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won Choi
1md AptriluS ponegsdatims ora1ehan9:24eaadfh ·
제가 보기엔 식민지 근대화론 조차도 너무 좁은 틀에서 당시 상황을 규정하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은 식민지도 아니었으며 만일 식민지라고 하더라도 근대화는 대한민국의 근대화로 이어지는 자체의 사건으로서 그 의미와 실천의 규정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로 등가하는 것이 전제가 되니, 이야기가 모던, 근대화로 가지 못하고 그럼 너는 식민지(=근대화)를 찬성하는 것이냐? 독립운동(=전근대 봉건제도의 회복? 불명확합니다. 소중화 양반 사대부들이 자기 땅 뺏아간 왜놈에 대한 증오와 타도?) 해야지 하며 반문명 자연주의와 성리학에 기반해 근대화를 반대하며 저항하려 하는 좌파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좌파. 우리가 혐오하고 갈등하면 안된다? 그럴 수 있는 선진국이라면 저도 이 죄많은 "좌파"같은 시대착오적인, 써도 욕 먹기만 하는 이런 표현 안 쓰고 싶습니다. 아직도 이 단어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꿈꾸는 한국 공동체의 쿨한 합의단계에 이르면 가뜩이나 죄가 많은 이러한 분리화와 타자화는 비판되고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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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히 일본 관련한 주제에서 개념 규정에 대해 극히 조심스러워하는 까닭은 일차적으로는 개념의 정확한 규정 자체도 중요하기 때문이고, 이차적으로는 매체나 대중들이 특정 개념으로 제안자의 의견을 규정하며=정치 진영의 표식을 붙여 갈등 프레임으로 소비시키고=증오하는 마녀사냥의 타겟으로 메신저의 신뢰성credibility을 상처입혀 그로부터 발화되는 관련 논의가 사실상 봉쇄되어 오는 공회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작 그들이 어떤 맥락과 생각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정말 차분히 듣고 알면서 그 의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은것 같습니다.
한국은 매우 놀라울 정도로 지독하게 쇄국적인 나라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하고, 그게 멋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제가 시민 공화정 얘기하며 고종의 제거를 가상적으로 말했더니 2021년에도 그 말 자체에 놀라시는 분이 많을 정도인 한국에서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은 애초에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은 한국이 아닙니다. 또 한국이 조선이어서도 절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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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얘기나 일제시대 얘기를 할 때 서양식으로 합시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방식일 것 같습니다. 제안자를 홀로 세워놓고 상처 입히기 전에 누군가의 제안이 있고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에티켓과 습관으로라도 먼저 고맙다고 말해주고 격려해주기로 합시다. 그리고 그것은 고마운 것이 정말 맞는 것입니다.
토론도 이제부터 토론의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쇄국과 봉쇄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안들이 가로 막혀서는 안됩니다. 많은 제안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야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풍랑을 만나 흔들리고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그널도 빨리 포착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근대국가 대한민국을 어떤 국가로 만들지,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한 개인이나 영웅의 천재적인 작업이 아니라, 시민들의 토론과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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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Young Kim
1md AptriluS ponegsdatims ora1ehan5:05eaadfh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Ki Young Kim
1md AptriluS ponegsdatims ora1ehan5:05eaadfh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이 단어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론'으로서 불리기에는 모자름이 있다.
'게임이론'이란 단어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론이라기보다 관점이나 분석에 가깝다. 혹은 담론을 의미하거나.
누가 이 단어를 실제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 규정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뉴라이트 계열의 어떤 주장들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만
바라보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근대화를 '제도'와 관련하여 설명하려는 경제학적 분석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꼭
한일병합를 지지하거나 일제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판을 위해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하기에 유리하도록 틀에 가두려는 노력이다.
가만히 논쟁들을 들여다보면 결국 각자의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는 소모적인 논쟁이다.
물론 견해라는게 각론으로 갈수록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같은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은 같은 견해라고 볼 수 있다.
