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의 디아스포라, 만인이 만인에게 이방인이 된 폭력의 한가운데서, 다시 차학경을 호출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금 세계엔 제국주의가 귀환했다. 선주민들을 몰살하곤 ‘이민자들의 나라’라 떵떵 대던 짧은 역사가 무색하게,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경단과 다름없는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에게 무한한 권리를 부여했다. 야만으로의 회귀다.
만주 벌판에서 일본어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던 어머니의 피를 받았고, 분단으로 서울로, 부산으로 남하했다가 하와이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여자. 차학경은 미국에서 비교문학과 언어학을, 프랑스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한 뒤 비디오, 행위예술, 글쓰기 등을 매개로 어머니의 역사, 파편화된 기억, 빼앗긴 언어, 식민지의 여성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 말하고 있으나 들리지 않음을 제3세계에서 온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표현하고 발산했다.
책의 제목인 ‘딕테’는 불어로 ‘받아쓰기’를 의미한다. 구술을 받아쓰는 행위엔 이미 권력이 개입한다. 여성들, 제3세계 국가 민족들은 목소리를 잃고 대신하여 기록되고 교정돼왔다. <딕테>엔 영어와 불어, 시와 이미지, 기억과 공백, 번역과 인용, 역사 기록, 증언, 개인적 체험이 어지럽게 혼재된다. 유관순과 잔 다르크, 어머니를 호명하며 교차하는 텍스트들은 독해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듯 난해하다.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가깝다. 차학경은 이 책에서 ‘bite the tongue’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혀를 물다, 입을 닫다, 말할 수 없다….
이때 우리가 묻게 되는 질문은 오래된 것이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 말은 어디까지 들릴 수 있는가? 인도의 탈식민주의 여성학자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화의 능력이 아니라 발화가 승인되는 구조를 겨냥했다. 말은 존재하지만, 청취의 공간이 봉쇄되어 있다. 발화는 발생하지만, 의미로 승인되지 않는다.
지금 ICE는, 미국은, 세계는 개개인을 검열한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차학경은 그 질문에 반대한다. 그의 예술세계엔 기원도, 자격도, 완결된 정체성도 없다.
이방인의 문제. 환대와 적대의 문제. 미국에만 한정된 이야기 같은가? 이것은 국경을 불문하고 지금 세상 어느 곳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자 화두다.
레비나스의 ‘환대’ 개념은 쉽게 오인된다. 그건 여행객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전통춤을 춰준다는 뜻이 아니다. 환대는 타자를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자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음’을 받아들이는 윤리다. 윤리는 지식보다 앞서며, 이해하기 전부터 우리는 타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타자를 내 언어로 규정지어 나의 지식 체계에 포섭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다. 환대란, 타자를 마주했을 때의 말문이 막혀 멈추는 것.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얼굴을 받아들이는 것.
차학경은 레비나스식 환대를 디아스포라 속에서 급진적으로 수행한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답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멈추게 한다. 누가 들리는가. 누가 사라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멈출 수 있는가. 차학경 예술세계의 불친절함은 보는 이들의 윤리적 선택을 촉구한다.
(..)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내가 왜 그토록 디아스포라를 느껴왔는가에 대해 나는 답을 찾았는가? 여기선 탈식민주의 여성주의자 모한티를 빗대 말할 수 있겠다. 모한티는 서구 여성주의가 제3세계 여성의 문화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버렸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나는 그의 말처럼 서구 위주의 여성주의를 느낄 때면 불편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같은 노동자들과 투쟁하면서도, 같은 뜻을 향한 운동가들과 연대하면서도, 계급성의 간극 혹은 권력의 낙차를 감지하면 멈춰버리고 마는 사람이다. 나는 늘 핀셋처럼 좁은 땅 위에 서 있고, 그 땅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나는 결국 내 발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무엇에도 머물지 않고 어떤 것도 규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발화함으로써,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표표히 드러낸 차학경은 언제나 내게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딕테>에서의 한 구절처럼, 지금도 글 속에 살아있는 차학경을 질투한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저항을,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소리친 그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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