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을 보는 내내 우남의 업적을 보면 볼 수록 지난 정권에서 겪은 문고종의 망국전쟁이 겹쳐져 보여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핵에너지 개발 문제에 있어서는 울화가 치밀었는데 70년전 미래를 내다 보고 시멘트 한포가 아쉬울때 그가 남긴 족적과 그 동안 이룩한 성과를 단 몇년만에 허물어 뜨리고 공산괴뢰의 핵무기를 완성시켜준 죄는 그가 역사에 길이 남을 역적임이 분명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가 왜 에너지문제에 혜안을 가졌고 왜 그토록 힘을 쏟았는지 찾아 보았다
내 어릴적 아버지와 자주가던 낚시터 중에 충북 괴산댐이라는 곳이 있었다
대전에서 비포장도로를 두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곳이었는데 다른 저수지나 사력댐에 비해 그 댐은 콘크리트로 지어져 수심이 깊고 수온이 낮아 붕어의 입질이 좋고 손맛이 좋다하시며 자주 다녔다
그게 74년경 이었으니 그 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항상 궁금했었다 혹시 일제시대?!?
그 댐은 52년도에 착공되어 57년에 준공시킨 대한민국 기술만으로 지어진 최초의 중력식 콘크리트 수력발전댐이었다
52년도라면 한참 전쟁중에 철근하나 철근 한줄 구하느니 박격포탄 한발 구걸해야 하는 형편에 기술자들을 모아 조사를 시키고 측량을 하고 설계를 발주하고 착공을 했다는게 말이 되나
그건 마치 지금 전쟁중인 젤렌스키가 느닷없이 조국의 미래라며 우주개발을 한다며 차관을 꾸러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럼 우남은 왜 그랬을까
우남이 서울을 버리고 도망쳐 망명을 계획했다는 것이 새빨간 거짓이라는게 여기서 증명된다
그는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패배는 생각도 해 본적 없는 인물이었다
탱크가 한대도 없어도 전투기가 한기도 없어도 이 전쟁은 자유진영이 당연히 이긴다
다만 통일의 여부만 미뤘을 뿐이다
그러니 서울을 수복하기 무섭게 조국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정책을 밀어 붙인것 아닌가
그가 도망자라면 수력발전소 설계를 생돈으로 할리가 있겠냐
해방 후 남북이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갈라졌을 당시 남한의 에너지는 전적으로 북에 목을 메고 있었다
표를 보면 남한:북한의 전력은 4% 대 96%였다
한마디로 전기없는 나라였고 그 전기를 쓰려면 북에 빌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북한은 전기가 남아 돌아 남한에 전기를 팔아 먹으며 몇년간 차량 전선 전동기 휘발유 발전기 전화기등 막대한 전쟁물자를 요구해 받아갔고 바가지를 씌워 제 값을 다 받으면서도 툭하면 단전의 만행을 부렸다
즉 남한은 점점 전쟁에 대비 할 수 없었고 북한은 소련과 남한에서 받은 전쟁물자가 넘쳐났다
그러다 미군이 철수 했으니 전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런 뼈저린 경험으로 우남은 이대로 전쟁이 끝나봐야 에너지 자립이 안되면 도루묵이라는 생각에 전방에서는 총으로 싸우고 후방에선 에너지정책에 매달린 것이다
지금의 번영은 그가 전쟁직후 54년 미국을 상대로 빼앗은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한·미 협정’ 어거지로 보낸 123명의 원자력유학생 그리고 59년 원자력연구소의 착공에서 시작되었다
핵에너지 개발에 쏟은 그의 노력은 따로 알아보기로 하고 이제 그의 애국에 대비되는 매국노를 찾아보자
그렇게 이룩한 핵에너지 자산을 영화 한편보고 갖다 버린 ㅅㄲ가 있다
북은 핵을 개발할 의지가 없다며 서방진영 전세계 지도자를 만날때 마다 바짓가랑이 붙들고 애원 아닌 사기를 치고 다닌 ㅅㄲ가 있다
625전 단전의 역사를 잊고 북에 종속된 에너지 속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여 러시아 가스관을 북을 통해 받자던 ㅅㄲ 가 있다
대체 에너지라며 산림에 바다에 회수도 안될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저희들끼리 니눠먹은 뒷배가 되준 ㅅㄲ가 있다
남북경협이라며 남한의 전기를 돈도 받지 않고 송전해주던 ㅅㄲ가 있다
5년간 매국전쟁을 하고도 양산에 호의호식하며 좌빠져있는 ㅅㄲ가 있다
당신이 낸 세금이 그의 노후를 보장하고 있다
이승만님 사진 보기 부끄럽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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