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8

11년 - 꽃다발과 화살 | 박유하 | 2025 요약과 평론

11년 | 박유하 | 알라딘


11년 - 꽃다발과 화살
박유하 (지은이)뿌리와이파리2025-12-16











































미리보기



책소개
2014년 6월, 책이 출간되고 열 달이 지난 시점에, 나눔의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의 이름으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민형사 고소고발,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다. 그로부터 10년, 11년의 길고 험난한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 민사 항소심의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훼손 없음’(승소) 판결과 ‘34곳 삭제 가처분, 취소’ 결정이 나왔다.

『제국의 위안부』는 결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 그럼 왜? 『제국의 위안부』와 지은이 박유하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체제와 냉전체제의 후유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냉전과 식민지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목차


서문 부드러운 파시즘의 시대에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 서문 들어가면서

제1장 『제국의 위안부』 출간, 심포지엄, 고소(2013년 8월~2015년 1월)
1. 세상으로 나간 목소리, 한 위안부 할머니의 죽음
<위안부 문제,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2. 고발 주체는 누구였나―학자들의 비판
<‘세계의 상식’에 던진 도전장… ‘다른’ 해법도 있다>
3. 생애 첫 법정 공방

제2장 삭제판 출간, 손해배상 재판, 형사조정 결렬, 기소(2015년 2월~2015년 12월)
1. ‘해명’이라는 굴레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서―『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2. 꽃다발과 처벌
<망명으로서의 수상―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 수상 소감>
3. 국가의 편향 개입
<기소 항의 기자회견문>
4. ‘지식인’의 사상검증
<민사 1심 최후진술서>
<민사 1심 추가답변서>
5. 세계를 향해 제언하다
<위안부 문제, 인식의 접점을 찾아서>

제3장 ‘징역 3년’ 구형에 맞서(2016년 1월~2017년 10월)
1. 국가의 얼굴을 한 ‘국민’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민 간 합의를 향해>
2. 국가의 처벌에 가담한 이들―재일교포 사회의 공격과 한국인 학자의 호응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정영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에
답한다>
3. 형사 1심 승소까지
<형사 1심 최후진술서>
4. 형사 2심 패소
<형사 2심 판결문을 읽는다>

제4장 대법원에서(2017년 11월~2020년 4월)
1. 패소 항의 성명과 후원 시작
<피고인 의견서―검찰의 「상고이유서」에 대해>
2. 빼앗긴 목소리
<김복동 할머니를 생각한다 1>
<김복동 할머니를 생각한다 2>
3. 바위와의 싸움, 기울어진 ‘주전장’

제5장 변화, 대법원 무죄 판결까지(2020년 5월~2023년 11월)
1. 전환의 길목에서
<피고인 의견서>
2. 변화의 시작과 ‘진보’의 저항
<『제국의 위안부』 소송과 한일관계에 관한 기자회견문>
3. 8년 만의 무죄 판결
<대법원 판결에 부쳐>
<군수품으로서의 동지―김윤덕 기자의 비판에 답한다>

제6장 마지막 재판(2023년 12월~2025년 7월)
1. 삭제 요구 53곳, 마지막 해명
<피고인 의견서>
2. 유족들과의 재판
<피고인 의견서―학계의 변화>

후기

부록 1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관련일지
부록 2 민사소송 2심의 『제국의 위안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주장 및
‘삭제’ 가처분 내용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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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 2014년 6월 16일, 한 권의 책에 세 개의 소송이 제기됐다. 그 모든 재판에서 해방된 건 2025년 7월 15일이었다. 10년 5개월 동안, 『제국의 위안부』는 시중에서 아예 팔리지 못하거나 일부 삭제된 채로 존재했다. 그 기간 동안 일본어판과 중국어판과 영어판이 차례로 나와 한국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원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정황은 바뀌지 않았다. 대신 한국 사회에서는 (…) 정치가부터 학자까지, 언론부터 일반 시민까지, 이 책과 저자인 나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 책은 그 시간을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서문) 접기

