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은이),서은혜 (옮긴이)창비2012-10-09원제 : 蟹工船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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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
전자책
8,400원
220쪽
책소개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8권.
난바다를 떠돌며 게잡이를 하는 대형 어선을 배경으로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극악한 노동 착취를 고발한 문제작이다. 청년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 등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어지는 오늘날 다시 한번 열렬한 공감을 일으키며, 하나의 상징적 현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조업 중 가혹한 노동과 린치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착취방식, 국가와 재벌, 군대와의 유착관계 등을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자연발생적 투쟁을 집단묘사를 통해 역동적으로 묘사하여 작가의 대표작으로 널리 손꼽히는 작품이다.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배치해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작품 외 읽을거리를 부록으로 더하여 풍성한 독서가 되도록 했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또한 ‘창비세계문학’을 찾는 독자들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목차
게 가공선
부록 1 / 현대에 되살아난 『게 가공선』의 절규
부록 2 / 다시 일어서라, 한번 더
작품해설 / 다시 한번, 게 가공선에서
작가연보
발간사
추천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젊은이들은 결국, 기대가 꺾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발길질로 걷어차이는 꼴을 당했고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쟁과도 같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원치 않는 내전을 치러야만 하는 나날 속에서, 『게 가공선』를 재발견한 것이다. - 아마미야 가린
잡은 게를 끌어올리는 윈치에 노동자가, 다시 말해 수확이 없는 빈 윈치에 게 대신에, 게보다도 목숨값이 싼 노동자가 보란 듯이 매달렸다. 값비싼 게 통조림을 위해 제물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 아마도 코바야시는 그 공포에 찬 광경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비정함과 그것과 맞바꾸어지는 노동자 수탈의 전(全) 구도를 간취한 것이다. - 노자끼 로꾸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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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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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바야시 다키지 (小林多喜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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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한 때로, ≪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1924년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植)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그는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그는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데뷔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전기(戰旗)≫(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다키지는 1929년 북양어업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이 아니고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접기
최근작 : <방설림>,<방설림 (큰글씨책)>,<게 가공선> … 총 38종 (모두보기)
서은혜 (옮긴이)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다. 옮긴 책으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회복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세키가하라 전투』, 『선생님의 가방』, 『개인적인 체험』 등이 있다.
최근작 : <일본 문학의 흐름 2 (워크북 포함)>,<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세트 - 전9권>,<이상한 소리 - 일본> … 총 3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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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에게는 우리 말고는 내 편이 없다
저항과 연대를 역설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귀환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다시 한번!” ―본문에서
『게 가공선』은 난바다를 떠돌며 게잡이를 하는 대형 어선을 배경으로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극악한 노동 착취를 고발한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출간된 지 반세기도 넘은 오늘날 일본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2009년 한해에만 50만부가 넘게 팔리는 등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귀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인 코바야시 타끼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물결이 일본을 휩쓸던 시기에 야만에 저항하고 민중의 연대를 촉구하던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상징적 인물로, 활발히 창작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지하에서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경찰에 체포당해 고문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조업 중 가혹한 노동과 린치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1926년 북양어업을 떠난 게 가공선 하꾸아이마루에서 노동자가 배의 윈치에 매달린 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현실의 사건에 자세한 조사를 더해 쓴 작품이 바로 『게 가공선』이다. 구축함의 비호를 받으며 하꼬다떼 기지에서 깜찻까 영해까지 출어하는 이 고물 배에는 항해법도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막일꾼, 토오호꾸 지역의 가난한 농민과 어부, 학생 들을 계절노동자로 고용하여 국가적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더없이 잔혹한 린치로 위협해가며 노예노동을 강요함으로써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생명을 위협하는 혹사 속에서 노동자들은 점차 단결하고 어부들의 태업을 계기로 자신들의 요구를 모아 파업에 들어가지만, 구축함에서 온 해병들의 총검 앞에 파업은 무산되고 주동자들은 끌려간다. 