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의 저자인 김반아 박사를 만났습니다. 김 박사는 우리 스스로도 몰랐던 '감정줄' 로 고통 받은 사람을 치유하며 평화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화가 나는지, 엄마는 늘 왜 저러시는지 몰랐던 자녀와 엄마들을 향한 치유의 메세지입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교육철학을 연구한 김반아 박사는 ‘평화 영성가’이자 ’영세중립통일‘ 운동가입니다. 2015년 세계의 여성평화활동가들과 함께 DMZ 횡단 (2015 WomenCrossDMZ)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전화는 늘 똑같습니다. “밥은 먹었니?”, “넌 왜 그렇게 엄마한테 전화를 안 하니?”, “엄마랑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러시다가 “너는 엄마 생각도 안 나니?”, “딸이 되어서 왜 그리 이기적이니?”,“다른 집 딸들은 엄마한테 살갑게 구는데 너는 도대체 엄마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로 이어집니다. 안부로 시작해 신세 한탄으로 끝나는 엄마의 전화가 영희 씨에게는 마치 고문처럼 느껴집니다. 도대체 전화가 즐거워야 통화도 하고 싶어진 텐데 말입니다. (…) 엄마가 뭘 원하시는 건지.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 『딸은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김반아, 박범준. 예담. 2017)
친밀하지만 존중하진 않는 모녀 관계
대부분 한국의 모녀간엔 그 어떤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줄이 있다. 엄마의 말이 시작되면 딸은 이미 엄마의 의도(?)를 눈치채고 답답해진 가슴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엄마는 딸의 이런 차가운 반응이 못마땅하고 섭섭하다.
김반아 박사는 이를 전형적인 ‘감정줄 관계’라고 했다. 모녀간 꼬인 감정의 관계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엄마와의 관계에서 쌓인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엄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긴밀하기에 독립된 영역을 구축할 수 없다. 얽혀버린 관계는 결국 서로를 짜증과 애증의 관계로 끌고 들어간다. 이런 패턴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똑같이 전개된다. 한국 사회 특유의 정情은 이렇게 한恨으로 이어진다.
건전한 모녀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엄마와 딸 사이로 발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잘라주지 않은 감정 탯줄’에 얽매이게 되면 그들은 감정줄의 올가미에 걸려 고통 받으며 일생을 살아간다. 김 박사는 일찍이 이 문제를 직시하고 자기 삶 속에서 풀어갔다. 자신의 체험과 연구로부터 길어 올린 이야기,『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를 보고 인터뷰를 청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가을볕이 맑은 종로 사직공원에서 했다.
출산 때 탯줄을 잘라주듯 아이가 성장하면 감성탯줄 역시 잘라줘야 해요
기자 먼저 조금은 생소한 ‘감정줄’ 이란 용어를 설명해주십시오.
김반아 감정줄은 아이의 출생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잘라주진 않은 채 방치된 감성탯줄이 변질되어 생긴 것이에요. 감정줄, 감성탯줄은 인간발달에 중요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감성탯줄은 아이가 잉태되면서 엄마와 감성(느낌으로 아는 능력)으로 연결되어 태중에서부터 엄마와 주변 세상을 감지하는 통로죠. 감성탯줄 때문에 엄마는 아기를 자신의 몸같이 잘 알고 돌봐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탯줄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즉시 잘라주잖아요? 하지만 감성탯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잘라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요.
건강한 관계에서는 아이의 자아의식이 생기고 독자적인 사고체계가 구축되면 아이와 엄마를 하나로 묶어 놓았던 감성탯줄이 점차 약화하고 그 자리에 생명줄이 들어서죠. 이때 아이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바뀝니다. 성숙한 부모는 아이가 주체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아이와의 관계가 대인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지도합니다.
이와 달리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엄마의 경우 자신의 결핍을 아이의 존재로 채우려 합니다. 아이의 주체성을 무시해 끌고 당기고 통제하는 무지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이 바로 감정줄입니다. 모든 꼬인 관계 안에는 감정의 줄 당기기가 일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감정줄에 걸려있지 않은 사람은 꼬인 관계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습니다.
