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7

알라딘: 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알라딘: 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은이)서해문집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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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제본 만년 다이어리(<유라시아 견문> 포함, 국내도서 3만 원 이상)




672쪽
148*210mm (A5)
894g
ISBN : 9788974839710




책소개
젊은 역사학자 이병한의 장대한 대서사,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이 드디어 완간됐다. 지난 2016년 첫 출간 당시부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에게 '개안(開眼)'의 충격과 열띤 논쟁을 선사했던 화제의 책이다.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아 '유라시아 견문'을 떠난 이래 꼬박 3년, 1000일 동안 100개 나라, 1000개 도시를 주유했던 담대한 여정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의 벽두에 비로소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저자는 구미 중심의 패권경쟁과 냉전질서로 유지되던 이제까지의 세계체제가 막을 내리고 동/서, 고/금, 구대륙/신대륙의 대반전(大反轉)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반전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반전'의 시대적 징후를 유라시아 도처에서 목도하며 증언하는, 성실하고 통찰 가득한 견문록이다. 단순한 기행이나 여행이 아니라, 가깝게는 <서유견문>을 잇고 멀리는 혜초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의 견문을 계승한다.


목차


001 극서의 도시 리스본, 변방과 첨단
- 포르투갈 ‘최후의 십자군’, 대항해 시대를 열다
시나몬, 설탕, 커피… ‘세계의 맛’ / 최초의 지구제국 / 최후의 십자군

002 붉은 산티아고, 구세계와 신세계
- ‘무슬림 킬러’의 길을 따라, 천 년 전쟁의 순례길
순례와 학살 / 검은 마리아, 서양{西洋}과 서구{西歐} / 산티아고 기사단의 후예들 / 천 년 전쟁, 신세계와 구세계

003 리스본의 유럽화, 이베리아의 20세기
- 천 년 중세를 지운 ‘서구’의 탄생
역풍: ‘더러운 전쟁’에서 ‘1974 리스본의 봄’으로 / 냉풍: 태평양에는 하와이, 대서양에는 아조레스 / 열풍: 유럽화로 내달려 ‘서구’의 일원으로 / 삭풍: 새 천년, 축구선수와 농부는 ‘딴 나라’에 산다 / 돌풍: 1755 ‘쇼크 독트린’ 이후

004 바티칸, 개벽의 아이콘
- ‘개벽 교황’ 프란치스코, 성/속을 아우르는 대연정을 펼치다
남과 북: 제3세계 교황의 탄생 / 성과 속: 성전{聖戰}도 아니고 마케팅도 아니며 프로파간다도 아닌 ‘제3의 길’ / 고와 금: 바티칸에는 ‘열린 영성’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 동과 서: 바티칸과 베이징의 밀레니엄적 만남

005 가톨릭의 갱신, 천주와 천하
- ‘서양에서 온 선비’ 마테오 리치, 중화제국의 기독교화를 꿈꾸다
서양의 선비, 동양의 바울 / 가톨릭 계몽주의: 교회를 교회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 서학, 북학, 동학

006 계몽의 변증법, 사서삼경의 유럽화
- ‘중국의 충격’, 칸트의 ‘비판’은 《중용》의 주석서였다
17~18세기 유럽의 중국 열풍, “기독교 없이도 문명국가가 가능해?” / 공맹과 계몽, ‘탈-종교’개혁 / 근대 계몽주의는 유라시아의 합작품이다

007 앙시앵레짐의 수도, 파리
- 21세기는 프랑스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내부자들, 강남좌파 대통령 만들기 / 가짜 민주주의: “이것이 공화국이란 말인가?” / 파리의 우울 / ‘샤를리’ 히스테리: 에마뉘엘 토드와의 인터뷰 / 리셋 민주주의: 샹젤리제와 광화문 사이에서

08 테헤란, 열린 역사와 그 적들
-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푸코
프레임과 패러다임, 푸코의 재발견 / 푸코의 오리엔트: 정치적 영성 / 푸코의 르포르타주: 계몽이란 무엇인가 / 임을 향한 행진

09 암스테르담, 프리섹스와 토털 사커
- ‘사회적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 ‘세계화의 덫’에 걸리다
자유와 자연, 암스텔강의 댐 / 공유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역주행, 세계화의 덫

10 로테르담, 서세동점의 끝
- 아시아로의 회귀, ‘축의 이동’ 2.0
동인도회사, ‘축의 이동’ 1.0 / 17세기의 초상, 유럽의 개혁개방 / 또 다른 바다, 아이스 실크로드가 열리다

11 유럽의 수도, 브뤼셀
- 유럽의회와 아세안 사이, 다문화 사회와 다문명 세계
암흑의 핵심: 벨기에의 개선문, 천만 개의 까만 팔뚝 / ‘아세안’의 기적 / ‘1989년 체제’ 이후, ‘다른 유럽’을 위하여

12 보스니아 사라예보, 백 년의 대란
- 500년 다문명 세계의 축복이 20세기의 저주가 되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예루살렘 / 잃어버린 20세기, 전 지구적 내전 / ‘사라예보의 아이들’

13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제국의 추억
- 청년의 새 정치, “나토는 가고, 티토는 오라!”
호텔 ‘모스크바’, 정교의 기억 / 최후의 유고인, 티토를 그리다 / 1940년대 발칸의 대장정, 사회주의 유고연방의 탄생 / 유고의 자화상: ‘7-6-5-4-3-2-1’

14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종교전쟁 2.0
- 발칸의 홀로코스트, 유고의 킬링필드
국시는 가톨릭, 국책은 개종: “정교 세르비아인을 박멸하라” / 두 번째 독립전쟁과 ‘반공 민주’의 귀환 / 세 번째 유고, 대크로아티아주의와 대세르비아주의의 격돌

15 코소보, 21세기의 신탁통치
- 밀레니엄의 폭탄, 나토는 왜 유고를 공습했나
험로: 1999년 유고로 가는 길 / 발칸의 해체, 유고 지우기 / ‘NEW BORN’, 신생과 환생

16 2025 다른 발칸, 다른 유럽
- 발칸의 개신 좌파, 스레츠코 호르바트와의 대화
‘오다기리 조르바’ / 크로아티아발 ‘전복하라!’ / 이행과 역행: 유고인에서 유럽인으로, 유고 내전에서 유럽 내전으로 / 새로운 국제주의, ‘DiEM 2025’ / 리셋 유라시아

17 정치개혁과 종교개혁은 하나다
-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화
바르샤바의 사대부 / 반공주의와 반-반공주의 / ‘1980’과 ‘1989’, ‘이행’을 넘어 ‘역사적 귀향’ 운동으로 / ‘근대인’, 당신들의 천국 / “나는 공화주의자입니다” / 의로운 사람들의 ‘방주’, 타는 목마름으로

18 부다페스트,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 헝가리의 ‘이행’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했다”
‘부다’와 ‘페스트’ / 빅토르 오르반, 이행과 탈이행 / 열린 사회 vs 열린 역사 / 역류(逆流)와 복류(伏流)