하지만 한번 떨쳐 일어섰던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투쟁하기 위해 일어서리라는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게 가공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착취 방식, 국가와 재벌, 군대와의 유착 관계 등을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자연발생적 투쟁을 집단묘사를 통해 역동적으로 묘사하여 코바야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청년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 등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어지는 오늘날 다시 한번 열렬한 공감을 일으키며, 하나의 상징적 현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젊은이들은 결국, 기대가 꺾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발길질로 걷어차이는 꼴을 당했고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쟁과도 같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원치 않는 내전을 치러야만 하는 나날 속에서, 『게 가공선』를 재발견한 것이다.” ―아마미야 카린
“잡은 게를 끌어올리는 윈치에 노동자가, 다시 말해 수확이 없는 빈 윈치에 게 대신에, 게보다도 목숨값이 싼 노동자가 보란 듯이 매달렸다. 값비싼 게 통조림을 위해 제물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 아마도 코바야시는 그 공포에 찬 광경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비정함과 그것과 맞바꾸어지는 노동자 수탈의 전(全) 구도를 간취한 것이다.” ―노자끼 로꾸스께
세계문학의 새로운 기준, 창비세계문학
엄정하고 참신한 기획, 적확하고 충실한 번역,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
창비만의 열정과 고집으로 고전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창비세계문학’ 씨리즈 1차분 10종 11권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최초의 세계문학이라고 불리는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7개 언어권(독어권, 러시아어권, 불어권, 스페인·라틴아메리카어권, 영미권, 일어권, 중국어권) 10종 11권의 문학작품을 1차분으로 엄선하여 내놓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는 오늘날 타인, 타집단, 타지역, 타문화 간의 소통의 가능성이 세계문학에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젊은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작품들을 ‘창비세계문학’ 씨리즈로 출간한다. 향후 오늘의 관점에서 예술성·문학성·대중성을 겸비한 고전을 재평가하여 새롭게 펴내고, 고전의 심오함과 현대성이 접목된 현대의 새로운 작품을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인도, 아프리카 문학 등 비서구권문학의 주요 작품을 기획하고, 7개 어권별 대표시선, 중단편 선집 등을 고루 안배하여 명실상부한 세계문학 씨리즈를 선보일 것이다. 이를 위하여 7명의 어권별 기획위원들이 작품 선정에서 역자 섭외, 번역 점검까지 책임지고 있으며, 꼼꼼한 원서대조 등 정밀한 편집을 진행한다.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작품마다 배치해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작품 외 읽을거리를 부록으로 더하여 풍성한 독서가 되도록 했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급스러운 디자인 또한 ‘창비세계문학’을 찾는 독자들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문학 시리즈
창비는 세르반떼스, 괴테, 발자끄, 똘스또이 등 중요 작가들의 대표작 및 미번역된 걸작 등을 엄선하는 한편,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일본과 중국, 인도, 아프리카 문학까지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세계문학 씨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의 문제작 발굴
우리가 사는 세기는 지난 세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서만 인간다운 삶을 기약할 수 있다. ‘창비세계문학’은 문학사에 상재된 고전뿐만 아니라 20세기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한 문제작들을 새롭게 발굴하여 오늘의 독자들이 우리 시대의 첨예한 문제와 대결하는 데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언어권별 대표시선과 중단편 선집의 지속적인 발간
‘창비세계문학’은 장편소설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세계문학 기획의 틀에서 벗어나 7개 언어권별, 주요 사조별 대표시선을 발간할 예정이며, 아울러 이미 2010년에 출간에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창비세계문학 단편선’(전 9권)을 바탕으로 주요 작가의 중단편선집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최고의 번역, 새로운 해설
‘창비세계문학’은 해당 작가를 전공한 중견 학자와 최고의 번역진으로 여러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최량의 번역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아울러 작품의 시대적 맥락과 현재적 의의를 깊이 있게 짚어주는 새로운 해설로 시대와 경계를 넘어선 작가와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배려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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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명, 그러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 구매
낯선나날들 2012-12-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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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유명한 일본 문학 인건 알겠으나 나에겐 딱히 공감이
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한국 작가의 비슷한 유형의 책을 찾아서 보는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매
wjrlwjql 2019-07-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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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으니 새롭다... 게공선 새창으로 보기
蟹工船(카니고오센) - 당 생활자...
게공선은 러시아 혁명 직후,
일본의 홋카이도 지역에서 벌어진 '게잡이 배'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일본의 공산주의 문학의 수작으로 일컬어져,
1980년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읽히곤 하던 책이다.
