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후 미국은 일본인을 세뇌시켜 대동아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심어주는 마인드 컨트롤 정책을 실시했다.그 취지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 벌로 연합국의 대공습을 당하고 원폭까지 투하되었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극동군사재판이 국제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정당하다는 선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 국민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허구가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태어난 속죄의식은 반성하는 마음을 가진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학사관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증폭과 재생산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인은 사죄를 함에 있어 그저 자신은 정의를 실행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극히 고상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장함과 함께 일종의 달콤한 쾌감까지 동반하는 것이었다.
■ 일본인의 장점을 살린 WGIP
이러한 세뇌 정책은 WGIP(War GuiltInformation Program=전쟁 죄책감 정보 계획)으로 명명되었다.Guilt는 "(자신이) 유죄라는 것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토록 열성적으로 "자신들은 나쁘지 않다, 나쁜 것은 일본이다"라고 외칠 정도로 열을 올린 것은 이 전쟁에 이르게 된 경위와 대공습 및 그에 따른 원폭 투하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또한 일본의 전력과 저항의 강렬함에 상당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WGIP를 수립하면서 미국은 일본 연구 논문을 수집하고 여러 학자들을 새로 위촉하여 일본인의 정서 및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협력자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일본 신도 연구자 D.C. 홀톰, 영국 사회인류학자 제프리 골러 등이었다. 그들의 일본론은 나름대로 탄탄하고, WGIP의 일본명 '전쟁의 죄책감 정보계획'은 필자 번역작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소 엉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GHQ는 이러한 일본 연구 성과를 충분히 활용하여 WGIP를 수립했다. 일본인의 준법정신, 정직한 사과 성향, 겸허한 반성, 속죄 정신, 공동체의 관계성 중시(우호와 온건 중시) 등 일본인의 장점을 매우 교묘하게 도입했다. 그것이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마음에 잘 파고들어 자발적인 자학사관으로 등장했다. 다만 애국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수 갚기'나 '오가재お家再'와 같은 전통적 심정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일본이 다시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 WGIP의 실시
WGIP는 GHQ(General Head Quarters: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민간정보교육국에서 쇼와 23년(1948년) 2월 6일자로 일본에 대한 '극비명령'으로 발령되었다. 일본인은 전쟁에 패한 충격과 생활고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 시점까지는 '귀축 미영'이나 '총으로 쏴 죽여라' 등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이나 기개도 잃지 않았다.
에토 준(江藤淳) 게이오대학 교수(당시)는 그의 저서 『폐쇄된 언어공간』(헤이세이 원년)에서 "대동아전쟁은 실제로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한 연합국 간의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국가'의 대립 속에서 태어난 침략전쟁이라는 허구를 심어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대립 속에서 탄생한 침략전쟁이었다"는 허구를 심어주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WGIP는 일본의 패전, 무차별 폭격에 의한 비전투원 대량학살, 나아가 원폭 투하가 모두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책임이며, 미국은 이를 징벌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도식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개전 경위에 대해서는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회고록 『Freedo m Betrayed』(후버 대통령: 미국의 제31대 민주당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다음 제32대 대통령이다. 후버는 대공황에 대한 대책에 실패했다고 비판)는 매우 귀중한 사실을 알려준다. 대통령까지 지내고 최고 기밀까지 다뤄본 사람의 증언이기에 신빙성이 높다.
루즈벨트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다. 황인종인 일본인이 미국이 뒤처진 중국 대륙에 먼저 진출해 만주국을 건국하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구상 같은 망언을 외치며 백인종이 어렵게 일궈놓은 식민지를 해방시켜 아시아 국가들을 독립시키자는 등의 건방진 생각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독일과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소련으로부터 대일 참전 요청이 강하게 들어온 면도 있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런 암스트롱은 루즈벨트가 진주만 공격보다 무려 5개월 전에 'JB-355'라는 대일 작전 계획을 승인했다고 지적한다. 이 작전은 "미국이 중국에 전투기 350대와 폭격기 150대를 제공하고, 장개석에게 미국인 조종사를 용병처럼 부려 중국 대륙에서 일본 각지에 대공습을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럽 전선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비행기를 그쪽으로 돌리면서 계획이 지연되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먼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작전의 존재는 후버도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인정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켜 '평화의 죄'를 저지른 진정한 전쟁 범죄자는 루즈벨트였다. (계속)
[출처]
*아파그룹 제7회 <진정한 근현대사관> 현상 논문 수상자 발표:
우수상 (사회인 부분) 靑柳 武彦 "일본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인의 자학사관이다 - WGIP의 저주에서 벗어나자"
[사진] 후버와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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