P. 6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을 향해서도 말을 건 책이었다. 양국 정부, 지원단체, 국민들 모두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사회를 향해서는 ‘위안부’로 호명되는 분들의 불행에 과거의 우리에게 책임은 없었는지 돌아보자고 나는 제안했다. 문제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이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1990년대 이후 20여 년에 걸친 지원단체의 위안부 이해와 운동방식에도 문제는 없었는지 함께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현재의 이해와 대응방법이 옳아야 미래의 해결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서문) 접기

P. 6 말하자면 나는 과거와 현재에 걸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자문했다. 물론 그 자문의 출발점에는 위안부로 가지 않아도 되었던 계층의 후예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자문이 있었다. 과거의 일본이 한 일에 후예들에게 책임이 지워진다면, 그 자문은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일본을 향해서도, 책 부제로 ‘식민지지배’라는 말을 달았던 것처럼 “제국의 책임”을 생각해야 하고 사죄와 보상이 다시 필요하다고 했다. “전쟁책임”으로만 물어왔던 그간의 운동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 것이었다. 특히 일본어판에는 ‘위안부’는 물론 간토 대지진 피해자를 비롯한,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조선인의 피해에 대해 사죄를 표명하는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썼다.(서문) 접기

P. 56 나는 그 여름에 예정했던 모든 일을 접고 집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더 구체적인 반박문 작성에 집중했다. 외출할 기력도 시간도 그해 여름엔 없었다. 어쩌다 일이 있을 때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7월 초에 내가 근무하던 대학 앞에서 벌어진 시위를 겪은 이후로는 그들이 언제 집으로 찾아올지 몰라 초인종 소리가 두려웠던 여름이었다. (…) 해명을 위해 정리해야 할 자료는 너무 많았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기에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는 음악도 풍경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절망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앞에 있는 ‘일’거리에 몰두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낸 A4 150매 분량의 반박문을, 8월 말에 법원에 제출했다. 접기

P. 96 마이니치신문사에서 주는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며칠 뒤, 와세다 대학에서 주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문화공헌부문)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이시바시 단잔은 식민지를 포기하자고 주장했던 언론인 출신 일본 수상이었다. 나에 대한 공격이 바다를 건너 연대한 진보진영의 공격이었던 만큼, 나의 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준 또 다른 진보진영의 응원은 너무나 소중했다. 지적 훈련 시기에 몸담았던 공간—대학원 시절을 보냈던 와세다 대학으로부터의 응원도 반가웠다.
사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 편을 든 책”이라는 오해와 비난조차 받았던 터라 수상은 그런 오해를 증폭시킬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고심 끝에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어판이 삭제된 이상 일본어판은 온전한 상태로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판본이었다. 의도한 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제국의 위안부』는 현해탄 건너로 망명한 책이 되어 있었다. 홀로 살아남은 그 책이 향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는 일본의 언론과 대학이 나에게 건넨 꽃을 책에 달아주기로 했다. 『마이니치 신문』의 시상식 날은 민사재판 날이기도 했다. 나는 일본인 편집자에게 대독을 부탁하고 수상 소감을 써보냈다. 접기

P. 100 수상 소감을 써보내고 민사 1심 4차기일에 참석한 지 불과 1주일 뒤, 검찰은 나를 기소했다. 11월 18일이었다. 조정이 결렬되었으니,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기소란 민간인의 제소와는 의미가 달랐다. 한 구성원이 그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발한 다른 구성원에 대한 국가의 기소, 그것은 모든 구성원을 아울러야 할 국가가 어느 한쪽에 서기로 했음을 의미했다. 국민들을 향해 나에게 ‘매국노’ 딱지를 붙여도 좋다고 한 행위였다. 고소장에서, 그리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범죄일람표’를 접하고 답변하면서 익숙해지기도 한 터였지만, ‘범죄’란 공동체의 룰을 위반했다는 의미였다. 생각 차이를 둘러싼 국가의 기소는 공동체가 주도하는 처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시도한 나의 작업이 바로 그 공동체에 의해 전(全)부정당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민간인의 생각 차이 싸움에 국가가 가담하면서 나에 대한 비난도 더욱 거세졌다. 접기

P. 113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란 국가가 세력 확장을 위해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 군인과 달리 여성들에겐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 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 더보기