생각이 전부 똑같을 수는 없다.
다른 모든 것들을 논쟁하기에는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은가.
박유하 교수님도
최재원 선생님도
글을 읽다보면 이 주제에 대한
깊은 지식과 통찰이 느껴진다.
나 또한 사실 이 두 분과 모든 생각이 같지는 않다.
같은 단어에 대한 이미지도 약간 다른걸 느낀다.
근데 나는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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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許修禎, Chee-Kwan Kim and 2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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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과 제도의 뒷받침없이 자본주의 형성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앙꼬없는 찐빵을 얘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사파진영에서 떠드는 내재적 성장론, 즉 자본주의 맹아론도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개소리에 불과하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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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었다."라는 생각도 정말이지 바로잡아야만 할 잘못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일본의 단순한 식민지의 차원이 아닌, 행정적 차원에서 일본제국 안의 하나의 지방으로 완전히 편입되어 없어져버리게 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일본제국은 한일합방으로 인하여 조선을 일본제국의 품안으로 끌어들여 완전한 동화시키려고 한것이지요. 따라서, 소위 일제시대의 조선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존재했던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완전흡수합병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나라가 있었던 영토이자, 일본제국으로 완전편입된 한 지방이라고 생각하고 또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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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ne Rhee네 말씀하신대로 "조선이 일본이 식민지였다"라는 것도 잘못된 개념입니다. 대한제국 즉 한국(ver.1)이 병합된 것이고, 천황의 공표에 의해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할 것이냐 무조건적인 침탈(내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보다는 단계적인 동화과정(이토 히로부미)으로 접근할 것인가의 이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조선의 무능하고 부패한 위정자들이 조선을 저렇게 망친것이다.라며 조선인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방식이 아닌 부드러운 접근을 통해 동화시키고자 했던 것이 이토 히로부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죽여 군국주의 세력들의 목소리가 득세 하여 조선에 대한 강압통치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 바로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한 또 한 축인 양반 사대부 위정척사의 잔존 세력인 안중근의 기여였습니다. 저는 만일,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고 그의 의지와 생각대로 반도인들을 점차적인 동화로 추진하는 정책이 성공했다면, 현재의 한국은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일본 제국 안의 외지인 조선 지역은 일본 영토의 속하는 한 지역일 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대한제국 이전에 존재했던 나라 "조선(나라)"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고 천황의 공표에 의해 명명된 "조선(지역)"을 명확히 구분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일본은 한일병합과 더불어 1910년 8월 29일 식민통치의 기관 설립을 위하여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칙령 제319호)을 공포합니다. 이 얘기는 길어지니 짧게 쓰자면, 일본 본국은 명치유신 이후, 3권 분립에 입각한 국가기관으로 입법에 관해서는 제국의회, 사법에 관해서는 재판소, 행정에 관해서는 일본내각이 그 권한을 각각 행사했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입법, 사법, 행정기구가 조선총독에 직속되어 있었습니다.근대국가의 특징이라 하는 3권 분립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행정관인 조선총독이 입법권과 사법권을 모두 행사하는 성격과 일본 본국의 국가기관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일본의 통치기구와는 별개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지배기구"다.라고 하는 논거로 식민지 및 강점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에 왜곡되어 이용되어온 것이라 생각합니다..북조선은 한국과 다른 나라일 뿐입니다. 