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북한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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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의 가치관
하루생활 및 생애과정
의복 및 주거
북한주민의 식생활
주민생활 변화의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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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의 가치관


북한주민의 가치관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일가를 정점으로 하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평등주의, 집단주의, 획일주의, 수령중심주의 가치관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당국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도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현실적 가치관도 발달시켜왔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과 김일성의 권력 강화, 김정일 및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승계, 그리고 최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지배논리를 개발하는 한편, 정치교육을 통해 이런 논리의 전파에 주력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주민들은 당국의 의도에 따라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새로운 가치관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북한이 발전시켜온 가치관의 논리들은 크게 1] 사회주의 혁명(건설) 논리, 2] 사회 안정논리, 3] 위기 극복논리로 나눌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건설) 논리는 구체제인 봉건주의와 타도대상인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새로운 공산주의(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논리에 의하면, 봉건주의는 ‘썩어빠진 사회’이며 자본주의 사회는 불평등 착취 사회로서 혁명의 대상이 된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로서 집단적 노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하는 이상사회이다.



1. 평등주의와 차별 의식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이후 토지, 자본, 공장 등의 생산수단을 국유화(집단화)하였으며, 이념적으로는 평등주의를 강조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주민은 평등주의 가치관을 발달시켜 왔다.

그러나 북한이 제시하는 평등이념은 사회주의 혁명 및 권력의 일인 집중을 정당화하는 수사(Rhetoric)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차별과 불평등 의식이 만연되어 있다. 북한사회가 불평등 사회이며 그 불평등 구조는 인위적인 성분정책의 결과라는 점에서 악성 불평등 사회이다. 북한주민들도 당 간부의 전횡과 성분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당연시한다. 3대 세습체제는 권력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집단주의와 사회 나태 현상

북한에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집단주의를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본다. 집단주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생활의 기초이며 정치·경제·문화·도덕 등 모든 분야에서 추구하는 가치이다. 헌법에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 집단주의에서는 경쟁이 약하기 때문에 개인적 능력이나 생산성보다는 동지애·의리를 중시한다.

집단주의는 공동의 노력과 공동의 보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일상적으로 ‘사회적 나태(social loafing)' 현상을 보인다. 사회적 나태는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기여도는 비례해서 작아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사회적 나태 현상이 북한 경제의 생산성 저하의 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3. 획일주의와 선호위장

북한은 당의 혁명목적을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이익을 제한하고 통제하며, 북한주민 모두가 단일 이데올로기 하에서 단일 생활양식을 추구하도록 요구한다. 획일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상통제, 조직생활 통제, 그리고 당·정·군에 의한 물리적 통제 등 다양한 통제수단을 동원한다. 북한주민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획일주의를 대표하는 현상이다.

획일주의와 사회통제의 결과는 실생활에서의 ‘선호위장’으로 나타난다. 선호위장이란 공적 선호와 사적 선호간의 괴리 현상으로, 공식적인 공간에서는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중적 가치관이다. 북한사회가 표면적으로는 단결되어 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적 조직이 취약한 것은 선호위장의 결과이다.



4. 수령중심주의와 집단사고

북한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로서 권위의 정점에 수령이 존재하며,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은 수령과 함께 하도록 요구된다. 북한주민은 ‘수령의 교시’ 및 ‘지도자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가슴에 단 뱃지(‘초상휘장’)에서부터 가정, 직장, 사회 등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수령과 같이’ 생활한다. 모든 가정과 직장에는 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걸어야 하며, 집안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모든 교과서에는 각 단원별로 ‘수령의 교시’나 ‘지도자의 말씀’이 제시되어 있으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김일성 부자를 숭배하는 강의를 진행한다. 생활총화에서도 ‘수령의 교시’나 ‘지도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수령중심주의는 결과적으로 집단사고를 초래하였다.

하루생활 및 생애과정



하루생활 및 생애과정



1. 하루생활

북한 주민의 통상으로 이뤄지는 하루 일과는 연령과 직업 등 집단에 따라 상이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히 획일화되어 있다. 북한주민은 대체로 오전 6시를 전후하여 기상한다. 아침식사는 계층에 따라 다른데, 대부분의 일반 주민은 잡곡밥이나 강냉이(옥수수)밥을 주식으로 먹는다.