일본-조선의 식민 지배는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지만,
일본 국내에서도 자본-노동의 관계는 철저하게 착취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나 혼슈가 아닌 홋카이도 지역을 어떻게 차별하는지도 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에게 게공선이 다시 읽히고 있다고 한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다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를 일이다.
게공선은 러시아 대게를 잡는 이야기이므로, 게를 가공하는 배라기 보다는 게를 잡는 배에 가깝다.
예전 번역본은 '게공선'인제 '게 가공선'이라는 제목이 좀 어색하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 다시 한 번...
이런 유명한 마지막 구절은 다시 읽어도 짜릿하다.
바닥 계층의 저질스러운 욕설이나 비루한 말들도 재미나게 번역을 잘 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노동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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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6-01-09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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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 코바야시 타끼지 새창으로 보기 구매
060.
2012년, 창비 세계문학 첫 11권이 출판되었을 때 단연 돋보이던 책이었다. 제목을 다르게 달고 나온 <젊은 베르터의 고뇌>도, 새빨갛고 두꺼운데다 두 권짜리인(!!!) <돈 끼호테>보다도 말이다. 제목부터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보라색이라니, (의도치 않게) 이렇게 불길한 색의 표지라니, 참 판타스틱한 책이다.
유독 첫 문장이 맴도는 소설들이 있다. 너무 아름답든, 충격적이든 말이다. <게 가공선>도 그런데,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라는 첫 문장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1926년 북양어업 게 가공선에서 린치와 가혹학 노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을 조사해서 쓴 책이 <게 가공선>이 되겠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데려다가 바다로 내몬다. 고된 일을 그냥 시키면 안 될 것 싶으니, 회사는 '국가적 산업', '러시아와의 국력 싸움'이라는 간판을 내건다.
뭐든 일이 안되면 '일본제국'을 들먹이다. 일본제국의 거대한 사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일본제국을 위해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할 '때'라는 이유로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나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에게 채찍질을 한다. 기업의 부 증진을 '국가적 부의 원천 개발'이라는 식으로 결부시켜 일을 하는 데에 헛된 긍지감과 자부심을 심어 감쪽같이 합리화시켰다.
견고하다 못해 도를 넘어 꽉 막힌 국가주의는 자연스레 작은 단위인 사람(국민)을 더욱 작게 만든다. 폭풍우가 치는 깜차까 바다에서 카와사끼선을 잃어버린다. 이틑날, 카와사끼선 수색을 겸해서 게 무리를 쫓아 본선이 이동하는데, 이유는 우습게도 인간 대여섯 '마리'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카와사끼선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밤에는 425명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눈앞에서 보고서도 높은 보험금 때문에 괜찮다고, 차라리 가라앉으면 득 보는 거라고, 선원들은 말한다. 감독들은 애시당초 노동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나친 국가주의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하다. 홋카이도오의 대대적 철도 건설 사업이 있었는데, 철도의 침목이고 간에 그것들 하나하나가 말 그대로 시퍼렇게 부어오른 노동자의 주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배 윈치 가로대에 잡부를 묶어 매달아 벌을 주기도 하고, 노동을 피해 숨은 이를 화장실에 가두어 변기에서 서서히 죽게 만든다. 모두 큰 것을 위해, 이 잡는 것보다 더 간단히, 인부들은 맞아 죽었다.
하지만 큰 사고에 갇힌 이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한다고 해도 무력감이 생기면 포기하고 적응하게 된다. 탄광 광차로 운반되어오는 석탄 속에 엄지나 새끼손가락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자나 아이 들조차 그런 것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들여졌던 것이다. 모두들 보이지 않는 굵은 쇠사슬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격이다.
무려 90년 전 이야기인데도 이 책이 이리도 재밌고 실감나게, 동시에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현재에서도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팔려간 사람, 국가적 사업을 위해 죽어나간 수많은 노동자,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끔찍한 일도 태연히 꾸며대는 '위에 있는 인간'들, 하지만 눈 번히 뜨고 당하기만 하는 보통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모습이다.