기자 선생님을 ‘감성 치유사’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일반 정신과에서 하는 ‘심리 치료’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요?
김반아 저는 ‘감성치유사’이자 ‘감성해결사‘라고 생각해요. 치유의 전 과정에서 저는 ‘함께 창조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어요.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치료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진료실이나 상담실이 아닌 일상 속에서 한다는 거죠.
제 책이나 다큐멘터리 상영이나 강연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문화 행사를 함께 조직하면서 어우러지기도 합니다.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고, 주어진 상황과 여건을 최대한 창의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창조적이고 더욱 성숙한 인간관계로 발전하죠. 이 과정에서 서로의 사회성도 증폭돼요. 저는 이걸 ‘삶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함께 창조하는 삶의 예술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기자 책 제목이 왜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입니까? 엄마가 딸에게 화가 날수도 있지 않습니까?
김반아 모녀 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엄마가 강자이고 딸은 약자죠. 요사이는 자녀들이 강하게 나와서 반대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언어체계를 보면 그 내막을 판정할 수 있어요. 자녀가 부모에게 존댓말을 쓸 때, 그 위계질서가 확연히 드러나요. 존댓말을 쓰지 않는 경우에도 한국말에선 자녀에 대한 엄마의 말투는 윗사람이고 수직적이고 하향적이죠.
자녀들은 엄마에게 언어를 통해 압박받고 감성적 폭력도 경험하게 됩니다. 딸의 마음속에는 화가 쌓이고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온 데 대한 문제의식이 생생하죠. 엄마와 관련된 딸의 화는 존중받지 못한 데서 오는 불만감이 원인입니다. 물론 엄마 속에도 화가 쌓여있고 심하면 화병이 생깁니다만, 엄마의 화의 큰 부분은 딸에 대한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서 온 화의 복합체입니다. 엄마 역시 자신의 엄마로부터 대물림한 부분이 큰데, 이를 모르고 살아가면서 무의식 속에서 딸한테 화를 전가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기자 부자지간이나, 모자지간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김반아 부모와 자식 관계에는 거의 모두가 오래된 감정줄이 있어요. 그런데 이성끼리는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이성 관계의 부모와 자녀, 즉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은 지나치게 가까울 수가 있습니다. 심할 때는 ‘감성적 근친상간’도 일어나요. 고부 관계의 문제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너무 가까운 데서 일어납니다.
사랑이 없는 부부관계에서, 엄마는 아들과 ‘대각적 밀착’(cross bonding)을 하게 되고, 모르는 사이에 아들의 첫사랑이 돼버리죠. 그러면 당연히 며느리와 한 남자를 놓고 경쟁을 하게 돼요. 반면에, 부자지간에는 대화가 부족하고 냉랭하고 경쟁적일 수 있습니다.
감성독립선언을 하는 건 마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과 같아요
기자 한국에 특히 ‘존중 없는 관여’, 감정줄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십니까?
김반아 한국 사회엔 적정거리를 두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부족해요.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감성이 예민하고 정이 많고 감정적인 편이잖아요. 제 생각엔 땅덩이는 작은데 인구는 많아서, 항상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공간요인도 크다고 봐요. 그런데 친밀하면 불쑥 개인적 영역까지 침범하기가 쉽습니다. 운전할 때 차와 차 사이에 적정 거리를 두어야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데, ‘정’이 많다’는 한국인 정서 이면에는 적정 거리에 대한 관념의 부재가 있어요.
엄마들은 자식의 내면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성인이 되어도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엄마병’ 혹은 ‘한국 엄마 바이러스’라고 부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수직적이며 밀착된 한국식 정서는 가부장 家父長 전통에 뿌리를 둔 것이고, 갑질 문화가 형성되기 좋은 풍토죠. 적정 거리가 부재하면 갑을관계에선 살벌한 무시와 음성적 폭력이 창궐하기 쉽습니다.