북한주민은 직장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보통 오전 7시에서 7시 30분까지 출근한다. 출근은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지하철이나 무궤도 전차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지방에서는 30~40분씩 걸어서 출근하는 주민도 많다. 출근을 하면 독보회 및 당 지시사항 전달, 그리고 강연회 등 당 정치사업을 한다. 독보회는 노동신문을 보면서 토론하는 등 약 30분간 진행한다.



<궤도 전차를 타고 출근하는 평양시민>

정규 작업은 8시에서 낮 12시까지 4시간 그리고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4시간을 합해 모두 8시간이다. 작업은 일반 노동자의 경우 50분 노동에 10분 휴식을, 농민의 경우 100분 노동에 20분 휴식을 원칙으로 한다. 낮 12시에 오전 작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일반적으로 현장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직장에 인접한 동료 집에서도 먹는다. 주로 잡곡밥이나 강냉이밥을 먹으며, 여유가 있는 집안은 김밥에 감자볶음, 소시지를 먹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오후 1시에서 2시까지 사무직 등 정신노동자를 중심으로 오침시간을 가지며, 오후 일과는 2시에 시작하여 6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오후 작업이 끝나면 작업총화 시간이며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한다. 생활총화시간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아비판’과 동료들의 과오를 지적하는 ‘호상비판’(상호비판)을 하는데, 비판의 기준으로 김일성‘교시’나 김정일의 ‘말씀’을 인용해야 한다. 이 후에도 추가 노동을 하거나 학습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평일에 개인적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2. 생애과정

ㅇ출생 : 아기가 출생하면 세대주는 주거지 분주소(파출소)에 가서 출생신고서 양식을 받아와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인민반장의 확인을 받아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등록을 하며, 다시 분주소에 출생신고서를 제출한다. 이후 시(구역·군) 인민보안성에서 확인을 받아 직장 식량 취급자에게 제출한다. 출생신고서에는 성명, 성별, 생년월일, 출생지, 거주지 그리고 민족별 등을 기록한다.

ㅇ유아기 : 백일잔치는 하지 않지만, 돌잔치는 치르려고 노력한다. 아이는 생후 3개월이 지나면 탁아소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지만, 지금은 가정에서 직접 양육하는 경향이 높다. 나이가 4세에 이르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시작하며, 5세가 되면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유치원 높은 반에 편입된다.
ㅇ아동기·청소년기 : 나이가 6세가 되면 소학교에 입학해서 5년간 교육을 받으며, 11세가 되면 초급중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 높은반(5세)에서부터 소학교(5년)와 초급중학교(3년)를 거쳐 고급중학교(3년) 등 총 12년이 북한에서 말하는 ‘전반적 의무교육기간’이다. 7세가 되면 소년단에 편입되며 14세가 되면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에 편입되어 조직생활을 하면서 정치사상학습을 받는다.

ㅇ성년기 : 고급중학교를 졸업하면 크게 대학진학, 군 입대, 그리고 직장배치 등 3개의 진로가 있다. 남자는 대부분은 군대에 가며, 여자는 주로 직장배치를 받는다.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이른바 ‘직통생’은 중학교 졸업생의 13%이다. 직장생활 혹은 군대생활 중에 추천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기도 한다. 중학교 졸업생의 경우, 직장은 본인의 의사와는 거의 상관없이 배치된다.

ㅇ결혼 : 북한에서는 사실혼이 인정되지 않는다. 결혼은 연애혼을 위주로 하지만 농촌지역에는 중매혼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 배우자를 찾을 때 결혼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해지면서 그 기반도 출신 성분보다는 사랑과 경제적 능력으로 변하고 있다. 혼수는 대체로 여자가 장만한다. 예식장은 따로 없고 공공회관이나 신랑의 집에서 식을 올린다. 결혼식이 끝나면 공원이나 김일성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올린다. 신혼여행은 없으며 신랑의 부모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휴가는 1주일이지만 보통 3일 쉬고 출근한다.

ㅇ노년기 : 1960년대는 김일성이 ‘60청춘 90환갑’이란 구호를 제창하면서 회갑이 사라졌으나, 1970년대 부활되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낭비를 줄이기 위해 결혼과 회갑 등 관혼상제 행사를 간소하게 보낼 것을 권장한다. 북한의 노인은 일을 하지 않으면 식량배급이 반 이상 줄어들기 때문에 가급적 일을 하려고 한다. 일이 없으면 공원 등에서 소일하거나 손자를 돌보기도 한다. 노년층은 배급이 중단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집단의 하나가 되었다.

