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30

[단독] '저 남한 드라마 봤습니다'..北 학생 1만명 자수했다

[단독] '저 남한 드라마 봤습니다'..北 학생 1만명 자수했다

[단독] '저 남한 드라마 봤습니다'..北 학생 1만명 자수했다손재호 입력 2021. 04. 28.






1만명에 달하는 북한의 학생들이 남측 드라마와 영화를 몰래 봤다고 실토하며 북한 당국에 무더기로 자진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최근 남한 영상물 유포 및 시청 단속과 처벌 강도가 부쩍 높아지자 ‘자수’를 통해 처벌을 가볍게 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노동당에 북한 청년들의 사상통제는 물론 옷차림까지 단속을 강화하도록 지시한 상태다.

북한 현지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28일 “지난해 말 한 도시에서 1만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소위 ‘불법 녹화물’을 시청한 사실을 당국에 자수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지시문이 최근 각 시·도 노동당위원회 하달된 것으로 안다”며 “이들이 제출한 일명 불법녹화기(DVD 플레이어)만 5000여대에 달했다”고 말했다. ‘반사회주의적 행위’로 규정된 남한 영상물 시청 사실을 실토했다는 것이다.

북한 학생들은 남한 영상물 시청에 따른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당 지역 사회안전국(우리의 지방경찰서) 또는 사회안전부(경찰서)에 무더기로 자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사상과 관련한 단속 및 처벌은 사회안전성(경찰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남한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 시청자는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며 ‘한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남한 영상물뿐 아니라 책·사진도 처벌 대상이다. 남한 말씨를 쓸 경우 징역 2년형에 처한다.




북한의 한류 콘텐츠 단속은 일명 남한 드라마 시청 단속조로 알려진 ‘109연합소조’가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09연합소조는 2015년에도 남포시에서 대대적 단속을 벌여 불법녹화물 시청 사례 수천건을 적발했다.

북한 당국은 다만 ‘적발시 처벌하지만, 자수하면 용서한다’는 식으로 자진신고를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속·처벌 강화만으로는 사회 전반에 퍼진 한류를 뿌리 뽑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한 도시에서만 학생 1만명이 자수했으면 이미 한류가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라며 “자수하는 사람보다 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에서도 외부세계를 동경하는 젊은 세대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자 이들에 대한 당국의 사상통제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북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 등 삼중고에 따른 민심 이반 가속화를 막기 위한 의도다. 특히 기성세대보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고 외부 문물을 동경하는 MZ세대에 대한 통제 강화가 핵심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달 초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청년 교양문제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당 간부들이 청년들의 옷차림은 물론 언행까지 들여다볼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5년 만에 열리고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대회’에서 MZ세대 사상통제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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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52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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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28. 18:31

그냥 재미로 보게두지~ 외국 나가기도 힘들텐데 진짜 무슨 재미로 사냐 나도 드라마보는 재미로 사는데...
답글3댓글 찬성하기223댓글 비추천하기4
   2021. 04. 28. 18:27

저런나라를 뭐가 좋다고-- 남북정상회담을 했는지? 정말 부끄럽다. 남한 말씨를 쓸 경우 징역 2년형에 처한다. ㅈㅈㅈㅈ 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
답글18댓글 찬성하기397댓글 비추천하기119
오로라2021. 04. 28. 18:24

참으로 이상한 국가 지구상 유일한 독재집단 인민들을 달달볶는구나 이런것들하고 무슨 평화를 논하고 회담하고 놀고있냐
답글7댓글 찬성하기393댓글 비추천하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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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

손민석
Favourites · 56 m ·



뭐 내가 맨날 얘기하던대로.. 한국인들은 아베 총리를 두고 우경화 운운한 순간 이 흐름을 완전히 놓친거다.
나는 아베의 일본 재건 시도가 실패했다고 판단하지만
동시에 아베는 일본을 기존의 기지국가에서 탈피시키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한국한테 남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내가 방송에서도 말했는데 아예 자위대의 수도권 주둔까지 선택지로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정말 핵무장까지 고민하든지. 한국한테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일본한테 죽창 운운할 때가 아니다.



최준영
1toSphonohnsored ·

엉겁결에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의 내용을 가지고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쓸거죠?"라는 말씀에 "아..네.."해서 예상치 못하게 썼다는...ㅎㅎ 문소영 실장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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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1)이제 중국을 확실한 경쟁자로 인정 
2)중국과의 경쟁을 국가의 목표로 설정 
3)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 
4)부문별, 지역별로 할일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안이기 때문에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 상원 의원실에서 밝히고 있는 수정안 내용을 보면 더 강력하고, 더 광범위한 조항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
우리나라에서는 외신을 번역해서 소개가 되어서 그런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 
내용을 잘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면 뒤집어질(?!) 내용들이 많습니다.

가령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보면 일본의 장거리 정밀타격체계, 미사일 방어시스템, 감시 및 정찰능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말이 많을텐데 여기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위해 양국의 민간기업 협력을 촉진시키고, 필요한 재원은 미일국가안보혁신기금(United States-Japan national security innovation fund)이라는 것을 출범시켜 조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협력의 수준과 깊이가 장난 아닙니다...)

대만의 공식적 복권이라는 측면에서도 파장이 큽니다. 
대만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만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보호, 발전시키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대만이 추진하고 있는 비대칭전력 강화를 지원하고, 대만의 군사적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약간 모호하지만 대만군과의 공동훈련 시행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서태평양의 미군이 소수의 대규모 기지에 편중되어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어 향후 미군의 재배치가 본격화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철수는 아니고 '전방배치 전력의 강화'라고 되어 있으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2.
사실 핵심은 군사적인 대립이라기 보다는 "기술"에 대한 보호, 그리고 기술을 통한 중국의 억제와 무력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동맹국과 파트너의 참여라고 보여집니다.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반도체 제조 및 생명공학 등에서 미국이 기술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디지털 통신 기술 에 있어서는 동맹국들과 디지털연결 및 사이버보안 파트너십(Digital Connectivity And Cybersecurity Partnership)을 결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장기적으로는 인터넷이 분리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기술 파트너십 사무소(Technology Partnership Office)를 설치해 동맹국들과 기술유출을 통제하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검열 및 감시를 우회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 지원해서 검열체계를 붕괴시키도록 한다..는 구절을 보면 냉전의 회귀가 확연함을 느낍니다. 아마 과거의 COCOM이 부활하는 모습을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3.
개인적으로 흥미로왔던 점은 국제기구 40개를 딱 찍어놓고, 여기에서 중국이 뭘 하는지와 어떻게 영향력을 확대해왔는지,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정책과 의제가 이 기구의 활동 및 방향과 얼마만큼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도록 하는 점이었습니다.
중국기업의 용역 및 납품실적까지 확인해서 분석보고서를 내라고 하니 정말 말 그대로 탈탈 털어서 공개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지가 명확합니다.
미국답게 전세계를 나눠놓고 각 지역별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캐나다, 중남미, 유럽, 중앙 및 서남아시아, 북극...중국이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차세대지도자 육성 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지역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입니다. 
이것을 위해 독자적인 언론과 매체에 대한 지원도 언급하고 있는데 미국이 인터넷을 통한 중국의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 양산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미국 입장에서 보면 20년동안 이어지던 아프간, 이라크에서의 지리한 전쟁을 끝내고 이제 중국과의 정면승부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1989년 이후의 30년 체제는 이제 잊어먹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미소 냉전체계로의 회귀도 아닐것 같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개별이슈를 가지고 미국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을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국면을 파악하고 우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힘을 모아나가야 하는데 과연 잘 할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혹시 원문이 필요하신 분은 다음 링크를 활용하시면 됩니다.https://www.foreign.senate.gov/.../DAV21598%20... )




SEOUL.CO.KR
美의회 초당적 신냉전 마스터플랜… ‘中 압박’ 더 강력한 법안 발의
오바마 정부에서 시작해 트럼프 정부에서 격화된 미중 갈등은 바이든 정부에서 더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중에 지난 4월 8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밥 메넨데스 위원장(민주당)과 제임스 리시 공화당 간사는 중국 견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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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회 초당적 신냉전 마스터플랜… ‘中 압박’ 더 강력한 법안 발의
입력 :2021-04-29


[2021 쟁점 분석] (24) 전방위 中 포위작전 ‘전략적 경쟁법안’


오바마 정부에서 시작해 트럼프 정부에서 격화된 미중 갈등은 바이든 정부에서 더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중에 지난 4월 8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밥 메넨데스 위원장(민주당)과 제임스 리시 공화당 간사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전략적 경쟁법’(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한 단계 더 강해진 수준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과 금융, 외교, 군사 등 다양한 부문을 포괄한 ‘중국 포위전략’으로 볼 수 있다. 최소한 민주·공화 양당 모두 확실하게 중국을 견제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상원 논의 후 빠르게 법률로 제정될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신냉전 마스터플랜인 이 법안을,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의 비공식 안보회의체) 등이 출범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법률은 개별조항의 구체적인 내용과 더불어 왜 이 법률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법률과 다르다. 딱딱하고 건조한 법률 문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분석,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는 종합적 정책 문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발의된 법률안은 중국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인식과 위기감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살펴보는 의의가 있다.

