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재 후 실질적 변화… 실업률 상승ㆍ인플레이션 위험”
[북한 경제 전문가 인터뷰]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
北, ‘주체’ 내세우며 자립 가장
1948년 이후엔 무역 흑자 없어
배급 붕괴로 되레 시장 경제 싹터
달러 유통 늘며 화폐 가치 하락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지난달 21일 미 버지니아주 헤른던 자택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경제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제재가 통했던 이란과 달리, 대외 의존도가 낮은 고립형 경제인 데다 중국의 미온적 태도, 핵무기에 대한 집착 등으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게 상당수 대북 전문가들이 공유하는 통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가정보국(DNI), 상무부, 국무부 등에서 동아시아 전문가로 일하며 30년 이상 북한 경제를 관찰해 온 윌리엄 브라운(67) 미 조지타운대 교수 역시 2016년까지만 해도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해 들어 적극적으로 제재에 동참하면서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38노스 기고에 이어 12월 아산포럼에 게재한 논문에서도 북한 제재 무용론을 뒷받침하는 4가지 주장을 ‘신화’라고 반박하며 제재가 북한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헤른던의 자택에서 브라운 교수를 만나 북한 경제의 변화 상황과 핵무기를 둘러싼 북한의 향후 선택 등을 들어봤다.
“북한은 자립경제가 아니라, 원조에 의존한 구걸국가”
-한국 사람들은 북한 핵 이슈에 대해선 잘 알고 있지만, 사실 북한 경제는 모르는 실정이다. 우선 제재가 통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중 하나가 북한의 대외 무역 의존도 자체가 낮다는 것인데.
“북한은 ‘주체’를 내세우며 자립적인 것처럼 보이려 한다. 그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자립(self-reliance), 자립, 자립(웃음). 하지만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시절 소련과 동유럽이 북한에 많은 투자를 해서 많은 공장과 기계,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었다. 인적 자원도 강하다. 모두가 잘 교육받고 노동하는 법을 알고 있다. 광물과 금속, 수력 자원도 풍부하다.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이런 것들로 자신들이 자립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국제 무역을 실제 들여다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1948년 이후 북한은 한 번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항상 적자였다.”
-수십 년 간 무역 적자만 기록했다면 어떻게 경제를 유지해온 건가.
“원조(Aid) 덕분이었다. 소련, 동유럽, 중국, 서유럽이 수십억 달러씩 빌려줬다. 일본, 한국, 심지어 미국도 지원했다. 이 원조가 매우 중요하다. 남한 사례를 보자. 6ㆍ25 전쟁 여파로 한국민들이 배고팠을 때 미국이 식량을 원조했다. 물론, 좋고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원조가 계속되면서 한국 경제에 끔찍한 영향을 미쳤다. 농업을 망가뜨린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낮아져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돈을 벌 수가 없었다. 미국의 의도는 좋았지만, 한국 경제를 망친 결과를 불렀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에도 케네디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조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1963년부터 식량 원조가 중단됐다. 대신 다른 종류의 원조, 새 은행 시스템 도입 등 제도적인 발전을 지원했다. 남한은 원조 없이 스스로 투자하며 일어설 수 있었다.
북한은 항상 원조를 받았다. 일본 식민지 시절, 북한은 매우 훌륭한 수출 지대였다. 좋은 산업, 뛰어난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최악의 수출국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북한을 ‘구걸 국가’라고 부른다. 비꼬는 게 아니라, 사실이다.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군가 원조를 주면 받는 건 당연하니까. 비난받을 대상은 소련이 첫 번째, 중국 두 번째, 유럽 세 번째, 일본이 네 번째, 남한이 다섯 번째, 미국이 다음이다. 모두가 북한 경제를 부패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
“제재로 원조가 끊기자 시장이 싹텄다” 제재의 역설
브라운 교수는 논문에서 북한의 누적된 무역적자 규모가 수천억 달러에 달하고, 이를 원조와 갚지 않는 차관 등으로 메웠다고 썼다. 이처럼 원조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가 핵무기 개발로 제재를 받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김정은 시대 들어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고성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우리보다 높은 3.9%로 추정했다. 브라운 교수는 흥미롭게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제재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 아이러니를 설명했다.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중국의 원유 원조 외에는 아무 경제적 원조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북한의 수출이 늘었다. 원조가 없자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농민에게 가장 좋은 것은 식량 원조가 중단되는 것이었다. 오해는 말라. 1995년 기근 때 식량 원조는 필요했다. 문제는 그게 중단되지 않은 거다. 특히 남한이 식량을 계속 원조했는데, 동기는 좋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관여정책(engagement)을 지지한다. 하지만 스마트해야 한다.
