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생활] 박유하의 <역사와 마주하기 - 한일 갈등, 대립에서 대화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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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책소개 만을 읽고 서평을 비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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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온라인 대형서점의 온라인 책소개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자세하여, 출판사 재공의 책소개와 목차를 자세히 일기만 해도 책에 대해 꽤 자세히 알게된다. 박유하 교수의 새책 <역사와 마주하기>에 대한 알라딘 독자 리뷰가 좋다기에 읽어보니, 출판사 제공의 책소개만 읽은 나에게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 책소개에 의하면 현재 한일관계의 최대문제는 징용문제나 위안부문제란 소위 역사의 <사유화>와 <정치화>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적 주장이다. 역사의 <사유화>란 한편으로는 "지난 30년간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는 한일 양국의 역사논의를 이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법’적 해결만을 요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핵심관계자들(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묘한 이중구조>를 말한다.
- 역사의 <정치화>는 과거 한일관계에 대한 해석에 실상은 한국내부에서도 좌우대립으로 있는데,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는 우경화 증거로 간주되어 ‘정치적’으로 비난·적대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상태이다. 위안부-징용문제에 대한 다른 의견을 <친일파>로 비판하는 프레임의 정치성 을 말한다.
- 이번 책에서는 저자가 위안부-징용 문제의 해석에 있어서 과거에 때때로 지적한 북한의 (해석)의 역할 (영향력)이 다시 강조된다.
- <역사와 마주하기>란 한편으로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운동자 중심>에서 벗어나서 (말만이 아닌, 새로운)<피해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 좋다고 하는 밑의 서평을 통해서는 이 책이 중요 주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아직 전자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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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마주하기 - 한일 갈등, 대립에서 대화로
박유하 (지은이)
뿌리와이파리2022-08-31
책소개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다. 저자 박유하는 ‘위안부’가 아닌 ‘위안부 운동’을 비판하며 쓴 『제국의 위안부』로 소송을 겪으며,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모색으로 새롭게 이 책을 썼다.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본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인터넷판에 ‘화해를 위해서 2021’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하여 출간한 일본어판 『歴史と向き合う: 日韓問題—対立から対話へ』(2022년 7월 11일)를 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2014년 6월부터 ‘제국의 위안부 소송’으로 한 권의 책을 법정에 가둔, 그리고 비난 혹은 침묵으로 그 상황에 가담해온 이들에 대한 반론과 비판은 이미 세 권의 책을 통해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가 꼬이게 된 원인 자체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_30년을 넘어서
일본어판 서문_나아가기 위해 돌아보기
제1장 | 냉전 붕괴와 한일관계
1. ‘책임 회피 일본’이라는 인식
‘학문의 정치화’ /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갈등 / 한일 대립인가, 좌우 대립인가
2. ‘팩트’는 변한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엇갈린 논의’ / 해석 싸움으로서의 역사인식
