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그리고 대통령의 말
1.
빨갱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해방 직후다. 1948년 제주4.3사건과 5.10총선거 전후해서 등장 빈도수가 많아졌고,10월 말 여순사건 이후로 더 그렇다. 한 논문에 따르면, 빨갱이는 1948년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였다.
빨갱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해방 직후다. 1948년 제주4.3사건과 5.10총선거 전후해서 등장 빈도수가 많아졌고,10월 말 여순사건 이후로 더 그렇다. 한 논문에 따르면, 빨갱이는 1948년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였다.
해방 직후 빨갱이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를 속되게 폄하하는 말이었지만, 1948년부터는 용법이 질적으로 바뀌었다. 낙인 당하는 사람/집단의 속성, 내용과 상관없이 낙인 찍는 사람/집단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5.10총선거 전에는 ‘정적’에게 빨갱이 낙인이 남발되었다. 여순사건 직후부터는 “죽여도 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빨갱이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어서 빨갱이가 되었다.
2.
조병옥. 그는 한국 정당사에서 민주당의 족보를 그린다면 파운딩 파더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빨갱이 때려잡는 원조 사냥꾼이다. 해방공간에서,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 동안 그는 수많은 빨갱이를 때려잡았다.
그런 그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기에 빨갱이 간첩으로 몰렸다.
조병옥. 그는 한국 정당사에서 민주당의 족보를 그린다면 파운딩 파더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빨갱이 때려잡는 원조 사냥꾼이다. 해방공간에서,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 동안 그는 수많은 빨갱이를 때려잡았다.
그런 그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기에 빨갱이 간첩으로 몰렸다.
선우종원은 어떤가? 그도 빨갱이를 숱하게 때려 잡은 “사상검사” “반공검사”였지만, 그도 빨갱이로 몰려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일본에서 긴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4.19 이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3.1자 중앙일보에서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했던 양동안 명예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방 후에도 빨갱이란 단어는 공산주의자 및 공산주의자와 함께 행동한 세력들을 빨갱이라 했다. 순수한 민주인사를 빨갱이라 부른 적이 없고 심지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서 처벌한 일도 없다.”
“해방 후에도 빨갱이란 단어는 공산주의자 및 공산주의자와 함께 행동한 세력들을 빨갱이라 했다. 순수한 민주인사를 빨갱이라 부른 적이 없고 심지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서 처벌한 일도 없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순수한 민주인사”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조병옥, 선우종원 같은 인사도 그 순수성을 입증할 수 없었음을 알고나 있을까?
3.
바미당 이준석은 한국전쟁 인명 피해 통계를 읊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恨)이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바미당 이준석은 한국전쟁 인명 피해 통계를 읊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恨)이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준석이 읊은 민간인 피학살, 부상 통계보다 더 큰 피해 규모의 통계가 있다. 남과 북 두 정부에 의해 한쪽에선 ‘빨갱이’로, 또 다른 쪽에선 ‘반동분자’로 학살 당했다. 자국민 학살, 동족간 학살이 진행되었다. 전쟁이 그랬다. “김일성 일당의 전쟁 도발” 맞다. 그런데 그 전쟁의 원인못지않게 전쟁 때 양쪽에서 어떤 지옥도를 펼쳐냈는지 주목해야 한다. 이준석은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들을 꼭 읽길 권한다.
4.
문 대통령이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언급했을 때 정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대통령이 빨갱이 때려 잡자는 취지의 말이 아닌 빨갱이 증오정치를 이제 그만 청산하자는 말을 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언급했을 때 정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대통령이 빨갱이 때려 잡자는 취지의 말이 아닌 빨갱이 증오정치를 이제 그만 청산하자는 말을 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5.
