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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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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윤식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휘어감았던 문제, '학병'의 문제를 날카롭게 풀어낸 책. 1장 '학병세대와 글쓰기의 기원', 2장 '문학사적 공백에 대한 학병세대의 항변', 3장 '<태백산맥>과 학병 출신 세 인물론', 4장 '학병세대와 교양주의', 5장 '한일 학병세대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구성되었다.
추천글
- 한겨레- 한겨레 신문 2010년 9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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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 최근작 : <추근>,<근대 한국, '메이드 인 아메리카'에 끌리다>,<『자치통감』을 읽다 4>등 총 1,747종
- 대표분야 : 역사 21위 (브랜드 지수 102,07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국문학계의 대부 김윤식, 이번에는 ‘학병’이다!
“병자년 윤삼월에 난 소년이 있었소. 마을과 한참 떨어진 강변 포플러 숲속에서 자랐소. 벗이라곤 까마귀와 붕어, 그리고 메뚜기와 까치뿐. 저녁이면 초롱불 아래서 누나의 교과서를 엿보며 잠이 들곤 했소. 십릿길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가끔 뜻 모를 노래도 불렀소. 그속엔 이런 것도 있었소.
‘아아, 당당한 수송선……. 잘 있거라 조국이여, 번영하시라.’
이것이 <새벽에 기도한다>라는 일본의 군가임을 안 것은 어른이 된 뒤였소. 누나도 이것이 군가임을 알았을까. 왜냐면 1944년 무렵 학교 교육이란 온통 군국주의 일색이었던 까닭이오. 노래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위와 같은 아련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본서는, 그러나 회상의 문체만큼 따뜻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윤식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휘어감았던 문제, ‘학병’의 문제를 날카롭게 풀어낸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소명출판, 2012)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 양식을 양팔로 한 근대에서 부상한 것이 바로 식민지 개념일 것이다. 해방 공간을 거쳐 대한민국(1948.8.15)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9.9)으로 각각 독립된 국가가 탄생했다. 이때 이른바 문·사·철(인문학)에 주어진 사명 중의 하나는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 일제 36년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학문적 근거는 민족의 열등성이었다는 것, 이것이 식민사관이라 규정되어 있었다. 만약 지금 국가를 세운다고 해도 이것이 진실이라면 다시 식민지화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무엇인가. 식민사관이라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지어낸 허구인가, 아니면 과학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증명해내는 일, 그러한 사명감이 자신이 속한 세대에 주어졌다고 믿었고 이 연장선상에서 근대문학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작업들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도 제국 일본에 대한 공부를 피해갈 수 없었다. 여기에는 제국 일본의 죄악상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작업과 세계사 속에서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가 있었다. 이 두 영역 사이에서 저자는 또다시 일본의 군가들, 그 마법에 사로잡히고 만다.
학병세대란 새삼 무엇인가?
‘학병’이란 세대의 일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저마다의 세대는 다른 세대 쪽이 엿볼 수 없는 절대적 고유영역도 있고 또 각 세대를 꿰뚫는 모종의 공통성도 갖추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 세대감각을 유독 선명히 드러낸 것의 사례로 학병세대를 들 것이다. 유독 선명한 것은 이들 세대의 글쓰기가, 이병주와 선우휘 두 사람에 국한되었음에서 왔다. 그들은 학병세대가 이 나라 글쓰기 문맥에서는 공백상태에 놓였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단지 두 사람만이 이 거대한 세대를 문학적으로 지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병 간접체험자 선우휘는 자기의 좌표를 6·25에 둠으로써 각 세대 간의 공백(학병세대와 6·25세대)을 혼신의 힘으로 메우고자 했다면, 학병체험자 이병주는 군부혁명의 정치성 속에 좌표를 둠으로써 세대의식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이 두 거인의 글쓰기가 4·19세대의 문학권 속에서 배격, 배제되었지만 그 대신 일반 대중 층의 지지 속에 일정한 문학사적 소임을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체험세대의 이병주가 도달한 ‘허망한 정열’론과 “노오!”라고 외친 미체험세대의 선우휘가 ‘문학절대적 가치’에다 좌표를 둔 것은 이 나라의 문학사적 사실이자 동시에 그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고 볼 것이다.
