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정운현] ‘위안부’ 황금주 할머니가 우유 못마신 까닭 (20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4년간 ‘성노예’ 생활... 3일 91세로 별세)
한 아운
2013. 1. 5.
‘위안부’ 황금주 할머니가 우유 못마신 까닭
20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4년간 ‘성노예’ 생활... 3일 91세로 별세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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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황금주 할머니가 3일 오후 91세로 한많은 삶을 마쳤다. 2005년경 치매에 걸린 황 할머니는 그간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 등록자 가운데 생존자는 58명뿐이다.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 윤미향·한국염)는 3일 홈페이지를 통해 “황 할머니가 3일 오후 1시 45분경 운명했다”고 밝히고 “황 할머니의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지며 5일 발인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고 김학순 할머니 묘 바로 옆에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황 할머니 빈소는 부산 사상구 삼신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 황금주 할머니는 192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사법서사를 하던 부친이 병을 얻어 조선(한국)으로 귀국한 온 가족과 함께 할머니는 부친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13세이던 1934년 당시 돈 100원을 받고 경성(현 서울)에 있는 한 부잣집 양녀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스무살 때인 1942년 4월 주인집 큰딸을 대신해 군수공장으로 강제 동원됐다.

생전에 '수요집회'에 참가한 고 황금주 할머니 (사진-정대협 제공)
그런데 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중국 길림이었고, 군수공장이 아닌 ‘히노마루’라는 일본군 부대였다. 그곳에서 황 할머니는 해방 때까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생전에 황 할머니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길림에서 약 8개월을 지낸 후 다시 선박에 실려 사할린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2~3개월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길림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힌 바 있다.
해방이 되자 황 할머니는 패주하던 일본군이 버리고 간 옷과 신발을 주워 신고 밥도 얻어먹으며 보국대나 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귀국행렬에 끼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식당에서 일을 하며 얼마간의 돈을 모은 황 할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버린 아이들 네 명을 데려다 키웠다.
90년대 정대협이 본격 출범, 활동을 개시하자 황 할머니는 1992년에 정대협에 피해자 신고를 하였으며, 이후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1992년 8월 정대협 대표단과 함께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었던 참담한 경험을 폭로했다. 이후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를 방문해 일본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했으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도 자주 참석했다.
정대협은 “할머니가 못다 풀고 가는 한, 우리가 풀어드릴 수 있도록 굴하지 않고 활동할 것”이라며 “고인께서 가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에 명복을 빌어주시고, 남아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평화를 기원해 주시며, 할머니의 못다 한 꿈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나고야 집회에서 증언하고 있는 황금주 할머니(눈빛출판사 제공, 촬영-이토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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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황 할머니는 생전에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왜일까? 위안부 시절 과도한 성행위 강요로 인해 황 할머니가 한 때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성병이 옮겨질까 봐 삽입을 하지 못한 일본군 병사들은 할머니 더러 대신 성기를 빨거나 자신의 정액을 먹을 것을 강요하였는데 그때 그 일이 생각나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황 할머니의 증언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착한 날은 불안과 피로 속에서 그냥 지나갔지만 다음날부터 우리는 군인들을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순결을 잃게 되면 죽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겁에 질려 있었으므로 처음 들어선 병사한테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군인은 대검으로 제 속옷을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20여 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의 성기조차 본 적이 없는 숫처녀였습니다. 병사들을 상대할 때마다 ‘똥이라도 먹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세탁과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생리 때에는 생리대가 있는 데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천을 훔쳐다 썼는데, 들키면 매를 맞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 때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었는데 성병이 옮겨질까 봐 삽입을 하지 못한 병사들은 “성기를 빨아라” “정액을 삼켜라” 하는 요구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군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발길로 채이고 얻어맞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그 정액이 생각나서 우유를 마시지 못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여자는 장교와 심한 싸움을 하였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반항하다가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도 계속 반항하니까 그 장교는 벌거벗은 그 여자의 음부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을 일본인들이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출처 :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일제강점기> 630~634쪽)
고 황금주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진실의 길 편집부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2433&PHPSESSID=fdf1756de3bed114bebabdad1a2732d6
◆ 진실의 길 홈페이지 : http://poweroftruth.net
PS. 이 글은 저작권자의 전재허락을 득한 후 저작권자의 허락하에 글을 전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글의 전재를 허락해주신 진실의 길 마진기 기자님께 지면으로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아울러 진실의 길 측에서는 "기사출처 명기와 비영리적인 사용의 블로그와 카페엔 기사전재에 동의한다"라는 답변을 주셨으므로 보다 많은 분들이 진실을 널리 알려 주셨으면 하셨습니다. <벙어리 구름 아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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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성노예’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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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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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황금주 할머니가 3일 오후 91세로 한많은 삶을 마쳤다. 2005년경 치매에 걸린 황 할머니는 그간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 등록자 가운데 생존자는 58명뿐이다.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 윤미향·한국염)는 3일 홈페이지를 통해 “황 할머니가 3일 오후 1시 45분경 운명했다”고 밝히고 “황 할머니의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지며 5일 발인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고 김학순 할머니 묘 바로 옆에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황 할머니 빈소는 부산 사상구 삼신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 황금주 할머니는 192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사법서사를 하던 부친이 병을 얻어 조선(한국)으로 귀국한 온 가족과 함께 할머니는 부친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13세이던 1934년 당시 돈 100원을 받고 경성(현 서울)에 있는 한 부잣집 양녀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스무살 때인 1942년 4월 주인집 큰딸을 대신해 군수공장으로 강제 동원됐다.