그런데 이 대목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제 때 빨갱이라는 말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에 국한되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양동안 교수는 “항일운동하는 사람 중 사회주의 계열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지칭한 것은 맞지만, 그 외는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유하 세종대 교수도 ”빨갱이(일본어는 아카)라는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 자국인인 일본인을 탄압하며 생긴 말”이라며 “일본은 1910년 천왕암살 음모를 꾀했다며 일본의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ㆍ공산주의자들이 아카(빨갱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의 일”이라며 “(조선에서의 ‘빨갱이’ 탄압도) 그것은 ‘조선인’을 겨냥한 것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다. 좀 어이 없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말고 식민지 조선의 사상통제는 보이지 않나 보다. 조선인이 아닌 공산주의자를 겨냥했다는 말에는 조선은 안보겠어라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이 대목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제 때 빨갱이라는 말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에 국한되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양동안 교수는 “항일운동하는 사람 중 사회주의 계열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지칭한 것은 맞지만, 그 외는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유하 세종대 교수도 ”빨갱이(일본어는 아카)라는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 자국인인 일본인을 탄압하며 생긴 말”이라며 “일본은 1910년 천왕암살 음모를 꾀했다며 일본의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ㆍ공산주의자들이 아카(빨갱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의 일”이라며 “(조선에서의 ‘빨갱이’ 탄압도) 그것은 ‘조선인’을 겨냥한 것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다. 좀 어이 없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 말고 식민지 조선의 사상통제는 보이지 않나 보다. 조선인이 아닌 공산주의자를 겨냥했다는 말에는 조선은 안보겠어라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랬다. 일제 때 “아카”라는 말이 있었다. 빨갱이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지시한다. 이 색깔은 ‘주의자’(主義者), 더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일제 때 조선독립을 추구하는 사상은 그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민족주의, 심지어 자유주의, 또는 종교적 신념 그 무엇이든 과격위험사상이었다. 독립운동가와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이는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사상범이었다. 덮어놓고 고문했고 “투옥”시켰다.
1935년 이후에는 질적으로 아카와 사상범의 용법에 변화가 생겼다. 한 사상검사는 “공산주의자가 합법적으로 대중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1935년 이후에는 질적으로 아카와 사상범의 용법에 변화가 생겼다. 한 사상검사는 “공산주의자가 합법적으로 대중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1935∼36년이 지나면서 ‘아카’(赤)라는 적(敵)이 만들어졌다. 과거 용법과 달리 ‘주의자’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이들이 합법 영역으로 “침투하고 섞여버려 구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투영되었다. ‘아카’는 더 이상 정의될 수 있는 용어라기보다 부정적인 낙인의 정치가 되었다.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자유주의자 등도 ‘아카’의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6.
해방 전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아카’와 1948년 ‘빨갱이’ 용법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 아니 다시 질문하면 그 둘 간에 연속과 단절은 무엇일까?
포섭을 거부하는 아카(비전향자)는 예방구금을 통해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들에 대해 ‘배제’와 ‘박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해방 전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아카’와 1948년 ‘빨갱이’ 용법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 아니 다시 질문하면 그 둘 간에 연속과 단절은 무엇일까?
포섭을 거부하는 아카(비전향자)는 예방구금을 통해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들에 대해 ‘배제’와 ‘박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실제 아카로 낙인된 조선인 비전향자들을 죽음으로 동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 전장화될 것에 대비한 학살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5년 4월 초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일선 경찰서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요시찰인’(要視察人)을 예비검속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미수로 그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유예되었을 뿐이다. ‘제주 4·3사건’ 이후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부 빨갱이”로 몰렸다. ‘여순사건’ 직후에는 빨갱이가 “잔인무도하고 천인공노할 귀축, 짐승, 마귀”로 비인간화·악마화되었고, ‘손가락총’으로 낙인되면 학살되었다. 지역(민) 자체가 죽여도 되고, 죽여야만 하는 빨갱이로 호명되었고, 이는 ‘반공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절멸해야 할 절대적 적을 호명하는 빨갱이 증오정치는 한국전쟁 때 절정에 달했다. ‘보도연맹 사건’은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자국민 대량학살 사건이었다.
