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고려장에서 간병살인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가 결국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감옥살이 중인 청년의 사연이 최근 알려졌다. ‘사회복지’는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묻게 된다.
김형민(SBS Biz PD)다른기사 보기
입력 2021.12.19 07:04
호수 743
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려장〉의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제공
몇 주 전 한국 영화사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하녀〉(1960)를 잠깐 얘기한 적이 있지. 〈하녀〉를 만든 김기영 감독의 초기 걸작 가운데 영화 〈고려장〉도 있다. 당시 이화여대 교수로 와 있던 캐서린 크레인은 “한국 고래(古來)의 풍습을 그린 고려장도 좋지만 국민들의 일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해달라(〈조선일보〉 1963년 3월29일)”는 기고를 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고려장’은 한국의 옛 풍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한국인들 역시 그러려니 했다는 걸 의미할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 사서에는 어느 시대든 고려장이 널리 행해졌다는 기록이 없다. 몇몇 설화의 형태로 전승되고 노인 유기 범죄로 다뤄진 사례는 있으며 다산 정약용도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지만 고려장이라는 장례 풍습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이 고려장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조선 말 동양에 왔던 선교사 윌리엄 그리피스의 저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에서였어. 여기서 그리피스는 한국에 노인을 유기하는 장례 풍습이 있었다며 이를 ‘Ko-rai-chang’이라고 표기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그리피스 이후 한국에 고려장이라는 몹쓸 풍습이 널리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확산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스스로도 그걸 사실로 믿어버린 게 아닌가 해. 그래서 고려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단어의 연원을 떠나서 ‘노인 유기’라는 특정한 범죄적 행동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다고 판단해 ‘고려장’의 표현을 빌리기로 한다.
각박하고 혹독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고려장’ 사건은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아버지를 생장(生葬)하는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1924년 9월13일)는 그 후 수없이 되풀이될 노인 유기 범죄를 대하는 언론의 전형과도 같다. “‘부친을 고려장을 지냈다.’ 이것을 옛말로는 들었으나 사실로 듣고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 그런 불효자 놈을! 하고 놀라는 도학 선생의 분심으로 놀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산 채로 장사지냈다는 이 한 사실과 이런 일을 해야 했던 그의 형편을 대조하여 생각할 때 엄숙한 경악을 느끼는 바이다. 물론 단순한 경제적 곤박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교육이 없는 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종래로 극단의 가족주의를 지켜오던 우리 조선에서 부모를 생장(生葬)했다는 것은 실로 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는지를 알겠다.”
‘도학 선생의 분심’ ‘사실과 형편의 대조’ ‘극단의 가족주의를 지켜오던 조선’ 그리고 ‘경제를 지배하는 인격’ 따위 표현들은 그로부터 100년 동안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노인 유기 범죄, 즉 고려장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거의 다 묘사하고 있어. “어떻게 부모를 버릴 수 있나” 분기탱천하고 “가화만사성”을 곱씹으며 “못 배워먹은 놈들이 그렇지”라고 혀를 차다가 사건의 내막을 듣고는 “가난이 죄지” 하면서 먼 산 바라보는 일이 그 뒤로 골백번 반복됐을 거란 얘기다.
범죄를 질타하면서도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
1933년 부산 대신동에 사는 이의문이라는 사람은 그 두 아들과 공모해 죽지도 않은 아버지를 관에 넣어 생매장해 버렸다. 이 극악한 살인미수범 불효자를 질타하면서도 기자는 슬쩍 이런 사실을 흘리고 있어. “수년간 노병으로 고통 겪으며 지내는데 오랫동안 병이 낫지 않고 지리하게 끌어오는 것을 싫어하여(〈동아일보〉 1933년 7월9일)” 벌인 행동이라는 것이었지. 아마 당시 사람들도 이런 불효자 살인미수범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발을 구르는 한편으로 돌아서서는 “긴 병에 효자 없지” 하며 쓴 입맛을 다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도 가족 중 누군가 중병에 걸린다면 그 병세와 더불어 “그 집 형편은 괜찮나”를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판에 온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 늙은 부모가 오래 몸져눕거나 치매에 걸린다면 얼마나 큰 사건이었겠니.
1995년 2월10일 전북 부안의 한 다방에 할머니가 버려졌다는 신고 전화가 들어왔다. 경찰이 출동해 할머니를 모시고 와 부안군청에 인계했다. 부안군청은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 캐물었는데 한 달을 버티던 할머니가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어. 일종의 자발적 고려장이었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택시 기사를 하던 아들, 며느리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어. 그런데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집안의 가장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됐고 먹고살 일이 막막했지. 그때 할머니가 며느리를 설득한다. “고향에 나를 버리면 누군가 양로원이라도 보내줄 것 아니겠느냐.”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경제는 인격을 지배’하기 마련.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전북 부안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방에 할머니를 놓아두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할머니를 모셔가는 걸 지켜본 뒤 통곡하며 돌아왔다고 해.
