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의도가 좋으면 좋은 결과가 보장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좋은 뜻으로 추진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간디선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것이 현실에 있어서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일이란 좋은 뜻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뜻으로 하는 적선이 오히려 거지생활을 영구히 연장시키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선의조차도 경계한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샬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선의는 말 그대로 좋은 의도 혹은 좋은 뜻(good intention)이다. 좋은 마음으로 어려운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의도이다.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도움을 주고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면서, 경제의 작동원리를 잘 알지 못한 채 명분만 내세우면서 베푸는 선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베푸는 자에게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곤 한다. 이쯤 되면 선의는 더 이상 선의일수 없고 고의나 악의로 변질되고 만다. 특히 이것이 정부나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포퓰리즘과 결합되면 최악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선의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근 정부정책을 보면 생활형편이 어려운 서민을 위한다는 선의로 포장된 정책들이 너무 많이 남발되고 있다. 여기에는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및 분양원가공개제, 이자제한법, 최저임금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규제,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리고 세상의 작동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서 명분만 내세우는 선의로 포장된 정책으로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민과 경제적 약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아파트 분양가상한제는 기본적으로 가격규제이다. 분양가를 규제하려다보니 분양원가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된다는 것이다. 가격은 경제학 원리에서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신호의 역할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균형 수급 량을 결정한다. 가격을 규제하면 이러한 신호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급이 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가격은 더 상승하게 되고 결국 서민들을 위한다는 좋은 뜻에서 내어 놓은 정책이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과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의 작동원리를 생각하지 않고 선의만을 내세운 정책의 에누리 없는 분명한 한 결과이다.

이자제한법은 악덕고리사채업자로부터 서민들과 경제적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좋은 뜻에서 미등록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금리를 연 40%로 제한했다. 그러나 등록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이자상한은 현행대로 연 66%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어떤 사람들이 고리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사채시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선의로만 포장된 재미있는 정책조치의 전형이다. 사채시장에서 미등록 대부업체로 급전을 빌려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미 신용파산자이거나 신용도가 너무 낮아 제도은행권이나 등록대부업체로부터 차입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연 66%로도 급전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등록 대부업체로부터 연 40%로 자금을 빌릴 수 있겠는가? 더욱이 40%이상을 초과한 이자지급분에 대해 무슨 수로 반환청구를 할 수 있겠는가?

미등록 대부업자 입장에서 보면 등록 대부업자로부터 급전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용위험이 높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매기지 못하면 당연히 자금을 공급을 하지 않든가 아니면 더 강력한 이면 약정으로 자금을 빌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자제한법은 서민과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좋은 뜻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들로부터 피눈물을 짜내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차관은 정례브리핑에서 “고용감소와 경기양극화, 내수부진 등으로 서민층의 경제력이 약화돼 불법사채업자들을 찾는 사례가 늘어났고, 절대 서민층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위험, 고금리 대출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자제한법의 좋은(?)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그야 말로 얼마나 구구절절 서민을 생각하는 좋은 뜻이 담겨 있는가? 감격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서민층의 경제력이 약화되었으면 고용을 늘리고 경제양극화를 완화하고 내수를 진작하는 노력 등을 통해 서민층의 소득을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지 싼 이자로 돈을 빌리기 쉽게 하기 위해 최고이자율을 규제하게 되면 오히려 급전도 빌리지 못하게 되거나 돈을 빌릴 수 있다하더라도 빚만 늘게 되는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뻔한 것이 아닌가?

최고이자율 수준을 규제해서 서민들에게 부담을 덜어 주고자 하는 좋은 의도가 사채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서민들에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자를 제한하기보다 신용이 낮은 개인도 제도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고쳐 아파트 경비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올해는 일반근로자 최저임금(시급 3480원)의 70%를 적용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적용비율을 10%씩 올리기로 했다.

최저임금제는 저임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는 막상 보호하려는 최하층 미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 자체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임금을 올려주려다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빼앗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의 임금을 올려줘야 하자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부담을 이유로 아예 경비원을 해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가 서민보호라는 좋은 뜻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다보면 오히려 서민들이 더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좋은 예이다. 좋은 뜻으로 약자인 서민을 위한 정책을 입안한다고 하면서 과연 정부 관계자는 실상과 부작용의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했는가? 좋은 뜻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규제도 그렇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영세자영업자의 가맹점 수수료가 대형업체에 비해 크게 높아 이를 규제해야 한다면서 여신전문금융법을 개정해 신용카드가맹점 수수료의 최고 율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영세자영업자들이 신용카드사로부터 착취당하는 것을 보호하겠다는 좋은 뜻이지만 오히려 영세자영업자들에게 고통만 주게 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수수료가 높은 이유는 판매단가가 소액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신용카드사에는 사용금액과는 관계없이 거래승인비용 등 일정한 고정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영세사업자들의 가맹점 수수료는 건당 결제금액이 큰 대형업체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수수료 최고 율을 규제하면 신용카드 사는 영세자영업자와의 가맹점 계약에서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게 되므로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세자영업자들은 현금거래 전환, 매상액 감소, 신용카드거래에 따른 세제혜택 포기 등 이전에 비해 오히려 크게 불리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기간 5년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12%로 동결했다. 그러나 결과는 5년치 임대료가 한꺼번에 올라 영세상인들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상인들은 장사를 할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및 분양원가공개제, 최저임금제,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규제 등 어느 것이든 정확한 개념과 작동원리도 잘 모르면서, 서민을 위하고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가격규제에만 매달리면 결국 어려운 서민들만 더 어려워져 골탕 먹게 된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설사 경제원리를 잘 모르고 서민들을 위해 좋은 뜻으로 입법을 해서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하더라도 모르고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몰랐다고 해서 반드시 선의로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선의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너무 나쁘면 애당초 선의로 시작하지 않음만 못하고 그 선의도 의심받아 마땅하다. 비록 선의로 시작되었다고 해서 고의와 악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정치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을 다루는 관료는 또 어떠한가? 전문가인 관료도 선의를 내세워 정책을 추진했다가 정반대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 몰랐다고만 할 것인가? 이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처사이다. 어느 관료가 알고도 그런 짓을 했다면 불행하게도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처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손대대로 도고 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수치임에 틀림없다.(200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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