19 아테네, 탈향과 귀향
- 발명된 전통, 그리스는 과연 ‘서구’인가?
검은 아테나: 희랍과 유럽 사이 / 붉은 아테네: ‘서구화된 그리스’의 냉전학 / 그렉시트: 귀농, 귀향, 귀의

20 키예프, 서로마의 끝, 동/북 로마의 시작
- 우크라이나에서 또 다른 로마‘들’을 보다
형제의 난: 혁명인가, 네오-나치 쿠데타인가 / 크림반도, 로마의 환생 / 동/서와 성/속의 공진화

21 베를린의 목자, 메르켈
- ‘독일의 예카테리나’를 꿈꾸다
인격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유라시아: 동방 정책 2.0 / 유라비아: 제국 2.0 / 재생: 에너지 전환 / 부활: 기독교 민주주의

22 오래된 정원, 예루살렘
- 기독교 민주주의, 복지국가와 복음국가
예루살렘 민주주의 / (동)베를린, 성자들의 행진 / 거대한 파국: 뜻으로 본 역사 / 유럽연합과 천주위공(天主爲公) / 에덴의 동쪽

23 모스크바, 제3의 로마
- 소비에트는 ‘고의식파’ 정교도의 민회였다
부활: 혁명 전후사의 재인식 / 죄와 벌: ‘고의식파’와 인민 교회 / 이바노보 소비에트: 혁명의 고층(古層) / 승천: 정교 국가, 레닌과 푸틴

24 유라시아의 대장부, 푸틴
- 리셋 러시아, ‘탈구입아’(脫毆入亞)를 선언하다
수신제가치국 / 평천하(1): 정교 대국 / 평천하(2): 대(大)유라시아 / 업어치기

25 신유라시아주의: 페레스트로이카 2.0
-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과의 대화
칠고초려 / 성찰: 혁명과 문명 / 보수주의: ‘유기적 민주주의’ / 비잔티움제국 2.0: 심포니와 하모니 / 페레스트로이카 2.0: 러시아의 러시아화 / 범이슬람주의, 범튀르크주의, 범아시아주의

26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과 유라시아
- 유라시아의 새판 짜기, 국제경제포럼을 가다
변심(變心): 유럽으로의 창 / 회심(回心): 서유라시아의 허브 / 항심(恒心): 포스트-웨스트

27 카잔, 러시아제국과 이슬람 문명
- 거룩한 혁명, 무슬림 공산주의자들의 해방구
타타르스탄의 ‘할랄 보드카’ / 모스크바와 이스탄불 사이 / 이슬람 문명과 공산혁명 사이 / 예언자

28 아스타나, 카자흐스탄의 봄
-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지하(地下): 기와 혈 / 지상(地上): 중앙아시아의 허브 / 천상(天上): 디지털 움마 / 천하(天下): 일어사문(一語四文)

29 스톤 로드, 튀르크-유라시아 세계
- 우즈베키스탄에서 ‘튀르크 분단체제’의 종말을 보다
타슈켄트: 소비에트 도시 / 부하라: 스톤 로드 / 사마르칸트: 모바일 월드 / 아프라시아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30 바이칼, 환생과 부활
- 귀로의 시작, ‘신성한 바다’에 발을 담그다
이르쿠츠크: 동방의 상트페테르부르크 / 바이칼: 신성한 바다 / 울란우데: 설화와 ‘샤먼 라마’ / 치타: 춘원과 톨스토이

31 시베리아, 제국의 감각, 감각의 제국
- 시베리아가 없었다면 러시아도 없다
모피길: 대항하(大航河) 시대 / 시베리아 횡단철도: 붉은 열차 / 시베리아의 힘: 가스 로드 / 감각의 제국

32 블라디보스토크, 동아시아와 동유라시아
- 개척 도시, ‘동방을 지배하라’
러시아와 아시아 / 동구의 충격 / 연해주와 발해길 / 사통팔달, 마지막 ‘지리상의 발견’

33 삿포로, 제국의 저력
- 메이지유신 150년, 반일(反日)은 쉽다
단기필마, 19세기의 유라시아 견문 / 만추리아와 몽골리아 /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 친일, 반일, 항일

34 하얼빈, 동유라시아 평화론
- 아무르/흑룡강 세계의 귀환
아무르강과 흑룡강 / 천하대란: 혁명과 혁명, 전쟁과 전쟁 / 천하와 천주: ‘모던 선비’ 안중근 / 만저우리, 미래 도시의 미니어처

35 심양, 소현의 꿈
- 중국의 서진, 러시아의 동진, 조선의 자폐
한양과 심양 / 성경과 북경 / 북벌과 북학 / 개화와 개벽, 신시대와 신천하

36 에필로그
- 재조산하(再造山河), 개조천하(改造天下)
신극서(New Far West) / 신중서(New Middle West) / 신근서(New Near West) / 신중원(新中原) / Make Eurasia-Korea Grea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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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땅끝 마을이다. 유라시아의 극서極西이다. 오래, 세계사의 변방이었다.



추천글

“그는 연암 박지원처럼 생각하고 유발 하라리처럼 쓴다.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새 세대의 출현을 감지한다. 반갑다.”
-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 하자 학습공동체 주민,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광범위한 독서와 직접 발로 뛰어다닌 실천이 합쳐진 대작이면서, 《열하일기》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연상시키는 현실 인식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바로 지금의 문명 박물지이기도 하다.”
- 황석영 (소설가)

“여기 유라시아의 지각변동을 앞서 관찰하고 담대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가 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살아갈 새 천년의 신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훌륭한 이정표일 뿐 아니라, 나아가 직접 그 길을 연결하는 꿈을 꾸고 기꺼이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통찰이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걸으면서 배우고, 배우기 위하여 머물며 책을 읽고 사물과 사건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공간 이동을 통한 역사 알기다.”
-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사회인류학과 석좌교수, 2007년 클리퍼드 기어츠 상 수상)

“이병한은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읽는 것은 새벽잠만큼이나 로맨틱하다. 이 책이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 선구적 저서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 이광재 (여시재 원장)

“이병한의 책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세계사’가 생겨나는 장엄한 현장을 한국어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 장은수 (출판평론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문화일보
- 문화일보 2019년 1월 4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19년 1월 11일자 '새책'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9년 1월 5일자 '새로 나왔어요'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9년 1월 4일 교양 새책
연합뉴스
- 연합뉴스 2019년 1월 3일자 '신간'



저자 및 역자소개
이병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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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태어났다. 1998년 대학생이 되었다. 2018년에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개화 대학’ 연세대학교에서 수학하고, ‘개벽 대학’ 원광대학교에서 첫 직을 구했다. 20대, 서학(西學)의 첨단을 달렸다. 사회학에 근간을 두고 구미의 현대 사상을 탐닉했다. 30대, 유학(儒學)의 아취에 젖어들었다. 역사학에 바탕하여 중화 세계의 오래된 지혜를 탐구했다. 40대, 동학(東學)에 귀의한다. 이 땅의 민초들이 펼쳐낸 토착적 근대화, 내재적 민주화의 장기적 이행을 탐사한다. 마침내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이 빚어낼 동/서 문명의... 더보기


최근작 : <유라시아 견문 3>,<유라시아 견문 2>,<유라시아 견문 1> … 총 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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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경제용어도감>,<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등 총 430종
대표분야 : 역사 9위 (브랜드 지수 253,590점), 고전 13위 (브랜드 지수 196,053점), 청소년 인문/사회 13위 (브랜드 지수 40,64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1,000일간의 유라시아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역사학자 이병한의 뜨거운 책, 《유라시아 견문》 3부작 완간!