북조선 또한 주체적이지 못하고 소련이 만들어준 헌법, 국가 명칭 및 법률 등을 고스란히 도입하여 김일성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 운영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을 적국으로 일청 전쟁을 치르면서 청나라가 일본에게 당한 패전의 모욕, 일러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제국에 패했던 소련이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북조선의 대일본관과 일제시대에 대한 분열적 부정서사를 한국(ver.2)이 고스란히 수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축적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모던 근대화의 모든 유산들을 6.25를 통해 일시에 모두 파괴해버린 주체가 바로 북한이며 공산국가연합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6.25 때도 그들은 전쟁이라는 형식으로 모던 근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일제시대의 산업기반과 유산들을 모조리 파괴시켰던 것입니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위정척사 세력과 현재 한국의 일부 좌파 세력이 공유하고 있는 근대화에 대한 거부는 대략 이렇게 영향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것이 <반일>로 포장되어 있는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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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免武蔵합병으로 잃게 된 것은 “나라”였습니다. 추상적인 관념과 상상의 어떤 공동체.조선의 문물이나 지적 자산들을 잃었다고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당신들 시민의 것이었냐고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것은 없었습니다. 토지와 산하는 왕의 것이요 경작지는 양반들의 것이요 당신들의 기술은 관료들의 출세를 위한 착취의 대상이었을뿐. 그런 상태에서 조선 백성들에게는 애국심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모든 문화와 전통의 말살은 커녕, 근대적 의미의 고고학과 박물관학의 도입으로 오히려 전통 문화와 유산들이 발굴되고 최초로 해석되고 의미부여 되며, 보존되거나 보전될 수 있었던 것 또한 근대화로 인한 혁명적 혜택이었죠. 그럼 여태까지 문화재들이 어떤 상태로 있었냐구요? 당시 일본인 발굴 현장 답사 기록을 검색해보시면 유물 대비 비례를 위해 같이 사진 찍힌 조선인들의 모습과 방치된 유물들의 자연주의적 상태를 보면 자연스럽게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것들은 선사시대부터 켜켜이 쌓여 방치되어 있었죠. 전근대적 풍속은 있되 근대적 의미의 문화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전 한일병합이 대체 뭐가 막연히 부당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소모하기 보다 오히려 근대적으로 도입되었던 것들이 어떤 것이고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를 구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공부하고 뒤쫓아 가기에도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야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지 아시나요?그런데 문제는요.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해 아직도 별 관심이 없는것 같다는 것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농경사회의 전근대성이 의식과 생활양식 등에 너무 깊이 남아 있어 국뽕 주사약이 안 들어가면 그런 유물이 뭔지 지역적 특징이 뭔지 일본의 세키노 다다시가 무엇을 어떻게 의미부여하고 이름을 붙인 건지 아사카와 노리다가와 다쿠미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백자와 가마터를 왜 답사 다니고 기록했는지 야나기가 왜 조선의 한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 정말 뼛속깊이 알고 있고 통탄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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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네. 조선 입니다.뿌리찾기 라는 말들을 쓰던데 물론 그것들이 무가치 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과거는 현대에 비추어 미래를 볼때 가치가 있다고 했으니까요.그럼 그 ‘부정적’과거를 통해 한국인들이 보고 있는 미래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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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지폐를 보십시오. 대표적 상징거리인 광화문을 보십시오.<조선>입니다.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보전은 현재를 통해 미래를 구성하는 상상력과 관점의 구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한국사람들의 <조선>은 단순한 과거의 전통이 아닌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그것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크게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조선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가 트라우마이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잘못된 주문을 걸며 왕도정치의 이상향 아래 아름다운 대동사회의 공동체였던 <요순시대>의 그 태평성대를 꿈꾸고 있는것 같습니다.제가 보기에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총체적 관심의 부족입니다. 이는 사실 현재 삶의 가치 설정과 미래에 대한 비전 결여로 묶여 있는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의 사슬입니다. 미래와 현재에 대한 생각보다 과거에 대한 이슈와 소비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이 말하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요?반일 선동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선과 악의 구도가 있는 일종의 엔테인먼트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아닙니다..