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인문학] 이 땅의 피그말리온, 송창식 < 핫리뷰 < 기사본문 - 더뷰스
[가요인문학] 이 땅의 피그말리온, 송창식
기자명 더뷰스 기자
입력 2022.09.18
내 가슴 온통 채워버린 목소리 때문에
몇 무릎 몇 손이나 모아졌던가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몇밤이나 울다가 잠들었던가
더뷰스 : 한국의 가수 송창식(1947~ ) 탐구
미당 서정주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지만, 나를 키운 건 8할이 송창식이다, 라고 말하면 과장처럼 들리는가. 1970년대 후반의 답답한 공기 속에서, 꿍얼꿍얼거리듯 시작해서 서늘하게 툭 터지는 송창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여럿 환장했을 것이다.
가수 송창식(1947~ ).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대중문화는 어땠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적어도 나의 유년과 그 이후를 돌이켜 보면 그렇다.
트로트의 눈물이 싱거워질 때 송창식이 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 그 시절의 비참과 이별을 줄기차게 팔아오던 트로트가 문득 할 말이 궁해지고 눈물이 말라갈 때, 송창식은 왔다. 슬픈 트로트가 슬금슬금 퇴장했다고 세상이 환해진 건 아니었다. 세상은 아래서부터 자꾸 꿈틀거리고 큰 군홧발이 그걸 억누르고 있었다. 송창식은 그 무렵 "왜 불러"를 부르다가, 금지 처분을 받았다. 금지 이유가 뭐냐 하면, 장발 단속원이 거리에서 지나가는 더벅머리 청년을 부르는데, "왜 불러?"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사회 반항적인 노래라고 찍혔다.
처용인가, 가시리 여인인가
시골 동네의 초등학교 동창네 집에 있는 자동차용 스피커(차에서 뗀 물건을 방에다 설치해놓았던)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그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선 천장의 구석에다 매달아놓은 큰 스피커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터질 듯 북북거리며 튀어나오는 비트 음향은 심장 박동을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처용의 울음이 터지면 이렇게 흥건해질까. 송창식의 노래는 방 하나 가득 들어앉는 통곡같은 것이었다. 가시리 고려여인이 울음을 참으면 이렇게 한 가닥 애절한 소리로 흐를까. 송창식의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호곡처럼 방 하나 가득 정적을 들어앉혀놓는다.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아니 안되지 돌아서선 안되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이대로 돌이켜선 안되지.
슬픔에서 우쭐거리는 신명이 나온다
남자의 허장성세 속에 들어있는 약하고 바보같은 마음이 서럽게 흐른다. 희한한 것이 송창식에게만 가면 슬픔은 백배 더 슬퍼지는데 그냥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그런 가운데서도 우쭐거리는 신명이 나온다는 점이다. 분노와 외로움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상하게 유쾌함이 돋는다는 점이다. 고래사냥이 그랬고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랬다.
슬픔을 울지않고 흥겨움으로 치환하는, 저 능력 때문에 송창식은 시대의 음유시인이란 찬사를 들을만하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 속엔 하나 가득 슬픔 뿐인데도, 그는 불쑥 동해바다로 떠난다. 압제자를 향해 터져야할 분노를 청파에 던져 애꿎은 고래를 잡는다. 모진 비바람 불고 거센 눈보라가 닥치는 상황인데도, 멋진 피리 하나만 불면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멋쟁이다.
삐딱선과 건전가요 사이
히스테리컬한 권력의 말 한 마디면 뒷감당이 안되는 '굴욕모드'에 바로 진입하던 시절에, 그가 부를 수 있는 노래의 영토가 얼마나 좁았겠는가. 잠깐 첫 구절에서 삐딱선을 탔다가도 얼른 딴청을 부리며 건전가요로 돌아오게 하는 곡예가 그에게는 생존능력같은 것이었다. 내 나라 내 겨레, 토함산, 가나다라처럼 아부 끼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씩씩한 노래를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골목길의 갑순이와 갑돌이, '한번쯤'
송창식은 한번쯤이란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된다. 이 노래는 참 설정이 우습다. 1절은 여자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고, 2절은 남자의 마음을 담았다. 서로 관심이 있는 남녀가 골목에서 거리를 두고 걸어가고 있다.
