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

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요약+평론


 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은이) | 미지북스 | 2014-08-22  









페이지 수 580쪽 (종이책 기준)
제공 파일 ePub(30.49 MB)


망국 조선,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우리 한국인은 태어났다.
해방 한국, 한국인은 그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대 문학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한국인 정체성을 심층적으로 재구성하다.

20세기 초에 최초로 근대 한국인의 모습이 나타난 이래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제 시대는 일부에서 말하듯 우리 민족과 수많은 지식인이 일제에 협력하고 굴욕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 시대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찾아 헤매고,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며 그려가고 있었다. 특히 3.1운동 이후는 우리 민족의 본질을 찾아서 강한 조선인을 찾는 과업이 제시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1930년대에 이르면 우리의 지식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며 새로운 전선에서 창조적 예술이 지적 투쟁을 전개시켜 갔고 드디어 1930년대에는 강한 한국인의 모델을 발명하였다. 춘원은 우파의 입장에서, 벽초는 좌파의 입장에서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두 인물을 창시하였고 이 두 전사, 영웅의 모델은 현대 한국인에게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제1장 한국인의 정체에 접근하는 문제

제2장 홍길동과 성춘향
홍길동의 정체
천상의 영웅 홍길동 | 홍길동의 탄생 | 홍길동 신화

성춘향의 정체
사랑과 현실 | 시련 | 춘향의 출현의 의미

근대 이전의 두 인물

제3장 신소설의 인물들과 그들의 세상
신소설에 드러나는 현실
주인공 김옥련 | 신소설의 이야깃거리 | 공간의 문제 | 저항의 흔적 | 현실의 뿌리 | 주인공 김수정 | 구한말 현실과 신소설

자연상태에서의 삶과 죽음
홉스적 자연상태 | 전대미문의 상태 | 생존의 문제 | 진화 | 계속되는 삶

자연상태와 정치
강한 국가권력 신화 | 안과 밖 | 활로 | 반역 집단 일진회 | 국가가 없는 우리 | 민족주의의 탄생과 분기 | 자연상태와 정치

신소설과 그 현실의 역사적 의미

제4장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
두 민족주의자의 내면
두 민족주의자와 그들의 분신 | 이성과 욕망 | 속 사람 | 지평의 확대 | 사랑의 민족주의 | 한놈과 그의 세상 | 단재의 구상

두 민족주의자의 사회적 위치
새로운 존재와 그 세상 | 전략과 투쟁 | 개화민족주의자의 새로운 출발점 | 미완의 끝, 저항민족주의의 시작

두 민족주의자의 역사적 의미

제5장 만세 후에 찾은 인물들
김동인과 민족적 과제
김동인의 문체와 인물 | 약한 자 | 마음이 옅은 자 | 강함에 관한 단서

순수문학의 시도와 강한 인간의 재발견
<배따라기>를 부르는 사람 | 성과 애정의 문제 | 야성의 예술 | 지식인 바깥의 인물 | 삵과 삼룡이 | 망가진 작품

한국 근대 소설문학의 출발

제6장 대도시 지식인의 출현
기이한 생태의 대도시 지식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대도시 문명과 지식인

부활을 꿈꾸는 대도시 지식인
박제가 된 천재 | 부활의 신화

대도시 지식인이라는 종자

제7장 새로운 전사의 창조
욕망과 이성

두 번의 죽음
주인공 최석 | 첫 번째 죽음 | 결핍 | 순례자 | 첫 번째 유혹 | 두 번째 유혹 | 두 번째 죽음 | 식민지 조선과 구원

부활의 전사, 강한 조선인 만들기

제8장 민중 영웅의 창조
민중 영웅 임꺽정
천상의 영웅 임꺽정 | 벽초 식 사실주의와 ‘조선의 정조’| 임꺽정과 서림 | 임꺽정과 그의 공동체 | 민중 영웅 임꺽정

근대인 임꺽정
변신 | 유혹 | 돌아온 임꺽정 | 약동하는 심장

민중의 정체
민중의 연원 | 민중의 탄생 | 우리의 민중

반지성주의의 성격
지식인과 민중 | 저주의 안개 | 민중의 내면 | 이후의 이야기

근대적 민중 영웅

제9장 결론




P.11 : 우리 근현대의 역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간 엄청나게 먼 길을 왔고,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백여 년의 역사를 통해 이런 성과를 이루어오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적 과업을 망각하였고 결국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하였다.

P.23 : 근대 소설은 기성의 우주가 찢어지는 시대, 자본주의 발달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나타난 예술 작품이며, 그 예술이 창조해온 주인공들도 그런 환경에서 탄생한 인물들이었다.

P.101-102 : 결국 이인직과 이해조의 신소설에 나타난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은 이른바 ‘홉스적 자연상태(the Hobbesian State of Natur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하는 국가 이전의 상황 즉 국가를 필히 만들어야 할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e)’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인직과 이해조의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당시의 현실, 즉 사회는 붕괴되고 개인으로 흩어져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가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원인이었다. 루카치에 따르면 근대 소설은 “세계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관념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신소설도 죄악으로 가득 찬 사회, 망한 나라, 타락한 세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무후무한 ‘신소설’이라는 문학의 장르가 나타난 것이었다.






지은이 : 최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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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부재를 깨닫고 이를 발굴,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왔다.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 『한국인의 발견』은 그러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탄생』(2013년) 『오월의 사회과학』(1999년), 『지식국가론』(1992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 「개념사: 서구 권력의 도입」, 「국제정치에 있어서 문화의 의미」, 「권력의 반지: 권력담론으로서의 바그너의 반지 오페라」 등이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누구인가?
이 책은 사회과학서이자 역사서이며 문학 비평서이며, 특히 고전적 의미에서 하나의 문학(文學)이다. 저자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상을 무대로 파악하며, 시대와 대결한 근현대 한국인이라는 인식틀을 관철하여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다.
망국과 국권 상실, 그리고 전쟁의 참화로 점철된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전대의 수많은 한국인(조선인)은 생존에 몰두해야 하는 시대, 자신이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시기를 살았고, 후대의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음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료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후대의 우리 또한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전통과 단절되었고, 그 시대를 이해할 관점을 상실해버렸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그러한 막연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 ‘한국인’에 대해 이해하고 나서야 다시 새로운 ‘우리’, 외부 세상에 맞서는 공동체로서 ‘우리나라’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보고, 근대 문학
수많은 연구를 섭렵하면 할수록 오히려 좌절을 느끼던 저자가 그 시대를 더듬으며 마침내 찾아낸 유력한 접근 경로는 바로 근대 소설문학이었다. 저자는 우리 국학계가 이미 정리를 마쳤다고 자신해온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해석과 재평가를 하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상사의 구축을 시도한다.
아직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와 예술가가 덜 분화된 시대가 있었다. 우리의 지식인, 지도자들은 소설문학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대와 갈등하고 대결하며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한국인상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소설문학은 시대가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실험실이었다. 현실의 축소판인 작중 세계에서 인물들은 진화를 거듭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학가이자 사상가들, 즉 이인직, 이해조, 신채호, 이광수, 김동인, 나도향, 박태원, 이상, 홍명희 등이 그들의 세상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그에 맞서 어떤 인물을 창조했는지 면밀하게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점차 그 인물들이 한국인 정체성 누적의 역사라는 관점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구한말은 “홉스적 자연상태”였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근대적 소설이 나타난 것은 일본보다 약 20년 후였다. 고종 즉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40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나마도 최초의 근대식 소설인 신소설은 국문학에서 제대로 된 근대 소설로 인정받지 못한 장르다. 근대 소설 혹은 근대식 소설이 이렇게 뒤늦게 도입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구한말이 되어서야 이전의 문학 형식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대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근대 서구의 문학 형식에 담아야 할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들, 구한말 특유의 문제적인 이야깃거리들이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최초의 근대 소설, 신소설이 쓰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소설 작품들에 묘사된 인물들과 시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신소설이 묘사한 현실은 황당무계한 허구라든가 친일파 성향의 작가에 의해 날조된 조국에 대한 음해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인 현실이었음을 드러낸다. 그 시대는 이른바 “홉스적 자연상태”였다. 조선(대한제국)이 망하던 시기, 조선은 실로 지옥이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곳이었다. 국가의 권력이 조정 바깥에 거의 미치지 못했고, 백성들은 숨죽이고 제 한 몸 건사를 도모하는 삶을 살았다. 국가가 없는 세상, 국가가 구실을 못하는 세상, 모두가 국가를 원망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 20세기의 시작, 구한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신소설의 세계와 인물 군상은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가 없는 우리 - 민족의 탄생
“홉스적 자연상태”에 맞서 사람들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일진회는 그 가운데 태어난 신종 한국인들이었다. 한편 이들에 대응해 전통의 ‘의(義)’에 기반한 의병이 일어나 일진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일진회의 성립과 ‘반역’, 그리고 그에 자극받은 의병의 출현과 대결 와중에 조선 사람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질문을 겪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냐?’ 하는 문제는 마치 새로운 질문처럼 폐부를 찔렀다. 이 지점에서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이미 1903년경에 중국의 양계초(梁啓超)에 의해 도입된 말로 비로소 쓰임새가 생기게 되었다. 나라가 없어도 민족이 가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민족주의는 20세기 초반 이러한 홉스적 자연상태의 대혼란과 일본의 침략 와중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정체는 아직 틀에 불과했다. 그 내용은 이제부터 채워나가야 했고 민족의 본질(本質)을 얻기 위한 기갈이 시작되었다.

