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리내 / 맘의 여유..
2009. 9. 10.
https://blog.naver.com/mlnkim/20088663890
요새 즐겨찾기에 등록해두고 짬짬이 약간은 의식적으로 ^^ 들어가고 있는 사이트에서 한 친구(?)의 블로그가 눈에 띄었다.
한대련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는 어떤 문제제기를 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성큼 들어가 쭈욱 읽어보며 공감하기도 했지만,
그가 문제제기하는 부분에 대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또한 존재했다.
학생운동...
풍부한 토론과 논쟁과 다양한 실험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무한히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기대하지만,
그만큼이나 그 운동의 영역 안에 있는 친구들과의 소통되지 않는 단절과
그들이 공고히 쌓아놓은 벽같은 걸 마주하며..
안타까움과 답답함도 함께 느끼게 되는 영역이다!!
(한 번은 학생운동의 동시대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기를 거쳐왔던 선배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넌 아직도 학생운동에 기대를 갖고 있니?" 라는 질문에
그냥 욱~해서는 기대를 가져야 하는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학생운동의 영역에 지금 있는 친구들에 대한 비판앞에
과연 선배와 난, 자유로울수 있는거냐고
학생운동이 저리 붕괴되는 과정에 선배도, 나도 한 몫씩 했던거 아니냐고
술 김에 마구 마구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선배는 얼마나 당황했을꼬.. ^^;)
그리곤 그 친구가 소개한 책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본문의 내용..
1998년..10여년전에 쓰여진 책이라는데 당장 어제 쓰여진 글과 같더군.. 흠..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성찰과 전망> 본문에서
글쓴이 : 이재원, 장석준, 이가진, 이철승, 태재준, 임재문, 현희경, 한성근
지나간 역사의 잊혀진 소실점이 지금 우리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구나 백지 상태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내세울 수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말의 세계가 있고 누구든 그것에 의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열 받은 목소리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의지할 말의 세계가 너무나 낯설게 다가온다.
운동은 자신만의 제도 공간을 창출해 새로운 운동 참여자들에게 끊임없이 대안적 자격 부여의 뿌듯함을 경험하게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운동에 참여한 선진 인자들에게도 계속해서 그런 뿌듯함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 운동 주체들은 문제를 언제나 학생회 패러다임의 연장선에서 대응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해왔다. NL노선의 경우가 역시 대표적이다. 학생 대중들에 대한 정서적이고 이해중심적인 접근과 활동가들의 과잉 정치주의의 이분법적 세계는 신세대 현상에 대한 최악의 접근의 가능성을 그대로 실현시켰다.
끊임없이 자기가 기초해야 하는 혹은 운동 전체가 기초해야 하는 대중적인 힘과 능력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지금 현재적으로 드러난 대중들의 모습 속에서 대중적인 의지는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과 접속할 수 있는 지대는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등등에 예민하게 신경과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런 것들을 포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부터 손을 놓으면, 바로 그 때부터 우리는 또 다른 지배체제로 휩쓸려 들어가, 또 다시 지배체제의 도구가 되거나 기계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스탈린이란 이름으로 불릴 때 ‘사회주의 체제’가 우리에게 빈번히 상기시켜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맑스는 끊임없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를 통해서 삶 자체를 바꿔야 하며, 삶을 사는 인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의 현실 안에서 지배적인 삶의 방식, 지배적인 생산 방식, 지배적인 권력과 힘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러한 삶의 지대나 삶의 영역, 혹은 삶의 방식들을 만들려고 해왔던 모든 운동을 전부 꼬뮌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코뮌주의는, 마치 코민주의 조직이 그렇듯이, 사회주의가 오는 먼 훗날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본주의 안에 상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것이 있음으로써만, 아니 그것이 있기 때문에 역사로서 혁명 내지 사회주의라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코민주의가 현존하는 지배체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삶의 영역들을 만들려고 하는 이행 운동 그 자체인 한, 이제는 그런 이행을 위한 모든 노력을 통해서, 그런 이행 자체를 통해서 꼬민주의를 정의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거죠. 저는 근본적인 변혁운동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차라리 거창하게 싸움을 벌려 나아갈 때는 쉬워요. 왜냐하면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기존의 판 안에서 수를 놓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알을 놓아야 할 판, 장기판의 격자 자체가 바뀌어버리면 놓는 방법부터 아예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죠.
(…)
운동이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격자, 이론적인 개념 역시 그 위에서 진행되어야 할 그 격자는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욕망과 능력이 분포되는 배치를 의미합니다. 격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이 움직이고, 우리가 이전에 주목했던 지대와 전혀 다른 지대에 대중들의 힘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변화된 격자 위에서 운동을 하고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동하려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
말로만 민주주의다, 대중들을 대변한다고 할 게 아니라, 정말로 허심탄회하게 대중이 새로 그린 격자를 포착하면서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 자신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 우리는 거기에다가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겁니다.