체험에서 학문적 연구로…
학병세대가 남북한의 나라 건설에 주춧돌 몫을 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연고로 학병세대 연구란 비록 분단 상태이기는 하지만 새나라 건설에 알게 모르게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태백산맥>(조정래)을 보자. 중요인물 3인, 즉 김범우, 심재모, 박두병 등이 학병 출신이었던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문학사의 공백기를 메우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관부연락선>(이병주)의 포부도 이와 관련된 시각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이 학병의 시선에서 부각시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일들은 문학을 넘어선 역사 저편의 일이긴 하지만 문학은 응당 이를 울림으로나마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문학 나름의 사명감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문학계의 대부이자 기둥인 김윤식 선생의 저작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나왔다. 특히 일반적으로 논해지는 주제의 것이 아닌 역사의 주변부에서 맴돌던 ‘학병’이라는 존재를 논의의 한 가운데로 끌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번뜩이는 지성(知性)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본서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후학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접기
“병자년 윤삼월에 난 소년이 있었소. 마을과 한참 떨어진 강변 포플러 숲속에서 자랐소. 벗이라곤 까마귀와 붕어, 그리고 메뚜기와 까치뿐. 저녁이면 초롱불 아래서 누나의 교과서를 엿보며 잠이 들곤 했소. 십릿길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가끔 뜻 모를 노래도 불렀소. 그속엔 이런 것도 있었소.
‘아아, 당당한 수송선……. 잘 있거라 조국이여, 번영하시라.’
이것이 <새벽에 기도한다>라는 일본의 군가임을 안 것은 어른이 된 뒤였소. 누나도 이것이 군가임을 알았을까. 왜냐면 1944년 무렵 학교 교육이란 온통 군국주의 일색이었던 까닭이오. 노래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위와 같은 아련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본서는, 그러나 회상의 문체만큼 따뜻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윤식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휘어감았던 문제, ‘학병’의 문제를 날카롭게 풀어낸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소명출판, 2012)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 양식을 양팔로 한 근대에서 부상한 것이 바로 식민지 개념일 것이다. 해방 공간을 거쳐 대한민국(1948.8.15)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9.9)으로 각각 독립된 국가가 탄생했다. 이때 이른바 문·사·철(인문학)에 주어진 사명 중의 하나는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 일제 36년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학문적 근거는 민족의 열등성이었다는 것, 이것이 식민사관이라 규정되어 있었다. 만약 지금 국가를 세운다고 해도 이것이 진실이라면 다시 식민지화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무엇인가. 식민사관이라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지어낸 허구인가, 아니면 과학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증명해내는 일, 그러한 사명감이 자신이 속한 세대에 주어졌다고 믿었고 이 연장선상에서 근대문학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작업들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도 제국 일본에 대한 공부를 피해갈 수 없었다. 여기에는 제국 일본의 죄악상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작업과 세계사 속에서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가 있었다. 이 두 영역 사이에서 저자는 또다시 일본의 군가들, 그 마법에 사로잡히고 만다.
학병세대란 새삼 무엇인가?
‘학병’이란 세대의 일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저마다의 세대는 다른 세대 쪽이 엿볼 수 없는 절대적 고유영역도 있고 또 각 세대를 꿰뚫는 모종의 공통성도 갖추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 세대감각을 유독 선명히 드러낸 것의 사례로 학병세대를 들 것이다. 유독 선명한 것은 이들 세대의 글쓰기가, 이병주와 선우휘 두 사람에 국한되었음에서 왔다. 그들은 학병세대가 이 나라 글쓰기 문맥에서는 공백상태에 놓였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단지 두 사람만이 이 거대한 세대를 문학적으로 지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병 간접체험자 선우휘는 자기의 좌표를 6·25에 둠으로써 각 세대 간의 공백(학병세대와 6·25세대)을 혼신의 힘으로 메우고자 했다면, 학병체험자 이병주는 군부혁명의 정치성 속에 좌표를 둠으로써 세대의식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이 두 거인의 글쓰기가 4·19세대의 문학권 속에서 배격, 배제되었지만 그 대신 일반 대중 층의 지지 속에 일정한 문학사적 소임을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체험세대의 이병주가 도달한 ‘허망한 정열’론과 “노오!”라고 외친 미체험세대의 선우휘가 ‘문학절대적 가치’에다 좌표를 둔 것은 이 나라의 문학사적 사실이자 동시에 그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고 볼 것이다.
체험에서 학문적 연구로…
학병세대가 남북한의 나라 건설에 주춧돌 몫을 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연고로 학병세대 연구란 비록 분단 상태이기는 하지만 새나라 건설에 알게 모르게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태백산맥>(조정래)을 보자. 중요인물 3인, 즉 김범우, 심재모, 박두병 등이 학병 출신이었던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문학사의 공백기를 메우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관부연락선>(이병주)의 포부도 이와 관련된 시각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를 이 학병의 시선에서 부각시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일들은 문학을 넘어선 역사 저편의 일이긴 하지만 문학은 응당 이를 울림으로나마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문학 나름의 사명감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문학계의 대부이자 기둥인 김윤식 선생의 저작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나왔다. 특히 일반적으로 논해지는 주제의 것이 아닌 역사의 주변부에서 맴돌던 ‘학병’이라는 존재를 논의의 한 가운데로 끌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번뜩이는 지성(知性)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본서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후학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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