민족주의의 탄생과 분기 -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
‘민족’이란 말이 실체 있는 말로 탄생하던 즈음, ‘민족주의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자’로 지칭된 사람들은 1880년대부터 조선 사회의 붕괴와 혼란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백성들을 교육하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국민 교육으로써 “새로운 교육과,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종교로 피나 인종(the blood or the race)”으로 바꾸고 ‘자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춘원 이광수가 3.1운동 직전 1917년 발표한 『무정』은 초기 개화민족주의자의 정체성 투쟁에 관한 작품이었다. 춘원이 설정한 이형식이란 인물은 춘원의 분신으로 그 출발에서부터 이미 서구에서 수입한 ‘근대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성(異性)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해가면서 점차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자로 성장한다.
단재 신채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저항민족주의’ 또한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저항민족주의는 물론 개화민족주의를 저변에 깔고 형성된 것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개화민족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형태로 나타났다.『꿈하늘』을 통해 단재가 제시한 초기 민족주의자 ‘한놈’은 고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개인으로 신(神)의 명령에 따라 끝없이 싸우도록 고안된 인물이었다. 단재의 ‘한놈’은 춘원의 ‘이형식’과는 달리 아예 그의 정체성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지 그 기회조차 박탈당한 인물이었다. 그의 ‘님 나라’는 오로지 승리자가 되라 하며 그를 훈육할 뿐이고, 그 이유도 그 내용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한놈’은 아무런 사심이 없는 이상 어떤 과정을 거치든 간에 결국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기대되는 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 강한 한국인을 찾아서
3.1운동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라는 실체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우리 눈앞에 한때 강림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반면 뒤이은 1920년대는 이제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상실감의 시대였다. 당대의 ‘3.1운동은 실패했다.’는 평가는 이러한 허탈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는 이제 진짜 ‘운동’을 현실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 선두에는 김동인이 있었다. 초기 조선 지식인들 전체는 대체로 김동인의 주도에 따라 각 개인의 차원에서 힘을 기르는 강한 조선인이 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합의에 이르게 된다. 김동인은 ‘강함’과 ‘약함’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의 1921년까지의 초기 작품들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목숨』은 그 ‘강함’과 ‘약함’을 구별하고 파헤치는 일련의 작업이었다. 이후 1920년대를 통해 김동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순수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단편 소설들을 집필한다. 소설들의 소재는 주로 남녀 간의 문제와 그로 인해 타락하는 사람들이었다. 『붉은 산』의 삵, 『광염 소나타』의 백성수의 음악, 『배따라기』의 사공, 『감자』의 복녀 등 제시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광기에 휩싸여 비참한 결말을 맞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 문학계의 ‘연애의 시대’는 ‘사랑’을 발견한 시대이기도 했다. 비록 타락했지만, 그들은 정열을 생산하는, 심지어 광기로 치닫는 동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지식인, 민족주의자의 추락과 부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흔히 소설가로서의 삶, 도시에서의 삶에 관한 소설로 이해하지만, 저자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단적으로 구보씨는 이전 시기 이광수의 『무정』에서 영어 선생이었던 이형식이 1930년대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구보씨가 대표하는 한 세대의 조선 지식인의 생활양식은 전대미문의 것으로 그는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종자’였다. 구보씨는 본질적으로 시대에 ‘두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인물이었다. 구보씨는 사회적으로 실업자는 아닌, ‘무직자’였다. 즉 아직 일을, 사명을 찾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런 고민스런 상황에서 나타난 과감하고, 기괴하고, 천재적인 타개책이 바로 이상의 『날개』였다. 문학예술가가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지식인이라면 농촌은 맞지 않다. 도시여야 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꿋꿋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면 삶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고 다시 신선하게 예술가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은 쉽지 않다. 이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 천재를 재생(再生), 재탄생시키는 길을 정교하게 고안해 보였다.

강한 근대 한국인의 창조 - 이광수의 업적
과연 1930년대에 들어서면 새로운 지적 업적들이 산출되기 시작했다. 춘원은 다시 소설 창작에 몰두하였고 『유정』을 통해 당시 조선 지식인의 공통적인 숙제였던 ‘강한 조선인’ 만들기에 드디어 성공했고 드디어 그 비결이 공표되었다. 이광수가 『무정』의 이형식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치명적인 부분 중 하나는 그가 조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진실성과 또 백성이 그에 진심으로 화답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유정』의 주인공 최석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진화된 정체성을 완성한다. 최석은 이광수가 개발한 근대 한국인의 최신 모델이었고, 이 모델은 오늘날 한국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민중 영웅의 창조 - 해방 이후 민주화의 동력
같은 시대에 벽초 홍명희는 대하소설로 임꺽정이라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정교한 솜씨로 창조하였다. 그는 임꺽정을 통해 그 시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언급되던 비(非)볼셰비키적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형상화하였다. 단재 신채호가 전개한 아나키스트(anarchist)적 ‘민중’과 ‘민중의 직접혁명’의 논리와 언어에 벽초는 뼈와 살을 입히고 피를 돌게 하여 살아 있는 영혼으로 창조하여 우리에게 보냈다. 한때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쓰이던 ‘민중’이라는 말은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임꺽정이라는 생명력 넘치는 인물을 창조한 우리 민족에게는 이 ‘민중’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싸우고 있다.

오늘날 저주의 안개 - 반지성주의와 도덕성 부재의 자리
일제 시대에 여러 전선에서 싸워나가고 스스로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한 것은 반지성주의였다. 대중은 그들 지식인 가운데 많은 이가 민족을 배신하는 것을 보았고, 또 많은 이가 『무정』의 ‘배 학감’처럼 ‘장사꾼’ 같은 사람임을 경험했다. 지식인들 스스로도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 했겠지만 자신들의 이율배반을 끊임없이 확인해야만 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주로 1930년대부터 반지성주의가 나타났고, 오늘날에도 저주의 안개처럼 우리 사회에 스며 있다.
나아가서 강한 조선인을 찾아 온 지식인들의 노력은 다른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본질을 ‘강한 인간’에서 찾는 선택의 핵심은 1920년대 춘원이 제안했던 도덕성 회복을 통한 ‘민족 개조’ 계획을 기각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도덕성의 문제는 한국인이 ‘해방’되었을 때 한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조우하게 될 문제였다. 해방된 한국인들은 너무나 거칠었고 ‘힘’에 대한 박탈감에서 ‘힘’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도덕성이 소외된 힘의 추구야말로 1930년대 춘원을 위시한 조선 지식인들이 이룩한 ‘강한 조선인’ 추구의 대가였다.





글레이 2013-11-26
처음 읽었을 땐 과거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현재와 미래에 관한 책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탄생하고 성장해온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 기저에 한국인이 어떻게 탄생해야 하는지, 직접적인 언급은 철저히 자제하면서, 독자의 변형을 꾀한다. 초고수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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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923 2013-10-30
책의 바탕이 된 수업을 오래 전에 듣고 식상하게만 보였던 근 현대 한국 문학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근현대사에 담긴 혼란스러움과 역동성, 그 속에서 형성되는 한국안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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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 2014-07-02
그동안 심각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해온 신소설을 바탕으로 100년 전의 한반도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분석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강한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과 반지성주의 같은 ˝오래된 습관˝들의 기원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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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t 2014-04-28
고리타분하다고만 막연히 느껴왔던 한국의 근대사, 근대문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책으로 현재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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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처럼 2014-02-11
정말 좋은 책. 한국인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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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 기준은



업데이트, 동기화 [한국인의 탄생]
쟝쟝 2018-12-20

#읽쓰연 4번째 책

함께 읽는 4명 중에 3명을 괴롭혔으나, 정작 나는 전혀 괴롭지 않았던 읽쓰연의 네 번째 책. 치즈 곱창을 먹으면서 모임의 H는 물었다, “언니, 대체 이거 왜 읽자고 한 거예요?” 소주로 입을 헹구면서 대답했지.

“(네가 저번에 읽자고 한) 민족주의 책 읽고.. 한국인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이게 제일 괜찮을 거 같아서.” 라 말했는 데,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그러니까 ...... 두께도 두께지만, 너무 재미도, 의미도 없다는 책에 대한 반응들.

뭐라고????!!!!!!!!!즈엉말?????????? ????
나는... 재/밌/었/는/데????????????????
????개충격??

H는 말을 이었다. “정희진 샘이 책 고르는 기준이 있는데 백인, 중산층, 지식인, 남성이 쓴 책은 일단 거른대요. 이 책은 심지어 서/울/대 교수고 ‘노’학자예요. 어떻게 보면 주류중의 주류?! 그래서 언니가 이 책을 골랐다는 것부터가 좀 놀랐어요.”

정희진 머모님의 그 기준은 나도 알고 있었다. 실생활에서 적용해봐야겠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음음. 보자,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고르고,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읽던 것을 읽고.. 그러고 보면 스무살 이후 내가 익숙하게 읽어온 책들이라는 건. 대부분. 남성 / (고학력의) 지식인 / 전문가-중산층 ... 뚜뚜뚜...

집에 있는 책장을 살펴봤다. 최근에 사들이기 시작한 페미니즘 책들 말고는 다들 ..... 뚜..뚜..뚜... 정말, 내가 열심히(?) 사모은 저자들일수록 더욱더.. 뚜....뚜...뚜..

그 날, 책장을 살핀 후 머릿 속을 생각했다. 헹굴 수 있다면 좀 흐르는 물에 헹구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몸을 생각했다. 내 몸이 겪어온 서른 몇 해 동안, 당연히 체득해온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흡수해왔던 윤리들을. 그것들은 모조리 누구의 것이었을까? 누구의 입맛에 맞게 살아왔던 걸까.

