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기사게시판 :: 기사 :: 광대한 네트워크에 사상의 도서관을 짓다 - [인터뷰] 국가보안법이 노린 이진영 〈노동자의 책〉 대표
광대한 네트워크에 사상의 도서관을 짓다
[인터뷰] 국가보안법이 노린 이진영 〈노동자의 책〉 대표
참세상 편집팀 2016.09.05 11:18
“경찰들이 뭐라고 하냐면 ‘자본론 학습모임을 통해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추구하고자 한 건 아니었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으허허 허허. 웃었죠 그냥. 허허허. 별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요즘 대학 강의도 자본론을 하는데. 그냥 웃죠 뭐.”
과거 사회운동 판에서 좀 기웃거렸다는 사람이 ‘낡았다’며 버린 마르크스, 레닌 사상. 하지만 그는 지금이야 말로 이런 고전을 더 열심히 학습해야 할 때라고 단언했다. 현안 투쟁만 몰두해서 변하는 건 없다고 했다. 구시대 유물쯤으로 치부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붙잡고 미래 사회의 가능성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 국가보안법은 사악한 악령처럼 살을 날렸다. 그런데도 그는 광대한 네트워크 안에 영원히 남을 사상의 전자도서관을 짓고 있었다. 도서관 이름은 〈노동자의 책〉. 〈노동자의 책〉은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모아 전자도서관 방식으로 운영한다.
〈노동자의 책〉 대표는 이진영 씨다. 그는 수도권 경인선과 경부선 역무 자동장치 유지 보수를 하는 철도노동자다. 지난 7월 28일 오전 6시께 서울경찰청 보안수사 4대 보안수사팀 경찰 9명은 서울 강서구 이진영 대표의 집에 들이닥쳤다. 이적표현물 소지 등 혐의로 도서 107권과 철도노조 회의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스마트폰 SD카드 자료 등을 압수했다. 이 대표는 이날부터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보안수사대 분실에서 네 차례 조사를 받았다. 〈노동자의 책〉은 홈페이지(www.laborsbook.org)에 3,000여 권의 절판된 사회과학 서적과 각종 사회과학 관련 자료 소개, PDF 파일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기원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교과과정에도 수록 돼 있다. 누구도 낡았다거나 구시대 유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의 사상만 낡았다고 할까? 이진영 대표는 여기에 명쾌한 답을 한다.
그가 〈노동자의 책〉에 관심을 둔 이유는 책과의 인연 때문인 듯 보였다. 그는 1994년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혁사노) 사건으로 감옥에 두 번 들어가 3년을 살았다. 당시 아지트를 운영하던 그는 보안 문제로 6개월마다 이사를 가야 했다. 다른 활동가들도 이사하는데 책이 부담이었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책을 그의 아지트에 모았다. 대략 2,000권쯤 됐다. 그걸 버리지 않고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고시원 좁은 방에 책을 쌓아 놓다 무너져 다친 적도 있었다. 그때 책을 디지털로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다.
어떤 전망을 갖고 〈노동자의 책〉을 운영하는 건가요?
“1980~90년대 우리 운동을 좌지우지하고 영향을 끼친 건 바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과거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1980~90년대도 이미 100여 년 가까이 된 마르크스나 레닌의 책을 보고 운동이 부흥했던 거잖아요? 그때도 소위 고전을 비아냥대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른바 구닥다리 책을 봤단 말이죠. 이 말을 드리는 건 전에 정의당 게시판에 한 번 구경 갔더니 ‘아직도 미 제국주의 타령이냐’, ‘아직도 계급 타령이냐’ 이런 말이 올라오더라고요. 근데 1980~90년대에도 ‘아직도 타령이냐’ 할 만큼 굉장히 먼 옛날의 책을 사람들이 열독했거든요. 지금도 엄밀히 따지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어요. 최근 이슈가 되는 사드도 제국주의 얘기잖아요? 북한과 중국을 자본주의로 봐야 하느냐 사회주의로 봐야 하느냐 이런 논쟁들도 있어요.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한 정체성. 제국주의에 대한 정체성이 여전히 논쟁 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고전을 훑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책〉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요. 1인 전자도서관이랄까요. 받아보는 사람은 1,000여 명이 넘어요. 그중 75% 정도는 무료회원이고 나머지 회원의 기본 회비가 한 달 3,000원이고요. 중소사업장 해고자. 사회주의 전업 활동가. 경제적으로 지극히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무료 회원입니다.”