미 의회는 ‘전략적 경쟁법안’을 통해 중국이 정치·외교·경제 및 군사, 그리고 첨단기술과 공산이념을 활용하여 미국의 글로벌 경쟁자로 부각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중국이 추구하는 정책은 미국과 동맹국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와 이익에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견제는 시급하며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발의된 법률안 美 정치권 인식·위기감 보여줘

전략적 경쟁법안이 인식하는 중국은 아래와 같다. 중국 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첫째,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역 헤게모니를 확립하고, 둘째, 이를 토대로 선도적인 세계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셋째, 최종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국제질서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인권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 대신 중국 공산당과 권위주의 정권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이 법률안은 간주한다. 또 중국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민주적 제도를 훼손하고, 기존의 금융제도를 위협하며, 동시에 해외의 민간 기업에 대해 중국의 일방적 정책을 수용하도록 강요한다는 문제제기를 한다. 이 과정에서 허위정보 유포 등으로 중국 정부의 본질을 은폐하는데 대해 미 의회는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지역적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미국을 이 지역에서 이탈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남중국해와 인근 해역에 대한 세력투사와 인공섬 건설 등을 통해 대만과 주변 국가를 압박하고 항로 및 공역에 대한 독점적 통제를 추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위협에 대해 전략적 경쟁법안은 미 행정부로 하여금 중국을 전략적 경쟁전략대상임을 명확히 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자국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동맹국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중국을 억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략경쟁법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중국의 활동과 영향에 감시와 평가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에 대한 미국의 우월적 지위활용 및 동맹국과의 다양한 협력을 강조한다.

과학기술분야에서는 미중 경쟁에 있어 핵심적 요소임을 분명히 하고 특히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반도체 제조 및 생명공학 등에서 미국이 기술혁신을 주도해야 함을 강조한다.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서 다자간 수출 통제조치의 도입, 주요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핵심 포인트 보호 및 다양화 등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통신 기술에 대해서 국무부로 하여금 동맹국들과 디지털연결 및 사이버보안 파트너십(Digital Connectivity And Cybersecurity Partnership)을 결성하여 개방적이고 안전한 인터넷을 위해 경쟁 친화적이며 보안성이 우수한 정보통신기술 정책 및 규정 등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핵심 기술영역으로 간주되는 인공지능 및 머신러닝, 5G 통신 및 무선통신네트워킹 기술, 반도체 제조, 생명공학, 양자컴퓨팅, 안면인식기술 및 검열소프트웨어 등의 감시기술, 광섬유 케이블 등에 대해서는 기술 파트너십 사무소(Technology Partnership Office)를 설치해 동맹국들과 함께 기술 통제 및 국제표준 제정 등의 전략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검열 및 감시를 우회할 수 있는 P2P 연결 및 개인정보 보호 도구 개발을 위한 기술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중국의 검열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외교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국제기구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토대로 중국을 압박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 단계로 40개의 대표적인 국제기구를 선정하고, 여기에서 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이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지난 10년간 어떻게 확대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분석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기구에 근무하는 중국인 직원 수뿐만 아니라 해당 기구의 활동과 중국 공산당의 프로그램 및 이니셔티브와의 유사성을 검토하고, 중국 관련 기업의 장비 및 기술납품현황 등을 분석하도록 하고 있다. 향후 국제무대에서 중국과 미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중남미서 中 차단… EU·英과 3자 협력 강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서 중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전략인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확대를 통한 견제와 더불어 중국의 사업방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도록 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한 뇌물수수, 부패, 인권침해 및 환경파괴 등 부정적 영향에 대한 해당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고 사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사회와 독립적인 언론을 지원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도록 하고 있다.

외교안보 및 군사 측면에서 보면 전략적 경쟁법안은 서태평양 지역은 중국군의 대만 침공과 남중국해에 대한 지배력 강화라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지만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취약한 대규모 기지에 집중되어 있어 불리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일단 군사적으로 여기에 맞서기 위해서 군종별 합동작전 능력배양 및 탄력적 운영 강화는 물론,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에 통합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장거리 정밀 타격을 위한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그리고 초음속 미사일의 이동 및 배치를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은 미국 단독이 아닌 우리나라와 일본,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및 아세안 국가를 포함한 동맹국과 함께 진행될 것임을 분명히 하며, 특히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충분한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방어 및 감시, 정찰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미일 상호 안보협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개발을 위해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한 협력을 강화하도록 한다. 군사 및 기술개발의 양 측면에서 협력강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미일 국가안보혁신기금(United States-Japan national security innovation fund)을 출범시키도록 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쿼드의 확장과 별도로 일본과 호주의 방위협력 강화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는 대만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구체적 지원방안과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중국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파트너십 강화를 공식화하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대만이 추진하는 비대칭 방위전략 실행을 위한 장비와 기술을 지원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미군과 대만군의 공동 훈련 시행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경쟁법안은 서태평양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고 각 지역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포위 전략이다. 북미에서는 캐나다와 공동으로 북극에서의 중국 영향력 확대 대응은 물론 산업스파이 및 선전활동에 맞서고자 협력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인프라 투자, 특히 5G 통신망, 천연자원, 항구 등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국가안보의 위험을 초래하는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 영향권인 중남미에 대해서는 중국의 대출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의 인터넷 자유, 디지털 안전 및 독립적인 언론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 지구적 포위망 구축… 韓, 어려운 선택 처해

핵심동맹인 유럽에 대해서 의료 및 제약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 감소 및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미국·EU, 그리고 영국의 3자 간 협력을 강화할 것을 천명한다. 특히 중국의 5G 통신 및 항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경계하며, 과거 공산권에 대한 수출통제기구였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와 유사한 기구의 설립을 모색한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국가별 중국에 대한 총부채와 중국정부 및 중국기업의 대출규모 파악은 물론 각종 사업에 있어서의 중국 국영기업 참여 여부, 중국 민간 보안업체, 기술 및 미디어 회사 활동, 자원 및 야생동물 반출 등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에서의 미국 경쟁력 향상의 방안으로 디지털 보안협력은 물론 차세대 지도자들을 키우기 위한 이니셔티브 지원, 방송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정확한 정보 전달 등의 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전략적 경쟁법안은 단순한 제재 법률이 아닌 중국에 대한 전 지구적 포위망 구축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은 신냉전 마스터플랜이라 할 수 있다. 전략적 경쟁법안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앞으로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임을 밝히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하에서 중국 경제성장의 이익을 챙겨 오던 한국은 점점 어려운 판단과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양자택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거와 달리 향상된 군사력과 경제력, 그 나름대로의 소프트파워를 보유했다. 빈곤하고 절대적으로 외부에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한국이 아니다. 스스로를 낮춰 보고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상황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창의적 접근과 신중한 시도를 시도할 때이다.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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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joon Koo

기본적인 상황파악도 못하고 대북제재 타령만 하고 있던데, 5월에 미국가서 뭐라 할지 참 우려스럽네유...;;

손민석

구자준 이 정부는 변하지 않을 게 확실해서 포기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게 앞으로 참 중요한 1년이라는 점 같네요.. 미국 가서 대북제재 타령할 대통령이라면 정말 절망적입니다..ㅠ

Jajoon Koo

손민석 설마 그 정돈 아니겠지가 몇년째 반복되니, 정말 그럴거 같은게 진짜 호러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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場道森

아사히에서도 이런 미일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구체적으로 논한 기사를 내던데 참... 신냉전이라면 한국은 신쇄국주의가 아닌가 싶네요.
https://webronza.asahi.com/.../articles/2021042700005.html




WEBRONZA.ASAHI.COM
「アジア太平洋」から「インド太平洋」へ~日本外交の変化をどう見るのか - 田中均|論座 - 朝日新聞社の言論サイト「アジア太平洋」から「インド太平洋」へ~日本外交の変化をどう見るのか - 田中均|論座 - 朝日新聞社の言論サイト