“연암 박지원처럼 생각하고 유발 하라리처럼 쓴, 이 시대의 문명 박물지”

젊은 역사학자 이병한의 장대한 대서사,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이 드디어 완간됐다! 지난 2016년 첫 출간 당시부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에게 ‘개안(開眼)’의 충격과 열띤 논쟁을 선사했던 화제의 책이다.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아 ‘유라시아 견문’을 떠난 이래 꼬박 3년, 1000일 동안 100개 나라, 1000개 도시를 주유했던 담대한 여정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의 벽두에 비로소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저자는 구미 중심의 패권경쟁과 냉전질서로 유지되던 이제까지의 세계체제가 막을 내리고 동/서, 고/금, 구대륙/신대륙의 대반전(大反轉)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반전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반전’의 시대적 징후를 유라시아 도처에서 목도하며 증언하는, 성실하고 통찰 가득한 견문록이다. 단순한 기행이나 여행이 아니라, 가깝게는 《서유견문》을 잇고 멀리는 혜초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의 견문을 계승한다.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던 선구자들의 길을 21세기의 오늘날 계승한, 한국 아니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유라시아 대장정 1000일의 기록’이자,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사(事/史)의 재구성이다. 그리고 이제 학계와 문화계는 물론 정계와 재계까지도, 이 새롭게 도래하는 ‘유라시아 시대’의 개막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미래는 다시 ‘유라시아의 길’로 열린다!
유라시아 재통합 현장 견문 마지막 이야기,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제1권이 중화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 간 교류와 재건을 통해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바닷길이 다시 연결되고 부활하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었다면, 제2권에서는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인도양 세계와 페르시아 및 아라비아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3권은 서세동점 ‘대항해 시대’의 출항을 알린 유라시아 극서(極西)의 도시 리스본(포르투갈)에서 출발해 유럽과 발칸, 중앙아시아, 러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서(西)에서 동(東)으로 횡단하는 아주 긴 ‘귀로’의 여정이다.

제3권에서는 천 년 중세를 지운 ‘서구사’의 탄생과 쇠락, 21세기까지도 지속된 천 년 종교전쟁의 근현대사, 500년 다문명 세계의 축복이 20세기의 저주가 되었던 발칸반도 내전의 기원, 칸트와 성리학 등 유라시아의 합작품이었던 근대 계몽사상의 재해석, ‘가톨릭 계몽주의’에서 ‘기독교 민주주의’와 ‘정교 유라시아주의’까지 가톨릭과 개신교와 동방정교 세계의 길항, 로마 세계와 오스만 세계와 튀르크 세계와 유?불?선 세계가 합류하고 교류했던 옛 세계의 귀환, 소비에트가 ‘고의식(古儀式)파’ 정교도의 민회에서 비롯했다는 혁명 전후사의 재인식, 바이칼과 시베리아의 모피길에서 ‘아이스 로드’까지, 메이지유신 대동아공영론에서 안중근의 동유라시아 평화론까지, 유라시아의 어제와 오늘이 씨실과 날실처럼 종횡무진 엮이면서 다채로운 중층의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다. 현재 유라시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동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담아내는 유라시아-사(事)이자, 지난 세기 동안 단절되고 일그러진 유라시아-사(史)를 온전히 복원해냄으로써, 1990년대 등장한 ‘동아시아론’에서 한층 진일보한 ‘유라시아론’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유라시아 곳곳의 지식인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지성의 향연이다. 제3권에서는 발칸 출신으로 슬라보이 지제크 이후 가장 잘나가는 좌파 지식인이자 유럽의 대안정치운동의 청년 기수인 스레츠코 호르바트(뉴욕에서 ‘점령하라’ 운동을 펼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폴란드 민주화 운동의 산파이자 폴란드의 사상적 지도자로서 현직 유럽의회 의원인 리샤르트 레구트코, 21세기 신(新)유라시아주의 운동의 기수이자 푸틴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유명한 대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인구학자로서 유럽의 ‘공화국의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에마뉘엘 토드와의 뜨거운 대화들이 이어진다.

Point 1 동/서의 대반전

유라시아 극서의 이베리아반도는 유럽과 아시아의 대분기, 근대 세계체제가 출발한 곳이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바람을 거부하며 최후의 십자군 전쟁이 예외적으로 이곳에서 성공함으로써 대항해 시대를 열어젖히고, 세계사의 변방에서 ‘다른 세계사’로 뻗어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덫’ 이후, 현재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학습했던 서유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트-웨스트(West), 포스트-트루스(Truth) 시대, 유럽이 유라시아의 한 ‘지방’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또 다른 세계사의 현장을 천착한다.

지난 백 년 서방 세계(The West)를 형성했던 미국과 유럽의 연결망이 느슨해지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의 뜻을 대리했던 영국의 이탈(브렉시트)로 이 흐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대서양이 멀어지면서 구/미(歐美)는 분기하고, 오래된 구-아(歐亞)의 연결망, 즉 유라시아의 실크로드가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업데이트되고 있다. 프랑스 대선 현장에서 ‘샤를리 히스테리’와 ‘가짜 민주주의’의 우울함을 목격하고, 유럽의 수도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과 아세안(ASEAN)의 엇갈리는 운명을 목도하는 것은, 저물어가는 앙시앵레짐의 한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동아시아에 ‘1987년 체제’가 있다면, 동유럽에는 ‘1989년 체제’가 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동유럽 전체에서 서구형 개조, 즉 민주화와 시장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동유럽에서는 대반전의 물결이 역력하다. 특히 가장 파국적인 경험을 했던 발칸반도의 옛 유고연방 국가들(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에서 등장하고 있는 신(新)유고주의 흐름을 주목한다. 2025년을 예비하는 유럽의 새로운 정치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스레츠코 호르바트와의 대담을 통해, ‘다른 발칸, 다른 유럽’, 나아가 ‘새로운 국제주의’의 청사진을 들여다본다.

옛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살핀다. 서구적 근대화에서 지구적 근대화로, 미국적 세계화에서 유라시아적 세계화로 반전하는 흐름들을 현장에서 목도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허브 역할을 했던 중앙아시아 특유의 역사성이 복구되고 있다. 그 역사성의 소생과 더불어 이슬람 문명 또한 귀환한다. 일어사문(一語四文: 아랍, 키릴, 라틴 문자 + 한자)의 풍경이 생동하는 카자흐스탄부터 ‘스톤 로드’를 따라 우즈베키스탄까지, 튀르크-이슬람 세계, 튀르크-유라시아 세계가 유장하게 펼쳐진다.

