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알라딘: [전자책]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알라딘: [전자책]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eBook]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이태진,김영호 (옮긴이)메디치미디어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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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맹의 역전! 적대국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 냉전 파트너가 되었는가?
1952~2022,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70년!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기원과 구조, 작동원리를 파헤치다

202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된 지 70년째가 되는 날이다. 1952년 4월 28일, 조약이 정식으로 발효되면서 일본 주둔 연합국군 총사령부는 점령 통치를 끝내고 일본국에 주권을 돌려주었다. 전범국가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로, 또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도록 농업국가로 개조하겠다던 연합국의 목표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 세계적인 냉전의 시작을 계기로 후퇴하였다. 전쟁범죄·식민지범죄의 추궁을 면제받은 일본은 관대한 조약 내용에 만족하였고, 이후 미국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반공 동맹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와 대한민국을 70년 동안 옥죄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동아시아 냉전을 오래 연구한 세계적인 역사학자들과 역사, 법, 국제조약, 국제정치 등 여러 차원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문제점을 연구한 한국 학자들의 성과를 모았다. ‘정의로운 평화’를 열망하는 세계 지식인들의 고발장 같은 책이다.


목차


책을 내며

서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형성, 전개 그리고 귀결 / 김영호

제1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세계사적 성격: 전후 UN 질서하의 예외적 조약 체제
종속주의를 넘어서: 샌프란시스코와 동아시아의 ‘일본문제’ / 개번 매코맥
올바른 해결과 화해를 위한 열쇠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하라 기미에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일본인의 관점에서 본 샌프란시스코 체제 / 와다 하루키
전후 아시아·태평양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 찰스 암스트롱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기억의 진화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 양찬

제2부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동북아 국가의 참가 문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북아시아의 유산 / 정병준
한국 참가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영국의 의견 차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가변성 / 이태진
동아시아 동맹국들 간의 문제? 문제 많은 미국의 과거 / 알렉시스 더든

제3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역사적 배경: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과정
한국병합 무효화 운동과 구미의 언론과 학계: 1907~1936년의 동향 / 이태진
성급한 평화, 불쾌한 탐욕: 1919년 베르사유 조약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비교 / 김성원
일본의 탈식민 프로세스 동결 해제를 위하여 / 도츠카 에츠로
대일 강화조약은 무엇을 부인하는가: 기점으로서 청일전쟁과 그 전쟁 원인의 부당성을 중심으로 / 오시진

제4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의도된 분쟁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영토문제: 일본 외무성의 영토문제 자료집과 그 영향 / 정병준
카이로 선언의 영토주권 문제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한계점 극복 / 이장희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 영토문제와 전쟁배상을 중심으로 / 강병근
동아시아에서의 식민주의 전후 처리와 남겨진 문제: 샌프란시스코 조약 사례 연구 / 쉬융

제5부 강요된 한·일 65년 체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재심으로서의 한·일 과거청산 / 김창록
일제하 반인도 범죄 피해자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 백태웅
샌프란시스코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법률적 기초 / 노정호

제6부 아시아·태평양 미래 질서의 전망: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어디로?: 경합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 비전 / 이종원
아베 ‘개헌’을 ‘독려’한 아미티지 리포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은 헌법 제9조의 ‘개변’ / 우치다 마사토시
영토분쟁은 차치하고 동북아의 협력과 발전을 추진하자 / 후더쿤
포스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한반도에서 중·미의 전략적 상호작용 / 스위안화
샌프란시스코 조약체제를 넘어서: 뒤로 넘어가기와 앞으로 넘어가기 / 김영호