손민석

場道森 시기가 좋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ㅠ 이미 미국 조야에서는 일본을 대중국 전선의 아시아 지부(?) 지도국으로 인정한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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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国際
「アジア太平洋」から「インド太平洋」へ~日本外交の変化をどう見るのか

世界の未来決めるフロントラインは日本―能動的外交で米中対立緩和を

田中均 (株)日本総合研究所 国際戦略研究所 理事長/元外務審議官


2021年04月28日

アジア太平洋インド太平洋中国日本外交気候変動
筆者
田中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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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中均(たなか・ひとし) (株)日本総合研究所 国際戦略研究所 理事長/元外務審議官

1969年京都大学法学部卒業後、外務省入省。オックスフォード大学修士課程修了。北米局審議官(96-98)、在サンフランシスコ日本国総領事(98-2000)、経済局長(00-01)、アジア大洋州局長(01-02)を経て、2002年より政務担当外務審議官を務め、2005年8月退官。同年9月より(公財)日本国際交流センターシニア・フェロー、2010年10月に(株)日本総合研究所 国際戦略研究所理事長に就任。2006年4月より2018年3月まで東大公共政策大学院客員教授。著書に『見えない戦争』(中公新書ラクレ、2019年11月10日刊行)、『日本外交の挑戦』(角川新書、2015年)、『プロフェショナルの交渉力』(講談社、2009年)、『外交の力』(日本経済新聞出版社、2009年)など。2021年3月よりTwitter開始、毎日リアルタイムで発信中。(@TanakaDiplomat)

田中均の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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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の外交の基本姿勢が変わった。国際環境が変わったのだから外交姿勢が変わって当然なのだろうが、どう変わったのだろうか。それは好ましい変わり方なのだろうか。日々の外交に携わ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ので、私の見方は正しくない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今日、外交の根幹にかかわるような本質的な変化が起こっていると感じざるを得ない。
戦後の原則―アジアの一員の立場堅持

 戦後の日本外交の三原則は、1.国際連合中心、2.自由主義諸国との協調、3.アジアの一員としての立場堅持、だった。


北京で華国鋒中国首相と面会する大平正芳首相。この訪中で政府開発援助を約束した=1979年12月5日 国連は常任理事国として中国・ソ連(その後、ロシア)が存在しているので、政治安全保障面では機能しなかった。「自由主義諸国との協調」は外交の基軸としての日米関係を意味し、「アジアの一員としての立場堅持」とは矛盾する場合も多く、外交当局者を悩ませた。軍事独裁政権だった韓国との関係や共産党一党独裁体制の中国との関係が典型的な例だった。



 それでも日本はアジアの隣国として「漢江の奇跡」と言われた韓国の飛躍的成長を助け、米国の反対を押し切り開始した政府開発援助で中国のインフラ作りに大きく貢献した。冷戦が厳しくなった時点においては、ソ連を孤立させるうえで中国や韓国を助け協力関係を強化することは西側の戦略的利益にかなうという意味で矛盾は少なくなっていった。
冷戦後は「アジア太平洋」重視。日米関係強化も同時達成

 冷戦が終わった後の日本外交の基本姿勢は「アジア太平洋」重視だった。これはアジア重視と日米関係強化を同時に達成する概念だった。

 このため日本自身が能動的に外交を展開し、APEC(アジア太平洋経済協力)・ASEAN(東南アジア諸国連合)と日・米・中などとの対話の枠組み(ASEAN+1)・東アジアサミットなど米国を巻き込む形で中国を含むアジア太平洋の地域協力を重視してきた。北朝鮮問題でも六者協議を作ったのは日本外交だった。

 同時に米国との安全保障体制強化をはかり、日米安保共同宣言や防衛協力ガイドライン、周辺事態法を制定し、インド洋やイラクに自衛隊を派遣していった。


第1回東アジアサミットのクアラルンプール宣言署名式で手を取り合う参加国首脳ら。右から4番目が小泉純一郎首相。その左隣は中国の温家宝首相=2005年12月14日
次は→トランプ氏登場で変容。日米の二国間関係重視に


トランプ氏登場で変容。日米の二国間関係重視に

 しかし、トランプ大統領の出現は国際関係を大きく変えた。米国は「アメリカ・ファースト」や二国間主義を唱え、地域協力からも撤退していった。TPP(環太平洋パートナーシップ協定)は米国を中心メンバーとして自由主義経済体制の高度なルールを策定し、将来的には中国なども加入せざるを得ないところに追い込む戦略的な計画だったが、米国は撤退した。この頃から日本もアジア太平洋地域協力には距離を置き、米国との二国間関係を重視する姿勢が突出することとなった。


日米首脳会談に臨むトランプ大統領と安倍晋三首相=2018年9月26日、ニューヨーク


バイデン政権で「インド太平洋」の概念で中国と対抗

 米国でトランプ時代は終わり、バイデン政権は国際協調路線に復帰する姿勢が顕著であるが、同時に中国との競争を対外関係における最重要な課題と位置づけている。そして中国と競争していくうえで日本・インド・豪州との枠組みである「クアッド」を重視する姿勢を見せている。

 即ち、中国と対抗していくうえでの概念は中国などを含むアジア太平洋ではなく、むしろ、現時点では中国を含まない、価値を共有する「インド太平洋」の概念となっていると見ることが出来る。

 日本は2016年に安倍内閣の下「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戦略を提唱しており、米国の外交姿勢と合致する形となっている。
日米共同声明では名指しで中国非難

 そして 4月16日にワシントンで菅総理とバイデン大統領との間で行われた日米首脳会談で発出された日米共同声明は、この点を繰り返し明確にしている。声明では「アジア太平洋」という言葉は完全に姿を消し、「インド太平洋」が頻繁に語られている。

 さらに「経済的なもの及び他の方法による威圧の行使を含む、ルールに基づく国際秩序に合致しない中国の行動について懸念を共有し」、「東シナ海におけるあらゆる一方的な現状変更の試みに反対する。日米両国は、南シナ海における、中国の不法な海洋権益に関する主張及び活動への反対を改めて表明するとともに、国際法により律せられ、国連海洋法条約に合致した形で航行及び上空飛行の自由が保証される、自由で開かれた南シナ海における強固な共通の利益を再確認した。日米両国は、台湾海峡の平和と安定の重要性を強調するとともに、両岸問題の平和的解決を促す。日米両国は、香港及び新疆ウイグル自治区における人権状況への深刻な懸念を共有する」と、中国を名指しで非難している。

 そこには中国を関与させるより対抗していくという姿勢が明確に示されているだけではなく、これまで日本が積み上げてきたアジア太平洋協力の重要性は語られることはなかった。


日米首脳会談を終え共同会見に臨む菅義偉首相(左)とバイデン大統領=2021年4月16日、ワシントン
次は→「アジア」が希薄となった外交姿勢


「アジア」が希薄となった外交姿勢

 「アジア太平洋」はアジアに米国を巻き込む日本の試みであったが、「インド太平洋」は日本の外交姿勢からアジアの要素を希薄にする結果となっているようだ。

 この日本の外交姿勢の変化には米国の影響が圧倒的に強いが、米国だけに影響を受けたものでは勿論ない。日本の周辺国との関係が著しく悪化したことも大きな要因だ。

 アジアとの関係が悪化した原因は、日、中、韓の間の相対的国力の関係の変化と国民感情の悪化にある。2000年に中国のGDPは日本の四分の一、韓国は日本の八分の一だったものが、2020年には中国は日本の三倍近く、韓国は三分の一となった。中国は圧倒的に大きな存在となり、韓国は侮れない経済力を持った国となった。

 最早、日本が経済大国として中国や韓国を助ける立場ではなくなり、アジアで圧倒的に大きな国としての余裕もなくなった。

 中国の尖閣諸島に対する攻撃的な行動や韓国の元慰安婦問題や元徴用工問題に対する国際法を無視したような行動に日本国内のナショナリズムも刺激され、反中・反韓感情も無視できないレベルにまで高まった。

 特に韓国の文在寅政権の基盤にある86世代を中心とした革新勢力は親北・反日・反米の傾向が強く、政府間の関係も元従軍慰安婦問題・徴用工問題・GSOMIA(軍事情報包括保護協定)や輸出管理を巡る問題を契機として最悪と言われる状況となっている。