사상적 측면에서도 동/서 회통의 시각에서 유라시아를 한 몸으로 파악하는 독법을 체득한다. 중화제국의 기독교화를 꿈꾸었던 마테오 리치의 ‘선교’의 길, 17~18세기 유럽에 불어 닥친 ‘중국 열풍’으로부터 촉발된 칸트의 비판철학과 근대 계몽사상 등을 통해 동/서 사상의 융복합과 통섭의 대서사를 비로소 실감한다. 또한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말년에 그곳에서 ‘정치적 영성’의 불꽃을 태웠던 푸코의 흔적을 좇으며 ‘푸코의 재발견’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바이칼 호숫가에서는 톨스토이와 춘원 이광수(100년 전 그곳에서 무려 7개월을 지냈다)를 회감하고, 하얼빈에서는 가톨릭과 유교가 회통하여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탄생하는 사상적 풍경을 그려낸다.

Point 2 성/속의 대반전

유럽과 아시아의 재통합 못지않게 주목하는 것이 천상과 지상의 분단체제가 극복되어가는 장면이다. 계몽주의 이래 일방적 세속화가 저물고, 재(再)영성화의 물결이 도처에 역력하다. 바티칸과 모스크바에서는 지난 세기까지 천 년간 이어져온 동/서 로마의 갈등이 저물어가는 밀레니엄적 변화를 주시한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과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현지에서 지켜보면서, 러시아에 대한 독특한 안목도 획득한다.

러시아는 현대적인 비잔티움 제국, 정교 대국을 표방한다. 대부분의 국가 행사에서 푸틴 옆에 서 있는 2인자는 키릴 총주교다. 세속의 리더와 영성의 리더가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다. 서로마와 동로마에 이은 ‘북로마’로서 모스크바가 자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로마-서유럽’으로 전개되는 서로마의 계보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그리스-로마-러시아’의 동로마형 세계사를 선보인다. 로마의 영혼과 몽골의 육체를 결합한 국가가 바로 러시아이며, 러시아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대(大)유라시아 연합을 표방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U를 이끌어가는 독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 집권하고 있는 메르켈은 기독교민주당 출신으로(아버지는 동독의 목사로서 민주화운동을 선도했던 사람이다), 성과 속의 분리가 아니라 성/속의 합작으로써 동독을 변혁시키고 통일독일을 꾸려가고 있다. 이는 왜 지난 20세기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왔던 공화당과 사회당이 모두 몰락하고 거듭된 정치 파행을 연출하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프랑스의 지성 에마뉘엘 토드와 대화를 나누며 ‘세속화=근대화=민주화’라는 20세기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 대담하면서는 ‘가톨릭 계몽주의’라는 성/속 합작의 조류를 재발견한다. 그리고 푸틴의 책사이자 러시아의 정교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을 칠고초려 끝에 드디어 만나 인터뷰하면서,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 도스토옙스키부터 푸틴까지 ‘러시아 정신’의 정수, 혁명과 문명에 대한 성찰, ‘신(新)유라시아주의’와 ‘페레스트로이카 2.0’의 핵심 사상, 나아가 유라시아의 미래를 함께 궁구한다.

아울러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하고 있는 신/구교 합작, 동/서 교회 협동,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 및 중국과의 국교 맺기 등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세계 최대의 종교 수장과 세계 최대의 국가 지도자의 만남은 성/속이 공진화하는 21세기의 전망을 더욱 밝혀줄 것이다.

Point 3 천 년의 유산 고려인, 백 년의 유산 개벽파 ?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러시아가 천 년간 동진을 거듭하여 동북아의 일원이 되었듯이, 시베리아에 펼쳐진 물길(river)과 철길(rail)을 따라 동북아로 귀환하면서 캄차카반도와 베링 해협까지 눈에 담으면 동북아는 더 이상 극동(far east)이 아니다. 유라시아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양 날개로 펼치고 있는 지구의 중원(center)이며, 동북아는 그 지구의 허브이자 허파로 자리매김한다. 19세기는 유럽의 동향이 가장 중요했다. 20세기는 아메리카가 세계를 선도했다. 21세기는 동북아다. 이곳에서 어떠한 신문명을 구현하느냐가 ‘인류세(Anthropocene)’에 진입한 이 시대의 집합적 과제가 될 것이다.

저자가 견문의 끝자락에서 일본의 홋카이도(북해도)에 한 달이나 머문 까닭은, 이미 100년 전에 말을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했던 정보장교 후쿠시마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은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동아시아’로 한정되지 않았다. 만주(만추리아)를 통하여 몽골리아와 페르시아와 아라비아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단위로 발상했고, 유라시아의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싱크탱크(남만주철도회사)까지 갖추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저자는 중국 심양(선양)에서 17세기 유라시아의 지각변동을 앞서 보았던 소현세자의 불행한 운명을 복기하며, 촛불혁명 이후에도 지리멸렬한 한국의 현재를 근심한다.

지난 백 년 한국의 근대화는 개화파가 주도해왔다. 산업화는 개화 우파가, 민주화는 개화 좌파가 이끌었다. 양 세력을 대변하는 거대 양당은 ‘구시대(87년 체제)의 막내’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는 새로운 역사 인식에서 비롯할 것이다. 지난 백 년을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전통을 고수했던 척사파도 아니요 근대를 맹종했던 개화파도 아닌, ‘제3의 길’을 개척한 동학운동 이래 ‘개벽파’에 주목한다. 백 년 전의 ‘개벽파’를 계승하여 현대적으로 세력화하고 세련화하고 세계화하는 것을 향후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남긴 판문점 방명록의 글귀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에서, 남과 북이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대반전하는 다른 백 년의 단서를 발견한다.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의 개혁개방이 세계체제 재편의 추동력이 되었다면, 2018년부터 2048년까지는 북조선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대전환이 세계체제의 변혁을 선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김정은은 1980년대 생이다(<알-자지라> 방송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젊은 리더’라고 소개한다). 반면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한국의 ‘86세대’는 이미 늙었고 늦었다며, 앞으로는 선생과 선배들이 아니라 후생과 후배들이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 과업을 수행할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학당과 새로운 정당을 1020세대와 만들어가려고 한다. 2045년 해방 100주년을 준비하는 ‘30년 대계’라 할 만하다.

한국인에서 출발하여 고려인(Korean)으로 돌아가고, 개화파에서 시작하여 개벽파로 귀의하면서 ‘유라시아 견문’을 마감한 저자가 각별히 주목하는 장소는 개성이다. 고려시대의 황도로 ‘개경’이라고 불리던 곳. 열린 도시이자 네트워크 도시였다. 유라시아 허브 도시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 이곳에 20세기형 산업공단을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21세기형 신문명 창조도시, 스마트 시티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개경은 최초의 대학, 국자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남/북에 한정되지 않는 유라시아 평화대학, 세계평화대학을 유치할 만하다. 15세기의 베니스, 17세기의 암스테르담, 19세기의 런던, 20세기의 뉴욕을 능가하는 21세기의 ‘개경’을 만들어봄 직하지 않은가.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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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기획이나 구성이 맘에들어 3권을 사서 읽고 있는데 저자의 문체는 어디서 가져온건지
그 문체가 내용의 유익함을 가려서... 읽으면서 심하게 짜증스럽기도 한 부분이 많네요..
삼정초 2019-01-26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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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유라시아 견문 3