압축성장과 산업화로 도약하는 시기에도 이러한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자연과 고향과 물레방아의 모티브들은 단순한 노스탤지어에 대한 소비도 있지만 문명 vs 비문명 사이에서 회귀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어떤 근원적인 분열과 컴플렉스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조선>에 대해 쿨해질 수가 없고 분리되기도 어렵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나훈아 - 물레방아 도는데(70년대모습)YOUTUBE.COM나훈아 - 물레방아 도는데(70년대모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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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네 맞습니다.엔터테인먼트 입니다.갑자기 결론을 내버리시다니 ㅋㅋ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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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저도 같습니다.‘모두가 사이좋게 평온하게 농사지어 먹고살던 조선동산에 칼과 총을 들고 들어와 죽이고 빼앗고 무자비하게 괴롭히다 독립투사들에 의해 쫒겨난 일본’이게 전부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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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경사났군요 ㅇㅂ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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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천자의 나라 중국 청나라가 무너지자 속국이자 조공국이었던 조선의 왕 고종은 잽싸게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용포로 바꿔 입고 속국의 유산인 사직단을 버리고 원구단을 세우고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로 자칭했습니다. 고종이 꿈꿨던 건 뭘까요?<왕, 만백성을 짊어진 자>라고 조선과 고종을 찬양하는 이런 지식과 권력이 유지되는 것은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석강 채용신이 그린, 주종국 청이 무너진 뒤 금색 용포로 스스로 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고종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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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이건 이만저만 우스운 일이 아닙니다.조롱거리예요.한국이 조선을 계승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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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免武蔵지금 이 고종 그림이나 사진 등을 찾아 보면 고종에 뒤따르는 찬양의 수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아찔함을 느낍니다.죽은 조선과 고종을 호출하여 이를 옹립하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조선의 모순과 문제를 보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그들은 자신을 양반 사대부들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하면서 공포를 느끼는 건 그들 절대 다수가 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양반 사대부가 누리던 권세와 노비들을 대놓고 흡혈귀처럼 빨아 먹을 수 있던 위계를 그리워하고, 그렇게 바로 자신의 먹고 살기 위한 이해관계 때문이라도 조선을 호출하고, 조선의 체제를 부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아마 한국 역사가 비극으로 펼쳐진다면 조선 망국의 장면과 비슷한 장면으로 연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주인공도 동일할 것입니다. 아니 이번에는 사이다 마시다 이빨이 다 빠져버린 “국민”들이 추가되겠군요. “어리석은 지도자와 오직 자기 땅 뺏긴 거에만 분노하는 양반 사대부들” 물론 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낙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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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10 more replies - 위의新免武蔵님의 질문. 일본과 한국의 합방이 한국측의 주도로 이루어 졌어도 부정적일까? 라는 물음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제가 나눴던 댓글 공유합니다..저는 병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사실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한국측의 주도로 이루어 졌어도 부정적일까?에 대해서는 총체적으로 고종이 근대나 일본과 국제정세에 무지했기 때문에 그것을 당시 한국(ver.1)이 주도한다는 판단과 의지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이 문제의 본질은 조선왕조를 조선인 스스로가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것에 원인이 있는것 같습니다.단언하건데 2021년의 한국사람의 대체적인 인식에서도 조선에 대한 부정보다 긍정기제가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그래서 아마 왕조를 스스로 백성들이 근대적 의식으로 각성하여 깨어나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최악의 조선왕조를 무너뜨린 것은 조선이 사대하던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극동 지역 패권을 위해 남하하는 러시아를 무너뜨린 일본제국이었었지요. 조선왕조를 무너뜨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갑신정변 쿠데타에서 개혁하자고 했던 내용을 보면 정말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꼭 필요한 개혁인데도 조선인들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했고 결국 갑오개혁도 일본이 한 것이죠.