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남북한 | 카테고리 없음
이재봉 2022. 2. 28. 15:29http://blog.daum.net/pbpm21/596
우크라이나에서 기어이 전쟁이 터졌다. 언론과 SNS에서 다루지 않는 전쟁의 근본 원인 하나 밝힌다. 원인과 배경이 복합적인데 ‘근본’ 원인의 ‘하나’임을 강조하며, 여기서 교훈을 찾고 싶다.
1991년 말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1992년 초 새로운 안보전략을 짰다. 세계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지역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부터 막겠다는 내용이었다. 유럽의 독일과 러시아, 아시아의 일본과 인도 등을 견제 대상국으로 꼽았다. 비밀문서를 <뉴욕타임즈>에 슬쩍 흘린 것이었는데, 당시 내 미국인 지도교수는 제1 봉쇄 상대 중국을 일부러 빠뜨려 알린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해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고 마샬 플랜을 마련했다. 국가안보법을 제정하고 국가안보위원회 (NSC)와 중앙정보국 (CIA) 등을 설치했다. 1947년 서울에서 열리던 미소공동위원회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한반도문제를 유엔에 떠넘긴 것도 유럽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1949년엔 서유럽과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를 만들었다.
1991년 ‘악의 제국 (Evil Empire)’ 소련이 해체되고, 나토에 맞서 1955년 들어선 바르샤바 조약기구 (WTO)가 와해됐다. 나토의 존재이유가 없어져버린 것 같았지만, 미국은 나토를 그대로 유지했다. 첫째, 통일을 이루고 힘을 키워 언젠가 미국과 경쟁할지 모를 독일 중심의 유럽 독자적 안보체제 등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둘째, 소련을 이어 옛 영광을 되찾고자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서유럽 중심 나토를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동유럽까지 확장하며 러시아 봉쇄를 강화했다. 소련의 동맹이었던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을 1999년 나토 회원국으로 만든 것이다. 나아가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러시아가 가만있을 수 있을까.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거나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한 건 확실하다. 1962년 소련이 미국의 턱밑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은 전쟁불사를 외치지 않았던가.
이제 북한은 핵무기에 더 집착할 것 같다. 리비아가 ‘미국의 보상’ 약속에 핵무기 개발 포기한 뒤 지도자 카다피가 2011년 처참하게 죽는 걸 보고 몇 번 공언해온 터다. 그에 앞서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핑계로 2003년 미국의 침략을 받아 지도자 후세인이 2006년 죽는 꼴을 보았다. 이젠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러시아의 회유와 압력에 수많은 핵무기를 내주고 침공당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과 북한이 언제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남한엔 군사동맹에 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군사동맹은 안보를 위한 건데, 군사동맹 때문에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러시아 봉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가지 원인이듯, 미국의 중국 봉쇄는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최대 해외미군기지가 중국 근처 남한에 있는 터에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면 남한이 무사할 수 없는 게 뻔하다.
남한은 미국과의 군사동맹 때문에 1960년대 온 세계가 반대하는 베트남전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2003년엔 유엔 포함 국제사회가 비난하는 이라크 침략전쟁에도 군대를 보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서 한미군사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을 자극하기보다 균형과 중립으로 나아가야 전쟁에 휩싸일 가능성을 줄이는 진짜 안보 아닐까. 여기서 ‘중립’이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 등 비군사적 분야에서는 모든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되, 특정 국가와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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