 中国との政府間関係も大きく変わっていかざるを得なかった。最大の原因は急速に台頭した中国が鄧小平時代の低姿勢をかなぐり捨て、東シナ海や南シナ海の攻撃的な海洋活動に加え、香港で「一国二制度」を認める姿勢を明確に転換し、香港の中国化を進め、新疆ウイグル自治区でのウイグル人の弾圧や台湾への強硬姿勢を示していることにある。

 日米共同声明で日米が連携してこのような中国に抗していく姿勢を明確にした今日、日中関係も更に厳しくなっていく事は容易に想像される。


香港政府高官ポストへの就任にあたり、中国の習近平国家主席(右)の前で宣誓する幹部ら=2017年7月1日
次は→日本としての外交戦略を

日本としての外交戦略を

 問題は日米共同声明に盛られているような日米が連携して抑止力を強化し、経済的競争力を強化し、中国に対抗していくという考え方だけでアジアの平和と安定を達成し、日本の国益を担保出来るかという点だ。

 日本と米国の利益は100%一致するわけではない。米国は中国を関与させる形で中国を変えていく事に努力してきたが、中国はもはや変わらない、米国の優位性を担保するためには同盟国と連携し中国に圧力をかけることしかない、と判断しているようだ。

 米国は圧倒的に強い軍事力を有する超大国であるから良いが、日本はそうではない。日本はアジアに位置し、隣国中国との不安定な関係から失うものは多い。また、アジア諸国との相互依存関係を重視せずに経済的繁栄が担保されるわけではない。日本の利益は中国を追い込み対決していくことではない。

 相対的に小さくなった日本が米国傾斜を強め、米国だけに依存していくというのは日本外交を著しく脆弱なものとする。だとすれば日本としての戦略を持つべきではないのか。
東アジア地域の協力拡充に中国を巻き込み信頼醸成を

 先ず、近隣アジア諸国との関係改善に注力するべきだ。

 日本として中国や韓国に対して問題を率直に指摘し対話を続けることは、日米関係上も必要なことだ。また、東アジア地域協力を拡充強化する努力は続けるべきではないか。

 RCEP(地域的な包括的経済連携)協定やCPTPP(包括的及び先進的な環太平洋パートナーシップ協定)を拡充強化する事に躊躇があってはならない。米国が入っていなくても中国を巻き込みルールを拡充する努力は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

 米中が入っているAPECや東アジアサミットも同様だ。中国を巻き込み信頼を醸成していく事は重要だ。
日中の利益共通分野で積極的外交を

 そして日米共同声明にも盛り込まれている「共通の利益を有する分野に関し、中国と協働する必要性を認識した」という点だ。

 日本は中国との共通の利益が存在する分野で積極的外交を展開するべきだろう。気候変動問題は共通の利益を有する分野だ。・・・ログインして読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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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nameID: f5c3ae日本は中国に対抗していくというより、中国の経済発展の好影響を受けるのが得策。コロナ以前は多数の観光客や留学生によって日本は潤っていたし、アニメやJ-POPなどのポップカルチャーの輸出先としても重要だった。ただそのような幸福な関係がいつまでも続かない。
多元化と格差拡大が進む日本社会と世界で新たな理念の創出と運営戦略がなければこの国は衰退する一方であろう。いまだにオリンピックのイデオロギー ... 続きを表示日本は中国に対抗していくというより、中国の経済発展の好影響を受けるのが得策。コロナ以前は多数の観光客や留学生によって日本は潤っていたし、アニメやJ-POPなどのポップカルチャーの輸出先としても重要だった。ただそのような幸福な関係がいつまでも続かない。
多元化と格差拡大が進む日本社会と世界で新たな理念の創出と運営戦略がなければこの国は衰退する一方であろう。いまだにオリンピックのイデオロギー価値を信じてるようでは話しにならない。コロナも終焉するには時間が必要。
31返信 (1件)ツイート1日前

no nameID: 58344e日本が前線か.この言葉,何度か何人かの政治のベテランの人たちから出てます.日本が前線なら韓国・台湾は最前線か.あからさまに中国と国家的緊張は好ましくないがあちらは強気に軍事をちらつかせつつ裏で交渉してやってもいいという態度でこの10年くらいの我々のストレスの源だ.当面はTPPに「自由な民主的政治を前提とする」とかなんとかいってインド太平洋経済圏で中国を外せば良いのではないか.前線としては時間を稼い ... 続きを表示日本が前線か.この言葉,何度か何人かの政治のベテランの人たちから出てます.日本が前線なら韓国・台湾は最前線か.あからさまに中国と国家的緊張は好ましくないがあちらは強気に軍事をちらつかせつつ裏で交渉してやってもいいという態度でこの10年くらいの我々のストレスの源だ.当面はTPPに「自由な民主的政治を前提とする」とかなんとかいってインド太平洋経済圏で中国を外せば良いのではないか.前線としては時間を稼いでその間に国力を平衡に持っていくように考えるのが普通だ.10返信するツイート19時間前
no nameID: ea63c4個人的利益しか頭にない今の政府、官僚に外交など考えることができないでしょう。それほど日本は劣化した。そんな状況を生み出したのはやはり国民のせいでしょう。政治への無関心が劣等な自民党専制を許した。総選挙で投票しよう。52返信するツイート1日前

中嶋静夫ID: 27f4cb日本の存在価値はもう低下していることが理解できる
その上で日本がとるべき理念・戦略とはをもう少し解明してほしい
庶民の生活はどう左右するのかなど11返信するツイート1日前

no nameID: 8aea82明解でよくわかりました。現場で場数を踏んできた来た方の所論には説得力を感じます。12返信するツイート1日前

no nameID: 090edfまあ、日本が地下資源が無かったから、他国に占領されなかったのも事実、占領するメリットが無い、が人が資源の加工貿易国も解って居る!だからこそ、ハル、ノートで戦争に扇動されたのだが、日本に取ってどの国が一番怖いか?  私的には米国が一番でしょう!原爆もマンハッタン計画で試し切り、助けるどころかデータ採取だけ、開戦も、ロシアスパイ、ホワイトの、ハル・ノートで日本を虐め抜いたルーズベルトは、チャーチルと海 ... 続きを表示まあ、日本が地下資源が無かったから、他国に占領されなかったのも事実、占領するメリットが無い、が人が資源の加工貿易国も解って居る!だからこそ、ハル、ノートで戦争に扇動されたのだが、日本に取ってどの国が一番怖いか?  私的には米国が一番でしょう!原爆もマンハッタン計画で試し切り、助けるどころかデータ採取だけ、開戦も、ロシアスパイ、ホワイトの、ハル・ノートで日本を虐め抜いたルーズベルトは、チャーチルと海戦を喜んだらしい!21返信するツイート1日前

亀島鉱ニID: 1e8c4c通報「相対的に小さくなった日本が米国だけに依存していくというのは日本外交を著しく脆弱なものとする」ので「日本としての戦略を持つべき」...お説ごもっとも;あたかも“大国の狭間で独立を維持しようとする気概を持った独立国”の外交演説のようです;コスタリカの外交官は死にものぐるいなのでしょうね(映画による).
重要な欠落が2点:“自発的な主権放棄”および“(沖縄に加えて対 covid-19 戦で全 ... 続きを表示「相対的に小さくなった日本が米国だけに依存していくというのは日本外交を著しく脆弱なものとする」ので「日本としての戦略を持つべき」...お説ごもっとも;あたかも“大国の狭間で独立を維持しようとする気概を持った独立国”の外交演説のようです;コスタリカの外交官は死にものぐるいなのでしょうね(映画による).
重要な欠落が2点:“自発的な主権放棄”および“(沖縄に加えて対 covid-19 戦で全国化した)自国民保護の積極的放棄”に関する言及が見当たらない.
「中国は=倒的存在」かつ「韓国=侮れない経済力を持った国」との認識には同感ですが根底にある“朝鮮戦争のバカバカしさに気づいた(→日本を無視して撃ち方止め!)東アジア”に関する見解も見当たりませんでした.
より冷徹かつ「能動的」な論考を期待します.加えて(長年のご経験を踏まえた)「能動的な外交(→対米自立)」の危険性も知りたいものです;なにしろ唯一の“核使用国”なのですから.42返信するツイート2日前