사실이 밝혀진 후 며느리에게 존속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검찰이 고개를 저었다. “유기의 고의가 분명하지 않다(〈조선일보〉 1995년 3월17일).” 즉 노인을 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행위 과정에서 고려할 점이 있고 그런 행동을 감행하게 만든 상황을 감안했기 때문일 거야. 사람들도 이 슬픈 이야기에 가슴을 쳤고 전국에서 성금이 쏟아지는 가운데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비극은 이어졌지. 사건이 알려진 뒤 뇌출혈로 쓰러진 아들은 “못난 자식 때문에 어머니와 집사람이 고통을 받게 됐다며 곡기를 끊었고(〈동아일보〉 1995년 4월22일)” 그예 세상을 떠나버렸으니까. 2000만원가량 들어온 성금을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말이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어느 모로 봐도 착한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착한 사람들이지만 범죄를 저질렀다. 그 어느 쪽도 부인할 순 없겠지만 우리는 어느 쪽에 더 방점을 찍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니.
얼마 전 탐사보도 매체 〈셜록〉에서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가 결국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감옥살이 중인 22살 청년에 대해 보도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으며, 아버지를 두고 일하러 갈 수도 없고, 당장 먹을 쌀과 생필품이 되다시피 한 핸드폰까지 끊겨버린 청년은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외면했고, 그 결과 존속‘살해’ 혐의로 2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변호인 측은 형량이 좀 낮은 ‘유기치사’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지. 사건을 가장 엄밀하게 들여다본 이들은 재판부일 테니 그 판결을 두고 아빠가 왈가왈부하기는 어렵겠다. 그래도 안타까움은 남는단다. 아빠가 그 청년의 상황이 됐을 때 그와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야. 반대로 아빠가 그 청년의 아버지 처지가 됐다면 아들을 일점 원망할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야. 그리고 대관절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이기에 이런 상황이 방치되는 걸까 생각해본다. 처음에 얘기한 1924년, 〈동아일보〉 기사는 이렇게 끝맺는다. “물질 때문에 죄악을 짓지 않는 공평한 세상이 이 땅 위에는 세워지지 않고 말려는가. 이 엄숙한 사실 속에 불 지를 연료를, 눈 있는 사람은 찾아낼지어다.” 이 기막힌 현실을 불태울 ‘연료’는 과연 무엇일까.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editor@sisain.co.kr#김형민 #역사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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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려장〉의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제공몇 주 전 한국 영화사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하녀〉(1960)를 잠깐 얘기한 적이 있지. 〈하녀〉를 만든 김기영 감독의 초기 걸작 가운데 영화 〈고려장〉도 있다. 당시 이화여대 교수로 와 있던 캐서린 크레인은 “한국 고래(古來)의 풍습을 그린 고려장도 좋지만 국민들의 일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해달라(〈조선일보〉 1963년 3월29일)”는 기고를 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고려장’은 한국의 옛 풍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한국인들 역시 그러려니 했다는 걸 의미할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 사서에는 어느 시대든 고려장이 널리 행해졌다는 기록이 없다. 몇몇 설화의 형태로 전승되고 노인 유기 범죄로 다뤄진 사례는 있으며 다산 정약용도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지만 고려장이라는 장례 풍습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이 고려장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조선 말 동양에 왔던 선교사 윌리엄 그리피스의 저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에서였어. 여기서 그리피스는 한국에 노인을 유기하는 장례 풍습이 있었다며 이를 ‘Ko-rai-chang’이라고 표기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그리피스 이후 한국에 고려장이라는 몹쓸 풍습이 널리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확산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스스로도 그걸 사실로 믿어버린 게 아닌가 해. 그래서 고려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단어의 연원을 떠나서 ‘노인 유기’라는 특정한 범죄적 행동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다고 판단해 ‘고려장’의 표현을 빌리기로 한다.
각박하고 혹독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고려장’ 사건은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아버지를 생장(生葬)하는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1924년 9월13일)는 그 후 수없이 되풀이될 노인 유기 범죄를 대하는 언론의 전형과도 같다. “‘부친을 고려장을 지냈다.’ 이것을 옛말로는 들었으나 사실로 듣고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 그런 불효자 놈을! 하고 놀라는 도학 선생의 분심으로 놀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산 채로 장사지냈다는 이 한 사실과 이런 일을 해야 했던 그의 형편을 대조하여 생각할 때 엄숙한 경악을 느끼는 바이다. 물론 단순한 경제적 곤박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교육이 없는 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종래로 극단의 가족주의를 지켜오던 우리 조선에서 부모를 생장(生葬)했다는 것은 실로 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는지를 알겠다.”