P. 115~116 검사의 취조, 가처분신청 ‘일부 인용’(나에게는 ‘패소’), 민사재판, 학계의 공격, 기소까지, 태어나 처음 겪는 힘겨운 한 해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한일 합의’가 발표됐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정부 간의 ‘합의’ 전에 해야 할 일을 빼놓고 있어서 착잡했다. 국민들 간의 인식에서 접점 만들기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협의회를 만들어 접점을 찾아보자고 했던 1년 반 전 나의 제안은 실패한 셈이었다.
하지만 원고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올라 있던 나눔의집 거주자 분 중 한 분이 합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이 방송에 잡혀 있었다(다음날엔, 그 말은 이미 번복되어 있었다).
정대협은 침묵을 지키다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한일 합의’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 이어지리라고 예감했다.
지원단체가 선도한 ‘한일 합의’ 반대운동은 온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격렬한 비판과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선봉에 섰던 정대협에는 단숨에 1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나눔의집에도 이후 1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나서 1년 반이 지나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런 효용도 없었다. 나는 법정에 갇혀 있었고,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 있던 두 단체는 ‘한일 합의’를 계기로 영향력을 훨씬 더 강하게 키워나갔다. 접기

P. 234 『제국의 위안부』 소송의 본질은 나의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처벌해달라는 요구에 드러나 있었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은 검은 “의도”가 있으니 검열되어야 했다. 국가를 동원해서라도 처벌되어야 했다. 그들의 목적은 나의 입을 막는 것—현재와 미래를 억압하는 것을 넘어 이미 나온 책(과거의 목소리)까지 묻어버리는 데에 있었다. 그런 목소리를 ‘학자’들은 물론 정치가도 앞다투어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대부분은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이들이었다. 국가보안법이 국가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개인을 처벌하는 법이었다면, 『제국의 위안부』 고발에 가담한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국가의 얼굴을 하고 나에 대한 위협에 나섰다. 파시즘의 도래였다. 접기

P. 262 그리고 사실, 나눔의집 위안부 할머니들 중 군인에 의해 끌려간 분들은 오히려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즉, 원고가 되어 있는 할머니들의 경우 이른바 ‘군인에 의한 강제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는 알려진 자료에 한해 말하자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대리인에 의해 고소고발/소송의 주체가 된 나눔의집 거주자 위안부 할머니 중 다섯 분, 그리고 대구에 사시면서도 원고로 이름이 올라간 이용수 할머니(저와의 통화에서, 이분이 고발 사실을 몰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른바 ‘군인이 강제연행’한 이는 단 한 분도 없다는 것을, 저는 고발당한 이후 원고 측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피고인 의견서―검찰의 「상고이유서」에 대해>) 접기

P. 276 정대협이 ‘주관’하고 정대협 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런 모임에서 위안부도 위안부 모집업자도 군속이었다는 발언이 나오고, “배봉기 할머니를 10여 년 만나는 과정에서 배봉기 할머니는 과연 자신이 과연 어떤 부분에서 강제되었다고 생각을 하셨을까, 아니면 강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런 부분도 사실상 고민스러웠습니다”(97쪽)라는 소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기존 학계와 지원자들은 이미 이런 “고민”을 관계자들 간에는 공유하면서도 외부에는 그 고민을 노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인 위안부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저 역시 식민지지배가 만든 존재라는 점에서는 다르며 계급적/민족적 차별이 있었다고 일찍이 말한 바 있습니다(『화해를 위해서』, 2005). 그러나 ‘강제연행’ 여부에 차이를 둘 수는 없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동) 접기

P. 326 뒤늦게 위안부 문제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매춘하는 제국』에서, 그리고 박유하 비판의 선봉에 섰던 재일교포 김부자 교수가 『식민지유곽』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와 ‘매춘’의 깊은 관련성을 지적한 사실 역시 박유하의 책이 허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나아가 『위안부는 여자다』라는 책은 뒤늦게 여성주의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인데, 한국과 일본의 주류 학자들이 ‘조선인 위안부=강제연행, 일본인 위안부=매춘’설을 통해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합니다.
민족문제가 아니라 여성문제로 보아야만 이러한 시각이 가능해집니다. 중요한 건 강제인지 여부와 상관없는 위안부의 피해자로서의 위치 인정입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역시, 동원 과정에 상관없이 위안부 모두를 피해자로 간주하고 그에 입각해 그녀들을 동원한 ‘일본 제국’의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동) 접기