no nameID: ca7a32欧州を政治・経済的に取り込んである意味ヒトラーの野望を実現したドイツに近隣諸国との歴史問題なんかはもう昔の話。残っているのはユダヤ人への犯罪。
一方、戦後イデオロギーに中毒された日本はアジア諸国を育む中で何の戦略もなく、その結果国の中核産業まで全て失ってしまって近年はエンタメや金融みたいな日本の「先進性」の象徴さえどんどん弱くなっている。何度も「解決」したはずだった歴史問題が終わらないの ... 続きを表示欧州を政治・経済的に取り込んである意味ヒトラーの野望を実現したドイツに近隣諸国との歴史問題なんかはもう昔の話。残っているのはユダヤ人への犯罪。
一方、戦後イデオロギーに中毒された日本はアジア諸国を育む中で何の戦略もなく、その結果国の中核産業まで全て失ってしまって近年はエンタメや金融みたいな日本の「先進性」の象徴さえどんどん弱くなっている。何度も「解決」したはずだった歴史問題が終わらないのも当然のこと。60返信するツイート2日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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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 손민석 한미일 군사분업체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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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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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김대중 대통령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래서 방송 같은 곳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는데 
한미일 군사분업체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이해하면 
사실 김대중이 박정희를 상대로 예비군 폐지 등을 들고 나왔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포퓰리즘적 행위인지 바로 이해가 된다니까.
 박정희와 그 측근들이 지니고 있던 어떤 위기의식이 뭔지 그제서야 좀 이해가 되더라.

진보 성향의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 민주당 정부한테 왜 이렇게 적대적인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김대중조차도 제정신이 아닌 인간으로밖에 안 보인다. 

빌 클린턴이 무슨 김대중 존중했다 이런 건 그냥 클린턴 개인의 그런거고 
미국이라는 국가이성의 차원에서 보면 
김대중도 사상이 의심되는 급진민족주의자로밖에 안 보인다. 

나도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그걸 확 느끼게 됐는데.. 
미국처럼 정책의 연속성이 강한 나라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겪고도 한국 민주당을 동맹세력으로 취급한다? 
말도 안된다고 본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이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드는데 미국이 안 그럴까? 
2017년에 문재인 집권했을 때 미국 측에서 문재인을 권위주의자, 급진민족주의자 등으로 묘사하는 걸 보고 나는 미국이 감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엄청 정확했던거다.
 
한국 민주당은 그냥 미국이 수도없이 다뤄봤던 제3세계의 급진민족주의 세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 급진민족주의 세력 정말 싫어한다.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쟁, 저강도전쟁까지 제3세계에서 이뤄진 그 수많은 반공주의적 쿠데타, 개입 등이 다 급진민족주의 세력과의 투쟁이었기 때문. 

나는 한국 진보좌파들이 우리가 미국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점을 인정하고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고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죽창가 운운하면서 내셔널리즘 선동하는 인간들이 들어간 행정부.. 
이 세력이 생각을 바꿀 리도 없고.. 아직도 1년이나 남았다는 게 참 걱정스럽다.

[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1, 2)기독의용대 십자군을 아십니까 - 기독신문


[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1)피난기 대구에서 개교한 총회신학교

정재영 기자
승인 2020.11.10 16:01

‘포성으로 시작된 신학교’ 배움 열기 뜨거웠다
1951년 9월 18일 ‘안전지대’ 대구서 개교식 … 열악한 환경에도 피난민 등 학생 몰려

6·25전쟁 기간의 대구는 피난처이자 방어선의 상징과도 같았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도 이 시기 대구에 많은 신세를 졌다. 동란 중에도 신학생 양성 사역을 방치할 수 없었던 총회는 전쟁 발발 이듬해 대구에서 총회신학교를 개교했고, 조국과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대구·경북의 젊은 기독인들이 주축을 이룬 십자군의용대를 창설했다. 이들의 대구 활동기는 비록 2~3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후 우리 사회와 복음의 계승자들에게 미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총회역사위원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며 신학교에서 역사신학 교수로 봉직해 온 박창식 목사(달서교회)와 김병희 목사(서변제일교회)가 6·25 발발 70주년을 기념해 각각 대구 총신과 십자군의용대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본 지면에서는 앞으로 두 주에 걸쳐 해당 논문을 중심으로 대구 총회신학교 시절 및 십자군 의용대에 관련된 이야기들과 오늘의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6·25 전쟁기에 대구서문교회당에서 문을 연 총회신학교의 개교기념 사진.

6·25 발발 이듬해인 1951년 5월 부산중앙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다시 열렸다. 한 해 전 개회한 제36회 총회가 경남노회 총대문제로 비상정회 한 후, 전쟁이 터지면서 1년 넘게 속개되지 못하다가 비로소 다시 부산에서 회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총회에서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신학교 문제였다.
‘총회신학교’라는 글씨가 선명히 새겨진 대구 시절 정문 현판.

수년 간 총회 안에는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라는 두 직영신학교가 양립하며 커다란 불안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이 크게 번져가는 조선신학교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다. 이를 정리해 하나의 신학교로 운영하자는 주장이 여러 노회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어 논의되는 중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전국 방방곡곡이 전쟁터로 변해버려, 누가 생존해 있는 지조차 알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총회의 결론은 안전지대인 대구에 새로운 직영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해 9월 18일 대구서문교회에서 신학교 개교식을 열었다. 새로운 학교의 이름은 ‘총회신학교’였다. 정식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교’였지만, 편의상 줄여 ‘총회신학교’로 불렸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총신’이라는 익숙한 명칭의 기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교장으로는 미국북장로교 소속 아치볼드 캠벨(한국명 감부열) 선교사를 선임했다. 그는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6년에 내한해 평안북도 강계를 중심으로 사역하다 신사참배 반대로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하지만 해방 직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 계명대학교 초대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양 진영이 예민하게 대립각을 세우던 시기에 원만한 성품을 지닌 외국인을 총회신학교 교장으로 세운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1952년에 대구에서 촬영한 총회신학교 본과 1학년 학생들과 교수들의 단체사진.

감부열 교장을 위시해 권세열 조하파 선교사와 박형룡 김치선 명신홍 계일승 박사 등으로 교수진을 꾸렸다. 교수들은 각자의 전공과목을 충실하고도 깊이 있는 수준으로 가르치는 한편, 6·25라는 국난의 책임이 신사참배라는 과오의 결과라면서 통렬한 회개를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자연히 수업시간에는 회개와 눈물이 넘쳐나곤 했다는 게 당시 재학생들의 회고이다.

‘포성으로 시작된 신학교(It opened with a bang)’라는 감부열 교장의 표현처럼 불안정한 시국에서 개교한 학교였기에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전선이 대구로부터 불과 11km 떨어진 곳에 형성되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포탄이 신학교 교정까지 날아올 정도로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피난민이 끝도 없이 밀려와 건물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고, 물자는 모자란 상태였다.총회신학교 대구 시절 권세열 선교사가 강의하는 모습.

일단 교실이 부족했다. 대구서문교회당을 본과 교사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학생 기숙사와 예과 학생들의 수업공간은 따로 구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대구중앙교회당 일부를 기숙사로, 서남교회당을 예과 교사로 확정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칠판도, 교재도 없이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고 김종석 원로목사(군산 개복교회)는 생전에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마루에 주저앉아 등받이 없는 긴 의자를 책상 삼아 공부했다. 기숙사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군불을 때보지 못한 온돌방이었고 기숙사 밥이라고는 아침과 점심뿐이었는데, 양은그릇에 흰쌀 한 그릇과 콩나물 열대여섯 개 혹은 가느다란 시래기 열서너 가닥이 들어있는 국물이 전부였다.”
1953년에 열린 총회신학교 제2회 졸업식.

그럼에도 총회신학교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왔다. 당초 200~300명쯤으로 예상한 등록학생의 숫자는 서류미비 등의 이유로 100명 가량을 돌려보냈음에도 무려 519명에 이르렀다. 숫자상으로 당시 장로교신학교 중 세계 최대라 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학생들 중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제38회 총회에 보고된 1952년의 총회신학교 통계에 의하면 전체 494명의 재학생 중 평양노회 소속 83명, 황해노회 소속 50명, 평서노회 소속 27명 등 이북 출신들이 약 4분의 3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권세열 선교사의 전기 <씨를 뿌리러 나왔더니>에서는 “그들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자비하게 순교당한 이들”이라고 기술한다.

그렇게 엄청난 사연과 배경을 지닌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는 진지하게, 경건회 시간에는 거룩하게, 부흥회 시간에는 뜨겁게 임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배움의 나날들을 채워나가며 훗날 한국교회의 융성기를 이끄는 지도자들로 자라났다.
대구 시절을 마감한 총회신학교는 서울 남산으로 이전해 역사를 이어간다.

