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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06:42:49 조회 : 1818 | ||||||
기자:스님생활을 하시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이민교선교사: 저는 원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원광대학을 마치고 소록도에 원불교 법당을 짖고, 소록도에 계신 나병 환자에게 포교하던 중에 도리어 전도를 당하게 되었지요 . 어릴 때부터 장애인을 목도하면서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미안해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혹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찾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은 사람들이 소록도에 살고 계신 나병환자(한센병) 들이라고 듣고 불교의 교리에 근거하여 다음생에는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면서 부처님의 윤회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나병환자가 되려고 그곳에서 살다가 결국은 그들이 믿고 있었던 예수에 전염이 되어 이렇게 크리스찬이 되었지요. 이 땅에서 이미 영생을 살고 있는 소록도 나병환자들의 예수행복이 나를 변화시켰던 것이죠 내가 예수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예수 믿게 한 것이지요. 기자: 어떻게 해서 선교사역을 이슬람 지역에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민교선교사: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이런 것을 몰랐을 때 제가 예수를 경험한 후에 소록도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분이 침례교 목사님 이셨지요. 그 분의 소개로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교수님들이 미국 소련... 결국 소련이 무너졌으니 곧 주님이 오실 것이다 등등 소련이 무너졌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소련이라는 적군이 없어졌으니 곧 주님이 오시지 않겠냐고...세대주의적 종말론의 강의를 듣게 되었지요. 어떻게 하지... 나는 이제 예수를 믿었는데... 주님이 곧 오신다면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문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버림받은 소련 땅에서도 이슬람 지역의 알라(신)의 저주로 인식된 이슬람의 장애인들에게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에게 받은 예수의 행복을 전염시키기 위해 이슬람 땅에 처음으로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1993년부터 ) 선교사로서 교회를 개척하러 선교지를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예수의 행복을 삶으로 전염(??) 시키기 위해서 단순하게 선교지로 떠났던 것입니다. 기자: 이슬람지역에서 농아인 축구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농아인 축구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이민교선교사: 축구를 하려고 선교지를 간 것도 아니고... 동네에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으니까 동네 유치원 탁아소를 다니고 있었던 4살 2살의 하늘이 영광이를 어떻게 하면 동네 아이들과 친근감있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축구공을 가지고 동네에서 놀다가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우즈베키스탄 나라가 생긴이레 처음으로 농아축구팀을 만들어서 아시안게임도 출전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목적이 있었던 축구사역이 아니고 그냥 놀다가,,,, 그러니까 선교지 현지의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시작이 된 사역이지요. 기자:이슬람지역에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이민교선교사: 전주에서 개업약사로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아내의 도움으로 선교를 시작해지요. 젊었을 때(만 9년을 약국했으니까) 돈을 좀 벌었으니까, 약국을 팔아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만 선교를 하고 오자고...선교를 하다보면 땅끝에서 주님을 만나지 않겠냐고...이렇게 아내를 잘 설득해서 약국을 팔아서 단순하게 시작했던 선교였습니다. 첫사랑을 쏟아부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9 11 테러 이후에 목사의 신분으로 추방이 되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더이상 선교를 그만 하려고 포기를 했다가. 주님이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콩>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이상하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콩>으로 비즈니스 개념의 일터교회를 시작하면서 먹고 살고 있지요. 콩나물 장사 - 두부장사 - 뻥튀기 장사 등등 현지인을 사장으로 만들어 내는 꿈을 심어 주면서. 카자흐스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땅에서 추방을 당한 후에.. 이슬람은 3개의 써클이 돌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 - 모스크(성전)- 일터, 그런데 제가 선교를 잘 했다 못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슬람 땅에서 살았던 저는 선교사로 2개의 써클만 돌리고 있었습니다. 농아들에게 축구를 통해 개인에게 사랑을 전하고 -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라는 공동체가 생기고...교회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교회의 공동체가 되었던 것이지요 결국... 