그러니까, 정체성. ....
한국인의.. 아니 그 이전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

책 이야기를 하자. 난 재밌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근대’를 그것도 ‘소설’을 톺아봤다는 방식 자체가 신선하다고 여겼다. 저자가 ‘오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을 집필했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국가는 없는 데 민족의식이 싹트던 시절 조선인들은 무엇을 욕망했을까.. 궁금해하며 소설이 반영하는 당대의 사람살이를 추측해본 독서경험이었다. 저자가 구한말의 시기를 ‘홉스적 자연상태’ 쯤으로 추상화해서 논지를 전개했던 부분도 흥미로웠고, 인용된 전/신/근대 소설들을 읽는 만으로도 것도 즐거움~

망국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누구보다 ‘강한 조선인’을 열망했고, 문인과 지식인들은 그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며,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망한’‘헬조선’인들은 해방 이후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된’‘한국인’으로 거듭나 있었다는 결론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꺽정과 반지성주의를 연결한 부분도 좋았다.

물론 ‘작품을 선정한 기준이 뭘까?’‘아,여성작가는 1도 없네’‘이광수 너무 미화하셨네, 일제강점기 최애 시인 윤동주도 분석해주세요!’정도의 불만은 있었지만, 아주 작은 불만이어서 걸끄럽지 않았다. 아마, 같이 읽는 모임이 아니었다면, 후편인 <한국인의 발견>을 마저 읽으려 했을 것이다.

*



하지만 난 친구들과 함께 읽어버렸고, 그들의 평을 듣고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세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지금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를 읽고 있다. <문학을~>의 부제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 문학사’이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소설은 ‘여성적인 장르’이다(p.21)” 이 글은 신소설을 통해 근대초기에 여성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를 추적한다.

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는 <한국인의 탄생>은 신소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신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주체성, 자의식, 개성 등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이었다. 이처럼 피동적이고 내용이 전혀 없는 껍데기만 있는 ‘여성피해자’들이 바로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근대인의 모습이었다.(p.79)”

두권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주제의식은 다르다. 한 문장만 따로 떼서 평면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도 없다. 신소설의 여성주인공들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의 영역은 내 그릇을 벗어난다.

다만, 음.
내가 적는 이 글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내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니까.

*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에 대한 동일시 일 것이다.
내가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집단을 살펴본다. 1차적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단위의) ‘국가’일 테고 그래서 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인.
인생의 대부분은 ‘학생’으로 지냈고, 지금은 자기 먹을 밥은 자기가 버는 노동자다. 전라도출신 서울시민, 장녀, N포세대.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진보로. 민주당과 녹색당과 민중당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서야할지 몰라서 정당활동은 안한다.
읽어온 책만 놓고 보면 586 아재들의 뇌를 장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동일시’하는 집단, 혹은 정체성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된 것이 아주 최근래의 일이라는 사실이.

난 얼짱녀도, 된장녀도, 그렇다고 메갈/워마드도 아니었으므로. 그 흔한 OO녀라는 멸칭들이 붇는 ‘여성’들에는 동일시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정말 여혐민국이었고, 그 안에서 살아온 나에게 ‘여성성’은 언제나 ‘연약함’으로 상징되는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책 부제의 말마따나 강한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남자가 아니니까 그건 좀 불가능 했던 것 같고 씩씩하고 또 싹싹하다는 수식어 정도에 만족.

혐오, 혐오, 혐오.
내안 남겨진 가부장제의 시각을 직면할 때 마다 소름이 끼친다.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은 책읽기나 공부조차 그것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

*

그날의 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이 책은 ‘한국(지식인 남성)인의 탄생’에서 괄호를 과감하게 삭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쓴 ‘한국인’에 대한 책쯤으로 여기자고. “한국인=기본값이 성인 남성!!?”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저자가 일반화해서 ‘한국인’이라 언급한 인물들에 나(나의 어머니/할머니/아버지)는 없었다. ‘그래도 2013년에 나온 책이었으므로, 감안해주면 안될까’ 소심하게 의견을 피력해 보았지만, 독서 모임 친구들은 ‘시대에 맞게 지식인이면 더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게요.......
최정운 선생님, 업데이트들 하셔야겠어요........
그리고..... 나는 책 고르는 수준을 좀 더 업데이트......

요즘 읽고 쓰면서 되게 많이 반성하는 데,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속성이 ‘반성’인건지, 나이가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김중혁 작가가 했던 말마따나 초딩때 쓰던, 언제나 반성으로 끝나는 일기의 습성이 남은 건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남겨두려고 쓴다. 업데이트, 동기화.













(50)
‘사랑’이라는 말이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흔하지 않다. 서구의 ‘사랑’과 꼭 같지는 않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사랑’이라는 말과 개념이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제외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말은 있지만 남자와 여자 간의 성관계를 포함하는 특별한 관계와 감정으로서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은 거의 없다. 한자의 ‘애愛’도 고전의 용례에서는 ‘아끼는 마음’, 예를 들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일본에서 근대 이전에 많이 등장하는 ‘이로色’라는 말은 게이샤나 유녀들과의 관계를 이르는 말로 우리 문화나 서구 문화에서의 사랑, love와는 아주 다른 뜻이었다. .... 그러나 몇가지 중요한 특징중 상대방에 대한 욕망, 각별한 감성, 상대에 대한 배타적 정의와 의리, 그리고 특정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결의 등은 공통적이다.



(73)
신소설은 서양식 소설을 흉내 내기 위해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일차적으로 당시에 우리 조선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시작된 예술 장르였는 지 모른다.



(132)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여성’들 뿐이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 지옥의 정글에서 자라난 생명체, 즉 한국인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생존의 대가survivalist로서의 최초의한국 근대인, 특히 여성은 누가 창조한 인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그 지옥같은 자연에서 살아남고 진화한 최적fittest의 생명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인물성이 부정된 껍데기 밖에 없던 피해자에서 그런 존재성이 다시 부정되어 진화한 강한 자의식과 개성을 갖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타난 고독한 남성 투사는 가족생활에 무책임하며 능력 없고, 사회정치적 행위의 합리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에 자존심을 앞세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255)
1910년대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의 공통점은그들은 그들의 정체의 형식을 채울 내용(內容)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민족을 위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조건의 부재(不在)의 아쉬움을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무엇이 없음(不在)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 이다.우리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욕망의 화신이었다.



(426)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비결(秘訣)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것이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비결이었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조선에서 사랑의 의미는 전적으로 변화하였다. 사랑은 행복을 위하여 이성과 행복한 교제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뜨겁게 그러나 끝없이 자제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강한 인간, 강한 의지로 끝없이 참고 이루는 인간을 만드는 더욱 진지한 일이었다.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고 생산적인 일이었다.



(486-7)
공통적으로 ‘민중’이라는 말은 ‘백성 민(民)’에 ‘무리 중(衆)’을 합하여 ‘국가에 속하는 수많은 군중들, 큰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밀어붙이는 힘, 엄청난 규모의 물리적 완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말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백만민중(百萬民衆)’이라는 쓰임새는 단적으로 많은 사람이라는 군중의 규모에 착안한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이란 ‘정치적 의미를 갖는 육체적 힘으로 구성된 수많은 군중들’ 정도의 뜻으로 만들어진 말이며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전까지는 ‘민중’이라는 말은 서서히 정치적 혁명적 의미의 작은 조각들이 그 안에 모여들고 쌓여가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민중이라는 말은 혁명을 생각하던 사람들, 나아가서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511)
전통적인 영웅이 고결한 존재였다면 임꺽정이 대표하는 우리이 그대 영웅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는 ‘관능적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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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찾기, '소외'에서 벗어나기
blue923 2014-05-28





단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왔고, 지금 우리의 이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우리는 누구냐는 문제는 절실한 문제이며 사회과학이라든가 하는 전문 분과 학문에서의 학문 방법론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더구나 외국의 이론을 도입해서 그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른바 ‘소외’의 절정임에 틀림없다. (p.9)



우리의 근현대 사상사는 전통과 근대의 수많은 사상과 문화가 얽혀 온 역사이기에 더욱 어려운 분야이다. 그렇기에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다면적이고 복잡하다. 사상사의 생명은 해석이며, 이는 결코 쉬운 무공(武功)이 아니다. (중략)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 또 알겠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도 인정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식견과 철학을 갖추지 못한 국민들은 대중 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정치적 사회적 판단은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체성에 대해 관심이 옅은 사회는 안정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pp.18-19 중 발췌)