3. 한일기본조약을 둘러싼 한일인식의 엇갈림
마주본 지 이제 30년 / ‘청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식민지시대’라는 인식
4. ‘역사의 사법화’와 징용 피해자
과거를 둘러싼 양분된 해석 / 수명을 다한 ‘법’지상주의
제2장 | 징용 문제
1. 조선인 징용이란 무엇인가
한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징용 문제 / 동원 주체는 일본 ‘국가’ / ‘신민’의 자격, 가족과의 이별 / 계급동원이기도 한 조선인 징용
2. 한일 양쪽에서 잊혀진 몸과 마음의 ‘감옥’
탄광노동의 의미 / 폭력과 질병과 죽음이 일상화된 공간 / “우물에 갇힌 고기” / 징용이 잃게 만든 것 / 세계문화유산과 기억의 방식
3. 징용 판결과 ‘한일병합불법론’
식민지배 ‘위자료’로서의 배상금 / 한일협정과 개인청구권 처리 / 개인청구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생각
4. 과거청산과 전체주의
과거청산으로서의 개인청구권 / ‘화해금’을 둘러싼 또 하나의 해석 / ‘법지상주의’와 ‘전체주의’
5. 징용을 둘러싼 한국 내부의 대립
차별은 없었나 / 소송지원자들의 해결방식의 모순
6. 1960년대의 사고와 ‘법’을 넘어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다시 묻기 / 징용 문제를 둘러싼 10여 년 전 한일 협력과 망각 / 가치관과 기억계승으로서의 해결 / 기억을 둘러싼 보상방식 / 사법을 넘어서
제3장 | 위안부 문제
1.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근본적 오해
‘국가면제’를 이유로 한 재판 회피는 옳았나 /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을 계승한 위안부 문제 소송 판결 / “체계적 강간”으로 이해된 위안부 문제
2. 판결문의 논리와 오해
‘교전국’으로 간주된 조선 / 판결문과 정부 신고서 간의 차이 / 다시, 올바른 이해를 향해
3.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오해의 시작
‘역사의 사법화’ / 은폐된 존재—일본인 위안부와 북한 / 군속으로서의 기억과 망각 / 무시된 업자
4. 누구를 위한 운동인가
‘피해자’가 된 정의연 전 대표 / 기존 연구인식을 답습한 재판부 / 학자들의 문제적 인식
5.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대변자 중심주의로
한일합의 반대운동과 지원단체의 성장 / 한일합의의 본질을 가린 위안부인식과 운동인식 / 대등하지 못한 한일 운동구조 / 기만 속의 운동—교전국인가 식민지인가
6. 냉전체제와 위안부 문제
북한과의 연대 / ‘체계적’인 ‘집단공격’과 인도에 반한 죄 / 르완다와 유고의 집단강간과 동일시된 위안부 문제 / ‘민족말살’로 이해된 위안부 문제 / 냉전체제의 후유증
7. 혼란의 시대
‘불법’ ‘배상’인식과 냉전 마인드 / 포스트 냉전시대의 위안부 문제 / 불충분했던 식민지 이해 / 지체됐던 위안부 연구
8. 30년 갈등 역사와 마주하기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던 연구 / 책임으로서의 해결
제4장 | 한일병합·한일협정
1. 역사 문제와 한일병합불법론의 관계
위안부 문제와 한일병합불법론의 등장 / 현재적 필요성과 ‘학문’의 등장 / 법률가들의 역할과 위안부 문제 / 한일병합불법론의 타당성 / ‘대화’ 아닌 ‘일방적’ 비난의 결과 / 타자와 마주하기
2. ‘배상’ 수단화한 역사를 제자리로
조선에 대한 지배력 강화 / 신화의 역사화/욕망의 정당화 / “개량”이라는 이름의 지배 / 식민지화와 마주하기
3. 한일협정을 다시 본다
청구권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의 생각 / ‘문명화’의 조건 / 한일협정을 넘어선 전후 일본의 조치 / 한일협정을 넘어선 현대 일본의 조치 / 책임이란 무엇인가 / 한일협정을 만든 것들
4. 한국은 ‘반공’ 방파제인가
한일회담과 한국 측 안보인식 / 한일회담과 일본 측 안보인식 / 지배욕망과 공포/긍지와 열패감 / 잊혀진 사람들과 마주하기
제5장 |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1. 한일 갈등의 요인
구조와 저항 시도 / 제국주의적 온정주의의 함정 / 민주화투쟁 이후의 대일인식 변천 / 취사선택되는 기억들 / 좌파민족주의의 선두에 섰던 한국 페미니즘
2. 다시 보는 30년
새로운 기억정착을 위해 / 역사 뒤의 ‘마음’들 / 포스트포스트 냉전시대를 향해 / 깊은 이해/정확한 비판
3. 평화를 위해서
증오와 민족주의 / 국가로서의 ‘민중’, ‘국민’ / 아시아의 평화는 아시아가 / 새로운 ‘피해자 중심주의’를 향해
저자 후기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 관련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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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현재’를 위해 ‘역사’가 동원되는 닫힌 공간에서
다시 상생의 길을 묻다!