여자는 생각한다. 뒤에 따라오는 남자가 한번쯤 말을 걸어오겠지. 말을 걸면 반갑게 응대를 해줘야지.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말도 없이 그냥 따라오기만 한다. 어휴 답답해.
뒤의 남자는 생각한다. 여자가 한번쯤 돌아보겠지. 정말 내게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단 말야. 돌아보면 내가 말을 걸텐데...집에 다와갈텐데, 뭐하나? 어휴 답답해.
서로에게 '첫 물꼬'를 트는 일을 미루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도 남녀는 아무 일 없이 귀가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일 없음'이야 말로, 극성스런 검열에 주눅이 든 '소심'한 청춘들의 풍경이 아닌가 싶다.
송창식 메들리로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나는 송창식 노래라면 서울에서 경주까지 내려가는 자동차 안에서 같은 곡을 반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를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제대로 잘 부르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동승자가 없을 때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부를 테니 들어보라. 우선 나는 그의 장기가 잘 살아있는 사랑노래들을 좋아한다. 한 걸음만이란 노래로 시작하자. 이 노래는 남자 화장실 변기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게 하면 좋을 노래다. "한 걸음만 한 걸음만 가까이 오세요."
선운사. 가끔 송창식이 미당 서정주와 이미지가 겹쳐질 때가 있는데, 선운사 동백꽃 때문에 그럴 것이다.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라고 부를 때 내 가슴에 붉은 동백 뚝뚝 떨어진다.
아참,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송창식이 부르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슬비. 비만 오면 저절로 이 노래가 나왔다. 대학시절 캠퍼스 곳곳에는 나의 이 노래가 바람에 뒹구는 라면봉지보다 더 흔하게 날아다녔다. 두눈 뒤에 감춘 눈망울처럼 방울방울방울.
둘이 둘이 와. 마치 툭툭 내뱉듯 부르는 이 노래가 왜 그렇게 좋았던가. "떨어지지마"라고 외칠 때의 그 간절한 쾌감이란...
가수 송창식.
슬픈 얼굴 짓지 말아요. 이건 80년대 이후에 나온 노래일 것이다. "안녕이란 말은 말아요,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들의 사랑이 끝난 것은 진정 아니잖아요."라고 미련을 붙이는 일이 더 서럽다.
트윈폴리오 시절의 노래를 빼서는 안된다. 하얀 손수건. 요즘이라면 환자들이 코풀다가 흔들 법한 하얀색 손수건이지만, 그때는 저 깨끗한 빛깔이 그대로 순정이었다.
비와 나. 태양을 보며 약속 했었지, 언제까지나 길동무 되자고.
꽃 새 눈물. 그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제일기획 시절 동기 하나가 이 노래를 부르는데 사내가 사내에게 반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상아의 노래. 뽕짝끼가 조금 들어가도 송창식은 세련되어 보였다. 눈물의 그날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라고 서럽도록 불렀는데, 이후 광고회사에 들어가 상아제약 광고를 하게될 줄은 몰랐다.
꽃보다 귀한 여인. 군대시절 고참이 위병근무를 서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사슴을 닮아서 눈이 맑은 그 여자. 이 대목만 들으면 산에서 사슴이라도 내려올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애인. 어제 나는 슬펐네, 그 여자는 떠났네. 나는 떠나는 여자도 없었는데 이 노래를 부르며 환상통같은 걸 앓았다.
사랑이야.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심수봉도 비슷한 시절에 비슷한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드라마도 그런 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창식만큼 심각하고 운명적인 결연함으로 저 가사를 딛고가는 사람은 없었다.
딩동댕 지난 여름, 그리고 철지난 바닷가. 오래전 포항 칠포와 월포 바다에서 만났던 여인을 생각한다. 가슴은 아프도록 뛰었지만. 이 대목만 부르면 가슴이 아려온다.
송창식 앨범.