->완전 공감하면서 봤던 부분!!
특히나 작년 촛불의 100일간의 경험 이후..
나의 화두는 "전환" 이었더랬다.
촛불의 기억..
그것은 하루 하루 놀라움이며, 가능성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 나에게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우리가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쥐고 있는 그 순간에 ..
우리의 것을 제대로 비우고 다시 채워가지 않는 순간!!
(비움이라는 것이 그 전에 것들에 대한 완전한 부정은 아니다. )
이미 우리는, 그리고 나는 버림받을 수 있겠구나.
대중들의 마음 한자락도 움직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들과
거기에서 오던 두려움!!
촛불이 지나고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는 주사위를 던졌을까?!
과연 나는.. 흠..
파헤쳐 진 땅에 흙을 퍼다 붓는 작업이 눈에 보이겠어요? 그러나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운동이 설 땅은 점점 침식되고, 결국에는 모두 다 와해되어 버릴 지도 몰라요.
->
우리는 땅이 파헤쳐지고 있다는 것 조차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땅만큼은 매우 유기질이 풍부한 비옥한 땅이라고,
절대 침식될리도, 썩을 일도, 와해되어 버릴 일도 없을꺼라..
그렇게 스스로 믿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통해서 스스로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고, 기존의 상투화되고 도식화된 사유의 이미지들과 틀을 깨며 새로운 사유의 방식들을 모색하고, 새로운 지점에서 사물을 보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운동 자체와 그 운동과 관계된 조직의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 등을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때로는 기존에 운동의 영역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영역을 다시 한 번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예전에는 운동 조직과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문제들에 새롭게 착목하는 것이겠죠.
->
"새롭다" 라는 단어가 길~지만 하나의 문장에 무려 3번이나 나온다.
새로움.. 새로움..새로움...
기존의 것들에서 느껴지는 평안함과 안정감/
새로운 것들 앞에 놓였을 때의 그 긴장감과 두려움..막연함.
그것들에 사로잡혀..우리 .. 새로움.. 그 새로움 자체에서
오는 가능성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였는지..
운동하는 이들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옳게 변화해야 할 방향 - 곧 진보의 방향 - 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진보의 방향을 세우기 위해 민족해방이론, 민중민주이론 등 숱한 이론들이 나왔었고 교조적으로 또는 경직되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후배들이 80년대의 선배들에게서 건질 것이 있다면 학우들과 민중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고, 인간의 존엄성을 사랑하고자 했던 정신, 치열한 모색과 실천의 정신이지, 형해화 되고 박제화 된 무슨 무슨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묻고 싶다. 운동권이란 무엇인가? 운동권이란 시대의 진보적 방향을 체계화한 철학과 이론을 갖고 자신의 변화로부터 주위 사람의 변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아닌가?
-> 운동권..
예전에 운동권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할 때가 있었는데..
왜 내가 ~~권으로 불리워야 하냐고..
왜 나 스스로 날 그렇게 다른 이들과 구별지어야 하는거냐고..
운동권이란 단어 자체의 문제가
이 부분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은 아니겠지만..
여튼 난 운동권이라는 단어 자체는 여전히 불편하다.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부를 때도 많지만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묻고 싶다.
운동권이 아니라
운동을 해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과연 당신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운동은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 운동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당신의 삶을 쥐고 흔들고 있느냐고.. ^^;
그러나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마치 모든 문제가 한총련 후배들에게 있는 양 돌리는 데에는 반대한다. 정말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전대협 시절에도 그런 문제 - 과거의 이념, 이론 체계의 교조성에 얽매였던 것 - 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만 항상 대중 중심의 가치관을 견지하고자 했던 전대협의 정신이 나름대로 그런 이념과 이론의 경직성을 견제해왔던 것이다.
“애비 없이 태어난 자식은 없다.” 그것은 우리 전대협 선배들이 후배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에게 비판의 칼날을 던지고자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선배, 후배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난 10년의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역사적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기 위한 전진적 평가의 한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총련! 그 이름만으로 설레었던 때를 경험한 나!
나 또한 이 저자의 말 처럼
지금의 학생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후배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지금 내가 있는 이 곳과 이 속에 자리한
자칭, 타칭 운동가라고 불리워지는 이들에게 오래된 습관과의 결별!
그리고 복잡하지만 절대 회피해서는 안될 반성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정리되지 않은, 하지만 의미있는 생각들이 들게 하는 책이라..
혹 ~~했는데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흠..안타까울 뿐이다..
