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7

권복규 보수와 진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Daehwan Ju shared a post.

16 June ·




권복규
16 June


보수와 진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유럽의 역사와 더불어 등장한 개념인데 18세기 부르주아 혁명 때는 왕이나 귀족, 성직자에 대해 이 부르주아들이 "진보"였다. 19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는 부르주아들에 대해 노동자 계급이 "진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우리나라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부르주아나 노동자 계급이라는 게 유럽처럼 존재했을까?


자유시장경제, 사유재산권 존중, 기회의 평등은 유럽에서는 지금 "보수"의 가치로 여겨지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엄청난 진보의 결실이었다. 왕이나 귀족들은 사유재산권 같은 건 존중하지도 않았고, 기회의 평등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자유시장 같은 건 맹아 정도 있었고 사유재산권은 권리로 언급된 적이 없었고 기회의 평등은 아예 없었다.

조선에서 벗어난 지 이제 겨우 일백년 남짓이다. 그러나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이승만 박정희 이래 군부독재 기간을 "보수"가 득세했던 기간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은 전후 복구+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 기간이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거지로 했어야 했던 국가 만들기 기간. 모두 알다시피 그땐 시장경제보다는 관치경제가, 개인의 자유와 평등보다는 전시의 인권 억압이 더 컸던 시대였다. 단지 교육에 의한 기회의 균등 정도가 좀 열려져 있어 이후 세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즉, 이승만 박정희와 군사정권은 "보수"라고 할 수 없는 과도기적 지배체제가 맞다.

관치경제이긴 했지만 개방을 했고 미국이 시장을, 일본이 원자료 공급지를 열어주었기에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 안보를 지켜준 미국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종교인과 지식인들로 출발했다가 이들의 주장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호응을 얻게 되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사실 광주학살이었다. 이들은 위정척사의 후예들인데 스스로를 "진보"로 포장했다. 이들이 만든 위정척사 2기, 즉 爲正斥邪, 여기서 간사한 무리(邪)에 해당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매판자본,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고 正에 해당하는 것은 순결한 한민족과 민중이다.

인본주의와 민족주의의 기묘한 결합-이는 사실 퇴행한 조선이다. 이들은 자유시장경제, 인권의 기초로서의 사유재산권, 법치, 개방, 개인의 자유, 합리주의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함께 살자", "사람이 먼저다"와 같은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선호하고 국제주의보다는 민족주의를 선호한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이 백성들의 영혼의 속살을 건드린다. 이 인본주의와 민족주의를 한번도 제대로 극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는 위정척사의 후예인 현 정권은 진보가 아닌 보수라는 거다. 이 땅에서 "진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네이션 빌딩을 하는 과정에서 어거지로 만들어진 기득권을 대변하던 자한당 류가 우파이거나 진보일 수는 없다. 모두 알듯 자유시장경제나 법치, 자유와 같은 것은 그때의, 그들의 가치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왕과 귀족이 있는 유럽처럼 공고한 계급의 개념이 없다. "전 백성이 양반되기" 운동, 식민지 지배, 토지개혁, 전쟁을 거치며 일단 포맷이 새로 된 상태에서 출발한 게 이 사회다. 계급화된 "노동자" 보다는 자영소농의 후예인 자영업자들의 사회다. 한국사회를 연구하지 않고 유럽에서 만들어진 개념과 사상을 가지고 어거지로 적용하려다보니 온갖 무리들이 생기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인본주의와 민족주의는 사실 훌륭한 사상이며 이념이다. 그래도 그건 보수라는 것이다. 그걸 진보로 착각하면 안 된다. 수사가 어떻든 간에 조선의 위정척사파의 후예라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화파2기가 필요하다. 자유와 보편과 법치와 합리와 개인이 필요하다. 새로운 진보세력은 "개화당"이 되어야 한다. 이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를 향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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