기자 ‘감성독립선언’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엄마에게 나를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언장을 보내셨습니다. 꼬인 관계의 청산을 위해 이런 단절의 경험, 선언이 필요하다고 보셨는지요?
김반아 감성독립선언장을 써서 보내거나 낭독하는 것은 감정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 돼요. 해보시면 알겠지만, 감성독립을 선언하는 것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는 것과 흡사한 체험입니다.
강자에 끌려다니던 것을, 이제는 자신의 운명의 운전대를 양손에 잡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가 감성독립선언장을 보냈을 때 처음엔 저의 어머니도 혼란스러워하셨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인생관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자 저의 창조적인 삶을 위해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주셨어요. 결과적으로 우린 동지가 되었고, 저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한반도 중립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박사님은 왜 어머니에게 그렇게 화가 나 있었습니까?
김반아 세월이 지나면서 저는 제 화가 어머니에게 향한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물려받은 부권주의의 시대의 문화와 그 배경에 대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의 화는 그 덫에 걸려 확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화’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저의 내면세계가 탄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제 화의 큰 원인이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저를 이해하고 지원해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나고 보니까 작은 것이었고 해소할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이후 저의 화는 같은 여성인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감사함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복합적인 덩어리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숙한 마음이 엄마를 원망했던 거죠.
어머니는 강인하고 두려움 없이 큰 목표를 세워 돌진하는 여장군 같은 분이셨어요. 전쟁과 피난을 살아내셨고, 세 차례의 이민을 하시면서도 꾸준히 마음공부를 하신분이셨어요. 끊임없이 책을 읽고 항상 배우려 하셨어요. 자제력과 목표의식이 강한 분이셨죠.
우리의 모녀 관계를 재정립하자고 제가 제안했을 때도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십 년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어머니는 제 마음이 흡족할 때까지 노력하셨어요. 결국 어머니를 너무나 존경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한 가지. 우리가 고치는데 애먹은 부분이 있어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당신 생각으로 정리하여 답을 내리곤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아주 싫어했어요. 제 말을 끝까지 듣고 자신을 거울에 비추며 질문도 하는…. 그렇게 하길 바랐어요.
좋은 대화는 상대의 말을 깊이 듣고 그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되잖아요. 어릴 때 저는 감정과 생각들이 속에서 얽혀 늘 끙끙댔죠.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었어요. 그 후 많은 노력을 했어요. 반대로 제 손자 손녀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신기할 정도로 자기 생각들을 잘 구사하는 걸 보며 깜짝 놀라곤 해요. 주변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어요.
기자 석사 논문은 『칸트의 제3비판에 대한 고찰』, 박사 논문은 『Self-transcendence and Education』(자기 초월과 교육)입니다. 이후 연구자로서의 삶보다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신 것으로 보입니다.
김반아 박사 논문이 미국교육철학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미국 공교육은 영성이 배제된 현실주의 교육의 전통을 이어가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더욱 커졌죠. 한국은 미국교육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지금 한국의 학교, 학생들 간에서 빚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나온 후 저는 ‘생명모성 철학’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어요. 영성과 감성을 통합하는 관계치유와 해결사 활동이죠. 이 과정은 남이 써놓은 것을 읽고 재정리하는 식의 ‘머리작업’보다 생명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상호신뢰를 만들어 ‘생명을 살리는‘ 힘을 생성해 내는 것입니다. 이 방식으로 하면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사회적 결실을 가져다주는 ’실천적 각성의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기자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김반아 종교라면 보통 울타리가 있는 ‘조직종교’를 말하는데, 저의 신앙은 모든 종교의 근간인 진리의 가르침이고 성현들이 살아내신 영성입니다. 저희 집안은 원불교였어요. 하지만 이화여중‧고에서 6년간 개신교 신앙을 익혔고, 1964년 이민 가기 전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어요.다른 문화권의 신앙인들과 교류하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저는 종교의 토대를 신성 神性(순수영성)이라 봅니다. 신성을 생활 속에서 구현해 내는 것은 모든 종교인의 과업이기도 하죠. 이를 위한 수행의 여러 가지 방법론을 여러 종교의 가르침에서 배워왔어요. 원불교는 마음공부에 대한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 원불교 정전의 현대판 해석서가 나와서 공부하고 있어요.