과연 국가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나와 국가 중 어떤 것이 위에 있어야 하는가.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신나게 응원하던 모습을, 김규항이 불편하게 보았다는 이야기가 얼핏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다수결의 원칙과 공리주의의 지나친 결벽도 슬슬 의심이 간다. 무너진 벽 뒤에서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벽을 열면 안전한 쪽의 사람이 위험하니 그들을 구하지 않고 벽을 더 굳게 쌓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당신에게 고한다. 국민 편이라고? 웃기고 있네, 개똥이야!
* 참고로 발췌문이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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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2014-07-03 공감(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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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좋은데 출판사가 돈독이 올라서 새창으로 보기 구매
무엇보다 먼저 얘기할 거 두 개.
하나. 일본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는데 드디어 찾았다.
둘. 창비, 증말증말 재수 없다. 단편 하나 달랑 싣고 책 비슷하게 만드느라 중요하지도 않은 부록(평론)을 두 개 보태 페이지 수 늘린 다음에 또다시 작품해설과 작가 연보. 에라 이 돈 밖에 모르는 돈 버러지들아. 너네 아직도 베스트 셀러가 <엄마를 부탁해>지?
세계사는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비록 느린 속도로나마 유럽과 아메리카를 필두로 탈제국주의, 탈식민주의로 이행하고 있었으나 뒤늦게 그리고 전폭적으로 패권주의를 받아들여 단맛을 쪽쪽 빨며 즐기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한 것도 모자라 만주 침공을 감행해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한 막강권력을 완성하며 제국주의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슬슬 중국대륙을 한 번 먹어봐? 유혹을 느껴가며.
동북아의 최강 전력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 최강의 경제력이었고, 1960년대 대한민국이 그랬듯 일본의 부르주아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상 일본의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군부 및 정치권과 필연적 야합관계를 만들어 갔다. 유럽에서 18세기와 19세기에 그랬듯 일본 부르주아는 자국 노동자는 물론이고 이 책의 주된 등장인물인 북해도 출신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극한의 작업환경으로 몰아가며 오직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했다. 인권의 개념이 없었으니 노동자의 부상과 인명 손실 같은 건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일정의 임금을 받는 노예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에서 온 노동자들은 관리자 외에도 같은 노동자라도 일본 내지 출신들에게 한 번 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으면서도 임금은 더욱 형편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옥과 비슷한 곳이 북해도 광산. 겨우겨우 지옥을 탈출해, 혹은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돈을 벌어보려 하다가 찾아낸 곳이 바로 이 소설의 무대인 게 가공선이다. 쿠릴 열도 위 캄차카 반도 근처까지 진출해 잡은 게를 즉석에서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를 말하는 것. 이 배에서 벌어지는 극악한 노동 현장.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을 같은 인간 종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 관리자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폭력, 린치, 감금, 방치.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 구부리면 구부릴수록 튕겨나가고자 하는 반발력을 가진 존재. 그들은 별 의식화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지를 자각하게 되고 급기야 쟁의를 벌이기로 하는데…….
이들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역사는 지나간 것에 불과하지 않다. 난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이런 인물을 찍겠다.
대통령이 되면 최초의 해외순방지로 베트남을 찾아 베트남 전몰용사 및 민간인 사망자 위령탑 앞에 사죄하고 그 민족에 사과할 수 있는 자.
PS. 책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다른 작품들, 그게 없으면 같은 경향의 작가들이 쓴 것들을 보태 만들었어야 한다. 이런 책을 창비의 "세계문학전집"이라고 내놓는 야만에 대한 평가는 작품과는 별개로 별 하나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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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7-04-06 공감(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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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야시 타끼지 그리고 세월호 새창으로 보기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온다. 새삼 맨 정신을 가지고 앞을 바라보기 힘겨워진다. 뉘에게 꼴뚜기질을 해야 하는지도, 뉘에게 비나리 해야 하는지도 도통 알 수 없다. 도대체 누굴 붙잡고 달구쳐야 상명(喪明)을 겪은 아비와 어미를 달랠 수 있을까.
혼돈, 제강의 세상에서 이미 염량을 잃어버린 지, 잊어버린 지 오래이다. 하긴 나에게 애초 그런 염량 따위가 가당키나 했었나.