북한 경제를 살펴보면, 공장이 많고 자원도 풍부하고 노동자들도 잘 교육 받았지만 생산성은 아프리카 국가보다 낮다. 이는 인센티브가 거의 없는 사회주의 시스템과 국가 계획 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이 시스템에선 국가가 매우 복잡한, 세부적인 부분까지 계획을 다 짜야 한다. 엄청나게 복잡한 작업이다. 그 시스템에선 화폐도 없다. 대신 일한 시간만큼 배급 티켓을 나눠주는 배급제가 실시되는데, 이 역시 매우 세심하게 통제돼야 한다.
소련은 처음에 이를 잘 수행해 효과를 봤지만, 엄청난 비효율이 뒤따른다. 결국 소련, 동유럽, 중국 등 모두 실패했다. 쿠바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기근을 겪으며 수많은 사람이 죽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았다.
나에게 북한의 진짜 적은 김정은도 아니고 핵무기도 아니고 바로 마르크스주의 시스템이다. 한국 국민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너무 많은 반공 선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엄연한 실제다. 마르크스주의 시스템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계획 경제 시스템으로 초기엔 경제가 상승하다가 결국 경제가 붕괴하고 시장 경제로 넘어갔다. 북한의 문제는 1995년 국가 경제가 붕괴했지만 원조로 인해 바닥 상태에서 정체되고 말았다. 원조가 없었다면 시장경제 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만 딱 막히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원조가 끊겼다. 이로 인해 국가가 배급을 할 여력이 없어졌고, 그 빈 자리에서 시장 경제가 살아나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원조를 하게 되면 시장 경제는 다시 숨통이 막히게 된다.”
“근로자 반 이상 시장 경제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
- 지금 북한에서 시장 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고, 국가 경제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북한 노동자의 반 정도가 시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 여성이다. 정부가 점점 더 배급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장으로 더 갈 수밖에 없다. 또 시장에선 일한 만큼 돈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장을 더 좋아한다. 국가 경제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중공업이나 자본집약적 산업은 모두 국가 경제에 속한다. 시장 경제는 대표적인 게 택시다. 택시 회사가 7개 있는데, 군부 인사들이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사적으로 운용되고, 기름도 돈을 주고 사고, 그러면서 이익을 창출한다. 섬유는 큰 의문이다. 지금 제재가 섬유 수출을 차단하는데, 국가 경제와 시장 경제가 반반으로 추정된다. 평양에는 1만명의 직원을 가진 큰 섬유공장이 있는데, 그건 국가 경제지만 많은 섬유 제품이 중국인이 투자한 작은 가게들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한 달에 30만원 정도 번다. 반면 평양섬유공장 노동자들은 월 3,000원과 배급 티켓, 아파트를 받는다. 이렇게 매우 다른 시스템이 섞여 있다.”