3편, 약 1900쪽의 여행이 끝났다. 3년 동안 유라시아를 종회하며 살핀 저자와의 여행이 끝이 난 것이다. 한 달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읽고 잘 읽히는 날에는 새벽 3,4시까지 읽고 잤다. 그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며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시간이 좀 되었다. 1학기 철학산책 수업에서 조성환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알게 되었다. 재밌을 것 같아 읽어보려고 로욜라 도서관에 갔는데 1편이 장기대출이 되어있어 허탕을 치고 나서 그 뒤로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겨울방학 때 이 책의 마지막 편이 신간으로 나와 있는 걸 보게 되어 3권을 다 샀다.
1편은 중화문명을, 2편은 인도양문명과 이슬람을, 3편은 유럽과 정교문명을 각각 1년씩 돌아보며 서술한 책이다. 나름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하였지만 내가 몰랐던 역사, 잘 알려지지 않은 곳과 주요 언론들과는 색다른 시각으로 역사와 현 세계를 바라보는 매력이 있었다. 정말 매우 유익하였다. 세계인식의 틀을 더 넓혀주었다. 개안(改眼)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특히 2편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을 읽던 도중 양국이 군사분쟁까지 일으켜 더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
3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용과 함께 감명 깊던 것은 저자의 열정과 지식이다. 유라시아와 새로운 백 년을 준비하고 살펴보기 위해 일본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러시아어, 한문 등 다양한 언어를 현지에서 학습하며 자료들을 읽는 모습을 보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지의 학자나 정치인들과의 인터뷰가 책 사이사이에 수록되어있는데 그 나라나 문명을 정리해주고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주장하는 것은 세속적 근대화에서 영성적 근대화로 반전이 답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러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심히 공감한다. 그러나 20세기 냉전이 아직 존재하고 세속화를 완벽히 달성한 한반도에서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지 궁금하다. 저자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아야겠다.
다소 의문점이 들었던 것은 저자가 유라시아 국가, 특히 중국에게 너무 순수한 눈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내 시각이 서구적 근대화로 인한 시각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같은 경우를 봐도 20세기 미국의 마셜플랜과 다를 바가 크게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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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2019-03-08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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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장쾌하다.

저자의 호연지기가 독자의 가슴에도 불을 댕기고 바람을 넣는다.

글과 사진은 고전이 주지 못하는 생기를 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조망하는 스케일만 큰 게 아니다. 유라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미래까지 꿰어본다. 특히, 발칸의 젊은 리더와 폴란드 사상가도 만난다. 러시아 푸틴의 책사와 인터뷰는 성聖과 속俗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폭도 넓다.

저자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념은 독서를 통해 처음 만난다. 서유럽과 미국이 중심인 서구 세계가 동양 세계를 침탈했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는 중국과 러시아, 아랍, 유럽이 유라시아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고, 그래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구대륙의 문명(유학, 힌두, 이슬람, 그리스 정교)이 서구의 억압과 침탈을 털고 일어나고 있음을 3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2019년 저자는 41살이다.



<유라시아 견문 1>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를 읽고 <유라시아 견문 2>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를 선택해 읽었고, <유라시아 견문 3>을 기다렸다. <유라시아 견문 3>에서 리스본, 바티칸, 파리, 테헤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 크로아티아, 코소보, 폴란드, 부다페스트, 아테네, 키예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아스타나, 타쉬켄트, 바이칼, 블라디보스토크, 삿포르, 하얼빈, 선양이 견문을 위해 거친 곳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다. 1는 A4 9장, 2는 A4 7장으로 요약했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저자의 관점(비정상의 정상화), 개념, 알지 못했던 사실로 구분해 보려한다.



1. 관점 :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시간은 ‘중세의 시간’(De-Modern Time)이다. 서구는 서양의 일부분으로 책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로 제한한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의 발견은 이베리아의 확산, 중세의 확대라고 본다. 아조레스 미군 기지를 걸프전, 유고내전, 이라크 전쟁에 폭격의 전초기지로 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포르투갈 총리가 EU 수장에 오른 것처럼, 반기문의 UN총장 당선은 이라크 전쟁 부역의 공. 사서삼경의 유입은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계몽철학 곳곳에 ‘중국의 충격(17~18세기 기독교 없이도 문명국가가 가능한가?)’이 아로 새겨져 있다.(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다룬) 계몽주의의 출발은 공맹이다. 자가발전이나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칸트의 고민인 선악 논리,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정도 여부를 따지는 발상의 전환은 <중용>의 근대화였다.

쇠락하는 프랑스어보다는 이슬람 문명의 보편어인 아랍어가 세계어로서의 위상을 (다시)누릴 날이 머지않았다.

-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뉘엘 토드의 시각 : 어떤 공화국이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 특정 종교를 모욕할 수 있는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문화적, 종교적으로 박해하는 반동적 행위다. 프랑스는 부지불식간 자기반성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비공화주의적 공화국이 되었다. 안정된 사회는 관용적이나 불안정한 사회에서 도리어 획일화, 동질화가 심해진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에 바탕한 현대적인 공화정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하여 전 지구의 무슬림 공동체(움마)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서세동점은 200년 묵은 적폐다. 색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고약한 장애물이다. 낯선 것을 익숙한 틀로써 재단하기 일쑤다.

1차 대전의 의의는 제국의 해체다. 합스부르크, 오스만, 러시아,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민족주의, 국민국가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유고 공습의 본질은 자본주의도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구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는 거다.

만사를 토론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회합이 없다. 동등하게 토론할 실력과 토의할 만큼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중구난방과 횡설수설이 오고가다 오리무중으로 빠져 허무하게 끝난다.

- 크로아티아의 젊은 리더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시각 : EU는 붕괴하고 있다.

-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시각 : 공산당의 선전기구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짜뉴스는 같다. 유럽의회는 야당 없는 의회로 주요 의사 결정은 지배 카르텔에서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왕년의 소비에트 연방과 유사하다. 즉 EU는 민주주의와 전혀 거리가 먼 기구다.

동서유럽은 통합된 것이 아니라 동유럽이 서유럽에 흡수되고 병합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나 세계시민이란 개념은 실제 공동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추상체에 불과하다.

미국이 소련을 침공해 체제를 전환 시킨 게 아니라 지레 무너진 거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인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20세기 핵가족화의 결과로 평균화, 획일화 되었다. 민주화가 아니다. 민주화된 가족에서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점점 일천해 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학교도 민주화로 사제 관계가 증발하고 똑같은 인조인간을 양성한다.

그리스의 독립과 ‘희랍 일체론’이 발칸에서 저마다 민족주의적 각성을 불러 일으켜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19세기 러시아와 오스만의 수차례 전쟁은 그리스 정교도와 무슬림간 문명으 충돌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서방의 승리이자, 혁명주체들의 입장에서는 성과 속, 고와 금의 대결에서 오래된 영성이 승리한 역사의 귀환이다.

-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의 시각 : 프랑스 혁명이 문명의 파과가 아니라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엥레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근대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 사회의 원리가 기저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자유는 절제되고 평등은 조율도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혁명이 후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 대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극심한 독재 체제가 자리 잡는 것이다. 문명사회는 혁명파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수주의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한다. 뿌리에서 자란 줄기와 열매가 더 진보한 것이 아니다. 뿌리는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니고 과거 미래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를 기각한다.