어떤 책을 주로 소개하나요?
“노동자 전자도서관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전자도서관이라 할 수 있죠. 도서관 분류는 철학, 문학, 경제, 역사, 노동, 문화 이렇게 망라돼 있어요. 소위 말해 참여소설이란 것도 다 작업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유명한 건 거의 다 있어요. 또 〈말〉지, 〈길〉 지, 〈역사비평〉 이런 것도 작업 중이고요. 〈새벽〉, 〈노동해방 문학〉, 〈사회주의 기관지〉도 다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아카이빙이 어떤 면에서 중요하다고 봤나요?
“공부하고 학습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책 한두 권 보고 운동하면 그 운동의 내용이라는 게 날조 아니겠습니까? 옛날에는 그런 적이 많아요. 지금도 여러 현안 투쟁에 결합하다 보면 활동가가 책 볼 시간이 상당히 없죠. 인터넷으로 스마트 폰이나 모니터에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죠. 활동가를 위한 거예요.”
활동가가 이런 책을 안 읽어서 문제가 되나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란 책을 보면 경제주의와 노동자주의를 비판해요. 우리나라로 보면 노동조합 투쟁 꽁무니 찾아가는 주의예요. 소위 활동가가 A 투쟁이 있으면 A 현장에 몰려들어 하는 말이 ‘투쟁 승리하라’고 하죠. 연대하고 자리 메꿔주고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사상과 관점이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를 보고 체제를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노동조합 투쟁, 노동자 투쟁인 거죠. 그래서 옛날과 달리 노무사나 변호사의 역할이 노동조합운동에서 굉장히 커지고 있어요.
사실 노동자 투쟁을 잘하려면, 저희 사이트에 있는 책들보다도 근로기준법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박사가 돼요.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성한 계급적 의식을 가진 노동자 없이 그냥 근로기준법만 보고 운동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게 무슨 노동운동의 발전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계급적 의식은 즉자적으로 습득되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거든요. 학습을 통해서만 습득이 돼요.”
사상을 중심으로 한 활동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요?
“옛날부터 맑스-레닌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시급 과제로 첫 번째로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친 게 뭔지 아세요? ‘당 건설’이예요. 입만 열면 당 건설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당이 많이 있어요. 민중연합당도 있고, 정의당도 있고, 노동당도 있고, 당이 있어요. 그럼 당 건설 과제는 이제 내려놔야하느냐. 결국 당의 요체는 당 강령이에요. 당 강령은 옛날 맑스가 고타강령을 비판하면서 냈던 강령을 카피 떠서 낼 게 아니에요. 성주 사드 문제라든지. 메갈리아 같은 여성해방 - 페미니즘 문제라든지. 성소수자 문제라든지. 노동조합 문제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것들에 답변을 내면서 강령은 생겨나는 거거든요. 그러면 학습이 필요하고 공부하고 연구가 필요한 거죠.