일터(시장)이 빠진 선교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카자흐스탄에서의 선교는 일을 통해 장애인들을 독립시키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기자: 최근에 북한 농아인 축구감독을 수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민교선교사: 저에게는 영적으로 자식이 3명이 있답니다. 첫번째 자식은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우즈베키스탄 장애인, 두번째 자식은 하늘나라 장사꾼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카자흐스탄 장애인, 세번째 자식은 감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하늘이 준 하늘자식 북한의 장애인입니다. 저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에서 국가대표 농아축구팀 감독으로, 아시안게임에 4회, 올림픽 그리고 월드컵에 출전하며 농아축구를 통한 이슬람 지역의 장애인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2년 8월.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와일드카드(wild card)로 출전한 북한 장애인 선수 임주성의 손짓을 보게 되었습니다. ‘통일’, ‘북한사역’이런 단어들과는 관계없이 살고 있던 처지였으나, 저는 임주성의 손짓을 통해 북한 농아축구팀 창단이 필요하다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음성에 응답하여 북한을 다녀온 것(2012년 12월)이 북한 장애인 사역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한반도’, ‘38선’, ‘남과 북’ 이런 표현들과 함께 대한민국이 저에게는 허리가 잘린 장애인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이 땅 한반도가 38선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리어 허리신경이 마비된 장애인 국가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2012년 12월 3일, 평양의 해방산 호텔에서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와 38선의 반쪽짜리 땅이 오버랩(overlap)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땅이 허리 신경의 마비로 인하여 위쪽(북한)과 아래쪽(남한)이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농아인 국가임을 온몸으로 체휼(體恤)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선교사님의 비전소개해 주세요. 이민교선교사: 저의 비전은 장애인들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것인데요. 첫째. 재정이 확보되면 북한농아축구팀을 제 3국에서 전지훈련을 시킨다. 둘째, 북한농아축구팀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딸 수 있게 한다. 셋째, 평양에 농아축구팀 인조잔디 풋살경기장(40m x 20m)을 만들어 준다. 저는 감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님의 은혜로 북한의 장애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과연. 성경이 말하는 통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갔던 것처럼, 필자는 휠체어와 흰 지팡이, 그리고 마주잡은 손짓사랑으로 38선을 통과하여 막힌 동맥을 뚫어 줌으로 반쪽나라인 장애 국가를 건강한 나라, 하나 된 나라로 회복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을 평화한국의 원년으로 삼고자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기억하는 단순한 숫자일 수도 있겠지만 70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한 농아축구대회를 통해 농아들이 휠체어를 밀고 흰 지팡이의 안내를 받아 허리신경이 마비된 장애 국가의 허리를 장애인들과 함께 걷고 또 걸어서 주님의 은혜로 70년 동안 막힌 38선의 동맥을 뚫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남겨놓고 온 반 쪽 심장 때문에 더 이상 거친 숨을 몰아쉬지 않고 위에서 오는 평안의 하늘 숨을 쉬는 그날이 통일한국의 때임을 가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는 통일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통일연습은 구체적으로 2013년 10월, 북한 농아축구팀 창단으로 시작 되었고 향후 통일한국이 되어 서울과 평양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그날까지 요셉의 실천신학과 행동하는 통일연습으로 평화한국을 세워나가려고 합니다. 먼저 스포츠 올림픽을 통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로 인해 아시아지역에서는 약 20년을 주기로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데, 1964년 동경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028년 혹은 2032년에는‘서울평양 통일올림픽’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꿈을 꾸면서 형제애 사랑으로 평화한국 너머에 있을 복음적 통일한국을 바라보며 오늘도 소외된 남북한 장애인들과 함께 북녘밀알(seed of north korea)의 씨앗을 심어봅니다. 장애인국가인 대한민국이 열방을 섬기는 제사장나라가 되는 그날을 꿈꾸어봅니다. 기자: 선교사님을 후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후원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민교선교사: 아래와 같이 후원을 할 수 있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의 방법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실 수 있고요 MissionFund.org/a.asp?a=NKmilal 두번째 방법은 지피(GP)선교회 미주본부(LA) 이민교 앞으로 하실 수 있습니다. 지피선교회 미주본부 주소 Global Partners. USA 10582 Katella Ave. Anaheim. CA 92804 USA (714) 774 - 9191 | ||||||
2017-10-02
이민교선교사(카자스탄)
크리스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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