한일병합을 볼때 제가 분노하는 것은 왜 주체적으로 하지 못했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주자성리학적 의식과 장애가 2021년 한국에도 뚜렷하게 그대로 남아 있는데 왜 한국사람들은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걸까? 아직도 이런 주제가 나오기만 하면 극단적으로 증오와 분노를 표출하며 그 제안자를 표적삼는 전근대인들이 압도적인 다수인 현실이 왜 근대화되지 못하는 걸까? 라는 질문만 듭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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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조선과 대만의 생산성이 5배나 차이 났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입니다.대만의 흡수는 일본에 이익을 가져다 줬죠.조선은 도무지 이득을 낼 사업이 없었습니다.때문에 천일염도 도입해보고 본토인의 투자도 독려하고 했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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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新免武蔵그렇군요 대만하고 비교해볼 수 있는 점이 많고 흥미로운 내용의 고찰이 될 것 같습니다.당시 본토인의 외지(조선 “지역”)투자도 독려하고 이주 정책도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었나요?경성 진고개에도 처음엔 좀 찌찔한 일본분들이 이주했지만 조선인들 멸시와 차별에도 장사와 상인정신으로 싸워 이겨낸 일본 1세대 이주 상인들이 점차 사업이 성공하며 자식들은 본토 와세다 대학으로 내지 유학을 보내게 되었습니다.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와세다 대학 출신들이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 받고 경제학을 공부한 세대들로 혼마치의 상인 공동체의 부흥과 동시에 눈부신 혼마치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외지에 막대한 본토 일본인들의 투자가 있었다는 것 저는 인정하고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토대 중의 하나였다는 것. 저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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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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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마지막 문장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되네요~ 식민지 근대화론(A)을 알아보다가 다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던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슷해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A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를 확정한 후에 논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공통적인 부분들을 추출하여 엑기스로 만드는 작업을 한 후에, 사람 이름을 앞에 추가하는 방식같은걸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 스즈키 다케오의 A와 같은 방식이죠. '식민지'에 대해서도 스즈키 다케오는 "당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조선인을 식민지민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의 식민지조선근대화론Takeo Suzuki's Modernization Theory of Colonial Korea,박찬승) 이 부분을 보면 선생님의 주장이 이미 스즈키 다케오의 A와 크게 다른 것인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다른 인물의 A는 '식민지'나 '식민지배' 개념이 다른 경우도 있겠죠. 저는 A를 좁은 의미로서,예를 들어 '근대화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정도로 고정시킨다면 충분히 이 용어를 차용하여 역사학적 논의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스즈키 다케오의 A와 다른 경제학자 혹은 역사학자 등의 A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그냥 A라고 명명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A비판류'의 글들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어요. 그들의 A비판에는 A를 일본 우익이나 친일 세력의 이익을 위한 전략 쯤으로 치부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무튼 제가 선생님과 수준있는 토론을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공유해주셔서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려봤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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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d