[출처]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작성자 미리내
isthereanything옵션 열기지금의 학생운동은 살아있는 화석과 같습니다. 그것에 대한 비판도 이미 화석이 되었습니다. 조금 주제넘게 이야기하자면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은 그냥 과거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는 정도로 읽고 넘겨야 할 책인것 같습니다. 멋있는 수사법들 뒤에 정말 알맹이가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글 중에 3년 이상 지난 것들은 보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되는군요.
2009.9.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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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블로그주인직접 읽어보았더라면.. 그 비판이 화석인지 아닌지..
제 나름의 판단도 해보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님의 마지막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일께요.^^
2009.9.11. 09:42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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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옵션 열기맞아요. 그 책은 수사법이 너무 현란함. 신기한건 10년전 고민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래도 나름 현실운동 고민하면서 읽다보니 뭔가 대안을 찾은 것도 같다는^^^;
2009.9.1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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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블로그주인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찾아내고자 하는 책을 읽는 이의 노력이 더 중요한 거같은데 (알맹이가 없는 책도 많이 있지만요.. ^^;) 뭔가 대안을 찾으신것 같다니..기대되는 걸요. ㅋ
2009.9.11. 09:48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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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작성자 미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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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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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이재원의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90년대 학생운동의 성찰과 전망>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1990년대라는 격동의 전환기를 학생운동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분석한 텍스트인 만큼, 그 시대적 고민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요약과 평론
1. 요약: 90년대 학생운동의 내면적 풍경과 균열
이재원의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은 1980년대의 찬란한 유산과 1990년대라는 낯선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학생운동의 궤적을 추적한다. 저자는 단순히 외부의 탄압이나 정치적 지형 변화를 탓하기보다, 운동권 내부의 문화, 관성,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오래된 습관>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80년대적 관성의 지속과 위기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은 거대한 승리감 속에 90년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독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80년대의 승리 공식이었던 군사독재 타도라는 단일 목표와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민주화 이후의 다원화된 사회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권은 여전히 총노선과 정파 논리에 함몰되어 있었으며, 대중의 일상과 괴리된 거대 담론에만 집착했다.
일상의 정치와 문화적 충돌
90년대 학번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학생들은 권위주의적 집단주의보다 개인의 취향, 일상의 소소한 재미, 그리고 문화적 감수성을 중시했다. 저자는 운동권이 이러한 <신인류>의 등장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학생운동은 신세대를 조직화의 대상으로만 보았을 뿐, 그들의 감수성을 운동의 동력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운동권 내부의 가부장적 질서와 도덕주의는 젊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꼰대 문화>로 비춰지며 소외를 자초했다.
한총련 사태와 도덕적 파산
저자는 1996년 연세대 사태와 1997년 한총련 출범 과정에서의 폭력 사태 등을 언급하며, 학생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아프게 복기한다.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던 이들이 대중으로부터 고립되고, 폐쇄적인 정파 투쟁에 매몰되면서 운동은 사회적 설득력을 잃어갔다. 저자는 이것을 단순한 전술적 실패가 아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사유의 게으름>으로 규정한다.
2. 평론: 과거의 유령과 싸우는 미완의 성찰
이 책은 90년대 학생운동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가장 처절하게 해부한 고백록이자 분석서다. 저자의 논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시민사회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성찰의 깊이: 내부를 향한 서슬 퍼런 칼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비판의 화살을 외부(정권이나 자본)가 아닌 내부로 돌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학생운동이 지녔던 <도덕적 우월주의>가 어떻게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오래된 습관>이 역설적으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붙잡았다는 진단은, 모든 조직이 경계해야 할 조직적 타성에 대한 보편적인 경고로 읽힌다.
시대적 한계와 비전의 부재
하지만 평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반성>에는 탁월하나 <전망>에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운동의 모습은 구체적인 대안이라기보다 당위적인 성찰에 가깝다. 90년대 학생운동이 왜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는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보다는 문화론적 비평에 치중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늘날에 던지는 메시지: 정체성의 정치와 보편성
세진님께서 세계 시민으로서 여러 나라를 거치며 형성하신 시각에서 볼 때, 이 책이 다루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집단적 애국심>은 다소 기이하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이러한 닫힌 공동체 의식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설정한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특정 세대가 겪었던 집단적 트라우마와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던 편협한 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다.
결론적으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장례 보고서이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지침서다. 진보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때 어떻게 수구화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의 정치 지형을 이해하는 데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세진님, 이 요약과 평론이 해당 도서를 파악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 책의 특정 챕터나 당시의 구체적인 학생운동 정파(NL/PD 등) 간의 갈등 양상에 대해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신가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다음 단계로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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