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내가 대통령이라면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4.10.02
한남대 명예교수
물론 그럴 맘도 없고, 또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이지만, 혹시 어쩌다가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대통령 당선증을 받으면 곧바로 당을 떠나 무소속이 되겠다. 나를 지지하여 당선시킨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나를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의 대통령도 되기 때문이다. 맨 먼저 나와 치열하게 선거전을 치렀던 후보들을 초청하거나 찾아가서 아주 길게 맘문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겠다. 물론 그 이야기 내용에는 내 공약이나 그분들이 내어 놓은 것들을 골고루 다시 점검하는 것이 들어 있을 것이고, 그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을 서로 섞어서 추진해야 나라를 잘 옳게 꾸려나갈 것인가를 궁리하면서, 그런 나라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겠다. 책임정치를 시작하겠다. 물론 책임정치란 나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서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책임을 최대한으로 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내 잘못으로 국민들,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억울함이 없도록 해주고, 혹시 책임을 진 사람들이나 시민들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모두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겠다.
모든 정치가들과 대화하고, 특히 우리 사회의 원로나 덕망있는 분들을 초청하여 맘을 연 깊은 대화를 오래도록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겠다. 그런 자리에서 국무총리를 선발, 추천하고, 그를 중심으로 각부장관이나 중요한 책임부서의 적절한 책임자를 선발하도록 하겠다. 여러 각도에서 검증하여 할 수만 있으면 저 정도면 무난하다는 분으로 그 자리에 앉아서 일하도록 하겠다. 그들을 지원하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을 꾸려 어느 누구 혼자 독단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싶다. 그들이 하는 일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지는 것이지만, 나는 간섭하지 않겠다. 내가 대통령이랍시고 이러저러하게 나서고 간섭하고 명령하고 화내고 소리치는 것은 마치 장자가 말한대로 대목수가 하는 일을 내가 대신 하겠다고 망치와 끌과 톱같은 도구를 들고 날뛰다가 자기도 다치고 남에게도 해를 끼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즐겨 여행을 하겠다. 물론 내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떤 의전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수한 옷차림으로 아주 적은 수의 인상이 괜찮은 경호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싶다. 온갖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 삶의 겉과 속사정을 길게 듣고 싶다. 전통시장이나 백화점에도 가보고, 쓰레기 줍거나 고철을 수집하는 분들의 리어카를 슬쩍 밀어드리기도 하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생산처와 거래처도 가고 싶다. 물론 거리에서 호객하여 성매매를 알선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그 곤고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게 됐는지 그 사정을 들어보고 싶다. 외국인 노동자, 학교와 가정을 떠난 젊은이 늙은이를 막 만나고 싶다. 그러니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하였던 어둡거나 밝은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같이 칼국수나 쇠머리국밥을 먹으면서 회한을 나누고 싶다. 물론 뜨거운 여름에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배를 타는 어부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목록이다. 이 때 꼭 빠지지 않아야 할 분들은 이 시대의 현자들이다. 숨어살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좋고 나쁨을 떠나고,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유유자적하는 현자들을 찾아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련하고 싶다. 이름을 내지 않으면서 참 삶을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 모든 만남은 꾸며서 편집하지 않은 채로 생방송체제로 전달되면 좋겠다.
대통령인 내가 할 일 중 아주 중요한 것은 세계 평화를 창출하고, 생태환경을 회복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원자력산업을 서서히 없애면서 재생에너지로 끈질기게 전환하는 일을 추진하겠다. 특히 방위산업이라고 하여 어마어마한 첨단군사무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구매하는 일을 최소화하겠다. 그런 군산복합체제의 경제활동으로 나라의 부가 축적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장 천박한 전쟁산업을 통한 부의 창출이기 때문에 극복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전혀 새로운 방향의 풍요롭고 품위 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주 세심하게 생각하게 하고 싶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 특히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몽골,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들과 적대관계가 아닌 우호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노력할 일이다. 자주 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수시로 전화나 영상을 통하여 안부하고 대화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싶다. 내가 남에게 적대자가 되기 싫은 것처럼 상대방도 그러하리라는 전제에서, 다시 말하면 ‘원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뢰를 쌓도록 노력하겠다.
끊임없이 나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다. 지나간 남의 일을 들추는 추잡한 일을 중단하고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밝고 맑은 일을 하는 데 공헌할 수 있는가를 찾는데 맘과 몸을 쏟고 싶다. 대통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로 임기를 마치고 그냥 평범하게 옛날에 살던 내 집으로 돌아가 정다운 이웃으로 살고 싶다. 경호동이나 경호원이니 하는 따위는 거절하겠다. 그냥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내가 굉장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의미 있는 것을 만들기는 무척 길고 어렵지만, 이제까지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기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심에 조심을 더하면서 살 일이다. 이렇게 했는데, 사람들 입에 내가 더러운 이름으로 널리 퍼지면 이 일이 내가 할 일이 아니로구나 판단하고 그냥 훌훌 그 자리를 털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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