이상해. 대학시절 모임 때 누군가가 노래를 시키면 이 노래를 불렀다. 정신없이 뜬 기분 사랑하나봐. 이 구절이 죽였다.
비의 나그네. 임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이 노래는 시다. 시보다도 더 멋지다. 빗소리를 듣다보니 마치 발자국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온다고 하지도 않았던 임이 오는가 생각한다. 들어오시지 않으니 밖에 그냥 서 있나 보다. 그러다가 다시 빗소리. 이번엔 임이 가시나 보다. 일견 음산한 느낌도 들어서, 납량물 드라마같지만, 여하튼 이 노래는 젊은 감수성을 곱게 적셨다.
맨처음 고백. 강철수 순정만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사랑을 해도 혼자만 끙끙 앓던 시절의 우화들. 송창식은 젊은 통대(痛帶)를 구절마다 준비하고 있었다.
축가. 처음 만난 그 순간이 좋았지. 결혼하는 친구에게 불러주는 노래다.
조금 진도 나간 커플에게는 참새의 하루가 제격이다. 아침이 밝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아홉 동그라미. 동틀 녘에 길 나거던 신발 한번 매려무나.
가위바위보. 나는나는 가위 낸다. 너는너는 보를 내마.
공장간 순이가 나오는 강변에서.
날이 갈수록, 가을잎 찬 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그 얼굴 얼굴 얼굴을 외치는 스산한 노래도 멋지다.
이쯤이면 대강 다 나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대의 슬픔 있는 곳에...동명의 가곡보다 더 멋있게 느껴지는 '그대 있음에'.
둘이둘이와와 비슷한 느낌의, 손을 잡고 걸어요. 따뜻한 사람끼리 손을 잡고 걷는다는 대목이 은근히 설렜다.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가.
새벽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보세. 새벽길도 신명나면서 왠지 공허한 노래다.
그러나 이 친구야 멍텅구리야. 이런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던 천국의 계단도 흥얼거리기엔 딱 좋다.
비의 나그네보다 더 처량한 노래는 창밖에는 비오고요,라는 노래다. 고독을 씹는 사내의 단조로운 맥박소리처럼 노래가 흐른다.
송창식 앨범.
여인의 이름이 거론된 노래도 있다. 영희야 라는 노래. 하숙집 딸의 친구 이름이 마침 영희라서 이 노래를 부르며 놀렸던 기억이 난다. 영희야, 어릴 적 책에서도 자주자주 보았지. 내겐 꼭 맞아, 내겐 너무너무 어울려. 싱겁고 익살스러운 노래이다.
조금 더 간절한 노래라면, 트윈폴리오가 불렀던 더욱 더 사랑해가 있다. 이 노래는 연인들끼리 불러야 제 맛이다. 약간의 영어도 섞여 있어서 허영심도 펄럭일 수 있다.
가나다라에서 느껴지는 수다스럽고 장난끼 가득한 맛은 담뱃가게 아가씨에서 빛난다. 오오오 지금 나는 담배 사러 간다,던 능청맨.
아참 맞다. 돌돌이와 석순이도 있었다.(독자 제보이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대책없이 꼬인 비련으로 끝나는 게 안타까웠던지 맘씨좋은 송노인은 돌돌이와 석순이를 흔쾌하게 짝지워준다.
축제의 아침 창문을 열면 싱그런 바람. 축제의 노래 또한 한 시절의 감미를 더한 달콤한 노래다.
에보니 아이즈를 번역한 새까만 눈동자 그 소녀가 내 마음 사로잡아버렸네,하는 검은 눈동자도 있다.
크라잉 인더 레인을 번안한 빗속을 울며 가네도 즐겨불렀던 노래다. 슬픔에 찬 이 가슴 눈물로 씻을 수는 없어도,에서 한껏 감정을 잡는 게 포인트이다.
음유시인의 본령을 보여주는 노래는 '새는'이다.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당신의 닫혀있는 마음을 닮았구나,라고 말할 때 공연히 짠하고 서러운 기분. 노래 뒤의 적막한 침묵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송창식 앨범.