P. 335 학계는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뽑히지 않는 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른바 윤미향 사태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고발한 박선아 변호사는 더이상 위안부 관련 집회에 나타나지 않은 듯했다. 나를 기소한 검사도 어느새 검찰을 떠나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사회적 망각의 조건은 갖추어져 있었다. 고발당한 해로부터 8년. 고발과 기소를 주도한 이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며 나를 ‘범죄자’로 다그쳤던 공간에는 어느새 나만 남아 있었다.
퇴임식 다음날인 8월 3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접기

P. 348 2023년 10월 26일이었다.(…)
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건번호 2017도18697, 피고인 박유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나란히 앉아 판결을 기다리던 가족과 변호인과 출판사 대표, 우리는 작은 탄성과 함께 손을 맞잡았다. 형사 2심의 ‘유죄, 벌금 1000만 원’ 판결을 뒤집는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었다. 접기

P. 353~354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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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유하 (지은이)

서울에서 태어나 1남3녀의 막내로 자랐다. 어렸을 때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언니들 영향으로, 10대 이후엔 고독했던 탓에, 책과 음악을 사랑했다. 당시로서는 남들보다 일찍 유학, 대학을 일본에서 나온 것이 이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읽고 일본인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일본인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전공으로 일본문학과를 택한 건 그 반대로 ‘일본인’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면서도 학부 때는 클래식 음악과 서양/고전 영화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대학과 달리 세계사 시험이 부과되던 게이오 대학을 선택해 공부했지만, 졸업 후엔 존경하던 교수님을 따라 도쿄 대학에서 잠시 보냈고, 마지막 유학 기간은 결국 근현대문학이 강했던 와세다 대학에서 보냈다. 대학원 때는 공부와 육아와 아르바이트의 트라이앵글 스케줄을 오가다 건강을 상하기도 했다. 귀국 후엔 당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일본현대문학 번역시리즈를 만들었다.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의 지성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어진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등 일급 지식인들과의 교류는 이후 중요한 인적·지적 자산이 되었다.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관심에서 썼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사회평론, 2000, 2004년에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로 개제)의 저변에는 근대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를 아시아/여성 시각에서 비판했던 학위논문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단행본은 김석희 옮김, 문학동네, 2007)가 있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뿌리와이파리, 2005/2015)는 한일 양국 민족주의 비판을 강하게, 권력화되는 중이던 ‘진보’ 비판을 소심하게 드러낸 책이었다.
『화해를 위해서』에서 시도한 말걸기는 한국에서는 실패, 8년 후 다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집필하게 된다. 언론의 호의적인 반응에 안도했으나 이후 일본어판 출간과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교류에 대한 지원단체의 경계로 인한 고소고발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11년에 걸친 재판 기간 동안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게 되지만, 함께 화살을 맞고 막아준 이들이 있어 법정의 굴레를 벗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예정에 없었던 여러 권의 위안부 문제/법정 관련 책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뿌리와이파리, 2018),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뿌리와이파리, 2018),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뿌리와이파리, 2020), 『역사와 마주하기―한일 갈등, 대립에서 대화로』(뿌리와이파리, 2022)와 식민지 조선에서 살다가 패전 후 돌아간 일본인들에 대한 일본어판 책 『귀환문학론 서설―새로운 탈식민지화로』(2016),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조선인과 결혼해 조선으로 돌아온 ‘일본인처’에 대한 일본어 논문을 썼다. 문학과 역사와 사상 ‘사이’를 배회하다 보이는 것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작업이 제국주의와 냉전이 동아시아에 남긴 상처의 치유와 우애 모색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2년 정년퇴직 후엔 끝나지 않는 재판을 기다리며 가급적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지냈다. 민사재판이 종료된 2025년부터는 미국 중부 도시와 시골에서 기거하며 방랑생활을 했다. 접기

최근작 : <11년>,<제국의 위안부>,<역사와 마주하기> … 총 5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사태 11년,