책머리와 서장의 역할을 하는 1장에서 순식간에 마음을 휘어잡고, 독자에게 부끄러움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면 이는 실로 대단한 능력이다. 최정운 교수의 수업은 솔직히 처음부터 수강생들의 관심을 휘어잡는 수업은 아니었으나, 그가 자신의 수업에서 다루었던 지난 15년간의 연구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현대 한국인의 탄생’ 1부에 해당하는 이 책은 수업보다 더 강렬하게 필자의 마음으로 들어온 것 같다. 3년 전에 필자가 근·현대 한국인의 탄생 과정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고 쏟아지는 참고문헌 목록을(수업시간에 언급되는 모든 문학 작품과 더불어 이안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 와 같이 수업의 핵심적인 바탕을 마련해 주는 책들이 포함되어 매우 방대하였다)끙끙거리면서 읽기에는 너무 어렸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노교수는 첫 수업 시간에도 정체성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책에 나온 말과 비슷한 말을 했지만 그 때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강의가 강의로만 남지 않고 잘 정리된 책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은 이렇게 ‘다시 한 번 버스를 탈 기회가 생긴’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분명 큰 행운일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이러하다’는 식의 담론은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친다. ‘왜 한국인은 ○○○○한가?’라는 질문 몇 개 가지고도 책 한권을 금방 만들어내고, 어떤 자리에 가서도 뜨거운 논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이나 열띤 논의의 자리는 대부분 몇 가지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민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국 민족을 추켜세우거나 비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국의 기구한 역사를 지정학적 위치 탓으로 돌리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한국 민족으로 모자라는 사람들은 ‘동양인’의 특성을 내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다 유교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게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몇 가지의 큰 줄기로 한국인의 자화상을 그려내기는 ‘물감의 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남기 마련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이런 미련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물론 저자도 모든 물감을 다 갖추어놓고 붓질만을 기다리는 팔레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새로운 시도 속에서 정체성을 규명하는 몇 가지의 확실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하는 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책의 서두에서 제시된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의 망조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사실상 근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민족주의의 두 가지 조류 즉, ‘저항민족주의’와 ‘개화민족주의’의 영향,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분명히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이지만 필자는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것에 대해 타당한 거부감을 표출할 만큼 ’민족주의자‘의 시각으로 논의를 풀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민족‘ 혹은 한국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좀 더 제대로 추적하려면 민족주의 담론을 절대로 비켜갈 수 없음을 알고 그의 기묘한 방법론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기묘한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문학작품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겠다는 것인데, 저자가 ‘사상사의 사료’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 문학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기존의 사고와 사상을 더 정교하게 드러낼지 모르지만,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사상의 구체적 실체로의 구상과 창조는 예술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르네상스는 예술가들이 이룩한 역사였다. 우리 근대사의 경우와 같이 상이하고 이질적인 문화와 문명이 뒤얽혀 있던 세상, 논리적으로 따지는 능력만으로는 현실의 갈피를 찾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에서는 예술적 직관력만이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었을지도 모른다(p.26).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은 본문을 읽다 보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데, 필자의 판단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들의 사회과학적 해석의 과정이 기존의 문학 해석과 동떨어지거나 낯선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매우 억지스럽다거나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보다는 간과하였던 부분을 날카롭게 찔러주는 통찰력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이야기의 기원』에서 이론적인 배경에 비해 이를 실제 문학 혹은 예술 작품(물론 ‘이야기’를 담고 있는)에 적용하는 과정이 부실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저자의 ‘방법론’은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을 분석할 때나, 이광수나 홍명희의 작품을 분석할 때다 비슷한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다. 이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합의, 비판, 보완 및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한계로 남을 것이지만 일단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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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새로운 사관
회색궤도 2015-02-26



이 책은 실로 오만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모든 걸 이야기해주지 않으며, 그렇지만 모든 걸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정형화된 일장일단, 하나의 미덕을 꼽으면 필히 하나의 악덕을 꼽아 균형을 맞추는 그런 식의 논평보다는 오히려 열광을 하고 싶다. 저자는 '홍길동'을 일컬어 한국인들에게 심긴 일종의 영구 혁명 프로그램이라 하는데, 나는 이 책 <한국인의 탄생> 역시 그 심장에 일파만파로 팽창해 나갈 심대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여기서 다 쓸 수는 없고, 그중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의의만을 꼽아 보려 한다.



이 책은 새로운 사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엄밀히는 새로운 사관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어떤 것을 재발견하고 '사관'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소재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다. 저자는 발표 연대가 각기 다른 작품을 거듭 분석해 가며, 그 속에 구현된 공간(배경)을 이어 붙여 한국 또는 한국을 분석하기에 적당한 대표적 공간으로, 그리고 인물을 거듭해 가며 그들을 '한국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낸다.



작품 해석이기도 하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역사 해석이 된다. 그렇게 해석이 끝나고 나면, 독자의 머리에는 시간적으로 진화를 거듭해 온, 그리고 공간적으로 한반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인물이 남는다. 역사의 어떤 거대한 흐름, 그 흐름을 떠받친 어떤 힘이 보인다. 근대 한국인의 탄생사가 보인다. 저자 최정운은 그것을 다시 두 흐름으로 가닥 잡고서,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라 부른다.



저자는 문학 작품과 당대 현실을 넘나들며 몇 가교를 놓는다. 저자는 해방 이전의 소설 작품 중에서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인직의 신소설 작품, 신채호의 작품, 김동인의 작품, 이상의 작품, 이광수의 작품, 홍명희의 작품 등이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소설 작품은 현실의 인물(창작자)이 몸담은 당대 현실에 기반하여 창조한, 미래를 예비하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당대 현실은 결코 단절적 시간이 아닌 연속적인 흐름 위에 있었다. 조선이 붕괴되던 구한말부터 식민지 초기, 중기, 말기까지 매 시기 인물들은 다르게 업데이트된 ‘배경’ 속에 살아갔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작품 속 가공의 인물과 그 창조자인 현실의 인물 사이에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포착하고, 잇는다. 현실 인물의 투쟁의 결과물인 ‘작품’은 ‘사실주의’의 결과로서 당대 현실에 관한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제 이를 발굴하는 작업이며, 그에 따르면 한국인은 '탄생'했으며 '진화'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저자는 ‘몇 가교’ 정도에서 설명을 멈춘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보인다. 저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독자의 몫으로 넘어온다. 독자가 발휘하는 상상의 힘에 따라 작품 즉 ‘신화’는 가벼운 유희가 되기도 하고 때론 단단한 삶의 근골이 되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현실을 주조할 힘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저자가 비워둔 여백은 방치가 아니라, 안배에 가깝다.



역사는 다수가 만드는 것이다.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야기가 생기고, 누구든 어떻게든 무엇이든 소재로 삼아서 역사를 쓸 수 있다. E. H. 카든 랑케든 마르크스든 동원해서 쓰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을 사랑해준 다수에 의해 그들의 것은 ‘유력한 사관’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 서술은 이런 식으로 유력한 '사관'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것은 거대한 흐름이며, 그 속에 콘텐츠는 넘쳐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학생들과 전공자들은 그 파고 속에 있다.



이 책은 잠시 그런 흐름, 모두가 올라타 있는 흐름에서 나온다. 그리고 우선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개인'이 어떤 인물인지 분석한다. 그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그는 그에 기반해서 어떻게 동력을 얻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일까? 우선 저자는 '한국인'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고 나서 역사 서술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임을 일깨워준다. 우리 한국인들이 머리에 무엇을 담고서 세상을 구상하였으며, 어떤 심장을 달고서 동력을 얻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사라고 저자 본인이 표현하지만, 사상사란 단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원초적인 느낌을 다소간 퇴색시킨다.



그렇게 시대별로 공간과 인물에 대한 확인을 한 후, 몇 가교 정도를 확인하고, 서술이 멈춘다. 그렇지만 서술이 멈춘 그곳에서, 독자 자신이 그 서술을 이어갈 새로운 심장을 얻게 된다. 물론 독자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1890년대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우리는 위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기존의 사관은 모두 이들 시기에 대해 답을 내놓고, 이야기를 내놓고, 지식을 쌓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향유하고 공부하고 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관이라는 단어를 잘 알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역사를 시간축을 따라 선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단 하나의 선만 존재할 것이다. 시간축이 하나니까. 그런데 사관에 따라 그 과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마치 여러 갈래의 평행 우주가 합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사실 사관은 꽤 많다. 한국사에만 해도 꽤 많다. 가장 유명한 민족주의 사관이 있고, 민족주의 사관이 있다면 탈민족주의 사관이 있으며, 그 옆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있고, 흔히 역사의 동력은 민중이라는 식의 민중 사관이 있으며, 역사에서 정치를 거세한다는 가정을 실험한 식민지근대화론이 있다. 또 이미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를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마르크스주의 사관이 있어 왔고, 구석에는 무정부주의자도 있었다.



식민 사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식민사관은 전근대의 조선을 정체된 역사로 설명하는데(정체론), 1960년대 들어서 그에 반발해, 그리고 실제로 가시화되는 당시의 '발전'을 확인하면서, 조선 시대는 이미 '근대',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를 예비한 시기였다는 취지의 내재적 발전론이 생겨났다.



다 생긴 것들이다.



이들 '사관'에 따라 역사가들은 시간축에서 ‘과거 사실’을 끄집어내어 재조립한다. 과거는 ‘사관’을 거쳐 모두 ‘달라진다.’ 그리하여 모두 ‘다른 역사’ 위에 서게 되며,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된다. 현재의 독자와 청자들에게는 '이야기'의 다른 버전이 쉴 새 없이 흘러다닌다. 역사학자들이야말로, 모종의 ‘사실주의’적 ‘투쟁’ 중이며, 이것이 바로 사관의 힘이다. <한국인의 탄생>이 사실주의 문학 작품을 소재로 했다면, 그간의 사관의 결과물 또한 ‘사실주의’ 작품으로서 취급이 가능하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연구 업적'이 되고, '책'이 되고, '지식'이 되고, 심지어 '상식'이 되어 간다. 축적되고 축적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사관'을 형성해간다. 어지간한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세상에 대한 촌평 정도야 할 줄 아는 법이고, 낮은 의미에서 거의 모두 다 '사관'을 학습한 상태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뉴스 좀 보다가, 상사의 잔소리를 듣다가, 엄마의 철학을 음미하다가, 시나브로 알게 된 이치 같은 것들이 모여서 생긴 모종의 '사관'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를 본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사회를 몰아치는 주요 이슈들 가운데에는 '역사'에 관한 게 많다. 크게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개발과 분배, 발전과 복지,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 기존의 역사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 등. 이러한 우리는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는 어떤 흐름에 올라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결코 기계적 중립에의 희구 따위를 위한 게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탄생’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그 ‘에너지원’들, 결코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닌 것들이 거대하게 소용돌이 치고 충돌하며, 지금 한국의 뉴스 한가운데 솟아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신문지상과 TV뉴스, 우리의 교실과 직장, 심지어 군대와 오만 곳에 다 '사관'의 입김이 스며들어 있다. 때로 혐오하기도 하고, 떠나겠다고 다짐하겠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와 정말 빼닮았다. 그 분열과 그 민족적으로 떠안은 '정의'의 모호함까지도.