ㅇ사망 : 북한주민의 평균수명은 1990년대 후반에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2000년대 들어 점차 회복되어 최근에는 약 69세에 이르고 있다. 북한도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약 7년 길다. 장례는 보통 3일장이며,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이 지속되고 사망률이 증가하면서 1~2일장이 보편화되었다. 장례를 치를 때 남자는 검은 완장, 여자는 흰 리본을 꽂는다. 1970년대는 화장이 강요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매장이 일반화되었다.



3. 가정

북한은 혁명이념에 부합하는 새로운 가족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종래의 전통적 대가족 제도를 해체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해방과 남녀평등권의 실현을 추구하여 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여성해방의 핵심은 여성들이 가정의 굴레를 벗어나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가족 형태 및 가족 질서의 변화가 필요했다.

가족제도의 변화과정


시기

변화내용

1945~1953년

· 가족 중심의 경제활동 유지· 봉건적 유습 청산· 혼인과 이혼의 자유보장


1954~1960년

· 가족 중심의 경제활동→사회적 경제활동으로 전환


1961~1990년

· 사회적 경제활동 강화· 사회주의적 인간 주조· 가정의 혁명화


1991년 이후

· 가족법 제정(1991.4.11) ※ 사회주의적 결혼관계와 가족, 친척들 사이의 인격적 및 재산적 관계를 규제(7조)· 상속법 제정(2002.3.13) ※ 상속과 증여제도 및 질서 확립, 개인소유 재산에 대한 상속과 보장(1,2조)


이에 따라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서열구조와 동족집단의 조상숭배관념이 소위 ‘사회주의적 가족’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가족제도의 변형은 호적제도를 폐지하는 것으로부터 진행되었는데, 호적제도와 친족개념이 봉건사회의 잔재라고 이를 폐지하고 공민증제도를 1946년 9월 1일부터 실시하였다. 또한 친족범위를 6촌까지로 제한함과 동시에 주민행정에 대한 기능을 강화하여 주민들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4. 여가생활

북한은 여가시간이 많을수록 게을러지고 개인주의화되며 의식이 자유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필요 이상의 여가시간을 허용하지 않고 집단적 규율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 무용, 연극 등의 여가활동도 직장과 인민반을 통해 집단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체육활동 역시 “혁명과 건설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강한 정신 및 육체적 힘을 키워줌으로써 혁명과 건설의 성과적 실현에 적극 기여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여가선용이나 개인의 취미활동보다는 집단주의 정신 함양과 체력향상을 통한 노동력과 국방력 증대, 정치적 일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배구 등의 일부 종목은 북한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중앙회관 등 평양 시내 여러곳에 ‘화면반주음악실’(노래방)이 많이 보급되어 청년들이 이를 즐기고 있다고 선전하기도 한다.

지방에서는 직장이나 지역단위의 문화회관에 간단한 체육 및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주민들이 여가활동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 밖에 북한 주민들이 즐기는 일상적인 여가활동은 주패놀이(트럼프), TV 시청 등이다. 최근에는 전기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일반가정에서 TV를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축전지를 이용해서 TV나 동영상 시청을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당국의 강력한 통제 하에서도 남한 비디오 시청이 북한 주민들의 새로운 여가 활용 방식으로 등장하여 확산되고 있다.



5. 직장생활

북한에서의 직업선택은 본인의 의사보다는 당과 행정기관의 조정·통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주민의 직장배치는 각 부문별 수요에 따라 중앙의 총체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직장배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판단기준은 성분과 당성이라는 이른바 정치적 기준이다. 직장배치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부차적 기준은 실무적 기준이다. 이는 직무수행능력으로서 학력, 자격, 실무 능력, 활동력, 근무년수, 근무평점 등이 고려된다. 특히 이 가운데 학력은 사회적 신분상승의 주요한 수단이 되는데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의 진학 등은 엄격한 심사와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나은 직업 및 직장에 진출할 기회를 갖기는 사실상 어렵다.