해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나? / 한승동

부록: Treaty of Peace with Japan / 日本?との平和?約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한일 기본조약 / 한일 청구권협정 / 日韓基本?約 / 日韓請求??びに??協力協定 / The Cairo Declaration / 카이로 선언 / Potsdam Decla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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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77 미국이 허약해지고 허둥댈수록 일본은 더욱 미국에 집착하며, 미국에 대해 굴종적으로 되면 될수록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일본인의” 자질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면서 그것을 보상받으려 애를 쓰는 듯하다. 그리하여 모리 요시로 총리는 2000년에 일본이 “천황이 중심에 있는 신의 나라”라고 했고, 아베 정권 때 아베는 유일무이하게... 더보기
P. 85 일본과의 평화조약 초안은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결국 단순화됐다. 포모사(대만)나 쿠릴과 같은 섬들 그리고 기타 영토들을 제공받으려던 나라들의 이름이 초안에서 사라지면서 이 지역 이웃나라들 사이에 여러 “미해결 문제들”이 남게 됐다. 평화조약의 모호한 자구들은 부주의 탓도 실수 탓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미해결인 채로 남겨진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파생된 영토분쟁들—북방영토/남쿠릴열도, 다케시마/독도, 센카쿠/댜오위(오키나와), 스프래틀리/난샤 그리고 파라셀/시샤 문제들—이 모두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곧 1950년 1월에 발표된,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냉전 방위선 주변에 나란히 포진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_ 하라 기미에, 올바른 해결과 화해를 위한 열쇠들 중 접기
P. 100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하게 만든 국제적인 국가체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적군 진영은 북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뒤에 숨은 소련으로 구성됐다. 미국 진영의 선봉에 선 것은 주한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대만의 중화민국 국민당군이었다. 사령부와 미군의 주력부대들은 그 전략 및 병참기지들과 함께 일본과 오키나와에 배치돼 있었다. 일본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는 그 전쟁의 미군 진영 잠재전력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열도 전체를 포괄하고, 그 통합성과 안전을 보장했다. 이 체제 내에서 일본은 미군의 주요 후방 지원자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_ 와다 하루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중 접기
P. 129~130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서명했으며, 따라서 1952년 조약이 발효된 이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할 때 전후 군사재판의 평결에 어긋나지 않게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바꿔 말하면, 왜 일본의 2차 세계대전 기억은 일본정부가 이미 전쟁기억의 단일 버전, 즉 제국일본이 반박할 여지가 없는 ‘가해자’로 고발당하고 일본의 전쟁시기 교전 당사자들이 이를 입증한 군사재판 평결을 수용했음에도 왜 여전히 논란거리이며 문제가 많은가?
_ 양찬,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기억의 진화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중 접기
P. 169~170 일본은 추축국의 일원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2천만 명, 일본에서 3백만 명의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킨 전쟁의 원인 제공자였음에도 어떠한 전쟁책임도 명시되지 않았다. 전쟁의 책임은 도쿄재판에서 소수의 전범들에게 돌려졌고, 평화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국제(법)적 규정과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전후 일본은 (*전쟁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천황제가 폐지되거나 천황이 바뀌지도 않았으며, 도쿄전범재판과 연합국 사령부의 점령으로 사실상 면책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일본국민들은 전쟁책임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평화를 회복했으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일본이 아닌 침략국가의 변용이었으며, 일본국민들에게는 불행했던 과거와 절연할 수 있는 공식적·국제적 기회가 상실되어 버렸다.
_ 정병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북아시아의 유산 중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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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태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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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더보기

최근작 : <지식인 안중근>,<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총 44종 (모두보기)

김영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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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1940년생.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으로 4차례에 걸쳐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국제회의를 열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체제는 무효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세계에 전했다. 경북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오래 일하였고,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세계사 속의 다산학》(공저, 지식산업사, 2021), 《역사가의 탄생 2》(공저, 지식산업사, 2020), 《한일역사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 지식산업사, 2013)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최근작 :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세계사 속의 다산학>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 일본에 관대한 강화조약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게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평화의 약속이 아니었다
독도/다케시마, 북방영토/남쿠릴열도, 센가쿠/댜오위다오…
동아시아·태평양의 영토분쟁은 의도된 것이었다

냉전과 신냉전, 배신과 기만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70년 역사를 조망한다!