“이 책은 그 시간을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2014년 6월, 책이 출간되고 열 달이 지난 시점에, 나눔의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의 이름으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민형사 고소고발,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다. 그로부터 10년, 11년의 길고 험난한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 민사 항소심의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훼손 없음’(승소) 판결과 ‘34곳 삭제 가처분, 취소’ 결정이 나왔다.
『제국의 위안부』는 결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 그럼 왜? 『제국의 위안부』와 지은이 박유하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체제와 냉전체제의 후유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냉전과 식민지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법정투쟁 11년의 기록이자, 2010~2020년대 한국사회론

이 책은 지은이가 『제국의 위안부』 ‘제3판 원본 복원판’과 함께 내놓는, 그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의 “그 시간을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지”를 돌아본 법정투쟁의 기록이다. 유력 정치인에서 학자까지, 언론에서 SNS 인플루언서와 일반 시민까지, 『제국의 위안부』와 지은이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끝도 없이 이어진 그 11년을, 법적 처벌의 중압감과 사회적 비난과 파면 압력에 더해 한때는 살해 협박에까지 시달리며 치렀던 총 여덟 개의 형사, 민사, 가처분신청 재판들을 분석하고, 재판부와 우리 사회를 향한 외침과 반론들을 모아 정리하면서 ‘지금’의 생각을 덧붙인, 특히 그 과정을 측면에서, 혹은 밑에서 지탱하고 지원해온 ‘진보’ 학자와 언론과 출판의 문제점을 비판한 2010~2020년대 한국사회론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2018년에 출간했던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의, 법정투쟁 11년 전체를 담은 전면개정판이다. 2015년 2월,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판…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가처분신청 ‘일부 인용’ 결정이 나오고, 지은이와 출판사는 그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하는수없이, 그러나 일제시대의 사상검열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결정에 대한 항의를 담아 삭제 가처분 부분을 OOOOO으로 표시한 ‘제2판, 34곳 삭제판’을 냈다. 형사 1심의 ‘무죄’ 판결(1월)은 ‘공소장 변경으로 인한 심판 대상의 변경으로 원심판결을 직권파기’한 형사 항소심에서 ‘유죄, 벌금 1000만 원’의 판결로 뒤집혔다.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한 지은이가 지식인들에 대한 반론을 모은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와 함께 낸 것이 위의 책이었다.
다행히, 다시 6년이 흘러 나온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문은 그 11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변인, 지원단체와 그 ‘진영’에서 짜고 퍼뜨린 “박유하가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했다”는 유의 프레임을 수긍하지 않았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점점 더 학문이 정치화(진영화)되고 역사가 사법화되는 걸까?

‘민주화’된 한국 사회는 이제 파시즘적 사상통제로 갈 것인가

개인의 기록이긴 하지만, 지은이는 이 책이 냉전 종식 후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다시 경직되어가는지, 그리고 ‘정의 구현’으로 간주된 폭력이 어떻게 사회 속에 침투되고 정당화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 트라우마와 냉전 트라우마가 있다. 실제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싸움이란, 고발자들이 프레임을 만들고 세간에서 이해한 것처럼 진보/좌파에 대한 이른바 ‘뉴라이트’의 싸움이 아니라, 2000년대 초에 일본에서 시작된 진보 지식인 간의 젠더와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 차이가 한국으로 확장된 사태였다.(서문, 8쪽)
11년 걸린 사법부의 판결조차 ‘그들’에겐 그저 분노와 불신의 대상이었다(반대로,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리고 지은이는 11년 전의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무너뜨린 재난이 파시즘적 사상통제의 첫걸음에 불과했다고, 이 책은 그런 심리와 행동의 배경을 기록하고 1차분석한 책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결국 『화해를 위해서』』에서 사람들이 자기 생각만을 ‘정의’로 간주했을 때 발현되는 ‘정의의 폭력’을 지적했던 20년 전보다 세상은 훨씬 나빠졌다. 그리고 지은이는 생각이 다른 상대를 너무나 함부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들 자신이 주장해온 인권이나 ‘타자’가 거기엔 더이상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고, 그 치닫음이, ‘똑같이 생각하라’는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그들 중 누구도 깨닫지 못했거나 외면했다고 말한다.
세상도 일상도, 예나 지금이나, 숨가쁘게 돌아간다. 그런 가운데, 이 11년 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까.