<한국인의 탄생>은, 이 모든 한국인, 이 모든 사관, 영광과 야만을, 이광수의 <무정>을 인용한 책에서의 표현처럼 비록 신은 될 수 없지만, 굽어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단계일 뿐일 것이다.



아직 최정운 교수의 이 '사관'이 뭔지 그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실은 아직 그에 대한 이름도 없는 것 같다. 감히 짐작해 보려 한다.



인간이 한반도에 깃들고,

조선이란 나라의 시대까지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만들며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세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특히,

구한말로 일컬어지는 시기에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와해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다.

이것은 단순히 국가가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 광경은 지옥이었다. 지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조선을 저주했다. 그들은,

자살하거나, 도망(이민) 갔다. 그리고,

반역자들이 생겨났다.

반역자들은 조선의 전복을 꿈꿨다.

일본이 초대됐다.

우리 민족은 반역자들을 마주보며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에 입각해 그들을 응징했다.

새로운 권력인 일본은 반역자들을 버렸다.

조선이 무너졌지만, 일본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당신은 일본인인가?

반역자들은 한반도에서 살아갈 의미를 상실했다.

씨가 다른 외부 종족의 지배가 한참을 이어지는 와중에,

그렇게 10년이 걸렸다.

'민족'이 생겼다.

과거 성리학적 전통의 조선인이 아닌 민족이었다.

특이하게도 '국가'가 없었다.

국가가 없지만, '민족'은 존재했다.

전근대 조선은 폐기됐고, 일본의 지배는 현재이며, 미래는 존재했다.

민족을 만들어가는, 거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시대에, 민족을 강하게 만들려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떻게 강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민족주의의 문제가 제기된다.

'민족주의'는 최초부터 이미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로 나뉘었다.

더 '개화된 조선인' 대 더 '강력한 투쟁 본능을 가진 조선인'.

이 두 흐름은 도도한 물결을 이루어가며, 점차 소용돌이처럼 맞물리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주요한 비법은 '수입'이었다. 서구의 문명은 태양과 같았을 것이다.

그 '태양' 없이도 잘 살던 민족이, 그것에 의지하는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조선의 전통에 눈을 두지 않았다.

조선의 전통이 텅 비워진 공간에 서구의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신식 '선비'들은 양반이 아니었다.

대개 도덕적 권위, 계급적 권위도 없었다.

게다가 자주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주역들이기도 했다.

뭣보다 지금 시대는 자본주의 ‘문명’의 시대였고, 새로운 방식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사람들을 휩쓸었다.

일본을 업고 일하는 게 역사의 참 방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바빴다.

도시가 건설되고, 새로운 문화가 전해졌다. 조선인은 날로 새로워졌다.

그러나 조선인은 언제나 조선인이었다.

누군가에게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조선민족은 볼품없어졌다.

그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했다.

해방 직후 '조선인'은 모두 하나같이 해방을 기뻐했다. 거기에 일본인은 없었다.



식민지 시기 내내 지식인은 그저 지식수입상이거나 친일파(배반자)거나 돈도 제대로 못 버는 그런 존재였다.

누군가는 희망을 지식인이 아닌 다수 대중에게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그 지식인을 단련해서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나게끔 그리하여 조선인다움을 추구하게끔 만들었다.

조선인들이 어땠는가는 해방 이후를 보면 알 수 있다.

해방 당시 그 조선인들, 장차 한국인이란 이름을 가질 사람들이 그간 겪어낸 50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해방 이후 격렬한 역사를 써나갈 수 있었는지, 역동적이고 투쟁적인 그런 역사를 써나갈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2010년대의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지나온 경로를 제법 역사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요약에 해당할 듯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밑바탕이다.

사관으로서 기능하게끔 하는 그게 무엇인가 하는 것 말이다.

일단은 그냥 '인간'이 덩그러니 남는다.

인간은 무엇도 될 수 있다.

괴물도 짐승도 악마도, 그리고 천사도 무엇도 될 수 있다.



한국인이란 잘생긴 얼굴 뒤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다. 불과 1백 년 전에 양반놈네를 저주한 얼굴, 조선의 붕괴에 절망하고,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고, 동족을 배반하고, 이민족이 되고 싶어 하던 그 얼굴들, 그러면서도 조국을 근대화하고자 안달하고, 이민족을 몰아내고자 일치단결하기도 하고, 해외로 나가서까지 독립운동을 조직하던 그런 얼굴들도 있다. 기나긴 식민 지배를 거치는 동안에도 억압과 수탈이란 말로는 모자란 문명화, 도시화 속에 덩그러니 자기 정체가 뭔지 의아해하던 얼굴들이 있었고, 걔 중에서는 역사적 사명을 깨닫고 또는 착각하고 또는 뭐 어떻게 생각하든 분주하게 움직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 여러 얼굴들을 포개 놓으면, 그냥 인간이 덩그러니 남는다. 그 인간들은 모두 꿈틀대는 생명체이며, 세상을 마주보고 그에 반응해서 점차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발산하며,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삶을 걸고서 투쟁해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관'을 통해 심해에 잠겨 있는 과거 그들의 삶을 건져 올리고 있다. 때로는 '역사적 진리'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비장함을 내뿜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 최정운은 공간과 인물과 몇 가교를 확인하고, 일단 서술을 멈춘다. 그 끝에는 사관들의 투쟁사 역시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의 탄생>을 작품 해석이나 일차원적 시대 해석으로 이해해선 보이지 않는다. 그 광활한 행간을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서술이 멈춘 그곳에서부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그 이상은 개인 단위로 가능한 작업이라거나,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역사는 다수의 힘이, 무조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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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Won Jae Lee
May 14, 2015 at 3:45pm · 



미지북스, 2013.

오래전 일이다. 박사과정을 마쳐갈때 쯤,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이란 책이 나왔다. 1980년 광주의 문헌들 속에서 "절대공동체"라는 이름으로 5월 광주의 정치적 원형을 말했다. 문자 그대로의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해 왔는지, 다음은 뭘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꼭 그래서 공부를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일까, 『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라는 책이 그의 이름으로 나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최정운은 신소설과 근대소설을 텍스트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근대 정치사상을 기술할 만큼의 텍스트가 많지 않다는 것. 반대로 소설이라는 텍스트는 매우 풍부하다는 것. 소설이라는 텍스트가 구성하는 인물상을 연구함으로써 근대 한국인에 대해서 말해보겠다는 것. 그러면서 다소 앞서지만, '홍길동', '성춘향'에서 시작해서, 이인직, 이해조의 신소설의 주인공들, 이광수의 『무정』의 이형식, 신채호의 한놈, 김동인의 작중인물들, 소설가 구보씨, 이상의 『날개』, 다시 이광수의 『유정』의 최석, 홍명희의 임꺽정에 이르기까지 근대 소설의 작중 인물들을 쫓아다닌다.

홍길동과 성춘향에 대한 언급은 맛봬기일 뿐이다. 이인직, 이해조의 신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해석은 번득인다. 『혈의 누』, 『귀의 성』, 『치악산』 같은 신소설은 제목만 들어보았을 뿐, 실제 내용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집안의 치정과 음모로 쫓겨나고, 죽고, 또 죽이고, 도망치다 죽고, 우연히 구원받고, 강물에 몸을 던지고, 또 죽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전개된다. 최정운은 여기에 주목한다. 이런 신소설을 낳은 시대적 배경. 갑오경장(개혁)에서부터 시작해서 1910년 합병에 의해 국권상실에 이르는 기간 즉, 사실상 국권이 없던 무질서 상황, 온갖 거짓과 음모가 만연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을 그는 "홉스적 자연상태"라고 불렀다. (그는 이를 박경리의 『토지』를 통해 다시 확인한다) 말하자면 이 15년 정도의 기간이 원형질이었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그려낸 인물은 여자이고, 그것도 주체성을 갖지 못한 텅빈 여성인데,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내 목숨은 나의 것"이라는 근대성의 시초를 놓았다고 서두를 꺼낸다.

이광수의 『무정』의 이형식은 두 여자를 놓고 저울질하면서, 과연 내가 진정사랑하고 있는지 골몰하지만, 실은 지식인이 되어서 새로운 지배계급에 편입되기 위해, 부잣집에 장가들어야하는 처지이고, 이를 실제로 실현한다. 수재현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민족에 대한 사랑을 꿈꾸어보지만, 민족지도자로서의 사랑을 꿈꿀 뿐이다. 한편 신채호가 그려내는 한놈은 스스로 사유하지 않은 싸우는 기계로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최정운은 여기서 이광수를 개화민족주의로 신채호를 저항민족주의로 형상화한다.

만세 이후 김동인은 인간을 발견해낸다. 그는 '약한 자'와 '강한 자'를 그려내려고 시도한다. 최정운에 의하면 김동인이 발견해낸 내면 서사를 독백, 편지, 일기를 통해서 그려내는 방법으로는 '약한 자'를 그려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강한 자'를 그려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강한 자'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 예술가를 그려낸 작품 그 중에서도 『광염소나타』가 있다. 김동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이 단편에서 주인공은 예술적 감흥을 얻기 위해 방화와 시간(屍奸)까지 서슴치 않는다. 나중에 김동인이 그려내는 복녀는 사랑이 주는 열정과 성적 탐닉의 경험이 주는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1930년대 대도시화된 경성에서 지식인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민족의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실제 룸펜이 되어버린다. 박태원이 그려내는 소설가 구보씨는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지식의 소매상인 선생 노릇을 거부하고, 창작자인 작가가 되려하지만, 실상은 남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하릴없는 무직자다. 이상의 『날개』는 지식인의 재생과 부활을 꿈꾸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이런 소설 작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대도시라는 공간이다.