관대한 조약과 동맹의 역전
1952년 4월 28일. 2차 세계대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종전 처리를 위해 전년도 9월 8일에 일본과 48개 연합국 사이에 조인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되었다. 조약이 정식으로 발효되면서 일본 주둔 연합국군 총사령부는 점령 통치를 끝내고 일본국에 주권을 돌려주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출발부터 한계가 많았다. 전쟁을 결산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연합국의 중요한 동맹이었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 어느 쪽도 초대받지 못했고, 역시 중요한 동맹이었던 소련은 조약의 내용과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서명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식민지이자 연합군의 일부로서 참전하였던 한국을 초대하고 싶어 했지만, 일본과 영국 등의 반대로 결국 한국은 초대받지 못하였다. 소련이 반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조약 내용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엄격하게 묻지 않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정리되었다. 전범국가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로, 또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도록 농업국가로 개조하겠다던 연합국의 목표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 세계적인 냉전의 시작을 계기로 후퇴하였다.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대일 강화 7원칙이 일본의 예상보다 “의외로 관대한 것”이라며 용기를 얻었다고 썼다. 전쟁범죄·식민지범죄의 추궁을 면제받은 일본은 조약 내용에 만족하였고, 이후 미국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반공 동맹의 주역이 되었다. 아시아에서 냉전은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그러한 ‘동맹의 역전’과 함께 시작하였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안에서 살고 있다
2022년 4월 28일, 70년 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하면서 형성된 샌프란시스코 체제, 동아시아 냉전 체제도 70년을 맞는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이 평화조약으로 말미암은, 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동시에 체결된 미·일 안전보장조약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계, 그리고 그것이 관련 당사국들의 정치·군사·외교·안보·경제의 작동방식을 좌우하거나 거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관계망 전체를 가리킨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와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내용 해석을 둘러싸고 쟁점이 되고 있는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협상 등도 역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틀 안에서 맺어진 협약들이다. 한편 일본 내각관방 소속 영토·주권 대책기획조정실 홈페이지의 ‘다케시마’ 항목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리고 있다. “조약발효, 한국에 의한 불법 점거 /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 / 일본은 독립을 회복하고 SCAPIN-677 등,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에 의한 조치도 종료됐다. 그 후 다케시마는 군사훈련구역으로 미군에 제공했다.”
역사청산(식민지범죄, 전쟁범죄의 청산)과 영토분쟁 등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한·일 갈등은 이처럼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만들어낸 갈등인 것이다.
초대받지 못한, 그렇지만 내용은 지키라는 이상한 주장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패전국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고 단죄하고 배상하게 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 조약을 준비하고 체결에 이르는 기간은 바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미국은 1947년의 ‘트루먼 독트린’과 1949년 중국공산당의 중국 국공내전 승리 및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거치면서 미국 등 서방세계가 경계감을 높여 오던 사회주의세력 팽창 저지라는 동서냉전 정책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범국 일본을 단죄하기는커녕 거꾸로 일본의 전쟁범죄를 눈감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폭적인 군사·경제 지원을 통해 일본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의 최대 동맹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근대 이후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남북한과 중국은 일본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남북한과 중국(대만과 베이징 모두)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참여하지도 못한 남북한과 중국 등이 그 조약의 규정 조항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역사청산과 영토분쟁 문제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고발한다
지난 70여 년간 남북관계, 한반도와 주변국들과의 관계, 심지어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파문이 일 만큼 직간접적으로 절대적 영향을 끼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한 번도 정면으로,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국제적 시각으로 다룬 첫 본격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청일전쟁에 대한 재검토(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위해 미 국무부가 작성한 준비문서를 보면, 미국은 1947년 초안에서는 일본 영토를 1894년 1월 1일 이전으로 복귀시키고자 했다. 즉 청일전쟁이 영토반환의 한 기점이 되는 것이다)부터 시작해서 고종의 을사늑약 무효화 투쟁 등을 거쳐 최근의 일본 오키나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의 문제나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또 한국의 위안부 및 징용자 소송에까지 이른다. 1894년부터 2022년까지의 동아시아 역사가 반성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시기적인 방대함과 함께 역사학의 연구 성과만이 아니라 인권, 법, 국제정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연구한 성과들이 망라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에 한국 참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영국의 논의 과정에 일본이 은밀하게 역할을 한 것이나, 종전 직후부터 영토문제 해결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자료집을 만들어 연합국 측에 배포한 일본의 활동 등 역사적으로 흥미진진한 내용이 있는 한편으로, 국제조약 연구의 관점에서 한국병합 무효화 운동을 바라보거나, 국제 인권 논의의 상식 위에서 식민지범죄·전쟁범죄 피해자들의 소송을 둘러싼 법 해석의 여지를 확장시키는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보여준다.
추천사의 한 구절처럼 “현재의 한·일 간 식민지잔재 미청산을 둘러싼 갈등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잘못 끼운 역사의 첫 단추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분명 시간적으로 늦었지만 조약 발효 70주년이 되는 해에 이제라도 “세계 지식인들의 고발장 같은 책”이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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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일본에 면죄부를 주며, 미국 의도에 따라 일본 중심으로 재편된 전후 태평양 구도. 러시아, 중국(대만), 한국과의 영토 분쟁에 판을 깔아준 미국. 관심있는 논문 발췌독 하기!