- Ki Young Kim아주 좋은 의견과 말씀 감사합니다. 이게 중요한 문제라 그렇지 저도 캐쥬얼하고 자유분방한 위트 많이 좋아하는데 유독 일본 얘기는 좀 웃긴 얘기를 못하게 되네요^^ 토론에 부담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제 관점이 그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말씀하신 스즈키 다케오가 말한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논거로 제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너무도 당연히 식민지라고 표현했지만 공부하고 또 외국인들과 토론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식민지는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임시적 강점의 체제이고 외지 "조선(없어진 그 '나라'가 아니라 '지역명'입니다)"과 같이 일본제국 본토의 국가 인프라 구축과 투자가 집적되는 형태는 엄밀히 말해 식민지라고 규정할 수 없습니다.총독부의 존재가 곧 식민지 지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우리 자꾸 말꼬리를 붙잡지 말고 사실과 본질만 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일본제국도 당시 유럽 등을 통해 제국주의를 학습했고 식민지 또는 병합국이나 민족을 어떻게 관리하는 가의 문제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 혼용된 형태로 총독 체제가 있지만 본국의 지시를 받는 총독체제로 이해하는 것도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일제시대를 식민지로 규정해 얻고 싶은 증오와 혐오의 그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사실에 기반한 제대로 된 역사공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현재 "식민지"라는 규정은 증오에 가득찬 선동이자 특정한 정치적 목적으로 "근대화"를 곧 "식민지근대화"로 실추시키려는 좌파적 선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중립적이고 중의적 표현인 "한일병합"을 "경술국치"로 선동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물론 "경술국치"또한 북조선의 용어이며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한국에 유포된 반일 선동을 위한 개념조작입니다..좋은 의견 너무나 감사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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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7년 출판된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중에서......"프랑스 국민은 위대한 힘을 타국의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힘은 타국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 근성과 무감각 위에 무겁게 눌러앉았다. 마침내 타국의 국민들은 현실에 대한 자신들의 나태를 내팽개치고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배경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807년 나폴레옹이 독일 예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성과 자유의 상징으로 또한 세계정신의 실현태로 환호하며 서문을 최종 탈고했다고 하죠.타국은 물론 독일 프로이센이겠죠.1807년 우리 조선의 모습은 ???... 1980년 띄엄띄엄 임석진의 헤겔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노동의 개념을 읽어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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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렴풋이 알던 근현대사를 여기 참여 하시는분들을 통하여다시한번 들여다 볼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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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감사합니다. 선생님과 저와 다른 분들이 모두 같이 참여해서 만들고 있는 장입니다.^^ 표현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토론을 시작해도 실은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가서야 이 토론의 결실이 꽃피우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자랑스럽게 성장해 온 선배들의 바탕에서 서있는 대한민국의 지금 세대가, 우리 손녀 손자들에게 해야 할 책임들은 떳떳이 해 놓기 위해 최소한 노력했다는 것 만큼은 남기고 전달해줍시다. 일본 문제 얘기할 때 느끼는 마녀사냥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이념의 제한을 느끼는 세대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 끝내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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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진행되는 용어와 관련된 논의들이 개별 용어별로 진행 될 경우 용어마다 지닌 형성과정의 역사적 배경이나 관여 이데올로기 배경들이 상이하고 대중의 이해와 해석 층위도 매우 다양 한 이유로 관심 가진이들이 특정한 단일 해석에 이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따라서 단일 용어 단위로 그 당 부당을 따질 경우 혼란이 더욱 커지면서 최초 취지 자체가 실종되고 백가쟁명 식의 논쟁만 남을 우려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따라서 제 경우 이 이슈는 한국 근 현대사 전체를 놓고 벌어질 기존 헤게모니의 해체와 새로운 헤게모니의 구축이라는 전쟁 수준의 초거대 담론 프로젝트로 보고 장기적 관점에서 치밀한 기획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된 프로젝트를 저는 해전사라 봅니다. 현재 형성된 역사 해석의 틀 대부분은 아마도 해전사의 기획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해전사의 재해석이 있었지만 현재의 한국 근현대사 해석 헤게모니와 관련해서 해전사의 힘은 매우 강고한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해석틀을 내어 놓을 수 있을 때 용어의 혼란을 비롯한 근현대사 전체에 대한 이해와 해석틀의 재정립, 그리고 진정한 한국 사회 진보의 방향에 대한 전망등이 정립 가능 할것이라 여깁니다그럼 어떻게 접근 할것인가?