‘도학 선생의 분심’ ‘사실과 형편의 대조’ ‘극단의 가족주의를 지켜오던 조선’ 그리고 ‘경제를 지배하는 인격’ 따위 표현들은 그로부터 100년 동안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노인 유기 범죄, 즉 고려장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거의 다 묘사하고 있어. “어떻게 부모를 버릴 수 있나” 분기탱천하고 “가화만사성”을 곱씹으며 “못 배워먹은 놈들이 그렇지”라고 혀를 차다가 사건의 내막을 듣고는 “가난이 죄지” 하면서 먼 산 바라보는 일이 그 뒤로 골백번 반복됐을 거란 얘기다.
범죄를 질타하면서도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
1933년 부산 대신동에 사는 이의문이라는 사람은 그 두 아들과 공모해 죽지도 않은 아버지를 관에 넣어 생매장해 버렸다. 이 극악한 살인미수범 불효자를 질타하면서도 기자는 슬쩍 이런 사실을 흘리고 있어. “수년간 노병으로 고통 겪으며 지내는데 오랫동안 병이 낫지 않고 지리하게 끌어오는 것을 싫어하여(〈동아일보〉 1933년 7월9일)” 벌인 행동이라는 것이었지. 아마 당시 사람들도 이런 불효자 살인미수범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발을 구르는 한편으로 돌아서서는 “긴 병에 효자 없지” 하며 쓴 입맛을 다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도 가족 중 누군가 중병에 걸린다면 그 병세와 더불어 “그 집 형편은 괜찮나”를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판에 온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 늙은 부모가 오래 몸져눕거나 치매에 걸린다면 얼마나 큰 사건이었겠니.
1995년 2월10일 전북 부안의 한 다방에 할머니가 버려졌다는 신고 전화가 들어왔다. 경찰이 출동해 할머니를 모시고 와 부안군청에 인계했다. 부안군청은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 캐물었는데 한 달을 버티던 할머니가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어. 일종의 자발적 고려장이었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택시 기사를 하던 아들, 며느리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어. 그런데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집안의 가장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됐고 먹고살 일이 막막했지. 그때 할머니가 며느리를 설득한다. “고향에 나를 버리면 누군가 양로원이라도 보내줄 것 아니겠느냐.”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경제는 인격을 지배’하기 마련.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전북 부안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방에 할머니를 놓아두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할머니를 모셔가는 걸 지켜본 뒤 통곡하며 돌아왔다고 해.
사실이 밝혀진 후 며느리에게 존속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검찰이 고개를 저었다. “유기의 고의가 분명하지 않다(〈조선일보〉 1995년 3월17일).” 즉 노인을 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행위 과정에서 고려할 점이 있고 그런 행동을 감행하게 만든 상황을 감안했기 때문일 거야. 사람들도 이 슬픈 이야기에 가슴을 쳤고 전국에서 성금이 쏟아지는 가운데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비극은 이어졌지. 사건이 알려진 뒤 뇌출혈로 쓰러진 아들은 “못난 자식 때문에 어머니와 집사람이 고통을 받게 됐다며 곡기를 끊었고(〈동아일보〉 1995년 4월22일)” 그예 세상을 떠나버렸으니까. 2000만원가량 들어온 성금을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말이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어느 모로 봐도 착한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착한 사람들이지만 범죄를 저질렀다. 그 어느 쪽도 부인할 순 없겠지만 우리는 어느 쪽에 더 방점을 찍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니.
얼마 전 탐사보도 매체 〈셜록〉에서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가 결국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감옥살이 중인 22살 청년에 대해 보도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으며, 아버지를 두고 일하러 갈 수도 없고, 당장 먹을 쌀과 생필품이 되다시피 한 핸드폰까지 끊겨버린 청년은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외면했고, 그 결과 존속‘살해’ 혐의로 2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변호인 측은 형량이 좀 낮은 ‘유기치사’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지. 사건을 가장 엄밀하게 들여다본 이들은 재판부일 테니 그 판결을 두고 아빠가 왈가왈부하기는 어렵겠다. 그래도 안타까움은 남는단다. 아빠가 그 청년의 상황이 됐을 때 그와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야. 반대로 아빠가 그 청년의 아버지 처지가 됐다면 아들을 일점 원망할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야. 그리고 대관절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이기에 이런 상황이 방치되는 걸까 생각해본다. 처음에 얘기한 1924년, 〈동아일보〉 기사는 이렇게 끝맺는다. “물질 때문에 죄악을 짓지 않는 공평한 세상이 이 땅 위에는 세워지지 않고 말려는가. 이 엄숙한 사실 속에 불 지를 연료를, 눈 있는 사람은 찾아낼지어다.” 이 기막힌 현실을 불태울 ‘연료’는 과연 무엇일까.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editor@sisain.co.kr#김형민 #역사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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