이 무렵 이광수는 『유정』을 통해서 근대적 비극 소설을 완성하는데. 이는 최석 이란 인물의 내면을 통해서다. 친구가 자신에게 맡겨 기른 수양딸과 사랑하게 된 최석은 사랑과 이성 사이를 갈등하며, 조선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를 지나 바이칼호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자살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을 끝내 거부하며 민족주의라는 동력을 완성한다. 그는 사랑과 이성의 내면적 갈등을 동력으로 해서 '강한 자'의 모습을 완성한다.

홍명희는 임꺽정을 통해 홍길동을 근대에 되살려내면서, 민중과 반지성주의의 연원을 찾는다. 조선, 중국, 일본에서 조선에서는 신채호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는 민중은 누구가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 혁명의 동력을 찾아 혁명에 이르는 존재이다. 혁명 그 자체에 대한 진정성이 있을 뿐, 혁명 이후를 그리지 않는 아니키스트적 세계관의 표현이다. 임꺽정과 구월산 화적패에서 이런 민중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좌절을 그리면서 특히 지식인에게 주목하게 되는데, 그가 서림이다. 최정운은 배운 놈은 배신한다는 인물상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임꺽정을 통해서 그는 당대에 물든 반지성주의를 보여준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이 지배계급이 되지 못하고,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스스로 반지성주의라는 자해에 빠져든다고 한다.

최정운은 근대 소설의 한국인상을 통해서 세 가지 키워드를 꺼내든다. 강한 자, 교육만능주의, 반지성주의. 서로 모순적이고 자기파괴적으로 보이는 세 요소는 근대의 식민지 사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국인의 모습으로 지옥불구덩이를 뚫고 온 한국인은 이제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게된다.

강한 자, 강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그 기원에 대해 막연히 한국전쟁과 여러 혼란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근대적 기원을 말한 점은 진일보한 지점이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하다는 것은 어디서든 알 수 있지만, 특히 외국에 나가보면 두드러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능력과 제도의 여백이나 빈틈을 찾아 제도를 무너뜨리는 힘.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강한 한국인의 힘을 민주적으로 조율하지도 못하고, 제도로 이를 규율하지도 못하는 기묘한 상태에 놓여있다. 말하자면 최정운은 이런 '강한 자'라는 목표의 구체적 형태를 근대 문학에서 구체적으로는 김동인과 이광수에게서 찾으며 이들을 개화민족주의라 이름하고 있다. 개화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이들은 개화파의 후예이며, 힘을 추구하던 이상을 국가는 사라지고, 민족은 붙들기 막연한 현실에서 개인을 통해 구현하려 한 것이다. 국권을 상실한 후 혼란상 속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강력한 식민지 통치기구를 이기고 살아남을 만큼 강한 자의 논리가 해방 이후 횡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주장이다. 개인의 과대성장, 개인의 과대능력. 그러나 동시에 그 시작은 과연 갑오경장인가? 즉 조선은 그때 붕괴했는가? 조선은 어느 시점에서 힘을 잃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19세기 조선, 특히 서북을 중심으로 반복되던 전염병, 각종 재난, 정부의 무능력은 이미 19세기를 관통했다. 구지배구조의 핵심인 경화사족과 중앙의 집권세력 그리고 향촌의 양반 조직이 어느 정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지배권력을 유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도, 최정운이 관심을 집중하는 15년간이 아주 특별한 혼란기라는 점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혼란은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조선 말의 민담이나 각종 민간 구비 문학을 살펴보면 이 점이 두드러질 것이다.

최정운이 다소 이런 무리를 무릎쓰는 이유는 홉스적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통해 이 문제를 해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절대적 혼란상태의 이념형으로 토마스 홉스에 의해 제시된 자연상태 개념의 타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거대한 권력 교체기에 나타난 일시적 혼란상태를 자연상태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연상태라면 무엇이든 선택가능하다는 것인가? 필연적으로 절대권력에 복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더욱이 홉스적 자연상태라는 개념 장치는 1894-5년에 일종의 심연을 만들어 앞으로도 뒤로도 건널 수 없는 결정적 단절을 초래하는데, 그것이 그토록 깊은 심연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권력과 지배집단의 교체 혹은 변화에 대해서 말하려면, 통치자(왕가 혹은 선출방식), 중앙 지배세력의 구성, 지방지배층과의 연합 내지는 통제방식, 지배집단 및 계급의 물적 토대에 이르기까지 다층위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데도 최정운은 중앙지배세력의 구성이라는 하나의 층위에만 천착한다. 그래서 그는 1919년 3.1운동에서 국가와 무관한 민족의 탄생을 보지만, 그 사건의 계기가 고종의 인산(장례)라는 사실을 건너뛴다. 구 지배자이자 지배의 상징의 죽음이 새로운 정체성의 표출을 폭발시켰고, 항간에 퍼진 독살설은 이를 뒷받침했다. 시점을 하나로 정하려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그 시대를 지나치게 자세히 구분하려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보다 긴 기간 동안 전통과 근대가 일종의 권력 교체를 하는 중간기, 간조기를 설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소소히 말할 것들이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어떠어떠할 것이다'라는 추정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본인은 문학 자료에 대한 사상적 연구에 한정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의 상당 수는 이미 사회사 연구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그런 부분들로 채우면 좋지 않았을까? 신소설의 증거로 박경리의 『토지』를 제시하듯이.

국문학 연구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역사 연구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연구가 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논리적 비약에 대해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인이라는 주체에 대한 문학을 자료로 한 집요한 통찰이라는 점에서 꼭 읽어보아야만 하는 작품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최정운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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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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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적 자연상태와 그 속에서 사회계약의 주체로서의 한국인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특질을 지녔는지 분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제일 중요한 건 리바이어던이라는 국가가 영속하는 게 아니라 베헤모스적 내전상황과 일종의 순환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인데
 '친일파'와 '빨갱이'라는 공포가 한국에서의 그 순환을 등장시키는 계기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저작이라고 한 거다. 
우리 내부의 친일파, 빨갱이라는 공포가 보수적 국가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의 상이한 두 형태로 나타나면서 한국의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강화시켜나가는지 좀더 고민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물론 저자는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홉스적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은 분명 일종의 내전적 상황에 놓여 있는 건 분명해보이고 친일과 친북이 각각 그 계기로 작용하는 건 분명한데 이 지점에 대한 보다 나은 이론화는.. 내가 홉스를 좀더 자세히 읽어봐야 뭐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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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한국인은 어떻게 창조되었나
—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미지북스 2013
김백영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어떤 국학자도 설득력있
는 해답은커녕 공감할 만한 문제설정 방식조차 제시하지 못했던 한국
학의 오랜 수수께끼에 대해,
정치학자가 문학사를 종횡무진하며 새로운 문제틀과 해석틀을 벼려내
고 주옥같은 발견을 쏟아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한강의 기적’과 압축근대화를 달성한 ‘다이나믹 코리아’의 강인하고 근면한 한국인, 이들이 불과 백여년 전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이 남긴 기행문 속에 ‘극동의 미개국 가운데서도 가장 게으르고 나약한 민족 중 하나’로 묘사된 사람들의 후예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현대 한국인을 탄생시킨 19세기말~20세기 전반기 한국인의 내적 형질 전환과정에 대한 심층적 탐사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저자 최정운(崔丁云)이 선택한 우회로는 소설문학 작품 속의 인물에 대한 분석인데, 600면에 육박하는 분량에, 정치학자로서는 최초로 근대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진지한 연구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한 대작임에도, 시종 풍성한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해석이 버무려져 맛깔스러운 책읽기를 즐길 수 있다.
서론부와 결론부를 제외하면 이 책은 7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창조된 한국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홍길동과 성춘향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이인직(李人稙), 이해조(李海朝) 등 신소설의 시대, 초기 민족주의의 두갈래 길을 보여준 이광수(李光洙)의 『무정』과 신채호(申采浩)의 『꿈하늘』, ‘강한 인간’에 대한 고민을 정식화한 김동인(金東仁)의 작품들, 대도시라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서식하는 신인류의 출현을 그려낸 박태원(朴泰遠)과 이상(李箱)의 소설, 김동인이 제기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 이광수의 『유정』, 그리고 저항하는 한국 민중영웅의 완결판을 형상화해낸 홍명희(洪命憙)의 『임꺽정』에 이르기까지 그 탐문의 여정은 이어진다.
상당히 긴 시간대에 걸친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망라하고 있음에도 논의가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누구나 익히 아는 익숙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글이 전혀 지루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책 전체를 관류하는 저자의 질문이 그만큼 내재적 일관성과 다채로운 이론적 사유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그 해답을 끌어내는 방식이 보기 드물게 참신하고 획기적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을 거칠게 한마디로 정식화하자면, ‘홍길동과 성춘향으로 대표되는 전통시대의 두 주체—저항하는 주체(민중)와 사랑하는 주체(개인)—가 구한말과 식민지 시기라는 전면적인 사회해체와 민족위기 국면에서 어떤 변화를 거쳐 근대 한국인으로 재탄생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육중한 난문(難問)에 대해 저자는 소설작품을 통한 근대 주체의 탄생신화에 대한 분석, 즉 한국적 맥락에서의 돈 끼호떼와 로빈슨 크루소와 파우스트의
출현이라는 해석틀을 도입하여 분석함으로써 매우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일련의 해답을 제시한다.

