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2
[신년기획]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남북, 연초 판문점서 ‘원포인트 정상회담’ 다시 한번 여는 게 바람직” - 경향신문
[신년기획]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남북, 연초 판문점서 ‘원포인트 정상회담’ 다시 한번 여는 게 바람직” - 경향신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남북, 연초 판문점서 ‘원포인트 정상회담’ 다시 한번 여는 게 바람직”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8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하며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재중 기자2018.12.3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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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2차 북·미회담 끌어낼 ‘원포인트 정상회담’ 다시 한번 열어야”
2018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대전환을 겪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전환의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60)은 올해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해 “수십년 만에 걸쳐서 성취할까 말까 한 것들이 한꺼번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하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조건부 비핵화”라면서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의 북·미대화 교착국면을 풀기 위해선 “북한이 한번 더 유연화 조치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를 위해 연초 판문점에서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이 전 장관이 수석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 2018년의 한반도 정세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전환이 있었다. 세 가지 변화를 꼽을 수 있다. 한반도의 긴박한 위기를 만들었던 북한발 요소인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중단됐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발 한반도 정세 불안 요소로 간주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중단됐다. 그리고 남북이 사실상 전쟁종식을 선언하고 실천적 조치를 해왔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수십년에 걸쳐서 성취할까 말까 한 것들인데 한꺼번에 이뤄졌다.”
-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전략적 결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당연히 북한은 전략적 결단을 했다. 다만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조건부 비핵화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중단, 다시 말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을 포함한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은 미국의 상응하는 결단과 조치가 연동돼 있는 것이다. 이건 명료하며 변할 수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체제안전 보장만이 아니다. 북한식 관점과 언술에서 보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게 가장 확실한 체제안전 보장책이다. 그런데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 보장을 받는다는 결단을 했을까. 체제안전 보장 플러스 알파가 있다. 바로 경제제재 해제다.”
- 제재가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어떻게 작용했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북한도 중국 못지않은 고도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4월20일 전략적 노선을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바꾼 것이다. 북한에서 국가발전노선의 전환은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변화를 수반한다. 사회 전반에서 군사주의적 경향이 모두 경제발전 쪽으로 돌아섰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와 연동된 이른바 ‘경제올인’ 정책 자체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수반하면서 이뤄지고 있다.”
북·미대화 교착 장기화로 북 ‘비핵화 시간표’도 차질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 북·미 간 대화는 교착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줄 건 줘야 한다. 특히 경제 제재 해제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다 하고 나면 알아서 제재를 해제해 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건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기들이 선의의 조치를 취하면 그에 대해 상응한 조치들을 취해달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협상에서 구체적으로 요구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했고, 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했다.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으면 추가적인 것을 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미국이 그에 대해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으면서 교착국면에 있는 것이다.”
- 북한의 고민이 깊을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장 전체 제재가 해제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단계적으로라도 해제된다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교착이 장기화되면서 김 위원장 머릿속에 있었던 비핵화와 제재 해제에 대한 시간표상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이 차질이 그에겐 사활적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2020년에 끝난다. 올해 평양·개성·금강산 등 북한을 4번 방문했는데 제재 해제에 대한 중간간부들의 열망이 높았다. 최근 북한이 내부적으로 초조한 인상을 보이고 있다.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제재에 대비하는 언술들이 늘고 있다. 제재 장기화에 대비해 북한이 경제적 비효율성을 감내하고 ‘플랜B’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 북·미대화 교착국면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사실 남북 정상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핵 문제에 관해 굉장히 중요한 합의를 했다. 전문가 참관하에 동창리 엔진시험장 영구 폐기 얘기도 나왔고,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 폐기 같은 추가 조치까지 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없었던 합의들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양공동선언에 담은 제안으로 안됐기 때문에 ‘플러스알파’를 만들 필요가 있다.”
- 북한이 추가로 양보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뭔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불신에 가득 찬 미국 조야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 미국 조야에서 엄청난 비판이 있었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북한의 핵·미사일을 중단시켰냐’고 하면서 돌파했다. 이제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라면 북한은 더 이상 비핵화를 역진시킬 수 없다’고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을 북한이 줘야 한다.”
- 미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 방침을 밝히는 등 북한의 태도 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다.
“요지부동인 쪽은 미국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한발짝 나와줘야 하는데 안 나오고 있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양보할 가능성이 지금 단계에서 적다는 것이다. 북한이 한번 더 유연화 조치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하는 쪽으로 가려면 양보를 받을 사람이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인권 문제 등 미국 측의 메시지가 혼란스러웠다. 다행인 것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비핵화에 성과가 있으면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단계적 제재 해제를 거론한 것 비슷하게 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인권 관련 연설을 하려다가 취소했다고 언론에 흘렸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에 와서 유화적 언행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특별대표에게 보고를 받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초기의 혼란스러웠던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남북관계 개선 통해 비핵화 진전시킨다는 정부 입장
시민·학계·언론 나서 미국 설득 ‘투 레벨 게임’ 필요
-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으로 북·미 비핵화 대화를 견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미관계가 교착되자 미국 측에서는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남북관계 발전이 한반도 평화를 여기까지 가져오고 북·미 정상회담을 가져왔다는 것은 2018년에 우리가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다. 남북 군사적 대결과 북·미 간의 치열한 긴장 속에서 남북한 사이에 특사가 오가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만들어내고 이를 밑천 삼아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논의도 끌어낸 것 아닌가. 다만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양자로부터 중재자로 인정받고 중재자로서 역할을 했다. 중재자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먼저 가는 게 곤란하다고 할 때 ‘무슨 소리냐. 우리가 그간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서 북·미관계, 비핵화 진전시키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냥 갈 거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구조적 어려움이다. 또 하나는 한국 외교가 과거 정부 9년 동안 대미의존적 관행이 상당히 많이 생겼고 관료집단에서는 아직 교정되지 않았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남북협력을 못하게 한다면 무슨 재주로 우리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가’라고 미국에 말하지 못한다. 이를 돌파하려면 정부뿐 아니라 학자, 시민사회, 언론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미국 조야에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정부가 미국과 대화할 때 힘이 된다. 이른바 ‘투 레벨 게임’이다.”
-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선후에 대한 전망과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뭐라고 보는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 그리고 비핵화를 위해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서울 답방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나타내는 게 굳이 필요할까. 이미 평양공동선언에서 밝힌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연초에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비해 비핵화만을 논의하는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한번 열어서 남북 정상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봄쯤에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면 그때는 진짜 공동번영을 얘기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수순을 목표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제언을 드린다.”
- 비핵화 협상 전망은 북·미 간 빅딜과 급진전, 어정쩡한 상태의 장기전, 북·미대화 파국 등이 거론된다.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가.
“현 국면에서 장기 전망은 어느 정도 가능한데 단기 전망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지공으로 간다면 장기전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ICBM을 다시 발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능동적 결단을 하고 나왔고, 북한이 경제주의로 국가노선까지 변경했기 때문에 쉽사리 뒤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대외협상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변칙적인 인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어렵게 만든 협상의 틀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과거엔 북·미가 불신 속에 있다보니 북·미가 만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대충 예측이 가능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양측은 신뢰 구축을 얘기하고 있다. 기존의 불신에서 출발해 새로운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따른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존의 불신이라는 관성과 신뢰라는 새로운 요소, 그리고 합의라는 요소들이 어떻게 교직이 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 위원장 신년사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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