1980~90년대는 사상투쟁이 치열했어요. 그런데 소련이 갑자기 무너졌단 말이죠. 이러면서 모든 게 멈췄죠. 그리고 고백하고... 〈고백〉이 뭔지 아세요? 예전 김근태 씨 지역구에서 당선한 뉴라이트 신지호라고 있었어요. 신지호가 〈고백〉론의 대표주자였어요. 그 사람이 노회찬과 같은 인민노련을 했단 말이에요. 〈고백〉론에서 ‘나는 이제까지 헛것을 찾아 헛구름을 쫓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마르크스-레닌주의 일체를 부정하는 거죠. 〈고백〉도 우리 사이트에 있어요. 또 김영환 씨라고 뉴라이트에 있는 사람이 있어요. 〈강철서신〉을 썼죠. 〈강철서신〉은 남한 주체사상의 원조가 되는 기념비적인 책이에요. 그것도 있어요. 딴 데서 못 찾아봐요. 지금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가 됐어요. 중국 혁명 성공 과정도 봐야 하고. 공부할 게 많죠.”
그가 학습의 중요성을 판사 앞에서 강조한 일은 주변에 꽤 알려진 일화다. 1994년 국가보안법 재판 당시 감사원 고위공직자인 외삼촌이 소개해준 변호사가 변론 취지로 “청년의 젊은 피와 혈기로” 운동을 했다는 식으로 변론하자 그는 판사에게 “나는 청년의 젊은 피가 아니라 과학적 학습을 통해서 운동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를 잘랐다.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변호했다는 이유다.
<노동자의 책> 홈페이지에 사전프로젝트로 맑스주의 사상 사전, 인물대사전, 정치경제학사전이 있던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개념을 정확히 하자는 거예요. 자본론을 보더라도 가치와 사용가치는 다르잖아요. 노동과 노동력이 다르잖아요. 개념을 정확히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재유, 김일성, 박헌영 등 인물들의 이 평가 저평가 살을 붙이고 있어요. 예를 들면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이었다는 평가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평가도 있고, 김일성이 항일 투쟁 원조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는 주장도 있고, 항일 투쟁에서 배출한 수많은 빨치산 투사들을 (김일성이) 숙청했는데 그 숙청 과정도 우리는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김원봉이란 사람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어요. 아나키스트였어요. 근데 북으로 갔어요. 숙청당했잖아요. 그는 명성이 있었어요. 김일성이 왜 숙청했는지 아직 정확하게 몰라요. 신채호도 아나키스트였고요.”
피디에프(PDF)로 스캔하는 작업이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
“말도 못해요. 해봐야 알아요. 처음 〈노동자의 책〉에 왔을 때 책을 뜯지 않고 펼쳐서 평판에 눌러 스캔했어요. 그렇게 스캔하면 300페이지짜리 한 권하는데 4시간 정도 걸려요. 책을 스캔만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스캔하면 삐뚤삐뚤한 게 있어요. 그걸 교정해야 하고요. 스캔하면 누락되는 페이지가 있어요. 누락된 페이지나 밑줄 있는 것들은 다른 책을 가져와서 다시 스캔해요.”
책 사고 스캔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겠네요?
“소장하고 있던 책 스캔을 다 끝내고 헌책방을 섭렵했죠. 헌책방에 바친 돈만 해도 1,000만 원이 넘어요. 2009년 해고됐을 때 스캐너가 없었거든요. 그때 노동조합에 스캔 기능이 있는 복합기가 있었어요. 업무 시간에 하면 욕을 먹으니까 밤 12시 정도 노조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가서 새벽 6시까지 했어요. 그 다음에는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고가의 스캐너를 산 걸 알고 거기서 스캔하다 고장이 나서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고요. 그러다 아이패드가 나오면서 보급형 스캐너가 나왔어요. 중고로 사서 하게 됐죠.”