이 지시는 미수로 그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유예되었을 뿐이다. ‘제주 4·3사건’ 이후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부 빨갱이”로 몰렸다. ‘여순사건’ 직후에는 빨갱이가 “잔인무도하고 천인공노할 귀축, 짐승, 마귀”로 비인간화·악마화되었고, ‘손가락총’으로 낙인되면 학살되었다. 지역(민) 자체가 죽여도 되고, 죽여야만 하는 빨갱이로 호명되었고, 이는 ‘반공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절멸해야 할 절대적 적을 호명하는 빨갱이 증오정치는 한국전쟁 때 절정에 달했다. ‘보도연맹 사건’은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자국민 대량학살 사건이었다.
7.
이와 관련해 한 사례만 짤막하게 얘기하고 싶다. 진화위 조사로 발굴된 한 보도연맹원 명부가 있다. 결과적으로 살생부로 작용했다. 그 명부의 표지는 여러 장으로 합쳐져 있었다. 다 분리해 보니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알고 보니 보도연맹원 명부는 그 지역의 식민지 시절 요시찰인 명부이기도 했다. 명부 표지의 시간성을 분석해보니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어 해방후, 정부수립, 한국전쟁, 그 이후까지 말그대로 지층들이 되어 하나의 표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시각에서도 그렇다. 유족이 떠올리는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 시간성은 학살 시점 전후가 아니라 식민 시절 때 피해자의 역할과 활동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이와 관련해 한 사례만 짤막하게 얘기하고 싶다. 진화위 조사로 발굴된 한 보도연맹원 명부가 있다. 결과적으로 살생부로 작용했다. 그 명부의 표지는 여러 장으로 합쳐져 있었다. 다 분리해 보니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알고 보니 보도연맹원 명부는 그 지역의 식민지 시절 요시찰인 명부이기도 했다. 명부 표지의 시간성을 분석해보니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어 해방후, 정부수립, 한국전쟁, 그 이후까지 말그대로 지층들이 되어 하나의 표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시각에서도 그렇다. 유족이 떠올리는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 시간성은 학살 시점 전후가 아니라 식민 시절 때 피해자의 역할과 활동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8.
대통령의 말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색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완전히 그 누구로부터 인정되는 사실, 진실만을 대통령이 말해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의 입에서 가짜뉴스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번 기념사의 내용이 그런건가? 이미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정립되어가는 내용들이다. 사실의 논리적 구성과 뉘앙스의 차이는 논해볼 수 있겠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이자 통치 행위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정치와 정책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에 대한 민주적 토론들이 벌어질 수 있고 갈등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걸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 수렴해가는 힘이 작동할 것이다. 구심력일 수도 있고, 원심력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실 중 아주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왔던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족보를 “작정하고” 끄집어냈다. “친일 반성, 독립운동 예우, 정의로운 공정한 나라”세우기 라는 맥락에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빨갱이 죽이자 혐오/증오 타령을 그만하자는 호소였다.
그런 의도하에 새로운 100년을 구상하며 종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했다. 엄청 추상적이긴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서 펼쳐지는 한반도 및 아시아의 평화론에 기댄 것이다.
이걸 위협하고 있는게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색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완전히 그 누구로부터 인정되는 사실, 진실만을 대통령이 말해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의 입에서 가짜뉴스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번 기념사의 내용이 그런건가? 이미 한국근현대사에서도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정립되어가는 내용들이다. 사실의 논리적 구성과 뉘앙스의 차이는 논해볼 수 있겠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이자 통치 행위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정치와 정책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에 대한 민주적 토론들이 벌어질 수 있고 갈등적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걸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 수렴해가는 힘이 작동할 것이다. 구심력일 수도 있고, 원심력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루어지는 역사적 사실 중 아주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왔던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족보를 “작정하고” 끄집어냈다. “친일 반성, 독립운동 예우, 정의로운 공정한 나라”세우기 라는 맥락에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빨갱이 죽이자 혐오/증오 타령을 그만하자는 호소였다.