소련이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미국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슬림의 각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후세인 제거와 카디피 축출에는 달러 결제가 아닌 유로화, 아프리카 통화인 디나르를 결제수단으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의 파리’라는 서술은 비서구의 서구화, 적폐의 소산이다.



2. 개념 :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쌓여 공간을 이룬다. 그렇게 축적된 시공간의 지층이 바로 역사다.

유고슬라비아의 자화상 : 7(국경)-6(공화국)-5(민족)-4(언어)-3(종교)-2(키릴과 로마문자)-1(하나의 국가)

서구문명을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은 19세기에 발명한 전통이다.

러시아의 고의식파(古儀式) : 동방정교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며 저항한 세력(프로테스탄트). 신의식파가 러시아의 주류로 등극한다.

시간이 누적되어 공간을 이룬다. 공간은 시간을 소환한다.



3. 사실 :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는 십자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원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프란체스코 현 교황은 경제학 교과서의 낙수효과는 ‘가짜 이론’Fake Theory라고 성토한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간의 비극을 양산하는 경제체제의 선진화를 비판한다. 20110년 가톨릭교도의 7할이 남반구에 살고, 4할이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다. 가톨릭 세계의 제1 언어는 스페인어다. 프랑스 인권 선언(1789)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을 배제한 미완의 것이다. 반면에 예수회 선교사들이야말로 성서가 가르치는 인류 평등에 바탕하여 노예와 원주민을 보호했다(?)

칸트의 ‘비판’은 <중용>의 주석서였다. 중국 위협론의 기원은 17~18세기 신을 부정한 중국의 유학이 유럽에 전해진 것에 있다. 케네, 볼테르, 라이프니츠, 빌핑어, 칸트, 헤겔이 중국의 유학을 유럽에 확산 시켰다. <대학>이 처음 번역된 것은 1592년이다. 쿠플레의 저서 <중국의 철학자, 공자>는 17,18세기 유럽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특히 <맹자>는 혁명을 설파한 불온서적이었고, 주권재민을 설파하고, 성선설로 원죄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의예지의 존중으로 인권과 민권에 눈을 뜨게 된다.

자크아탈리는 사회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원로 지식인이다.

에밀 뒤르켐의 <프랑스의 자살>은 근대사회에 만연한 의미의 상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의의 부재를 예민하게 포착한 고전에 값하는 명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담론 분석에 그쳤으나, 푸코의 ‘이란론’은 서구를 역사의 생산자로, 비서구를 역사의 소비자로 간주하는 주객 관계자체를 허물어뜨렸기에 더 급진적이다.

20세기후반 구축해 두었던 일국 단위 복지 모델이 EU 통합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는 것은 ‘세계화의 덫’이다. 어떤 체제와 이념과 사상도 영구불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유고는 남쪽이라는 뜻. 보스니아까지가 서로마 영역이었고, 세르비아부터는 동로마 강역이었다.

공산당 간부들과 그 체제에 부역했던 이들이 민주화 이후 신흥 지배층으로 이행한 것은 동유럽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해방후 한국의 정국과 유사하다. 체제는 변했으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정교도 130만은 그리스 영토로,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 60만은 터키로 이주했다.

냉전의 전초전은 그리스에서 노쇠한 영국을 대신한 싱싱한 미국이 반공 정책의 총대를 메고 봉쇄정책을 편다. 그리스가 발칸에서 유일하게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였다. 이는 한국전쟁,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원형이 되기도 했다.

미국 소프트 파워의 힘으로 서구의 기원으로서의 그리스가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그리스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신화가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문화 냉전의 소산이자 발명된 전통이다.

동방 정교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 <죄와 벌>이다. 국가와 사회와 종교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이다. 러시아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고전을 원전으로 배운다. 러시아 교양의 양대 축이 정교와 그리스 사상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은 유라시아 문헌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1991년부터 이후부터 태어난 신입생에게 <코란>과 <논어>를 읽으라고 가르친다. 러시아인 가운데 2,000만이 무슬림이다. 모스크바에는 200만 무슬림이 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는 도시는 모스크바다.

카잔은 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튀르크화를 선도하는 전위였다. 그 카잔을 복속시킴으로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다.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는 러시아내 무슬림에 대해 무지했다.

비단, 차, 종이, 터키석, 커피, 우유와 요구르트, 버터와 치즈는 튀르크인의 유목망을 따라 유라시아 저역으로 확산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에서 결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물자를, 일본은 7만 명의 군사를 출병하여 백군을 지원했다. 소련을 우랄 서쪽으로 봉쇄하고 동쪽에 울란우데나 치타를 수도로 삼아 ‘극동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1918년 이르쿠츠크까지 장악했던 일본군이1925년 최종적으로 물러났으나, 이 실전 경험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관동군의 주축이 된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내준 중국은 만주에서 동쪽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잃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반도 종단철도로 연결하고 거제도까지 이어 거제도를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일본 정보장교 후쿠야마 야스마사는 단기필마로 1892년 2월 11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1893년 8월 12일 도쿄에 도착한다. 1만 4천 킬로미터. 17개월. 500일. 유라시아를 견문하고 보고한다. 다시 1895년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인도,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카프카즈, 바그다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견문하고 32편의 공식보고서를 제출한다. 둘 다 일본 대외정책의 초석이 된 문헌이다. 대단하다. 후일 영일동맹 체결의 일등 공신이다.

저자 이병한은 홋카이도 대학에 있는 슬라브-유라시아 연구소, 북극연구소를 참관하고, 1880년, 1881년 메이지 일본이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사절단을 파견했음을 확인하고 자괴감과 열패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메이지 일본이 서구 편향적이지만은 않았고, 이슬람 세계로, 슬라브 세계로, 전방위적이고 전면적인 개화를 추진했다.

강희제는 라틴어를 배웠고, 공맹의 철학이 한글로도 유통되기 전에 벨기에 예수회 선교사 쿠플레는 <중국의 철학자, 공자>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그 소산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소현세자는 환국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여장부였던 아내 강빈마저 역모로 몰려 죽는데 아비 인조가 함량 미달이었다.