1910년 한일병합과 1965년 한일협정에서 최근 30년의 ‘역사의 사법화’ 사태까지,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 진영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마주하기 위한 첫걸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30년 전으로 돌아가 고찰하다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다. 저자 박유하는 ‘위안부’가 아닌 ‘위안부 운동’을 비판하며 쓴 『제국의 위안부』로 소송을 겪으며,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모색으로 새롭게 이 책을 썼다.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본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인터넷판에 ‘화해를 위해서 2021’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하여 출간한 일본어판 『歴史と向き合う: 日韓問題—対立から対話へ』(2022년 7월 11일)를 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2014년 6월부터 ‘제국의 위안부 소송’으로 한 권의 책을 법정에 가둔, 그리고 비난 혹은 침묵으로 그 상황에 가담해온 이들에 대한 반론과 비판은 이미 세 권의 책을 통해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가 꼬이게 된 원인 자체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위안부 문제가 꼬인 원인을 찾기 위해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최근 30년의 운동과 연구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위안부 문제와 함께 몇 년 전부터 또 하나의 대립을 낳고 있는 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루면서, 이들 문제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의 배후에 있는 1910년의 한일병합과 1965년의 한일협정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이들 문제들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정립할 수도, 합의점을 찾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30년간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는 한일 양국의 역사논의를 이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법’적 해결만을 요구하는 ‘역사의 사법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핵심관계자들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고, 그저 사법부의 판결만 온 국민이 바라보는 기묘한 이중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 현 상황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정황을 확인하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작금의 갈등이 어디에서 기인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간다.
동시에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왜 일본인들이 징용 피해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당시의 자료를 사용해 설파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가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문제임을 지적하는 저자의 문제제기는 일본에서도 귀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미지와 역사 뒤의 ‘마음’들
‘과거사에 대해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이라는 이미지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냉전시대 후유증이 낳은, 1990년대 이후 생산되고 전파된 새로운 일본관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30년 역사담론은 주로 진보진영이 맡아왔는데, 주로 전후 및 현대 일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위안부 문제의 경우 운동이 앞섰을 뿐 연구는 오랫동안 척박했던 점 등이 이런 정황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처음부터 정치화해버린 것이 초기의 인식 틀을 유지시켰다. 그에 더해 단어의 정의를 둘러싼 ‘비틀기’나 확장이 그런 시도를 뒷받침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는 우경화 증거로 간주되어 ‘정치적’으로 비난·적대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좌우 대립’의 양상은 징용 판결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8년의 징용 판결은 1990년대에 본격화된 ‘한일병합불법론’이나 ‘한일협정불충분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후 징용 문제를 둘러싼 2021년의 판결에서 이와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과거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한국 내부에서도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한일 문제가 실상은 좌우 대립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한일 양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지고 배제되었던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재소환한다. 민족 아이덴티티의 신앙에 사로잡혀 누구든 마땅히 소중히 취급되어야 할 개인의 의지가 국가에 의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무시해온 것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크게 제한시켰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른바 ‘운동의 세계적 성공’의 이면에 북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너무 끔찍”하고 “너무 눈에 띄게 다른 증언”이라 “북한 정부의 역사인식을 대신 말한 건 아닌가 하고 우려”(일본인 지원자)되기도 한 정황이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적 ‘상식’의 적지 않은 부분이 북한발 이해였거나, 한국 학계 일부 연구자들이 학계 내부 담론과 언론/대중을 향한 정보제공 내용을 달리했던 과정이 만든 결과임을 밝힌다, 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역사의 사유화’를 넘어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그럼에도 그런 ‘상식’이 한국사회에 정착되었고, 위안부 문제나 징용 피해자 문제 등 역사인식운동의 중심에서 관여해온 이들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역사수정주의자’ ‘반역사적’이라면서 비난해온 것이 지난 세월이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 자신의 생각은 대중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되고 대변자들의 인식이 피해자 자신의 인식인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면서 ‘역사의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정치적 목적 혹은 개인적 이상 혹은 냉전 후유증으로서의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결과이기도 했다.
『역사와 마주하기』는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이는 위안부 문제나 징용 문제를 지원하는 한국 내 활동가와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원 관련 학자나 변호인들에 대한 비판적 제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와 달리 징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일본에 대해 비판과 설득을 통해 역사와 마주하기를 모색한 이 책은, 일본에서 “당시 피해자들이 느끼고 있던 ‘부당함’”에 대해 공감하며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는 시민과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일 양국 정부의 갈등에 그치지 않고 양국 국민의 감정대립으로까지 치닫는 현 상황에서 경청할 만한 목소리라 할 것이다.