책소문
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 김백영
changbi_book
2015. 10. 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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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는 신소설의 문학사적 지위에 대한 국문학계의 통념을 훌쩍 뛰어넘어 신소설을 
‘문학적 완성도가 결여된 미완의 소설’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결여에 대한 적나라한 리얼리즘의 산물’로
해석해내고, 더 나아가 신소설의 시대를 ‘홉스적 자연상태’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시대상을 생생하게 드
러내는 풍성한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왕조 말기의 조선사회를 파멸적 상태에 놓인 사회, 즉 ‘지옥’으로,
대한제국 시기를 사실상의 ‘국가부재 상태’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일진회(一進會)와 친일파와 개화민족
주의자에 대한 발본적인 정치사적 재해석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부분은 진부한 민족주의사학의 도그마에
안주하고 있는 국사학계의 주류적 해석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로 읽힌다.
또 한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식민지 시기를 단순히 좌절된 민족사의 암흑기로만 바라봐서는 안되며 ‘강한
조선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했던 주체적 시기로 파악해야 한다는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새로
운 한국인을 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 우파적 길과 좌파적 길, 개인의 탄
생과 민중의 탄생의 양대 계보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는데, 그 대미를 장식하는 두 작품이 『유정』과
『임꺽정』이다. 이광수가 낯선 수입품인 ‘사랑’을 토착화시켜 한국인의 내면에 장착하는 데 성공함으로
써 욕망과 이성의 내적 모순을 무한한 동력원으로 하는 새롭고 강인한 인간형을 주조해냈다면, 홍명희는
홍길동이라는 고전적 영웅 모델에 서구적 개인주의와 아나키즘을 결합시켜 임꺽정이라는 인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서구는 물론 동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사회 고유의 끈질
기게 저항하는 민중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임꺽정』을 『파우스트』의 서사구조
를 통해 해석해내는 대목은 실로 탁월하다.
물론 이 책이 장점과 미덕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이 그 시대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을 특정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 방법론적
정당성의 문제에 결코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사랑’이 과거 한국의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서구 문명의 발명품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목이나 ‘새롭고 강한 한국인의 창조’를
‘춘원의 획기적 업적’으로 (과대)평가하는 부분은 다소 의아스럽고 불편하게 읽힌다. 이상의 『날개』를
대니얼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
각되지만, 대도시라는—대단히 감각적이고 자극적인—새로운 공간적 장치가 식민지 인텔리와 맺는 관계
에 대한 분석은 너무 소략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운 점은, 식민지 시기에 대한 서술 전반에 있어서
구체적인 사회적 환경이나 역사적 조건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빈약하다는 점이
다. 이는 저자의 분석이 주로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렇
다고 하더라도 식민지 시기 한국인의 변화를 당시 사회상의 변화(가령 1910년대와 1930년대의 차이)와
거의 무관한 고독한 개인의 내면적 자아 형성사로 서술하는 점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또한 『임꺽정』
에서 표출된 반(反)지성주의를 오늘날 한국 교육과 정치의 고질의 역사적 연원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지만, 전쟁과 분단 이후의 격동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상황에서는 다소간 논리적 비약으로
읽힌다(반면 이는 해방 이후 시기를 다룰 저자의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어떤 국학자도 설득력있는 해답은커녕 공감할 만한 문제설
정 방식조차 제시하지 못했던 한국학의 오랜 수수께끼에 대해, 정치학자가 문학사를 종횡무진하며 새로
운 문제틀과 해석틀을 벼려내고 주옥같은 발견을 쏟아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15년
전 『오월의 사회과학』(풀빛 1999)에서 빛을 발했던 분석의 날카로움과 정치(精緻)함은 세월의 침식
과 풍화에 다소 무뎌졌을지언정, 저자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탁월한 공감의 능력은 여전히 건재하며,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의 폭은 훨씬 더해졌음을 실감한다. 이 책의 등장으로 향후 한국 근현대 사회문화 변동 연구가 한층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창작과비평』 2014년 봄호
글쓴이 김백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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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요약 및 평론

1. 요약: 소설을 통해 추적한 한국인의 정신적 계보학

이 책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최정운 교수가 정치학자의 시선으로 한국 근대 소설들을 텍스트 삼아,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했는지를 추적한 <정신적 계보학> 탐구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당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과 욕망을 분석함으로써 <근대 한국인>이라는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는 과정을 규명한다.

가. 개항과 충격: 힘을 향한 갈망 이야기는 19세기 말, 조선이 서구와 일본이라는 강력한 타자와 조우하며 겪은 충격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이인직의 <혈의 누>를 분석하며, 당시 조선인들이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이 어떻게 <힘(Power)>에 대한 강렬한 동경으로 전환되었는지 설명한다. 봉건적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조선인들은 생존을 위해 '개화'와 '신학문'이라는 새로운 힘을 갈망하게 되었다. 이때의 개화는 단순한 문물 수용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인식되었다.

나. 이광수와 근대적 자아의 탄생 책의 상당 부분은 춘원 이광수의 작품 분석에 할애된다. <무정>은 한국인에게 <사랑>과 <개인>이라는 개념을 심어준 텍스트로 해석된다. 이광수는 봉건적 윤리에 얽매여 있던 조선인들에게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촉구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광수가 주창한 '정(情)'과 '사랑'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민족을 개조하고 단결시켜 힘을 기르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었다고 분석한다. 즉, 한국의 근대적 자아는 서구처럼 시민 혁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생존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기획된 자아>였다는 것이다.

다. 식민지 시대와 뒤틀린 욕망 일제 강점기가 깊어지면서 한국인의 내면은 복잡하게 뒤틀린다. 저자는 염상섭의 <삼대> 등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과 자본가들이 겪는 분열을 포착한다. 특히 이광수의 친일 행각에 대해, 저자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그 내면의 논리를 파고든다. 이광수에게 있어 일본은 '마스터(주인)'였고, 그는 조선인이 이 마스터와 동일시됨으로써 힘을 얻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 백성이 겪는 <힘의 숭배>와 <열등감>이 어떻게 기형적인 근대화 열망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라. 해방과 전쟁, 그리고 생존자로서의 한국인 해방과 6.25 전쟁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확정 짓는 용광로였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도덕과 명분은 사치였으며, 오직 <생존>만이 지상 과제가 되었다. 저자는 이 시기를 거치며 한국인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공의식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전투적 개인주의>를 내면화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치열한 경쟁 심리와 상승 욕구는 바로 이 생존 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다.


2. 평론: 권력의지로 읽어낸 한국인의 민낯

가. 역사학이 놓친 빈틈을 메우는 정치학적 상상력 <한국인의 탄생>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기존의 역사학이나 문학 비평이 포착하지 못한 지점을 정치학, 특히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을 빌려 예리하게 파헤쳤다는 점이다. 저자는 소설을 문학 작품이 아닌 '당대인들의 욕망이 투사된 사회적 텍스트'로 읽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 교과서의 건조한 사실들 이면에 숨쉬고 있던 한국인들의 두려움, 열등감, 그리고 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이는 한국 근대사를 '저항과 수난'의 이분법으로만 보던 관성을 깨뜨리고, 우리 안에 내재된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하게 만든다.

나. '한국적 근대성'의 기원에 대한 냉철한 부검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과도한 경쟁, 갑질 문화, 외모 지상주의, 학벌주의 등의 기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구한말부터 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생존을 위한 힘의 추구>가 진화한 결과다. 한국인에게 '근대'란 합리적 시민 사회의 형성이 아니라, 힘없는 자의 비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는 통찰은 뼈아프지만 부정하기 힘들다. 우리는 여전히 구한말의 조선인처럼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힘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 이광수 중심의 서사가 갖는 한계 그러나 저자의 논의가 이광수라는 특정 인물과 텍스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광수가 당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그의 엘리트주의적 시각이 당시 모든 한국인의 내면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중적 차원의 저항이나 또 다른 결의 근대성 모색이 이광수의 '힘의 논리'에 가려져 과소평가될 위험이 있다. 또한, 문학 텍스트 분석을 실제 역사적 실체와 1:1로 대응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약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라. 결론: 자기 성찰을 위한 거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탄생>은 근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해부한 가장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저작 중 하나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 책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성취와 부끄러워하는 민낯이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온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기원을 냉정하게 응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근대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임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힘에 대한 갈망'이라는 주제가 현재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책과 연결하여 읽어볼 만한 다른 근대사 관련 서적이나, 특정 시기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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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평론(한국어) — 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은 “근대 한국인”이라는 존재가 19세기 말~20세기 전반의 격변 속에서 어떤 내적 형질을 획득하며 만들어졌는가를, <근대 소설문학 속 ‘인물’의 계보>를 통해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단순한 문학사 정리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상사를 재구성하는 시도로 제시한다. 근대의 충격(망국, 식민지, 전쟁)이 너무 크고 기록이 불충분해 “우리가 우리를 안다”는 통념 자체가 허술해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그 공백을 메우는 유력한 “우회로”로 소설을 선택한다.

1) <구성과 접근>

교보 eBook에 제시된 목차 기준으로, 책은 

  • 1장 문제제기 뒤에 
  • 2~8장에서 인물 분석을 이어가고 9장에서 결론을 맺는다. 
  • 2장은 근대 이전의 ‘원형’으로서 홍길동과 성춘향을 재독해하고, 
  • 3장은 신소설 속 인물·공간·서사를 통해 구한말 현실을 “허구가 아닌 사실주의적 기록”으로 읽는다. 이어 
  • 4장은 초기 민족주의의 두 초상을, 
  • 5장은 3·1 이후 문학의 과제 속에서 ‘강함’의 단서를, 
  • 6장은 대도시 지식인의 출현(박태원·이상 등)을, 
  • 7장은 ‘새로운 전사’의 창조를, 
  • 8장은 홍명희 『임꺽정』을 통해 ‘민중 영웅’과 민중/지식인 관계(반지성주의 포함)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구성이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저자가 찾는 것은 제도사나 사건사라기보다 <“시대와 대결할 수 있는 인간형”의 발명 과정>이다. 소설은 “시대가 허락한 최고의 실험실”이고, 인물은 그 실험에서 변이·선택·축적을 겪는 “종(種)”처럼 취급된다.

