만 남는다
-질서가 강조되고, 걸러내기가 강화된다면 사회는 더 평온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현실에서는 갈등과 불안이 여전하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감각은 ‘폐를 끼치는 타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완벽한 무해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 검열하는 만큼, 타인의 사소한 잡음이나 이질성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도시의 질서가 견고해질수록 타인을 감시하는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작은 일탈조차 용납하지 않는 ‘검문소’ 논리가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이 확산하며 ‘이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이 더해지면, 물리적 안전이 아무리 높아져도 심리적 불안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현대 도시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무해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끝은 무엇인가.
“도시가 재생산 기능을 상실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고밀도 압박 속에서 ‘무해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는 청년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아이)를 책임지라는 것은 시스템과 사투를 벌이라는 말과 같다. ‘나 하나 무해하게 살아남기도 벅찬데, 어떻게 유해한 존재(아이)를 세상에 내놓겠는가’라는 저항이 저출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식이다. 결국 서울과 도쿄라는 블랙홀은 주변의 젊은 에너지를 빨아들여 화려한 빛을 내뿜지만,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소멸하며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끝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을 걸러내고 있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일 수 없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사회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며 사회 또한 끊임없이 변하는 강물과 같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기준은 의외로 불확실하다. 이제는 ‘부적응자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건전’하다고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