덧붙여,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며’ 버티고 싸워야 했던 11년에 대하여

어쩌면 이 책이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11년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지은이가 여덟 번의 재판을 겪으며 ‘한편 공포에 떨면서, 그래도 의연하게, 또, 또’ 「의견서」와 「답변서」를 쓰고 증거자료를 챙겨 제출하는 그 지리한 시간의 뒷면이기도 하다.
그 길고 답답한 세월의 전모는 ‘부록 1: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관련 일지’에 담겨 있다. ‘부록 2’에는 본문의 민사 항소심 답변서에 등장하는 ‘명예훼손 53곳’ 주장과 ‘삭제 가처분’의 34곳을 비교한 표가 실려 있다(이 책과 함께 출간되는 『제국의 위안부』 ‘제3판 원본 복원판’에는, 원고 측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고소고발과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에서 그 근거로 내놓은 ‘범죄 일람표’ 109곳-53곳, 그리고 가처분신청 재판부의 ‘일부 인용’으로 삭제된 34곳, 거기에 검사가 한 곳을 더한 35곳의 비교표가 실려 있다. 표 분량만 총 46쪽에 이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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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하 교수의 <11년 - 꽃다발과 화살>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정리해 드립니다.


요약: <11년 - 꽃다발과 화살>

박유하의 <11년 - 꽃다발과 화살>은 2013년 <제국의 위안부> 출간 이후 11년 동안 이어진 법적 투쟁과 사회적 논란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재판 기록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 학문의 자유,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를 전방위적으로 비판한다.

1. 법정 투쟁의 연대기

책의 전반부는 2013년부터 시작된 형사 및 민사 소송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저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1심 무죄, 2심 유죄, 그리고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의 심경을 담았다. 저자는 검찰의 기소와 사법부의 판단이 학문적 텍스트를 법적 잣대로 재단하려 했던 시도였음을 지적하며, 이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2. 제국의 위안부 그 이후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주장했던 핵심 논지, 즉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 지배’라는 구조적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 그는 당시 위안부들이 처했던 복합적인 위치성(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제국의 일원으로 동원된 존재)을 설명하려 했던 노력이 어떻게 ‘친일’이라는 프레임으로 왜곡되었는지 분석한다. 특히 지원단체와 일부 학계가 구축한 ‘소녀상’ 중심의 단일한 기억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과 한일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3. 한국 사회의 광기와 지식인의 역할

책은 저자를 향해 쏟아졌던 사회적 비난과 ‘화살’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집단적인 광기로 변질되어 소수 의견을 묵살하는지 고찰한다. 지식인 사회의 침묵과 동조를 비판하며, 학문의 자유가 정치적 올바름이나 민족적 감정보다 하위에 놓인 현실을 개탄한다. 동시에 저자에게 전달된 국내외의 지지와 ‘꽃다발’을 언급하며, 이 논쟁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평론: 기억의 독점과 학문의 경계

박유하의 신작 <11년 - 꽃다발과 화살>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지적 편협함에 던지는 뼈아픈 질문이다. 이 책은 한 학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투쟁기이자, 한국 민족주의가 구축한 성역에 대한 도전장이다.

1. 성역화된 기억에 대한 도발

위안부 문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민감한 ‘성역’ 중 하나다. 박유하는 이 성역을 지키는 ‘기억의 파수꾼’들이 어떻게 특정 서사만을 정답으로 강요하는지 폭로한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무결한 순교자로만 박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들의 삶이 가진 구체성과 복잡성을 지워버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통찰은 위안부 문제를 국가 간 정치적 도구로 소모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2. 법치주의와 학문의 자유

이 책이 기록한 11년의 세월은 한국 사법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법한 사건을 다룬다. 학문적 주장의 옳고 그름을 법정이 판결하려 했던 시도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무죄 판결이 단순히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권력이 학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방어선을 확인한 사건임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공고한 사회적 낙인은 한국 사회의 관용 지수가 얼마나 낮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3. 고립된 단독자의 윤리

박유하는 스스로를 ‘경계인’의 위치에 둔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복합적인 맥락을 읽어내려 했던 그의 시도는 양국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고립을 피하지 않는다. <11년 - 꽃다발과 화살>은 대중의 환호(꽃다발)보다 진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화살)을 감내하는 것이 지식인의 진정한 윤리임을 역설한다.