“조만간 통화 위기와 인플레이션 올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시장 경제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제재에 더 취약해진 상태라는 것이 브라운 교수의 진단이다. 지난해 8, 9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제재로 중국이 석탄, 금속류, 정유제품, 섬유 등의 무역을 차단하면서 북한의 수출은 뚝 떨어졌다. 작년 10월 북한의 대중 수출은 지난해 대비 60%가 감소했고 수입도 15% 떨어졌다. 브라운 교수는 이 때문에 조만간 화폐 가치 폭락 등 통화 위기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20여년 전 북한에는 돈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러도 많이 유통되고 있다. 북한에는 지금 세 가지 돈(원화, 달러, 인민폐)이 돌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공식적으로 1달러에 150원이지만, 시장에선 1달러에 8,000원으로 교환된다. 제재가 가해지면, 주민들은 안전한 달러를 더 갖기 원해 원화 가치는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래서 2002년, 2009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특히 이번 제재는 매우 강하다. 중국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자금 여력이 없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경제가 심각하게 추락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매우 큰 문제다. 정유 제재도 농업이나 어업 분야에서 여러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또 다른 큰 문제가 내년에 시작될 텐데, 섬유 제재로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현재 식량 상태는 괜찮지만, 수 년 내에 날씨가 좋지 못해 작황이 떨어지면 기근이 올 수 있다. 유념할 것은 기근 시 식량을 지원할 때 정부에 줘서는 안 된다. 농민들에게 직접 전달해, 농민들이 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 시장 경제 일부분 허용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격
경제 불안정해도 핵 포기 안해
시스템 체인지 옵션 선택해야
1일 오후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의 한 마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날 대화 제의도 불구,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2018년에도 예측 불허인 한반도 정세를 보여주듯 적막감이 가득하다. 파주=뉴시스
“김정은, 지금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타 있다”
브라운 교수는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파국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김정은이 핵 개발과 함께 시장 경제를 허용, 생산성을 높이면서 결과적으로 핵ㆍ경제병진노선이 성공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정은의 향후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원화를 성공적으로 관리해왔다. 중국은 북한과의 무역에서 지난 12개월간 1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북한에서 거의 매달 1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원ㆍ달러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간 축적해둔 달러 보유고,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보내온 달러, 시장 부문에서 확보한 달러로 유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 정부가 아파트를 팔아서 달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파산할 것이라고 하는데, 파산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현금이 없는(illiquid) 경우와 지불능력이 없는(insolvent) 경우인데, 북한은 전자에 속한다. 지불능력이 없는 것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경우지만, 북한 정부는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나. 나라 전체가 북한 정부 소유이니까(웃음). 돈이 없다면 자산을 팔면 된다. 자산을 파는 것은 서구식으로 ‘민영화’인데, 북한이 시장 경제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30년간 그렇게 정부 자산을 팔면서 지금처럼 성장해왔다.
(자산이 많은) 북한 정부가 자멸하는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이 중국처럼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북한에 권하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과 노동당은 두려워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금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타 있다. 그 호랑이를 죽이면, 경제를 죽이고 다시 마르크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재앙이다. 외교가 김정은이 그 호랑이를 더 쉽게 타고 가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어렵긴 하지만 가능하다. 실제 지금 북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평양의 좋은 아파트들이 7,000달러 정도에 판매된다. 중국인들이 구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중국 방식으로 전환할 좋은 기회다. 더 좋은 것은 박정희식 모델로 가는 것이다. “
“레짐 체인지가 아니라, 시스템 체인지가 중요”
-하지만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이 기근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이 안보와 안정을 원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핵무기가 오히려 안보를 해치고, 그를 더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한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군사적으로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김정은에게 더 큰 위험은 사회적 불안정이다.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지는 않지만, 제재로 큰 인플레이션이 오면 평양은 몰라도 원산, 함흥 등에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의 공격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정이 김정은에게 더 큰 위협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개혁을 하고 제재가 풀리면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크게 변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김정은을 잘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그는 정권을 잡은 뒤 시장을 막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 더 시장을 허용하고 있다. 긍정적인 면이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상당히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점은 레짐 체인지가 아니라 시스템 체인지다. 김정은이 시스템 체인지를 선택하면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북한에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아주 쉬운 옵션이 있다. 바로 개혁이다.”
한국과의 깊은 인연
브라운 교수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의 부모는 1930년대 평양의 기독교 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중국과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어머니는 군산에서 태어났다. 6ㆍ25 전쟁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던 그의 부모는 1954년 다시 한국으로 왔다. 1951년 미국에서 태어난 브라운 교수는 부모와 함께 한국에 와 어린 시절 광주에서 자랐고,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1985~88년 주한 미 대사관에서 북한전문가로 근무했고, 국무부 대북지원 감시단 등을 맡으며 북한을 지속적으로 관찰했고 미 국가정보국(DNI) 동아시아 선임 고문을 마지막으로 정부에서 은퇴한 뒤 지금은 조지타운대에서 중국, 한국, 일본 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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