그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남은 이들의 부은 눈가와 서럽게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지금껏 그 얼마나 보듬어 주었기에, 잊어버리자, 흘려보내자는 무참한 이야기가 나올까. “세월호를 시간의 흐름 속에 침몰시켜버리면, 결국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에 굴복하고 말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차라리 애원에 가깝다. 여전히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슬픔을 그 누가 억지로 잊으라 할 수 있을까.
그동안 권력을 틀어쥔 자들은 자식을,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의 슬픔과 한을 달래고 어루만져, 진실과 해원의 너머로 모시는 월천꾼이 되기보다는 무참한 소리장도, 망종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또 이러한 아둔패기, 옹춘마니들에게 호된 꾸짖음을 주어야 할 지식인, 언론인 중 일부는 단지 책상물림이 되어 오히려 권력의 따리꾼이 되었다. 유가족들에게 몽니마저 부렸다. 무참한 세월이었다.
거기에 지도자의 메꿎은 행동은 유가족들의, 수많은 ‘우리’들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부친처럼 오래 장기집권을 했던 외국 지도자의 장례식에는 참석하면서도, 제주의 피맺힌 4월은 외면했고, 이제 아이들이 떠난 지 한 해가 되어가는 지금, 그 어떤 ‘중대한’ 업무를 이유로 나라를 떠난다고 ‘통보’한다. 그의 매정한 모습이 이 땅의 수많은 부모, 형제들에게는 범강장달이보다 더한 무서움과 분노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이 잔인하다 못해 무참하고 무심한 세월 속에서 그 ‘세월’을 감당치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어리석게도 코바야시 타끼지의 오랜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아둔한 놈이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도 분명 있었다.
1920년대 제국주의의 피바람 속에, 자본이라는 강력한 괴물 앞에, 짐승보다 못한 노동과 착취에 내몰려 죽어나가야 했던 일본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정당한, 비장한 분노가, 비단 과거의 일이, 일본만이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자본의 논리 앞에 다름 아닌 세월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식이, 도대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알려달라는 부모 앞에, 그리고 아이들의 소박한 밥그릇을 빼앗지 말라는 부모 앞에, 서슬 퍼런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 끔찍한 세상에서, <게 가공선>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불순함’이 가득한 작품으로 비칠지 모른다. 물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게 가공선>에 사회주의의, 공산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것도 당연할 테다.
하지만 1920년대와 2015년을 아우르는 괴물과도 같은 자본의 논리 앞에 우리는 더 이상 주눅들 수는 없다.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생명이 가라앉는 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똑똑하게 되물어야 한다. 과연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괴물스런 자본 앞에 무기력했던 국가가, 권력이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세월호 침몰 후 한 달 뒤, 정부는 사고의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증축, 화물의 과적, 컨테이너 고박 상태의 불량 등. 이것들은 껍데기만 다 다를 뿐 오직 하나의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돈이다. 그 돈 때문에, 아이들은 생명을 잃어야 했다.
일본에서 수입된 세월호는, 일본에서라면 벌써 오래 전 폐기되었어야 했다. 이런 노후한 배가 한국에서 버젓이 운항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가 연안 여객선의 연령을 30년까지 연장하는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함이었다.
배는 그 후 증개축이 이루어진다. 화물과 승객을 더 많이 싣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CEO의 ‘사진’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까지 따로 만들었다. 이 역시 돈이었다. 정부는 이런 배에 영업 승인을 내주었다.
컨테이너에 화물들이 단단히 묶여 있는지 점검했어야 했다. 하지만 과적과 잘못된 고박에도 불구하고 출항 허가는 떨어졌다. 현장 점검 없이 서류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현장 안전 점검의 축소는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창조 경제를 이루기 위함이었을까.
물론 이러한 것들은 정부가 설명한 사고의 원인이다. 사고 이후 구조 과정의 참혹함, 정부의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지만 전부 차치하고, 정부가 말한 사고의 원인만 놓고 보아도, 세월호는 오랜 시간 오직 ‘돈’이라는 논리로 누적된 비상식과 비정(非情)으로 인해 가라앉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본과 그 자본을 제어하지 못한 정부가 만들어낸 사고. 감히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세상은, 아마도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 자본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되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게 가공선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세월호를 만들어냈다. 대부분 국가 권력은 무력했고, 심지어 협조했다. 이미 세상은 거대한 게 가공선, 거대한 세월호가 아닌가.