기자 왜 한국에 더 천착하게 되셨습니까?
김반아 한국에 저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제가 누구인가를 알고 저의 인생을 종합, 정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돌아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이 한국식으로 왜곡된 관계, 가부장제도에서 오는 압박감과 상처가 지금도 산재해있는 모습들. 분단과 관련된 남남갈등,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친인척 선후배 관계 등에 주목했어요. 그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고 싶은 심정이 생겼어요. 그건 제 속 깊이에 있는 인간애가 발동된 것이고, 1964년 부모 따라 이민 나가서 50여년을 국제 방랑자로 살아 온 저에게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한국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강렬한 모성이 있어요. 내면에 맺히고 왜곡된 부분을 치유되고 탈바꿈하면 그 자리에 ‘생명모성’이 충만하게 들어차게 돼요. 그래서 전 한국 여성들이 사회적 대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과 교육열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생명모성’의 기운이 퍼질 수 있고, 한국에서 인류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죠.
제 책이 원래 출판사(예담/위즈덤 하우스)에서 20~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는데 뜻밖에도 60대분들이 구매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 제주도에서 대안학교의 아이들에게 강연한 적 있는데 놀랍게도 15,16세 아이들 열두어 명이 흥미를 보이며 모두 책을 사서 사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자기들이 먼저 보고 엄마에게 보내겠다고 하면서.
기자 선생님께서 한국의 가정과 사회에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김반아 ‘감정줄‘ 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해요. 그동안 감정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가정과 직장에는 감정줄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이 모두 있는데, 이 들 모두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고 살아왔거든요.
의식하지 못하고 부당한 행위를 해 온 강자나, 의식하지 못하고 피해당해 온 약자들이 모두 다 ’감정줄‘에 대한 이야기를 그룹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감정줄의 낡은 관계’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져요. 저는 ‘감정줄’, ‘존중’, ‘생명 모성’ 이 세 단어만 퍼져도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세중립통일국'이야 말로 반복되는 한반도의 고통을 끝장낼 방안
기자 영세중립국 통일방안을 확산하는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세중립국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꽤 있습니다. 북과 남에서 만난 인사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반아 평양에서 들은 말에 의하면, 북한은 이제 자주국이 되었기 때문에 중립화된 거나 다름없다고 해요. 그들은 ‘자주화’와 ‘중립화’를 하나로 보고 있더군요. 남측의 여러 인사에게서 들은 말 중 아주 인상적인 것은 “한반도는 운명적으로 영세중립국이 되게 되어있다.”라는 말이에요.
제가 ‘영세중립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저의 어머니가 1975년에 캐나다 여권으로 평양에 가서 조국전선의 초대의장을 역임하셨던 외조부 이종만 선생을 만나고 온 후입니다.
외조부는 일제 강점기 때 ‘대동 사상가’였습니다. 외조부께서 1948년에 발표한 ‘대동교학회 취지서’에 “다시는 인류사회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구구절절이 나와요. 외조부님은 한반도의 영구적인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꼭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뜻의 유언을 남기셨어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남북이 ‘영세중립연합국’이 되길 희망합니다. ‘체제통일’은 접어놓고 교류와 경제협력으로 나가는 방안입니다. 물론 중립국은 비상시 자국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해야 하죠.
남한이 섬의 상태에서 벗어나, 부산에서 네덜란드의 헤이그까지 가는 날을 꿈꿉니다.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 一帶一路’ 사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유럽, 해상으론 아프리카까지 인프라를 깔고 있잖아요? 우리도 대륙의 한 부분이 될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은 저물고 있어요. 지나친 군사비 지출로 경제위기(2008)를 맞고 세계 경제에 파탄을 가져왔던 미국은 현재 국방예산을 삭감하는 중입니다. 패권주의는 쇠하기 마련입니다. 경제적 상황과 정책적 변화로 미국이 한국에 손을 떼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입니다. 그땐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기울지 않도록 중립화를 시켜놓고 떠나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에도 맞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반대할 나라죠. 하지만 미국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요.