1953년 9월 2일에는 박형룡 박사가 총회신학교 제2대 학장이자 한국인 최초 학장으로 취임하고, 다시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서울 남산으로 총회신학교 이전이 이루어진다. 이후로도 무수한 신자(信者)를, 학자(學者)를, 성자(聖者)를, 전도자(傳道者)를, 목자(牧者)를 길러낸 선지동산의 첫 장은 이렇게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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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2)기독의용대 십자군을 아십니까 - 기독신문
[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2)기독의용대 십자군을 아십니까

정재영 기자
승인 2020.11.17 15:41

기독청년, 조국과 교회 위해 스스로 생명 던지다
‘대한민국 수호’ 의의에 공감, 자원입대하여 헌신 … 우세현 목사, 전국 돌며 자료 발굴 힘써

무공훈장증. 제30보병연대 육군일등중사 우병옥. 군번 K-1135171.

이렇게 시작되는 한 장의 문서가 우세현 목사(홍은돌산교회)에게는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가보이다. 무공훈장증의 주인공은 우세현 목사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생부이다. 아버지는 태어난 지 3개월짜리 아들을 남겨두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의 나날을 힘겹게 살 수밖에 없었던 우 목사에게 어쩌면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아버지가 마냥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이유는 그가 전쟁영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신앙적으로도 흠모할만한 유산을 남겨주었고, 그것은 우 목사 가문에 확고한 정체성이 되었다. 우병옥 중사는 바로 6·25 당시 조국과 교회를 위해 스스로 생명을 던진 십자군 출신이었다.6·25 당시 십자군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십자군동지회’ 회원들이 2002년 11월 1일 함께 촬영한 단체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당시 회장인 우복기 장로,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십자군에 대한 회고록을 남긴 이종배 장로.

십자군은 6·25 발발 초기 인민군의 공세에 밀린 대한민국 정부가 남쪽으로 물러나고, 대구 아래 지역으로 전국 각지의 피난민이 몰려들던 시기인 1950년 7월에 결성됐다.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면려회전국연합회(전국CE) 회장이자, 대구에서 피난민들의 교회인 대구성광교회를 섬기던 김병섭 장로가 대한기독교구국단을 이끌던 한경직 목사와 의기투합해 창설한 민간인 의용대의 이름이 ‘십자군’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 군의 전세가 현저하게 불리한 상황에서 기독청년들로 구성된 독립적 의용대 구성의 필요성을 당시 국방부 차관 장경근을 만나 설득해 허락을 이끌어냈고, 1개 연대 규모의 전력 편성을 목표로 십자군 모집을 시작했다.

<범어교회 100년사>에는 대구 사월교회, 칠곡교회, 경산교회, 청도 온막교회, 의성 중리교회, 청송 화목교회, 김천 부곡교회 등 각지에서 모여든 지원병들의 실명과 지원동기 등이 도표로 기재되어있다. 범어교회에서는 청년들은 십자군으로, 학생들은 학도병으로 자원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백악관 종교담당 보좌관과 세계기독청년면려회 총무를 지낸 폴링 박사가 1950년 8월 십자군 의용대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모습.

당시 18세 소년이었던 이종배(훗날 새문안교회 장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청도 온막교회에 전해진 십자군 모집공고를 접한 그는 친척 형 이종숙과 함께 의용대에 자원했다.

자서전 <아름다운 흔적>에서 고 이종배 장로는 “기왕에 군에 가야 할 것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조직하는 십자군에 입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100리길을 하루 종일 걸어서 대구서문교회 십자군부대 본부를 찾아가 자원입대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십자군 대장을 지낸 고 김병섭 장로가 생전인 2003년에 미국 시애틀의 자택에서 십자군에 관해 증언하는 모습.

지원병들에게는 신체검사를 거친 후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각자 훈련받을 장소가 배속되었다. 이들을 통솔할 지휘부는 전국CE와 대한기독교구국단 인사들 중심으로 조직됐다. 한경직 목사가 고문, 김병섭 장로가 대장을 각각 맡았으며, 나중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제61회 총회장을 지낸 황금천 목사가 부대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대 구성에 필요한 3000명을 십자군 이름으로 모집하기는 쉽지 않았다. 민간인 기독교인으로만 대상을 제한한 데다, 당시의 혼란한 상황에서 세례교인이어야 하고 담임목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충족시키기란 몹시 까다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십자군 지원병들은 대구서문교회, 대구제일교회, 대구남산교회로 분산하여 숙영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등은 십자군에 훈련장소를 제공했고, 지원병들은 이곳에서 기초군사훈련과 신앙훈련을 매일 반복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8월초 육군본부로부터 십자군에 첫 명령이 하달됐다. 전 병력이 부산으로 이동하라는 내용이었다. 찬송가 <십자가 군병들아>를 힘차게 부르며 열차편으로 이동한 십자군들은 부산진역에 도착해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김천에서 찾아온 여성 십자군들도 이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군 지휘부에서도 십자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달픈 시간들이 기약 없이 흘러갔다. 침구로 지급된 가마니 두 장씩과 하루 한 개씩 지급되는 주먹밥만으로, 부산 서면의 마구간에서 새우잠을 자며 버텨야 했다.

모두가 실의에 빠질 즈음, 뜻밖의 손님이 십자군을 방문했다. 미국 백악관 종교담당 보좌관과 세계기독청년면려회 총무를 지낸 프랜 폴링 박사였다. 십자군 병사들을 한데 모아 연설하며 용기를 북돋아준 폴링 박사는 곧바로 워커 미8군 사령관과 만나 이들의 장래를 논의했다. 결론이 나왔다.십자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우병옥 중사의 전사통지서와 무공훈장증.

김병섭 장로가 남긴 자필 회고록에는 “워커 사령관은 전투경험이 없는 십자군을 전선에 투입하면 소모전에 희생만 클 뿐이어서, 전선 배치보다는 특수업무에 투입키로” 결정되었고, 그 결과 여러 대원들이 “카투사 부대와 육군통신학교 등으로 분산 입대”했다고 기술되어있다.

비록 당초 목표인 독립 연대 구성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나중에 국군 제9사단 제28연대가 창설되었을 때 전체 부대원 중 80%가 십자군 출신이었다. 이들은 금화전투, 매봉산전투 등에서 적군을 괴멸하며 혁혁한 전과를 남겼지만 다수의 전사자가 나오는 등 희생이 적지 않았다.

우세현 목사의 부친 우병옥은 ‘백마부대’로 알려진 제9사단 30연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1951년 4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9월 30일자로 고인에게 수여된 화랑무공훈장, 그리고 향나무를 깎아 만든 장기알과 호신용 육모방망이 등 몇 점 안되는 유품만이 아들의 손에 남겨졌다.
고 우병옥 중사의 아들 우세현 목사가 평생 수집한 십자군 관련 자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우세현 목사는 아버지가 몸담은 십자군의 주축이었던 전국CE에서 평신도 시절 제46대 회장을 지냈다. 이런 연결고리들을 바탕으로 우 목사는 국내외를 돌며 십자군에 참여했던 증인들을 만나고, 여러 문서와 사진들을 발굴하며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했다.