<게 가공선>은 1926년 북양어업을 떠난 게 가공선 하꾸아이마루에서 노동자가 배의 윈치에 매달린 채 사망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 졌다. 게를 잡아 배 안에서 통조림으로 바로 만들어내는 가공선. 항해법도,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 자본에겐 천국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동자들에겐 지옥에 다름 아니었을 배.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예나 다름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막일꾼, 가난한 농민과 어부, 학생 등 국가적 산업이라는 허울로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노동에 내몰린 이들은, 결국 “죽지 않기 위해” 단결하게 되고, 파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구축함, 즉 군대라는 이름의 국가는 이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또 다른 탄압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지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일어선다.
먼지가 쌓여있던, 철지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다시금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얻고, 많은 젊은이들이 <게 가공선>을 탐독했다. 어쩜 그들이 처한 바로 지금의 상황이 또 다른 게 가공선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짐작해본다.
그렇담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거대한 세월호에 갇혀, 거대한 게 가공선에 갇혀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떠나간 아이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어, 어른이 되어 맞이할 용기도 능력도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
일 년이란 시간이 다가온다. 두려운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 만들어진 지옥, 이 아비규환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어떻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야 할지 멈춤 없이 되묻고, 또 다시 행동해야 함은 변하지 않았다. 누가 지옥을 만들어냈는지, 누가 이 지옥을 끝장낼 수 있는지, 그 답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건방진 위로조차 닿지 않음을 잘 알지만, 아이들을 먼저 떠나 보낸 어미와 아비들에게, 가족들을 여전히 기다리는 남겨진 이들에게, 부끄러운 목소리로, 치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 전한다. 그리고 위로 드린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의 몸짓도 함께. 그리고 다시.
떠난 이들이여, 부디 영면하시라. 잊지 않음을….
※ 이 글은 이충진의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유승진의 <포천>에 많은 빚을 지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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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15-04-1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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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지옥이 있었다. 새창으로 보기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대출로 인생의 발목이 잡힌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 갚을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맞겠다. 취업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든든한 배경도 없던 나는 3D 직종에 취업을 했다. 노동조합은커녕 갑과 을이 분명한 직장에 불만이 많았지만 동료들과의 어울림으로 힘겨웠지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1929년에 발표된 코바야지 타끼지의 『게 가공선』을 읽으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잠깐 안도했고 우리의 노동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학생은,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간 절간의 어두컴컴한 불당에서 보았던 ‘지옥 그림’을 떠올리며 그것을 바로 자신이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 적 그에게 그런 그림들은 마치 이무기 같은 동물이 늪에서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과 정말 똑같았다. ―그들은 과로 때문에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유리창을 마구잡이로 긁어대는 듯 섬뜩한 이 가는 소리나 잠꼬대, 가위눌린 듯한 괴상한 고함 소리가 어두컴컴한 ‘똥통’ 여기저기서 들렸다.’ 57쪽
소설은 131쪽의 짧은 분량으로 내용도 간단하다. 제목 그대로 게 가공선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생생하게 담았다. 문제는 평범한 게 가공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1926년 게 가공선에서 가혹한 노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은 자본에 의해 잔혹하게 소모되는 노동 현장을 고발한다. 먼 바다에 홀로 선 게 가공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보여준다. 감독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 속 표현처럼 그곳은 ‘똥통’이었고 ‘지옥’이었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난한 농부, 학생, 어부, 힘든 광산에서 치여 선택한 광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국가적 산업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혹사한다. 그리하여 회사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작은 희망은 싹을 틔우기 전에 사라진다. 시체로 변하는 동료를 보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단합한다. 파업을 도모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감독이 불러들인 구축함의 해병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소설은 실패가 아닌 다시 한 번 투쟁의 열의를 불사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앞날의 승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사느냐, 죽느냐 하는 거니까.”
“그래, 한 번 더! ” (129쪽)
발표된 지 80년이나 지난 소설이 지닌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깊어만 가는 양극화, 늘어가는 청년 실업,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등 우리 사회 곳곳의 심각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거울처럼 우리네 삶을 비추는 아픈 소설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자본에 휘둘리며 살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며 응원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그들의 환청과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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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3-11-22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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