이쯤이면 서울에서 대전을 지나 대구 지나 영천까지는 왔다. 마지막으로 부를 노래는, 드물게도 송창식의 자화상과 삶의 내면을 보여주는 '나의 기타 이야기'다. 가사가 웬만한 우화를 뺨치고 섣부른 시를 넘어서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상상력이 빛난다.
1.
옛날옛날 내가 살던 작은 동네엔
늘 푸른 동산이 하나 있었지
거기엔 오동나무 한 그루 하고
같이 놀던 소녀 하나 있었지
넓다란 오동잎이 떨어지면
손바닥 재어보며 크게 웃다가
내 이름 그 애 이름 서로서로
온통 나무에다 새겨넣었지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나의 지난 날의 사랑이야기
아름답고 철 모르던 지난 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2.
하늘이 유난히도 맑던 어느 날
늘처러 그녀의 얼굴 바라보다가
그녀 이름 새겨놓은 오동나무에
그녀 모습 담아보고 싶어졌지
말할 땐 동그란 입도 만들고
가늘고 길다란 목도 만들고
잘쑥한 허리를 똑 같이 만들었을 땐
정말정말 너무너무 기뻤지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나의 지난 날의 사랑이야기
아름답고 철 모르던 지난 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3.
사랑스런 그 모습은 만들었는데
다정한 그 목소리는 어이 담을까
바람 한 줌 잡아 불어넣을까
냇물소리를 떠다 넣을까
내 가슴 온통 채워버린 목소리 때문에
몇 무릎 몇 손이나 모아졌던가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몇밤이나 울다가 잠들었던가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나의 지난 날의 사랑이야기
아름답고 철 모르던 지난 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4.
어느날 그녀 목소리에 깨어나보니
내가 만든 오동나무 소녀 가슴에
반짝이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지
하나둘셋 여섯줄기나 흐르고 있었지
오동나무 소녀에 마음 뺏기어
가엾은 나의 소녀는 잊혀진 동안
그녀는 늘 푸른 그 동산을 떠나
하늘의 은하수가 되었던 거야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나의 지난 날의 사랑이야기
아름답고 철 모르던 지난 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피그말리온 스토리는 수많은 명화를 낳았다.
피그말리온 송창식
네 개의 절로 되어 있는 이 노랫말은, 이 땅에도 피그말리온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피그말리온이 누구이던가. 그리스 키프로스 섬에 사는 왕이자 조각가였다. 예술을 하는 왕이라 예민하고 섬세했던 모양이다.
온 나라의 여자들을 다 살펴봐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하나가 괜찮으면 다른 구석에 결점이 있고, 모두 다 괜찮다 싶으면 센스가 없고, 대화가 좀 된다 싶으면 성질이 고약하고, 뭐 그런 흠들이 자꾸만 눈에 띠어 결국에는 차라리 장가 안가고 독신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세상에 자기만 홀로된 것같은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는 상아로 여인의 입상을 조각한다. 그 까다로운 안목으로 만드는 것이니,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했을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여인을 가만히 불러내어 눈앞에 있는 조각상으로 옮겨가게 하였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여인 하나를 빚는 왕의 몰입은, 이 조각상을 사람보다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상아 여인이 생겨난 뒤 피그말리온은 저 여인이 과연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신이 자신의 손을 빌려 데려온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루 종일 조각상을 바라보며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조개껍질과 구슬로 장식을 했다
미의 여인 아프로디테 축제일, 피그말리온 왕은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세상에 나의 짝이 없으며 오직 하나의 짝은 상아 여인으로 내 궁전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여신이여, 그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주사 나와 짝짓게 하소서. 사랑에 빠져있는 왕인지라 절을 하면서도 뜨거운 눈물이 솟아나왔다.
신전에서 걸어나올 때 여신은 날아서 피그말리온의 궁으로 먼저 간다. 그리고 상아로 된 조각상에다 털끝보다 작은 숨 한 줄기를 불어넣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피그말리온은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말없이 돌로 서있는 조각상을 껴안고 키스를 한다. 아까 기도를 할 때 흘렀던 눈물이 기억나 다시 북받친다.