총회역사위원회에서도 6·25 발발 70주년을 기념한 역사저널을 발간하며, 십자군에 관련된 연구논문을 김병희 목사(서변제일교회)가 담당해 완성했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아 세월 속에 묻힐 뻔한 소중한 역사, 십자군이야기는 이제 한국교회 전체의 기억으로 다시 새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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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김병희 목사가 말하는 십자군의용대 의미
2020-11-17 15:45
[역사기획/ 6·25와 한국교회] 김병희 목사가 말하는 십자군의용대 의미
“신앙인 자세로 국가 의무 다해” 김병희 목사(대구 서변제일교회)

전시(戰時)의 YMCA, 대구의 경우
(이 글은 한국YMCA소식지 YMCA(2014년 9-10월)에 실렸다.
6.25전쟁이 빚은 참상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YMCA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대구YMCA의 경우는 달랐다. 『대구YMCA 80년사』에 의하면, 전시하의 대구YMCA는 전재민을 위환 구호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는가 하면, 신명여고와 경북여고의 임시 교사, 영락교회의 임시 예배당도 되었다. 대구YMCA 회관에는 기독청년들을 의용군으로 모병하였던 기독교의용군 사무실도 있었다. 진주에서 대구로 피난 온 강문규(전 한국YMCA연맹 총무)도 이 때 기독교의용대에 입대하였다. 아래 글은 기독교의용대 대장을 지낸 김병섭과 가졌던 인터뷰이다. 인터뷰는 필자와 윤경로, 서정민, 최기영이 시애틀을 방문, 2003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김병섭의 집에서 가졌다. 김병섭 장로는 인터뷰 두 달 뒤 시애틀에서 서거했다. 인터뷰 일부를 요약 소개한다.
대한기독교구국회 조직하다
김흥수: 장로님, 47년 8월 달에 월남하시고 나서 서울에 계셨죠? 서울에 계셨다가 6.25 전쟁은 어디서 겪으셨어요?
김병섭: 서울서. 인도교가 끊어지고, 아비규환인데, 나룻배가 있어서, 나룻배가 있어서 그걸 타고서 우리 아이들 데리고 건너갔어요. 수원 가서 이제 갔다가 하루 있다가 대전을 간 거지. 대전 가서 한경직 목사 중심으로 ‘기독구국회’를 만들었습니다. 대구 가서 완전히 만들었지. 대전에는 아마 한 3-4일 있었나. 대전에서는 아담스(안두화) 선교사 통해 구호품 나누어 주고, 또 선무공작, 나가서 강연도 하고 그랬죠.
김흥수: 무슨 강연을 하셨나요? 전쟁을 돕자?
김병섭: UN군은 경찰군이다. 공산당은 도둑놈이다.
김흥수: 도둑놈을 잡기 위해서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UN이 들어왔다는 말이죠?
김병섭: 예, 예
김흥수: 그러니까 군사작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러 왔다.
김병섭: 그게 선무공작이라. 구국회 목적이 선무공작과 십자군, 병사를 해서 우리가 싸우자 이거지.
김흥수: 우리가 기독청년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자 그런 얘기일 텐데, 그걸 어느 분이 그런 말씀을 먼저 하셨어요?
김병섭: 한목사님 하고 저하고. 우리도 군대 조직하자. 그래서 십자군, 이름이 십자군이야. 그래서 의논 해가지고 한 목사님하고 나하고 그때 국방부 차관 장경근 씨가 있었어요.
김흥수: 대구에 가서 기독교의용대 만드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하시는데요, 대구에 가서 지금 장경근 차관을 만나셨다는 거지요? 그런데 왜 그분을 만나셨나요? 사전에 그 분을 알고 계셨나요?
김병섭: 사전에 알고 있었지. 그 분이 신의주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목사님 잘 아니까. 그래서 둘이 갔지요. 가니까 장경근 차관이 명암을 써줬어요. 그 때 작전교육국장이 강문봉 대령이야. 찾아가서 명함을 주니까 강대령이 보더니 “우리 십자군 합시다. 십자군 합시다.”
김흥수: 한목사님이나 장로님이 십자군 만들잔 얘기도 안했는데, 강대령이 먼저 “십자군 만듭시다”는 얘기 했단 말이죠?
김병섭: 네네...나중에 강문봉 대령이 “지금 육군이 있다. 육군이 있는데 십자군 하면 군이 둘이 된다. 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기독의용대로 하라.”
김흥수: 그러니까 강문봉 대령이 장로님과 한경직 목사님을 다시 보자고 그래서 하신 말씀이 “십자군은 이미 군이 있으니까 적절한 용어가 아니니까 기독교의용대라는 이름으로 모집을 좀 하는 것이 좋겠다?”
김흥수: 대구에 내려가실 때에 장경근 차관이나 강대령 만나기 전에 그 어디로 가셨어요? 대구 YMCA로 먼저 가셨나요?
김병섭: 그럼!
기독교의용대 모집은 대구YMCA 회관에서
김흥수: 대구 YMCA에 찾아갔는데 거기 아는 분이 있었어요?
김병섭: YMCA 총무가 이원우 목사라고 있었어요. 그분이 내 본 교회 장수원 평양 본교회 조사로 있었어요. 신학하면서 그땐 조사야. 조사로 있었어요. 사무실 쓸려고 왔다 하니까 쾌히 승낙하고, 또 나도 나지만은 한목사도 중요한 분이니까 구국회도 거기서 다 하자, 그렇게 된 거예요.
김흥수: 대구 YMCA에다가 구국회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일을 시작하기로 하고 맨먼저 장차관을 만나러 갔고 그렇게 해서 강대령을 만나게 되고. 강대령을 만나서 기독교의용대를 만들기로 했는데 어떻게 광고 하셨어요?
김병섭: 벽보 붙였지요. 벽보, 벽보를 각 교회마다 또 거리에 붙였어요.
대구 시내의 교회 하고 거리에다가(강문규는 대구 시내에서 현수막을 보았는데, “하나님은 너를 원하신다!” 전쟁터에 나가 싸울 기독교 십자군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회고한다. 강문규, 『나의 에큐메니컬 운동 반세기』).
김흥수: 제가 지난 번 대구 가서 기독교의용대 출신 분들 말씀을 듣다보니까 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피난을 갔는데 교회에서 목사님이 광고하시기를 기독교 의용대를 모집한다고 하더라 대구 서문교회에서, 그래서 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대구 말고도 몇 십리 떨어진 교회에서도 기독교의용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거군요?
김병섭: 물론. 그러니까 YMCA에 피난 목사도 오셨지만은 또 시골 목사님 많이 왔으니까. 영남지방에 있는 목사들이 많이 왔으니까.
김흥수: 대구 YMCA에?
김병섭: 그렇지.
김흥수: 그분들이 기독교의용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에 가서 광고를 하신거로군요. 기독교의용대 지원생들이 대구 YMCA 사무실로 먼저 왔나요?
김병섭: 그렇습니다.
김흥수: 대구에 가서 기독교의용대를 모집하기 시작하게 날짜가 언제쯤 될까요?
김병섭: 7월 중순께.
김흥수: 7월 중순부터 언제까지 이 의용대 분들을 모집 하셨어요?
김병섭: 한 보름 동안 했어요.
김병섭: 식량은 육군본부에서 배급해 주고 우리가 그 예비역 우리 기독청년 가운데 예비역 장성이 있었으니까, 그분들이 도수훈련, 도수훈련 하게 됐어요. 연병장은 계성학교 교정이예요. 아침 기상해가지고 거기서 이제 우리 군가 의용대가를 찬송가 “십자가 군병들아” 그 걸 군가로 제정했어요. “십자가 군병들아” 그거 부르고 기도하고 훈련 착수했어요.
김흥수: 그러니까 제식훈련을 하신 거죠? 아직 무기도 아직 지급받지 못하고 복장도 못하고 평상시에 입었던 옷 입고 제식훈련도 좀 하고 달리기도 하고 기도회도 좀 하고. 그렇게 하셨군요. 그 당시 의용대에 오는 사람들이 나이가 어느 정도?
김병섭: 나이가 뭐 고등학생도 있고 중학생도 있고 암만 많아도 30 이후로는 없고. 다 미만.
김흥수: 그래서 대구에서 모집한 의용대가 숫자가 어느 정도 됐나요?
김병섭: 삼천 명 가까이 됐어요(이하 생략).

韓国原子力学会「処理水の影響無視できる」それでも「日本は謝れ」の怪

韓国原子力学会「処理水の影響無視できる」それでも「日本は謝れ」の怪




隣国は何をする人ぞ
韓国原子力学会「処理水の影響無視できる」それでも「日本は謝れ」の怪
渡邊康弘

ワールド
2021年4月28日 水曜 午前11:40



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の処理水放出決定について、相変わらず韓国が騒がしい。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は自称学生団体による不法な座り込みが続き、数え切れないほどの自治体が日本政府を批難をしている。さらに韓国外務省はメキシコや中米諸国に「汚染水は隣接国だけでなく全世界の海洋生態系に回復不能の被害を及ぼす」などと言いつのる「告げ口外交」を展開。「放出計画は危険」との印象を振りまいている。

しかし、それに真っ向から反する報告書が、原子力を専攻する約5000人の専門家や学生らが参加している韓国原子力学会から発表された。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の不法占拠は今も続いているこの記事の画像(3枚)
「処理水の影響は無視できる」

韓国原子力学会は4月26日、「日本福島原子力発電所汚染処理水放流に対する原子力学会の立場」との報告書を公表した。韓国では政府もメディアも処理水を「汚染水」と呼ぶ中で、「汚染処理水」と表記している点が注目される。