파란-말 2023-06-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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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강화조약이 남긴 두 가지 부정적인 유산

동아시아에 있어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냉전체제와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자체가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성립되었으며, 이후 냉전 대립에 의해 분열된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구조화시킨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 및 식민지 지배의 책임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실종되어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과거의 전쟁과 대립을 해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냉전'이라는 세계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 밀려오면서, 동아시아의 탈식민화 과정이 새로운 전쟁과 분쟁으로 격화되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288/459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안에는 체제가 끼친 영향과 관련한 주제가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다루어진다. 고대 신라 시대로부터 현대의 한반도정책프로세스를, 유럽으로부터 동아시아 이르는 지역을 다루기에 다소 산만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은 '샌프란시스코 체제 = 냉전체제'다. 결국, 본문에서 언급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극복은 냉전 체제의 극복을 말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으로부터 시작되어 아시아 공동체로 안착하기 위한 여러 문제 인식과 방안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남긴 문제는 무엇인가?

미국의 동아시아 근대사 연구의 권위자 존 다우어 John W. Dower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유산을 다음 8가지로 요약하였다. 오키나와와 두 개의 일본, 한/중/러와의 영토 분쟁, 일본 내의 미군기지, 일본 재무장과 미국의 핵우산, 역사문제들, 중국 봉쇄와 일본의 아시아로부터의 이탈, 일본의 예속적 독립이다. 이들 8가지 모두가 한국과 관계가 깊지만, 특히 독도 영토문제와 역사문제 등이 중요하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14/459

1949년 중국공산당에 의한 중국 본토 점령과 1950년의 한국전쟁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다. 전후 빠른 속도로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일본을 최후의 보루로 지키고자 했던 미국의 의중이 강화조약에 반영되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세계대전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전쟁을 위한 체제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영토문제와 역사문제가 부정적인 유산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하게 만든 국제적인 국가체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적군 진영은 북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뒤에 숨은 소련으로 구성됐다... 일본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는 그 전쟁의 미군 진영 잠재전력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열도 전체를 포괄하고, 그 통합성과 안전을 보장했다. 이 체제 내에서 일본은 미군의 주요 후방 지원자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57/459

결과적으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전챙책임자가 아니라 전후 미국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서 공인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이 해외 식민지를 모두 상실한 것에 반해, 일본은 자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보존할 수 있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배후기지로서 비공식적인 마셜플랜(Marshall Plan)의 수혜국이 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전쟁책임에 관한 문제다. 조약문에는 왜 '평화'를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부재했다. 1947년 이탈리아 강화조약에서 연합국은 '3국 동맹'으로 구성된 '추축국'의 일원인 파시스트 정권하의 이탈리아가 침약전쟁을 개시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 이 조약에서는 추축국에서 탈퇴한 이탈리아에 대해 분명한 전쟁책임이 조약문에 명시된 반면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는 전쟁 책임이 물어지지 않았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93/459

일본에 대한 미국의 우호적인 태도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모호한 조문(條文)으로 현실화되었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케 되면서 수많은 분쟁지역이 생겨났다. 서로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정치상황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지만 결코, 지역적인 충돌을 넘어서지 않는 분단선. 이러한 분단선은 아시아 전체를 항상 긴장과 분열상태로 남겨놓는 역할을 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일본(그리고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해왔다.

평화조약의 모호한 자구들은 부주의 탓도 실수탓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미해결인 채로 남겨진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파생된 영토분쟁들 - 북방영토/남쿠릴열도, 독도/다케시마, 센카쿠/댜오위(오키나와), 스프래틀리/난샤 그리고 파라셀/시샤 문제들 - 모두 "애치슨 라인 Acheson Line" 곧 1950년 1월에 발표된,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냉전 방위선 주변에 나란히 포진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48/459

이와 함께, 일본에 대한 관대한 조치는 일본인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회 또한 빼앗아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의 2차례 이루어진 원자폭탄 투하는 일본에게 전범이라는 죄의식보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피해의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 근거를 확보하면서 일본은 동일한 피해국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는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변국과의 갈등을 키워왔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연구자들도 거듭 얘기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거의 모든 단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피해의식이다. 전쟁책임 문제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진보주의자들도차도 이런 피해의식의 징후를 보였다. 예컨대 이에나가 사부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국 일본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손상시키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일본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한 책임이 있다. 그리고 연합국 쪽, 특히 미국과 소련도 일본에 고통을 안겨주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83/459