해전사가 규정한 한국 사회 성격 설정의 틀을 해방전후기에서 조선 해체기로까지 확장해서 해전사가 기획한 민중과 무투를 근간으로 한 민족해방 운동 중심 근현대사 해석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 사회 구성과 성격 해석을 추진하는 기획을 수립하는게 필요 하지 않을까 싶네요대단한 규모의 프로젝트가 될것이라 어느 한 개인이 추진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기에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해전사 집필을 추진한 정도의 조직력과 기획력 정도도 결집시키지 못하고 개별 토픽과 용어 단위의 논쟁만으로 진행 된다면 매우 소모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집단 지성의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 성격의 재해석을 위한 기획이라는 토픽을 중심에 놓고 용어 하나하나가 아닌 기존 해전사의 한국 현대사 해석틀, 즉 한국은 해방후 친일파와 천민 매판 자본가가 장악해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립한 국가로서 계속 불의가 득세해 온 사회라는 인식 틀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결집해서 이를 해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필요가 있을 거로 여깁니다그래야만 사람마다 개별 사안 별로 있을 수 있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그랜드 패러다임 구축과 역사 해석 헤게모니 장악이 가능하다 싶네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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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ander Park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고 저의 내면에서도 울부짖고 있는 소리를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고맙고 반가운 말씀입니다.말씀하신 그런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워낙 공고한 고정관념과 이념이 지배하고 있어 저도 지금 개인 단위에서 개인의 실천으로 용어와 개념의 다시 쓰기를 하고 있지만 해전사와 같이 근현대사 전체를 펼쳐놓고 패러다임 재설정 차원에서 해석틀을 제시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제가 갈망하고 꿈꾸고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것입니다.지금 개인으로 당장 조선 후기와 일제시대 문제와 같은 기본 문제들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정작 쓰고 싶은 대한민국 건국 전후와 고도 압축 성장기의 산업화 시기까지 아예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간에 민감한 사소한 정치적 논쟁과 공방에 휘말리며 동력이 휘발되거나 탄력을 잃게 될 가능성을 높게 갖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선생님 말씀대로 집단 지능의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 패러다임 재설정을 토픽에 놓고 엄중한 프로젝트의 시대적 요구의 무게를 당당하게 인정하고, 이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엄밀한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고 반도 국가의 사투리가 아니라 국제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진술하고, 불의한 국가라는 인식적 전제와 같은 선동 말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우와 좌를 막론하고 읽어야 하고,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과 미국인이 같이 읽더라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유엔군이 6.25에서 피를 흘려 지켜낸 국제적인 대한민국의 위상과 책무에 걸맞는 국제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논점과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선생님 너무나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이제는 체계화된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일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저도 기도하고 땀흘리고 또 수소문하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국제적인 한국인으로 성장하고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 만으로도 이 일의 당위와 사명은 충분합니다. 선배님들의 역작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을 우리가 읽었다면, 이제는 그것에 회신을 보내야 할 충분한 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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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비록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는 있지만 전 그저 사업이 본업인 일개 장사치에 불과해서 역사에 대해 그다지 깊은 지식이나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보니 별로 도움될 일이 없다는게 한계군요 ㅎ어쨌거나 제가 말씀드린 일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을 위한 개념 맵의 설계에서 부터 시작 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이른바 IT 프로젝트에서 하는 시맨틱 온톨로지 또는 토픽 맵 설계죠이 일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 제대로만 수행되면 그 땐 각 토픽 이슈별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각 각 어떤 연구 방법론으로 수행해야 할지도 판단되기 때문에 탄력과 동력이 확 붙게 될거라 여깁니다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하듯이 수행 하는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어야 하지 않을 까 싶네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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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2 more replies - 일본과 조선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의 시발점은 임진왜란 까지 소급해야할 것 같습니다.