学会は日本政府の放流計画について「保管されている汚染水を浄化せず、全量を1年間で海へ放流するという非常に保守的な仮定」で科学的に影響を評価したという。日本政府は放射性物質を基準値以下に浄化した後に20~30年かけて放流する計画だが、それらの計画が全く守られない、いわば「最悪のケース」を想定したというのだ。

その結果は「韓国海域に到達するまでの時間と、海水による希釈効果などにより、韓国国民が受ける放射線被曝線量は3.5×10-9mSv/年と予測された。これは一般人に対する被曝線量の限度である1mSv/年の約3億分の1で、無視出来る水準だ」というものだった。

IAEA(国際原子力機関)が監視する以上、こうした放出は行われ得ないわけだが、浄化もせずに一気に放出するという最悪のケースが起きたとしても、韓国への影響は「無視できる」レベルだという。その上で「科学的事実を冷遇したフェイクニュースと政治的な扇動が韓国国民と関連業界にどれ程大きな被害を与えたのかは、過去にあったBSE(牛海綿状脳症)と鳥インフルエンザ騒動の例を思い出せば簡単に分かる。当時、過度な恐怖で集団的パニック状態に陥った韓国国民が牛肉と家禽類の消費を極度に減らし、畜産農家と自営業者は深刻な苦痛を味わった」と指摘した。

国を挙げて処理水放出に反発する中、韓国の水産業には根拠の無い風評被害が広がりつつあり、その状況も痛烈に批判したのだ。韓国原子力学会の報告書は「処理水の影響は微々たるもので影響は無視できる」と結論づけた

韓国の原子力安全委員会の専門家懇談会も、韓国政府の報告書の中で「海流により拡散・希薄化されるため、有意味な影響はないだろう」と同様の判断を示している。学会に所属する専門家による科学的な意見が明示されたわけだが、「これで一安心」とならないのが、韓国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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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政府の主張を受け入れるのは問題」

文在寅政権を擁護する革新系大手紙「ハンギョレ新聞」は4月27日、学会の報告書について「学会が汚染水を処理水と表現したのは、日本政府の主張をそのまま受け入れたもので、問題になると思われる」と報じた。科学的に見て海洋放出の影響は無いという検証結果が注目点であるのは誰が読んでも明白であるが、なぜか用語を取り上げ問題視している。その上で「学会は科学的事実を無視した政治的扇動と主張しているが、それを示す具体的根拠は提示しなかった」と学会を批判している。政権の応援団として「科学的根拠が無い」と言われた事が、よほど悔しかったようだ。

また韓国環境省の韓貞愛(ハン・ジョンエ)環境相に会見で「学会は影響を無視できると言っているが、環境省として日本の放出計画は危険だと考えているのか、影響は無いと考えているのか」と質問したところ、「トリチウムを除いた放射性物質の浄化処理は完璧にすると日本政府は言うけれど、実際の処理水の内容を見ればトリチウムだけでなく他の放射性物質もまともに処理されていない。今、日本政府は全てまともに処理される事を前提として語っているが、実際の内容はそうでないということが出ている。そのため、私たちをはじめとする周辺国家はみな不安に思うのは当然のことだ」との回答だった。「汚染水」ではなく「処理水」と言っているのは謎だが、学会が「処理を一切せずに一気に放出したとしても影響は無視できる」と言っている事を、環境相は理解していないようだ。

処理水の海洋放出決定から2週間が経過したが、どんなに「影響はない」との科学的検証結果が出ようと、韓国政府や韓国社会が聞く耳を持つ様子は見られない。

なぜか学会が日本に謝罪要求

今回の韓国原子力学会の報告書は、処理水放出を科学的な視点から検証した点で、日本にとっては有り難い事だ。しかし報告書をよく読むと、首を傾げざるを得ない記述があった。

「原発事故で最隣接国である韓国国民は放射能の恐怖にずっと苦しめられた。また韓国の水産業は壊滅的打撃を受けた(※事故当初に韓国水産業でも風評被害が起きたことを指すとみられる)。その余波は韓国政府のおかしな脱原子力発電政策に繋がり、韓国の原子力発電産業は世界最高水準の技術を備えていたにも関わらず将来を約束できない瀕死の状態に陥っている。このような状況で日本政府が汚染処理水放流を一方的に決めたことによって、また再び韓国国民を放射能の恐怖に陥らせた。韓国のほとんどのメディアも放射能の恐怖をそそのかす報道を吐き出している」。

韓国原子力学会は、この機会に自らの存在を揺るがしている、文在寅政権の「脱原発政策」を批判しようと、処理水放出を政治利用したように読める。そのため、報告書について報じる韓国メディアの記事には、「学会はこれが言いたかったのだ」「自らの利権のために国民の安全を売っている」などと批判が溢れ、検証結果への韓国国民の不信を強める事になった。

さらに学会は「福島汚染処理水放流によって周辺国国民が受けることになる心理的苦痛と物理的被害に対して深く謝罪し、周辺国を配慮する姿勢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と日本政府に謝罪を要求した。自分たちが「影響は無視できる」と検証したのに、「物理的被害」が生じるというのは支離滅裂だが、とにかく日本は謝れというのだ。本来理性的であるはずの科学者が書いた報告書とは思えない。

しかし、例え支離滅裂でも「日本は悪い」「日本は謝罪しろ」という内容を入れないと、科学的な検証結果すら発表出来ないほど、韓国社会の「反日」は根深いということを示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関連記事:「影響なし」が突然「危険」に…原発処理水を反日政治利用した韓国にブーメラン

【執筆:FNNソウル支局長 渡邊康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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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原発反日

2021-04-29

박재순 소개 & 대표작 | YES24 작가파일

박재순 소개 & 대표작 | YES24 작가파일

박재순




출생 : 1950년 출생
출생지 : 충남 논산
성별 :
직업 : 학자








[저] 유영모의 천지인 명상
대한기독교서회


[저] 애기애타
홍성사


[저] 유영모·함석헌의 생각 365
홍성사








날짜 약력 비고

-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 한신대학교 신학박사
- 씨재단 상임이사
- 다석학회 이사회원








1950년 충청남도 논산군 광석면, 강경평야 언저리 작은 마을 말머리에서 태어났고 대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새벽예배도 열심히 다녔으며, 고등학교 때는 머들령이라는 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시를 쓰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베르그송의 생명철학에 매력을 느끼며 공부했다. 문리대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고 독재정권의 억압과 최루탄 가스가 싫었다. 대학 졸업 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서대문 구치소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81년 전두환 정권 때 한울공동체 사건으로 다시 2년 6개월 옥고를 치렀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책 읽고 공부하며 생각할 시간을 넉넉히 가질 수 있었다.
1974년 가을 한신대학교에 입학하여 자유롭고 실천적인 신학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안병무 교수에게서 성서신학과 민중신학을 배우고, 박봉랑 교수로부터 카를 바르트 신학을 배웠다. 학사·석사학위 논문은 카를 바르트 신학, 박사학위 논문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으로 썼다. 서구 주류 전통 신학자 카를 바르트에게서 복음적인 신학의 깊이를 배우고, 서구 전통 신학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본회퍼에게서 신학적인 자유와 영감을 얻었다.
1980년부터 안병무 박사가 세운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번역실장으로 일하면서 국제성서주석 번역을 하였다. 독일 성서주석서 폰라트의《창세기》, 요아힘 그닐카의《마르코복음》I, II, 독일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의《사랑과 노동》등 10여 권을 번역했다. 당시 한신대학교에서 해직 상태였던 안병무 박사는 매주 1~2회 연구소 직원들에게 성서와 신학에 관한 강의를 들려주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신학자였던 안병무 박사를 가까이 모시고 자유롭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고 특권이었으며, 연구소 번역실에서 아홉 살 어린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민중신학, 생명신학, 씨 사상 연구에 몰두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함석헌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하여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게 된 것은 보람이고 사명이었다. 함석헌은 그가 만난 가장 뛰어난 인물이고 위대한 정신이었다. 씨 사상연구회 초대회장(2002~2007)을 지낸 박재순은 2007년 재단법인 씨 을 설립하고 씨 사상연구소장으로서 함석헌과 그의 스승 유영모의 씨 사상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씨 사상》,《다석 유영모》,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유영모·함석헌의 철학과 사상》(공저),
《모색: 씨 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공저),
《씨 ·생명·평화》(공저),《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민중신학과 씨 사상》,《한국생명신학의 모색》,《유영모의 천지인 명상》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