그런 의도하에 새로운 100년을 구상하며 종전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했다. 엄청 추상적이긴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서 펼쳐지는 한반도 및 아시아의 평화론에 기댄 것이다.
이걸 위협하고 있는게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9.
2008년 이후 9년 내내 대대적인 ‘종북몰이’가 계속되었음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신종 빨갱이 증오정치가 유령처럼 활개쳤다. 여기저기 빨갱이 감별사들도 등장했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만 하는 애국자” 고영주는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친북 반국가행위 인명사전도 편찬했고, 전교조도 ‘이적단체’로 몰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백미는 감별 주특기를 잘 살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이한 것이었다.
2017년 초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광장 저편에서 ‘태극기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선동과 집단폭력이 발생했다. 짧게는 9년 동안, 길게는 반세기 작동한 빨갱이 증오정치의 결과가, 퇴적된 지층들이 마치 단층작용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을 2017년 여름에 하면서 “빨갱이 증오정치의 청산은 언제쯤”이란 글을 경향에 투고했다.
지금이 그 때보다 어떤 면에선 더 암울하다. 광화문에 저 태극기부대 뿐 아니라 공당인 자한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들을 보라! 공안정치와 적폐의 상징인 황교안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었다. 김진태와 극우 백래쉬 경쟁을 하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은 어떤가? 얼핏 보면 광주 5.18마저 부정하는 자들이 판치고 있다.
2008년 이후 9년 내내 대대적인 ‘종북몰이’가 계속되었음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신종 빨갱이 증오정치가 유령처럼 활개쳤다. 여기저기 빨갱이 감별사들도 등장했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만 하는 애국자” 고영주는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친북 반국가행위 인명사전도 편찬했고, 전교조도 ‘이적단체’로 몰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백미는 감별 주특기를 잘 살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이한 것이었다.
2017년 초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광장 저편에서 ‘태극기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선동과 집단폭력이 발생했다. 짧게는 9년 동안, 길게는 반세기 작동한 빨갱이 증오정치의 결과가, 퇴적된 지층들이 마치 단층작용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을 2017년 여름에 하면서 “빨갱이 증오정치의 청산은 언제쯤”이란 글을 경향에 투고했다.
지금이 그 때보다 어떤 면에선 더 암울하다. 광화문에 저 태극기부대 뿐 아니라 공당인 자한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들을 보라! 공안정치와 적폐의 상징인 황교안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었다. 김진태와 극우 백래쉬 경쟁을 하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은 어떤가? 얼핏 보면 광주 5.18마저 부정하는 자들이 판치고 있다.
10.
난 100주년 3.1절 기념사가 작전상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의도한 것이라 판단한다. 작년 3.1절, 제주4.3, 광주5.18, 광복절 등 여러 대통령 기념사와 비교해보아도 후퇴로 보인다. 현재화된 과거사의 내용이 바뀔리는 없으니 기념사가 놓인 국내외 정치, 외교,안보 환경이 달라서일거다. 단적으로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결과가 기념사 톤과 초점의 수정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정한다.
그러나 난 나중의 이보 전진을 확신할 수 없기에 당장의 일보 후퇴한 이 기념사가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난 100주년 3.1절 기념사가 작전상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의도한 것이라 판단한다. 작년 3.1절, 제주4.3, 광주5.18, 광복절 등 여러 대통령 기념사와 비교해보아도 후퇴로 보인다. 현재화된 과거사의 내용이 바뀔리는 없으니 기념사가 놓인 국내외 정치, 외교,안보 환경이 달라서일거다. 단적으로 이번 2차 북미회담의 결과가 기념사 톤과 초점의 수정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추정한다.