즉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과 당시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 상황을 기본으로 임진왜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이순신 거북선 3대 대첩으로 형해화된 국뽕 기억을 대체할 사실들을 깨우쳐야 할 것 같습니다.고딩때 세계사와 국사의 연대기 비교 시험문항들이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상황들을 이해해야 객관적인 우리의 모습이 드러날 듯 합니다.구한말 버나드 비숍 여사의 책 제목을 김수영 시에서 발견하여 읽었던 기억이...강추: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을 얼마나 아십니까? 8부작 유투브. 한명기 교수님 입심이 재미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로 듣게 되더라구요임진왜란 얼마나 아십니까 1 - 도올 김용옥, 한명기 교수YOUTUBE.COM임진왜란 얼마나 아십니까 1 - 도올 김용옥, 한명기 교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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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영네 선생님의 간결하고 알찬 설명을 보면서 제가 잘 몰라서 자꾸 말이 길어지는구나 반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만도 총독부가 따로 있었으나 조선 총독부와는 달리 본국의 민법이 동일하게 적용되었었군요! 조선 총독이 행정부 직속이 아니라 천황 직속의 총통 관장이었다는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되네요.또 하나가, 당시 관료들이 해외 유학 경험을 갖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총독부의 관료들은 상당수 미국 유학파로서 리버럴한 성향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반대로 본국에서 벌어지던 군국주의 억압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자유로왔고, 일중전쟁 시기부터 본토에서 강력하게 시행된 유흥업소 단속 및 집체활동(파티 등)의 금지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태평양전쟁을 간접적으로만 체감하던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아무래도 선생님 언어가 전공자 분이신 것 같은데 제가 좀 무지하고 서투른 부분 있어도 귀엽에 봐주시고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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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9년 프랑스혁명후 1793년 프랑스 왕 루이 16세 단두대 처형과 마리 앙트와네트의 참수...서구 민주주의 뿌리와 기원에 대한 비교 성찰이 부족하죠.종모법을 강화한 세종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 정체불명의 조선왕조를 떠받드는 좌우 불문한 사>농공상의 나라죠. 상=공=농=사로의 균형은 전복의 계기가 결여되어선 이루기 쉽지 않을 듯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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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현올려주신 이미지를 보니 김홍집이 떠오릅니다. 온건 개화파의 거두이자 내각 총리였던 김홍집은 여러모로 우리가 공부해야 할 인물입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사이에서 나름 현실적인 중용 정책을 펴고자 했던 애국 대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종은 일본에 붙어 있다 한밤중에 러시아로 파천하며(아관파천) 마치 자신이 일본에 붙어 먹었던 전력을 지우려는 듯 갑자기 김홍집에게 <친일파>라는 표적을 붙여 씌우고 저 놈을 때려 죽이라고 일본과 개화 자체에 뿔이 나있던 성난 군중들에게 먹잇감 처럼 그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러시아 공사관으로 기어 들어간 고종은 러시아에 각종 이권이 관련된 사업권을 러시아에 넘겼습니다. 이 사건은 제 관점에서는 1904년의 일러 전쟁의 총탄이 장전되는 근원적 사건이 되고, 장전된 탄환은 6.25를 거쳐 대한민국과 북조선 수립이라는 과녁을 가로지르며 오늘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내각 대신인 김홍집을 재판이나 법적 절차도 없이 광화문에서 군중들이 짐승의 광기로 때려 죽이고 밟아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은 1차적으로는 고종의 책임 뒤집어 씌우기와 저 놈이 친일간첩이다!라는 선동이었고 2차 적으로는 위정척사 성리학자들이 반발하며 타겟팅했던 “친일당의 두목”이라는 죄목이었고 3차적으로는 그 군중들의 배후에 있던 친러파 군인들이었습니다..광화문 광장에서 목을 쳐 죽여야 했던 것은 김홍집이 아니라 바로 고종과 민비, 민씨 척족들이었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선생님과 관점이 좀 다릅니다.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짜 사탕을 매달고 있는 좌파들의 광기어린 죽음의 마차행렬이었고, 자유 민주주의의 뿌리라기 보다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소련 및 러시아, 북조선이라는 공산국가의 인민 숙청과 단죄의 뿌리라고 봅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이라는 죽음의 세레모니는, 오늘도 제주도 <4.3>을 <4.3 항쟁>으로 위험한 조작 선동을 책동하고 있는 현 문재인 정권의 항쟁 서사 조작의 근원적 뿌리이기도 합니다.선생님 말씀처럼 서구 민주주의 뿌리와 기원에 대한 비교 성찰도 필요하고, 펼쳐놓고 공부하며 누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무엇이 왜 그러한지 학생들과 또 다른 관점에서 토론하고 현재로 비춰 보아야 할 주제들이 모두 그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사농공상은 너무 현재에도 리얼하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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