생전에 '수요집회'에 참가한 고 황금주 할머니 (사진-정대협 제공)
그런데 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중국 길림이었고, 군수공장이 아닌 ‘히노마루’라는 일본군 부대였다. 그곳에서 황 할머니는 해방 때까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생전에 황 할머니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길림에서 약 8개월을 지낸 후 다시 선박에 실려 사할린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2~3개월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길림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힌 바 있다.
해방이 되자 황 할머니는 패주하던 일본군이 버리고 간 옷과 신발을 주워 신고 밥도 얻어먹으며 보국대나 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귀국행렬에 끼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식당에서 일을 하며 얼마간의 돈을 모은 황 할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버린 아이들 네 명을 데려다 키웠다.
90년대 정대협이 본격 출범, 활동을 개시하자 황 할머니는 1992년에 정대협에 피해자 신고를 하였으며, 이후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1992년 8월 정대협 대표단과 함께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었던 참담한 경험을 폭로했다. 이후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를 방문해 일본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했으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도 자주 참석했다.
정대협은 “할머니가 못다 풀고 가는 한, 우리가 풀어드릴 수 있도록 굴하지 않고 활동할 것”이라며 “고인께서 가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에 명복을 빌어주시고, 남아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평화를 기원해 주시며, 할머니의 못다 한 꿈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나고야 집회에서 증언하고 있는 황금주 할머니(눈빛출판사 제공, 촬영-이토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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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황 할머니는 생전에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왜일까? 위안부 시절 과도한 성행위 강요로 인해 황 할머니가 한 때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성병이 옮겨질까 봐 삽입을 하지 못한 일본군 병사들은 할머니 더러 대신 성기를 빨거나 자신의 정액을 먹을 것을 강요하였는데 그때 그 일이 생각나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황 할머니의 증언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착한 날은 불안과 피로 속에서 그냥 지나갔지만 다음날부터 우리는 군인들을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순결을 잃게 되면 죽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겁에 질려 있었으므로 처음 들어선 병사한테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군인은 대검으로 제 속옷을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20여 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의 성기조차 본 적이 없는 숫처녀였습니다. 병사들을 상대할 때마다 ‘똥이라도 먹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세탁과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생리 때에는 생리대가 있는 데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천을 훔쳐다 썼는데, 들키면 매를 맞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 때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었는데 성병이 옮겨질까 봐 삽입을 하지 못한 병사들은 “성기를 빨아라” “정액을 삼켜라” 하는 요구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군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발길로 채이고 얻어맞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그 정액이 생각나서 우유를 마시지 못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떤 여자는 장교와 심한 싸움을 하였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반항하다가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도 계속 반항하니까 그 장교는 벌거벗은 그 여자의 음부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을 일본인들이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출처 :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일제강점기> 630~634쪽)
고 황금주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진실의 길 편집부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2433&PHPSESSID=fdf1756de3bed114bebabdad1a2732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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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황금주할머니가
#우유못마신까닭
#20세때위안부로끌려가
#4년간‘성노예’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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