언제까지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으로 우리 민족은 물론, 주변 강대국이 막대한 군비와 국가역량을 쏟아야 합니까?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은 한반도가 고통의 고리에서 풀려나올 방안이에요. 지금은 비록 매우 어려운 정국이지만, 미래엔 새로운 정세가 열릴 겁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 남북한의 지도자와 국민은 ‘영세중립국 통일방안’을 중요한 옵션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 기회를 놓쳐선 안 돼요. 국민에게 이 정보를 널리 알려주어야 합니다.
기자 책에 가정이 우선 좋은 수련장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표현하신 ‘가정도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독자들에게 가정에서 지켜야 할 좋은 방법을 권해주세요.
김반아 우선 정기적인 가족회의입니다. 가족회의를 통해 규율을 함께 정하면서 ‘자주적인’ 가정공동체를 운영해야 해요. 나라에 자주성이 중요하듯 가정에도 자주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전 과정에 아이들이 참여해야 해요. 아이들이 제 생각과 의견을 적절하게 발표하게 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배워가게 하는 것이죠.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독립된 인격체로 키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부모가 자기 기준으로 규율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명령하면서 규율이 순간적 폭력 관계로 변질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흔히 아이들이 미성숙해서 규율을 지킬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이는 ‘존중’받고, 제 의사와 가족 결정을 ‘책임’지는 훈련을 통해 창의적이고 책임감 있는 존재로 성숙하죠. 아이들에게 엄격한 규칙과 잔소리로 규제하는 것이 일상이 되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입니다.
저는 상당히 준비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비교적 헤매지 않았어요. 저녁엔 아이들과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듣고 표현하게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손주들도 ‘가정도장’에 익숙해져 있어요. 공통의 규율과 가정의 결정이라는 공동체 훈련을 어려서부터 하면 아이 마음에 안정이 생깁니다.
진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건 아이가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정보를 구하고 길을 찾고 실수도 하면서 제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키워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삶에 대한 감각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해요. 부모의 직업관으로 아이의 미래를 재단하면 안 됩니다. 미래엔 지금 부모들이 생각한 방식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요. 자주성과 사회성 키우기가 가정도장의 핵심 목표입니다.
김반아 박사는 현재 한국에서 <생명모성으로 본 평양> 전국 강연 중이며, 올 10월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10월 11일 저녁 7시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생명모성으로 본 평양’ 강연이 있고, 10월 23일 정독도서관에서 교보문고 협찬으로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책에 대한 강연이 있습니다. 정독도서관 02)2011- 5799 (다음 카페 생명모성의 길 http://cafe.daum.net/pathtopeace)
김반아 이력
생명모성의 길 지킴이. 감성 클리닉 원장,
Eric Hansen Group 국제부장.
아바타 위저드/마스터.
패션디자이너.
Eric Hansen Group 국제부장.
아바타 위저드/마스터.
패션디자이너.
2007 다큐멘터리 님의 소원(Sacred Mission Korea) 제작 및 감독
2010 도서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기획/구성
2012 Corea Mexico Festival 공동기획/연출.
2013 다큐멘터리 Heart Connection with Koreans 제작/감독
2014 제주에서 Mona Polaca (미국원주민)과 땀움막 공동기획
2015 WomenCrossDMZ 공동조직위원,
2017 <생명모성으로 본 평양> 전국 강연
2017 생명모성 워크숍
2017 도서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공저
2010 도서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기획/구성
2012 Corea Mexico Festival 공동기획/연출.
2013 다큐멘터리 Heart Connection with Koreans 제작/감독
2014 제주에서 Mona Polaca (미국원주민)과 땀움막 공동기획
2015 WomenCrossDMZ 공동조직위원,
2017 <생명모성으로 본 평양> 전국 강연
2017 생명모성 워크숍
2017 도서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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