4. 평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넓고 깊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더 넓고 깊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와 냉전이란 국제사회 이해를 뛰어 넘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문자 공론장만 읽어서는 진실의 절반도 접근할 수 없다. 키릴문자와 한문, 아랍문자 공론장을 보태어 ‘관점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세력 균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 국민 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판,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출판사의 평가 : 좌우, 근대와 전근대, 서구와 비서구라는 3중의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뒷표지에서)



<유라시아 견문 1. 2. 3>는 본문이 1,833쪽 분량으로 대작이다. 지리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야를 한반도란 고립 된 섬에서 밖으로 돌리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어보길 바란다. <유라시아 견문 3>은 서해문집에서 2019년 1월 본문 67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흥미진진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단문으로 쓰여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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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hill 2019-03-1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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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작가의 3부작중 마지막 도서


이병한 작가의 3부작 시리즈중 마지막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책.총 3권에서 보여준 그의 놀랍고 냉철한 사고인식은다음에 나올 그의 또다른 책을 기대하게한다. 뭐쪼록 새로운 직장에서 교육과 집필 작업에더욱더 매진하기를 기원해본다.
ksigene 2019-03-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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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3




1000일의 유라시아 견문 3편이다.
서쪽끝 리스본에서 동쪽끝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여정의 기록.
분량도 만만찮고 하여 진작에 사놓고도 삼일절 3일 연휴에 집중해서 읽을 계획이었다. 몸살감기로 시름시름..휴일에 시작도 못하고서 이제서야 완독했다.
세계사 책 한권 읽어본적도, 유럽을 가본적도 없는 나는 유럽이라고 하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그저 막연한 동경심만 어른거리던 곳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랬던가,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만약 유럽을 가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이 바뀌었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헝가리 부다페스트, 우크라이나 키예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몽골 울란바토르....크림반도, 바이칼 호수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라시아 견문 이책을 다시 뒤척이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런 날이 내 남은 인생에 올 수 있을까.

작가도 3년동안 이책을 썼지만 나도 3년동안 이책을 읽었다. 3년동안 뿌듯했다.

나이 50 에 가까와서야 이렇게 내가 모르는 게 많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 주어 이병한 작가에 감사한다.

정신이 올곧을 때까지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고 배우리라..

독후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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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kra 2019-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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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저서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019)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청하신 지침에 맞춰 대화는 존댓말로 진행하며, 요약과 평론 본문은 <해라> 체를 사용하고, 별표 대신 < >를 적용하여 작성했습니다.

유라시아 견문 3 요약

문명학자 이병한의 유라시아 3부작 완결편인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대서양 문명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유럽 전역을 관통한 뒤, 러시아를 거쳐 태평양을 마주하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여정을 담은 문명 탐사의 최종 결산이다. 저자는 지난 500년간 전 세계를 지배해 온 '대서양 해양 문명'의 심장부인 유럽의 내부 균열을 목격하고, 대륙의 동쪽 끝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통합의 에너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의 황혼을 선언하는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이 다시 연결되는 <유라시아 통일체>의 도래를 문명사적으로 예견한다.

저자가 먼저 주목하는 지점은 서구 근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패권의 중심이었던 유럽의 구조적 위기이다. 리스본, 런던, 파리, 베를린을 거치며 저자가 목격한 유럽은 과거의 영광을 상실한 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극우 포퓰리즘의 발흥, 이주민 난민 갈등, 그리고 유로존의 경제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노쇠한 제국'의 형상이다. 저자는 유럽이 이룩한 근대 기획, 즉 민족국가 체제와 시장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지적한다. 서구가 전 세계에 이식했던 표준들이 정작 발상지 내부에서부터 해체되고 있으며, 이 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500년 대서양 문명 전반의 노후화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는 진단이다.

이러한 서구의 쇠락에 대응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적 공간은 모스크바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러시아와 동부 유라시아의 광활한 대륙이다. 저자는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와 중국의 '일대일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대륙 통합의 실마리를 찾는다. 과거 러시아가 서구화를 추구하던 '베드로의 창'을 넘어 이제는 동방을 향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창'을 열고 있으며, 이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물류, 에너지, 디지털 네트워크로 묶는 거대한 지각 변동으로 이어진다. 대륙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는 더 이상 러시아의 변방이 아니라,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이 만나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용광로이자 허브로 재정의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 대장정의 마무리를 한반도의 지정학적 대전환과 연결 짓는다. 남한 사회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추종해 온 '서구화'와 '미국식 해양 동맹'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부산과 목포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거대한 소통망에 스스로를 접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족쇄를 풀고 대륙으로 향하는 철길과 길을 열 때, 한반도는 변방의 섬나라 문명에서 벗어나 대륙과 해양을 중개하는 반도 문명 본연의 주체적 지위를 회복하고 인류 대안 문명의 서사를 쓰는 주역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평론: 유럽중심주의 탈피의 쾌감과 지정학적 진영론의 딜레마

이 책은 3부작에 걸친 방대한 문명 탐사를 매듭지으며, 세계사를 바라보는 한국 지식인 사회의 해양 편향적 시각에 강력한 이정표를 제시한 야심 찬 역작이다. 저자는 서구 중심적 근대성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을 유럽 내부의 생생한 모순과 균열을 통해 고발하며, 리스본과 블라디보스토크를 하나의 대륙 스케일로 묶어내는 대담한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특히 러시아의 동방 정책과 대륙의 재부상을 단순한 패권 경쟁이 아닌 500년 대서양 시대의 종언과 다극화된 유라시아 시대의 개막이라는 문명사적 프레임으로 격상시켜 분석한 서사는 독자에게 깊은 지적 각성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한반도의 미래를 냉전적 분단 구조가 아닌 유라시아 대륙 통합의 종착역이자 출발점으로 재규정하는 시각은 이 책이 거둔 가장 독창적인 사상적 성취이다.

그러나 저자가 일관되게 전개해 온 '위대한 대륙 서사'의 종장은, 서구 문명의 한계를 비판하는 강렬함에 비해 대륙 세력이 내포한 가혹한 독재 체제와 내부적 모순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방어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저자가 유럽의 위기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파산으로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반면, 유라시아 통합의 주축으로 상정하는 러시아나 중국 체제의 권위주의적 본질, 언론과 사상의 통제, 패권적 팽창주의에 대해서는 구조적 비판을 기묘하게 우회하거나 '문명 다원주의'라는 명분으로 면죄부를 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변국에 행사하는 지정학적 압박이나 중국의 중화주의적 독주는 저자가 상정하는 '호혜적 대륙 공동체'의 이상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의 물리적 연결이 곧바로 새로운 대안 문명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술·물류적 결정론 역시 과도한 낙관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철도와 파이프라인의 연결이라는 하드웨어적 통합이 체제와 가치관이 판이한 국가들 간의 소프트웨어적 신뢰와 평화적 공존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유라시아 견문 3>은 서구가 주입한 역사적 국경선을 허물고 대륙의 대전환을 직시하게 만드는 웅장한 사상적 청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대서양 해양 세력은 악(惡)이고 유라시아 대륙 세력은 대안(善)이라는 거친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됨으로써, 오늘날 한반도가 마주한 냉혹한 신냉전적 역학 관계와 진영 갈등 속에서 한국 사회가 취해야 할 정교하고 다층적인 실무 외교 전략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병한 작가는 유라시아 3부작을 마무리하며 대서양 문명의 황혼과 대륙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의 부상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세진님께서는 서구 유럽 체제의 쇠락 징후와 러시아·중국 중심의 대륙 통합 비전 중 어느 대목의 분석이 현재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 더 깊은 시사점을 준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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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앞의 1·2권과 달리 유럽 자체를 “서구의 중심”이 아니라 유라시아 서쪽 끝으로 다시 읽는 책입니다.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축을 따라, 유럽·러시아·한반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병한, 서해문집, 2019
1,000단어 요약+평론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의 완결편이다. 1권이 몽골·중앙아시아·중국·이슬람 세계를, 2권이 히말라야·인도양·아랍 세계를 다루었다면, 3권은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유라시아의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를 잇는다. 2019년 1월 10일 서해문집에서 출간되었고, 부제는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이다. 교보문고 검색 정보도 이 책을 2019년 출간된 <유라시아 견문 3>으로 소개한다.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은 유럽을 다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배워왔다. 근대, 계몽, 산업혁명,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민국가, 제국주의, 사회주의, 복지국가, 유럽연합의 역사가 모두 유럽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병한은 유럽을 더 이상 절대적 중심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유럽을 <유라시아의 서쪽 끝>으로 다시 배치한다. 이 재배치는 단순한 지리적 수정이 아니다. 세계를 보는 눈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책의 출발점인 리스본은 매우 상징적이다.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나라였다. 리스본에서 출발한 배들은 아프리카, 인도양,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까지 도달했다. 유럽이 유라시아의 한 변방에서 세계제국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길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병한에게 리스본은 단순한 제국의 출발점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세계체제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시작된 장소이다. 항해와 교역, 지식과 모험의 역사가 있었지만, 동시에 식민주의, 노예무역, 폭력적 선교, 자본주의적 수탈도 있었다.

