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2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긴 여행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긴 여행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긴 여행에서

금강일보
승인 2018.07.30

한남대 명예교수


여행할 때마다 우리 인생이 긴 여행이라고 진정으로 알아차린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평화롭고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더 깊이 생각하고 많이 배우려고 하고 친절하며 행복할 것이라고 느낀다. 나는 7월 4일부터 31일까지 호주와 미국을 다녀왔다. 남의 나라라는 곳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국경이라는 아주 쓸데없는, 국적이라는 아주 쓸모없는 제한에 걸려서 사람의 존엄을 무시당하고 더럽혀지는 것을 경험하다. 안전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여권검사를 받으면서 신발을 벗고, 혁대를 풀며, 손을 올려 온 몸을 수색당하고, 온갖 짐을 다 풀어보여야 하고, 손가락 지문을 비추고, 얼굴 사진을 찍어야 하는 참으로 인격이라고는 조금도 존중받지 못하는, 때로는 수모스런 일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따르면서 투덜거리게 만드는 제도들이 점점 더 강화되는 것을 느낀다. 이번에 호주와 미국에 들어가면서도 그것을 경험하였다. 그런 더러운 제도들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것들인데, 이른바 테러라는 것들이 사라지는 때가 바로 왔으면 좋겠다.

나는 8일 동안 진행된 호주 퀘이커 연회에서 ‘일상생활에서 퀘이커 신비(주의)와 도가의 신비(주의)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다. 모든 종교는 언제나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화한다는 것, 다른 문화나 역사권에 들어가면 언제나 그 지역에 적응한다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풍성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궁극으로 가면 모든 종교는 생명과 진리라는 것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니까 어느 종교 하나만이 유일한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언제나 우리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탁월한 종교전통을 폭넓게 받아들여 자기 종교를 풍성하고 깊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렇게 하여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점점 더 풍성하고 깊어지며 본질에 가깝게 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완성된 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완벽한 것도 아니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종교요 궁극존재의 성장과 성숙이라는 것을 말했다.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종교 간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각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이해와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임마다에서 서로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경험하였다. 특히 마감친교시간에 각자 자기들이 가지고 온 악기나 재능으로 소통하는 시간에 나는 단소로 우리 악기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난 뒤에 나는 미국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는 내가 존경하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신 서의필(John Somrville) 선생이 계신다. 그 선생이 90세신데, 건강이 썩 좋은 것이 아니다. 그분은 1954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셨던 분으로 대학에서 탁월한 배움을 주셨다.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는 여러 각도의 다양한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분에게서 배웠다. 미국에 사는 선생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축하하기로 모임을 주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다가 가기로 결정하였다. 기억력이 많이 약해진 선생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뵙고 기쁘게 인사를 나누면서 두 가지 노래 ‘아리랑’과 ‘놀라운 은혜’라는 것을 단소로 정성을 담아 불었다. 만나 뵙기 전에는 무거운 맘이었으나 헤어질 때는 참으로 맘이 많이 가벼워졌다. 스승이나 제자나 모두가 다 함께 평화와 건강과 기쁨을 빌었다. 이번 여행 중에서 나에게 아주 가볍고 신선함을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퀘이커 교육과 피정센터인 펜들힐(Pendle Hill)에 갔다. 많은 퀘이커들은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어떤 영감을 받는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1930년대에 세워진 곳으로 평화와 영성을 따르는 삶을 훈련하고 경험하며 전파하는 곳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곳에서 예수와 유다를 체험하는 유명한 ‘펜들힐의 명상’을 쓰시기도 하였다. 내가 잔 방 바로 옆 벽에는 그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과 잘 정돈된 정원과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거닐면서 내 나름의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 평안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카고에 가서 우리 한국인들의 독서모임을 만났다. 이분들은 한 학기에 12번 정도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한단다. 이곳에서 함석헌 선생의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 그분들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른바 번개모임이 이루어졌다. 여러분이 오셨다. 나는 그분들과 함석헌 선생의 ‘참에 사로잡혀서 산 삶’을 함께 생각하였다. 내가 이해하기에 함석헌 선생이 말하는 참은 하나님이요, 부다요, 도(길)요, 생명이요, 내면의 빛이요, 내 속에 계신 스승이었다. 선생의 삶은 그의 명령에 따라서 일생을 사시고, 진리와 평화를 일구기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내 여행에는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함께 했다. 호주의 연회에서 강연하도록 추천하고 결정한 위원들이 있었고, 그 글을 영어로 번역하고 교정하고 읽어준 친구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스승을 만나는 기획을 하고 안내하고 재워주고 먹여준 친구들이 있었다. 만나는 곳마다 하나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느끼게 하려고 애를 쓴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 한국의 뜨거운 여름과 호주의 겨울,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초가을 같은 여름 날씨, 그 사이에서 만난 한결같이 친절한 친구들. 그것들을 거치면서 내 맘에는 더욱 깊은 사랑과 평화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노회찬 의원의 별세와 박정기 선생의 돌아가심을 가슴 깊이 아픔으로 느낀다. 그분들의 고뇌와 슬픔과 희망이 우리 사회의 깊은 현실로 승화될 수 있기를 빈다. 평화를 일구는 길은 너무나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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