국제무대에서 발설한 아베의 메세지는 보편적 가치, 민주주의, 기본 인권과 법치였으나 2019년 그의 각료들 19명 가운데 15명 그리고 거의 모든 자민당 당료들은 일본회의라는 조직의 수중에 있던 자들이었다. 신보수주의, 신국가/민족주의 그리고 역사 수정주의의 우익적이고 반동적인 혼합체인 일본회의는 그 극단주의 또는 극우 국가/민족주의 때문에 지금의 다른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용인될 수 없을 것이다.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32/459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위한 강화조약이, 오히려 냉전(冷戰)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의 분단문제가 갖는 세계사적인 의미와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결코 단순방정식이 아님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중국의 대만 문제, 일본의 오키나와 문제, 러시아 북방 영토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고차방정식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분단에서 평화 정착 나아가 통일까지 나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자연히 깨닫게 된다. 예상보다 깊은 분단 체제의 의미를 샌프란시스코 체제 안에서 확인하면서, 이제는 분단문제를 단순히 친일세력 극복이라는 관점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사적 수준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의 식민지 침략범죄 및 아시아/태평양 전쟁범죄를 징치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으나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발발을 맞아 냉전전략의 일환으로 변질되었고,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전선의 지역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조약이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변질 과정에서 식민지범죄, 전쟁범죄의 청산은 물 건너갔고, 과거 청산없는 동아시아, 과거청산 없는 한일 관계의 전후사가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대한 과도한 징벌로 오히려 히틀러 등장의 온상이 된 것과는 반대로, 전범국가 일본에 대한 너무나 관대한 처분은 일본을 전쟁 피해자로 착각하게 만들고 파시즘을 부활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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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10-10 공감(4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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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같은 설명, 그러나 그래도 알아야 할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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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g1*** 2022/10/23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일본의 식민지와 전쟁범죄의 청산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살아숨쉬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다.



책의 두꺼운 두께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분석하여, 냉전 그리고 현재의 국제정세까지 파헤쳐, 일본의 식민지와 전쟁범죄에 대한 청산까지 이어지는 테마를 제시한 이 책을 본 순간, 역사 그리고 현대 그리고 일본에 상당히 많은 관심과 인연이 많은 나로써는 당연히 읽어볼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구성 또한 처음 생각한 것보다 좀 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안내하고 있으며, 본래 3개월 전에는 완성했어야 할 이 서평을 이제서야 작성할 수 있게 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선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몇 가지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는, 마치 2019년 7월에 발간된 이영훈 교수 의 반일종족주의를 겨냥한 듯한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았다. 정확히는 책의 어느 구절도 반일종족주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여 비판하는 부분은 없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반일종족주의의 정반대에 위치하여 일본에 대해서 '일본은 나쁘다'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범죄 문제는 청산되지 않았고. 일본은 극우들이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반일'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들만 모아둔 듯한 인상을 깊게 받았다. 그러나 이러이러해서 일본은 나쁘다라고 끝인 날 뿐, 결론적으로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해결책은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로는, 거의 일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에 대한 비판이다. 일본은 아무튼 나쁜 놈들이고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혹은 방치했던) 것은 미국이다라는 주장은 새삼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미국이 왜 그럴수 밖에 없었나 그리고 왜 지금도 미국이 그렇게 유지하는가에 대한 좀더 심오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도 나쁜놈이다, 미국이 일본을 이렇게 이끈 것에 대해 사과해야한다 정도에서 끝이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부 저자는 북한 또는 중국과의 협력 등의 친중친북 정책까지 연계하여 주장하기도 하는데 상기한 첫번째 내용과 더불어 더욱이 특정 진영의 주장만을 취합했다는 인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전후체제에 대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핵심 코어로서 지금까지 세계를 이끌어 온 것에 대해서는, 사실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전반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직적인 동맹관계와 (일본을 속국이라고까지 일컫는다) 그리고 미국 동맹국간의 서열적인 국가질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안에서 미국이 의도적으로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방치(또는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후체제는 단순히 샌프란시스코 체제만으로 이어져 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키신저 체제도 그 중요한 한 축으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분업 체제 또한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만들어 온 중심이다. 상당수 저자들은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이 동아시아의 협력강화, 운명공동체, 미국의 사죄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미 키신저 체제에서 상당부분 겹치는 내용이 있기에 제대로 된 대안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한일 관계에서의 일본과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뿐만 아니라 한미일을 둘러싼 많은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야하는데, 이 책에서는 지엽적인 요소만으로만 비판을 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지적하는대로 이른바 일본의 65년 체제는 일본 그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식민제국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과거의 구 식민지 국가들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그들을 이끌어 가고 있다. 구 식민지 국가들도 과거의 종주국와 원해서든 억지로든 많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36년간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로 항상 일본에 사사건건 귀찮게 구는 이웃을 만들었을 뿐이다. 왜 한국이 그러한지는 일본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문제다. 이 책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출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기대와 다른 부분이 많은 책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그 배경에 관해서는 왠만한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고, 신냉전의 시대인 지금 한국의 새로운 역할을 어디에서 찾아야할 지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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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g900723 2022-11-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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