그런데 왕의 입술에 닿은 돌여인의 입술이 살며시 더워지기 시작한다.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면서 붉은 기운이 돈다. 왕은 깜짝 놀란다. 입술 속으로 깊이 키스를 한다. 뺨에서 화색이 감돈다. 굳은 눈매 속에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하고 눈을 깜박거린다.
아아, 태어났구나. 나의 여인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구나. 위대한 아프로디테 여신이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왕은 여인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오. 당신을 기다렸소. 여인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왕을 껴안는다. 이제 그대 이름을 갈라테이아로 부르겠소. 나의 여인, 갈라테이아.
가수 송창식.
오동나무 소녀와 피그말리온
송창식은 오동나무 여인을 꿈꾼다. 피그말리온처럼 세상에 없는 여인이 아니라,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소녀였다. 송창식은 함께 있으면서도 소녀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그녀 이름 새겨넣었던 오동나무에 피그말리온처럼 그녀 모습을 담고 싶어한다. 동그란 입, 길다란 목, 잘쑥한 허리는, 소녀의 예쁜 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실은 기타의 형상이다. 소녀를 그리워하며 기타를 하나 만든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서 조각여인의 목소리와 심장을 부여받았겠지만 송말리온은 그럴 만한 신이 없다. 스스로 해결해야할 판이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거기서 기가 막힌 표현이 나온다. 바람 한줌 잡아넣을까. 냇물소리를 떠다 넣을까. 기타소리는 현이 나무의 공명을 타고 소리를 키우는 구조로 되어 있다. 기타소리를 바람소리와 냇물소리의 결합으로 읽어낸 것은 송창식이 아마 세상에서 유일할 것이다.
그걸 어떻게 만들어내나 고민하다가 몇 무릎 몇 손이나 모았던가. 여기서 나는 탄성을 금치 못한다. 바람을 잡으려고 무릎을 벌렸다 오무렸다 하는 것은 한 무릎 두 무릎 몇 무릎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보다 멋진 시어를 봤는가. 몇 손은 냇물소리를 떠다넣으려고 양손바닥을 펴서 벌렸다가 다시 오무렸다 하는 동작이다. 그런다고 바람소리 냇물소리가 모아지던가. 안타까워서 소년은 울었다. 소녀의 목소리를 오동나무에 담지 못하면 소녀를 잃을 것만 같았다.
잠들다 일어나보니, 아프로디테는 아니더라도 단군 이모님이 다녀간 듯 소녀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그렇게 떠담으려도 담을 수 없던 소리가 담겨있는 게 아닌가. 은하수의 소리다. 이게 또 기가 막힌다. 은하수는 물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별의 무리이다. 하지만 물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다. 그 은하수의 강줄기가 기타줄 여섯을 이루는 것이다. 기타를 치는 것은 은하수가 강물소리 바람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늘의 은하수가 되었던 거야
이 황홀한 비유를 보라. 평생 기타를 치며 밥먹고 사는 사람으로, 이보다 더 자신의 삶을 뽐낼 수 있을까. 마지막의 반전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송창식 소년은 피그말리온의 꿈에 피가 마르고 애가 말라, 곁에 진짜로 있는 소녀를 잊어버렸다.
그 소녀는 가만히 소년을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저 오동나무소녀를 위해 뭔가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내 이름, 내 육신이 들어간 그곳에 정말로 중요한 뭔가를 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지, 오래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이게 무슨 뜻인지 짐작하리라.) 그래서 하늘에 올라가 은하수가 된 것이다.
은하수가 되어 기타줄에 내려와 반짝이면서 소리를 내니, 이제 영원히 소년과 같이 살게된 것이 아닌가. 피그말리온은 정말 잽도 안되는, 빛나는 기타의 우화가 아닌가. 송창식은 문학성 높은 전설을, 우리의 대중가요 속에 영원히 딩동댕거리도록 한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올려져야 한다.
더뷰스 가요인문학 리뷰어 이빈섬 isom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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