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amgok Lee
Namgok Lee
30 July 2017 ·
어제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에 다녀 왔다.
이도흠 교수의 ‘인류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였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작(力作)을 두어시간 안에 압축해서 발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핵심을 뽑아 정성껏 발표한 이 교수에게 감사한다.
나는 고택이라 열린 공간인줄만 알고(전에 내가 발표한 적도 있으므로) 가장 시원한 옷을 골라서 입고 갔는데, 아뿔싸 에어컨이 나오는 안의에 있는 책박물관 고반재였다.
더구나 앉은 곳이 에어컨 바람을 정면에서 받는 곳이어서 몸에 이상이 왔다.
후반은 자리를 바꿔서 좀 나았지만, 몸의 상태가 듣는데 집중을 방해했다.
결국 질의응답과 토론 시간은 참가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치통까지 생겨서 약을 먹고 잤는데, 역시 깨는 것은 새벽 세시. ㅎㅎ
<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인가?>에서 이 교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의식을 마르크스로부터 얻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붓다에게서,
이를 화쟁의 원리로 하나로 아우른 동쪽 변방의 철학자, 원효에게서 찾는다‘고 말한다.
7세기의 원효와 19세기의 마르크스를 현대에 불러내서 만나게 하는 웅대한 작업이다.
어제 내가 페북에 올린 글 가운데
“ 내 생각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물적 생산력이 인류의 총수요를 넘어설 만큼 충분해 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그것이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준비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생산력은 준비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차 혁명은 그것을 완숙하게 할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감당 못할 사회적 모순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준비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혼란이다.
따라서 혁명은 어쩌면 ‘사람의 혁명’이다.”와 상통하는 문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르크스가 예견하지 못한 ‘비움’이 사라진 자본주의 즉 40%에 가까운 생명체가 사라질 정도의 환경 위기에 대한 해법도 여러모로 제시했다.
어제 이 교수와의 만남은 처음이었지만, 페친으로 평소 그의 글들은 보고 있었다.
어제는 시간도 짧았는데다가 내 몸의 상태까지 안 좋아서 직접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그의 문제의식과 미래전망에 동의하면서 언제 기회가 되면 다음의 테마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1.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의식을 마르크스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 있는가?
2. ‘정의가 있는 화쟁’에서 ‘정의’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공자의 ‘無適 無莫 義之與比 단정하지 않고, 의를 좇는다’라는 말과 화쟁을 나는 거의 같은 말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 점은 어떤가?
이것은 ‘자비의 분노’와 이어지는 것 같은데, 이 ‘분노’의 상태는 어떤 것인가?
내가 기회가 되면 이 두 점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다.
어제 에어컨 때문에 혼이나 무덥지근한 공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ㅎㅎ) 새벽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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