주민들의 직업선호도 변화하고 있는데 이전 시기에는 당·행정관료 등의 직업을 선호했으나 현재는 경제난의 여파로 북한주민들 사이에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외화벌이가 가능한 외교관, 무역일꾼, 외항선 타는 선원, 부수입이 많은 서비스업 부문에 배치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6. 임금

북한은 1949년 내각결정 제196호에 의해 임금기준을 결정한 이래 2002년(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전까지는 대체로 이를 준용해 왔다. 이 기준은 경노동보다 중노동이, 중노동 가운데서도 유해노동 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어 있고, 동일직종에서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가 결정되며 임금수준도 이에 따라 결정된다. 또 일반 사무원보다는 당·정 기관 종사자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난으로 배급제 및 국정가격제가 사실상 마비되고 시장거래가 확산되면서 외화벌이 공장·기업소 종사자를 제외한 일반 북한 주민의 생계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의복 및 주거



의복 및 주거



의복



배급제도는 의생활 분야에도 오랫동안 적용되어 왔다. 중앙 공급 대상자와 일반 공급 대상자를 나누어 중앙 공급 대상자는 고급 모직물을 받고 급수가 낮아질수록 일반 모직이나 그보다 질이 나쁜 옷감을 받는다. 털모자, 면장갑, 셔츠, 블라우스, 스타킹 같은 보조 의복들은 공급 대상 품목이 아닌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구입한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의복의 공급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다만 학생 교복은 아직도 배급을 주는 경우가 있다. 김정은은 집권하면서 모든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복을 지급하였고, 이후에도 김정은은 교복 견본을 점검하거나 방직공장을 방문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


대학·전문학생 겨울교복

중학교학생 겨울교복

소학교학생 겨울교복











북한의 새 교복 디자인










주거



배급체계는 북한 주민의 주거 생활에도 적용되어 왔다. 북한 주택의 소유권은 당국이며 주민들은 배정받은 주택에서 입사증을 받고 임대료(사용료)를 내며 생활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받는다. 주택 배정은 직장과 직위에 따라 주택 유형, 평수에서 차등 배분된다.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의 일반 노동자 등 주민은 대부분 11평 정도의 일자형 다가구 주택, 일명 하모니카 주택을 배정받는 경우가 많다. 농민의 경우 농촌 문화주택을 배정받아 거주한다. 2016년 유엔인구기금(UNFPA)과 북한 중앙통계국이 공동으로 발간한 「2014년 북한의 사회경제, 인구통계, 보건 조사(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ocio-Economic,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 2016)」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주거 유형은 연립주택 42%, 단독주택 33%, 아파트 25% 순서로 나타나지만, 평양의 경우 62.9%의 주민이 아파트에 거주하여 지역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주민의 식생활

북한주민의 식생활



식생활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로서 노동력을 제외한 생산수단은 원칙적으로 오직 국가 혹은 협동단체만이 소유하며 개인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는 사회이다. 생산수단이 집단적으로 소유될 뿐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생산물은 공동의 소유가 되며 의식주 등 생필품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분배되고 소비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장에서의 상거래를 묵인하고 2002년 7월부터 시행된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따라 일정한 부업밭의 경작을 허용하면서 의식주 생활을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의식주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지켜온 배급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주민들의 계층에 따라 의식주 및 기타 생필품을 차별적으로 공급해왔다. 구체적으로 주민들은 계층에 따라 중앙 공급 대상, 일반 공급 대상으로 나누고 물자 공급 등급을 매일 공급 대상자, 1주 공급 대상자, 2주 공급 대상자, 인민반 공급 대상자로 세분하여 차별적으로 배급해왔다. 식량의 경우에는 노동자와 사무원의 경우 월 2회 식량배급표에 준한 식량배급, 월 급여(생활비)를 받아 생활하였고, 농민은 1년에 1회 현물 분배와 현금 분배를 받아 생활하였다.

식량이 부족하고 배급 체계가 평양 시민과 일부 군부대 등 특수 계층을 제외하고 와해된 상황에서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 식량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농촌 지역에서는 텃밭과 뙈기밭 등 사경작지를 가꾸거나 돼지나 염소를 키우는 농민도 증가했다. 도시 주민들도 텃밭을 갖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장마당에서 구입한다. 생필품의 대부분은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민생활 변화의 3단계