역사에 잘못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잘못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비판이란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한 것일 뿐, ‘바람직한 과거’를 다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선택 등이 초래한 굴욕도 긍지도 함께 받아들여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다. 저자는 불신을 심는 언어들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의 이익이나 ‘상식’,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아시아의 평화를 아시아 사람들이 만들어낼 때 비로소 차세대에 평화를 건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그 첫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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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공적 기억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발턴의 진정한 목소리 듣기
『제국의 위안부』이후로 박유하의 저서를 죽 따라 읽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점이 있다. 한국에서 박유하만큼 오독되어지는 저자가 또 있을까? 라는 것. 저자는 1)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부정한 적도 없고, 2) 위안부를 매춘부라고만 매도하지도 않았으며, (저자는 매춘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갖는 것 또한 문제 삼는다), 3)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험을 고통스럽지 않은 것으로 얘기한 적도 없다. 다만, 저자는 '강제로 끌려가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문 받다시피 했던 어린 소녀들'에 대한 한국의 '지배적인' 공적 기억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난 30년 간의 위안부 운동의 방식, 즉 우리가 끊임없이 '할머니 투사'를 만들어온 운동의 역사를 지적했을 뿐이다.
각종 단체가 관여하고 정치적, 법적인 흐름으로 문제가 연결되어지면서, 위안부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위안부는 하나의 일련된 피해자상이 되었고, 할머니들의 개별적인 진짜 목소리는 지워져 갔다. 이따금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진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우리들이 원하는 목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가 여러 저서를 통해 늘 지적하듯, 피해자도 가해자도 하나의 얼굴만을 하고 있지 않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다층적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우리의 공적 기억'에 어긋나는 기억에 대해 지독한 반감을 가진다. 착한 일본군이나 일본을 용서하고 싶은 위안부가 왜 없겠는가?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한 줄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개인이다. 피해자는 모두 순결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각자의 표정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순결성의 정도와, 표정과 의지의 다름이 그녀들의 고통을 거세해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꾸준히 말해왔다. (나는 저자의 섬세한 의견을 수용하기에 세상이 지나치게 거칠고 투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종종 한다.)
저자는『제국의 위안부』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를 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제국주의와 냉전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식민지의 '복잡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만든 타자에 대한 적대를 넘어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지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현실의 것으로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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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역사와 마주하기』는
그가 과거에 썼던 이 문장처럼,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기존의 책에서 다뤄왔던 위안부 문제에 더해, 징용과 한일병합에 관해 어떻게 해야 '평화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의한다.
박유하의 저서를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책에 나오는 정보들이 생소하고, 정보량이 많아 한 번에 휘몰아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필자는 다음의 문장을 마음 속에 전제하고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우리 내부의 어둠을 인정하기, 적의 상처를 들여다 보기." 그렇지 않다면 전작을 하나씩 읽어본 뒤에 신작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후기의 끝은 책에 등장했던 저자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자신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통해서 다른 나라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을 한일 양국의 아이들이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개인적이며 그 크기는 일률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상상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의 크기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늘어나기를."
저자의 섬세한 필치와 따스한 마음이 여기저기 녹아 있어 인문사회서를 읽으며 오랜만에 뭉클했다. 좋은 저서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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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일본 정부의 입장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끝났다면 ‘무엇이‘ 끝났을까.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을 일본은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 P84
자국의 피해의 비참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통해서 다른 나라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을 한 - P89
일 양국의 아이들이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개인적이며 그 크기는 일률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상상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의 크기만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늘어나기를. - P90
그런 연구·운동에서의 개별성 은폐가 피해자의 성화聖化와 동시에 소외감을 초래한 것은 당연한 전개였다. 대등하고 평등해야 할 민주화를 이끌어온 정의의식이, 대변자의 역할을 넘어 ‘당사자가 부재하는 당사자주의‘로 변질되고 만 것은 관계자들이 시대를 이끈 엘리트였기에 야기된 필연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16
일찍이 ‘성노예‘ 호칭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그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20년에 목소리를 내며 반발한 것은 저항을 묵살당해온 세월에 반기를 든 것일 터이다. - P216
불화와 적대를 이끄는 모든 사고들은 자신과 타자 모두를 붕괴시킨다. - P218
불신을 심는 언어들에 휘둘리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상식‘이자 정치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정치화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구조를 넘어서는 개인이 늘어나면 평화는 찾아올 수 있다. 서양발 제국과 냉전으로 상처입은 아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평화를 차세대에게 건내줄 수 있는 그날을 함게 기다리고 싶다. - P236
- 접기
렉사프로 2022-09-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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