결론

이 책은 불편하다. 저자의 주장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문의 역할은 합의된 정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다. <11년 - 꽃다발과 화살>은 그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11년간 형벌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한 학자의 고독한 증언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 목소리를 견딜 수 있는지 묻는 거대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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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적 제목: “꽃다발과 화살” — 기억정치 11년의 자전적 기록과 한국 사회의 분열 구조>

<요약>

박유하의 『11년 – 꽃다발과 화살』(2025)은 2014년 『제국의 위안부』 출간 이후 저자가 겪은 법적·사회적 논쟁과 고립, 연대, 사유의 시간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이자 지적 보고서이다. 제목의 “꽃다발”은 지지와 연대를, “화살”은 고발·비난·형사소송을 상징한다. 이 책은 단순한 피해 호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억정치, 피해자 중심주의, 학문의 자유,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구조를 해부하려는 시도다.

책은 크게 세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제국의 위안부』 논쟁의 경과 정리다. 저자는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증언을 종합해 “식민지 지배와 전쟁 동원의 복합적 구조”를 드러내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표현이 피해자들의 상처를 자극했고, 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과 일부 활동가, 언론, 정치권은 이를 “피해자 부정” 혹은 “가해자 옹호”로 규정했다. 형사 고발과 민사 소송이 이어졌고, 저자는 장기간 재판을 겪었다.

둘째, ‘피해자 중심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존중하는 것과, 특정 피해자 단체의 해석을 절대화하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다양하고 때로 상충하며, 이를 복합적으로 읽어야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국가 정체성’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도덕적 정답만을 허용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분석한다.

셋째,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문제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가 학문적 해석을 형벌로 다루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우려한다. 법정은 결국 일부 표현에 대해 무죄 또는 취지상 무죄에 가까운 판단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이 겪은 심리적·사회적 비용은 막대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자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지지자들과의 만남, 해외 학계의 반응, 일본·미국에서의 토론 경험도 소개된다. 해외에서는 이 논쟁이 ‘기억과 민족주의의 충돌’ 사례로 읽혔으며, 학문적 자유 침해 문제로 주목받았다는 점도 강조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한 학자가 사회적 논쟁 속에서 어떻게 고립되고, 또 어떻게 다시 말하기를 선택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을 순교자로 그리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사례로 제시하려 한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2010년대 한국 사회의 ‘기억 정치’를 내부에서 증언한 1차 자료라는 점이다.  “피해자 절대주의와 구조적 기억”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첫째, 저자의 핵심 문제제기는 단순하다. 피해자 존중은 필요하지만, 피해자 담론이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증언 연구에서 다양한 기억의 층위를 인정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의 글은 피해자 운동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군사정권기 침묵, 국가의 방기,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을 충분히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구조 분석은 정교하지만, 도덕적 감수성의 언어가 상대적으로 건조하다. 이 간극이 ‘화살’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

둘째, 책은 한국 진보 민족주의 내부의 긴장을 드러낸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도덕적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해석은 곧 공동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저자는 이 구조를 “도덕적 단일성의 압력”으로 설명한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2010년대의 공론장은 흑백 논리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셋째, 학문의 자유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술적 저작을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표현이 부적절했다면 비판과 반론으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적 대응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문제제기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도덕적 금기’를 법으로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도 완전히 중립적이지는 않다.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운동 진영의 권력성을 강조하지만, 자신의 표현이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 구체적 장면에 대해서는 비교적 짧게 다룬다. 독자에 따라서는 자기성찰이 충분치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 – 꽃다발과 화살』은 한국 현대사의 기억 전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텍스트다. 특히 세진님이 고민해온 “소녀상 중심 기억을 넘어 구조적 기억으로”라는 문제의식과 직접 맞닿아 있다. 이 책은 피해자 서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서사가 국가 정체성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를 묻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묻는 기록이다. 꽃다발과 화살은 동시에 존재한다. 문제는 화살을 던지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화살이 날아올 때도 토론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다.

이 책은 그 가능성을 시험한 11년의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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