2) <핵심 논지(내가 읽은 이 책의 중심축)>

이 책의 중심축은 대략 세 겹으로 요약할 수 있다.

  • (1) <구한말의 ‘자연상태’ 경험>
    3장에서 저자는 신소설이 그려낸 세계를 “홉스적 자연상태”에 가까운 생존의 장으로 묘사한다. 국가의 보호가 붕괴하거나 실종된 조건에서 개인은 삶과 죽음의 최소 조건을 두고 싸우며, 그때의 감각이 근대 한국인 형성의 바닥층이 된다는 것이다(목차에 ‘홉스적 자연상태’, ‘생존’, ‘진화’가 직접 등장).

  • (2) <민족주의의 분기와 ‘강한 인간’의 과제>
    4~5장은 초기 민족주의가 단선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내면·전략·사회적 위치를 가진 갈래로 갈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3·1 이후 “강한 조선인”이라는 과제가 제기되고, 문학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 장이 된다.

  • (3) <도시 지식인–전사–민중 영웅으로 이어지는 모델의 축적>
    6장에서 대도시 지식인은 새로운 생태계의 신인류로 등장하고(박태원, 이상), 7장에서 “전사” 모델이, 8장에서 “민중 영웅” 모델이 정식화된다. 창비 서평(김백영)은 이 책을 “강한 한국인은 어떻게 창조되었나”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라고 정리한다.

3) <이 책의 장점>

  • <문학을 ‘자료’가 아니라 ‘사상 실험’으로 다루는 힘>
    흔히 소설을 시대 반영의 거울로만 읽는데, 이 책은 인물을 ‘발명된 인간형’으로 놓고 사상사적 기능을 묻는다. 그래서 문학 비평이 곧 사회이론이 되는 구간이 생긴다. 이 결합은 실제로 책 소개에서도 “사회과학서이자 역사서이며 문학 비평서”라는 자의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 <연속성의 복원>
    “전통과 단절되어 관점을 상실했다”는 진단 아래, 홍길동·춘향 → 신소설 → 민족주의자 → 도시 지식인 → 전사/민중 영웅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제시함으로써, 근대의 파열 속에서도 어떤 감정·욕망·규범이 누적되었는지 보여준다.

4) <한계와 쟁점(비판적 평론)>

  • <소설 인물에 ‘집단의 진화’를 과도하게 실어 나르는 위험>
    소설은 현실을 베끼는 기록이 아니라, 장르 관습·검열·시장·작가의 정치적 계산이 뒤엉킨 산물이다. 따라서 인물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진화”를 말할 때, 어떤 부분은 설득력 있는 역사적 추론이지만, 어떤 부분은 텍스트 해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비약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매력적인 만큼, 독자는 “문학의 가능성”과 “문학의 한계”를 동시에 들고 읽어야 한다.

  • <‘강한 한국인’ 서사의 양면성>
    ‘강함’은 식민지·전쟁·압축근대화의 조건에서 분명 현실적 과제였지만, 동시에 그 언어는 쉽게 전투적 민족주의, 남성적 영웅주의, 혹은 폭력의 정당화와 결합할 수 있다. 저자는 좌/우의 서로 다른 영웅 모델(예: 춘원/벽초의 대비)을 다루면서도, 결과적으로 “대결 가능한 인간형”의 발명을 중심에 놓는다. 독자는 여기서 “무엇에 맞설 것인가(제국? 빈곤? 국가폭력? 내부 억압?)”와 “어떤 방식의 강함인가(연대? 지배? 경쟁?)”를 분리해 질문할 필요가 있다.

  • <젠더·계급·지역의 비대칭 가능성>
    분석 축이 영웅/전사/지식인/민중 영웅으로 갈수록, 여성 인물이나 일상적 생존의 윤리(돌봄, 관계, 재생산 노동)가 주변화될 위험이 있다. 2장에서 춘향을 다루지만, 그 이후 “강함”의 표준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점검해 보면, ‘한국인의 탄생’이 특정한 인간형(상대적으로 남성·공적·투쟁적)에 더 많은 조명을 주는지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이 점은 실제 본문 독해로 확인하며 읽을 대목이다).

5)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은가>

  • 문학사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근대 한국인의 정신구조”를 묻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하다.

  • 다만 이 책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강력한 가설(문학 속 인물의 계보=정체성 형성의 압축)로 두고, 같은 시기를 다룬 역사 연구·사회사 연구와 교차검증하며 읽을 때 가장 생산적이다.


<Summary + Critique (English) — Choi Jung-woon, The Birth of Koreans: The Evolution of Modern Koreans in Confrontation with Their Age>

Choi Jung-woon’s The Birth of Koreans is an ambitious attempt to explain how “modern Koreans” came into being—psychologically, ethically, and politically—across the upheavals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Rather than writing an institutional history or a chronicle of events, Choi takes a distinctive detour: he treats modern Korean fiction as a kind of experimental laboratory in which intellectuals and writers invented, tested, and refined new human types capable of confronting a collapsing world. In the publisher’s description, the book openly claims a hybrid identity—social science, history, and literary criticism at once—and frames itself as a long-form reconstruction of Korean identity and intellectual history through close readings of novels and their characters.

1) Structure and method

Based on the table of contents shown in the Kyobo eBook listing, the book begins with a methodological problem (Chapter 1) and then proceeds through a sequence of character-centered analyses (Chapters 2–8), ending with a conclusion (Chapter 9). The itinerary is revealing. It starts from pre-modern “archetypes” (Hong Gildong and Chunhyang) and moves into the “new novel” (sinsoseol) era, arguing that what later readers dismissed as implausible or ideologically compromised fiction can be re-read as a rigorous, realist registration of lived conditions.

From there, Choi follows a developmental arc: early nationalists and their diverging inner worlds and strategies; the post–March 1st Movement search for a “strong Korean” model; the emergence of the metropolitan intellectual in a new urban ecosystem; the deliberate crafting of a “warrior” figure; and, finally, the maturation of a popular hero in Hong Myung-hee’s Im Kkeok-jeong, where Choi also addresses the tense relationship between intellectuals and “the people,” including the book’s discussion of anti-intellectualism. A Changbi review usefully summarizes the project as an answer to a single puzzle: how did the “dynamic,” resilient Koreans of the developmental era become possible, given that outsiders a century earlier often described Koreans as weak or lethargic?

2) The book’s core argument (as I would formulate it)

The book’s intellectual engine runs on three connected claims.

First, late Joseon and the protectorate/annexation period produced conditions akin to a Hobbesian “state of nature”—a world where protection collapses, survival becomes primary, and life is reorganized around existential insecurity. Choi’s contents explicitly mark this conceptual move (“Hobbesian state of nature,” “survival,” “evolution”), suggesting that modern subjectivity begins not in abstract enlightenment ideals but in the felt experience of institutional breakdown.

Second, modern Korean identity is not presented as a smooth national awakening but as a series of branching struggles over what kind of person could endure and resist the age. Early nationalism appears in multiple forms, rooted in different social positions and emotional economies. The post-1919 moment intensifies the imperative to imagine a “strong Korean,” and literature becomes a privileged site where competing models are articulated.

Third, modern Koreans are “made” through the cumulative invention of models: the urban intellectual, the militant “warrior,” and the people’s hero. The point is not merely that novels “reflect” reality, but that they actively manufacture plausible templates of agency—figures that could make sense of catastrophe and propose ways to live and fight within it.

3) What the book does exceptionally well

One major strength is its insistence that fiction can be treated as a serious archive of political imagination. Many histories mine novels for atmosphere; Choi treats characters as intentional constructions—thought experiments about agency under extreme constraint. This allows literary criticism to function as a kind of social theory, and the reader repeatedly feels the payoff of crossing disciplinary borders, exactly as the book’s self-description promises.

A second strength is continuity. By moving from pre-modern archetypes to colonial-era reconfigurations and then to metropolitan and popular-hero forms, the book offers a long genealogy of subject-formation—how dispositions, moral sensibilities, and images of strength are accumulated over time. Even if one disputes particular readings, the overall architecture provides a powerful framework for thinking about Korean modernity as a process of repeated adaptation rather than a simple rupture.

4) Limits and questions a critical reader should keep in view

The very feature that makes the book compelling—loading “collective evolution” onto fictional characters—also creates risk. Novels are not neutral evidence: they are shaped by genre conventions, censorship regimes, markets, and authorial politics. At times, a persuasive historical inference can slide into interpretive overreach. The book works best when readers treat it as a forceful hypothesis—“the genealogy of characters as the compressed history of identity formation”—rather than as an uncontestable reconstruction.

A second issue is the double edge of the “strong Korean” narrative. In colonial and wartime contexts, strength is an intelligible existential problem. Yet the language of “warriors” and “heroes” can also be easily captured by militant nationalism, masculinist heroism, or the moral permission to sacrifice and dominate. Choi’s attention to divergent ideological models (often mapped through canonical authors and works) helps, but the reader should still ask: strength against what, and strength for whom?

Finally, there is a likely asymmetry in whose experiences become central. Even with Chunhyang as an early focal point, the narrative arc tends to privilege public, confrontational agency—intellectuals, warriors, popular heroes. A critical reading should probe what happens to the ethics of care, everyday survival, women’s labor, and non-heroic forms of endurance. If modern identity is partly forged in ordinary relational life, does the hero-centered grammar obscure that dimension?

5) How to use this book

Read it if you want a theory of modern Korean subjectivity, not merely a history of literature. The most productive way is to pair it with social history and institutional history of the same period, using Choi’s character genealogies as interpretive lenses that you can corroborate, refine, or contest. In that mode, The Birth of Koreans becomes what it aims to be: a large-scale, provocative reconstruction of how Koreans learned to confront their age—and, in doing so, learned to become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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