이후 책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발칸, 동유럽, 러시아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따라간다. 중요한 것은 각 나라를 관광하듯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근대문명의 형성과 위기를 현장에서 읽는다는 점이다. 이병한은 유럽의 도시, 성당, 박물관, 광장, 항구, 대학, 기념비를 통해 유럽이 어떻게 세계를 만들었고, 또 어떻게 그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지를 묻는다.

3권의 중요한 주제는 <반전>이다. 출판사 계열 도서관 소개는 <유라시아 견문> 전체를 “반전의 시대적 징후를 유라시아 도처에서 목도하며 증언하는 견문록”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서유견문>을 잇고, 혜초·마르코 폴로·이븐 바투타의 견문 전통을 계승하는 “유라시아 대장정 1000일의 기록”이라고 소개된다. 여기서 반전이란 서구가 언제나 중심이고 아시아가 주변이라는 오래된 구도가 뒤집히는 것을 말한다.

이병한이 보기에 유럽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19세기식 세계의 주인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다. 민족국가를 넘어선 지역공동체, 전쟁 이후의 평화체제, 복지국가와 인권규범, 통합시장과 공통화폐의 실험을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은 난민 문제, 이슬람포비아, 극우 포퓰리즘, 브렉시트, 경제침체, 고령화, 미국 의존, 러시아와의 긴장이라는 깊은 균열을 안고 있다. 유럽은 문명의 표준을 제공하던 곳에서, 자기 문명의 한계를 견디는 장소가 되었다.

특히 발칸과 동유럽은 중요한 공간이다. 서유럽 중심 시각에서는 주변부였지만, 유라시아 시각에서는 오스만, 합스부르크, 러시아, 독일, 이슬람, 정교회, 가톨릭, 민족주의가 겹쳐 있는 복합 지대이다.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과 민족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돌하고 섞인 곳이다. 이병한은 바로 이 경계지대에서 유라시아적 감각을 읽는다. 세계사는 중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에서 더 복잡하고 깊은 역사가 만들어진다.

러시아는 3권의 또 다른 핵심이다. 리스본에서 출발한 여정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다는 것은, 대서양의 유럽에서 태평양의 유라시아 동단까지 이동한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이 질문은 러시아사를 관통한다. 이병한은 러시아를 둘 중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양쪽을 이어온 거대한 대륙국가이다. 차르 제국, 혁명, 소련, 냉전, 탈냉전, 푸틴 시대까지 러시아는 언제나 유라시아 질서의 중심 변수였다.

이병한이 러시아를 중시하는 이유는 한반도와도 관련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이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유라시아의 출구이다. 한국이 미국·일본 중심의 해양질서에만 갇혀 있으면 유라시아를 볼 수 없다. 북한,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이어지는 대륙의 길을 회복할 때, 한반도는 비로소 “섬”이 아니라 “길의 끝이자 시작”이 된다. 이 책의 종착지가 블라디보스토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분단된 한반도가 잃어버린 북방성과 대륙성을 상징한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유럽을 탈중심화한다는 점이다. 이병한은 유럽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이 읽는다. 그러나 유럽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유럽은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동시에 유라시아의 일부이다. 이 시각은 한국 독자에게 중요하다. 한국 근대 지식인은 오랫동안 서구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 왔다. “우리는 얼마나 서구화되었는가”, “민주주의와 근대화를 얼마나 따라잡았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 이병한은 이 질문을 바꾼다. “우리는 유라시아의 변화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둘째, 3권은 대륙 전체를 하나의 연결망으로 읽는다. 리스본, 파리, 암스테르담, 베를린, 바티칸, 발칸,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는 따로 떨어진 도시가 아니다. 이들은 제국, 종교, 혁명, 자본주의, 사회주의, 전쟁, 냉전, 이주, 철도, 항구, 사상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병한은 장소를 통해 세계사를 다시 엮는다. 이 점에서 <유라시아 견문>은 이동의 책이면서 동시에 연결의 책이다.

셋째, 이 책은 한국의 시야를 넓힌다. 한국은 너무 자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북한이라는 좁은 사각형 안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유라시아 관점에서는 유럽, 러시아, 중앙아시아, 이슬람, 인도, 동남아, 중국, 한반도가 모두 하나의 장기판에 놓인다. 조선일보 <톱클래스>의 인터뷰성 소개도 저자가 3년 동안 길 위에서 지내며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끝 리스본까지 직접 확인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 직접성은 책의 설득력을 높인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이병한의 문명사적 서술은 때때로 지나치게 장대하다. 유라시아, 반전, 재통합, 문명 전환이라는 말은 힘이 있지만, 각 지역의 구체적 사회경제 문제를 압축해버릴 수 있다. 유럽의 위기, 러시아의 부상, 동유럽의 변화, 발칸의 복잡성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묶을 때, 내부의 차이와 갈등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

둘째, 러시아와 유라시아 질서를 보는 시각에는 더 강한 비판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연결의 중요한 축이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와 권위주의, 주변 민족 억압의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러시아를 단순히 유라시아 균형자의 하나로 볼 수 없게 되었다. 2019년에 나온 이 책은 그 이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므로, 오늘 읽을 때는 반드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현실을 보충해야 한다.

셋째, 유라시아 재통합이라는 전망은 매력적이지만 낙관적일 수 있다. 철도와 항로, 에너지망과 디지털 네트워크가 연결된다고 해서 평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연결은 교류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군사, 자본, 감시, 제국, 난민, 혐오가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길은 늘 양면적이다.

그럼에도 <유라시아 견문 3>은 3부작의 완결편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은 유럽을 다시 보고, 러시아를 다시 보고, 한반도를 다시 보게 만든다.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여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서구 중심 세계관에서 유라시아적 세계관으로 이동하는 인식의 여정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세계가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한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세계를 연결된 대륙의 역사로 다시 읽으려는 시도이다. 그대로 믿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논쟁하며 읽을 책이다. 이병한의 장대한 시야는 때로 과장되지만, 한국 독자가 좁은 반도적 상상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유라시아 견문 3>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은 계속 태평양의 섬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유라시아의 길 위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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