직장에 다니시는데
“그래서 힘들죠. 현장에서 노동운동하면서 이걸 하다 보니 3년 고생 끝에 부인에게 들은 말이 ‘너 나랑 이혼하자. 그거 가지고 나가서 너 혼자 살아라.’는 얘기였어요. 와이프가 운동을 안 하는 사람도 아니고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사람인데도 집안 다 팽개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의 부인은 민중가요 <불나비>, <임을 위한 행진곡>, <혁명의 투혼>으로 유명한 민중 가수 최도은 씨다. 최도은 씨는 국가보안법 수사를 받는 남편 돕기를 위해 9월 9일 저녁 7시 30분 인사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15년 만에 콘서트를 연다.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맨 처음 〈창비〉에서 연락이 왔어요. 〈까치〉도 오고. 허가받고 이러냐고. 그래서 우린 영리단체가 아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책을 하려고 한다. 잘 팔리지도 않는 절판된 책으로 하니까 봐 달라고 했지만, ‘내리지 않으면 법적 소송을 하겠다’는 거예요. 눈앞이 깜깜해지고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죠. 그래서 전부 내렸어요. 보안수사대가 왔을 때도 국가보안법보다 저작권법이 더 무섭더라고요.”
압수목록 중에 〈주체사상을 위한 혁명적 무기의 역할〉 이런 책은 공안당국이 트집 잡기 좋은 자료들이잖아요?
“저는 사회주의 붕괴가 스탈린주의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스탈린 책이 거의 70% 정도 돼요. 스탈린주의 영향을 받은 문학, 역사책 이런 책들. 왜냐면 1980~90년대 우리나라 운동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에요. 제 관점과 무관하게 노동자의 책에는 1980~90년대 우리나라 운동 역사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주로 올리고 있는 거예요. 〈강철서신〉을 동의하지도 않는데 그걸 내가 왜 올리겠습니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올리는 거 아닙니까. 〈주체사상을 위한 혁명적 무기의 역할〉이란 책도 그래서 올린 거예요. 1980~90년대에 많이 봤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으로 두 번이나 구속 되셨던데 학생운동을 하셨나요?
“재수한 87학번이에요. 그해에 1학년 들어가서 <공산당 선언> 보고 나서 눈이 팍 깨졌어요. 그 책 하나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이게 맞구나. 근데 그때 선배들이 맘에 안 들었어요. 언론에서 좌경, 용경, 빨갱이 세력 그러잖아요. 선배들이 뭐라고 대응 하냐면 '좌경용경 매도 말라' 였어요. 그러고 나서 선배들이 <공산당 선언>을 공부하고 학습해야한다고 그래요. 보니까 좌경용공 매도가 아니거든. 좌경용공이 맞거든. 정면으로 치고 나가지 않는 게 이해가 안됐어요. 어느 날 대자보가 하나 붙었는데 공산당선언과 비슷한 계급투쟁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나를 가르치던 선배들 대자보에는 이런 얘기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배들에게 나는 <공산당 선언>을 따라가겠노라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산당 선언>이 책 인줄 몰랐어요. 무슨 미국 독립운동 선언문 같은 건 줄만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 그때는 궁금했어요. 소위 서울대, 연대, 고대 나온 놈들이 장밋빛 미래를 내던지고 미 문화원을 점거해 가지고 구속되는 행위를 하는 왜 할까? 미친놈들 아닌가? 왜냐면 고등학교 때는 지상의 목표가 좋은 대학 입학하는 거였거든요. 왜 좋은 데 입학해서 저 지랄 할라면 들어가지 말든가 하지. 왜 저러나 그랬어요. 그래서 궁금증을 가졌어요. 입학하자마자 들여다 본 게 대자보였어요. 그리고 집회였어요. 몇 번 읽고 듣고 하다 보니까 하는 얘기가 맞더라고요.”
현장에는 언제부터
“88년 2학년 겨울방학 때 들어갔어요. 연세대에서 그때 노동자 대행진을 했어요. 거기서 수 만 명이 집회를 하고 여의도 국회 의사당까지 행진을 했어요. 대오가 엄청났어요. 거기서 뿅 갔죠. 교정에서 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하여 그러는데 그때는 생산직이 현장이었으니까. 그리로 갔죠. 그쪽 가서 선진노동자들 만나고 설득하는 작업을 했죠. 2학년 말부터는 학생운동을 안 한거죠. 울산, 마창, 인천, 구로 다 갔죠. 기관지에 글을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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