주민생활 변화의 3단계



북한 사회의 주민생활 변화는 자립적 생존방식 변화→ 문화행태 변화→ 정치의식 변화의 3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일탈을 동반하며 집단주의·수령제일주의에 입각한 주민 가치관을 개인주의·가족중심주의·배금주의로 바꾸어 가고 있다. 주민의 자립적 생존방식은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로 생산부문 80% 이상이 침체하고 국가공급이 단절되면서 생존 기로에 선 주민 스스로의 선택으로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경제난 초기에는 소규모 장사, 소토지(화전) 농사, 밀수(강타기) 에만 국한되었던 자립적 생존방식은 2000년대 들어 공설시장 운영에 힘입어 개인 수공업, 고리대금업, 유통업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중급규모의 장사(운송수단을 활용), 임노동을 동원한 소토지 농사, 군인과의 협업을 통한 밀무역, 개인수공업자의 임노동 채용 등의 방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과 시장 상인과의 결탁은 사회통제를 이완시켜 사경제활동을 통한 주민들이 자립적 생존 촉매제로 작용한다. 현재 주민 80% 이상이 이러한 자립적 생존방식에 의존하여 경제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생산현장 이탈을 비롯한 사회적 일탈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 말 화폐개혁 이후에는 빈부격차 양상이 수면 위로 등장하면서 대규모 금융자산을 축적한 시장 세력이 자생적 생존방식의 틀을 바꾸고 있다. 개인·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그룹별·분야별로 상업화되고 있으며, 개인수공업의 생산·판매가 분업화되고, 정보통신기기(휴대전화 등)를 활용한 기능화·구조화된 장사방식이 증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 소득 격차에 의한 불평등이 양극화로 구조화되고 있다.

북한의 생산근로자도 자립적 생존방식에 의존하여 경제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생산현장에 종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제난 이후 원자재·에너지 부족으로 공장·기업소가 가동되지 못하자 장사할 시간을 받는 대가로 매월 일정액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직장생활을 대체하고 있다. 즉 생산근로자가 부업근로자(8.3근로자)화 되고 있다.
이들이 납부한 ‘8.3액’은 공장·기업소의 국가기업 이익금으로 국가에 납부된다. 자립 생존에 의한 경제생활 변화는 문화행태 변화와 정치의식 변화를 견인하는 기제이다. 먹는 문제를 해결한 주민들 속에서 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외부 사조 접촉을 통한 문화행태 변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 한국드라마와 한국노래, 미국영화 및 팝송을 선호하며 외부세계를 동경하는 문화의식 변화가 촉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외부정보 접촉과정을 통해 북한체제의 단점을 인식하고 체제불신 및 지도자 불신을 표출하며 정치의식 변화 행태를 보이는 주민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경제난 이후 자립적 생존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배급중단 등에 대한 경제생활 어려움을 단순 불평불만으로 표출하던 주민들이 체제작동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을 자발적으로 체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유와 인권의 본질을 깨닫는 의식 변화, 체제불신 및 지도자 불신을 과감히 표출하는 정치의식 변화는 지역별·계층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민 정치의식 변화가 증폭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숙된 의식화를 제어하는 잠재의식의 한계와 소통의 부재에 있다. 북한의 사회통제(사상이념적·정치조직적·경제사회적·법적 통제)에 의해 주민의 가치체계와 의식구조는 어려서부터 지도자와 체제에 맞게 변형되어 수동적으로 변화되었다.

그 결과 인간이 타고난 자율적 속성·항거 DNA가 약화되고 복종과 두려움·공포의식이 잠재의식 속에 내면화되었다. 주민 정치의식 변화의 한계는 바로 이러한 잠재의식이 제어기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괴된 자율적 속성이 회복되고 주민의 자발적 노력에 의한 성숙된 의식화가 현재보다 더욱 폭넓게 촉진되어야만 본질적인 정치의식 변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주민 간 소통 부재의 한계가 극복되어야 한다. 북한 내 시장 확산을 통해 외부사조 접촉은 비공식적이지만 가능하게 되었다.

외부세계 동경의식 확산, 집단적인 체제이탈, 가족단위의 한국행 등의 사회적 일탈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북한체제의 잘못된 작동을 지인들과 소통하며 변화 의지를 공유하는 사회변화는 추구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체제가 강력한 사회통제기제인 공개처형 등을 통해 공포의식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난 이후 주민들 의식속에는 개인주의·배금주의 가치관을 중시하는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주민변화는 주민의 자발적 노력, 외부 사조 접촉 환경의 확산(시장), 기득권 계층의 부정부패 등에 의해 더욱 촉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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