그러나 난 나중의 이보 전진을 확신할 수 없기에 당장의 일보 후퇴한 이 기념사가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 강성현, 2013,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 -"적(赤-敵) 만들기"와 "비국민"의 계보학”,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 100호.
* 강성현,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청산은 언제쯤”, <주간경향> 2017.8.9
강성현
저자파일
최근작 :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열전 속 냉전, 냉전 속 열전>,<종전에서 냉전으로> … 총 13종 (모두보기)
소개 :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전향, 공안,
- 법과 폭력, 전쟁과 학살,
- 과거청산,
- 점령과 군정,
- 일본군 ‘위안부’ 문제,
- 사진
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황해문화』와 『사회와 역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 『한국전쟁 사 진의 역사사회학』(공저),
- 『식민주의, 전쟁, 군 ‘위안부’』(공저),
-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50년대: 삐라 줍고 댄스홀 가고』(공저),
- 『세월호 이후의 사 회과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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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5년째가 되니 웬만한 비판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에 무심할 뿐 아니라 직간접으로 내가 받고 있는 혐의를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한 비난일 때, 그것도 비난내용 자체가 엉뚱한 거짓일 때, 나는 변함없이 상처받는다. 그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나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지나친(불합리한) 기대라고 다시 생각했다. 심적동요가 심해 아침도 못 먹고 학교를 향해야 했던 개강날 아침에.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 어린 사람들, 혹은 명백히 비열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항의하고 서로 비난하는 정황 자체가 많이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예상 못한 바 아니지만 이번에도 정정이나 사과는 받지 못했다. 오독과 왜곡과 터무니 없는 모욕을 지적하면 ‘자기글을 왜곡했다고 난리치는 아줌마’ 취급이 돌아올 뿐이다. 이제는 기대를 접기로 한다.
예상 못한 바 아니지만 이번에도 정정이나 사과는 받지 못했다. 오독과 왜곡과 터무니 없는 모욕을 지적하면 ‘자기글을 왜곡했다고 난리치는 아줌마’ 취급이 돌아올 뿐이다. 이제는 기대를 접기로 한다.
강성현교수가 나에 대해 행한 긴 비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는지는 이미 작년에 낸 책에서 썼다.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모르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 써 둔다. 물론 정영환교수나 그밖의 비판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자들은 함께 모여 집단공격을 해놓고도, 나의 반론은 못 듣고 못 봤다는 태도로 일관한다(생각해 보니 일본에 대한 태도와 지극히 닮았다.).
비판자들은 함께 모여 집단공격을 해놓고도, 나의 반론은 못 듣고 못 봤다는 태도로 일관한다(생각해 보니 일본에 대한 태도와 지극히 닮았다.).
언젠가는 오늘의 정황을 정확히 분석해 주는 이들이 나와 주기를 바라고 싶다. 하긴 일본에선 이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들 중 한사람은 “(20년전 생각을 수정하지 않고 정착시켜온 ) 운동가와 학자의 죄”를 언급하며 (자신도 그 안에 있었기에) 뼈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반성은 늘 일본사람만 하는가? 나는 비판자들의 자기비판/내부비판을 십수년전부터 기다려 왔다.
그런데 왜 반성은 늘 일본사람만 하는가? 나는 비판자들의 자기비판/내부비판을 십수년전부터 기다려 왔다.
나를 적대하는 이들에겐 돈과 권력과 사람이 있다. 그보다 더 힘이 센, 언론과 국민이라는 막강한 서포터도 가졌다.
아마도, 그런 “주류”들의 집단공격속에서 내가 살아남는다면 기적일 것이다. 기적이 오면 좋지만, 안오더라도 나와 세상에 부끄럽지 않을 자신은 있다.
아마도, 그런 “주류”들의 집단공격속에서 내가 살아남는다면 기적일 것이다. 기적이 오면 좋지만, 안오더라도 나와 세상에 부끄럽지 않을 자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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